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라마, Khundi Panda [송정맨션]

 

비현실적이거나 혹은 지극히 현실적인, 어쩌면 모순적일 수도 있는 양 끝 단의 성질을 모두 머금은 [송정맨션]은 그리하여 영화 같기도, 소설 같기도 한 오묘한 작품이다. 더불어 이러한 내용을 살아 숨 쉬게 하는 여러 서술적 장치들과 사운드적인 완성도는 말 그대로 ‘외강내강’에 가까운 마감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김라마, Khundi Panda
송정맨션
2021.10.03

 

무언가를 수식할 때 “영화 같다”라는 표현이 동반되는 경우, 우리는 그것이 시각적인 강렬함을 동반하며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을 법한 장면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어떤 사건의 전말이 믿기 어려울 만큼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경우를 두고 우리는 마치 “소설 같다”고 표현한다. 비슷해 보이는 두 표현은 이렇게 전혀 다른 뉘앙스를 풍기면서도 현실과 가상의 언저리에 걸쳐있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쿤디판다와 김라마의 합작품인 [송정맨션]은 영화 같기도, 동시에 소설 같기도 한 오묘한 인상을 풍긴다. ‘송정맨션’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마치 카메라 구도를 바꾸듯 서로 다른 인물들을 집요하리만치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 [송정맨션]은 그 과정에서 탄생하는 선명한 이미지들로 인해 마치 옴니버스 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착각을 준다. 뿐만 아니라 수록곡 간의 유기성과 그로 인해 탄생한 앨범 전반에 걸친 맥락의 완성도는 잘 짜인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완성도는 물론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무려 2년 전인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래서인지 결코 짧은 시간 내에 완성될 수 없는 탄탄한 마감을 자랑하는데, 여기에는 전 트랙을 프로듀싱한 미지의 아티스트 김라마의 디렉팅과 함께 이미 장르 씬에서 철두철미한 디테일로 손꼽히는 쿤디판다의 노련미가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참고로 쇼미더머니를 통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쿤디판다는 이미 장르 음악 팬이 아니더라도 들어봤을 법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만, ‘김라마’라는 이름의 아티스트는 생소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 또한 2016년에 데뷔하여 주기적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온 경력자이며, 가장 최근에 발표한 EP [외톨이갱을 기다리며]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번 [송정맨션]에서 김라마가 차지하는 지분에 관해 결코 토를 달 수 없으리라 장담한다.

 

 

여기서 ‘디테일’이라 한다면 먼저 사운드적인 절묘한 균형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특유의 탁성으로 뭉근하게 바탕을 깔아주는 김라마의 보컬과 날카로운 발성으로 어떠한 비트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 쿤디판다의 랩은 실과 바늘처럼 달라붙으며 부족함 없는 균형을 선사한다. 뿐만 아니라 1명의 보컬리스트와 1명의 래퍼가 함께 등장하는 곡에서 흔히들 예상하는, 벌스와 후렴을 번갈아서 차지하는 식상한 전개를 탈피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때로는 주거니 받거니, 때로는 한 사람이 주도권을 가지고 곡을 이끌어가거나 두 사람의 목소리를 중첩시켜 오묘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등, 단순히 랩과 보컬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을 넘어 두 사람의 목소리 자체를 여러 사운드 소스 중의 하나로 치환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있는 방식은 청자의 몰입감을 끊지 않으며 감정선을 유지하는 데에 일등 공신으로 작용한다.

 

귀로 들리는 물리적인 부분을 넘어 내용적인 부분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이들의 치밀한 설계는 감탄을 자아낸다. 앞서 언급했듯 ‘송정맨션’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마치 씬과 씬을 연결하듯 옴니버스식으로 연결된 각각의 수록곡은 때로는 가사적으로, 때로는 청각적으로, 때로는 내용적으로 은근한 연결고리를 내보이며 감상의 재미를 더한다. 연결된 트랙에서 특정 단어를 반복하거나(1번 트랙, 2번 트랙) 특정 멜로디 라인을 교묘히 변주하여 흐름을 이어가는 등(6번 트랙, 7번 트랙) 노골적으로 내용을 이어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청자로 하여금 곡 간의 연결성을 상상하게 만드는 이러한 장치들은 음악적 유기성이라는 측면에서 앨범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인지하게끔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특이하게도 이번 앨범은 10곡 전부가 타이틀곡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모두를 트랙 순서대로 듣고 있자면 전곡 타이틀곡 지정이라는 파격적인 결정을 수긍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를 통해 쿤디판다와 김라마가 궁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현실의 모습이다. 이들이 묘사하고 있는, 퇴폐적이거나 본능적이거나 혹은 병적으로 번져가는 사랑의 어두운 모습들, 혹은 돈이라는 절대적인 기준 앞에서 무력해지는 등의 삶의 그림자 같은 장면들은 결코 모른 척할 수 없는, 아니 어떻게 해서든 모른 척하고 싶은 우리 모두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송정맨션]은 현실 속 한순간 한순간을 너무나도 노골적이고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묘사하여 오히려 그것을 가상의 것인 양 낯설게 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외면하고 싶은 현실의 단편을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하게 되고 그것은 곧 그 대상들을 전혀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되는 생경한 경험으로 이어진다.

 

앞 단에서 이 작품을 두고 ‘현실과 가상의 언저리’에 있다고 표현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비현실적이거나 혹은 지극히 현실적인, 어쩌면 모순적일 수도 있는 양 끝 단의 성질을 모두 머금은 [송정맨션]은 그리하여 영화 같기도, 소설 같기도 한 오묘한 작품이다. 더불어 이러한 내용을 살아 숨 쉬게 하는 여러 서술적 장치들과 사운드적인 완성도는 말 그대로 ‘외강내강’에 가까운 마감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익살스러운 모습을 선보였던 밴드 ‘플랫샵’의 쿤디판다는 또 한 번 진중한 스토리텔러로서의 자아를 폭발시키며 스펙트럼 확장을 이어간다. 뿐만 아니라 이번 작품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작업자로서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 김라마는 자연스럽게 그의 차기작뿐만 아니라 과거 행적에 대한 궁금증까지도 덩달아 증폭시키고 있다. 쿤디판다와 김라마의 만남이 다시 한번 성사될지에 대한 여부는 물론 본인들에게 달려있겠지만, 일단 송정맨션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이 둘의 조합을 쌍수 들고 환영하는 바이다.

 


Editor / 월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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