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소리가 생생한 이미지가 되는 순간, 아티스트 archie 인터뷰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창작의 문을 연다. 그 계기는 다를지라도, 공통된 출발선은 창작을 향한 깊은 애정에 있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 archie는 그 ‘애정’이라는 출발선 위에서 나름대로의 흥미로운 이미지를 구현하는 인물 중 하나다. 단순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 머물지 않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리스너이자 날카로운 감각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서사무엘, 죠지, 담예, 최엘비 등 실력을 입증한 아티스트들과의 작업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유연하고도 깊은 리스닝 스펙트럼을 기반으로 각자만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의 협업을 선보여왔다.
동시에 그는 전자음악 레이블 ohhu를 통해 작년 초 첫 정규 앨범 [here, this is happening (Soundtrack)]을 발매하며 주목을 받았다. 해당 작품은 Visla Magazine, Mixmag 등 국내 음악 매체에 소개될 뿐만 아니라, 평론 웹진 온음에서 2024년 ‘올해의 루키’ 후보로 노미네이트되는 데에 기여한다. 아티스트로서의 점차 입지를 다지는 와중에 archie가 약 1년 만에 앰비언트 기반의 작품 [world in delay]을 발매한다. 음악을 듣는 순간 시각적인 이미지가 뚜렷하게 떠오르길 바란다는 의도가 전반에 묻어나는 이번 작품을 듣다 보면, 트랙 하나하나가 만들어내는 공기와 분위기에 이끌리는 듯하다.
비록 아직 발표한 앨범의 수는 많지는 않다. 하지만 음악을 향한 애정에서 출발해 프로듀서이자 아티스트, 그리고 이제는 라이브 퍼포머로서의 목표를 지닌 채 더욱 많은 이들과 접점을 만들어나가는 그의 행보는, 그가 만들어내는 작품 만큼이나 입체적이다. archie를 만나 신작을 중심으로, 장르와 음악에 관한 다양한 대화를 나눴다.
Q.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다양한 장르를 재료로 음악을 만들고 있는 프로듀서이자 아티스트 아치라고 합니다.
Q. 아치라고 읽는 게 맞는 거죠? 처음에 아키냐, 아치냐로 포크라노스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했거든요.
맞아요. 원래는 본명에서 말장난으로 계정을 만들 때 활용한 타이틀이었어요.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발음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라서 archie로 단순화 했어요. 영어 이름이지만 일본 이름 같기도 해서 archie 로 결정했습니다.
Q. 올해 초 반가운 EP 소식으로 돌아오셨어요. 발매 이후로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사실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발매라는 게 이미 만들어놓은 곡을 공개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최근에는 또 다른 작업을 위한 공부를 했어요. 원래도 앰비언트 장르를 좋아했는데, 직접 앰비언트 작품을 만들어보니까 흥미가 더 생기더라고요.
최근에는 모듈러*같은 장비를 활용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고, 또 라이브 형태로 앰비언트 음악을 구현할 방법이나 장르에 대한 깊은 지식에 대해 배우고 있어요.
*모듈러: 신디사이저 기능을 DIY로 하나하나 만들어서 패칭함으로써 자신만의 사운드를 만들 수 있는 장비.
Q. 안 그래도 이전에 진행한 RSS RADIO 인터뷰를 봤어요. 어릴 적부터 장르를 불문한 다양한 음악을 들으셨는데, 음악하기 전의 archie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만들고, 또 작업물로 칭찬을 받는 걸 좋아했어요. 부모님이 화가셨고, 어머님께서는 아직도 그림을 그리고 계셔서 그런 부분에 대한 영향도 컸던 것 같아요. 다만 그림을 직업으로 삼지는 말라고 말씀 주셔서 문과를 전공하긴 했어요. (웃음)
디깅은 어릴 때부터 항상 했어요. 중·고등학생 때 밴드 음악, R&B/Soul을 많이 들었고, 새로운 아티스트를 찾는 걸 좋아했어요. 디스코그래피를 다 들어보고, 미공개 곡도 찾아 듣고 자연스럽게 많이 들었어요.
Q. 이 얘기를 듣고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 하고 싶어졌어요. 인생 앨범 두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요.
진짜 어렵네요. 너무너무 어려운데요. (웃음) 일단은 My Bloody Valentine의 [Loveless]라는 앨범이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라이브를 2018년도 펜타포트에서 라이브로 처음 봤어요. 스테이지로 들어가니까 이어플러그를 주고, 앰프는 막 4~5개씩 있더라구요. (웃음) 이어폰으로 들을 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무대로 공연을 본 이후로 슈게이징에 엄청나게 빠져있었어요. 어떤 슈게이징 사운드를 들어도 넘을 수 없는 느낌이 있는 작품이라 1등 같습니다.
앰비언트 앨범도 짚고 싶은데, 이번 작업에도 많은 영향을 준 독일 아티스트 Ulla의 [Foam]입니다. 독일 쪽 앰비언트 음악은 형체가 불분명하고 멜로디가 덜한 게 제가 생각하는 특징인데, 이분의 음악은 형체가 있으면서도 일본의 앰비언트 스타일과는 다른 느낌이 있어요. 듣기에 귀가 살짝 아플 수 있는 소리도 섞여 있지만, 은근히 틀어놓기에 편하더라고요. 앨범 커버도 예쁘고.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생각났어요. Hiroshi Sato의 [Awakening]이라는 80년대 작품이에요. 원래 시티팝을 그렇게 즐겨듣는 편은 아닌데, 예쁜 사운드가 잘 섞여 있어요. 특별함이 느껴져서 아껴 듣는 작품입니다.
Q.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배경도 궁금합니다.
직업으로 삼진 않았지만, 예전부터 동네 친구들이랑 밴드를 결성하고, 홍대에서 가끔 공연도 했어요. 그러다 입대하면서 케이팝 산업군에서 일하는 분을 만나게 됐어요. 혼자 심심할 때 만들어놨던 음악을 인스타그램에 짧은 영상으로 종종 올렸는데, 그걸 보고 그분이 ‘가르쳐줄 테니까 함께 하지 않겠냐’ 제안해 주셨어요. 마침 직업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라 휴학하고 기본적인 부분을 배워가며 바로 작업했어요.
그런데 저한테 맞는 세계 같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곡을 작업하고, 작업물들을 당시에 활동 중이던 Crush, 서사무엘, 죠지 같은 분들께 보내고 그랬어요.
Q. 안 그래도 데모곡을 보낼 때 한 곡을 여러 아티스트에게 보낸 게 아니라, 아티스트의 색깔에 맞을 법한 맞춤형 데모곡들을 보냈다고 들었어요.
자기한테 걸맞지 않은 곡을 보내면 듣자마자 기분이 상할 거라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알앤비하시는 분에게 누가봐도 트랩 같은 곡을 보내면 이상하잖아요. 어차피 안 될 것 같고, 설령 제 곡을 쓰게 된다고 하더라도 아티스트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겠더라구요.
Q. 섬세한 감각 덕분인지 최엘비, 서사무엘, 담예, 죠지 등 여러 멋진 아티스트 분들과 함께 작업하셨어요. 정확히 어떤 앨범으로 처음 참여하였는지, 어떻게 연이 닿았는지도 궁금합니다.
아마 서사무엘 형 (Samuel Seo) EP [D I A L]의 ‘개나리’ 트랙일 텐데요. 서사무엘 형한테 데모곡을 보내드렸는데 완전 새벽 시간대에 답장이 왔었어요. 곡이 너무 좋다고, 그래서 보냈던 곡을 실제로 발매하게 됐어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싱숭생숭했어요. (웃음)
비슷한 시기에 죠지 형하고도 연락이 닿았어요. 어떤 분과 먼저 작업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그 시점부터 곡을 쌓다가 재작년에 1집 [FRR]으로 10곡 중의 7곡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런 일들을 시작으로 곡 작업도 하고, 앨범 단위 작업도 같이 진행하게 되고 그랬죠.
Q. 프로듀서로 멋진 이력을 쌓아가던 와중에 나의 작품을 만들겠다는 굳은 결심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협업을 하면 제가 만들 수 있는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 경험도 할 수 있고, 정말 배우는 게 많아요. 하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생겨요. 프로듀싱으로 참여한 곡은 준비 기간이 조금 긴 편이다 보니 발매가 늦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정작 발매할 때 곡에 대한 감흥은 거의 없어요. 만드는 시기와 발매하는 시기에는 음악적 스타일이나 가치관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제 기준으로는 예전의 작업물이니까, 경험이 축적된 시점에서는 아쉽게 느껴지더라고요. 그 갭 차이 때문에 지칠 때도 있고, 그런 점이 아쉬워서 표현하고 싶은 걸 표현하자는 마음에 첫 정규를 제작했어요. 마침 ohhu의 oddeen에게 먼저 연락이 왔고, 너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제대로 발매하게 됐어요.
Q. 첫 정규 발매 후 vislamag, record_mag, mixmag 등 여러 매체에서 샤라웃을 받았어요. 매거진 온음에서는 올해의 루키로 등극 되기도 했구요. 사람들의 반응은 좀 실감하셨나요?
감사하게도 ohhu 쪽에서 홍보를 많이 해주신 것 같아요. 그렇게 인지도 있는 사람이 아닌데, 많이 언급됐어요. 제 앨범을 만들 때는 오히려 욕심이 없다시피 만들거든요. 그런데 [here, this is happening (Soundtrack)]을 이번 앨범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첫 작품이라 많은 사람들이 유입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 한 것 같아요. 물론 스트레스받는 부분도 있었지만, 정작 이번 앨범은 그때보다 생각을 덜어내서 전체적으로는 빠르게 제작됐습니다.
Q. 비교적 빠르게 제작되었다는 EP [world in delay]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볼게요. 먼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world in delay]는 소리가 1차원적으로 그려지도록 만든 작품이에요. 어느 사람이 낯선 세계에 불시작해서 잠시 체류를 하면서 짧은 여정을 갖는데, 알고 보니 사실 내 마음속에 있던 상상을 인지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앨범입니다. 각 트랙을 통해 여정을 자세하게 보여주고, 최대한 시각적으로 연결되도록 작업했어요. 착륙 했는데 (‘the landing’) 그 공간에 안개가 껴있고 (‘by fog’), 바람이 불어오고 그림자가 방향을 알려주고. 강을 건너니 새벽이 되고, 빛이 들어오면서 천사를 만나고. 마지막은 핸드폰을 보고 있다가 깨어나는 구성인데, 각 트랙이 마음을 비유하는 내용이기도 해요.
Q. 안 그래도 앨범 소개글을 보면서 감정 상태에 귀 기울여가며 만든 작품 같았어요. 제작 당시에는 어떤 감정 상태였는지도 궁금합니다.
첫 정규를 내고 또 협업을 많이 했어요. 아직 나오지 않은 것도 많구요. 그런데 마찬가지로 발매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걸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당시 많이 했던 생각이 ‘모든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어도 전부 다른 삶을, 다른 세상을 사는 것 같다’였어요. 똑같은 걸 봐도 모두 다르게 생각하고. 평소 자주 붙어있는 사람끼리도 온전히 동일한 관점을 갖기 어렵잖아요. 그런 지점이 외로우면서도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world in delay’라는 타이틀로 작품을 내게 됐어요. 같은 공간에서 대화하더라도 전달되는 공기나 시간에 차이가 발생하는데, 그런 지연되는 부분들을 그려봤어요.
Q. 2번 트랙 “by fog”은 다린 님이 피처링으로 참여해주셨어요. 어쩌다 함께 작업하게 된 거예요?
다린님이랑은 원래 인스타그램 맞팔로우가 되어 있던 사이인데, 당시에 나중에 같이 작업을 하자고 말씀을 주셨었어요. 언젠가 피처링을 부탁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by fog”에서 3번 트랙까지 안개가 껴있다가 바람이 불어오면서 걷히는 표현을 사운드 뿐만 아니라 가사로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막상 제가 노래하지는 못하겠고. (웃음) 그러던 찰나에 다린 님이랑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서 연락을 드렸어요. 흔쾌히 응해주셔서 처음 만나 뵙고 작업하게 됐죠.
Q. 전혀 예상하지 못한 참신한 조합이었어요. 조심스럽지만 archie님의 음악적인 방향이나 혹은 프로듀싱해왔던 분들과 사뭇 다른 스타일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이에 관해서 염려되는 지점은 없었나요?
어느 정도 포크 요소가 들어있는 곡이라 딱히 걱정하진 않았어요. 곡을 제작할 때는 목소리가 얹어진 게 상상될 정도로 확신을 갖고 있었어요. 다린 님 커리어에 지장만 없다면 무방하겠다 싶었어요. 처음 만나서 앨범 데모를 순서대로 쭉 들려드리고, 담고 싶은 내용에 대해 3시간 동안 대화했어요. 그런데 다린 님이 앨범 전체적 스토리까지 전부 이해한 상태에서 가사를 적어주셨더라고요. 두 번째의 순서에 위치한 트랙이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만들어 주셨죠.
Q. archie, 다린 님의 협업이 참신하게 다가왔어요. 앞으로도 경계를 확장해서 협업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지도 궁금하고요.
저는 대중적인 음악도 좋아해요. 물론 대중적이라는 말의 기준이 각자마다 다르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음악도 많이 만들고 싶어요. 또 최근에는 전자음악이나 앰비언트 작업하시는 분들과도 협업하고 싶어요. 특정하게 떠오르는 인물이 명확한 건 아닌데, 다양하게 협업하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Q. 이번 앨범에서 특별히 아끼는 트랙이 있다면요?
우선 2번 트랙 “by fog” 너무 좋아하고요. 그리고 4번 트랙 “shadow helps”도 기분 좋게 들어요. 그림자가 도와준다는 뜻으로 만든 곡입니다. 빛은 사람들이 조작할 수 있는 요소잖아요. 플래시로 빛을 비추면서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 지표로 쓸 수 있고, 싸인으로 활용하면서 사람을 속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그림자는 빛이 있는 방향에 따라서 수동적으로 생기니까 오히려 정직한 존재죠. 그림자가 원래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뒤집고 싶었어요. 방향을 볼 때 빛을 보는 방법도 있지만, 그림자의 방향을 찾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어두운 게 아니라 도움이 되는 존재일 수도 있다는 식으로.
Q. 음악 외에도 영상, 이미지 등 시각 디자인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실제로 음악을 제작할 때 영향을 많이 미치기도 할까요?
이번 앨범 같은 경우에는 추상적으로 소재 정도만 떠올렸다면, 평소 작업을 할 때는 이미지를 많이 참고해요. 사진집 보는 걸 좋아해서 사진을 보다 멜로디를 떠올릴 때도 있고요. 이미지적인 부분에서 어울리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게 작업 방식 중 하나같아요.
Q. 정규 앨범보다 앰비언트 사운드에 더욱 집중한 작업물 같아요. 사운드 메이킹을 할 때 고려했던 지점이 궁금합니다.
1집을 제작할 때는 감정에 어울리는 소리를 담는 데에 집중했다면, 2집은 음악을 들으면 시각적으로 바로 떠올릴 수 있는 배경이나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게끔 만드는 데에 집중했어요. 5번 트랙 “fluss”를 들으면, 저는 그냥 물 같거든요. 각자가 상상하는 물의 모습은 다르더라도, 물 그 자체를 떠올릴 것 같았어요. 1번 트랙 “the landing” 같은 경우도 빠르게 추락하다가 갑자기 새로운 세계가 확 펼쳐지는 연출을 많이 신경 썼어요.
Q. 물론 많은 작업물을 발매하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archie의 음악은 실제로 앰비언트 스타일에 가깝습니다. 다양한 장르를 접해오셨을텐데, 어떻게 보면 음악씬에서 친숙하지 않을 법한 장르를 택한 이유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평소 여러 음악을 듣는 편이에요. 특히 최근에는 포크 음악이랑 클래식을 많이 들었어요. 그럼에도 이런 질문을 받은 까닭은, 사운드를 만들 때 앰비언트랑 일렉트로닉 요소를 항상 사용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특정 시그니처 사운드를 만들고 싶은 건 아니고, 매번 제 느낌이 날 법한 소리를 만드는 걸 즐겨왔어요. 어디서 들어본 친숙한 사운드가 아니라, 이 곡에서만 들을 수 있는 사운드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앰비언트를 택하게 된 것 같아요.
또 올타임 레전드라고 생각되는 아티스트들이 앰비언트나 일렉트로닉 음악을 많이 하는 것 같기도 해요. 류이치 사카모토나 호소노 하루미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분들도 매번 여러 장르를 시도하시지만, 한 번씩은 앰비언트를 거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취향적인 부분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Q. archie만의 느낌이 날 법한 소리라면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 청량하다표현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영롱하다고도 해주시는데, 근데 그건 잘 모르겠어요. (웃음) 약간 투명한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음악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컴프레서*를 많이 사용하지는 않아요. 소리가 많이 모이지 않더라도 그냥 퍼지도록 내버려두는 편이에요. 투명하다는 말이 가까운 것 같아요.
*컴프레서: 음악의 다이내믹 레인지를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음향 기기
Q. 물론 위와 같이 질문드렸지만, 이런 사운드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즐거울 작품입니다.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특별히 집중해 볼만한 포인트를 소개 부탁드립니다.
음악적인 부분보다는, 이어폰이나 헤드셋을 활용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스테레오 환경에서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앰비언트 기반의 음악이니까 음향 환경을 제대로 갖추진 못하더라도, 양쪽의 사운드가 다르게 나오는 스피커로 들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습니다.
Q. 다방면에서 한계 없는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앞으로도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나 작업물이 있을까요?
올해는 공연에 대한 생각도 있어요. 그래서 최근 ‘라이브를 위한 음악’에 대해 배우고 있어요. 혜화에 쿤스트카비넷이라는 공간의 운영자이자 앰비언트 음악가인 모하니 님의 음악을 정말 좋아해요. 모듈러같은 장비를 활용해서 라이브 퍼포먼스를 하는 게 너무 멋지더라고요. 살라만다 (salamanda)의 공연도 정말 멋있고, 작년 12월에 Ulla의 라이브를 보러간 적도 있어요. 앰비언트도 라이브로 구현할 때 충분히 그 매력이 드러나는 장르구나 싶었어요. 라이브와 곡 작업은 또 다른 개념이니까 연구가 많이 필요하겠더라고요.
Q. 예전에 장명선 X 피슈 님의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라이브로 볼 수 있으니까 신비롭고 재미있더라고요.
라이브를 진행할 때 좋은 점이 랜덤하게 벌어지는 상황들인 것 같아요. BPM을 꼭 맞추지 않아도 되는 장르다보니, 곡의 러닝타임이 더 길어지거나 짧아질 수 있고. 연주자의 의도나 현장 분위기에 맞게 그때그때와 다르게 연주할 수 있는 요소가 재미있어요. 의도와 다르게 악기가 튀더라도 실수의 미학도 생길 수 있고요. (웃음)
Q. 앰비언트 사운드에 관한 대화를 많이 하긴 했지만, 그밖에도 시도하고픈 사운드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프로듀싱했던 곡들에도 조금 묻어나긴 할텐데, 70~80년대 브라질 음악 장르 중 하나인 MPB도 좋아해요. 화성적으로 화려하면서도 한국의 정서랑 닮은 부분이 있어요. 실제로 옛날 한국 발라드 음악이 브라질 영향에 되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요소로 짜여진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Q.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거지만, 다양하게 음악을 디깅하는 부분들이 창작 활동과 경계를 확장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저는 확실히 무조건 많이 듣는 쪽에 가까워요. 그런데 최근엔 좋은 걸 여러 번 듣는 것도 의도적으로 노력해요. 요즘은 빠른 속도로 음악을 만들고 들을 수 있다 보니까 정작 한 작품에 집중하는 경우가 줄어들더라고요. 계속 새로운 걸 찾다 보면, 찾긴 찾는데 자주 듣진 않게 되고. 플레이리스트에 모아놓으면서도 정작 완성되면 그 플레이리스트를 안 듣고 그러거든요.
Q. 대화하면서 공감되는 지점들이 많았어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보고 계실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이번 앨범 [world in delay]가 대중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조금 딥한 부분도 있겠지만. 다른 앰비언트나 일렉트로닉 음악들을 접해보시면 그렇게 딥한 음악은 아니라고 생각될 만큼 신비로운 사운드를 내는 작품들이 많아요. 앰비언트를 요가할 때 듣는 음악 장르라 생각하는 분도 계신데, 사실 드론이라는 장르에 가까워요. 일본의 앰비언트 사운드는 되게 멜로디컬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도 많구요. 우리나라의 엠비언트 음악도 어느정도 큰 특징들이 만들어지는 날이 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이 씬이 조금씩이라도 커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