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 [발라드]

앨범의 라이너에는 ‘새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오래된 노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그렇게 이 앨범을 만들었다고 쓰여있다. 레코딩의 형태로 발표되지 않았을 뿐 사실 긴 시간 동안 라이브에서 계속 불려왔을 노래들. 라이브클럽 ‘빵’의 이주영을 기억하고 사랑하던 이들에게 이 발라드 소품집은 그래서 무척이나 근사한 선물이 될 거 같다.

 


 

이주영
발라드
2021.11.20

 

‘이주영’이란 이름이 인디 음악 리스너들에게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는 아마도 2019년에 발표한 첫 정규앨범 [이주영]을 통해서일 거 같다. 매년 적어도 한두 장씩은 씬을 들썩이게 만드는, 대중과 평단이 모두 뜨겁게 반응하여 한동안 온통 그 음악가, 작품 이야기로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앨범들이 있는데 솔직히 내 기억에 [이주영]이 그런 거창한 반향을 이끌어낸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 – 씬의 음악가들, 그리고 업계 종사자들 – 사이에서 이 앨범을 주목하고 호평하는 분위기가, 그것이 ‘시끌시끌’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웅성웅성’이라곤 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스물스물 피어나 부풀어 오르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그리고 이듬해 초 한국 대중음악상에서 이주영은 ‘최우수 포크 – 음반’, ‘최우수 포크 – 노래’, 그리고 ‘올해의 신인’까지 총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Official Audio] 이주영 – 조금 늦은 이야기

 

반쯤은 농담으로 딴죽을 걸어보자면 사실 [이주영]은 포크 앨범이 아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발라드’ 앨범이라 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사실 이 해에 최우수 포크 앨범, 노래 부문을 모두 수상한 ‘천용성’의 앨범 또한 굳이 따지면 포크 앨범은 아니다) 아무튼 한대음에는 ‘발라드’라는 부문이 따로 없기 때문에 편의상 이렇게 분류되었으리라- 대충 이렇게 여기기로 한다.

 

딴죽 하나 더. 이 앨범을 발표한 2019년 시점에서 ‘이주영’은 신인이 아니다. 2016년부터 2019년 사이 산발적으로 몇 개의 싱글을 발표한 적이 있고, 사실 실제로 음악을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이다. 1994년에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수상한 것이 공식적인 첫 등장이고, 이후 2005년부터는 라이브클럽 ‘빵’에서 계속 라이브 활동을 해왔다. ‘1집’의 발매 시기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레코딩 아티스트’로서의 이주영을 신인으로 볼 수는 있겠지만 ‘뮤지션’ 이주영은 이때도 이미 자신만의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한 베테랑이었다.

 

여기서 잠시 화제를 전환하여 ‘발라드’에 대해 잠시 얘기해보기로 한다. 바야흐로 케이팝이 전세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사실 발라드야말로 그 이전 한국 가요의 가장 특징적인 장르가 아니었을까? 시대의 변천을 거치며 팝, 포크, 록, 재즈, 알앤비, 클래식 등 여러 해외 음악의 형식들을 받아들이며 형성되고 발전했지만 결국 그 어느 것에도 온전히 종속되지 않는, 그 결과로 오직 한국에만 존재하는 전혀 다른 무언가로 탄생한 장르, 스타일이 발라드다. ‘한국적 발라드’, ‘한국식 발라드’라 흔히 표현하지만 사실 애초에 태생적으로 한국에만 있는 장르라 봐도 무방한 이 스타일은 그 특유의 – 종종 신파적인 – 서정성으로 예나 지금이나 다양한 세대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주영 정규 2집의 제목은 [발라드]다. 제목 그대로의 작품으로 상기한 ‘한국식 발라드’의 클리셰라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을, 어떤 의미에선 그야말로 통속적인 감성으로 가득한 아홉 개의 악곡을 담았다. 1집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썼던 노래들로 구성했지만 되려 1집 수록곡들보다 더 오래 전, 그러니까 클럽 ‘빵’에서의 커리어가 시작된 2005년이라는 시점을 전후하여 쓴 곡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먼 과거에 만든 음악들을 지금으로 불러와 지금의 리스너들에게 납득시키는 작업, 게다가 다양한 시기에 만들어진 곡들인 만큼 다 같은 ‘발라드’들인데도 저마다 미묘하게 결이 달라 이들 각각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새롭게 입혀줘야 하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이를 돕기 위해 프로듀서, 베이시스트 ‘정현서’가 가세해 앨범 전체를 함께 프로듀싱하고 전곡의 편곡에 참여했다. 1집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했던 기타 장인 ‘함춘호’는 이번에도 대부분의 곡에서 예의 근사한 기타 연주를 제공했고 앨범의 마지막 곡이자 리드 싱글로 선공개되기도 했던 ‘눈이 내린다’에선 ‘이아립’의 반가운 목소리도 만날 수 있다.

 

아마도 라이브에서는 최소한의 편성으로 연주되었을 이 모든 오래된 노래들은 이처럼 여러 음악가들의 조력 아래 새로운 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났다. 피아노 선율을 중심으로 유려한 현악이 가미되어 그야말로 ‘한국식 발라드’ 그 자체인 곡(편지, 사월에 피는 꽃, 눈이 내린다)이 있는가 하면 클래시컬한 나일론 기타의 선율만으로 풀어가는 어쿠스틱한 곡(5월 23일, 공책과 연필과 그리운 이의 사진)이나 그에 준하는 미니멀한 악기 구성으로 보컬을 최대한 전면으로 끌어내는 곡(바람이 없는 밤, 우산), 한편으로 90년대에 많이 등장했던 알앤비 풍 가요와 닮은 곡(짜증이 나)까지, 2021년에 다시 태어난 이주영의 발라드들은 그 면면이 참으로 다채롭다. 내용적으론 한국 발라드의 대표 소재인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주로 화자의 입장에서 이별을 겪은 이의 내밀한 심정을 때론 절절하게, 때론 덤덤하게 노래하고 있다.

 

앨범의 라이너에는 ‘새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오래된 노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그렇게 이 앨범을 만들었다고 쓰여있다. 레코딩의 형태로 발표되지 않았을 뿐 사실 긴 시간 동안 라이브에서 계속 불려왔을 노래들. 라이브클럽 ‘빵’의 이주영을 기억하고 사랑하던 이들에게 이 발라드 소품집은 그래서 무척이나 근사한 선물이 될 거 같다.

 

[MV] 이주영 – 사월에 피는 꽃

 


Editor / 김설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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