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D’allant [PROLOGUE]

발행일자 | 2021-09-18

콘셉트가 설득력을 갖추고 대중에 의해 소구되려면 결국엔 결국엔 충실한 알맹이, 즉 잘 만들어진 콘텐츠가 동반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흥미로운 캐릭터와 세계관을 좋은 결과물들로 영리하게 풀어내고 있는 달란트의 지금까지의 행보는 충분히 훌륭하고 멋지게 느껴진다.

 


 

D’allant
PROLOGUE
2021.09.09

 

WWF(지금은 WWE) 프로레슬링을 꽤나 좋아했다. 저마다 뚜렷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들이 등장해 화려한 필살기를 뽐내며 좌충우돌 싸우는 이 엔터테인먼트는 언제나 ‘재미’ 그 자체였고 유년기에 처음 접한 이후 제법 나이를 먹을 때까지도 나에게 적잖은 즐거움을 선사했는데, 사실 어릴 떄부터 이미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그들의 싸움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진 캐릭터, 즉 ‘기믹’이라는 것을.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그토록 짜릿하고 흥미진진한데.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아마 이때부터 기믹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즐기는 법을 자연스레 체득해온 것이 아닐까? (지금도 내 명함에는 90년대를 대표하는 대스타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의 얼굴이 떡하니 박혀있다)

 

 

산뜻함과 그윽함을 두루 갖춘 매력적인 음색의 보컬리스트 ‘Daye’(다예), 프로듀서이자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인 다재다능한 ‘Pizzafairy’(피자페어리)로 구성된 그룹 ‘D’allant’(달란트)는 꽤나 흥미로운 기믹, 세계관을 전면에 내세워 리스너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일단 이들은 지구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우주선 안에서 깨어났으며 그 이전의 기억이 없어 자신들의 출생지도, 이전의 과거도 전혀 알 수 없다. 단지 우주정찰대로서 여러 행성을 여행하고 탐사하던 중 태양계에 진입하여 지구에 오게 되었고, 하필 우주선이 고장나는 바람에 현재 지구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피자페어리는 여러 인격체의 집합으로 필요에 따라 증식, 융합을 하는 일종의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힙합 듀오를 자처하지만 그간의 발표작들의 면면을 보면 사실 힙합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오히려 특정 장르의 문법에 국한됨 없이 알앤비, 뉴잭스윙, 펑크(funk),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장르의 요소들을 자유롭게 섭렵, 소재로 활용하여 우주적 콘셉트에 부합하는 흥미롭고도 감각적인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동시에 그에 걸맞게 근사한 비주얼, 패션을 동반해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MV] D’allant – SPACESHIP (feat. 윤담백)

 

최근에 발표된 EP [PROLOGUE]는 태양계 탐사를 콘셉트로 했던 이전 정규작 [COSMOS]의 프리퀄격 작품으로 우주선 안에서 처음 눈을 떠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는, ‘달란트’의 시작을 담은 작품이다. 올해 초에 리드-싱글로 선공개되었던 ‘SPACESHIP’은 경쾌한 그루브의 뉴잭스윙으로 다예의 산뜻한 팝보컬, 독특한 플로우로 분위기를 환기하는 윤담백의 랩이 밸런스 좋게 어우러져 기분 좋은 무드를 만들어낸다. 넘실대는 기타 리프와 신스 사운드, 차진 리듬워킹이 합을 이뤄 멋진 분위기를 연출하는 ‘SUN’은 과거 다프트펑크(Daft Punk)와 나일 로저스(Nile Rodgers)의 협연을 상기시키고, 이어지는 타이틀곡 ‘GRAVITY’는 우주 유영을 연상케 하는 몽환적인 사운드스케이프의 일렉트로닉 팝 넘버로 달란트의 컬러를 오롯이 맛볼 수 있는 곡이다. 마지막 트랙으로 배치된 ‘ORBIT’은 앞서 ‘SPACESHIP’과 마찬가지로 싱글로 선공개되었던 곡으로 동화적인 인트로를 지나 그윽한 재즈 발라드로 전환되어 약간의 의외성을 선사한다. 앞선 곡들과는 전혀 다른 음색과 창법으로 곡의 무드에 녹아드는 다예의 보컬에 감탄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김오키의 색소폰이 슬며시 내려앉으며 곡에 은은한 우수를 더한다.

 

기믹이 그저 기믹에 그치고 만다면 잠시나마 대중의 흥미를 끌지언정 궁극적으로 그들의 선택을 받지는 못 할 것이다. 콘셉트가 설득력을 갖추고 대중에 의해 소구되려면 결국엔 결국엔 충실한 알맹이, 즉 잘 만들어진 콘텐츠가 동반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흥미로운 캐릭터와 세계관을 좋은 결과물들로 영리하게 풀어내고 있는 달란트의 지금까지의 행보는 충분히 훌륭하고 멋지게 느껴진다. 이들의 우주 탐사가 – ‘스타트랙’에 버금가게 – 오래도록, 흥미진진하게 이어지길 바란다.

 

[Official Audio] D’allant – ORBIT (feat. 김오키)

 


Editor / 김설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