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훵크 음악 팬이라면 첫 곡 ‘Playaholic’부터 압도될 것이다. 곡이 시작되자마자 마치 ‘팔리아먼트-펑카델릭’(Parliament-Funkadelic)의 재림을 보는 듯 근사한 피펑크 그루브가 훅 치고 들어와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피쳐링한 ‘김아일’의 영리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데 피펑크의 맛을 제대로 이해하고 최적의 퍼포먼스를 선사해 피쳐링의 역할을 200% 이상 수행한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
Aliens
2018.10.30.
사실 조금 고민했다. 다시 한 번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이하 술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비교적 최근에 이들의 싱글 ‘미끄럼틀’에 대해서 한 차례 글을 썼고 거기서 이미 이 밴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들을 적잖이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이번엔 다른 음악가의 작품을 다루는 것이 형평성의 관점에서 맞지 않을까-하는 고민이 우선 하나, 그리고 이미 밴드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들을 꺼내 놓았기에 새 글에서 행여 동어반복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이 또 하나. (심지어 그보다 좀 더 이전, 나잠 수 솔로 앨범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도 술탄에 대한 얘기를 꽤 했다 **) 그러나 그럼에도 다시 한 번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앨범을 듣는 순간 내 마음 속에서 ‘올해의 앨범’이 정해졌기 때문이다. 무려 ‘올해의 앨범’, 그렇게까지 생각했다면 굳이 쓰지 않는 쪽이 차라리 이상하다.
첫 앨범 [The Golden Age]로부터 무려 5년,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만큼 다양한 경험을 차곡차곡 축적해왔을 것이다. ‘글래스톤베리’를 다녀왔고, 거물 프로듀서/엔지니어 ‘토니 마세라티’와 작업을 했으며 일본에서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멤버들 각자의 음악 활동도 드문드문, 그러나 꾸준히 이어졌다. 새 앨범 [Aliens] 속에는 과연 이런 시간들의 흔적이 음악 구석구석에 묻어나 음악적으로 한층 성숙해지고 단단해진, 그야말로 ‘버전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있다.
1집과 비교해 이 앨범을 바라봤을 때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확연하게 높아진 음악적 완성도. 사실 [The Golden Age]도 충분히 좋은 앨범이었고 이때부터 그들이 음악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명백했다. 앨범 최고의 트랙이고 그 해 최고의 댄스뮤직 중 하나로 꼽을 만한 ‘의심스러워’나 쟁글쟁글한 기타와 브라스가 근사한 그루브를 자아내는 ‘캐러밴’ 등은 정말 근사한 트랙들이고 이 두 곡만 들어봐도 밴드의 음악적 정체성이 60-70년대 훵크(Funk), 소울, 그리고 디스코 음악에 있음은 분명해진다. 하지만 장르 음악 팬의 관점에서 앨범 전체를 바라봤을 때 조금은 설익은 듯해 살짝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 더불어 이 시기의 술탄은 그 비주얼 만큼이나 음악 그 자체에서도 컨셉츄얼한 면이 더 도드라지는 면이 있었다. 이를테면 ‘요술왕자’나 ‘압둘라의 여인’같은 곡들에 담긴 해학적 오리엔탈 코드 같은 것들. 마치 ‘블랙스플로테이션’ 영화의 포스터 같은 앨범 커버처럼 이때의 술탄은 모든 면에서 ‘B급 정서’가 너무나도 확연한 밴드였다. *** 그에 비해 [Aliens]의 술탄은 굳이 컨셉트에 목매이지 않고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더욱 촘촘해지고 정교해진 편곡으로 빚어낸 밀도 높은 사운드는 여전히 폭발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지만 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능수능란하게 컨트롤한다. 한층 단단하게 응집된 그루브, 되려 더욱 풍부해진 바이브, 과연 ‘진일보한 리듬의 서사’라 할 만하다. 이 괄목할 만한 사운드의 발전상은 이 밴드의 음악적 역량과 더불어 그들이 요리하는 장르들에 대한 이해도 역시 5년 전과는 비할 바가 아닌 수준으로 높아졌음을 확연히 느끼게 한다. 더불어 ‘김아일’, 뱃사공’, ‘SUMIN’ 등 ‘현재의 흑인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과도 함께 작업, 특유의 레트로 바이브에 현대적인 감각마저 더하고 있다. 1집의 첫 인상이 ‘와, 한국에도 이런 음악을 하는 밴드가 있네’라는 반가움이었다면 이 앨범은 한층 높아진 완성도로 듣는 내내 ‘와, 한국에 이런 음악을 이런 높은 수준으로 하는 밴드가 있다니!’라며 그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연달아 감탄하게 된다. 한편 프론트맨 ‘나잠 수’의 존재감과 장악력은 이 앨범에서도 도드라진다. 대부분 트랙의 작사, 작곡, 편곡을 도맡았고 총 프로듀싱과 심지어 믹싱, 마스터링까지 직접 소화하며 예의 다재다능함을 뽐내고 있다.
소울/훵크 음악 팬이라면 첫 곡 ‘Playaholic’부터 압도될 것이다. 곡이 시작되자마자 마치 ‘팔리아먼트-펑카델릭’(Parliament-Funkadelic)의 재림을 보는 듯 근사한 피펑크 그루브가 훅 치고 들어와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피쳐링한 ‘김아일’의 영리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데 피펑크의 맛을 제대로 이해하고 최적의 퍼포먼스를 선사해 피쳐링의 역할을 200% 이상 수행한다. 마치 ‘탱탱볼’의 최신 버전과도 같은 유쾌한 댄스 넘버 ‘통배권’에선 여전히 개구진 술탄을 만날 수 있어 반갑다.앨범 내에서 드물게 컨셉츄얼한 이 곡은 곳곳에 심은 디테일들이 그 맛을 한층 맛깔나게 살리는데 너무나도 어이없는 가사를 너무나도 천연덕스럽게 노래하는 술탄을 ‘리짓군즈’ 크루의 래퍼 ‘뱃사송’이 서포트, 곡의 익살스러움을 한껏 부스팅시킨다. 후렴이 ‘꿘이야 꿘이야 꿘이야 통배권’이라니, 그러나 이 황당한 노랫말의 후렴구는 한 번 듣고 나면 입에서 계속 맴도는 강력한 중독성을 지니고 있다. (글을 쓰는 지금도 흥얼거리고 있다)
귀에 착 감기는 세련된 그루브 위로 스산하고 멜랑콜리한 무드가 가득한 ‘사라지는 꿈’은 1집 이후 음악적 고뇌로 방황했던 나잠 수 개인의 솔직한 심경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곡으로 ‘작가의 내밀한 면’을 음악에 드러낸다는 점이 흥미롭고 앨범에서 유일하게 나잠 수가 아니라 ‘SUMIN’(수민)이 작사/작곡한 발라드 넘버 ‘미끄럼틀’은 클래식 소울의 정취와 현대의 트렌디한 알앤비의 감각을 생각치도 못한 방식으로 결합하는 파격을 선보인다. 한편 싸이키델릭한 사운드와 뜬금없는 ‘김간지’의 랩(?)이 인상적인 술탄식의 일렉트로닉-댄스 넘버 ‘로켓맨’ 또한 이 앨범에서 가장 흥미로운 트랙 중 하나이고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 풍의 시카고 소울 음악을 뼈대로 여기에 오만가지 것들이 다 결합해 탄생한 듯한 기괴하고도 선 굵은 곡 ‘갤로퍼’는 추억의 명차(?) 갤로퍼에 대한 뜨거운 찬양이다. ‘Manic Depression’이나 ‘깍두기’의 흥겨운 에너지 가득한 펑키 사운드와 그루브는 흡사 ‘릭 제임스’(Rick James)의 그것처럼 쫀득쫀득 차지기 그지없다.
솔직히 ‘놀라운’ 수준의 앨범이고 글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내 마음 속 확고한 올해의 앨범이다. 더불어 이 얘기도 해야겠다. 술탄의 음악적 코어 ‘나잠 수’는 언제나 ‘가장 좋아하는 한국 아티스트’ 중 한 사람이었는데 이 앨범을 기점으로 티어가 바뀌었다. 이제 그는 ‘가장 존경하는 한국 아티스트’ 중 한 사람이다. 이거 궁서체다.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참고
* [REVIEW] 술탄 오브 더 디스코 – 미끄럼틀 (feat. SUMIN)
– 전문 읽으러 가기: https://poclanos.com/2018/09/12/editors-pick-sultan/
** ‘Deep Inside’ 2회 [2000년대 한국에 재림한 댄스뮤직의 화신! 치명적 그루브 메이커, 그 이름 ‘나잠 수(NAHZAM SUE)]
– 전문 읽으러 가기: https://bit.ly/3blzYTl
*** 블랙스플로테이션(Blacksplotation):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ploitation)은 1970년대 전반에 미국에서 생겨난 영화 장르이다. 주로 교외에 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엑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이며, 이름의 유래는 “black”과 “exploitation”의 합성어이다.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는 흑인 배우들이 주연으로 하며, 사운드트랙에 펑크와 소울 음악을 사용했다. [출처: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