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고도 재미있는, 이태훈이라는 음악가의 에너지와 그에 충분히 동행할 수 있는 민상용이라는 음악가의 합이 놀라우며 이태훈이 기타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동안 민상용은 그것을 훌륭하게 때로는 뒷받침하고, 때로는 그 장단에 맞춰 놀고, 때로는 잘 정리한다.
마찰
마찰시험
2021.07.23
워낙 훌륭한 소개글이 있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어떤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을 하며 이 앨범을 들었는데, 앨범은 예측하는 것과 거리가 멀 것 같다는 예측만을 맞췄을 뿐 그 외에는 온통 흥미로움의 연속이었다. 앨범 소개글 중에서 굳이 내가 생각했을 때 가장 적합한 단어를 찾는다면 스토너 록이 아닐까 싶다. 물론 얼터너티브 메탈에 가깝다는 이야기도 동의한다. 실제로 이 앨범에서 특정 장르 문법을 찾으려고 애를 쓰면 별로 건질 만한 단서는 없을 것이다. 놀랍고도 재미있는, 이태훈이라는 음악가의 에너지와 그에 충분히 동행할 수 있는 민상용이라는 음악가의 합이 놀라우며 이태훈이 기타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동안 민상용은 그것을 훌륭하게 때로는 뒷받침하고, 때로는 그 장단에 맞춰 놀고, 때로는 잘 정리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비단 연주자로서의 역량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민상용이라는 엔지니어가 얼마나 뛰어난 기술을 지니고 있는지 특히 밸런스와 기타 녹음의 측면에서 감탄할 수 있다. 일전에도 몇 차례 소리에 감탄하여 엔지니어를 찾아봤을 때 민상용이라는 이름을, 혹은 스튜디오 로그라는 이름을 발견했는데 이번 앨범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가장 익숙한 사람과의 호흡이기 때문에 더욱 긴밀하고 밀도 높은 결과를 만든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듣는 이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이 앨범이 실험이 아닌 시험인 이유에 관하여 사실 궁금함이 큰데, 그러한 질문을 가지고 앨범을 몇 차례나 반복해서 들었다. 결국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변화무쌍한 호흡과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이희문의 소리만큼은 들으면 들을수록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희문이 모든 곡에 피쳐링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함께 호흡을 맞춘 팀원이 아니라 피쳐링인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비단 곡에 파편적으로 배치되어 그런 것이 아니라, 곡을 이끄는 주역이 아닌 객원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좀 더 마찰의 색에 이희문을 끌어온 것에 가깝다고 느껴서다. 잼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며 한국의 소리를 더한 것이지만 여기에는 즉흥과 연주의 태도가 느껴지지만 그 안에 담긴 한국의 소리에 관한 설득력은 이희문이 끌어올렸다. 국악 크로스오버라는 세간의 범주에 넣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잘 살펴 들어보면 어떤 부분은(혹은 어떤 정신-spirit-은) 온전히 마찰이라는 2인조 밴드의 것이자 한국의 것이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희문이라는 인물을 끌어들인 것은 톤의 측면에서도,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여러모로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마찰의 음악은 한여름에 더울 때 들으면 더 좋다. 이유는 직접 들어보면 알 수 있다.
Editor / 블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