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운 [earth]

 

[seoul cloud]라는 후일담에 대한 뒤늦은 재상상, 혹은 뒤늦은 재상상에 대한 후일담.

 


 

남경운
earth
2022.04.05

 

작년의 [seoul cloud]는 2000년대의 댄서블한 기타 팝에 대한 일종의 대체역사를 상정해 들어가는 음반이었다. 분화의 분기는 물론 첫 곡이었던 ‘빅토리아’의 직접인용에서 시작한다. 그 재료로 사용되었던 ‘꿈의 팝송’ 자체부터가 이미 두 개의 다른 버전으로 존재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동일하게 시작된 8마디의 도입부가 다른 멜로디로 갈라지는 광경은 당대의 쟁글거리는 기타 팝과 많이 다르지 않은 평행우주로 슬며시 옮겨가는 느낌을 줄 것이다. [seoul cloud]에서의 남경운은 특히나, 이석원이 매 음반마다의 방식으로 지향했던 “춤추는 게 가능한” 인디 록이 이능룡과 전대정의 힘을 빌려 기어이 실현된 이후에 주로 접속한다. ‘빅토리아’라는 가능세계에서는, [꿈의 팝송]의 (데이트리퍼 시절 류한길의 참여로 주조된) 풍부한 전자음이나 [순간을 믿어요]의 (이상문과 정무진 각각의 베이시스트가 큰 영향을 끼친) 다채로운 파워 팝 등이 보다 미니멀한 구성으로 완결된 버전의 ‘꿈의 팝송’이 존재한다. 그 상상에서는, 스튜디오식 정밀함을 위해 다수의 제작진과 엔지니어들이 갖은 공을 들여 완결된 사운드가 [seoul cloud]에선 나잠수의 믹싱·마스터링과 기타 연주로 참여한 파고(PAGO)의 소상규만을 제외하면 오로지 남경운의 솜씨로 제작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석원보다도 더 많은 통제권이 일임됐을지 모를) 이런 원맨밴드의 제작방식은 “대체역사”를 오롯이 홀로 상상해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며, 그것은 이번의 EP [earth]도 동일하게 추동한다. [seoul cloud]와 비슷하게, 음반은 ‘에코’의 첫 음으로 “나…” 한 마디를 툭 던지면서 시작되니까. 그렇지만 분화의 분기점은 훨씬 더 이르게 찾아오며, 그만큼 트랙은 평행우주의 이발관에서부터 더 멀어져간다. 감정적인 섬세함을 포착하려는 이석원식의 보컬에는 종종 가성의 코러스가 짙게 겹쳐 올라가고, 춤추기에 충실한 경쾌함을 무게감 있게 제시하는 전대정식 드럼의 치밀함은 더 여유롭게 풀리며, 특히나 꼼꼼하게 자글거리는 이능룡식의 전기기타 톤은 블루스의 더 찐득한 그루브로 교체된다. 그러한 남경운만의 음색이 오로지 “오마주보다 오히려 파스티슈에 가까”울만큼 “직접적인 인용으로 범벅 (정병욱, [음악취향 Y])”이지만은 아닌 이유가 아마 거기에 있을 테다. 2000년대 기타 팝의 대체역사를 홀로 재상상하는 과정에 블루스를 더하며, 남경운은 도리어 원본에서 부차적으로 파생되지만은 않은 존재가 된다. [seoul cloud]에서도 레퍼런스에 가장 충실할 ‘이발관’에서마저도 ‘아름다운 것’의 멜로디를 로우파이하게 삽입해 직접인용의 정점을 찍었다가, 상징적인 “그렇게 사라져 가는데 / 아무것도 할 수 없었네”에 다른 멜로디를 부여하며 새어나가니 말이다. 이러한 과정을 따라서, 남경운은 평행우주의 옆길을 따라 좀 더 다른 세계로 산들산들 옮겨간다.

 

 

[earth]를 여는 ‘에코’가 제목대로 [seoul cloud]로부터의 메아리를 타고 뒤늦은 고백의 서정과 함께 시작된다면, 이후에 찾아오는 곡들은 음반명과 곡명에서 넌지시 끌어낼 수 있을 전원풍의 분위기에 집중한다. 진하게 조율됐던 블루스에서 여유 있는 그루브가 따와져 어쿠스틱한 톤으로 이식되고, 남경운의 전기기타는 트랙마다의 맥락에 따라 블루지한 톤을 조절한다. 귀뚜라미를 비롯한 자연 소리를 배경에 깔아둔 ‘여름비’는 보사노바풍의 기타와 셰이커를 통해 그에 상응하는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며, 이에 따라 기타 솔로 또한 재지하게 맞춰져 편안한 음색에 일조한다. 한편 ‘구름’은 소상규의 나일론 기타와 오르내리는 코러스의 화성을 강조하며 [seoul cloud]의 가장 블루지했던 순간들을 더 가볍게 옮겨오는데, 여기에서의 기타 솔로는 슬라이드 주법을 통해 나른함을 최대치로 뽑아내 덧붙인다. 스윙 리듬의 잼을 선사하는 ‘별’을 지나 돌아온 보사노바 박자에 신스음의 흐름을 몇 줄기 올린 ‘바람’까지, 드럼은 이 네 곡 내내 브러시로 스치며 살랑거리는 리듬을 선사한다. [earth]의 중간을 통과하며, ‘에코’에 울려 퍼지던 [seoul cloud]의 잔향은 훨씬 차분하게 다듬어진 음색으로 재구성된다. 그에 따라 EP의 지반에서는 지난 음반의 ‘왕가위’처럼 직접 인용된 레퍼런스들이 대부분 떼어지고, 블루스가 박자 사이에서 빈틈을 만들듯 어쿠스틱한 여유로움이 들어온다.

 

일종의 가벼운 스케치와도 같던 앞선 트랙들보다 재생시간이 더 긴 뒤쪽의 두 트랙으로 가며, ‘유토피아’는 [earth]에서 그 제목처럼 [earth]의 풍경들을 이상적이게 합쳐낸다. 나일론 기타와 전기기타는 스테레오를 타고 양쪽에서 블루지한 프레이즈를 가볍게 튕기고, 드럼은 훨씬 더 든든한 무게감을 갖고 박 간의 거리를 좁히고 넓히며 반복되며, 댄서블함은 속도가 느려진 만큼 몸을 까닥일 수 있을 호흡으로 풀린다. 하지만, 그 안정감과 달리 전작에서 돋보였다던 일종의 “염세”가 문득 “언제라도 도망갈 수 있게 / 짐을 싸두자”는 도피주의로 꺾여 들어온다. [earth]에서 마련되었다고 느껴지던 이 땅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모든 게 싫증이 나면 / 정 없이 떠나”게 되는 곳인가 싶을 찰나, ‘내 안엔 내가 없었네’가 시작된다. “겨우 든 잠에서 깼네”라는 첫 마디가, 일장춘몽이라도 되는 듯 지금까지의 경로를 툭 끊는다. ‘에코’에서 “이곳에 처음 왔을 때”로 시작되었던 회고가 곧장 이어지기라도 한 듯 “모처럼 널 떠올렸네”하는 중얼거림이 되돌아온다. [earth]를 채운 나일론 기타나 드럼 브러시, 재지한 그루브, 심지어 블루지한 기타 톤까지 모조리 거둬진 소리들은 오직 “가장 보통”으로, 그 중에서도 “100년 동안의 진심”을 담은 듯 조율된 전기기타와 목소리만으로 공간을 소박히 채운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와서야 [earth]의 땅이 [seoul cloud]의 직접인용들이 남긴 울림 안쪽에 잠시 마련된 구운몽,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유토피아라도 된다는 의미인 걸까.

 

 

이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직간접적인 인용들의 영향력을 변주하는 것으로 구성된 그 몸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번 EP에서도 끊임없이 호명되는 “너”를 연모하는 개인이 아니라 상당한 비율로 인용된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이름과, 이제는 과거의 잔재라 판단되는 “모던 록”과 같은 장르착오적인 이름, 무엇보다 밴드와 장르 전체를 과다하게 대표하게 된 [가장 보통의 존재] 같은 이름으로 둬본다면? 그들이 2010년대 대부분 동안 존재하되 실재하지는 않다가, 너무 오래 기다린 마무리 이후 정말로 존재하지 않게 된 주제에도 존재감을 뽐냈던 걸 떠올려보면, 이 밴드가 동시기에 남긴 흔적들은 사뭇 복잡다단하다. 그 한가운데를 파고들어가면서 스스로를 형성한 남경운은 이들의 부재를 실감하는 동시에, 과거에 영영 고정된 그 존재를 되새기는 셈이다. 이 모든 “의외의 사실”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는 자조와, 과거를 재구성하며 “다시 그곳을 찾지만 / 그때 같을 순 없었”다는 허탈함과 함께.

 

그의 이름자를 그대로 뜻풀이한 음반명인 [seoul cloud]에는 어쨌든 그 말마따나 “원맨”으로서 남경운의 비율이 높았고, [earth] 또한 그러하다. 전작에서 확연히 거리를 두고 걸어가던 도중 불현듯 떠오른 이 “내 안엔 내가 없었네”라는 깨달음은, 줄곧 자기 자신으로만 이뤄진 줄 알았던 지반이 실은 “나”가 아닌 것들로 이뤄졌을지도 모른다는 무척이나 “섬뜩한 자각”이 된다. 그렇다면 “나”의 안쪽은 대체 무엇으로 이뤄진 것인가? 그에 대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한 사람을 구성하는 조각난 과거들을 되짚어 가보는 후일담, 역사를 다시 상상하는 일이 될 수밖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earth]는 [seoul cloud]라는 후일담에 대한 뒤늦은 재상상, 혹은 뒤늦은 재상상에 대한 후일담인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계속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러한 “예전”의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순간도 희미해져 갈 수 있지 않을까.

 


Editor / 나원영 (대중음악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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