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들을 분명하게 정렬하려는 팝/가요의 체계적인 힘과 그럼에도 언제나 기이한 외형을 띠고 나타나는 소리들 간의 “주도권” 다툼은 [나쁜 마음]에서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결론을 유예하길 선택한 걸지도 모른다.
보일
나쁜 마음
2022.02.07
[나쁜 마음]이 꽤나 기이한 음반인 것은 재생시간의 거의 30%를 차지하는 10분짜리 앰비언트 트랙이 마무리를 담당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몽실한 신스음으로 이뤄진 짧은 구간이 느린 루프에 따라 서서히 음향 효과에 덮인 채 늘어지듯 서서히 퍼져나가는 ‘다음에는’은, 색과 선의 형상들이 뭉개진 듯 보이는 음반 커버와 가장 닮았고 그러므로 ‘나쁜 마음’과의 더블 타이틀 값어치를 톡톡히 하는 트랙이니까. 사실, ‘다음에는’에서 제시된, 원형을 잃은 채 떠다니는 소리의 형상은 [나쁜 마음] 곳곳에 은근히 혹은 불현듯 나타나게 심어져있다. ‘살구’같은 트랙이 사운드를 맑고 흐리게 전환시켜 만드는 인공적인 로우파이 음질이나, ‘0’과 ‘여기서부터 꿈입니다’에 자그마한 잡티처럼 포함된 녹음환경의 주변음들, 그리고 ‘카드’의 찰칵대고 치직거리는 비트에 입히고 ‘해피엔딩’의 군데군데에 삽입되는 무수한 잡음들까지. 음반에는 “음악”으로는 확연히 분류되지 못할 “기이한” 소리들이 꽤나 다양한 방식으로, 어느 정도 의도적이게 담겨있다. 하지만 내게 가장 “기이하게” 느껴졌던 건 그와 함께 공동 프로듀싱과 제작을 맡았던 오소리웍스의 가요적인 존재감이었다.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마음]은 꽤나 분명하게 팝 혹은 가요 음반으로 들린다. 어느 정도까지는.
텀블벅 작업기에서 단편선이 밝혔듯, 지난 몇 년 간 오소리웍스는 “주로 밴드 음악, 또는 포크 기반의 싱어송라이터가 연주하는” 성향의 음반들을 발매해왔다. 다만 이 작업들은 그러한 “기반”을 틀로 삼아 전기기타를 능숙히 이용하는 팝과 가요를 겨냥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여유롭고 나른한 후하와 명쾌하게 찰랑거리는 전복들의 기타 팝이나 이펙트를 강조한 전기기타 사운드로 “자연적인” 풍경을 그리는 전유동, 특히 과거를 도구 삼아 작가주의적인 가요사의 중앙으로 뛰어든 천용성의 음악은 스튜디오에서 세심하게 다듬어진 분명한 음색들로 주어진 보컬 라인과 기타 리프의 친근한 멜로디를 전달하곤 했다. 팝 음반으로서의 [나쁜 마음]도 유사한 목표를 설정하겠지만, 출발지점이 조금 다르다. 지근거리에서 속삭이듯 비음과 숨소리가 두드러지는 보일의 목소리와 이를 두드러지게 하는 음색은 “가요”의 그것과는 사뭇 거리가 있을 테니 말이다. 전작에서 분명치 않은 음정으로 조절된 악기소리들처럼 나지막한 허밍과 속삭임이 사용된 “Yuri”나, 진수영의 뮤트 피아노 연주 뒤편으로 고음질의 잡음이 부스럭대는 다른 소리들과 깔리던 “그리고 여기로 오세요”처럼 말이다. 꽤나 기이하게 들릴 수 있을 소리를 익숙한 팝적 화성과 멜로디의 배경에 끼우는 보일의 세계는 명확한 스튜디오 작업을 바탕으로 한 “가요”의 그것으로 번안되기에 사뭇 까다로운 편 같다. 때문에 촉촉한 색채가 분명한 전자음과, 알맞게 합쳐지는 특유한 보컬들에 강세를 두어 F.W.D, Room306, blent. 등의 재지한 다운템포 팝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해온 허민(FIRST AID)의 프로듀싱으로, 어쩌면 양측의 교집합을 위한 자리가 마련된 걸지도 모르겠다.
[나쁜 마음]에서 안정감과 명확함을 추구하는 형색의 가요와 기이한 소리들을 숨겨 담은 앰비언트 팝이 각자 발휘하는 힘은 꽤나 집단적인 프로듀싱과 편곡으로 묘한 합의점을 찾는다. 음반을 여는 ‘Park’에서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도 같은데, 보일의 가창은 분명한 음색으로 들었다면 상대적으로 좀 더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을 멜로디를, 문장 끝에서 날숨을 끊고 대신 짧은 효과음처럼 잘라낸 목소리를 뿌리면서 그 분명함을 흐린다. Room306의 근작들이 차차 실제 악기들의 재지한 연주 합을 강조해온 것보다는 조금 이전으로 돌아가듯, 리버브를 잔뜩 담아 몽글해진 신스음을 적재적소에서 조절하는 허민의 솜씨가 맞물린다. 더불어 은근한 그루브를 만드는 기타/베이스가 탄탄하게 받쳐지면서, ’Park‘에는 팝적 리듬의 명료함과 목소리/사운드의 불명료함이 함께 생겨난다. ‘나쁜 마음’ 또한 낮게 읊조리는 천용성의 목소리를 보일과의 듀엣으로 대비되게 배치해, 전자음들이 후면에서부터 전면으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전개로 이들을 집어삼킨다. 이후 트랙에서 우리존재와 이태훈의 목소리가 유사한 한 쌍으로서 사용되는 것 또한 이와 맥을 같이 할 것이다. 이러한 식으로 [나쁜 마음]은 팝/가요가 추구할 사운드적인 분명함과, 이에 불순물처럼 끼어들어 주어진 시공을 일순 흔드는 소리의 불분명함 간에 놓인 “주도권을 가진 기분”을 집중 공략하며, 0의 원점에 놓인 무게중심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긴장관계를 만든다. 앞 문단에서 언급했던, 여러 잡음들이 빼꼼히 드러난 트랙들에서도 여전히 재즈적으로 다듬어진 악기 소리들이 전개를 이끌지만, 바로 그 잡음들 덕에 팝과 가요의 힘이 철저히 우세할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해피엔딩’에서는 보일의 목소리가 한 줄기의 신스 멜로디와 들숨이 자세히 들릴 정도로 조용하게 움직이며 곡을 이끈다. 한편 오르골처럼 아른거리는 선율과 피아노 연주에, 스쳐 올라오는 화이트 노이즈와 자그맣게 짤깍거리는 잡음들이 같이 삽입되고, 앞으로가 “더 이상 궁금하지/기대되지 않아”버리는 결말이 이어진다. 호기심과 기대치가 이 다음으로 계속 이어지지 않을 때 찾아오는 단념의 “다음에는”, 그러므로 제대로 맺어지지 않고 하염없이 이어지는 후일담만이 남을 것이다. 소리들을 분명하게 정렬하려는 팝/가요의 체계적인 힘과 그럼에도 언제나 기이한 외형을 띠고 나타나는 소리들 간의 “주도권” 다툼은 [나쁜 마음]에서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결론을 유예하길 선택한 걸지도 모른다. 그러한 지연의 감각은, 라이너노트에서 제시되듯 음반 내내 나른하게 가라앉은 체념의 정서와도 맞닿아있다. 이윽고 ‘다음에는’에서는 이 모든 잡다함과 불분명함의 틈입에도 불구하고 늘 특정 수치 이상으로 팝/가요의 명확함을 띠었던 음색이, 후처리된 효과들 속에서 마침내 분명함을 잃어가며 열화된다. 이때 소리들 사이의 주도권과, 주도권을 가진 듯한 화자와 청자의 기분은 어디로 갔을까? 지연과 체념은 느리게 퇴색하는 정경의 속도로 찾아오고, 나쁜 마음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건 결국 분명치 않은 불안함의 잔여물뿐이다. [나쁜 마음]의 기이함, 어쩌면 “섬뜩함”은 이렇게 음반 내내 출렁거렸던 팝/가요의 신경전에 대한 기대감이 정말로 져버린 이후, 또 다른 유형의 소리들이 늘상 잠재되어 있다는 걸 알리듯, 느리게 엄습해온다.
Editor / 나원영 (대중음악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