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적인 라이밍과 이를 뒷받침하는 완벽한 글자 수 배치는 “근본 없는 음악을 지향”한다는 그의 아티스트 소개 글이 무색하게 힙합 작사의 근본이 가진 멋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물론 중간중간 등장하는 변칙적인 리듬과 멜로디컬한 라인들이 ‘근본’과 상반되는 맛으로 사운드의 밸런스를 잡아주니 지루할 틈이 없다.
사라카야콤슨 (SarahKayaComson)
Crumbs of…
2021.05.14
“사라카야콤슨이 도대체 누구야?”라는 물음에 말없이 그의 첫 번째 EP를 들어보라 권한다. 본인을 규정하던 많은 것들을 나열하며 “내가 꼭 누구여야 해?”라고 되묻는 패기 있는 노랫말에 잠깐이라도 멈칫했다면 슬며시 두 번째 EP를 추천해본다. 7곡에 걸쳐 지치지도 않고 “사랑이 전부”라 노래하는 진솔한 뚝심을 통해 사라카야콤슨이라는 아티스트의 핵심을 엿볼 수 있으리라.
이번 5월에 발표된 세 번째 EP [Crumbs of…]는 여기서 조금 더 사적이고 사소한, 본작의 제목과도 같은 ‘부스러기’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 자신’ 그리고 ‘나의 전부’를 통과하여 이제는 주변에 떨어진 부스러기 같은 감정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는 이번 작품은 아티스트 본인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의 음악을 꾸준히 지켜봐 온 리스너라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맥락의 스토리텔링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때로는 다 포기한 채로 도망치고 싶다거나(“Ain’t Nothing”) 종말이라는 상황에 빗대어 염세적인 태도로 거창한 무언가를 추구할 필요 없다 말하는(“End Of The Day”),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엄습해오는 외로움을 맞닥뜨리는(“Findmeinthetown”) 그의 모습들은 쉽사리 눈에 띄지 않지만 분명 어딘가에 존재하는 내밀한 감정을 기반으로 묘사되고 있다. 첫 번째, 두 번째 EP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솔직함으로 자연스럽게 그 내용적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앞선 설명만으로 이번 작품을 ‘인간의 어두운 이면을 다룬 컨셔스한 앨범’ 등으로 오해해서는 절대 안 된다. 오히려 그의 이름의 유래에서도 알 수 있듯(미국 시트콤 ‘오피스’에 나오는 “Sarah Kaya comes in”이라는 말장난에서 따왔다고 한다.) 진지하고 무거운 의미를 담지 않으려는 음악관에 따라 ‘월세’, ‘마트’, ‘따릉이’, ‘홍제역’ 같은 일상의 언어들과 특유의 익살스러움을 버무려 주제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있다. 말랑말랑한 표현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화자의 내면세계와 동화될 수 있도록 만드는, 이름하여 ‘사라카야콤슨식’ 스토리텔링의 완성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문득 사라카야콤슨은 그저 ‘좋은 이야기꾼’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를 두고 자신 있게 ‘좋은 이야기꾼’을 넘어 ‘좋은 뮤지션’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청각적인 부분에서도 여전히 빈틈없는 탄탄함 때문이다. 규칙적인 라이밍과 이를 뒷받침하는 완벽한 글자 수 배치는 “근본 없는 음악을 지향”한다는 그의 아티스트 소개 글이 무색하게 힙합 작사의 근본이 가진 멋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물론 중간중간 등장하는 변칙적인 리듬과 멜로디컬한 라인들이 ‘근본’과 상반되는 맛으로 사운드의 밸런스를 잡아주니 지루할 틈이 없다. 또한, 1번 트랙 “Ain’t Nothing”에서 극에 달하는, 귀에 걸리는 부분 하나 없이 부드럽게 연음 처리되어 물 흐르듯 이어지는 자음 배치와 발음법은 듣는 이의 청각적 쾌감을 자극하는 킬링 포인트 중에 하나다.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능청스러운 고유의 발성이 얹어지는 순간 사라카야콤슨은 비로소 ‘좋은 이야기꾼’에서 ‘좋은 뮤지션’이 되는 것이다.
[Crumbs of…]는 소보루 빵을 닮았다. 부스러기가 본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맛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보루 빵처럼, 자칫 진지해질 수도 있는 ‘부스러기’라는 키워드를 본인만의 방식으로 맛깔나게 요리하여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재탄생 시켰으니까. 내용과 형식의 완성도를 고루 갖춘 이번 작품을 통해 또 한 번, 안과 밖을 넘어 그의 다음 시선이 향할 곳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Editor / 월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