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어지는 길에 남긴 흔적, 안다영 EP [산산의 부스러기] 발매 기념 인터뷰
무언가를 오랫동안 꾸준히 이어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끊임없이 새로운 결과물을 선보여야 하는 창작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안다영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음악을 해왔지만, 음악을 만드는 순간만큼은 여전히 새롭다고 말한다.
오랜 활동 속에서 익숙해진 작업 방식이 때로는 강박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는 음악을 더 오래 곁에 두기 위해 무엇을 더할지보다 무엇을 덜어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EP [산산의 부스러기]는 세상의 기대를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며 완성한 작품이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남긴 작은 부스러기들은 하나의 길이 되고, 마침내 지도가 되었다.
작년 정규 2집 [WHERE IS MY FRIEND?] 이후, <Beautiful Mint Life>, <잔다리 페스타>, <영희 페스티벌> 등 다양한 무대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온 싱어송라이터 안다영이 선공개 싱글 ‘진실에게’와 ‘2km’를 연이어 발매하며 EP [산산의 부스러기]로 돌아왔다. 그를 만나 음악을 향한 변함없는 애정과 그 마음을 지켜가기 위해 달라진 선택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안녕하세요, 다영님.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뮤지션 안다영입니다!
Q. 야구를 굉장히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느 팀을 응원하고 계신가요?
저는 두산 베어스를 제일 좋아합니다. 요즘은… 가을야구 시즌이지만 LG에게 참패를 당하고 내년 시즌을 기약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어요. LG 팬인 친구와는 더 이상 겸상하지 않기로 했어요. (웃음) 파란의 시간이 있었죠.
Q. 야구는 어떻게 좋아하게 되셨어요?
어린 시절 부모님과 야구장에 간 기억은 있는데, 그게 쭉 이어지지는 않았어요. 그러다 20대 중반쯤 친구들한테 “그거 재밌냐?” 했더니 야구장에 같이 가자고 했어요. 친구들은 늘 야구를 봤거든요. 야구장에 도착해서 관중석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는데, 녹색의 그라운드가 서서히 보였어요. 그때의 기분이 너무나도 선명해요. 그 순간이 저를 지금까지 끌고 온 것 같아요. 같이 갔던 친구들이 모두 두산 베어스 팬이라 저도 자연스럽게 합류했죠.

Q. 야구 외에도 취미가 있으신가요?
애니메이션 보거나 게임해요. 그렇다고 애니메이션을 두루두루 깊이 아는 건 아니고,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말하는 작품이 한창 유행하면 잠깐 과몰입했다가 빠르게 빠져나오는 정도? 나중에 누군가와 대화하다 다시 떠오르면 “맞아, 그거 진짜 대단하긴 했지” 하는 정도죠. 게임은 닌텐도 하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저는 태생이 누워 있는 걸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서요. 바닥에 앉아 있거나 누워서 하는 모든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 자세로 게임을 하는 거죠.
Q.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선호하는 편이신가요?
재밌는 게,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제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는 시기에 MBTI 검사를 하면 ENTJ가 나와요. 그런데 한창 혼자 작업할 때는 INTP가 나오고요. 스위치가 꽤 확실한 편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작년 초쯤부터 좀 달라진 것 같고요. 그냥 존재하는 것 자체로는 혼자 있는 걸 훨씬 좋아해요. 아무것도 안 하고 싶으니까. 저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싶을 때가 많아요. (웃음)

Q. 그렇다면 주변 사람들이 바라보는 다영님의 모습은 어떤가요? 스스로 생각하는 모습과 차이가 있나요?
예전에는 불일치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요. 굉장히 다정할 때도 있지만 그만큼 냉정할 때도 있고, 착하기도 하지만 싸가지 없기도 해요.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성실히 하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저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성정이 얼추 읽혀있죠.
20대에는 이런 모순이 크게 다가왔어요. 원치 않는 친절을 베풀 때도 많았거든요. 누군가를 배려하는 게 제 안에서 높은 우선순위여서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쓰거나, 감당하고 싶지 않은 수준까지 누군가를 위해 소모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필요에 의해서든, 필요와 상관없이 제가 원해서 하는 선택을 고르려 해요. 그러다 보니 다정할 때도 있지만 반대로 너무나 매정하다고 보여질 때도 많아요.
Q. 때에 따라 스스로 선택한 방식으로 표현하게 되신 거군요.
그렇죠. 친절과 배려를 앞세워서 돌려 표현하면 되레 애매모호한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것도 배웠어요. 그래서 누군가를 찌르려는 의도 없이 있는 그대로 말했는데 그게 매정하게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아요. 가까운 지인들은 그 냉정함을 악의로 해석하진 않는 것 같아요. 물론 이건 저만의 생각이니까, 나중에 “너 그때 말한 거 나한텐 좀 상처였어”라고 메시지가 올 수도 있겠어요. 그럼 빌어야겠지만요. (웃음)

Q. 음악 외에는 요즘 어떤 것들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말 그대로 일상적인 것들이요. 인스타그램에서 오래 팔로우한 동물 보호 계정이 있는데, 오랫동안 입양되지 않은 강아지가 있어요. 아직 입양 공고가 올라오거든요. 응당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인데, 얼른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또 최근에는 운동을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됐어요. 이제는 선생님이 단백질을 챙겨 먹으라고 하시는데, 저는 닭고기도 좋아하지 않거든요. 평생 식품 뒷면의 성분 표를 살펴본 적이 없는데 이제는 단백질 함량을 확인하는 거예요. ‘왜 이것밖에 안 들어 있어? 한 번에 40% 정도는 먹고 싶은데!’ 싶고요. 그런데 단백질이 많은 음식은 왜 이렇게 맛이 없을까요? (웃음)
Q. 그래도 주어진 퀘스트를 깨고 싶다는 욕망이 있으시네요.
맞아요. 원래는 운동을 혐오했어요. 그런데 작업을 한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잖아요. 저는 여전히 체력을 더 태우고 싶은데 제 배터리 용량은 한계가 있고, 용량이 점점 줄어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런데 녹음을 하거나 작업을 더 해야 할 때,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지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어요. 지는 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래서 이 일을 오래 하려면 몸이 더 망가지기 전에 시간을 내서 운동해야 한다고 다짐했어요. 운동한 지 한 달 조금 넘었을 때, 덤벨을 들다가 너무 힘들어서 열받으니까 어느 순간 승부욕에 불이 켜지더라고요. ‘오케이, 너 죽었다. 내가 한번 보여준다.’ 단백질도 ‘그래, 까짓것 내가 먹어줄게’ 이러면서요. (웃음) 식단은 노력은 하는데 솔직히 단백질 먹느니 운동을 한 번 더 하는 게 나을 정도로 쉽지 않아요. 저도 운동이라는 퀘스트에 이렇게나 승부욕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어요.

Q. 요즘은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하고 지내세요? 다영님의 작품에는 그 시기의 생각들이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리스너분들은 음악이 발매되어야 제 소회를 경험하시겠지만, 저는 그보다 일찍 벗어나게 되잖아요. 발매되는 시점에는 이제 막 몰입을 시작한 사람이 아니라 이미 퇴장한 사람에 가까워요. 그래서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으면, 앨범의 메시지에 관한 이야기와는 무관하게도 내년 계획을 구상 중이에요.
그리고 다른 얘기지만, 앨범을 선보이는 요즘에는 스스로 되뇌는 말이 하나 있어요. 저는 일상에서 기력이 없는 상태로 있을 때가 대다수인데, 음악과 관련된 프로덕션을 짤 땐 경주마 같거든요. 그럴 때면 “나를 가로막을 게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해요. 이전 앨범들을 만들 때는 한 번도 떠오른 적이 없었는데, 이번 앨범은 어쩐지 그런 마음이 자주 들어요.
Q. 그렇다면 감정적으로 힘든 순간에는 주로 어떻게 해소하는 편이신가요? 이번 EP [산산의 부스러기]는 어떤 경험에서 출발한 앨범인지도 궁금합니다.
해소라… 사실 이 앨범은 명상에서 시작됐어요. 전작인 정규 2집은 제 예상보다 훨씬 오래 붙잡고 있었는데 2집을 마무리하던 당시 운동 선생님이 제가 뭔가에 몰입하거나 집중하면 숨을 안 쉰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 작업할 때 보니 자주 숨을 참고 있더라고요. 긴장 때문에 어깨가 올라가거나 결리고요. 언제부터 그런 버릇이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숨 쉬는 연습을 해야 할 지경까지 간 거예요.
강박과 불안감 때문에 생긴 버릇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숨 쉬는 연습을 하려고 명상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돌이켜보니 제가 숨을 멈춘다는 사실도, 몸이 아프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몸은 분명히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이리도 무감각해지는 게 과연 제가 원한 일일까 싶었어요. 제가 저 자신보다 세상을 더 뚜렷하게 바라보려 해서 그런 건 아닐까 생각했죠.
그래서 세상이 원할 법한 선택 대신에 뒤로 걷는 연습을 시작했어요. 단순한 선택으로는, 작업적으로 ’이렇게 해야 누군가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내려놓고 제가 원하는 게 뭔지 먼저 살펴봤죠. 그러다 보니 세상과 저 사이에 여백을 늘려가게 됐고요. 그 여정에서 지금의 곡들을 만났어요. 오롯이 저를 위한 선택으로 만든 곡들인 거죠. 상업적인 부분도 거의 고려하지 않았고요. 흔히 생각하는 타이틀곡의 성질과는 다르죠. 그래서 저다운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만든 노래들이 마치 제가 지나온 길에 떨어뜨려 놓은 부스러기 같았어요. 헨젤과 그레텔도 돌아올 길을 알기 위해 부스러기를 떨어뜨리잖아요. 언젠가 다시 세상과 가까워졌을 때도 제가 저라는 걸 인지하고 감각할 수 있도록 작은 부스러기들을 남긴 거죠. 그 부스러기들이 모여 하나의 길이 되고, 확장되어서 하나의 지도를 얻게 된 것 같아요. 부스러기라는 건 하찮고 쓸모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부스러기를 찾아가는 여정이 귀중했어요. 음악을 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런 순간이 필요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Q. 이번 앨범을 만드는 동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앨범 소개 글에서 언급하신 자연에서의 시간도 궁금해요.
앨범의 초반기에 ‘세상과 멀어진다’는 단언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정말 단순하게 현실의 환경과 멀어질 수 있는 선택으로 자연으로 향한 거였어요. 그런데 웃긴 건, 저는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 가도 흙밭을 밟는 것조차 싫어하는 아이였거든요. 자연 친화적인 성정이 전혀 아니었단 말이죠.
자연에서의 시간에서 새롭게 배운 게 있어요. 자연은 제가 가고 싶다고 무턱대고 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허락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요. 촬영 첫날에는 어깨 위로 엄지손만 한 거미가 올라왔는데 너무 무서운 거예요. 저는 매미도 정말 싫어하거든요. 홈레코딩을 하다가 매미 울음소리 때문에 녹음을 다시 한 적도 몇 번 있어서 매미에게 화가 나기도 했고요.
이런 사람이 자연에 갔으니, 쉽지 않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이들의 터전에 내가 침입을 한 것이고, 그러니 허락을 받아야 하고, 허락을 받았다면, 이곳에 뒤섞여 살아야 하는구나’ 싶더라고요. 둘째, 셋째 날에는 벌레가 몸에 닿든, 벌이 귓가에 맴돌든 무던해졌어요.
가기 전에는 단순히 자연에 몸을 두는 것만으로도 현실에서 느끼던 불쾌감을 떨칠 수 있으리라 착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아름답기만 한 공간이 아니라 제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도 깨닫는 공간이더라고요. 그 시간들로 인해서 이 앨범이 단순히 현실에서 멀어진 뒤,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어요. 어디에 도착했는지를 보여주는 앨범이 아니라, 그곳까지 걸어가는 여정과 지도를 얻는 과정 자체가 훨씬 중요했던 거죠.


Q. 촬영은 제주도에서 하셨나요?
맞아요. 한 번은 무더운 여름에, 또 한 번은 9월 말쯤 갔어요. 여름 촬영은 정말 힘들었어요. 폭염 속에서 야외 촬영을 했으니까요. 울창한 숲은 정글의 법칙 그 자체였어요. 지네가 돌아다니고, 뱀이 지나가기도 하고. 그런데 “다영님, 저기 앉아보세요” 하면 그 동선에 제가 가야 하는 거예요. 뱀이 지나갈 때는 이미 자연에 들어가려면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체득한 이후라 오히려 “우와!” 했어요. 돌아와서 친구들한테 뱀을 봤다고 이야기했는데 맹혈독을 가진 뱀이라는 거예요. 현지 분들도 그곳은 뱀이 나오는 장소이니 조심하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가을에 다시 갔을 때는 촬영이 고됐어도 마음은 훨씬 평안했어요. 자연은 허락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눈으로 바라볼 때는 아름다워도 실제로 몸을 담갔을 때는 훨씬 위험하고, 오히려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거든요. 너무나도 장엄해서요.
Q. 그렇게 힘든 촬영이었다니 새삼 놀랍네요. 완성된 영상이나 사진에서는 그런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느껴졌다면 너무 다행이에요. 저는 제가 힘든 걸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거든요. 제가 가진 페르소나를 이용해 또 다른 창작물이 나오는 건데, 제가 힘든 모습이 보이면 싫더라고요. 마음에 안 들어요.
Q. 비주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눠봤는데요. 이번 앨범의 사운드에서는 어떤 부분에 특별히 신경 쓰셨나요?
2집 [WHERE IS MY FRIEND?]는 어느 정도 개별적으로 설계한 부분이 있어요. 트랙별로 개성을 분명하게 전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아쉽다고 느껴요. 한 걸음 벗어나 넓은 시야로 봤을 때, 덜어낼 수 있었던 것들이 군더더기로 남은 느낌이 들어 다음엔 더 잘해보고 싶었어요.
이번 앨범은 악기 자체가 주인공이 되어 개성 있게 노래를 표현해 주고 있는 곡들이 많아요. 올해 초에 어떤 기타 하나를 구매했는데, 이 악기가 이 앨범을 표현하는 한 수단이 됐다고 말할 만큼 여러 트랙에 이 악기가 쓰였어요. 그런 면에서 모든 트랙이 일관성을 가지게 되고, 유기적인 앨범이 된 것 같아 이 부분에서는 작업자로서 만족스러워요.
Q. 이번 앨범을 작업하는 방식에서도 전작과 달라진 부분이 있었나요?
인공적인 감상을 남길만한 요소는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칼 같은 박자로 연주하지도 않았고, 그리드에 맞춘다거나 튠 등의 기술적인 공정을 거치지 않은 소스가 대부분이에요. 사소한 선택에 매달리면 결국에는 인위적이고 사람답지 않은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작업을 오래 하다 보면 모든 것을 그리드에 맞춰야 한다는 익숙함이 생길 때가 있죠. 그래서 익숙해진 작업 방식을 적용하지 않는 연습도 했던 것 같아요. 새로운 것을 늘리는 것보다 내가 가진 것 중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덜어낼지를 결정하는 일이 더 어려울 때가 있거든요.
이건 음악 작업뿐 아니라 인간적인 저에게도 필요한 챕터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 일을 사랑한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 오래 하려면 어떤 강박은 내려놓아야겠더라고요. 누군가에게는 강박이 아니라 당연한 작업 과정일 수도 있겠죠. 제게는 족쇄 같았어요. 족쇄를 차고 가면 오래 가지 못할 것 같았고요. 일상에서는 운동을 시작하는 선택을 했다면, 작업에서는 이런 것들을 내려놓는 선택을 한 거죠. 작업자의 사소한 선택이라 어쩌면 듣는 분들은 눈치채지 못하실 수도 있어요. (웃음)

Q.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처음 시작할 때, 대단한 걸 보여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때는 학생이었으니까 저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단순한 수단이 대회에 나가는 거였어요. 스스로의 레벨을 시험하고 싶어서라기보다 그냥 저를 표출하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이 있었죠. 상금 사냥꾼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웃음) 그저 동물적인 욕구로 시작한 것 같아요. 첫 앨범을 내고 밴드를 시작하게 됐고, 밴드 활동으로 인해서 지금 솔로 아티스트로서 제 모습도 존재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새로운 건 지금도 모든 게 그래요. 물론 앨범을 준비하면서 언제까지 무엇을 전달해야 하고, 어떤 일정에 맞춰야 하는지 익숙해지는 부분도 당연히 있죠. 하지만 음악을 만드는 순간까지 익숙해진 건 아니에요. 저 혼자 작업하는 트랙도 있지만 연주자들이 참여하거나, 완성된 소스들을 가지고 믹스해 주는 엔지니어 분들과 소통할 때가 있잖아요. 그분들이 제 작업 의도나 목적을 이해하고 본인만의 언어로 재해석해 주실 때 희열을 느껴요. 제가 열심히 만든 것이 다시 해체되는 순간. 그때가 정말 재밌어요.
물론 “이거는 무조건 이렇게 쳐야 해, 아니 이건 이렇게 가야 해” 독재 하다시피 요구하는 경우도 정말 많죠. 하지만 소리라는 건 누가 부르고 연주하냐에 따라서 달라지니까, 누군가 자신만의 해석을 제시하고, 노래의 내러티브를 통해 함께 공명하고 있다는 믿음이 생길 때가 있어요. 그게 제가 이 일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예요.
음악이라는 건 정말 신비로운 존재예요. 이렇게 완성된 음악을 가지고 무대에 올라갈 때도 그렇고요. 관객분들은 제가 어떤 시야로 보는지 모르실 테지만, 방구석에서 만든 음악이 세상 밖으로 튀어나와서 사람들을 마주하는 그 광경이 제게 ‘얼마든지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주기도 해요. 계속해서 익숙해지지 않을 일이기도 하고요.
Q. 어느덧 음악을 해온 지도 10년이 넘었는데요. 그동안 쌓인 시간과 경험을 스스로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고였죠. (웃음) 어떤 초반의 단계는 지난 것 같아요. 새로운 일을 마주하기보다 익숙한 일을 다시 해야 할 때도 있거든요. 그렇다고 ‘고였다’라는 말을 나쁜 뜻으로 쓰는 건 아니에요. 그만큼 연륜을 얻어가는 거죠.
얼마 전 한영애 선생님 공연 소식을 듣고 앨범을 다시 들어봤는데 제게는 아직 없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어요.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연륜 같은 것 말이에요.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라, 그동안 겪어온 경험과 삶에서 느낀 것들이 자연스럽게 축적되어야 묻어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제 주위에 비슷한 또래의 동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지금은 새로 활동을 시작한 분들도 많아졌죠. DM을 보내셔서 “데모인데 모니터해 주실 수 있나요?”라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어떤 분은 저를 ‘선배님’이라고 부르세요. 선배라니! 약간 어색해요.
Q. 요즘 새롭게 등장하는 뮤지션들 중 눈여겨보고 있는 팀이나 아티스트가 있나요?
이건 제 불찰인데 제가 정말 많이 모르는구나 싶어요. 지난여름 <영희 페스티벌>에 갔을 때도 이름은 들어봤지만, 음악은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팀들이 있더라고요. 성찰하는 계기가 됐어요.

Q. 앞으로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은 영역이 있나요? 꼭 음악적인 이야기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장르적으로 뭘 도전해보고 싶다는 건 지금의 저에겐 무의미해요. 예전에는 지난 앨범이 이랬으니, 이번에는 이런 장르로 가야겠다라던지와 같은 흐름의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그건 오래전에 뛰어넘어선 느낌이에요.
어떤 때에는 내러티브가 트랙의 장르보다 더 중요하기도 하고요. 장르 불문하고 제가 가진 색깔이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그 색을 무엇으로 표현해낼 것인가에 있어서 장르가 일종의 수단이 되기도 하겠죠. 여담인데, 스트리밍 사이트에 장르 카테고라이징이 너무 단편적일 때는 열받을 때도 있어요. ‘메탈이 아닌데 왜 메탈로 들어가야 되는 거야’하고요. (웃음)
이번 [산산의 부스러기]도 제 마음속에 있던 생각이 음악이 되어 밖으로 나오기까지 여러 번 깎이고 깎인 기분이에요. 처음 품은 귀중한 마음이 차차 희석되기도 하고, 어떤 순수함과는 거리가 생기는 부분도 있죠. 생각과 음악이 연결될 순 있지만 완벽히 똑같은 건 아니니까요. 다음 작업에서는 지금 남긴 부스러기들을 잘 쥐고, 다음 챕터로 건강하게 나아가고 싶어요. 장르적인 도전보다는 그 마음이 더 커요.
작업적으로 가볍게 생각해 둔 건 하나 있어요. 얼마 전에 믹스 엔지니어분이 ‘아틀라스’를 들으시고 “샘플링해 새 노래를 작업해 보면 어떻겠냐고”라고 하시더라고요. 제 이름으로 나오는 앨범에서 샘플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영상 음악 작업할 때는 더러 있었지만요. 아마 내년에는 이런저런 인풋을 쌓는 시간을 가지려 하는데, 그 와중에 제 곡을 샘플링해 보면 재밌겠다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어요.
Q. ‘아틀라스’를 듣고 힙합이나 게임 음악을 떠올리는 분들도 계셨다고요?
지인들이 그런 피드백을 많이 해줬어요. 흥미로운 건 그 피드백들이 실제로 제가 좋아하거나 지나온 것들과 연결된다는 점이에요. 힙합 아티스트분들께서 작업을 제안하시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때마다 ‘나와 어떤 면에서 교집합을 찾으시는 걸까?’를 생각하곤 했어요. 그리고 ‘아틀라스’ 같은 요소 때문이지 않을까 짐작해 보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게임은 그냥 제가 좋아하니까 그런 것 같고요.
Q. 발매 이후, 계획도 궁금해요. 공연이나 새로운 영상 등 준비 중인 것이 있을까요?
너무 먼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데요. (웃음) 다만 이번 작업을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개성을 가진 라이브클립 영상이 나올 예정인데 처음 만난 감독님과 함께했고요. 제게는 이렇게 사람들을 마주하며 무언가를 함께 만드는 것이 과정이 단순히 콘텐츠를 하나 내놓는 것 이상으로 여겨져요. 무언가를 같이 만든다는 건 그 사람의 심연을 들여다 보는 것과도 같고요. 잠시든 오랫동안이든 사람들과 공명하는 순간이 있었고, 결과물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게 기뻐요. 즐겁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12월 초에는 단독공연을 열어요. 새 앨범의 결에 맞추어서 셋리스트를 짜고 이리 저리 악기 구성을 바꿔보고 있는데, 어떤 소리들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되기도 하고요.

Q. 마지막으로 팬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새 앨범으로 인사를 드리게 됐는데, 때마다 팬분들께 고마운 마음이 앞서요. 기다리는 마음을 잘 느끼고 있기 때문에요. 무대에 설 때나 새 음악이 나올 때, 저와 관련한 소식이 있을 때마다 큰 사랑으로 반응해 주신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 마음을 더 오래 기다리는 마음으로만 두지 않고싶어 최선을 다해 나아가고 싶어요. 보내주시는 마음에 뒤지지 않는 속도로요. 덕분에 저는 감사하게 살고 있어요. 팬분들도 저 덕분에 아주 때때로, 잘 지낼 수 있는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너무 큰 영광이겠어요. 헷! 끝입니다!
Interview | 구은영
사진제공 | MAGIC STRAWBERRY SOU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