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흔들림과 발 맞춰 걷기, 다린 4번째 EP [serenade] 발매 기념 인터뷰
우리는 모두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저마다의 상황에서 서로 다른 수많은 ‘나’를 마주하곤 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분주한 마음들 간의 마찰음은 때때로 어느 한 곳으로도 쉬이 걸음 하지 못 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이루는 조각들이기에 무엇 하나라도 입을 다물고 침묵한다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다섯 가지 음악과 함께 돌아온 다린의 이야기 속에는 이렇게 아우성치는 ‘나’와의 관계에서 흔들리는 모두를 위한 마음이 녹아있다. 흔들림을 억세게 쥐어 멈추려 하기보다 흔들림 그 자체를 감싸안아 수많은 ‘나’의 풍성한 표정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고자 하는 이번 앨범은 그간에 보여주었던 낯익은 부드러움과 따뜻함, 그리고 그 사이에서 싹틔워진 싱그러운 마음의 변화를 통해 한결 편안해진 음악으로 듣는 이들의 마음의 문을 똑똑 두드린다.
정답이 없는 삶의 한중간에서 우리는 언제나 흔들릴 수밖에 없기에, 때로는 힘을 빼고 하늘하늘 자유로이 나부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초여름의 뜨거움이 무르익기 시작하던 6월 어느 날, 언젠가 되고 싶다던 ‘유연한 사람’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 다린과 함께 이번 앨범에 대한 깊고 넓은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Q. [serenade]가 발매되고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흘렀어요. 그사이에 어떻게 지내고 계셨나요?
밀린 약속들을 하나씩 하나씩 소화하면서 축하도 받고 응원도 받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도 하면서 건강하게 쉬고 있었어요.
Q. 사실 발매 이후에도 공연이나 피지컬 음반 제작 같은 것들이 남아있잖아요. 다시 슬슬 바빠지실 것 같아요.
네, 그래서 뭔가 후련하게 내려놓은 상태는 아니에요. 오히려 발매한 날에도 회사 분들이랑 단체 톡에서 “이제 시작이네요. 저희 더 파이팅 해봐요.”라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요, (웃음) 도착지가 아닌 출발점에 있는 것 같아요.
Q. 발매 당일에 맞춰서 음감회도 진행하셨어요. 그 자리의 호스트이기도 하셨던 다린님의 후기도 궁금하더라고요.
우선 SNS 라이브 방송 같은 채널로 팬분들이랑 이야기 나눈 적은 있는데 이렇게 MC가 없는 토크쇼를 직접 혼자서 진행해 본 건 또 처음이라 되게 떨렸어요. 그런데 떨렸던 것에 비해 편하게 얘기를 잘했던 것 같아요. 이야기하면서도 그날 다 하지 못한 얘기가 많아서 ‘내가 할 말이 참 많았구나’ 싶었어요. 실제로 한 분 한 분 만나서 꽃 한 송이씩 드릴 수 있었던 것도 로맨틱해서 좋았고 나누고 싶었던 게 진짜 많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Q. 현장에 있던 저도 따끈따끈한 신곡을 함께 듣고 이야기 나누던 분위기가 기억에 남아요. 그런데 정말 이야기를 막힘없이 술술 잘하셔서 떨리신다는 느낌이 하나도 안 들더라고요.
뭔가 떨리지만 빠르게 안정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었던 이유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Q. 그런 변화들이 오랜만에 EP 단위로 작업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와도 관련이 있을까요?
맞아요. 지난 세 번째 EP를 발매한 이후에도 굉장히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 시간이 이런 부분들을 훈련하는 시기였거든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기분 좋음’이라는 것을 나눌 수 있을까? 내가 사람들과 ‘기분 좋음’을 나눌 때 나는 나의 어떤 부분을 사용해야 할까? 그 ‘기분 좋음’이라는 것을 통해 맨 처음 연결이 되지 않으면 그 안에 있는 이야기까지는 잘 안 들여다보게 되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겉에서부터 천천히 기분 좋게 스며들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지난 3년을 보냈어요. 이제는 어느 정도 일상에서도, 음악적으로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EP로 엮어낼 용기가 생겼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사이에 제가 새 소속사에 들어가면서 팀이 생겼다는 점이 크기도 해요. 예를 들어 디자인 같은 부분도 이전에는 혼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보니까 힘을 많이 얻었어요.
Q. 말씀을 듣고 보니 앨범 커버를 비롯해서 전체적인 비주얼 분위기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자수 컨셉의 디자인은 평소 다린님의 취미이기도 한 뜨개질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이런 부분들도 팀원분들과 함께 발전시키신 건가요?
네 맞아요. 아무래도 함께 있는 시간도 많고 대화도 많이 나누면서 제 디스코그라피나 취향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해주셨어요. 다린이라는 사람을 놓고 봤을 때 느껴지는 굉장히 푹신하고 말랑하고 다정한 분위기와, 또 팬분들이 알고 계시듯이 저와 밀접한 뜨개질이라는 요소를 전부 참고해서 처음 앨범 컨셉에 대해 제안을 해주셨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웃음) 그래서 의심 없이 “이거네요.” 하면서 뛰어들었죠. 그 과정에서 A&R팀의 공이 정말 컸습니다. (웃음) 재미있는 점은, 장미나 자수라는 소재도 그렇고 세레나데라는 컨셉의 로맨틱한 성질도 그렇고 자연스럽게 제 안에서부터 나온 요소들이 마침 요즘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들과 좋은 타이밍으로 맞물리게 되었는데 이것도 나름 기분 좋은 일이었어요.
Q. 앞서 말씀하신 ‘기분 좋음’과도 연결되는 내용인 것 같아요. 메시지적으로 아무리 탄탄하더라도 결국 작품의 첫인상이 사람의 마음을 여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치곤 하니까요. 음악 외적인 부분들까지 하나로 연결되면서 이번 앨범만의 특색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담이지만 혹시 뜨개질 브이로그는 또 업로드하실 계획이 있나요? (웃음)
한 번 올리고 말았는데 심지어 다 뜬 것도 안 보여드려서. (웃음) 그때 영상에서 만들던 것은 지금 인이어 주머니로 쓰고 있어요. 근데 이 주머니를 가지고 다니니까 팬분들이 인이어 주머니로 쓰라고 작은 주머니들을 선물로 주시는 경우가 많아서 이제 이것저것 넣고 다니곤 합니다.
Q. 앨범 작업을 시작하셨던 시점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 나누어 볼게요. 모든 수록곡 작업을 올해초에 처음 시작하셨다고 들었는데 전부 새롭게 쓰인 곡으로 구성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처음부터 이번 앨범만을 위한 곡들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사실 써놓은 곡을 전부 털면 정규가 두 장 넘게 나오거든요. (웃음) 그런데 그것들은 다 지나간 마음들이잖아요. 졸업한 마음들은 남겨두고 ‘지금’을 담고 싶다는 생각으로 곡을 쓰기 시작했는데 2주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Q. 특히나 이번 앨범은 2번 트랙 ‘너에게’를 중심으로 다린님 스스로가 “너”라는 대상으로 등장하는 구절이 많아요. ‘지금’을 담고 싶으셨다는 말씀처럼 ‘지금의 나’의 모습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들인 만큼 평소에도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시는 편인지 궁금해요.
저는 사실 제가 제일 궁금하거든요. 사람들이 다 그러지 않을까요? 평생 자기 자신이 제일 궁금할 것 같아요. 제일 가까운데 제일 멀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나한테 마음을 숨기거나 혹은 알아도 모른 척할 때도 많고요. 이번 앨범은, 특히 ‘너에게’라는 트랙은 직접적으로 나를 타자화하고 있는 곡인데 저한테는 그게 일상이에요. 저는 제가 스스로를 잘 못 다룬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얼마나 약한 사람인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걸 감추는 것도 나고 꺼내 보이는 것도 나니까 걔네들(서로 다른 나)끼리 서로 친해지지 않고 내가 나를 버티는 과정이 저는 좀 힘들었어요. ‘부족한 나’, ‘쫓아오지 못하는 나’, ‘제일 약한 모습의 나’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Q. 결국 기다리는 것도, 쫓아가는 것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나’인 거네요.
맞아요. 그래서 그 “나와의 싸움에서 나는 늘 지지만 이긴다”라는 유명한 말도 있잖아요. 그것처럼 너무 수많은 내가 있으니까 평소에도 계속 그렇게 저를 타자화하는 식으로 바라보는 것 같아요. 그런데 또 한편으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를 기다려주기 위해서 한순간 한순간 꾹꾹 눌러서 지내곤 하거든요.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생각하는 방식이 재밌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흥미로운 과정이 되어가면서부터 이번 앨범에 대한 생각들도 퐁퐁퐁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덕분에 ‘일하는 나’와 ‘일상의 나’가 더 확실히 분리되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차츰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전부다 ‘나’이고 그 모습들이 전부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 결국 거짓말은 없는 거예요.
Q. 제가 최근에 인터넷에서 본 이미지가 있는데 게임 ‘동물의 숲’의 한 장면이거든요. 거기서 어떤 캐릭터가 “사랑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지 않은 채로 두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는데 방금 말씀하신 이야기에 이어서 서로 다른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아우르고 계신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하네요.
그쵸. 마침 오늘 블로그에 지속성에 관한 일기를 하나 올렸는데 지속이라는 것은 결국 관성을 거스르려는 힘으로 유지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계절에 따라 줄어들고 늘어나는 나무의 모양을 유지하려고 고정해 놓으려면 힘이 필요하듯이. 그런데 돌아보면 오히려 힘을 주지 않는 것, 그러니까 자연스러운 것 자체가 가장 강력한 힘일 때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면에서는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말고 할 수 없는 것을 그대로 두는 것까지 힘인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Q. 앞선 질문에서 여쭤본 ‘나’ 뿐만 아니라 다린님 음악에서 자주 등장하는 ‘새’라는 키워드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요. ‘새’, ‘큰새’라는 곡에 이어 이번 앨범 마지막 트랙 ‘별’도 새에서 영감을 얻으신 곡이라고 들었어요.
우선 새를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하늘이라는 공간은 우리한테 신비로울 수밖에 없잖아요. 내가 있는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 존재한다는 점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계속해서 상상해 보게 만드는 감각들이 되게 좋아요.
Q. 그런데 이번 ‘별’ 곡 소개를 보면 날고 있는 새가 아니라 “비상하기 위해 땅에 발을 딛는 새의 모습”을 생각하며 만드셨다는 구절이 눈에 띄어요.
맞아요. 결국에는 얘네가 평생 날면서만 살 수는 없잖아요.
Q. 그쵸. 새들도 잠은 자야 하니까. (웃음)
근데 생각해 보니까 제가 날고 있는 새의 모습만 계속해서 그리고 있는 거예요. 사냥도 해야 하고 잠도 자야 하고 심지어 제 손에 (타투에) 있는 새들도 다 앉아 있거든요. (웃음) 새도 앉을 수 있고 땅에 발을 딛을 수 있다는 생각을 여태까지 몰랐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도 무언가를 매번 해내는 사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별’이라는 곡에 많이 담기게 된 것 같아요.
Q. 혹시 이후에도 ‘새’ 시리즈가 이어질까요?
어떻게 들어가게 될까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웃음)
Q. 앨범을 이루는 키워드에 대한 이야기를 쭉 들으니까 전체적인 맥락이 느껴져서 또 새로워요. 뿐만 아니라 이번에 앨범 전곡이 수록된 리릭 비디오도 함께 공개하셨는데 서로 다른 공간에 혼자 있는 다린님의 모습들이 인상적인 영상이에요. 제작하시면서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을까요?
비디오를 만들 때 가장 지키고 싶었던 컨셉은 화면비나 동선이 전부 달라지지만 그사이에 변하지 않는 어떤 라인 하나가 다섯 곡을 관통했으면 좋겠다는 구성이었어요. 물론 촬영 현장 상황에 따라 변수가 생기긴 했지만 곡별로 워낙 성격이 다르다 보니 연결감을 주는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너무 좋아서 4번 곡을 제외한 영상에서 같은 인물이 계속 등장하는 식으로 촬영했어요.
Q. 서로 다른 장면 사이의 연결점이 결국 다린님이 되신 거네요.
다린: 네 맞아요.
Q. 촬영, 편집도 전부 재뉴어리(현 소속사)에서 진행하신 건가요?
재뉴어리 스태프분들과 친구들까지 함께 도와서 촬영하고 편집도 전부 다 같이 했어요. 그래서 미술적인 부분도 그렇고 너무 편한 분들과 편한 환경에서 작업해서 잘 완성됐던 것 같아요. 사실 녹음 때까지만 긴장을 하고 믹스부터는 EP를 내는데 마음이 이렇게 편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부담이 없고 그냥 너무 좋은 거예요.
Q. 유독 이번 앨범에 대한 다린님의 감상이 남달랐던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저는 제 과거의 작품들을 보는 게 버거울 때가 있는데 그게 단순히 실력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당시의 나를 인정하기 어려웠어요. 자꾸만 지난 앨범들이 변명 같이 들리고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 앨범을 만들고 보니 결국 그 흔들리는 마음에 대해서 제가 저한테 쓴 이야기더라고요. 결과적으로 발매 날에 앨범을 들었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그때 택시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앨범을 들으면서 도움 준 사람들한테 연락을 돌리다가 울었어요.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줬다고 생각했거든요. 왜냐면 내가 나를 바라보는 나도 나인데 그들이 바라보는 나도 나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도움을 받는 건 굉장히 멋진 일이고 사람을 풍성하게 만드는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 앨범은 스스로에게 설득력을 가지는 그런 앨범이었던 것 같아요.
Q. 무엇보다 이번 앨범은 음악 내외적으로 많은 참여진분들이 함께 해주신 앨범이다 보니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3번 트랙을 제외하고는 전부 다른 편곡자분들과의 호흡으로 완성되었어요.
맨 처음 EP를 만들기로 마음먹어도 시작은 두렵잖아요. 아무래도 규모 있는 기획은 오랜만이기도 하고 몸집이 커진 만큼 필요한 것도 많으니까 내가 감히 의지해도 되는 사람들의 얼굴이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Q. 감히 의지해도 된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에요.
내가 “나 좀 도워줘”라고 해도 되는 사람들이 먼저 떠올랐어요. 제 밴드원으로 오래 같이 해왔던 기타리스트 강건후랑 사공 오빠도 그랬고 피아니스트 황순규, 그리고 박규태라는 친구한테도 하나하나 도움을 청했죠. 근데 처음에는 도움을 구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 부끄러웠어요.
Q. 이전에도 여러 번 함께 작업하셨던 분들인데도 느낌이 다르셨나 보네요?
맞아요. 느낌이 되게 달랐던 거예요. 그러니까 정말 말 그대로 이 사람들한테 전적으로 의지하고 싶은 거예요. 그 말인즉슨, 제가 이전보다 더 열린 마음으로 이들에게 나를 공유하겠다는 태도가 갖춰져 있었던 거고 이들에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발을 넣을 수 있는 범위를 더 늘려준 거니까 어떤 것들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되면서도 겁이 났어요. 내가 과연 이 낯선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면서 부끄럽고 떨리고 겁도 나고 여러 가지 감정으로 부탁을 했는데 다들 너무 고맙게도 함께 해주었죠. 그래서 제가 그랬거든요. “염치없지만 네 곡이라고 생각하고 해줬으면 좋겠어. 그런데 진짜 좋을 거야.” (웃음) 그리고 데모를 들어보더니 다들 납득하더라고요. 그게 너무 재밌는 지점이었어요.
Q. 그렇게 함께하시게 된 편곡자분들과의 작업 과정은 어떠셨나요?
작업 과정이 굉장히 흥미로웠죠. 왜냐하면 다섯 곡의 선장이 달랐잖아요. 저는 제 곡을 누군가랑 같이 작업하는 건 [까만 밤] 이후로 처음이거든요.
Q. 정말요?
그 이후로 처음이에요. (웃음) 1번 트랙 ‘dog-ear serenade’는 싱어송라이터로도 활동하고 계시는 사공 오빠랑 함께했는데 저는 제 주변에서 나무 소리를 제일 잘 내는 사람이 사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곡은 1차 편곡까지만 제가 하고 나서 이 ‘넉넉하고 여유롭지만 어딘가 슬픈 사람의 느낌’은 사공 오빠밖에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베이스도 직접 쳤는데 그 톤은 세월과 사공의 터치로 태어난 감성이라서 편곡자의 매력이 굉장히 많이 발산되는 곡이에요.
2번 트랙 ‘너에게’는 아마도 제 이름으로 나온 노래 중에서 가장 신선한 곡일 것 같아요. 이건 베이시스트 박규태라는 친구랑 작업한 곡인데 작년에 발매된 ‘바다(Mer)’에서 바이올린이랑 베이스를 쳐준 친구이기도 해요. 그때 좋은 연이 이어져서 평소에도 음악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요. 유재하, 빛과소금, 이소라 음악을 들을 때 느껴지는 ‘기분 좋음’이 이 노래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 친구도 제가 가지고 있는 명랑함을 꺼내주려고 노력을 되게 많이 해줬어요. 드럼도 미디로 찍어서 가볍게 놀 수 있는 톤을 맞춰줬는데 노래 부르다 보면 제가 춤을 추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가 느꼈어요. 그 ‘기분 좋음’이 이 노래에 있다는 것을요.
Q. 부르는 사람이 그런 마음으로 불렀다면 청자에게도 자연스럽게 전달이 되잖아요.
맞아요. 그리고 3번 곡 ‘내게 오면 돼’는 제가 만들었는데 제가 제일 편한 재즈 발라드곡이에요. 텍스쳐들도 들어가 있고 제가 좋아하는, 창백하지만 따뜻한 소리들이 들어있어서 그런 대비되는 이미지가 매력인 곡이라고 생각해요. 4번 ‘그대여’는 밴드 멤버인 피아니스트 황순규 편곡인데 의견을 최대한 수용해서 같이 작곡의 영역까지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원래 B 파트가 없었는데 거기서부터 후렴까지의 빌드를 그 친구가 만들어줬죠.
Q. 따지고 보면 편곡보다도 더 깊숙하게 함께 해주신 분이네요.
그쵸. 아무래도 일단 신뢰가 깊고 공연할 때도 단둘이서 하는 곡들이 많다 보니까 이 친구랑 저랑만 느끼는 층이 있어요. 근데 그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 어떤 두터운 신뢰감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어디 가서 이 노래 소개할 때 “이 노래는 피아노 연주곡이고요, 거기에 보컬이 있는 곡입니다.”라고 얘기를 해요. (웃음) 또 기훈님의 클라리넷과 플룻이 함께 하기도 했고 제가 사공과 건후가 아닌 다른 기타리스트와 처음 작업한 곡이기도 해요. 남중건이라는 친구랑 했는데 처음 해보는 거라서 좀 떨리기도 했지만 순규가 이 바구니를 편곡으로 너무 잘 만들어줘서 하나에 다 담길 수 있었어요. 피아노의 리더십이 빛났던 곡입니다.
Q. 그러고 보면 이번 앨범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처음인 것들이 되게 많았던 것 같아요.
맞아요. 5번 곡 ‘별’ 같은 경우도 그렇게 처음 시도한 스트링이 들어간 곡이죠. 이 곡 같은 경우는 데모를 처음 만들고 건후 차에서 함께 모니터를 했는데 저랑 건후랑 10년 친구거든요. 둘 다 처음에 밴드 넬을 좋아했는데 “넬 들으면 뻐렁치는 거 알지? 3호선 버터플라이 들었을 때 막 심장 울리던 그거 알지?” 하면서 그런 흐름이 제 스타일로 녹아들면 좋겠다고 이야기 나누면서 시작했어요. 10년 동안 제 보컬이 안정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타를 쳐준 사람이라서 어찌 보면 뻔한 록 발라드일 수 있는 곡에서도 안정감과 무게감 사이의 완급 조절을 너무 잘해줬어요. ‘큰새’ 때 같이 작업했던 드러머 장재민의 역할도 진짜 컸는데 워낙 자유로운 음악을 하시는 분이라 능수능란하게 음악에 담기지 않았나 싶네요.
Q. 서로 다른 편곡자의 색깔이 전부 살아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작품으로 아우르기 위한 과정도 많은 신경을 쓰셨을 것 같아요.
실제로 레코딩 스튜디오 감독님께서도 다른 아티스트 아니냐고 하셔서 전부 저라고 하니까 되게 놀라시더라고요. 한 앨범이냐고도 계속 여쭤보시고. 그래서 그걸 관통하는 장치로 가장 많은 신경을 쓴 게 레코딩 환경이었어요.
Q. 아무래도 사운드적인 측면이 가장 중요했겠네요.
네 맞아요. 그래서 마이크도 한 가지로 통일해서 쭉 5곡을 녹음했어요. 물론 재녹음도 하고 데모 소스를 쓰기도 하고 했지만 1차적으로 의도한 부분은 레코딩 환경이었고요. 그다음으로 믹스에서 어떻게 이 정서가 감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감독님이랑 이야기를 되게 많이 했어요. 저는 믹스도 연주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감사하게도 감독님께서 제 취향을 많이 물어봐 주시고 말로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정서적인 부분들을 잘 맞출 수 있었어요.
Q. 저도 발매되기 전에 곡에 대한 설명만 미리 들었을 때는 곡들이 전부 다를 거라는 이야기만 들어서 얼마나 다를까 싶었는데 정말 전부 다르면서도 동시에 자연스럽게 한 앨범으로 묶이는 지점을 굉장히 많이 신경 쓰셨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처음 시도하셨던 스트링 사운드 녹음 과정에서는 어려움이 없으셨나요?
스트링은 이지안 님을 소개받아 함께 하게 됐어요. 아무래도 처음 도전하는 것이다 보니 고민을 되게 많이 했는데 귀를 깨우는 소리라고 해야 할까요? 하이텐션의 음들로 귀를 간지럽히는 요소들이나 얇고 촘촘한 레이어를 시도하시는 것을 보고 곡에 대한 이해를 제가 너무 원하던 방식으로 해주셨구나 생각했어요. 밤에 레코딩을 해서 밤 10시부터 새벽까지 작업을 했는데 늦은 시간이라는 물리적인 어려움 말고는 이렇게 수월하게 가도 되나라고 생각했을 정도예요. (웃음) 스트링이라는 악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새삼 다시 경험한 시간이었습니다.
Q. 이번 앨범에 함께 해주신 분들에 관해서 쭉 이야기 나누어보았는데요, 아까 말씀해 주셨던 ‘도움을 주고받고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가 결국 이번 앨범의 메시지와 밀접하게 맞닿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결국 무언가를 내어줄 수 있는 용기가 생기신 거잖아요. 그런데 그 빈 공간에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채워짐으로써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인정하게 되기도 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번 앨범 자체서 더 단단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친한 친구가 저한테 해줬던 말이 있는데, 자기가 언젠가 그런 위로를 받았대요. 너무 낙심하고 있을 때 누가 “야, 너를 믿는 나를 믿어”라는 이야기를 해줬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면서 나를 발견하는 것도 물론 가치 있고 아름답지만 내가 남을 위해서 일을 하고 연결되면서 찾게 되는 나의 가능성도 너무 가치 있는 것이라는 걸 많이 경험한 시간이지 않았나 해요.
Q.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더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아까 지난 3년 여의 시간이 이번 EP를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과정이 결국 마음의 여유를 마련하는 과정과도 같았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그렇죠. 그게 다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나를 믿는 힘도 앨범을 만들기 위한 재료에 속하니까요. 마음을 열고 내어주려면, 결국 뭘 하려고 해도 곳간이 넉넉하면 좋잖아요.
Q.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바로 이해가 되네요. 내어주려면 결국 마음이 풍족해야 하고 또 곳간에서 인심 나는 법이니까요.
저는 잠시 혼자 활동했던 시기 동안 너무 무너져 있었는데요, 나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게 잘되지 않았던 때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 안에 있는 힘을 믿어보자는 마음에 ‘bud’라는 싱글도 냈던 건데 그 마음을 알아채 준 동료들이 많았죠. 친구들이지만 뭔가 동료라는 표현을 쓰고 싶어요. 그러니까 함께 가고 싶은 데가 비슷한 사람들.
Q. 개인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협업이라 함은 ‘얘가 뭘 생각하는지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얘가 아는 것’이라고 항상 표현하거든요. 그게 되면 사실 싱크가 완전히 맞아서 어디로 향하든지 같은 방향을 볼 수 있는 상황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마음을 함께 공유하는 친구분들은 동료라는 표현이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그래서 계속 좁혀나가야겠죠. 그 레이턴시를. 그걸 좁혀나가는 것, 그게 누구더라도 내가 마음먹었을 때 그걸 좁힐 수 있을 만큼 유연한 사람이고 싶어요. 물론 언제까지고 열려있기만 할 수는 없겠죠. 다시 뭔가를 모으러 문 닫고 들어갈 때가 오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조금은 더 상냥하고 유연한 사람일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다린님의 활동에서도 그런 유연한 모습들이 눈에 띄는 것 같은데요, 이전 싱글 [Brachio] 활동 기간에도 연계된 전시와 토크 콘서트를 함께 꾸리시기도 하고 무드 필름을 제작하기도 하셨어요. 이번에도 리릭 비디오나 음감회를 함께 기획하셨던 것처럼 평소에도 창작하시는 과정에서 다른 표현 방식으로의 확장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시는 편인가요?
둘 다인 것 같아요. [Brachio] 때는 배경을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서 처음부터 함께 고민했었고 이번에는 팀원분들이랑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면서 재밌게 발전시켰어요.
Q. 항상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풀어내고 싶어 하신다는 느낌이 들어요. 발매 때마다 어떤 형태로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꾸준히 가져오셨잖아요.
맞아요. 사실 그냥 음악만 들어주셔도 감사하거든요. 그런데 좀 더 깊이 나누고 싶다는 마음도 커요. 그리고 제 이야기를 했을 때 상대방도 자기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 현상이 재미있고 좋아요.
Q: 혹시 공연 이외에 이번 앨범과 더 연계되어 있는 이벤트 같은 것들이 또 있을까요?
없어요. 일단, 왜냐하면 이제 다음 싱글이 8월에.. (웃음) 쉬지 않습니다. (웃음)
Q. 이야기 나온 김에 잠깐 질문드리자면, 이 인터뷰가 발행되고 바로 며칠 뒤에 6월 단독 콘서트도 예정되어 있잖아요. 서울, 부산 한 번씩인데 공연에도 신경을 많이 쓰셨다고 들었어요. 찾아주실 분들을 위해 감상 포인트를 몇 개 짚어주실 수 있을까요?
일단 아무래도 신보에 대한 라이브가 되게 유쾌할 것 같아요. 저도 풀밴드 셋으로 이번 앨범을 들려드리는 게 처음이라서요. 또 기대되는 건 음향 디자인을 지금까지 안 해본 방식으로 시도하는데 4.1채널 스피커 시스템으로 공간감이 더 살아나도록 연출해서 새로운 음향을 경험해 보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부산에 가서 찾아뵙는다는 게 기대가 많이 돼요.
Q. 어느덧 마지막 질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1년 정도의 시간 동안 소속사 없이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로 활동하셨던 시기를 통과하시기도 했고 지금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또 한 번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계세요. 바쁘게 달려오신 상반기를 지나 하반기를 맞이하는 소감과 함께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일단 20대의 마지막이기도 하고요. 20대 마지막을 지나침과 동시에 또 좋은 앨범을 들려드릴 수 있어서 보람차요. 그리고 얼마나 더 용감한 30대를 맞이하게 될지, 그래서 팬분들이랑 얼마나 더 좋은 것들을 나누게 될지 기대가 되고 아마 하반기는 또 열심히 그 준비를 하게 되지 않을까요?
Q. 좋아요. 저도 기대 많이 하고 있습니다. (웃음)
감사합니다.
Interview | 월로비
사진제공 | 재뉴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