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우울하고, 적당히 행복하게
Bye Bye Badman의 키보드 주자, CHEEZE의 멤버 및 작, 편곡자로 커리어를 쌓으며 백예린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장르의 프로듀서로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구름이 무려 4년 만에 솔로 아티스트로 컴백했다.
백예린이 2019년 창립한 레이블 ‘블루바이닐’의 두 번째 아티스트가 되면서 발표한 정규 앨범 [많이 과장해서 하는 말]은 이전에 발표했던 싱글뿐만 아니라 그동안 구름이 보여준 다양한 활동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Nujabes 같은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의도를 보여주듯 로파이한 비트와 건반 연주만으로 구성된 이번 앨범의 심플한 사운드는 섬세한 보컬 톤과 구체적이고 솔직한 가사와 함께 어우러져 구름만의 ‘우울’과 ‘행복’을 담아내고 있다.
프로듀서 활동과 솔로 프로젝트 모두 충실하게 이어가고 있는 구름과 이번 앨범의 음악성과 가사, 그리고 프로듀서 활동과의 관계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솔로 작품을 발표하셨네요. 정규 앨범을 만들자는 생각과 본격적인 곡 작업은 언제부터 시작하신 건가요?
구름: 원래 4년 전에 싱글을 냈을 때 이미 정규 앨범을 내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엔 솔로 활동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고 스스로도 그런 포지션(솔로 뮤지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거든요. 공부도 필요하고 예린이의 앨범에 집중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서 ‘언젠가는 하겠지’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올해가 되면서 예린이의 작업 패턴이 안정기에 접어든 덕분에 전에 있던 곡들과 함께 새로 만든 것들을 더해서 정규가 나오게 되었어요.
EP도 아닌 정규 앨범을 내기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구름: 이미 곡이 많이 있었던 것도 있고 수록곡끼리 잘 어울려서 묶일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곡을 쓸 때의 감정적인 상태 같은 것들이 비슷해서 하나의 정규로 내려고 했어요. 그리고 저는 공연을 많이 하거나 라이브 클립 같은 활동을 하는 타입의 아티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노래를 많이 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방금 언급한 것들을 대체할 활동이 정규라고 생각한 거죠.
첫 정규앨범인데 작업은 원활하게 진행되셨나요?
구름: 그런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랑 일하게 되면 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제 앨범은 스스로가 허락하면 되는 거라서 꽤 순탄하게 잘 된 것 같아요.
작곡, 편곡 뿐만 아니라, 연주나 믹스까지 전부 혼자 하신 것 같은데 원래부터 그럴 계획이었나요?
구름: 원래 마스터 정도는 맡기려고 했는데 일단 저는 혼자 다 하는 걸 선호하거든요. 다른 외부 작업을 할 때도 그렇고. 그리고 특히 이게 되게 개인적인 부분이 많은 앨범이라 그걸 누가 연주해주거나 멋있게 다듬거나 하는 게 스스로가 보기에 가식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냥 직접 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앨범 곡 작업을 하실 때 무엇을 중요시하셨는지 궁금해요.
구름: 사실 저는 다른 사람의 음악을 작업하는 일이 더 많은데 이럴 때는 음악적인 컨셉이나 퀄리티가 당연히 좋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제 앨범 같은 경우는 뭔가 그러려고 만들지는 않았거든요. 무언가를 특별하게 의도해서 담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옛날 힙합 같은 걸 들어보면 샘플링 비트 같은 걸 많이 쓰잖아요.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편하게 뱉어서 얹어놓는 식으로 작업했어요.
사운드에 주목해보면 기타나 베이스도 없이 전체적으로 건반과 비트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전 작품들보다 미니멀한 느낌이 들었어요. 솔로 작품은 이와 같이 미니멀하게 만들자는 의도가 있었나요?
구름: 피아노 비중이 많은 게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만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다른 사람과 일할 때는 사운드를 모두 만들어 놓고 그 위에다 노래를 만들면서 정리하게 되니까 다양한 악기를 써보게 되는데, 이번 앨범은 노래를 만든 다음에 그대로 플레이트에다 옮기는 식으로 작업을 하느라 피아노를 치면서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걸 굳이 기타로 편곡하고 싶지 않아서 피아노곡들이 많은 것 같아요.
피아노로 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 음악이라는 이미지도 들었어요.
구름: 사실 저는 자신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생각하지는 않고요. 저는 제 앨범을 Nujabes 앨범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Nujabes를 많이 좋아하기도 하고 이번 앨범에 Nujabes 처럼 만든 사운드도 있어요.
Nujabes 같은 음악을 하고 싶었다고 하셨는데 어떤 부분에서 그런 음악의 매력을 느끼셨는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볼 수 있을까요?
구름: 일단 이런 사운드 자체를 좋아하기도 해요. 그리고 저는 전체적으로 Nujabes 노래는 슬픈 노래라고 생각하거든요. 편하게 들을 수 있으면서도 마냥 신나지는 않는, 슬픈 상황을 굳이 설정하지 않아도 그냥 그 사람의 슬픈 마음이나 우울한 감정 같은 걸 차분하게 플레이해주는 느낌이 좋았어요. 그리고 저도 그런 부분을 제 작업에 담고 싶었던 것 같아요.
평소에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도 음악을 통하면 표현하기 편하다고 느끼시나요? 이런 감정을 부르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구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대신에 노래를 만들다 보면 “내가 평소에 이런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구나”라고 알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노래를 만들 때 글을 적잖아요. 적다 보면 “이런 생각도 머릿속에 있었네” 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어서 제 감정을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가사는 어떻게 쓰시나요?
구름: 메모를 하는 편이긴 해요. 그런데 대부분 메모가 ‘어떤 방식으로 써야지’ 정도에서 끝나요.
그렇다면 가사는 생각보다 편하게 쓰신 건가요? 참고한 가사 스타일은 없는지도 궁금합니다.
구름: 네, 편하게 썼어요. 이소라 씨 음악 중 어떤 곡은 특정 사람의 이름 같은, 엄청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가끔 등장하거든요. 그리고 그런 걸 들으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도 대충 상상하면서 듣게 되잖아요. 마치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지만 남의 대화를 훔쳐 들어도 뭔가 소화가 되는 것처럼요.
제 가사도 엄청 개인적인 것들이에요. 예린이 노래 같은 경우에도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사실 모두가 다 비슷비슷하게 사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모두가 똑같지 않을 수 있어도, 상황이나 나이, 장소가 조금씩 다를 뿐이지 누구에게나 어떤 특정한 슬픔이 있는 거죠. 개인적인 걸 사소한 것까지 막 적어도 그걸 다른 사람이 들었을 때 저랑 비슷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제 가사도 쉽게 쓰는 것 같아요. 일기 쓰고 편지 쓰고 하듯이.
저도 가사를 읽으면서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인데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인 것 같다고 느꼈어요. 수록곡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해볼게요. ‘많이 과장해서 하는 말’은 중간중간 템포가 바뀌는 혼란스러운 간주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혹시 이 부분이 특정한 감정을 상징하 는 건가요?
구름: 사실 저는 이 노래가 가사 내용이나 분위기, 구조적인 것들을 모두 포함해서 이번 앨범을 관통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것도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집에 들어와서 혼자 있을 때 밀려오는 감정이나 후회 같은 것들이 뒤엉킨, 그런 여러 가지 형태의 마음을 만들고 싶어서 아무거나 구겨 넣다 보니 그런 게 나왔어요.
‘자기 전’은 유일한 댄스 비트의 곡이네요. 어떻게 아이디어가 나왔는지 궁금해요.
구름: 그것도 1번 트랙이랑 감정선은 비슷해요.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많은 연인 사이의 대화처럼 삶 속에서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잖아요. 내가 한 이야기에 대해 전혀 상상하지 못한 피드백이 올 수도 있고요. 그런 걸 표현하려고 비트에 뭔가 막 이렇게 와장창하는 느낌이 있어요. 뭔가 해소되는 느낌이랄까? 곡을 썼을 때 그런 시기였던 것 같아요.
다른 곡에도 이렇게 잔잔한 부분과 시끄러운 부분을 하나의 노래 안에 넣고 감정 기복을 표현한 경우가 많으신가요?
구름: 제가 그런 방식이나 형태의 음악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팡 터뜨려주는 포인트가 있는. 제 성격도 그렇고 직설적으로 뭔가를 하는 성격이 아니라 그런 파트가 들어간 음악을 만드는 일로 푸는 것 같아요. 그런 기분이 더 많이 드는 내용일수록.
다섯 번째 곡 ‘귓속말’은 앨범 구조상 가운데에 있는 인터루드(간주) 같은 곡인데 청자에게 휴식을 주는 느낌이네요. 어떤 의도로 만든 곡인지 궁금합니다.
구름: 원래 이 노래에 가사가 있었어요. 근데 제가 이걸 부르려면 키를 엄청 높이거나 낮춰야 되더라고요. 저는 딱 지금 이 키가 좋은데 그렇게 하면 피아노 소리가 안 예쁜 거예요. 그래서 가사 내용은 혼자만 알고 있고 수록만 하려는 생각으로 뒀거든요. 그리고 제가 중간에 인스트루멘탈 트랙이 있는 앨범을 되게 좋아해요. 앨범을 들을 때 그 부분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해서 쭉 들어봤는데 원하는 흐름이 생긴 것 같아서 넣었어요.
혹시 중간에 인스트루멘탈 트랙이 담긴 앨범 중에 특히 좋아하는 작품이 있으세요?
구름: Jamiroquai의 3집 [Travelling Without Moving]이에요. 그 앨범에는 엄청 긴 인스트루멘탈 두 곡이 (‘Didjerama’, ‘Didjital Vibratoins’) 들어있거든요. 이 두 곡이 음악보다 소리에 가까운데 앨범이 흘러가는 과정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엄청 잘해주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많이 들었어요. 최고예요.
4년 전 솔로 프로젝트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어떤 차이점을 느끼시나요?
구름: 일단 그때는 제가 음악 자체를 다루는 것에 있어서 지금처럼 능숙하지 않았어요. 지금이랑 똑같은 일을 해도 방법을 정확하게 모르니까 조금 시간이 걸렸거든요. 제 작업이기 때문에 부담이 적었다고 해도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그리고 믹스 마스터 같은 후반 작업도 아직 능숙했던 시기가 아니어서 지금의 제가 들으면 그 당시 음악은 되게 아마추어 같이 들려요. 실제로 후반 엔지니어링 과정에서 꼭 해야 하는 작업을 모르고 안 하고 발매해버렸던 부분도 많았고, 그런 차이점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이제 능숙해져서 어떻게 하면 어떻게 된다는 걸 머릿속으로 생각해서 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노래를 부르거나 글 쓰거나 할 때 되게 편하게 집중할 수가 있어요. 예전엔 이것저것 어설퍼서 아마추어 같이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프로듀서 활동은 이번 앨범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나요?
구름: 프로듀싱을 하게 되면 저도 최선을 다해야 하잖아요. 그것에 맞는 테크닉과 지식, 체력도 필요하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삶도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런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제 앨범에만 매달렸다면 해야 하는 일도 한정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덕분에 개인 앨범을 작업할 때는 상대적으로 좀 수월했던 것 같아요. 내가 다른 데서 공부했던 걸 베이스로 작업하게 되니까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고. 테크닉적인 부분에서 남에게 맡기지 않아도 돼서 좋은 것 같아요.
프로듀서 활동을 할 때는 솔로 작품보다 해야 하는 일, 배워야 하는 일들이 많은 것 같네요. 솔로 작업을 하실 때는 어떠신지 궁금해요.
구름: 제가 제 앨범을 위해서 따로 노력하고 싶진 않아요. 슬픔, 기쁨, 우울함 같은 감정들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하면 멋있게 만들지? 같은 걸 고민하는 게 아직 부끄럽거든요. 저는 스스로가 제 앨범에 대해서 노력을 많이 하지 않은 이 상태가 완벽하다고 생각해요. 테크닉적인 고민과 다르게 노래의 감정을 어떻게 담느냐는 고민을 하고 노력을 하는 과정은 뭔가 조금 부끄러워요. 가사의 내용이 픽션이나 머릿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 어쨌든 되게 개인적인 부분을 쓰는 것이다 보니까.
반대로 솔로 활동은 앞으로의 프로듀서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시나요?
구름: 저는 사람들이 저를 특징짓는 느낌이 들거든요. 제가 프로듀싱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사실 대부분은 예린이의 히트곡을 갖고 와서 “이런 걸 한 번 같이 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해요. 그런데 저는 사실 스스로가 이런 걸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단지 그게 잘되는 거지. 저는 그런 걸 계속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서요.
저는 제 개인 앨범이 프로듀서 활동보다도 차라리 글을 쓰는 데에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스스로가 테크니컬한 프로듀서가 아니고 되게 코드를 멋있게 쓰는 화려한 프로듀서도 아니고 어디에 치우치지 않는 하이브리드형 프로듀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 앨범을 듣고 ‘이 사람은 이런 것도 할 수 있네’ 라던지 ‘이 사람이 쓰는 글은 이런 톤이구나’ 같은 반응이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프로듀서로서의 정체성 같은 걸 그렇게 구체적으로 한정하고 싶지 않으신 거군요?
구름: 그렇죠.
그런 점에서는 밴드 음악, 록 음악부터 힙합이나 R&B, 그리고 솔로 활동까지 매우 다양한 활동을 해온 커리어는 자신의 평소 성격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구름: 그런 게 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16년도에 싱글을 냈을 때 약간은 일 중독이나 강박증 같은 게 있었거든요. 그 당시에는 아직 제 캐릭터가 정해지지 않아서 히트곡도 없었고 제가 뭘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것도 해야 해’, 이런 것도 잘해야 돼’라면서 다 해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힙합 하는 사람한테 비트도 보내보고 가요도 하려고 해보고 그냥 R&B 작업도 해보려고 했고요. 물론 록밴드는 재미있어서 하는 거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당시에 만들었던 데모들을 보면 아이돌 댄스음악도 해봤던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그런 게 조금 없거든요. 다 잘하지 않아도, 굳이 일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라서 지금은 되게 한정적인 일만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차이인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힙합 하는 친구랑 작업하는 게 있긴 한데 접근하는 방식이 예전이랑 조금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그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지금은 변한 것 같아요.
앞으로 솔로 아티스트로서 어떤 커리어를 쌓고 싶은가요?
구름: 구체적인 목표가 있진 않아요. 저는 공연을 많이 하는 포지션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바이럴을 해서 뭔가를 만들고 소화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음원을 많이 내고 싶어요. 그때그때 내가 어떤 생태였는지 알 수 있는 것들을 계속 내고 많이 작업하는 사람으로 활동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오래 발표하지 않기도 했고요.
Interview | 야마모토 다이치
Edit | 월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