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공 [Here, mr.reindeer]

발행일자 | 2022-01-22


“쓸쓸한 겨울 앨범”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지만, 전곡을 감상한 뒤에 느껴지는 따뜻함은 위에서 언급한 모든 내용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고유의 음악성 덕분일 것이다.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에서 상냥함 마저 느껴지는 사공의 사려 깊은 따뜻함은 그렇게 뜨겁지 않지만 뭉근한 울림으로 오래도록 이어진다.

 


 

사공
Here, mr.reindeer
2021.12.25

 

학창 시절 당시 인상 깊게 들었던 수업 중 동화책, 정확히는 그림 위주로 구성된 그림 동화책에 관한 수업이 있었다. 그림 동화책의 역할과 의미를 갖가지 예시 작품들과 함께 알아보는 흥미로운 강의가 한 학기 동안 이어졌는데, 그중에서도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좋은 동화는 아이와 어른 모두의 시선으로 읽어낼 수 있는 두 가지 층위를 가지고 있다’라는 내용이었다. 아기자기한 그림 표면에서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교훈적인 내용과 더불어, 그 밑 단에서 어른의 시선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진중한 주제를 읽어내는 일련의 과정은 다층적인 시선에 관한 흥미로운 경험으로 기억된다.

 

 

이번에 소개할 사공의 EP [Here, mr.reindeer]를 처음 받아 들었을 때의 인상은 그림 동화책의 그것과 굉장히 흡사하다. 2019년 데뷔 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며 누구보다 꾸준히 디스코그라피를 쌓아온 사공은 이미지적이면서도 문학적인 노랫말과 함께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 풍성한 악기 연주를 통해 서사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는 뮤지션이다. 그중에서도 작년 겨울에 발표한 [Here, mr.reindeer]는 서사적인 동시에 ‘동화적’이라고 까지 느껴지는 독특한 뉘앙스를 풍긴다.

 

[Here, mr.reindeer]는 “떠돌이 음악가 순록 아저씨를 받아준 마을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써온 곡들이 사후에 마을 사람들에 의해 발견된다.”라는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 음악을 향한 사공 본인의 자전적인 마음을 투영한 작품이다. 여기서 동화 같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의인화된 동물이 주인공으로 설정된 낭만적인 배경의 역할도 물론 있었지만, 앞 단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 배경을 중심으로 다층적인 감상을 제공하고 있는 스토리텔링의 힘이 크다.

 

여기서의 ‘다층적’이라는 표현은 물론 앞 단에서 언급한, ‘어른과 아이의 시선’이라는 단편적인 기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을 업으로 삼는 것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과 작품성에 대한 열망 등, 음악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볼 수밖에 없는 생각들에서 출발한 이번 작품은 그러한 내용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순록 아저씨라는 페르소나를 통해 오랜 시간 통과해왔을 감정의 맥락만을 공유한다. 음악을 ‘음악’이라 적지 않은 사공의 음악 이야기는, 그렇게 음악이자 사랑이며 인생일 수도 있는 각자의 소중한 무언가가 되어 저마다의 서사를 완성한다.

 

 

물론 이러한 메커니즘은 예술의 형태를 띠는 모든 작품의 기본적인 구조이지만, 이것을 두고 영화 같다거나 소설 같다는 표현 대신 굳이 ‘동화 같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음악을 ‘음악’이라 표현하지 않은 데에 있다. 본래의 의도를 그림 같은 이야기 뒷단에 심어놓은 덕에, 마치 순수한 시선으로 그림 동화책을 읽어내려가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음악을 감상할 기회가 주어지는 셈이다. 거기에 더해, 앨범 소개 글과 함께 한층 더 깊어진 이해를 통해 사공의 진솔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180도 다른 감상 또한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다층적인 분리가 전혀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음악의 힘 덕분이다.

 

내용적인 부분을 떠나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사공의 이번 작품은 그림 동화책의 매력을 떠올리게 만드는 요소들을 품고 있다. 연주곡으로 구성된 1, 3, 5번과 그 사이 사이에 배치된 가창 트랙이 만들어내는 흐름은 마치 글과 글 사이에 한 면 가득 펼쳐진 그림 페이지를 연상케 하며 진한 여운을 남긴다. 뿐만 아니라, 사공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연주 파트는 마치 우쿨렐레나 벤조 같은 이국의 악기를 떠올리게 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쓸쓸한 겨울 앨범”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지만, 전곡을 감상한 뒤에 느껴지는 따뜻함은 위에서 언급한 모든 내용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고유의 음악성 덕분일 것이다.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에서 상냥함 마저 느껴지는 사공의 사려 깊은 따뜻함은 그렇게 뜨겁지 않지만 뭉근한 울림으로 오래도록 이어진다. 2번 트랙 ‘겨울의 노래’ 속에서 “붉어진 볼을 두 손으로 녹여주”며 사랑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아이들처럼, 때로는 말없이 건네는 이야기의 힘이 우렁찬 아우성보다도 강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Editor / 월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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