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Offing [Journey]

발행일자 | 2018-11-15

 

“2017년 여름, 첫 싱글 ‘Birthday Harlem’을 시작으로 그녀가 사운드클라우드에 습작으로 올렸던 곡들은 하나둘 매무새를 정돈하고 정식으로 세상과 차근차근 만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2018년 봄까지, 약 일 년여의 기간 동안 두 개의 싱글과 두 개의 더블-싱글을 릴리즈하며 더딘 듯하지만 꾸준한 행보를 착실하게 이어왔다.”

 


 

Offing
Journey
2018.11.09.

 

2017년 어느 날 얘기다. 사무실에서 정신없이 업무를 쳐내고 있던 내 옆에서 정준구가 잔뜩 들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진짜 괜찮은 애(?)를 발견했다!”고. 그리고 이내 카톡으로 사운드클라우드 웹링크가 하나 날아왔고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오핑(Offing)’(이하 오핑)이란 이름을 알게 되었다.

 

 

과연.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처음 접한 오핑의 음악은 사뭇 흥미로웠다. 신스팝 같기도 하고, 기타팝 같기도 하고, 더러는 얼터너티브의 느낌도 있는, 아무튼 딱 사운드클라우드 시대의 음악이구나 싶은 그녀의 노래들은 분위기며 사운드며 저마다 결이 무척 다르면서도 묘하게 일관성이 있었는데 그건 이를테면 일종의 나른함? 혹은 권태로움? 콕 찝어 설명하긴 어렵지만 여하튼 어딘지 나사를 하나 탁 풀어놓은 듯한 분위기들이 있었다. 그녀 스스로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라고 해야 할까, 딱히 염세적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화할 마음 역시 딱히 없는, 다만 각박하지 않게 되도록 느슨하게 살고 싶다는 한량스러운(?) 태도 같은 것 말이다. 여기서 개인적인 얘길 조금 보태자면 딱 이런 지점이 내 구미에 맞기도 했는데 그녀의 음악이 취하는 태도가 평소 인생에 대한 내 태도(‘가능한 한 게으르게, 최대한 베짱이처럼 살고 싶다’라든가 ‘인생은 대체로 구린데 아주 가끔 괜찮은 날도 있어서 그 맛에 그럭저럭 죽지 않고 산다’와 같은)와 꽤나 일맥상통한다 느꼈던 탓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듀서형의 젊은 아티스트들을 주로 보유한-그리고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의 서브레이블인-‘피치스레이블’의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면서 오핑의 ‘공식적인’ 음악가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이 즈음에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그녀가 당시에 회사원이었다는 것, 그리고 정식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이 그저 대학 시절에 재미삼아 아이패드에 깔린 개러지밴드를 뚝딱거리며 놀던 것이 음악을 시작한 계기라는 것이다. 친구들과 낄낄대기 위해 장난스럽게 하던 ‘놀이’로서의 창작이 차츰 심화되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사실, 심지어 이렇게 좋은 멜로디와 노랫말을 쓰는 괜찮은 음악가로 발전했다는 사실은 솔직히 꽤나 놀랍다. 여하튼 2017년 여름, 첫 싱글 ‘Birthday Harlem’을 시작으로 그녀가 사운드클라우드에 습작으로 올렸던 곡들은 하나둘 매무새를 정돈하고 정식으로 세상과 차근차근 만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2018년 봄까지, 약 일 년여의 기간 동안 두 개의 싱글과 두 개의 더블-싱글을 릴리즈하며 더딘 듯하지만 꾸준한 행보를 착실하게 이어왔다.

 

 

마지막 싱글이었던 ‘Mushroom Wave’로부터 약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나 공개된 오핑의 첫 번째 EP [Journey] 역시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이미 공개했던 다섯 곡의 노래를 가다듬어 수록하고 있는데 그녀 특유의 매력이 여전하다. 일상의 어떤 풍경, 경험들이 모티브가 되어 빚어진 담백하지만 페이소스가 있는 노랫말, 소파에 푹 파묻혀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덤덤하게 뱉어내는 보컬, 귀에 잘 들어오는 멜로디를 낭만적으로 그리는 신스팝적인 사운드 등이 밸런스를 갖추며 ‘오핑’ 고유의 느슨한 바이브를 만들어낸다. 알 듯하면서도 도무지 모르겠는 것 투성이인 인생의 단면들과 그 속에 들어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는 ‘Summer Journey’를 시작으로 자신을 ‘물 속에 잘못 들어간 기름 한 방울’에 비유, 이른바 군중 속의 고독에 대해 이야기하는 ‘Ollie’, 유일하게 세션(드럼, 베이스)을 동원해 작업한 트랙으로 개인적 추억의 대상인 검정개 ‘레고’(혹은 레오)에 대해 노래하는 곡 ‘검은개’ 등 일상 속 작은 희비의 편린들을 이야기하는 이 EP속 음악들은 저마다 조금씩 결이 다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칠(chill)한 무드를 조성, 그 나름의 통일성을 획득한다. 그저 그녀 자신의 이야기인 그 노래들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 순간 ‘나 스스로의 이야기’로 다가오기도 하는데 사실 이런 느낌이야말로 종종 그 어떤 위로의 말들보다도 더 강력한 위로가 된다. 나와 비슷한 A가, B가, 혹은 E가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것 말이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소파에 푹 파묻혀 맥주라도 한 병 마시면서 들으면 좋을 음악, 오핑의 음악은 왠지 그런 음악이다.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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