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라는 앨범 제목처럼 대부분의 곡들을 홈레코딩으로 직접 녹음했고 보컬 소스에 어떠한 튜닝도 가미하지 않았다. 또한 대부분의 악곡들을 기타, 혹은 피아노 정도의 어쿠스틱 악기들과 단출하게 레코딩했고 데카당 음악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화성을 이용한 코러스도 곳곳에 배치하는 등 소박하면서도 최대한 ‘목소리’에 집중한 연출을 통해 진동욱 특유의 창법이 여전함에도 그간 들어온 것과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진동욱
데모 (DFMO)
2019.03.30
“평소에 알앤비/소울, 힙합, 재즈 등 보컬리스트의 역량이 곡의 인상을 크게 좌우하는 음악을 주로 좋아해온 나는 뛰어난, 그리고 개성적인 보컬리스트가 곡을 압도하며 끌고 나가는 류의 음악들에 늘 매력을 느낀다. 그런 면에서 ‘데카당‘의 프론트맨 ‘진동욱‘은 딱 내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유형의 보컬리스트다. 특정 장르에 국한지을 수 없는, 소울, 블루스, 록 사이를 능구렁이처럼 타고 넘는 ‘데카당‘의 사운드는 훌륭하다. 그러나 그 사운드 위를 더 능구렁이처럼 노니면서 ‘데카당‘ 고유의 바이브를 완성시키는 ‘진동욱‘의 보컬이야말로 이 밴드의 가장 위력적인 무기다.” *
몇 년 전, 포크라노스의 첫 컴필레이션 앨범이었던 [Emerging]의 수록곡들에 대해 당시 컴파일 작업에 참여한 스태프들이 각각 짤막히 코멘트를 했던 콘텐츠의 일부로 밴드 ‘데카당’을 언급하며 적었던 글로 밴드에 대한 코멘트라곤 하지만 보시다시피 사실 프론트맨 ‘진동욱’에 포커스가 주로 맞춰진 글이다. 이때부터 보컬리스트 ‘진동욱’의 열렬한 팬이었다.
진동욱은 ‘노래를 맛있게 부를 줄 아는’ 보컬리스트다. 달콤하게 읊조리던 목소리가 어느 순간 날카로운 냉소로 변하고, 질주하는 기타와 드럼 사운드의 사이를 뚫으며 내지르던 샤우팅이 어느새 느슨한 그루브 위를 노니는 아름다운 팔세토로 변해 공간을 부드럽게 채우기도 한다. 단순히 ‘좋은 목소리’로 ‘노래를 잘하는’ 것 이상으로 그의 보컬엔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이 있고, 그 개성적인 보컬로 어떤 무드를 명확하게 연출해내는 능력이 있다. 개인적으로 근래에 등장한 가장 드라마틱한 스타일의 보컬리스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게다가 다양한 은유, 구체적 묘사 등을 동반한 특유의 어법으로 써내려가는 노랫말 역시 근사한, 훌륭한 리리시스트이기도 하다.
[데모 (DFMO)](이하 ‘데모’)는 데카당의 프론트맨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진동욱이 다분히 사적인 이야기들을, 다분히 사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주로 사랑, 그리고 상실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으며 그가 종종 언급했던 –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 소중한 친구 ‘진원’에 대한 기억들도 그 곳곳에 묻어있다. 그만큼 음악의 결이 데카당과는 많이 다르다. 데카당이 록, 블루스, 소울 등 다양한 양식들의 요소를 넘나들며 선이 굵고 색채가 뚜렷한 음악을 선보이는 데 반해 ‘데모’에 담긴 그의 음악은 대체로 여리고 섬세한 감성이 도드라지는, 어쿠스틱한 팝 음악이다. 발라드적인 곡들이 주를 이루는데 이는 데카당이 종종 선보이는 네오소울 풍의 끈적하게 로맨틱한 발라드 넘버들과도 또 다르다.
‘데모’라는 앨범 제목처럼 대부분의 곡들을 홈레코딩으로 직접 녹음했고 보컬 소스에 어떠한 튜닝도 가미하지 않았다. 또한 대부분의 악곡들을 기타, 혹은 피아노 정도의 어쿠스틱 악기들과 단출하게 레코딩했고 데카당 음악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화성을 이용한 코러스도 곳곳에 배치하는 등 소박하면서도 최대한 ‘목소리’에 집중한 연출을 통해 진동욱 특유의 창법이 여전함에도 그간 들어온 것과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면서 그곳에서 담은 소리들을 인트로와 스킷 등에 앰비언스로 삽입한 것 또한 소소한 감상의 포인트.
아이슬란드로 가는 비행기 내 승무원들의 코멘트를 비롯한 기내 공간의 소리들을 배경으로 청초한 피아노의 선율이 작품의 문을 여는 인트로 ‘시도’, 동료 싱어송라이터 ‘이예린’이 섬세한 터치로 수놓는 피아노의 음들에 귀를 기울이면 이내 그의 나지막한 음성이 그 위에 포개지며 한껏 관조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클래시컬한 발라드 ‘바보천치’, 한 대의 기타와 함께 나지막이 시작되지만 차츰 고조되고 소리들이 쌓이며 마침내 뜨거운 격정으로 ‘너를 사랑해’라 목놓아 외치는 작품 내 가장 드라마틱한 악곡 ‘사랑’(수록곡 중 유일하게 ‘진원’과 함께 쓴 곡이기도 하다), 이상 전반부 세 곡이 사랑을 노래한다면 이어지는 후반부는 상실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할아버지의 장례식과 고인에 얽힌 추억들을 소재로 가져와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이를 여유로운 그루브가 있는 리듬과 익살스러운 코러스 등을 통해 오히려 밝은 분위기로 그려내는 모순적인 노래 ‘무제’, 친구 ‘진원’의 장례식장에서 목도한 생경한 풍경이 흡사 ‘전시회’같다고 느꼈던 당시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친구에 대한 진심어린 애도를 마치 한 편의 뮤지컬을 관람하듯 예측불가한 구성으로 회고하고 표현하는 6분 40초의 대곡 ‘너의 멋진 전시회’는 모두 장례식장의 풍경을 소재로 가져와 죽음, 그리고 그로 인한 상실에 관한 기억과 감정을 그리는 곡들. 하지만 이 두곡은 그 분위기가 다른 만큼 그 안에 담긴 마음의 형태도 조금은 다른 듯하다.
어느 박물관에서 녹음한 도슨트**의 음성을 앰비언스로 활용한 스킷 ‘도슨트’를 지나 만나게 되는 피날레 ‘질문’은 오직 보컬과 기타만으로도 인상적인 오르내림을 연출하며 상실의 감정을 가장 절절하게 노래하는 곡이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느껴지는 이 곡은 한편으론 ‘데모’라는 짤막한 전시를 감상한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던지는 질문으로도 여겨진다.
가장 개인적인 것들야말로 종종 가장 보편적이다.
이 작품 속에 전시된 일곱 개의 이야기들이 모두 음악가 개인의 경험과 기억들을 바탕으로 한,지극히 사적인 사연들에서 잉태된 것임에도 보편적인 공감대를 빚어낼 수 있는 이유다. 우리 모두 사랑하고 이별하니까. 어떤 날엔 견디기 힘든 상실에 속절없이 아파하기도 하니까. ‘데모’는 그럼에도, 그 모든 아픈 날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나, 그리고 당신, 그 모든 남겨진 이들을 위한 노래다.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참고
* DAILY DOSE OF MUSIC! 포크라노스 첫 컴필레이션 Vol.1 ‘EMERGING’ 스태프 픽
– 전문 읽으러 가기: https://blog.naver.com/poclanos/221106416134
** 도슨트(Docent):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 (출처: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