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알레프 (ALEPH)

발행일자 | 2021-09-30

 

알레프라는 이름의 단편선

 


 

우연히 ‘알레프’라는 이름을 알게된 건 꽤나 인기 있는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채널에서였다. 음악 한 곡을 귀로 다 소화하기도 전에 먼저 호기심이 갔던 건 흡사 단편소설의 제목 같은 제목들이었다. ‘홰홰’, ‘궁전’, ‘맞불’ 같은 단어들이 담긴 [홰홰] 앨범이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홰홰], [파수꾼] EP 2개를 내고도 3월부터 매달 싱글을 하나씩 내고 있는 알레프의 이야기와 그 저변의 기록들이 궁금했다. 누군가는 스쳐지나갈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시절을 대변하는 단편선이 될지도 모르는 알레프라는 사람의 음률은 어떻게 탄생한 걸까.

 


 

시작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궁금한 게 많아요. 어린 시절 이야기가 별로 없어서 궁금했어요.

 

인터뷰 자체를 많이 하지 않아서 드러난 게 많이 없죠. 초등학교 때 중국으로 가족이 다 함께 가서 살게 됐어요. 그러다가 대학을 미국으로 가서 생활을 했고, 군대 때문에 한국에 왔어요. 전역할 때쯤 마음 맞는 친구들이랑 한국에서 밴드를 하다가 학교 때문에 미국으로 돌아가려던 찰나에 소속사랑 계약을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2016년부터 쭉 지금까지 음악을 하면서 한국에 남아있게 됐죠.

 

중국에서 미국으로, 다양한 나라에서 살았던 게 영향을 미쳤겠네요. 어떤 아이였나요?

 

중2병이 오기 전까지는 좀 발랄하고 나서는 스타일이었는데요. 대부분이 그렇듯 중2 때부터인가, 중3 때부터 자아성찰을 하기 시작하잖아요. 그때부터 집에 오면 방 안에 틀어박혀있고, 자연스럽게 내향적인 성격에 가까워지지 않았나 싶어요.

 

그럼 중국에 있었던 시절부터 음악을 시작하게 된 거네요.

 

네,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한 게 고2였는데 그땐 음악을 업으로 할 생각은 전혀 없었죠. 제가 살던 중국 동네가 런던처럼 1존, 2존으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제가 학교 다니며 살던 곳이 제일 끝인 3존이었어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근데 친구들은 1존에 거의 사니까 친구들이랑 어울리려면 버스 타고 1-2시간은 이동해야 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뭐라도 해보자’ 해서 기타를 치기 시작했어요. 글 쓰는 걸 좋아하니까 가사도 같이 쓰게 된 거고요.

 

그러다가 고3이 됐는데, 딱히 특출난 분야가 없는 거예요. 당시 국제 학교 음악선생님이 “내가 다니던 학교를 한번 가볼래?” 권유해 주셨던 게 계기가 됐고, 또 장학금도 준다고 해서 미국에 있는 대학교로 진로를 정하게 된 거였어요. 미국에서 가서 2년 정도 학교를 다니다가 군대 때문에 한국에 돌아왔죠.

 

글 쓰는 걸 좋아했나 보네요.

 

기록하는 걸 좋아했던 거 같아요. 일기는 쓰면서도 누가 볼 것 같다는 불안감이 항상 있잖아요. 중학교 2,3학년 때는 그래서 일부러 영어 필기체로 못 알아보게 쓰려고 하고. 국제 학교를 다녀서 중국어보다는 영어가 편했거든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읽고 쓰는 행위에 대해서 파고 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시집도 읽고, 문학도 읽고요.

 

 

궁금했어요. [홰홰]는 전 트랙이 다 한글로 구성되어 있는데, 8월에 발매했던 ‘Like No Other’ 같은 경우는 한글이 한 글자도 나오지 않죠. 왜 둘로 나뉠까 궁금했어요. 곡마다 들려주고 싶은 청취자가 다른 건가요?

 

데뷔 앨범을 다 영어로 썼었어요. 그런데 한국 음원 시장에서는 영어 가사만 있으면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주변의 권유를 받아서, 개사를 하게 됐었죠. 이전에는 언어를 섞는 걸 싫어했어요. 왜냐하면 한 언어로 들었을 때 통일감이 있는데 섞이게 되면 청취자가 한번 더 번역해서 들어야하니까요. 청취자를 통일해서 영어는 영어대로, 한국어는 한국어대로, 이렇게 하자라고 해서 썼는데 개사를 하라고 하니까 처음엔 좀 거부감이 있었죠.

 

그런데 해보니 어떤 부분은 영어로 불러야 뉘앙스가 살고 어떤 건 한국어로 개사해도 괜찮은 거예요. 그래서 낸 게 2017년에 냈던 EP [1] 앨범이었고요. 그런데 작년에 몸 담았던 회사를 나오고 관념에 빠졌었어요. 한국어가 더 아름답다고요. 소위 국뽕에 찼다고 하는… (웃음). 그렇게 [홰홰] 앨범을 만들었어요. 앨범 전체에 쓰인 영어 문장이 몇 개 안돼죠.

 

 

[홰홰] 이후에 발매했던 ‘Morning Sun’이라는 곡이 담긴 노래는 해외 여행 하며 써뒀던 노래라 가사가 전부 다 영어였거든요. 미리 써놓은 곡들이기도 하고, 영어로 표현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영어로 앨범을 내봤는데요. 여러 시도 이후로는 영어과 한글에 대한 고정관념이 많이 풀린 것 같아요.

 

[도시 단편]도 국뽕에 취해있을 때 만드신 거예요? (웃음)

 

살짝… 있었어요. 그때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던 거죠. 맞아요.

 

앨범에 대한 변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꽤 오랫동안 활동을 이어왔어요.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받았을까요.

 

중간에 음악을 그만두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서 학위를 따야 하나, 마음먹은 적도 당연히 있었지만 제 안의 열망 덕에 그만 두지 않고 온 것 같아요. 제가 작업 속도가 되게 빠른 편인데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컨펌을 받아야 하고, 제작비를 지원 받아야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제가 내고 싶을 때 바로 내기가 어려운 환경이었어요.

그래서 내지 못한 곡이 몇 년간 쌓였는데, 그걸 다 못 내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든 이걸 내야겠다는 생각에 제가 저의 ‘셀프 제작자’가 되어서 음원을 내기 시작한 거죠.

 

 

그렇게 나온 게 [홰홰] 앨범이군요.

 

네, 그렇게 [홰홰]를 낸 건데 앨범을 내고도 여전히 내고 싶은 곡이 많은 거예요. “지금까지 있는 쓴 곡들을 다 소진을 해보자!” 그래서 또다시 내게 된 게 [파수꾼]이었죠. 회사에 있었을 때나, 미니 앨범에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썼던 곡도 몇 가지 섞여있지만 대부분 예전에 쓴 노래들이에요.

 

쌓아뒀던 곡들을 보여주고 싶은 열망이 계속 음악을 이어오게 한 모티베이션이 됐네요.

 

네, 지금 돌아보면 회사의 입장도 이해가 가요. 하지만 회사에서 나오고 순수히 제가 혼자가 됐을 때, 회사에 소속되지 않았을 때 ‘하고 싶은 걸 얼른 확 하자’는 마음이 연료가 되어서 지금까지 혼자서도 음악을 이어온 것 같아요. 일 년 정도 이렇게 셀프 제작자로 활동을 하니까 조금씩 길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이 기간을 더 유지해 볼 수 있겠다 싶어서 다달이 싱글을 내고 있죠.

 

어떤 길이 보이나요.

 

우선 스스로의 작업 스타일을 더 잘 알게 됐어요. 외국에서 왔다 보니까 같이 음악에 대해서 피드백을 주고받거나, 함께 작업할 수 있는 풀(Pool)이 없었는데요. 이제 같이 작업할 수 있는 작업자들도 생겨서 좋아요. 제 주변 사람들이랑 합을 맞춰가면서 2-3년은 더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혼자 음악을 하는 뮤지션에게 그런 ‘풀’, 네트워크 형성은 어려운 일이죠. 알레프는 자연스럽게 형성이 됐나요?

 

몇몇 친구들 덕분인 거 같아요. 알레프 밴드 세션을 도와주던 친구들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다 음대를 나왔으니까 그 친구들 주변에 알음알음 괜찮은 친구들을 소개받았어요. 그러다가 ‘전현명’이라는 친구를 만났는데요. 작업을 하면서 합이 되게 잘 맞아서 쭉 함께 해오고 있죠.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더라고요.

 

[도시 단편](2019), [홰홰](2020), [파수꾼](2021), 20대 후반에 짧지 않은 기간 동안 3부작을 냈어요. 지금 29살이시죠? 어떻게 보면 알레프의 20대 후반의 기록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각각의 앨범에 대해서 그리고 의미에 대해서 말해준다면?

 

재작년에 [도시 단편]을 만들 때만 해도 지쳐있었던 것 같아요. 보컬 아티스트로서의 스트레스도 있었고, 앨범 작업 자체도 좀 힘들었고요. 스스로가 지치니까, 주변에 저희를 도와주는 분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으로 만들었던 거죠. 앨범이 잘 돼야한다는 압박을 받으면서도 ‘잘 안된다면?’ 같은 앞서가는 생각들 때문에 더 힘들었던 거 같아요.

 

당시 일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업을 했는데, 컴퓨터 한 대랑 마이크 하나 있는 작은 작업실에서 어렵사리 앨범을 만들었죠. [홰홰]부터는 그런 마음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저에게 집중했던 앨범이에요. 소설 쓰는 걸 좋아해서 요즘도 글을 쓰거든요. 단편, 장편 소설들이요. 장편 소설은 공모전에도 출품할 만큼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물론 공모전은 떨어졌지만요. (웃음)

 

[홰홰] 앨범을 봤을 때 단편소설집 같다는 인상을 받은 게 그런 의도였군요.

 

네. ‘이야기’로 만들어진 무언가를 좋아하다 보니까. 앨범도 그렇게 구색을 맞춰서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제목도 다 두 글자로 일부러 통일했었고. 곡이 각각 한 편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되, 앨범 소개를 읽으면 “이게 이런 걸로 이어지는구나”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게 그 앨범의 목표였는데 잘 됐다고 생각해요.

 

[파수꾼]은 제가 제일 아끼는 앨범이에요. 그 앨범 내기까지가 제일 오래 걸렸어요. 2014년에 만든 곡도 있고. ‘바람들’이나 ‘조금 일찍 알았더라도’는 2015년 쯤에 만들어졌고 나머지는 대부분 군대에 있을 때 쓰거나, 2016~17년도에 작업했던 곡들이에요. 좋아하지만 차마 다 못 냈던 노래들을 모아서 낸 앨범이죠.

 

 

[파수꾼] 앨범 중에 그래도 제일 애정이 가는 곡을 고른다면요?

 

‘파수꾼’을 제일 좋아해요. ‘파수꾼’ 가사에는 [도시 단편]을 작업하며 느꼈던 저의 아쉬움이 담겨 있어요. 주변인들을 챙기고 싶지만 챙기지 못했던, 나의 능력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서 오는 무력함. 자기 자신이 남들에게 미운 사람이 되는 거 같은 초라함들이 담긴 곡인데요. 스스로의 감정에 가장 진실 되게 쓴 곡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 개의 EP가 어쩌면 알레프의 성장의 기록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올해는 매달 한 곡씩 노래를 내고 있어요.

 

제일 큰 이유는 일단 다작을 하고, 그 곡들을 빨리 소진하고 싶고 세상 밖으로 보여주고 싶은 욕구예요. 왜냐면 겪어보니까 EP 앨범 하나를 만드는데도 큰 에너지가 필요한 거예요. 앨범이라는 구색을 맞춰야 하고, 제작비도 많이 들어가죠. 그런데 한편으로 곡의 반응을 미리 가늠할 수 없으니까 리스크가 있는 것에 비해 싱글은 좀 더 가볍게 낼 수 있어서 좋아요. 시장의 흐름이라는 게 있고 그 물살을 같이 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음원을 자주 내서 ‘노출’이 일단 많이 되야겠다는 게 두 번째 생각이었고요.

 

세 번째로는, 그냥 마음이 편해요. 제가 작업을 다 하고도 마음에 안들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일단 내고 보겠다는 마음이요. 저는 어차피 세상 밖으로 곡을 내보내면 그 이후로는 상관 안 해요. 평가는 어차피 청취자들이 하는 거기 때문에. 물론 각 곡에 대한 의미는 있지만, 발매하고 나서는 “알아서 너네가 자생해서 살아라 곡들아~내가 너희를 곳간에 꿍쳐 두지 않겠다.”라는 마음인 거죠. 오히려 그 편이 곡들한테도 좋은 것 같고요.

 

 

매달 내는 것에 대한 압박은 없나요? 영감이나 체력이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거나요.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힘이 나요. 많이 작업을 하고 이걸 바로바로 내니까. 스스로 나름 부지런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한 번 늘어지면 정말 한없이 늘어지는 편이어서요. 작업을 하는 게 스스로 채찍질하는 느낌도 있어서 오히려 괜찮아요. 근데 최근에 1년 반 정도하다 보면 지치는 타이밍이 있겠다고 요즘 느끼고 있어서, 계획은 내년 상반기까지 지금처럼 하다가 EP 준비하면서 쉼도 좀 가지려고요. 페이스를 맞추고 있죠.

 

매달 낸 음원을 묶어서 낼 계획도 있나요?

 

내년 1월쯤 아카이브 개념으로 앨범을 묶어서 하나 내려고요. [2021 아카이브]로 해서 3월부터 12월까지 낸 노래, 그 외에 2-3곡 추가해서요. 곡이 1년만 지나도 낡은 곡이라는 평가를 받는 시대인데, 그런 걸 좀 무마하면서 재조명 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할까요. (웃음)

 

 

그럼 매달 지금까지 낸 싱글 중에 특별히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요?

 

‘Instant Lover’요. 일단 작업이 엄청 간단했어요. 마이크도 원래 콘덴서 마이크를 쓰는데 유독 다이내믹 마이크를 쓰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4만 원짜리 SM58 마이크를 썼는데 오히려 다이내믹 마이크가 주는 느낌이 곡이랑 잘 맞아서 놀랐어요. 실험적인 부분이 잘 살았고, 부르기도 쉽고. 모든 게 편했던 것 같아요. 반면에 제일 힘들었던 곡이 ‘순애보’라는 5월에 낸 곡인데. 그 곡은 과정에서 레트로함을 살리려고 테크닉이랄까, 가성이나 이런 걸 사용하는 데 있어서 힘들었어요.

 

알레프 노래를 이야기할 때 가사에 대한 이야기를 안할 수 없어요. [파수꾼]까지는 굉장히 시적이고 무거운 가사들이 많았어요.  

 

이성에 대한 사랑 노래를 쓰는 걸 시도를 많이 했었는데요. 그럴 때마다 가사를 다 뒤집어엎게 되는 거예요. 결국 맘에 드는 가사를 보면 스스로에 대한 고찰과 관련된 가사가 많았어요. 마음에 어떤 빈 감정들을 담아내야 직성이 풀리더라고요. 마음의 그런 빈 공허함들을 가사로 풀어내면서 스스로 치유하는 편인데 너무 적나라하게 담아내면 듣는 사람들이 불편해 할 것 같아서 은유적으로 많이 담아내는 편이었죠.

 

근데 주변 친구들이 어렵고, 못 알아듣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피드백을 들은 이후로 ‘내가 굳이 가사를 어렵게 쓸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좀 덜해진 것 같아요. [파수꾼] 다음 앨범부터는 좀 더 의미를 줄이고 직설적으로 쓰고 있어요. 좀 더 표면적으로 드러내려고 하고요. 가사에 대한 그런 사소한 변환점이랄까, 그런 게 스스로 보이니까 스스로에 대한 에너지가 되기도 하는 거 같아요.

 

가사를 쓸 때나, 노래를 만들 때 가장 동기 부여가 되는 감정이 어떤 것들이예요?

 

[파수꾼] 때까지는 우울감, 공허함이었다면 그 이후에는 평정심인 거 같네요. 요즘 뭐가 없어요. 걸리는 게 없으니, 막 쓰면 나오더라고요. [파수꾼] 이전에는 어떤 감정에 심취해서 썼다면 지금은 편안한 상태예요. 이것저것 끄적이다가 ‘이거 마음에 드네’하면 그 소절이 출발점이 되기도 하고요. 요새는 물 흐르듯 가사도 편안한 상태에서 잘 쓰는 것 같아요.

 

 

지금은 직업으로서 뮤지션 같네요. (웃음) 때 되면 책상에 앉아서 차분히 노래 쓰고, 매달 노래 내고.

 

맞아요. 아, 근데 어떤 소절이 출발점이 돼서 노래를 만들더라도 평정심의 상태와 어떤 감정에 취해 있는 상태와는 또 다른 게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완전히 평정심이라고만 이야기할 순 없겠네요. 가사는 짜깁기를 할 때도 있고, 직업인처럼 이것저것 탐구하는 느낌이라면 곡을 쓸 때는 확실히 어떤 무드가 필요한 거 같긴 해요. 기쁜 무드의 멜로디를 슬픈 상태에서 쓸 순 없으니까요.

 

그럼 요즘 제일 영향을 받는 존재는 뭔가요?

 

전 자연? 아티스트를 이야기하면 끝도 없죠. 20대 초반에 좋아했던 제이슨 므라즈, 제이미 칼럼… 포크, 재즈, 락에 돌아가면서 빠지고 음악을 듣고 하면서 아티스트한테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20대 중반이 되니까. 어르신들 왜 나무 사진 찍고, 꽃 사진 찍으시는지 너무 알 거 같아요.

 

(카페 창문 밖으로 보이는 맞은편 건물 벽을 가리키며) 문득 저런 돌로 된 벽을 보면서도, 지하철 창문으로 잠깐 보이는 한강을 보고도. 바쁜 도시에서도 저한테 평정심을 주는 존재들이 그런 자연이라, 자연에서 가장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알레프에게서 묻고 싶던 질문이 있어요. 만약 알레프가 스스로, 알레프를 하나의 단어로 설명한다고 하면 어떤 단어로 표현하고 싶은지요.

 

음, 요새는 ‘유유자적’(悠悠自適)이요. 걱정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 편히 지낸다는 뜻이잖아요. 있는 듯 없는 듯한데, 보면 그대로 있는? 그런 느낌이에요. 지금 제가 그런 느낌의 생활을 주로 하기도 하고요. 일상도 주로 집-작업실 반복이고, 코로나19 때문에 돌아다니는 데도 제약이 있으니까요. 근데 제 곡도 그런 것 같아요. 아는 사람들은 알고,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고. 아는 사람들은 편하게 부담 없이 듣기 좋다고 하셔서, 제 음악은 ‘유유자적’ 하면서 틀어도 좋지 않은 음악일까 싶고요.

 

 

내년엔 어떨까요?

 

내년엔 좀 바뀌지 않을까요. 제가 다음, 다다음으로 낼 곡들이 색깔이 조금씩 다른데요. 기존 알레프와 조금 다르지만 팬분들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실험을 하고 있거든요. 만약 R&B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싶으면 R&B 부담 없게 조금씩만 섞어서 만들고 있거든요. 하지만 내년에는 알레프가 한 색채를 뚜렷하게 낼 생각이어서 그때는 다른 단어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지금은 내년을 위한 선택적 ‘유유자적’의 기간이라고 봐야겠네요

 

그렇죠. 지금은 궁금했던 것들을 시도해 보고 데이터를 모으는 시기인 것 같아요. 기존 알레프가 기존에 포크와 락과 팝의 색을 가져갔다면, 타 장르들을 섞는 시도를 하고. ‘아 내가 이 음악에 묻었을 때 이런 식으로 표현이 되는구나’라는 걸 직접 경험해가면서 알아가고 있으니까요. 조금씩 어떤 장르는 좀 더 깊게 표현해 봐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기고 있죠. 그래서 내년에는 올해 냈던 곡 중에서 ‘이 색깔이 맘에 들었었지?’ 하는 색들을 뚜렷하게 하는 과정일 것 같아요. 올해 친 곁가지들을 더 깊게 파는, 마인드맵을 확장시키는 해가 되겠네요.

 

‘월간’이 그럼 실험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네, 맞아요. 다분히 저의 만족을 위해서 내는 앨범이죠. 스스로의 진로 상담 같은? (웃음)

 

 

미끼를 던지면서 대중들의 반응을 보고요.

아티스트들은 어느 한 색깔로 국한되고 싶지 않아 하잖아요. 물론 30대든, 40대든 언제 해도 이 실험들이 늦은 건 아니겠지만 지금의 제 에너지와 그때의 에너지가 너무 다를 것 같은 거예요. 29살인 제가 낼 수 있을 때 많이 많이 내보려고요. ‘이 장르 좋아했었지.’, ‘이 느낌으로 내보자.’라며 스스로 생각하면서요.

 

앞서 알레프를 단어로 표현하면 ‘유유자적’이라고 했어요. 그럼 한 권의 책으로 비유를 해서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라는 책을 꼽고 싶어요. 파블로 네루다가 칠레의 공산당 출신의 시인인데요. 그런 작가의 배경을 제외하고 읽더라도, 자연을 굉장히 잘 풀어냈어요. 자연이 요즘 제일 좋다 보니 그런 거 같아요. 파블로 네루다 책을 다시 읽고 있는데 진짜로 충만한 힘은 자연에 대한 느낌에서 오는 거 같아요.

 

 

최근에 발매한 ‘Night and Night’은 어떤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건가요?

 

사실 ‘Night and Night’은 만든지 오래 안된 노래예요. 저번 달에 만들었거든요. 요즘 한밤중에 밖이 너무 소란스러운 거예요. 주택가에 살고 있는데 저녁만 되면 취객들이 넘쳐나고, 이른 새벽에는 어르신들 소리에 잠이 깨기도 하고요. 외부인들의 소리 때문에 조금 괴로워서… (웃음). 그래서 쓰게 된 노래예요. 방해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요.

 

앨범 소개를 보면 ’고요함 속 스스로가 내는 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이라고 적혀 있어서 굉장히 상상하게 됐는데 그런 생활적인 비하인드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재밌네요. 앞으로는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데이터를 구축하는 게 현재, 29살의 알레프라고 하면, 30대에는 파악하고 수집한 것으로 “와 정말 잘 만들었다”라는 생각이 드는 앨범을 내고 싶어요. 지금은 저라는 아티스트의 색채가 굳어지기 전에, 확고해지기 전에 이것 저것 덧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요. 저만의 색깔을 만들어내서 한 앨범을 장편소설처럼 풀어낼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그게 바로 알레프의 정규 1집이 될 거라고 기대해봐도 될까요?

 

네. 앞서 말씀드린 내년 1월쯤 낼 아카이브 앨범을 제외하고요. 아마 내년 하반기나 내후년 상반기를 목표로 준비 하게 되겠죠. “알레프가 이제 뭘 하는지 알겠다”라는 느낌이 들었으면 하는 거죠. 쓰고 싶었던 악기부터 곡의 퀄리티까지. 쓰고 싶은 재료들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아티스트요. 지금의 알레프는 가성비 기준으로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만 하자는 생각인데, 점점 더 상황이 나아지면 음악 색깔뿐만 아니라 곡에 대한 퀄리티도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다양한 협업들도 많이 하면서 더 재밌게 하는 게 목표인 거 같아요.

 

지금은 새롭고 재밌는 걸 시도해 보는 시기인 거네요?

 

네. 근데 그 새롭고 재밌는 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기엔 아직 무리인 거 같아요. 아직까진 혼자 작업하는 게 좋고 편해서요. 몇 사람이 합쳐졌을 때 산으로 가는 게 싫고요. 지금은 혼자 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올해는 오로지 혼자서 실험하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내년, 내후년쯤은 다른 분들과의 작업도 고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읽고, 이 인터뷰를 듣고 알레프님의 노래가 궁금해서 들어보려고 하는 사람에게 추천 하는 가장 ‘알레프’스러운 노래? 제일 먼저 들어봤으면 좋겠다는 곡, 추천해 줄 수 있을까요?

 

‘파수꾼’이요. 저를 제일 잘 표현한 노래여서요. [파수꾼] 앨범에서는 ‘파수꾼’이랑 ‘호랑이의 숲’을 추천해드리고 싶고 그 이외에는 ‘홰홰’라는 곡을 추천하고 싶어요. 그 곡에 담은 메세지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라는 건데요. 저 역시 아티스트로서 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고. 그 생각으로 열심히 고민하며 곡을 만들고 있거든요. 알레프를 경험하고 싶다면 [파수꾼]부터 앨범을 시간 역순으로 들어보시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Photographer | Park Young Jun @khuss_goods
Stylist | Jo Hye Su @sooksmell
Hair & Make up | Kim Jung Hyun @_beenb


Interview | 이진수 (GQ KOREA 에디터) @off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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