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보다 과정을, 작업 이전에 사람을 ㅡ 김아일 싱글 [Adrenaline] 발매 기념 인터뷰
‘협업’은 예상하지 못한 조합이 한데 모여 색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에 음악 애호가들에게 언제나 새롭고 반가운 소식이다. 24년도 상반기의 한국음악씬 (Scene)을 돌이켜보면, 올해는 유독 대규모의 다채로운 프로젝트가 많은 해였다. Team RM이 모여 만든 야심찬 화제작 <Right place, Wrong place>부터 개성 넘치는 8명의 아티스트가 만든 뮤지션 컬렉티브 ‘박쥐단지’, 그리고 20여 명의 각기 다른 아티스트가 협업한 5 트랙이 수록된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텔레포트 기획의 ‘도피’ 컴필레이션까지. 신선하면서도 굵직한 프로젝트가 연이어 공개되는 현상을 보며 아티스트들이 새로움과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가고 있음을 체감하는 요즘이다.
재미있고 창의적인 시도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플레이어는 김아일이다. 22년도 정규 2집 <some hearts are for two>를 발매하며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아티스트로 우뚝 선 김아일. <Right place, wrong place>, <BAT.APT>, 그리고 <도피 2024 컴필레이션>에서 각각 프로듀싱, 보컬과 작사로 참여하며 쉼 없이 달려온 그가 지난 6월에 개인 프로젝트 ‘Adrenaline’을 발매했다. 이번 싱글에서도 마찬가지로 protonebula, Jclef, 말든 (Mardln) 등 실력파 아티스트가 대거 참여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지치지 않고 변화무쌍한 시도를 행해온 그에게 ‘협업’을 대하는 관점은 어떻게 다를까. 예측 불허한 조합이 가져다주는 시너지는 아이러니하게도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말하는 그의 답변은 가장 근본적인 가치관으로 회귀하는 듯하다. ‘아티스트’ 이전에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는 답변은 간단명료했지만, 정신없이 바쁜 현대 사회에서는 놓치기 쉬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가치관이 아닐까. 김아일을 만나 이번 싱글 ‘Adreanaline’ 제작기와 그간의 협업에 관한 생각을 나눴다.
Q. 간단하게 아티스트 김아일 (Qim Isle) (이하 ‘김아일’)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항상 발전된 음악을 공유하려 노력하는 김아일입니다.
Q. 정규 2집 <some hearts are for two> 이후로 2024년까지 김아일 님만큼 바쁜 사람은 몇 없었을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주변에 보면 작업할 시간도 없이 바쁜 아티스트가 많더라구요. 그래도 저는 계속해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것 같아서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텔레포트 ‘도피’ 컴필레이션 작업을 마무리했는데, 정말 즐겁게 작업했어요. 디자인을 워낙 잘하는 분들이 기획한 프로젝트라 발매 후에도 흥미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더라구요.
RM <Right Place, Wrong Person> street banner
Q. 상반기 화제작 중 하나를 꼽자면, 김아일 님이 프로듀싱으로 참여한 RM의 <Right Place, Wrong Person>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TEAM RM에는 어떤 계기로 합류하게 되었나요?
RM 쪽으로부터 프로젝트 프로듀싱 제안을 받게 됐어요. 사실 케이팝 분야에서의 협업은 성격상 잘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어 줄곧 지양해왔어요. 그런데 Mokyo, Jclef, 실리카겔의 김한주 님과 같이 개인 프로젝트로도 활동하는 뮤지션들이 참여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외에도 평소에 좋아하던 뮤지션분들이 많이 참여한다는 소리를 들었고요. 평소 친분이 있는 아티스트를 제외하고는 다른 아티스트와 교류할 일이 드물잖아요. 그런데 다양한 분들과 협업하면서 각자가 음악을 접근하는 방식, (작업을 하면서) 중시여기는 포인트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재미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송 캠프를 참여하면서 예상외로 정말 즐겁게 작업했어요.
Q. 케이팝 씬 (Scene)을 넘어선 글로벌 스타 RM과의 협업은 어땠나요?
남준 (RM) 씨가 얼터너티브 앨범을 만들겠다는 비전이 확고했기 때문에, 작업에 있어서 불편한 점은 없었어요. 처음부터 디렉이 명확하고 깔끔했어요. 9번 트랙 “Around the world in a day” 같은 경우는 원래 정규 2집 <some hearts are for two>에 수록하려던 곡이었어요. (수록 예정이던) 기존 버전이랑 최종 버전이 굉장히 많이 변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구나’를 배운 것 같아요.
별개로 Moses Sumney나 RM과 작업할 수 있다는 점 자체가 감회가 남다르죠.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아티스트가 그 곡을 불러주니까 색다른 기분이 들었어요.
Q. RM 님은 BTS의 멤버이기도 하잖아요. 케이팝 씬에서 오래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정말 주요한 아티스트인데, 평소 협업과 스타일이 많이 달라서 우려되었던 점은 없나요?
남준 씨가 ‘케이팝 아티스트’라서 보다는, ‘입대를 앞둔 아티스트’라서 시간이 촉박하게 흘러간 부분은 있어요. 시간이 부족해서 더 많이 소통하지 못한 부분은 아쉽게 느껴지긴 해요.
제 개인 작업에서는 보통 실질적으로 작업에 임하는 기간보다 사전에 곡을 스케치하고 각자 간의 색을 보여주면서 합을 맞추는 기간이 더욱 오래 걸려요. 그런 점에 있어서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 차이점이라 한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이해도가 높고 포인트를 캐치하고 소화하는 속도가 빠르셔서 작업 자체가 오래걸리진 않았어요.
박쥐단지 프로필 이미지
Q. 이후 얼마 안 돼서 ‘박쥐단지’ 프로젝트로 돌아왔어요. TEAM RM의 참여진과 멤버들이 중복되기도 하는데요, 어떻게 성사된 조합인지 궁금해요.
예전에 한주, 도언이랑 같이 공연을 하다가, 괜찮은 크루가 있는데 들어올 마음이 있는지 물어보더라구요. 처음엔 크루 활동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긴 했는데, 그래도 궁금하긴 해서 어떤 곳인지 슬쩍 물어봤어요. (웃음) 그냥 무료 플러그인 추천 해주고, 음악이나 기술적인 부분을 서로 교류하는 단순한 채팅방이라는 식으로 얘기해 줬어요. 크루원이었던 이언 님같은 경우는, 서로 가능한 자주 보자고 말할 정도의 친분이 있는 분이기도 했고요. 그 시기 쯔음에 Jclef 님이랑 합류를 하게 됐어요.
그런데 들어가고 싶다고 말씀드리자마자 컴필레이션 앨범을 같이 만들자고 하셔서 당황하긴 했어요. (웃음) 결과적으로 Mesani, Cha, HWI와 같이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멋진 뮤지션들을 알게 돼서 정말 좋았지만요.
Q. 처음부터 철저하게 기획된 프로젝트가 아니라 느슨한 음악 모임이었던 거네요?
그런데 그들은 처음부터 (컴필레이션 앨범을 만들자는) 계획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직 멤버가 모이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웃음) 최근에 이언 님 인터뷰를 읽어보니까 예전부터 계획이 있으셨더라구요. 저는 처음엔 모르긴 했어요.
텔레포트 도피 2024 ‘까데호, Jcelf, 김아일 – Finding Home’ 트랙 이미지
Q. 근황에 대한 질문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웃음) 최근에는 텔레포트 컴필레이션 <도피>가 발매됐어요. 1번 트랙 ‘Finding Home’에서는 도피라는 주제를 어떻게 풀어냈나요?
주변에 면허가 없는 아티스트가 많은데, 다 같이 모여서 면허를 따자고 올 초에 계획한 적이 있어요. 그러다 다들 바쁘니까 연락이 안돼고, 등록하자고 모인 날에는 아무도 현장에 오지 않았고. 결국 Jclef 님이랑 저랑 두 사람만 면허를 따게 됐어요. 그런데 처음 운전하면, 시속 50~60km만 넘어가도 되게 무섭잖아요.
도피라는 주제를 처음 받았을 때, ‘과속이 아니더라도, 과속처럼 느껴지는 속도로 재빠르게 어딘가를 향하다 비극을 맞이하면 어떨까’와 같은 의견이 나왔어요. 모두가 자가를 원하는 세상이니, 우리가 향하는 목적지는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마음 편한 곳으로 떠나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됐어요.
Q. 지금까지 언급된 각각의 협업이 모두 색깔도, 작업 방식도 달랐을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달랐는지도 궁금해요.
박쥐단지 같은 경우, 함께 하는 뮤지션들이 각자만의 스타일이 있고 각각 색이 달라서 ‘너무 비슷한 무드로 녹여내면 안 된다’라는 부담감이 있긴 했어요. 크루원들이랑 다른 작업물이 나와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우연히 “BAT APT.”라는 정말 특이한 곡을 만났어요. 보통은 4분의 3박을 활용하는데, 그 트랙은 8분의 9박을 사용하면서 다른 박자가 섞이는 곡이었거든요. 보컬을 짜느라 힘들긴 했지만 그 트랙을 통해 실마리를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TEAM RM 같은 경우는 재미있게 작업하니까 뚝딱뚝딱 나온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오히려 편곡하는 과정이 조금 더 어렵지 않았나 생각이 들고요.
까데호 형들이랑 함께 작업한 도피 컴필레이션은 작업 과정 자체가 수월한 편이었어요. 이미 기획되어 있는 컴필레이션 앨범이니 라인, 가사만 쓰면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음악적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해주시니 너무 감사했던 것 같습니다.
Q. 모두 강도가 센 작업들인데, 실제로 각 프로젝트를 병행하기도 했나요?
각 프로젝트의 타임라인 자체가 겹치진 않았는데, 워낙 인원이 많은 프로젝트잖아요. 박쥐단지나 TEAM RM같은 경우는 약간 겹치는 시기가 생기긴 했어요.
원래는 올해 들어서면서 최대한 많은 작업물을 발매하자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올 여름까지 협업 프로젝트가 이어지면서 결국 개인 싱글 발매가 6월로 미뤄지긴 했어요. (웃음) 작업이 마무리되니까 좀 쉬어야겠더라구요. 한 달 정도 휴식 기간을 갖고 다시 작업에 착수하게 된 것 같아요.
Q. 올해 유독 많은 협업과 스케줄을 소화해야 해서 그랬을까요? 이번 싱글 <Adrenaline>은 정신없이 바쁜 김아일의 상태를 대변하는 곡처럼 들리기도 했어요.
새로 가사를 고친 부분이 있지만, <Adrenaline>은 거의 5년 전에 만들어놨던 곡이긴 해요. 요즘 너무 바쁜데 여기저기서 다른 얘기들이 들려오고. 예를 들어 누가 연예계 뉴스를 말해주면, ‘그만해’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그런 마음이 들 때 썼던 곡이긴 했는데, 낼지말지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봤었어요. Mokyo 나 말든 (Marldn)이가 곡이 좋다고 얘기해주더라고요. 그래서 발매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후보가 여러 곡 있긴 했는데, 지금 상황에서 이야기해보면 적합하겠다 싶었던 곡이 <Adrenaline> 이었어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당장 급박하게 바빴던 상황들이 와닿았던 것 같아요. 아드레날린에게 멈춰달라는 표현 방식이 재미있기도 했고요.
Q, 정규 발매 이후로 방향성에 변화가 있었다 볼 수 있을까요?
정규 발매 이후로 꽤 지쳐있었던 것 같아요. <some hearts are for two>가 평소 시도해 본 적 없거나 잘 모르는 분야를 공부해가면서 만든 앨범이었거든요. 준비할 것도 많고, 정신적으로 신경 써야 하는 부분도 많았어요. 개인적인 가사를 많이 싣다 보니 소모되는 부분이 분명 있었구요.
싱글부터는 어떻게 보면 (정규 작업에 대한) 반작용으로, 편하게 시도할 수 있는 작업물을 만들어야겠더라고요. 그간 작업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로 작업 속도가 더욱 빨라지기도 했고. 가벼운 시도를 던져보면서도 정규 2집의 작업물과 연장선에 놓여 있는 곡들을 발매하고픈 마음이에요. 중간중간 환기될 만한 작업물을 많이 했어야 하는데, 비중 있는 작업들에만 몰두하기 바빴어요. (웃음) 그래도 다른 사람들과 재미있게 협업을 하면서 꽤 해소됐어요.
Q. 이번 싱글은 ‘현대 사회’ 속에서 경험한 감각을 유독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아요. 정규 2집 이후로 김아일의 시선이 확장 내지는 변화되었다고 해석해 봐도 될까요?
시선에 대한 지점은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처음으로 듣는 리스너로 하여금, 이 곡이 얼마나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이 고민해야 하거든요. 리스너가 지속적으로 청취한다고 가정했을 때, 들으면 들을수록 감정의 깊이가 느껴지는 곡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최대한 직관적인 곡을 만들어야 하고요. 창작자와 청자 간의 밸런스나 감도를 찾아보려고 계속 노력하는데, 아무래도 사회적인 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다 보니 쉽지 않은 것 같긴 해요.
Q. 최근에는 유독 음악적 메시지와 템포, 사운드를 결합하는 흔적이 부쩍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Adrenaline>은 사운드적으로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오히려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믹싱 단계에서 많이 노력했어요. 아무래도 속도감 있는 곡이다 보니, 악기 본연 그대로의 소리를 내면 부담스럽거나 지저분해지는 부분이 있었어요. 최대한 무게감을 덜어내면서도 노이즈처럼 들리지 않도록 일정한 부분은 지키려고 했어요. 드럼 파트가 조금 더 중점적인 곡이어서 그로우가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만 덜어냈어요.
프로듀싱으로 함께 한 protonebula는 워낙 음악을 잘 하는 친구라 함께 하기로 한 순간부터 기뻤구요. protonebula로부터 작업을 이어받으면서 신경을 쓴 부분은 ‘가볍게 들어도 자주 찾을 수 있는 정도의 무게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 정도였던 것 같아요.
Q. protoneblua, Jclef님도 참여해주셨지만, TEAM RM에서 새롭게 만난 인연 ‘말든 (Marldn)’ 님도 참여하셨는데요. 또 다른 협업으로 이어지기까지의 배경을 듣고 싶어요.
말든 님은 (TEAM RM으로 송 캠프를 진행했던 당시에) 이틀 동안 팀으로 같이 작업하면서 알게 된 사이에요. “LOST!”를 같이 제작했구요. (앨범 수록곡으로) 채택은 안됐지만 그 밖에도 2곡 정도 만들었는데, 그 시간이 정말 즐거웠어요. 곡 퀄리티 자체도 훌륭했구요. 조만간 말든 씨의 개인 작업물로 세상에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이 친구가 정말 에너지도 넘치고, 재미있고 성품도 괜찮고, 연주도 잘하니까 앞으로도 같이 작업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곡이 전부 완성된 상태인데도 보컬을 넣고 싶어서 연락하게 됐어요. 스케줄이 워낙 바쁘니까 거절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가볍게 참여해 줄 수 있냐는 정도로만 물어봤는데, 당일날 ‘2시간 뒤에 갈게’라고 답이 온 거에요. 제가 작업하다 보니 가사도 영어라 이 친구가 예상한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거든요. (웃음) 게다가 작업실이 서울이 아니라 일산 쪽에 위치해서 가깝지도 않았는데, 빠르게 와줘서 너무 고마웠죠.
Q. 수차례 협업부터 <Adrenaline> 발매까지, 상반기 활동을 돌아볼 수 있는 질문도 드리고 싶습니다. 경계를 허무는 데에 있어서 능한 아티스트로서, 다수의 아티스트 내지는 관계자들과의 협업에서 가장 중시여기는 지점이 있어요?
최근 제가 만나는 풀 안에서는 ‘잘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은 즐거우니까 이 감정을 바탕으로 최대한 좋은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의식이 공유되는 것 같아서 신기하더라구요. 갑자기 몇 년 사이에 흐름이 바뀐 것 같아요. 어떤 분들에게는 이해되기 어려운 지점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음악을 즐겁게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편하고, 즐겁게 음악을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제가 막 음악을 시작하던 당시만 해도 (협업에 있어서는) 확실한 체계가 많이 부족했고, 각자가 전부 다른 아젠다를 갖고 임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음악을 하다 보면 생각해야 하는 부분들이 여럿 있잖아요. 물리적인 씬 (Scene) 내에서의 위치라든지. 음악 하는 입장에서도 어떤 프로젝트는 잘 될 수 있고, 덜 될 수도 있다 보니 가치가 평가될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예전에 비해서 그런 점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Q. 그럼 아일 님이 협업 아티스트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저는 작업할 때, 상대가 하고픈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내버려두는 편인데, 그래서 ‘상대의 작업물이 내가 하고픈 것들을 침해하는가, 안 하는가’를 제일 먼저 생각해보는 것 같아요. 협업을 제안할 때도 먼저 준비를 마친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정확한 무언가를 요구하는 상황이 드물지 않은 것 같아요. 본인이 더 생각하는 게 있어서 내가 기대한 역할보다, 혹은 기대 이상을 하거나 다른 역할을 하고 싶어 할 때 거절하고 싶다는 스탠스가 아니기도 하고요. 같이 작업하는 사람이니까 하고 싶은 걸 최대한 존중하고 싶고, 나중에 제가 역으로 제안을 받더라도 그렇게 진행하고 싶어요. ‘둘 다 원하는 대로 할 때, 서로의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침해하는 부분이 있는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신경 쓰는 게 있다면 그런 부분이죠.
그리고 ‘인간으로서 친밀감 있게 대화가 가능한가’도 중요해요. 예전엔 안 그랬는데, 지금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예전엔 그냥 음악만 잘하면 되지 싶었는데. 최근에는 그래도 함께 작업하는 사람이 우선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싶더라구요.
Q. 인간적인 측면을 고려한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업계 관계자를 만나거나 회사를 컨택하는 상황에서 ‘이 사람이랑 같이 일하면 재미있겠다’를 고려하기도 하잖아요. 포크라노스 같은 경우도 어떻게 성격 좋은 사람들만 뽑지 싶기도 하고요. 재미있는 브랜드라고 여겨지는 이유도 그런 맥락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환경이나 커뮤니티, 분위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Q. 작업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열려있으신데요. 그런데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었던 순간도 있지 않았나요.
있긴 하죠. 그러면 이제 3일 밤을 새우는 거죠. (웃음) 어떻게 말하면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면서 예쁘게 말을 전할 수 있을까 하면서 신경을 많이 쓰죠.
Q. 반대로 김아일만의 강점이 되는 부분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음악을 해석하는 능력이 준수한 것 같아요. 어떤 스타일의 비트를 받아도 그들이 기대하는 걸 잘 파악하고, 수행하려는 게 장점 아닐까 싶어요. 최대한 상대방에게 맞추려고 하는 편이에요. 못했다면 못했다고 솔직하게 얘기하고요. ‘잘 안 나올 것 같아요’라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요청을 한다면 최대한 열심히 하고. 그런 부분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Q. 과거 인터뷰에서 “음악과 예술에 대한 희미하지만 확고한 믿음의 토대를 공유”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접했어요. 아일 님이 생각하시기에, 현재의 음악씬에서 대다수의 아티스트나 관계자가 공유하는 공통된 방향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까 말씀드린 ‘즐거운 순간을 남기자’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결국에는 추억이 남고, 그 곡을 들었을 때 제작자나 관계자는 음악이 어떤지에 관해 비평해야 하기도 하지만. 완성 후에는 곡을 만드는 과정에서 무얼 했는지랑 연관 지어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곡들은 되게 잘 만들었음에도, 너무 힘들게 작업했던 기억 때문에 분명 듣기 어려울 수 있어요. 다른 뮤지션들이랑도 얘기할 때도, 재미있게 만드는 걸 중시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물론 이 곡이 좋은지 안 좋은지도 엄청 신경 쓰지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만들 때 즐거웠으니까 됐어’예요.
예전에 비해서 미디어 매체가 많이 다양해졌잖아요. 그래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어떤 사건이 이슈화되는 게 아니고, 세분화된 작은 커뮤니티 속에서 잦게 화제가 만들어지잖아요. 자고 일어나니까 갑자기 스타가 되는 케이스도 생기기도 하고. 미래를 예측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기도 했고. 내가 만든 음악에 있어서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지점들이 꽤 사라진 것 같기도 하고, 결국 내가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서 작업하자는 마음이 커지는 것 같아요.
Q. 협업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는데요. ‘Adrenaline’을 발매한 시점에서 현재 삶의 만족도는 어떻게 되시나요?
요즘은 꽤 즐겁게 살고 있어요. 2007년, 2008년 즈음에 피처링으로 처음 음악을 시작했는데, 당시를 제외하고는 매번 소속사가 있었거든요. 그런 시기들을 지나 최근에는 회사 없이 작업하고 있어요. 뭘 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을 최근 들어 가장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대로 낼 수 있다는 점이 어떻게 보면 즐겁게 와닿는 것 같아요.
소속사나 회사는 당연히 아티스트 메이킹이 필수적이니 ‘랩 앨범을 내야 한다’, ‘정규 2집을 만들었으니까 후속작을 만들어야 한다’와 같이 필수적인 계획들이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저 역시 동의하는 부분이고. 그런데 막상 나와보니까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점이 꽤 자유롭구요. 박쥐단지나 도피 컴필레이션처럼 개인 프로젝트와 연관된 프로젝트들이 같이 겹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을 제가 처리해야하다보니까 정말 바쁘긴 하지만, 그래도 즐거운 것 같아요.
Q. 물론 큰 의미가 있었지만,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계속해서 한계에 부딪혔을 법한 스케줄의 연속인데요. 정신없이 바빴던 김아일을 지금까지 지탱해 줄 수 있었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음악을 계속하고 있다’라는 감각 만으로 지탱이 돼요. 제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음악을 만들고 싶었던 기억밖에 없거든요. 음악도 하면서, 최근에는 온라인 게임 같은 것도 하고,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 이런 삶이 충분히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Q. 지금의 김아일이 미래의 김아일에게 조언을 건넨다면,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그거 좋으니까 제발 발매해’인 것 같아요. 듣다 보면 작업물이 별로 좋지 않게 다가와서 발매를 미루게 되더라고요. 이번 음악도 그렇고, 충분히 괜찮으니까 그냥 발매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Q. 그럴 땐 주변 동료로부터 용기를 얻고 발매하나요, 아니면 개인적인 결심이 설 때까지 기다려야하나요?
원래 2-3년 전까지만 해도 용기만으로는 발매를 안했거든요. 딱히 특별한 계기가 있던 건 아니지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자신에게 관대해진 점도 있는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혼자 하다 보니까 제가 놓치는 걸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더라구요.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개인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김아일의 행보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Adrenaline> 곡 소개란에는 “oddly drawn to …”의 첫번째 싱글이라 적혀있었는데요. 김아일의 개인 프로젝트에 관하여 리스너 분들께 약간의 힌트를 던져주실 수 있나요?
최근부터 준비하기 시작한 “oddly drawn to …”는 발매된 음원이 아닌데 평소에 작업한 곡이나, 정규 2집 이후로 랩을 덜하기로 마음을 먹은 부분의 연습 녹음 과정을 모아서 채널에 아키이빙하고자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예요. 올 초에 계획했지만 바빠서 못하다가 이번 싱글을 계기로 시작해 보자 마음을 먹었어요. 인스타그램 계정은 만들어졌지만 아직은 비공개 상태로 돌려놨구요. (웃음) 게시물이 어느 정도 쌓이면 오픈하게 될 것 같습니다.
Q. 하반기 아일님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까데호 분들이랑 합작 앨범을 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단계구요. 아직 구체적인 기획은 없지만, protonebula 님이랑 언젠가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얘기하는 중이구요.
개인 EP 같은 경우, 곡은 다 나왔어요. 주변에 Xin Seha (신세하)라는 친구가 연주자들이 연주로 참여하면 좋겠다는 조언을 줘서 함께할 사람들을 찾고 있는 상황이에요.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작업이 다 마무리되면 최대한 빠르게 내려고 하고 있어요.
Q.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을 무엇보다도 중시 여기는 아티스트인데요. 그런 점에서 올해 상반기는 자신의 모토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노력은 했다’고 말할 수는 있겠네요. 앞으로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시간적으로나 심적으로 여유가 생긴다면 더욱 노력해 보고 싶어요. 지금은 체력이 받쳐주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충분한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인터뷰 소감을 들으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자세하게 꼼꼼하게 준비해서 질문해 주셔서 감사드리구요. 너무 편하게 해주셔서 해도 되는지 안되는지 모르겠는 말들까지 했는데. (웃음) 앞으로도 발매 이슈가 있을 때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Interview | 박현영
사진제공 | 김아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