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김일두 [새 계 절]

세상 풍파를 다 겪은 듯 짙은 우수로 가득한 사내의 진심 한 켠에 담긴 해맑도록 낙천적인 로맨티시즘, 이토록 선명한 대비가 자아내는 진득한 정서적인 울림, 이런 것들이야말로 음악가 김일두만의 확고한 매력이자, 개성인 것이다.

 


 

김일두
새 계 절
2021.01.16

 

최근에 개인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경험을 공유하며 글을 시작한다.

꼭 한 달 전 즈음, 오늘처럼 글을 쓰느라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혼자 남아있던 밤의 일이다. 시간이 갈 수록 집중력이 떨어져 어느 순간 글이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않는 상황이 되었고, 잠시 한숨 돌리자 싶어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 인스타그램을 켰다. 때마침 눈에 띈 김오키님(이하 김오키)의 라이브 알림. 라이브의 공간은 어느 작은 방이고 그 곳엔 김오키와 다른 한 사내가 함께 있다. 담배를 맛깔나게 태우던 그 사내가 이윽고 기타를 들고 노래를 시작하는데 그 노래가 덤덤하면서도 동시에 참으로 절절하다. 영상을 찍던 김오키가 어느새 훌쩍거리고 있고, 화면 너머로 노래를 듣던 나도 덩달아 눈시울이 잔뜩 붉어져선 텅빈 사무실에서 혼자 훌쩍거리고 있다. 그토록 묵직하게 가슴을 두드리는 노래를 부르던 사내의 이름은 ‘김일두’, 그리고 노래는 그의 대표곡인 ‘문제없어요’였다.

 

[김일두 / 문제없어요] (Live @ 온스테이지)

 

김일두. 한국의 인디음악, 특히 포크 계열 음악을 좋아하는 리스너들에겐 익숙할 이름이다. 펑크 밴드 ‘지니어스’ 등 여러 록밴드들을 거쳐오며 뼛속까지 로커임을 보여준 한편, 2011년 첫 솔로 EP [문제없어요]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이어온 솔로 작품들에선 주로 포크, 혹은 포크에 방점을 둔 채 여기에 장르적, 사운드적인 시도나 변화를 가미한 음악들을 해왔다. 김일두는, 그리고 김일두의 음악은 마치 80년대 한국 청춘영화의 남자 주인공들과 똑 닮았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대체로 무뚝뚝하고, 투박하고, 종종 거칠게도 느껴지지만 사실 그 속내는 더없이 낭만적이고, 맑고, 여리고, 또 수줍다. 예컨대 ‘터프가이의 모습을 한 순수한 로맨티스트’의 캐릭터이고 바로 이 지점에 그만의 독보적인 매력 포인트가 자리잡고 있다. 세상 풍파를 다 겪은 듯 짙은 우수로 가득한 사내의 진심 한 켠에 담긴 해맑도록 낙천적인 로맨티시즘, 이토록 선명한 대비가 자아내는 진득한 정서적인 울림, 이런 것들이야말로 음악가 김일두만의 확고한 매력이자, 개성인 것이다.

 

 

한편으로 김일두는 참 성실하고 꾸준한 음악가다. 데뷔 이래 눈에 띄게 큰 공백 없이 꾸준하게 발표를 이어오고 있으며 이는 최근에도 마찬가지,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무려 세 장의 솔로 정규앨범을 발표했으며 그 사이엔 동료 음악가 김창희, ENGELR HASHIM과 함께한 전자음악 앨범 [I AM NOT I]도 선보였다. 이 중 21년 초에 발표된 정규작 [새 계 절]을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 앨범이 김일두 특유의 정서를 여전히 유지하면서도 음악적으로는 이를 보다 친절하게(?) 풀어낸 작품으로 여겨지기에, 그래서 행여 이 글을 통해 처음으로 김일두의 음악을 접하게 되는 이들도 보다 자연스럽게 김일두 음악의 매력을 맛볼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최근 김일두의 작품들이 드럼 프로그래밍과 신스 사운드를 활용해 신스팝적인 접근을 선보이거나(꿈 속 꿈), 특유의 투박한 질감을 더욱 극단적인 로파이 사운드로 표현하는 등(When Do You Come?) 여러 시도들을 선보이고 있는 가운데 [새 계 절]은 그의 음악에서 언제나 중요한 요소인 ‘낭만적인 정서’를 보다 대중가요적인 터치, 특히 80-90년대의 옛 가요적인 정취로 풀어내고자 하는 작품으로 읽힌다. 다양한 악기들을 대동한 편곡으로 전작들에 비해 한층 소리가 풍성해졌지만 그 속엔 명백하게 의도된 ‘촌스러움’이 가득한데 특히 앨범 곳곳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아날로그 신스는 이러한 편곡적 의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해내는 필살기다. 몇 곡의 신곡들, 한 곡의 커버, 그 외엔 과거에 발표되었던 자신의 곡들을 다시 레코딩해 담은 총 열두 트랙은 순서대로 1월부터 12월까지 일년 열두 달을 상징하며 시간의 흐름, 계절의 흐름을 표현하고 있다.

 

단출한 통기타 발라드였던 원곡을 가슴 시리게 청초한 피아노 발라드로 재해석한 ‘일곱박자’, 아날로그 신스, 기타, 드럼이 조화로운 밴드 사운드의 편곡을 선보이는 감성적인 발라드 ‘투명한 너’, 아날로그 신스를 보다 적극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며 임백천의 히트곡을 커버한 ‘마음에 쓰는 편지’ 등 유재하로 대표되는 한국 발라드의 순수한 서정미를 재현하는 곡들도 모두 좋지만 역시 이 앨범의 백미는 타이틀곡인 ‘가깝고도 머언’일 것이다. 리드미컬한 일렉 베이스와 드럼 프로그래밍이 중심이 되어 조성된 경쾌한 그루브에 아날로그 신스, 미니무그, 브라스 사운드 등이 함께하며 흥겨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행복하고도 기분 좋은 곡이다. 개인적으로 유재하의 ‘지난 날’이 지닌 희망적 정서, 김현철 풍 AOR(Adult Oriented Rock)의 도회적 사운드를 두루 닮은 곡이라 여겨진다.

 

[김일두 / 가깝고도 머언] (Official Audio)

 

김일두 하면 흔히 떠올리게 되는 다소 거칠고 투박한 분위기, 사운드와는 사뭇 다른 결의, (여전히 매끈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전작들에 비해 훨씬 멜로디가 선명하고 오밀조밀하고 예쁜 사운드들로 채워진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런 변화가 조금도 생경하지 않은 것은 김일두 고유의 유일무이한 캐릭터가 단단히 중심을 잡아주는 덕일 테다. 그만의 – 짙은 경상도 억양과 금속성 질감의 목소리로 – 진심을 꽉꽉 담아 부르는 노래가 여전하기 때문에, 그 속에 담겨있는 소년처럼 순수하고 해맑은 낭만이 여전히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가요 앨범이 김일두 팬들에겐 그의 새로운 매력을 만나는 기회가 되기를, 또 지금껏 그를 몰랐던 이들에겐 이 멋진 싱어송라이터의 음악 세계를 처음으로 접해볼 수 있는 좋은 마중물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김일두 / 사랑의 환영] (Official M/V)

Editor / 김설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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