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Silly Silky [SIN데렐라]

 

‘SIN데렐라’는 자신이 동화와 느와르의 세계 양쪽을 같은 평면에 배치하며 두 장르소설을 하나로 모아왔다는 걸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매력적인 픽션이다.

 


 

Silly Silky
SIN데렐라
2022.05.18

 

트랙의 첫 구절, “자정에 갇혀버린 나의 달콥씁쓸한 악몽 (My bittersweet nightmare / Stuck on a midnight)”은 고전적인 잔혹동화이기보다, 오히려 현대풍의 느와르에 더 가깝게 들린다. 신데렐라에게 죄악(SIN)을 부여한 말장난 같은 이름의 화자가 후렴구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자신이 악당에 더 가깝다고(“Like a villain / More like a Villain”) 속삭이는 것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그럼에도, 실리 실키의 ‘SIN데렐라’는 화려한 동화 같은 이미지를 여전히 연상시키면서도 결국에 이를 스산한 흑백 풍의 악당 이야기로 풀어내야 한다. 물론 소리들만을 활용해서. 과연 어떻게?

 

두툼하고 뭉툭한 음색으로 웅웅거리는 베이스음이, 사운드스케이프에 축축하고 우중충한 대기처럼 내내 가라앉아있다. 이 소리는 반복적으로 강조점을 찍는 클랩이 자그맣게 딸깍거리는 하이햇과 함께 그루브를 맞추는 것처럼, 비트를 만드는데 일조하기보다는 저음부의 음계를 타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편이다. 짙은 연기처럼 형체가 확연하진 않으나 어떠한 색채만큼은 분명하게 떠도는 저음부 주위에 존재하는 몇 개의 소리들이, 이제 ‘SIN데렐라’의 보다 핵심적인 특징들이 된다. 비구름처럼 거의 시종일관 우르릉대는 베이스음이 브릿지에서 잠시 잦아들 때 등장하는 소리들을 들어보자: 먼 곳에서부터 가까워지듯, 중후한 브라스 리프가 로우파이한 질감에서부터 끌어올려져, 후렴구로 돌입할 때 구경 넓은 총을 쏘듯 음을 빵, 터뜨리며 들어온다. 빛이 바랜 듯한 음질로 제시되는 브라스의 음색은, 후렴의 높다란 곳 저편에서 파르르 떨리는 소리들과 합쳐져 존 배리(John Barry)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 사운드트랙이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듯 들려온다. 여기에 도입부부터 바로 튀어나와 기본적인 박자에 엇나가게 배치되는 소리들이, 샘플링된 것 같은 질감 속에서 나타나는 것도 함께 둘 수 있겠고 말이다. 트랙에 농후하게 깔린 베이스음에 숨어 암약하는 이 소리들, 그 중에서도 이 사운드가 전달되는 음질은 분명한 과거의 것으로 받아들여질 LP 같은 매체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SIN데렐라’의 옛 느와르 영화와 같은 분위기는, 무엇보다도 원본에서 영리하게 떼어온 조각들을 현대적인 품질로 다듬되 여전히 ‘과거’의 기운이 남아있도록 재구성하여 형성된다. 90-00년대의 여러 뛰어난 트립합 양식의 팝송들이 그랬듯이.

 

 

그렇지만, 다른 매개를 한 번 거쳐 온 듯 등장하는 소리는 낡은 매체에서 샘플링된 질감의 브라스 음뿐만이 아니다. 텁텁하게 울려 퍼지는 피아노 건반 소리와 반짝반짝 빛나듯 흩뿌려진 철금 소리가 넣어지기도 했으니까. 추적추적 낀 베이스음이 잠시 조용해진 새를 타고 햇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군데군데 틈을 타 들어오는 이런 소리들은 ‘SIN데렐라’가 오로지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의 트랙만이 되지 않도록, 잠시 잊힐 때마다 등장하면서 전체와 긴장감 있게 어우러진다. 특히나 두 번째 후렴에서 랩 구간으로 돌입할 때 이 소리들은 오르골이나 하프처럼 오르내리면서 “SIN”보다는 “데렐라”의 느낌을 양껏 더하기도 한다. 해당 랩 구간이 인상적인 조옮김과 함께 장면을 전환하는 것처럼 시곗바늘 소리에 이어 따르릉 울리는 경보벨 소리를 삽입하며 다시 한 번 느와르의 세계로 빠져들 때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이들 소리는 전체적인 풍경에 있어 대비 강한 흑백사진에 드문드문 나타나는 원색의 점 같은 역할을 할 테다. 그리고 이 자그마한 흔적들만으로도 ‘SIN데렐라’는 잠깐 동화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느와르의 음향적 세계를 출중히 만들어내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이 모든 동화-느와르 같은 조합이 정말로 먹혀들 수 있게 양쪽을 묶어주는 건 실리 실키의 목소리일 것이다. 속삭이듯 많은 숨을 넣어 부르는 편인 목소리는 각 세계에 알맞게 해석될 수 있겠고, 바로 그렇기에 양쪽 세계가 하나의 형상으로 겹쳐진 “SIN데렐라”라는 인물상과도 무척 어울릴 것이다. 이러한 목소리의 사용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 지근거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을 다양하게 처리해 여기저기에 배치한 구성 덕이기도 하다. 대부분 특정 노랫말을 더욱 조곤조곤 숙덕이듯이 삽입하거나, 한 줄기의 목소리를 미완의 코러스처럼 번뜩 스쳐지나가게 하며 화자의 존재는 좀 더 파편화되면서 흐릿해진다. 크고 넓은 소리들을 무겁게 깔아 전반적인 느와르 분위기를 내고, 이것에 잠시 생겨난 틈새에 동화 같은 작은 소리들을 집어넣으며, 목소리를 다양하게 깔아 양쪽을 묶어주는 이러한 접근은 랩 구간으로 슬슬 들어가는 브릿지 구간에서 하나로 모인다. 시커먼 베이스음이 사라진 텅 빈 공간에서 후렴구의 멜로디를 계속 흥얼거리며 시작되는 이 짧은 구간은, 이윽고 샘플링한 듯 잘라내진 보컬이 조각조각 흩날리는 것과 함께 두꺼운 소리들 이외의 다른 모든 자그마한 전자음을 콜라주처럼 함께 뿌려놓는다. 그 몇 초만큼이나, 동화 같은 볕이 회색빛 느와르 세계에 직접적으로 쬐이는 순간도 없을 것이며, ‘SIN데렐라’는 이런 복선 회수를 위해 그 때까지의 경로에 조금씩 동화의 단서를 심어놓았을지도 모른다.

 

다양하게 녹음되고 합성된 수많은 소리들을 하나의 층위에 구성하는 행위를 일종의 세계제작으로, 그렇기에 이렇게 들려오는 모든 음악을 하나의 픽션으로 둘 수 있다면, ‘SIN데렐라’라는 트랙은 자신이 동화와 느와르의 세계 양쪽을 같은 평면에 배치하며 두 가지 장르소설을 하나로 모아왔다는 걸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매력적인 픽션이다. “실리 실키”라는 이름 자체부터가 철자도 발음도 비슷하지만 그 자그마한 차이 덕에 의미가 확 달라지는 단어를 끌어왔듯이 말이다. 그렇게, 조금은 엉뚱하면서도 동시에 부드러운 비단 같은 사운드와 목소리, 그리고 이들로 제작된 동화-느와르 픽션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멋진 데뷔 싱글로서 실리 실키의 캐릭터를 분명하게 설정한다.

 


Editor / 나원영 (대중음악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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