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정교한 기술과 기술의 맞대결이고 이 대결을 관전하는 이들은 그저 숨죽인 채 손에 땀을 쥐며 쉴 새 없이 오가는 수준 높은 공방에 집중할 뿐이다. 그렇게 이 트랙은 기술적으로 뛰어난 보컬 퍼포먼스가 어떤 쾌감을 선사하는지 제대로 맛보게 해준다.”
Untell (언텔)
Hardrally (W/ KHUNDI PANDA)
2019.06.04
음악을 듣는 취향에 대한 논의는 당연히 무척이나 다양한 측면에서 이야기될 것이다. 음악은 여러 소리들의 배열과 응집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 모든 각각의 소리들이, 그리고 그들이 하나의 ‘악곡’으로 구성되어 빚어내는 총체적인 소리의 합이 모두 저마다의 개성을, 색깔을,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목소리, 그러니까 ‘보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노래이든, 혹은 랩이든.
그래서 ‘보컬’에 대한 내 개인적인 취향은 어느 쪽이냐 하면… 난 아무래도 ‘기술자’ 형의 아티스트들을 선호하는 거 같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경지에 오른 보컬리스트들, 그리고 래퍼들 말이다. 예술의 영역에 대해 논하며 기술자라는 표현은 좀 건조하고 딱딱한 뉘앙스일지 모르겠지만 음색, 발성, 호흡, 발음, 가창의 기술을 한계까지 갈고 닦아 인간의 목소리만으로도 엄청난 쾌감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퍼포먼스를 듣고, 보고 있노라면 나로선 도무지 ‘기술자’ 외에 이들을 적절히 수식할 다른 어떤 단어도 쉬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고등래퍼’ 세 번째 시즌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준 신예 ‘오동환’의 첫인상 또한 ‘기술자’에 가까웠다. 프로그램을 다 챙겨보진 못 했지만 그는 적어도 내가 본 모든 참가자들을 통틀어 가장 정교하고 촘촘하게 디자인된 랩을, 가장 뛰어난 기술로 뱉어내는 래퍼였고 비록 불미스러운 – 해당 방송사의 경연 프로그램들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어온 케이스의 – 사건으로 중도에 경연에서 물러났지만 앞으로 씬에서 뭔가 보여줄 재목임은 충분히 증명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 ‘Untell’(언텔)이란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고 있다.
첫, 혹은 처음이란 단어가 서두에 붙는 무언가는 대부분 어떤 식으로든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마련이다. 언텔이 첫 싱글, 그러니까 데뷔작을 함께 작업할 파트너로 그 누구도 아닌 바로 ‘KHUNDI PANDA’(쿤디판다)를 선택했다는 점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쿤디판다는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뛰어난 랩 기술자인 동시에 훌륭한 리리시스트이고 비교적 젊은 래퍼이지만 최근 국내의 대부분 다른 젊은 래퍼들이 택하고 있는 노선과 달리 컨셔스 랩(Conscious)을 추구하며 진중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그가 슈퍼프릭레코드 소속의 프로듀서 ‘비앙’(VIANN)과 만든 수작 앨범 [재건축]은 15회 한대음에서 최우수 랩&힙합 음반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꾸준히 즐겨 듣고 있는 작품이다) 언텔은 쿤디와 첫 싱글을 작업한 이유로 자신이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래퍼이고 평소에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 있는데 이것은 언텔이 이후 어떤 음악을 추구하고 만들어낼지에 대한 일말의 단초를 제공하는 지점이 아닐까 한다.
‘Hardrally’, 제목이 모든 걸 설명한다. 이 트랙은 언텔과 쿤디판다가 그야말로 빡세게(Hard) 휘몰아치는 3분 8초간의 랩 랠리(Rally)다. 마치 70~80년대 올드스쿨 힙합의 브레이크(Breaks)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듯 미니멀하면서도 록킹한 비트는 두 기술자가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최적의 놀이터이고 이렇게 깔린 판 위에서 이들이 쉴 새 없이 주고 받는 타이트한 랩의 향연은 마치 과거 한국과 중국의 국가대표 탁구 매치 같다. 빠르고 정교한 기술과 기술의 맞대결이고 이 대결을 관전하는 이들은 그저 숨죽인 채 손에 땀을 쥐며 쉴 새 없이 오가는 수준 높은 공방에 집중할 뿐이다. 그렇게 이 트랙은 기술적으로 뛰어난 보컬 퍼포먼스가 어떤 쾌감을 선사하는지 제대로 맛보게 해준다.
이미 단단하게 구축된 자신만의 기술과 스타일을 갖춘 유망주 래퍼의 근사한 데뷔 싱글.
+) 이 트랙의 언텔은 왠지 – 역시 한국 힙합의 대표적 기술자 중 한 사람인 – ‘Basick’(베이식)을 연상케 하는 측면이 있다고 느낀다.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