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소음발광

발행일자 | 2022-01-17

 

“힘있게 외치며 나아가다, 소음발광”

 

최근 몇 년 사이 영국이나 아일랜드에서는 신인 밴드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포스트 펑크가 음악씬을 다시 뜨겁게 달구고 있다. 소음발광의 새 앨범 [기쁨, 꽃]을 들었을 때 처음 느낀 것은 바로 지금 뜨거운 포스트 펑크의 피가 멀리 바다를 건너 한국의 인디씬에서도 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조선 펑크는 물론 옆 나라 일본의 펑크사까지 흡수한 소음발광은 이번 앨범을 통해 그들만의 독자적인 색깔을 보여준다. 또한 진지하게 음악사를 바라보고 성찰해야 좋은 음악이 탄생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앨범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음악의 체계적인 역사, 동시대성을 빼도 이 앨범은 생생한 에너지와 솔직한 노랫말로 매력이 넘친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듯한 노이즈 기타,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치닫는 드럼 비트, 차가운 톤으로 노랫말을 내뱉고 때로는 힘차게 샤우트하는 보컬… 낯선 밴드명인데도 재생하자마자 들리는 그 심상치 않은 에너지는 청자에게 마지막까지 달려가 보라고 하는 듯하다.

 

우울감이나 절망감이 드러나는 가사에서도 이번 인터뷰에서 보컬 강동수가 말하는 바와 같이 다같이 외쳐보면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것이야말로 펑크라는 음악이 갖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펑크를 사랑하고 진지하게 대하며 배워온 그들이라 완성시킬 수 있었던 앨범 [기쁨, 꽃].  그 앨범의 작업 과정이나 음악성, 그리고 이번 앨범을 완성시키는 데에 빼놓을 수 없는 친구들이자 서로 의지하는 부산 밴드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Q. 새 앨범 [기쁨, ]  들었습니다. 가사도 음악성도 이제 자기들만의 스타일이나 세계관을 확립한 같다고 느꼈어요. 앨범을 달이 됐는데 지금의 소감을 듣고 싶어요. 만족감이나 자신감 같은 감정도 있나요?

 

강동수 / ‘이 음반이 우리의 명반이다’ 이렇게까지는 말을 못하겠지만 저희 멤버들도 전부 자신감이 붙어 있는 앨범인 것 같아요. 전작까지는 거의 제가 독자적으로 드럼킥 하나 리프 하나 요구하는 식으로 했었는데 모든 멤버들이 다 같이 참여해서 만든 음반이 이번에 처음이거든요. 다 같이 만들어서 너무 기분이 좋고 그렇게 하면서 재밌는 작업물이 나온 거 같아요.

 

Q. 데뷔 EP []부터 디스코그래피를 들어보면 변화의 과정이 굉장히 재미있더라고요. EP [] 때는 산뜻한 기타록을 하셨는데 이제는 보컬은 샤우트도 많이 하고 기타는 노이즈가 강하고 전체적으로 보다 공격적인 음악을 하고 있죠. 이런 변화의 계기가 있었나요?

 

강동수 / 처음에 소음발광을 했을 때는 쟁글 팝을 하고 싶었는데 펑크 음악을 어렸을 때부터 듣다 보니까 계기라기보다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펑크 음악이 된 것 같아요. 밴드를 하면서 음악을 듣는 폭도 넓어지고 제가 영향을 쉽게 받는 스타일이라서 음악 스타일도 살짝살짝 변했던 것 같아요.

 

 

Q. 최근에 생긴 변화 하나로 1집을 새로운 기타리스트로 김기태 씨가 합류했네요. 기태 씨의 합류는 밴드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강동수 / 음악을 조금 젊게 만들게 된 것 같아요. 평균 연령대도 낮춰줬어요. 음악적으로는 좀 더 충격적이고 파괴적인 뉘앙스가 소음발광에서 생긴 것 같아요. 이 친구도 팝을 굉장히 좋아하고 추구하는 친구지만 그런 (충격적이고 파괴적인)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친구라고 생각하거든요. 소음발광에 기태가 합류하면서 그런 것들이 투영된 것 같아요.

 

Q. [기쁨, ] 로파이하게 만들어진 전작 [도화선]과는 달리 보다 팝하고 세련된 같아요. 이번 앨범은 어떤 테마나 비전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강동수 / 1집 [도화선]까지는 하고 싶은 대로 해왔어요. EP [풋]은 코-프로듀서 (co producer) 느낌으로 머쉬룸 레코딩스튜디오의 천학주 씨가 함께 해줬는데 저희가 만들었다기 보다는 그분이 만들어 주신 느낌에 영향을 받았고요. 그래서 1집은 ‘우리가 만들고 싶은 대로 해보자, 그래야 원 없이 해보는 느낌이 들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 당시 제가 Pavement에 꽂혀 있어서 로파이한 걸 해보고 싶어서 그냥 합주실에서 녹음했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저희가 성장하려면 조금 더 나은 퀄리티로 해보는 기회도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로파이가 안 좋다는 게 아니라 좀 더 다른 다양한 방식으로 레코딩을 해보고 많은 걸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더 세련되게 표현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이번 앨범 같은 경우는 펑크라고 해도 초기 펑크보다 포스트 펑크 사운드의 영향이 크게 느껴져요. 저도 듣자마자 70년대 후반부터 활동한 밴드 ‘The Fall’이나 동시대 밴드 중에는 아일랜드의 ‘Fontaines D.C.’ 같은 밴드가 떠올랐거든요. 블로그에 있는 앨범 작업기에도 이런 밴드를 언급하셨는데 포스트 펑크 사운드는 어떤 매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강동수 / 포스트 펑크라고 하는 밴드의 음악을 들어보면 하나의 장르로 보기가 어려울 정도 다양한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많잖아요. 저희는 각자가 전부 하고 싶어 하는 음악이나 좋아하는 성향이 달라요. 우리가 펑크를 표방하지만 포스트 펑크라고 하면 우리의 그런 성향을 자유롭고 아름답게 표출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기영 / 저는 포스트 펑크에 대해서 동수가 추천해줘서 듣게 되었는데 펑크와 포스트 펑크의 차이에 관한 역사적인 부분을 자세히는 몰라요. 근데 초기의 펑크는 노동자들이 쉬운 코드로 자신들의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런 것들을 차용해서 좀 더 예술적이고 다양한 사운드를 낼 수 있는 게 포스트 펑크라고 했을 때 되게 흥미로웠어요. 펑크의 시류 자체도 흥미로웠어요. 노동자들의 솔직함과 그것을 이어받아서 예술인들이 표현했다는 것도.

 

 

Q. 최근에는 ‘Fontaines D.C.’, ‘Shame’, ‘IDLES’, ‘Dry Cleaning’ 같은 밴드들을 비롯해 영국, 아일랜드를 중심으로 포스트 펑크가 다시 유행되고 있네요. 이런 동시대 밴드들에게는 자극을 받나요?

 

강동수 / 느끼셨던 것처럼 사운드도 ‘Fontaines D.C’.나 ‘Shame’을 레퍼런스로 했었어요. 사실 저는 언젠가 펑크 붐이 다시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저는 (포스트 펑크가 다시 유행하고 있는 상황에) 가슴이 뜨거워지더라고요. 저희가 작업하는 데에 있어서 그런 동시대 밴드들이 많은 자극을 줬어요. 그래서 저희가 작업기에 쓴 것처럼 동시대의 가장 멋있는 밴드들을 우리가 따라 하지는 않지만 ‘펑크를 한다고 한다면 같이 어깨를 견줄 수 있는 밴드가 되어야 되지 않겠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Q. 지금 코로나 때문에 영국이나 아일랜드에 가는 자체가 어렵지만아까 언급한 밴드들과 같이 공연하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같은 생각도 하시죠?

 

김기영 / 네. 원래 스타밴드가 되려면 처음에는 대단한 밴드의 오프닝 밴드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관객들이 ‘이 밴드를 보러 왔는데 이 밴드도 좋네’ 라고 느껴주면 좋잖아요. 그런 꿈을 저희도 꾸죠.

 

 

Q. 이번 앨범에 영향을 앨범을 알려주신 인스타그램 글을 흥미롭게 읽었어요. 중에 ‘The Beach Boys’ [Pet Sounds] 대해가장 훌륭한 음반’, 얼터너티브 밴드인 ‘Sonic Youth’ [Sister]어딘가 팝적인 요소가 있다라고 하신 읽고 좋아하는 음악의 기준 같은 생각할 것을 아주 중요시하시는 같다고 느꼈어요. 소음발광이 생각하는 팝의 정의는 무엇이고 팝의 어떤 부분에 끌리나요?

 

강동수 / 대중적이든 비대중적이든 들었을 때 뭔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을 팝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Sonic Youth의 변칙적인 요소나 노이즈 사이에서도 아름다운 요소들이 있는 것 같고 저는 특히 [Sister]라는 앨범을 듣고 아름다운 음악이 팝이 아닌가라는 정의를 개인적으로 내리게 된 것 같아요. 근데 아티스트들은 그걸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대중적인 음악을 써야겠어’ 해서 팝을 만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Q. 그런팝의 아름다움 추구하는 성향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걸까요?

 

강동수 / 사실 록 음악을 처음 접했던 중고등학교 때는 거칠고 시끄러운 게 최고고 뭔가 조금이라도 ‘팝적이다, 말랑하다, 아름답다’ 하면 그건 음악이 아니라고 했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근데 이거는 부산에서 함께 활동하는 ‘검은잎들’의 형, 누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이 사람들이 말하고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멋있는 거예요. 그분들과 친해지기 전에도 팝에 대해 눈이 트이기 시작했지만 그분들이 그걸 열어주는 물꼬가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아름다운 것에 대해서 사실 광적으로 집착하게 된 것이 있어요.

 

 

Q. 이번 앨범은세이수미 기타리스트 김병규 씨에게 전곡 프로듀싱을 맡겼네요. 어떤 경위로 같이 작업하게 되었는지, 협업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김기태 / 애초에 너무 좋아하는 밴드였는데 ‘세이수미’의 수미님이 소음발광의 1집을 좋게 들었다는 말씀을 하셔서 접점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런 말들이 너무 기뻤고 작업하면서도 부산에서 먼저 음악을 했던 선배, 형들로서 저희 방향성을 많이 잡아주셨던 것 같고 작업 이외에 인간적으로도 위로나 응원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워낙 펑크나 팝 같은 것에서 지금 한국에서 되게 높은 지위에 있는 밴드이다 보니까 음악적으로도 많은 코멘트를 해주셨고 저희 곡들이 좋게 만들어질 수 있게 도움을 주신 것 같아요.

 

김기영 / 저희가 말을 안 들을 수도 있잖아요. 좀 트러블 생길 경우도 있고. 근데 ‘세이수미’라는, 저희가 믿고 있는 분들의 기타리스트이기도 하고 리스펙트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도 말이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것 같아요. 저희가 무작위하게 꽉 채웠던 것들을 덜어내주시고 우리가 원했던 세련되면서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여러 요소들에 대해 ‘이렇게 해보면 좋겠다, 생각해 봐라’ 같은 식으로 조언을 해주신 것 같아요.

 

 

김보경 / 기타 같은 경우는 이펙팅도 많이 하고 이것저것 전자 장비를 사용해서 할 수 있는 게 많잖아요. 그런데 드럼은 거의 아날로그 방식에 집중하다 보니 톤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신경을 써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냥 ‘내가 좋아하는 톤은 무거운 톤, 어떤 스네어에서 나오는 어떤 톤이 마음에 든다’ 이 정도였는데 병규 씨랑 같이 작업을 하면서 세팅이나 뮤트나 톤이나 엄청 세밀하게 신경을 쓰고 잡아주셔서 그런 것이 많이 좋았어요.

 

강동수 / 밴드를 처음에 시작했을 때 느낌 같았었어요. 저희가 1집을 내고 이제 2집을 준비함에도 불구하고 학생인 것 같았었어요. 팝적인 걸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을지 지시를 하거나 가르쳐준다기 보다는 함께 고민을 해주는 어떤 좋은 선배, 선생님, 이런 느낌이었어요. 저희도 ‘무조건 시끄럽고, 멜로디만 이렇게 하면 팝인 거지’ 이런 느낌을 사실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걸 깨게 해준 게 이번 작업에서 가장 큰 성과이자 배움이었던 것 같아요.

 

Q. 가사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는 조금 추상적인 느낌이 들었어요. 주제를 잡고 가사를 쓰려고 하셨는지, 가사 쓰는 법에 바뀐 부분이 있는지 궁금해요.

 

강동수 / 1집 같은 경우는 일기를 기반으로 가사를 썼어요. 근데 2집은 그냥 코드 진행이나 편곡이 어느 정도 되었을 때 길면 30분, 짧으면 5분 안에 가사들이 다 쓰여졌어요. 1집은 내면에 있는 것보다 머리에서 내가 알고 있는 나의 감정을 적었다면 2집은 그냥 지금 당장의 상황 같은 거나 눈에 보이는 어떤 키워드들을 나열해서 적었어요. 그래서 그게 조금 다르게 느껴지고 스토리도 조금 모호하게 들릴 수 있는 것 같아요. 주제는 딱히 정한 건 아니었는데 제 이야기를 가사에 쓰다 보니까 제가 기본적으로 조금 우울한 사람이라 2집은 그런 것들이 폭력적으로 표출이 되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누군가에게 트리거(trigger)가 될 수 있는 정도의 우울이고 그게 그 당시 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주제가 된 것 같아요.

 

 

Q. ‘기쁨 같은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보수동쿨러’, ‘해서웨이멤버들과 같이 부르는 부분 때문인지그래도 내일도 살아가자같은 힘이나 희망이 느껴져요

 

강동수 / 그 노래는 처음에 가이드 상태였을 때는 제목이 ‘자살’이었어요. 근데 보경이가 ‘노래는 너무 좋은데 가사나 제목이 나에게 너무나 트리거(trigger)다. 이 노래를 쓰고 싶지 않아’라고 해서 안 쓰려고 했었는데, 기태는 작업하면서 ‘행님, 이 노래 너무 좋은데 왜 안 써요?’라고 한 거예요. 그래서 가사를 바꾸기로 했고 보경이의 트리거가 되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가장 솔직한 걸 적자고 해서 써봤어요. 이 가사는 유일하게 일기를 기반으로 쓴 가사예요. 사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닌데 우리는 충분히 우울할 수도 있고 기쁠 수도 있고 좌절할 수도 있고 우리의 감정에 충실해서 살 수 있을 텐데 모든 매체에서는 기쁨만 강요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다 같이 외치는 “이렇다 뭘 해본 적도 없구요  / 살아보려 애쓴 적도 없어”라는 부분은 ‘내일을 살아가자’라는 느낌을 주려고 쓴 건 아니지만 다 같이 체념하고 내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고 그렇게 하다 보면 해방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지금 제 감정은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서 같이 불렀고 이렇게 노래로 만들게 되었어요.

 

김기영 / 전 드러머도 저의 와이프도 같이 불렀어요.

 

Q. 굉장히 넓은 가족 같은 존재들이랑 작업한 거네요. ‘기쁨이라는 말이 앨범 제목에도 들어가 있는 만큼 역시 앨범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노래가 되었죠?

 

강동수 / 가장 중요한 노래입니다.

 

Q. 이번 앨범은 프로덕션도 김병규 씨랑 하셨고 부산 밴드들과의 연대감 같은 것도 개인적으로 느꼈는데 평소에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주변 밴드들은 어떤 존재일까요?

 

강동수 / 예를 들어 ‘세이수미’, ‘검은잎들’, ‘해서웨이’, ‘보수동쿨러’, ‘더 바스타즈’ 그렇게 다섯 밴드들하고 저희가 교류를 하고 있고  ‘검은잎들’과 ‘더 바스타즈’랑은 ‘도적단’이라는 크루도 만들었거든요. 어떤 존재라기보다는, 저희한테는 부산에서 음악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존재들이고, 언급한 밴드들이 중심이 되면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우리가 또 다른 문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

 

 

Q.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서울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부산에서 활동하는 것은 밴드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김기영 / ‘세이수미’ 같은 경우에는 바다가 좋아서 부산에 남는다는 이야기도 하거든요. 근데 저희는 지역에 애정이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니에요. 서울에 가서 라이브를 볼 수도 있지만 충분히 여기서도 라이브를 가깝게 볼 수 있다는 것도 있었어요. 자랑은 아니지만 특히 2016, 17년 부산에 한창 아티스트가 많았을 때는 어떻게 보면 서울보다 큰 씬이 있었고 부산이 가장 선두에서 음악을 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 시기에 제가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물론 지금은 많이 죽었지만 ‘우리도 부산에서 충분히 할 수 있겠다, 전혀 못할 구석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근데 지금 제일 큰 부분은 살고 있던 데에 대한 안정감인 것 같아요. 사실 음악을 한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나 생각할 요소들이 너무 많은데 서울에 가서 더 많은 스트레스를 확장시킬 이유는 없는 것 같고. 부산에서도 활동을 할 수 있고 서울의 팀들을 부를 수도 있는 충분한 관계가 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계속 부산에서 할 수 있다,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요.

 

Q. 2016, 17 부산의 음악씬이 뜨거웠을 때는 지금이랑 어떻게 달랐나요?

 

김기영 / 그때는 밴드도 많았고 기반도 많았어요. 펍이 아니라 라이브 클럽이 많이 있었고.

 

강동수 / 지금은 라이브클럽은 두 군데 밖에 없을 정도로 많이 사라졌는데 두 군데라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2016,17년에는 라이브 클럽 기반도 잘 돼 있었지만 새로 나오는 밴드도 선배 밴드들도 많아서 그런 것들이 저희한테 많은 영향을 줬었죠. 아쉬운 것은 (그때 나온 밴드 중) 남은 팀이 ‘보수동쿨러’랑 저희 밖에 없다는 것이에요.

 

 

Q. 마지막으로 소음발광의 음악적인 정체성을 상징하는 펑크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한국에서 펑크라고 하면 90년대 후반 한국 인디 1세대의 ‘Crying Nut’, ‘No Brain’ 같은 밴드가 역시 너무나 존재인 같아요

 

강동수 / 크라잉넛이 나오는 [Our Nation]라는 음반을 들으면서 밴드를 하겠다고 생각했고, 펑크의 멋짐을 알게 된 것은 노브레인의 [대조선펑크 노브레인: 청년폭도맹진가]라는 앨범이었어서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는 사람들이에요. 크라잉넛, 노브레인은 20년 넘게 활동하는 펑크 밴드이고 존경할 수 있는 대상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거라 저희에게 좀 의지가 되죠.

 

김기영 / 스쿨 밴드들 모두 커버했죠. 델리스파이스, 노브레인, 크라잉넛, 그리고 자우림…

 

Q. 밴드의 블로그를 읽어보면 ‘Blue Hearts’, ‘Number Girl’ 같은 일본 펑크, 포스트 펑크 밴드의 언급도 있네요. 이런 밴드들은 어떻게 찾으셨나요?

 

강동수 / ‘Number Girl’ 같은 경우는 한국에서는 “일본의 Pixies, Sonic Youth”란 그런 수식어으로 불리더라고요. 저도 ‘Pixies’랑 ‘Sonic Youth’를 좋아하니까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죠.  ‘Blue Hearts’ 같은 경우는 ‘검은잎들’ 영향이에요. ‘검은잎들’이 완전 ‘Blue Hearts’ 매니아이거든요. 오타쿠… ‘긴난보이즈 (Ging Nang Boyz)’는 어느 날 유튜브 통해서 듣게 되었는데 눈물 흘리면서 소리치는 그 라이브가 팝 자체였어요. 너무 아름다웠어요. ‘카케누케데 세이슌 (駆け抜けて性春)’은  항상 들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게 있어요.

 

Q. 활동 관련해서 목표가 있으면 듣고 싶어요.

 

강동수  / 현시대에 가장 멋있는 밴드, 가장 아름다운 밴드가 되고 싶어요. 예전에는 부산이라고 하면 소음발광을 떠올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왕에 음악을 한다면 큰 꿈을 가지고 있는 게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절반은 도달하겠지’라고 생각해서요.

 

 


 

Interview | 야마모토 다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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