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베이스, 드럼의 아주아주 단출한 구성, 그러나 이들의 라이브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이 간결한 조합으로 이들이 얼마나 풍성하고 밀도 높은 그루브를 자유자재로 빚어내는지를.”
까데호
FREESUMMER
2019.07.11
‘춤추기 좋은 음악’에 대해 생각해본다. 일반적으로 ‘댄스뮤직’으로 분류되는 팝, 혹은 – 주로 전자음악 카테고리 내의 – 다양한 장르 음악들 외에도 평소에 음악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각자 저마다의 춤곡들이 따로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컨대 내 경우엔 ‘그루브’가 가장 중요한 요소다. 적당한 템포에 적당한 그루브가 있는 알앤비 음악을 가장 선호하고,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옛날 소울이나 훵크(Funk) 음악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지펑크(G-Funk)나 붐뱁 같은 랩음악들을 역시 좋아한다. 전자음악 카테고리 내에서는 다양한, 하지만 주로 미니멀한 사운드의 하우스 음악들을 가장 선호하는 편이다.
여기 ‘CADEJO’(까데호)라는 밴드가 있다. ‘펑카프릭 부스터’, ‘세컨 세션’, ‘화분’, ‘헬리비전’, ‘비헤디드’ 등의 밴드들과 솔로 활동, 여러 세션으로 커리어를 쌓아오며 다채로운 스타일을 섭렵해온 기타리스트 이태훈, ‘소울 스테디 로커스’, ‘윈디시티’, ‘써드체어’ 등을 거치며 레게에서 록을 넘나드는 활동을 해온 베이시스트 김재호, 밴드 ‘쟈니 로얄’로 출발해 다양한 활동을 하며 단단한 연주를 선보여온 드러머 최규철의 세 멤버로 출발했고 이후 최규철이 개인 사정으로 탈퇴하면서 ‘플링’, ‘JHG’ 등으로 활동해온 드러머 김다빈을 새 멤버로 영입해 현재의 진용을 갖춘 3인조다. 기타, 베이스, 드럼의 아주아주 단출한 구성, 그러나 이들의 라이브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이 간결한 조합으로 이들이 얼마나 풍성하고 밀도 높은 그루브를 자유자재로 빚어내는지를.
‘잼(Jam)’은 음악에서는 즉흥연주를 뜻하는 용어다. 재즈가 번창했던 1930년대 미국의 재즈 클럽들에서 연주자들이 정해진 프로그램도, 악보도 없이 즉흥적으로 합을 맞추며 연주하는 즉흥연주(Improvisation) 세션이 하나의 문화로 형성되었고 이것이 ‘잼 세션(Jam Session)’이라 불리게 되었다. ‘까데호’는 잼 밴드다. 최초에 밴드가 결성된 계기도 초기 멤버 세 사람이 어쩌다 한 번 하게 된 잼 세션이 너무 좋았던 덕이고 이것이 그들의 DNA가 되어 현재에도 밴드의 확고한 개성이 되고 있다. 때로는 여유롭게, 때로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서로를 예민하게 느끼고 서로의 연주에 반응해 조화와 공방을 오가며 합을 만들어가는 잼 세션의 반복 속에서 까데호 특유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피어난다.
소울, 훵크, 레게, 재즈 등 주로 흑인음악에 기반을 두는 그들의 음악은 대부분 이런 잼의 과정을통해 만들어지는 탓인지 선이 굵으며 직관적인 느낌이 강하다. 페달을 쓰지 않은 생 톤으로 멜로디가 또렷한 테마를 다채롭게 변주하며 곡의 주된 인상을 빚어가는 이태훈의 기타도, 대체로 심플한 연주 속에서도 확실한 그루브를 만들며 곡의 뼈대와 몸통을 구성하는 김재호의 베이스와 김다빈의 드럼도 모두 각자의 존재감이 확고하고 그 각자의 확고함 속에서 다시 조화를 만들어간다. 까데호 음악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역시 ‘그루브’일 것이다. ‘윈디시티’ 시절부터 긴 시간 동안 벼려진 그루브 장인 김재호의 찰진 베이스는 말할 것도 없고 유일하게 멜로디를 연주하는 이태훈의 기타마저도 끊임없이 크고 작은 그루브의 파도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까데호의 음악은 템포가 빠르건 느리건, 멜로디가 정적이건 신나건, 그저 감상하기 좋은 음악을 넘어 어떤 식으로든 ‘춤추기 좋은’ 음악으로서의 성질을 분명하게 지니고 있다.
굉장히 러프한 과정으로 만들어졌기에 비정규의 성격이 강했고, 그래서 제목조차 ‘믹스테잎’이었던 첫 EP [MIXTAPE], 그 이후 싱글 단위로 연이어 공개되었던 프로젝트 성격의 ‘까데호와 친구들’ 시리즈를 지나 최근 공개된 앨범 [FREESUMMER]야말로 까데호의 진정한 ‘첫’ 정규 발매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여름’을 테마로 정해놓고 작업을 진행한 것은 아니고 쌓여온 곡들을 모아놓고 보니 여름에 어울리는 곡들이어서 자연히 제목도 저렇게 정해졌다고. 기본적으로 연주 중심의 잼밴드이기에 대부분의 곡들이 연주곡이지만 멤버들이 직접 가창을 소화한 곡들도 몇몇 만날 수 있고 최근 인상적인 정규앨범으로 데뷔한 래퍼/프로듀서 ‘EJO(에조)’가 피쳐링 아티스트로 참여, 랩을 보탠 트랙도 있다. 시원시원한 펑키 리듬과 낭만적인 멜로디가 어우러지는 댄서블한 훵크 넘버 ‘우리’를 시작으로 탁 풀어진 느슨한 그루브가 한없이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레게 ‘여름방학’, 앨범에서 유일하게 타 아티스트와 협연한 곡으로 마치 룹을 반복해 돌리는 듯한 연주와 ‘에조’의 차분한 랩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는 앱스트랙트 힙합 느낌의 곡 ‘HUARANGO’, 아름다운 코러스 라인이 마치 마빈게이(Marvin Gaye)를 다시 만나는 듯한 감흥을 불러일으킨 근사한 소울 넘버 ‘Vanessa’ 등이 특히 선명하게 첫인상을 남기는 곡들. 그 외에도 앨범에서 가장 재즈적인 곡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자연스레 청자를 몰입시키는 ‘불놀이’나 흡사 비보이 배틀의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가도 손색이 없을 듯한 단단한 리듬의 브레이크비트로 시작해 이후 다채롭게 변주하며 차츰 초현실적인 무드로 달려가는 흥미로운 구성의 곡 ‘솜사탕’ 등 어느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이 멋진 곡들을 수록하고 있다.
대부분의 곡들이 흑인음악 범주 내 장르 음악으로서의 성격이 뚜렷한 편이고 연주곡 중심의 앨범이다 보니 몇몇 곡들은 팝음악의 친절한 어법에 친숙한 청자들에겐 조금 어렵게 느껴질 여지도 없지 않아 있다. 다만, 앞서 얘기했듯 까데호의 모든 음악엔 ‘춤출 수 있는’ ‘그루브’가 충분히 내재되어 있기에 그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 풍부한 그루브에 몸을 맡기며 감상한다면 곡의 난이도와 상관없이 얼마든지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분명히 어느 순간 춤을 추고 싶어질 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