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KailorKyle [A HOT MINUTE]

발행일자 | 2021-08-14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그의 아티스트 소개 글이다. “캐나다 토론토 드레이크 맨션의 화장실”에서 생활 중이라며 호기롭게 적혀 있는 이 짧은 글에는 반신반의한 내용들이 함께 실려있는데, 놀라운 점은 이것을 그저 ‘컨셉’ 혹인 ‘기믹’이라고 치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의 탄탄한 음악성이라는 사실이다.

 


 

KailorKyle
A HOT MINUTE
2021.08.03

 

캡사이신 소스로 범벅되어 매운맛의 극단을 달리는 음식을 떠올려보자. 이중 몇몇은 원래의 맛이 어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자극적인 인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울 것이다. 그에 비해 소위 ‘맛있게 매운맛’을 적절히 버무린, 이를테면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은 된장찌개 등의 음식은 맛의 끝자락을 경쾌하게 강조해주는 강렬함으로 되려 풍미를 살리곤 한다.

 

뜬금없이 음식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상당히 비슷한 맥락을 음악 시장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기믹’이라 불리우는, 뮤지션 본인이 독특한 캐릭터성을 잡아가는 이 일련의 현상은 마치 강렬한 매운맛처럼 뇌리에 각인되기는 쉽지만, 그 정도가 지나칠 경우 배보다 배꼽이 커져 음악 자체가 뒷전이 되어버릴 수 있는 리스크를 동반한다. 물론 음악에는 왕도가 없기에 맞고 틀리고의 기준으로 이것을 판가름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떠한 자극을 넘기 위해 더 큰 자극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아티스트의 지속가능성과 생명력이 줄어든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소개할 래퍼 KailorKyle의 음악은 ‘맛있게 매운’ 청양고추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2020년 갑자기 등장한 이 신인 래퍼는 먼저 해외 시장을 기반으로 6장의 싱글을 잇따라 발표하며 활동을 이어갔는데, 2020년 11월 발표한 EP [EXPERIMENT #1]를 기점으로 한국 진출(?)을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그의 아티스트 소개 글이다. “캐나다 토론토 드레이크 맨션의 화장실”에서 생활 중이라며 호기롭게 적혀 있는 이 짧은 글에는 반신반의한 내용들이 함께 실려있는데, 놀라운 점은 이것을 그저 ‘컨셉’ 혹은 ‘기믹’이라고 치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의 탄탄한 음악성이라는 사실이다.

 

이번 EP [A HOT MINUTE]도 마찬가지다. 트랜디한 신스 톤 위로 멜로디컬하게 포문을 여는 1번 트랙(‘yuh yuh’)을 넘어 거친 베이스라인보다 더 거친 발성으로 기선을 제압하는 2번 트랙(‘Margiela’)과 이후 순식간에 bpm을 올린 일렉트로닉 사운드(‘bitch I just wanna dance’)로 텐션을 올리는가 하면 귀신 같은 완급 조절로 느긋한 그루브(‘Sober Thoughts’)를 뽐내기도 한다. 앨범의 후반부에선 다시 장르 음악의 멋을 강조(‘Dunno’)하며 칠한 바이브로 깔끔한 마무리(‘flower’)를 선사한다. 도대체가 비슷한 부분을 찾을 수가 없는 트랙 분배는 “181도 다른 문화들 속에서 살아”왔다는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팔색조 같은 매력을 듬뿍 담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 모든 트랙을 정주행해도 단 6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보편적인 곡 구성의 ⅓ 정도 분량에 해당하는 각 트랙의 러닝타임에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는 패기가 느껴지는 듯 하다. 그렇게 그의 독특한 자기소개는 쉽게 보기 힘든 여러 가지 요소들을 통해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것 같다’라는 리스너의 근거 없는 확신과 함께 생명력을 얻어 뮤지션 자체의 찰떡같은 캐릭터로 뿌리를 내린다.

 

이번 앨범 메인 프로듀서로 참여한 ‘Rook’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전작을 시작으로 이번에도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그는 카멜레온 같은 KailorKyle의 랩에 착 달라붙는 비트를 통해 사실상 KailorKyle이라는 뮤지션의 또 다른 자아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컨셉과 그 결을 함께 하는 탄탄한 음악성으로 완성된 뮤지션의 자아는 생명력을 잃기는커녕 다음 단계로의 진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한국에 본인의 음악을 소개하기 시작한 지 이제 막 반년을 넘은 지금, 또 다른 자극을 양껏 흡수하고 있는 그의 음악은 맵고 또 매워도 저절로 손이 가는 그런 맛이다.

 


Editor / 월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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