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조금씩 변하는 자신을 발견해 내는 세심함, 강지원 첫 EP [Weather] 발매 기념 인터뷰
좀처럼 날씨를 예상하기 어려운 요즘이다. 언제는 갑작스럽게 폭설이 내리면서 추워지더니, 글을 쓰는 지금의 공기는 가을처럼 선선하기만 하다. 기온이 다시 영하권으로 떨어진다는 소식을 들으며 이제서야 겨울이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뒤죽박죽 정신없는 현재의 날씨를 예상이라도 한 듯, 싱어송라이터 강지원 (Kangziwon) (이하 ‘강지원’)이 [Weather]라는 이름으로 ‘똑같은 날씨의 하루는 없다’라는 메시지를 담은 미니 앨범으로 돌아왔다.
일상 속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감지해낸 [Weather]는 강지원이 자신의 이름으로 처음 선보이는 EP이기도 하다. 데뷔 이전부터 서울예술대학교 작곡 부문을 수석으로 입학하며 주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후로도 여러 굵직한 활동을 보여왔던 강지원. 그는 아이유의 여섯 번째 미니 앨범 [The Winning]의 스트링 편곡을 비롯한 각종 프로듀싱 작업과 놀이도감 밴드셋의 건반 연주로 참여 뿐만 아니라, 강지원 개인으로 꾸준히 싱글을 발매하며 멋진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첫 미니앨범이라는 소식이 유독 반갑게 들린다.
탄탄대로처럼 느껴지는 멋진 커리어일지라도, 아티스트 개인에게는 모든 순간이 언제나 화창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프로듀서, 연주자, 그리고 싱어송라이터라는 역할에서 각각 주어지는 각각의 업무들이 폭풍처럼 밀려오기도 하고, 계속해서 커져가는 기대감에 부담감이라는 구름이 잔뜩 드리우는 날도 존재할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강지원은 한걸음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보기를 택한다. 그는 자신의 취향과 감정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귀 기울였다고 말하며,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앨범의 분위기 속에서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요즘처럼 추워지기 직전, 선선한 어느 가을날에 강지원을 만나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첫 미니앨범 [Weather]를 발매하기까지의 다양한 순간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 강지원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Q. 최근에 첫 단독공연을 진행하셨잖아요. 잘 마무리하셨나요?
버스킹이나 게스트, 아니면 세션으로 무대를 서보다가 제 이름으로 직접 공연하는 게 처음이다 보니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고요. 9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혼자 노래를 불러야 해서 많이 어려웠어요. 배움의 자세로 임했어요. (웃음)
먼데이 프로젝트에서 매 기획공연마다 이벤트를 준비해주시거든요. 팬들이 공연을 다 본 이후에 편지를 적어주시면, 그걸 엮어서 전달해 주세요. 그 편지들이 엄청 느껴졌어요. 공연장에서 저를 보러 와주신 분들의 눈빛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사실 공연이 끝난 이후에 약간의 공허한 감정을 느꼈는데, 편지가 다시 마음을 채워주더라고요. 되게 좋았어요.
Q. 말씀주신 것처럼 세션 활동 뿐만 아니라 저작자로도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계시잖아요.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건 언제쯤이에요?
음악은 어렸을 때부터 정말 좋아했어요. 음악을 들으면서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의 실제 연주자가 되는 상상도 하고 그랬어요. 중학생 때는 록 기타리스트가 꿈이기도 했고요. (웃음)
제가 어렸을 때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성행할 때였거든요. 슈퍼스타K, 케이팝스타 같은 방송을 보다 보면 기타 한 대 들고나와서 노래하시는 분들이 되게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정말 멋있더라고요. 그래서 부모님을 졸라서 통기타를 처음으로 샀었어요.
Q.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한 걸로 알고 있는데, 중학생 때부터 예술 분야에 계셨던 거예요?
중학교는 살던 집 근처 학교를 나왔고, 원래는 음악과 상관없이 공부를 열심히 하던 학생이었어요. 취미로 기타를 치면서 코드를 배우고, 기타 코드를 다른 악기에 적용해서 피아노 반주를 치고 그랬어요. 초등학교 때 클래식을 조금 배워둔 게 있다 보니, 기타를 배울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건반 실력이 늘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독학을 하다가, 어느 날 친구가 같이 다니는 교회의 찬양팀 연주를 해보자는 제안을 줬어요. 음악이라는 게 정말 재미있는 놀이에 가까웠고, 그래서 언제든지 자유롭게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고등학교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곡 전공으로 들어갔거든요.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좋고, 곡을 직접 만드는 것도 좋았지만 부모님 허락을 받으려고 제일 멋있어보이는 작곡 전공을 골랐어요. 작곡 자체에 엄청난 큰 뜻이 있었다기보다는 음악하는 게 좋아서 부모님을 꼬시기 위해 선택했던 스노우볼이 이렇게 굴러갔네요. (웃음)
Q.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시는 걸 보면, 부모님을 잘 설득했다고 봐도 되겠네요.
예술고등학교를 가는 것도 많이 반대하셨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던 아이였어서, 부모님은 외국어 고등학교를 가길 바랐거든요. 저는 막상 가면 숨을 못 쉴 것 같더라고요. ‘우선 예술고등학교 시험을 보고, 붙으면 그때 가서 결정하자’고 이야기했는데, 수석으로 붙어서 가게 됐어요. 아무래도 부모님께 어떤 음악을 할지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드리는 것보다 장학금을 타게 됐다고 말씀드리는 게 훨씬 효과적이잖아요. 다행스럽게 부모님을 잘 설득할 수 있었어요.
유치원 시절의 모습
고등학생 시절의 모습
Q. 예고도 수석으로 입학하셨군요? 서울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 작곡 전공도 학부 수석으로 입학하셨잖아요.
음악 고등학교에서는 별도의 교과목이 따로 없어서 예술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많이 없어요. 당연히 예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입학한 선배들을 보면 정말 커 보이잖아요. “어떻게 예대를 붙었지?”, “내가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어요. 불안하기도 하고, 모두가 하던 걱정을 했었죠.
수석으로 입학했다는 사실은 합격 이후에 알게 됐어요. 학교에서 직접적으로 고지해 주진 않고, 등록금으로 추정되는 금액이 통장으로 들어오더라고요. 되게 묘했어요. 물론 뿌듯한 감정도 있었지만 어디까지가 운이고, 어디까지가 실력인지 혼란스럽기도 했어요. 그래도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해주셔서 좋았습니다. 딸이 음악을 하도록 허락해 주신 것에 대한 보람을 좀 느끼게 해드린 것 같아요.
Q. 입학 후 다른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확실히 수석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었을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조금 부담감이 있었어요. 막상 학교에 오니까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제가 수석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아니까 기대하는 것 같더라고요. 막 엄청 미친 사람처럼 연주하거나,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기보단 그냥 그냥 꾸준히 하다가 이룬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엄청난 걸 기대하는 느낌을 받아서 부담이 됐어요.
그래서 20살~21살 즈음에는 편하게 곡을 못썼어요.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있었어요. 21살부터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졸업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학교에 갔었어요. 학교생활에만 매몰되지 않고 바깥 활동을 하면서 오히려 마음이 좀 편해졌던 것 같아요.
Q. 대학 입학 전부터도 작곡을 계속 해왔잖아요. 본격적인 음악 작업을 그때부터 시작한 건가요?
처음에는 돈을 제대로 벌기 위해서 했다기보다는, 학교 과제나 공모전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해왔던 숙제들이 전부 프로듀싱의 단계였더라고요. 악보로만 존재하던 곡들을 밴드로 만들고, 녹음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어서 가슴 뛰었던 기억이 있어요.
편곡은 한 스무 살 즈음부터 했고, 그것도 스트링 편곡이나 피아노 연주를 통해 공동 편곡을 하는 식으로 진행했어요. ‘프로듀서로 혼자 일해볼 수 있겠다’고 마음먹은 건 23살 즈음인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항상 서포터의 입장에 가까웠고, 그때부터 프로듀서로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아요.
Q. 아이유 6번째 미니앨범 [The Winning]에 함께한 이야기도 빼놓고 말할 수 없잖아요. 확실히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아티스트의 작업물에 참여하는데, 무게감이 조금 달랐나요?
네, 너무 달랐어요. 일단 저희 세대는 모두 아이유 님을 보면서 자라잖아요. 당시에 그분의 디스코그래피를 차근차근 밟아가면서 꿈을 키웠는데, 앨범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너무 의미 있었죠. ‘나 정말 꿈을 이루고 있을지도?’라고 생각하게 만든 작업이였어요. 일을 제안해 주고 맡겨준 제휘 오빠한테 다시 생각해도 너무 고맙죠.
Q. 유라, 아이유를 비롯한 여러 편곡 작업을 진행하면서 개인 작업물을 만들 때 영향을 받기도 했나요?
저는 영향을 정말 많이 받는 편이에요.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시도해본 적 없는 분야들에 관해서도 작업 의뢰받는 경우가 많았어요. 예를 들어 누군가 신디사이저 세션을 해달라고 하면, 잘 모르더라도 배워가면서 습득해가며 임했어요.
당시엔 잘 몰랐지만, ‘지원이는 할 수 있어’라고 믿어주시니까 제안해 주셨던 거잖아요. 여차저차 의뢰도 받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습득하고 쌓인 것들이 꽤 많아요. 같이 작업했던 분들의 영향을 받고 흡수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Q. 지원님의 데뷔 싱글 [Your room without you] 이후 발매된 [only u]에서는 Sam Kim 피처링이 눈에 띄어요. 두 분은 어떻게 같이 작업하게 된 거예요?
Sam은 다른 친구들이랑 사석에서 놀러 다니다가 음악 취향이 비슷해서 친해졌어요. 대화를 하다 보니까 서로 겹치는 좋아하는 노래가 많아서 ‘언젠가 같이 작업하자’고 가볍게 얘기를 나눴었어요. 워낙 멋있는 가수라서 처음에는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했어요. 원래 [only u]가 후렴구만 존재하던 30초짜리 데모였는데, 무슨 자신감이 든 건지 무턱대고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카카오톡으로 러브콜을 보냈어요. 근데 너무 흔쾌히 오케이해 주셔서 진짜 행복했죠.
녹음을 받을 때도 정말 좋았어요. 원래부터 Sam Kim 덕후여서 혼자 콘서트를 보러가서 막 울면서 봤었거든요. DM으로 막 ‘너무 고마워요’ 이런 것도 보내고, 19살 때. (웃음) 어쨌든 엄청난 성덕인데, 서로 인스타그램 맞팔로우를 하면 채팅창을 다 볼 수 있잖아요. 그러다가 과거에 떨었던 주접을 들켜버린 거예요. (웃음) 그때 굉장히 웃기면서도 진짜 부끄러웠어요. 어쨌거나 정말 고맙고 감사한 분이죠.
Q. 그러면 본격적으로 지원 님의 첫 미니앨범을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Weather]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 첫 번째 미니앨범 [Weather]는 ‘똑같은 날씨의 하루는 없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소개하고 있는 작품이고요. 매일매일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달라지는 어지러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담았어요. 총 4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마지막 발매 이후로 전부 새롭게 만든 곡들이라 최근의 취향이 많이 녹아있어요.
이번 작업에서는 특별히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음악을 만들려 애쓰지 말자고 계속 되새기면서 작업했어요. 작업 도중에 나만의 것을 만들려고 고뇌하는 시간들은 괴롭기도 했지만, 그만큼 스스로 자유로워진 계기도 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가져왔던 강박을 내려놓으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Q. 어떤 종류의 강박이었나요?
제가 작가로서 일을 많이 하는 편이다 보니까, 무조건 정갈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좀 있어요. 그런데 예전부터 제가 좋아해왔던 곡들은 정갈해서 좋아한 건 아니었거든요. 러프함에서 오는 자연스러움과 멋이 있잖아요. 정갈하게 다듬어가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느낌을 희석시킬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 작업했던 데모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 사운드적으로 깔끔한 것들을 최대한 지양했어요.
지금까지 작업하면서 만들어 둔 습관이 있잖아요. 평소처럼 작업하면 빠르게 끝낼 수 있을 텐데,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노력했어요. 듣기에는 편안할 수 있지만 오히려 작업하는 시간은 더 오래 걸렸어요.
Q. 함께 A&R로 참여해주시는 ‘장세훈’ 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은데요. sehooninseoul 채널을 운영하면서 RM 프로젝트에 참여하셨던 분이잖아요. RSS RADIO 인터뷰 sehooninseoul 특집 편에서 잠깐 봤는데, 서로 자연스럽게 작업하게 됐다고 들었어요. 지원 님의 시각으로도 작업하게 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2021년 쯔음에 사운드클라우드에 데모랑 커버를 많이 올렸었어요. 세훈님도 그 당시에 DJ로 활동하고 계셔서 맞팔을 하게 됐었죠. DM으로 연락을 나누다가 커피나 한잔하자고 이야기했더니, 알고봤더니 동네친구였어요. 음반을 곧 발매하고 싶다고 얘기를 하니까, 프리랜서 A&R로도 일하고 계셔서 의기투합하게 됐죠.
생각해보면 첫 발매부터 굉장히 수월했어요. 세훈 님의 역할이 엄청 컸었죠. 일도 정말 잘하시고 음악도 엄청 많이 듣고.
Q. 함께 작업할 때 특히 어떤 부분이 큰 도움이 되나요?
두 가지 정도가 있는데요. 데모에 대한 피드백을 직설적으로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다 좋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만 있으면 발전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런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연락을 대신 해줄 수 있다는 것. 소통을 대신 해줄 수 있어서 예쁜 언어로 소통해주는 걸 도와주는 것 같아요.
Q. 매일매일의 특별함을 언급하는 앨범이라 그런지, 이번 앨범의 비주얼 컨셉도 사뭇 달라요. 헤어는 파격적인 오렌지 컬러로 탈색했고요. 비주얼적으로 시도하고자 했던 컨셉이 있을까요?
이번 앨범의 비주얼 디렉터로, SUMIN 님과 자주 작업을 하시는 Soyo 님이 함께 해주셨어요. 그 분이 ‘갑자기 오렌지 색으로 탈색해보면 어때?’라고 제안을 주셨어요. 앨범의 캐치 프레이즈처럼 예전의 저를 탈피하자는 맥락에서 어느날 갑자기 탈색도 할 수 있지 않겠냐고 제안주셨어요. 사실 저는 탈색에 조금 회의적이였거든요. 머릿결이 정말 상하기도 하고, 아시잖아요. 그런데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셔서 오렌지 컬러로 염색을 했어요. 오렌지원..이 됐어요. (웃음)
그리고 이번에 세훈, Soyo 님과 놀러갈 겸, 그리고 프로필 촬영할 겸 같이 떠났었어요. 그때 공유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었어요. 이번 앨범의 컨셉과 잘 어울릴 것 같은 비주얼과 음악을 큐레이팅해서 모아놓으니까 60곡으로 꽉꽉 채워진 3시간 짜리 플레이리스트를 같이 들으면서 결이 맞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으려고 했어요.
Q. 어떤 곡이 있었나요? 플레이리스트 제목이 따로 있었는지도 궁금해요.
엄청 재미있었어요. 공유 플레이리스트의 제목은 일단 ‘FOR 지원’이구요. 이치코 아오바 (Ichiko Aoba), 조나 야노 (Jonah Yano), 클레오 솔 (Cleo Sol), 오케이 카야 (Okka Kaya)와 같은 아티스트 분들의 음악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Soyo 님이 열 몇 곡 정도를 넣어서 만들어주셨던 플레이리스트였는데, 액세스 해달라고 부탁드려서 다같이 참여했어요. 각자 고르는 음악의 색이 은근 다르다보니 재미있었어요. 생각보다 자주 듣는 장르가 아니였어서 이참에 흡수하려고 많이 노력했죠.
Q. 그밖에도 재미있는 프로젝트는 없었나요?
일본 여행이 아무래도 컸어요. 사진을 찍기 위한 과정이 꽤 길었거든요. 스타일리스트를 따로 고용하지 않고, 세훈님이랑 같이 스타일링을 했어요. 평소 입는 옷이나 스타일리스트 옷을 빌려서 코디와 착장도 정하고. 촬영 로케이션도 직접 정하고. 그런 과정을 대충이 아니라 진심으로 해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이번에 세훈 님이 RM님이랑 작업하면서 만난 일본 메이크업 아티스트 분한테 메이크업을 받기도 했어요. 사실 우리나라랑 일본 화장법이 다르다보니까 약간 두려웠는데, 너무 잘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Q. 평소 SNS에 올라오는 작업 사진들을 보면, 앨범 커버를 중시여기는 것 같아요. [Weather]의 앨범커버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이미지가 있나요?
우선 이번 앨범 커버도 “Have you ever”, “only u”를 같이 작업해주셨던 노송희 작가님께서 진행해주셨어요. 예전 송희 작가님의 작업물들을 보고 연락을 드렸었는데, 이번에도 같이 하면 좋겠더라고요.
컨셉 보드를 딱히 드리진 않았고, 그냥 자유롭게 해달라고 요청드렸어요. 처음에 받았던 무드보드에서는 공드리 <수면의 과학> 영화를 보여주시면서 스탑모션의 느낌을 내보면 귀여울 것 같다고 의견을 주셨어요. 그리고 주전자를 너의 방으로 생각해서 네가 방에서 혼자 끓고, 맺히고, 그러다 구름이 되고. 그게 날씨가 되는 과정에 대해 생각해주셨는데, 정말 귀여운 거예요. 클레이의 질감도 잘 만들어주셔서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Q. 구체적인 트랙에 관해서도 이야기 나눠볼게요. 2번 트랙 “Jubilee” 가사에서 지난 날을 회고하는 듯해요. 해당 트랙을 만들던 당시의 상황이 궁금해요.
“Jubilee”라는 트랙은 제목이 먼저 나온 상태에서 가사를 썼어요. ‘Jubilee’가 25주년이 되는 축제라는 뜻을 가진 단어거든요. 마침 제가 스물 다섯 살이 되기도 했고요. ‘우리는 사랑만 있으면 모든지 다 할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담아 모두가 축제한다는 마음으로 만든 트랙이에요.
같이 작업을 하던 프로듀서이자 존경하는 아티스트 ‘schpes4’라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랑 “Jubilee”, “past24”를 작업했는데, B파트의 리듬이 어렵다고 계속 얘기했었어요. 저는 지금 너무 좋은데? 라면서 엄청난 토론을 하기도 했고요. 싱어송라이터 김효린 씨, 김민성 씨도 이번에 코러스에 참여해주셨어요. 일부러 합창단같은 느낌을 내려고 다양한 톤으로 여러 사람을 흉내내가면서 녹음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Q. 말씀주셨던 3번 트랙 “pasta24”에서는 실리카겔의 기타리스트이자 놀이도감의 ‘김춘추’ 님이 직접 믹싱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맞아요. 사실 놀이도감을 함께 하게 돼서 기회가 생기기도 했고, 평소에도 춘추 님이 믹싱에 참여한 트랙을 많이 들었었거든요. 빈티지한 무드도 잘 어울릴 것 같아 부탁을 드렸는데 흔쾌히 해주셨어요. 정말 감사했고, 역시나 특유의 바삭바삭하고 빈티지한 질감을 잘 만들어주셔서 좋았죠.
Q. 음원을 귀 기울여 듣다보면 마지막에 웃음소리가 들려요.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프로듀싱 단계에서 데이터를 보낼 때, 원래 페이드아웃을 하는 게 저희의 계획이였어요. 점점 사라지다보니 최대한 오랫동안 격하게 연주하자고 요청을 드렸어요. 그래서 첼로를 맡아주신 찬영님이 정말 열심히 긁어주셨는데, 갑자기 웃긴 거예요. 저희가 생각해도 그 상황 자체가 너무 어이가 없고. (웃음) 그래서 진행하다가 웃었는데, 그 데이터를 다 보내고 페이드 아웃을 춘추님께 요청드렸어요.
근데 스트링 뒤에 있는 웃음 소리가 매력있다고 얘기해주셨어요. 나였으면 스트링만 살리고, 나머지 악기는 페이드아웃할 것 같다고 말씀주셨어요. 저도 내심 사실 웃음 소리가 귀여웠거든요. (웃음) 그 의견에 힘이 실려서 자연스럽게 진행됐어요.
Q. 지원님의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보면 짤막한 뮤직비디오도 함게 올리셨잖아요. 특히 “pasta24”는 2000년대 아날로그 감성이 느껴지면서 좋았어요.
그것도 즉석의 기획이었어요. 원래는 폰카메라로 찍으려고 했는데, 친구가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왔더라고요. 그래서 디지털 카메라로 바로 찍어버렸어요. 세훈 님께서 꼭 흰 셔츠에 넥타이를 종류 별로 매야한다고 얘기해주셔서 저희는 네 하고 했죠. (웃음) 코러스 친구들이 정말 귀엽게 나왔어요.
Q. 트랙과 앨범 자체가 ‘일상 속에서 낯선 감각을 찾기’를 주제로 하는 해요. 매일 매일의 삶이 새롭기란 쉽지 않을텐데, 낯선 감각을 계속해서 발견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요?
사실 그런 비결은 없구요. 작업실이자 집인 공간에서 많이 나가지도 않고, 새로운 사람을 자주 찾아다니거나 어떤 이벤트를 만드는 스타일도 아니거든요. 매일 매일 새롭게 살고 있지는 않지만, 가끔가다 그런 감각이 찾아올 때가 있어요. 자주는 아니지만요.
그럴 때마다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왜 이런 느낌이 들었을까?’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그 기분을 음악으로 매치하는 것 같아요. 이런 기분일 때 이런 음악을 들었었지하고 감각이 자주 생각나잖아요. 그러면 하나의 이미지처럼 감정이 아카이빙 되더라고요. 그런 걸 취향화하고, 어떤 게 좋았고 어떤 게 싫었는 지를 모아가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는 것 같아요.
Q. 정말 이른 나이부터 엄청난 커리어를 쌓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커리어가 늘어갈수록 삶의 방향이 정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나요?
정말 어릴 때에는 여러 종류의 음악을 할 수 있어서 마냥 좋았는데,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불안해지더라고요. 작업을 하면서 어떤걸 좋아야될까에 대한 고민이나 혼돈이 있었어요. 작업마다 원하는 기준이 모두 달랐고, 그걸 수행하기에 벅찰 때도 있었거든요. 진정 원하는 음악인의 삶이 무엇인지가 뚜렷하지 않고 희미해질 때도 많았어요.
그래도 이번 EP를 내고나서 그래도 답을 좀 얻은 것 같아요. 안그래도 발매하고 굉장히 후련했어요. 왜 이렇게 후련한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정말 제가 하고 싶었던 걸 실현하는 기분 자체가 후련하고 좋더라고요. 너무 많은 기준에 저를 맞추기보단, 제가 진짜 할 수 있는 걸 하게 되니까 재미있더라고요. ‘오리지널이 되자’,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만의 독자적인 개성을 보고 찾아와주시는 분들이랑 함께 하면 좀 더 즐거워질 것 같고요.
Q. 때로는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때로는 세션 연주자로 참여하고. 그러면서도 싱어송라이터로 개인 작업물을 발매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활동마다 다르게 포인트를 두는 지점이 있나요?
특별한 주안점은 없고, 그때 그때 음악에 따라 제일 어울릴 것 같은 모습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아요. ‘지원이가 했기에 좋다’라는 감상을 남겨드리고 싶어서, 저만의 섬세함을 어딘가에 숨겨 놓는 작업을 하는 편이긴 해요. 어떤 장르에는 이렇게 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저렇게 하면서 저만의 해석을 조금씩 풀어넣는 것 같아요.
Q. 작업량이 워낙 많고 스케쥴이 타이트해서 스트레스도 많을 것 같아요. 지치지않고 작업할 수 있는 원동력, 혹은 비결이 궁금합니다.
우선 스케줄도 잠을 못 잘 정도로 빠듯하게 잡지는 않아요. 번아웃이 오지 않도록 적절하게 분배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스스로를 계속 예의주시해야하고요.
최근에 게임을 시작했어요. 자기 전에 너무 피곤하지 않으면 1~2시간 정도 게임하고 자는게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 되더라고요. 요즘 스위치로 <젤다의 전설: 왕국의 눈물>을 하는데, 완결을 한번 보고 두 번째로 시도 중이에요. 또 가족들이랑 저녁을 먹으면 안전지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스트레스가 풀려요. 엄청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화목하게 대화를 많이 하고 그런 게 아니더라도 몸의 긴장 상태가 풀리는 느낌이에요.
Q. 개인 발매작으로는 첫 EP였는데, 앞으로도 앨범 단위의 작업물을 많이 보여주실 계획인가요?
앨범이나 싱글 중 어떤 포맷이 될 지는 잘 모르겠는데, 싱어송라이터로서 초점을 두고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기대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Q. 지금의 지원님은 어떤 아티스트, 혹은 씬에서 어떤 인물이 되길 바라는지 들으면서 인터뷰 마무리하겠습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대체 불가능한, 오리지널한 아티스트가 되는 게 목표예요. 방향이 어떨지는 정해놓은 건 없지만, 곡 하나하나를 쓸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나만이 할 수 있는 걸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다보면, 다양한 비주얼이 융합되면서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으르지 않게 꾸준히 하다보면 만들어져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Interview | 박현영
사진제공 | 강지원 (Kangzi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