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연주의 보컬을 중심으로 힘주지 않은 편안한 연주, 심플한 리듬이 더해진 여섯 개의 노래들은 더러는 경쾌하기도 하고 더러는 차분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모두 한결같이 느슨하고, 평화롭고, 또 풋풋하게 아름답다. 그들 스스로가 이야기한 것처럼 마치 ‘선선한 여름밤’ 같은 무드가 시종 이어지는 음반이다.”
가가호호
당도 98%
2019.06.12
‘청춘’은 늘 달콤한 여운을 품는 단어다. 누구에겐 현재일 것이고 누군가에겐 – 추억 보정이 듬뿍 들어가 –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될 그 ‘청춘’은 달고, 쓰고, 그리고 대체로 모든 것들이 엉망진창 뒤죽박죽인데 오히려 그래서 더 낭만적이고 즐거운 느낌이다. 이제 와 다시 돌이켜보면 진짜 별로였는데 단지 그때라서, 그 친구들과 함께라서 맛있었던, 학창 시절 동네 분식집의 그 싸구려 떡볶이처럼 말이다.
그래서, ‘청춘’은 사랑 못잖게 언제나 음악의 주요한 테마가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장르의, 수많은 대중음악들이 청춘의 낭만과 방황을, 그 안에서 피어나는 감정들을 노래의 소재로 삼아온 것은 사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건 한국의 대중가요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록 음악에서 청춘은 가장 주요한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록’은 왠지 그 존재 자체가 이미 청춘, 젊음과 많이 맞닿아 있는 거 같은 장르니까. 실제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한국의 록/밴드 음악들이 저마다의 방식과 시선으로 청춘을 묘사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200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 형체를 갖추기 시작한 – 한국 가요적 정서의 멜로디를 바탕으로 사운드적으론 모던록, 또는 기타팝, 포크록, 서프록 등의 양식이 섞이거나 결합한 – ‘한국식’ 인디 록 음악의 어떤 부류들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도드라지는 느낌이다. 특히 최근의 젊은 밴드들 중 많은 이들은 그야말로 청춘 그 자체인 듯한 음악들을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밴드 ‘가가호호’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도 자연스레 ‘아, 청춘이구나’ 생각했다. 낙관적인 분위기 가득한, 꾸밈 없이 느껴지는 멜로디와 노랫말, 무엇 하나 멋부린 흔적 없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전개되는 보컬, 사운드, 리듬 등이 가가호호 음악의 첫 인상. 2018년 말에 데뷔한,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하는 밴드인 만큼 현재로선 정보가 그리 많지 않은데 우선 하연주(보컬, 기타), 박상원(기타), 오대호(베이스), 이성은(드럼)이 결성한 4인조 밴드라는 것, 그리고 현재까지 두 장의 싱글, 그리고 이 싱글들을 포함한 EP 한 장을 냈으며 올해 상반기 헬로루키에서 좋은 활약을 했다는 것, 이 정도가 지금 내가 밴드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다.
최근 공개된 이들의 첫 EP <당도 98%>는 먼저 공개했던 두 개의 싱글 ‘그냥 걷지’와 ‘마음과 마음’을 포함한 총 여섯 곡을 수록하고 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앞서 언급했던 것과 대체로 동일한데 담백한 음색과 꾸밈없는 창법으로 노래하는 – 그래서 왠지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연상케 하는 – 하연주의 보컬을 중심으로 힘주지 않은 편안한 연주, 심플한 리듬이 더해진 여섯 개의 노래들은 더러는 경쾌하기도 하고 더러는 차분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모두 한결같이 느슨하고, 평화롭고, 또 풋풋하게 아름답다. 그들 스스로가 이야기한 것처럼 마치 ‘선선한 여름밤’ 같은 무드가 시종 이어지는 음반이다.
20대 초반의 어떤 날, 학교 근처에서 친한 형, 친구들이랑 없는 돈을 다 털어 밤 늦게까지 맥주를 마시다가 버스가 끊겨 집에 갈 수 없게 된 밤이 있었다. 결국 그 자리에 있던 형네 집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고 택시를 탈 돈조차 없던 우리는 정릉에서부터 무려 효자동까지 꽤 먼 길을 걷고 걷고 또 걸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련한, 딱 그때였기에 할 수 있던 짓이다. 한없이 한적하고, 어두운 가운데 밝고, 거리 하나하나를 지날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비추던, 각색각양 서울의 밤 풍경들을 만났던 그 밤이, 이들의 음악을 듣다가 문득 떠올랐다.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