유래 (Yoorae) <Te>
유래의 <Te>는 큰 간격을 가진 두 시간대의 레이어로 구성된다. 2021년의 라이브 퍼포먼스 레코딩은 여섯 개의 트랙으로 분할되어 새로이 호출된다. 이 호출은 오래된 폴더에서 프로젝트 파일을 발굴하여 다시 작업하는 과정이 아니라, 당시의 레코딩 파일을 하나의 샘플로 활용한 결과이다. 일종의 샘플링인데, 샘플링은 자연스레 현재 트랙의 외부를 내부로 삽입한다. 과거에 녹음된 음원은 파묘되어 새로운 트랙을 위한 요소로 변형된다. 따라서 <Te>는 불연속적이다. 멈춰둔 작업의 갱신이 아니라, 완결된 시간의 갑작스런 출몰이기 때문이다. 2021년과 2025년이 층을 이루며 두 겹의 지층을 가진다. 그러나 그 층 사이, 2021년과 2025년의 시공간적 간극에서는 다음과 같은 깊은 공동이 발견된다: 불신, 망각, 사후적 회고. 완결된 작업을 다시 미완결의 상태로 전환하는 것은 확신을 위한 회고이다. 그렇다면 확신이란 무엇인가? 확신은 완결을 덮는 마스크이다. 완결은 확신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확신이 불신으로 전환된다면, 완결도 미완결의 상태로 회귀한다.
뇌에 당시의 정서를 새기는 데에는 청각만한 게 없다. 과거 뇌에 새겨진 홈과 지금 들리는 파형의 모양이 일치한다면, 뇌는 곧바로 새겨진 홈에 담긴 기억과 정서 또한 송출한다. 그러나 유래는 그 위에 씌워진 완결의 마스크를 벗겨내고, 다시 최신의 마스크를 덮어 씌운다. 열화가 아닌 레이어링으로. 따라서 2021년의 청각과 그 정서의 데이터는 유령처럼 으스스하게 드러나지 않고 <Te>의 견고하고 명확한 토대로 작동한다. 토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 위에 구축된 것이 무너지지 않게 버틴다. 기억, 그리고 체화된 감각이라는 토대 없이는 지금의 내재적 자기 인식 또한 있을 수 없다. 간단하게 (그리고 진부하게) 쓰자면, 과거 없이는 현재도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Te>의 모든 트랙 제목은 ‘테’라는 발음을 갖는 각기 다른 기호의 유니코드 표기이다. 각 기호는 상이한 뜻을 갖지만, 그 뜻은 단지 감각적 분위기로만 환기된다. 특정한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제목의 숨은 뜻은 스스로를 완전히 바깥으로 내놓지 못한다. (그러나 내놓는다 하더라도, 그 순간 음악은 음악이 아닌 구술이 될 뿐이다.) 유래는 각 트랙의 이미지를, 작업의 완결을 위한 마스크로 사용한다. 이로서 과거는 토대로 남고, 가려진 과거라는 토대는 현재와 미래에 자신을 기꺼이 내어준다. ‘Te’라는 기호는 의미없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오로지 감각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유래의 <Te>는 다중의 레이어를 갖는다. 과거-마스크-현재-마스크.
시간의 흔적과 이미지의 기호/의미(없음)를 재료로 삼는다면 ‘시네마틱’해질 수밖에 없다. 과거가 아무리 내밀하더라도, 그것은 그의 작업에 견고한 토대로서 징후적일 수밖에 없고 항상 그에게 몽타주의 재료로 남기 때문이다. 결국 <Te>는 그에게 지극히 개인적인 과거의 몽타주이면서, 흘러가는 시간의 비가역성이라는 운명에 순응하는, 다음을 위한 과정이다.
(글. 윤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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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s |
Written, Produced, Recorded, Mixed, Mastered by Yoorae
Cover Art by Nose Studi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