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카겔 [Desert Eagle]

누구도 가지 않은 미지의 사막을 횡단하듯 ‘얼터너티브’의 대명사로서 묵묵히 전진해온 실리카겔의 여정은 마치 홀로 걷는 사막이 너무나도 외로워 자기 발자국을 보기 위해 뒷걸음질로 걸었다는 오르텅스 블루의 시 ‘사막’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이들이 실제로 외로움에 몸서리쳤을 리 만무하지만, 이제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으니 걱정 없다.

 


 

실리카겔
Desert Eagle
2021.08.15

 

실리카겔의 ‘새로운 데뷔’ 선언 이후 1년이 흘렀다. 사실상 새로운 데뷔곡이나 마찬가지였던 <kyo 181>을 시작으로 아홉 달에 걸쳐 총 3장의 싱글을 발표한 실리카겔의 행보는 아직 보여줄 것이 차고 넘친다는 듯 매번 새로운 충격을 동반했다. ‘실리카겔식 메탈’로 대변되는 <Hibernation>과 24분에 달하는 <S G T A P E – 01>로 이어지고 있는 이들의 새로운 음악적 시도는 본인들조차도 실리카겔의 음악을 특정 장르로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물론 그럴 생각도 없을 테지만) 다양한 표정을 지어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무한한 가능성이야말로 실리카겔이 실리카겔일 수 있는 가장 명확한 속성일 것이다.

 

물론 충격이라는 키워드는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실리카겔의 음악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만큼 여전히 충격적이니까. 그러나 이번 <Desert Eagle>가 선사하는 ‘충격’의 맥락은 지금까지 주를 이루었던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과 달리, 오히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맞닥뜨린 익숙함, 그리고 그 익숙함이 서서히 낯설어지는 새삼스러운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

 

복귀 이후로 팝 음악의 포맷을 조금씩 차용해오던 실리카겔은 <Desert Eagle>를 통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형식 간의 융화를 시도한다. 얼마 전 진행된 모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작품 또한 곡의 초중반 부는 팝 음악의 그것처럼 보컬 중심으로 편곡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곡의 구성 또한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진행 순서를 따르고 있다. 인트로, 벌스1, 후렴, 벌스2, 후렴, 브릿지, 하이라이트, 아웃트로로 이어지는 진행은 대부분의 기성 음악이라면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전형적인 포맷이다. 집요하다고 느껴질 만큼 반복적인 구성이 돋보였던 <kyo 181>을 떠올려본다면 오히려 실리카겔의 음악에서 마주한 이 ‘전형적인’ 구성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신선함은 단순히 ‘기성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라는 표현에서 끝나지 않는다. 전형적이라는 것은 다시 말해 다수가 선택할 만큼 효율적이라는 뜻이며, 실리카겔은 그 효과를 극한까지 뽑아내며 이번 작품의 서사적인 분위기를 밀도 있게 쌓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지막한 저음으로 시작해 서서히 상승하는 멜로디와 함께 후반부를 향해 치닫는 격정적인 연주는 자연스럽게 음악적 기승전결을 확보할 수 있는 진행 방식으로 인해 설득력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형식 안에서도 노골적으로 구분된 각각의 파트와 그 사이 사이를 메우는 잠깐의 정적들은 마치 막과 막 사이의 인터미션을 연상시키며 장대한 뮤지컬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청자와 밀당이라도 하듯 신들린 완급조절로 곡의 긴장감을 쥐었다 폈다 하는 이번 작품은, 결국 실리카겔에게 있어 다수에게 선택받은 ‘기성의 포맷’ 조차 원하는 대로 취사선택하여 본인들만의 색깔로 덧칠해버릴 수 있는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소위 ‘실리카겔 음악의 특징’이라 불리곤 하는 몇 가지 요소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들 색깔의 농도를 더욱 진하게 만든다. ‘사막’, ‘섬광’, ‘죽은 분들의 세계’ 등, 언뜻언뜻 귀를 스치는 몇 가지의 묵직한 단어들이 마치 별자리처럼 연결되어 곡 전체의 서사를 뒷받침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비록 이들이 가사 하나하나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는 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도리어 가사가 가진 힘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 집요하리만치 반복적인 사운드가 가진 멋을 선보인 바 있는 실리카겔은 이번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통해 다시 한번 그 효과를 입증해 보이고 있다. 장장 32마디에 걸쳐 반복되는 구절로 꽉 차있는 곡의 후반부에서는 차근차근 쌓아 올린 감정선이 폭발하며 절정에 이르는데 “지금까지의 실리카겔 곡 중 가장 화려한 연주가 녹음되어 있다”고 전해온 멤버 김한주의 말처럼 비할 바 없는 웅장한 사운드로 자기도 모르게 이어폰의 볼륨을 올리게 된다. 이후 모든 소리가 잦아들며 마무리되는 곡의 아웃트로는 5분간의 러닝타임을 감히 ‘여정’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진하고 또 진한 여운을 남긴다.

 

매번 새로운 시도로 음악적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는 실리카겔은 그렇게 누구에게나 새로울 수밖에 것들을 넘어 누군가에겐 새롭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들마저 모조리 흡수하는 중이다. 앞선 세 작품을 통해 잇따라 보여준 신선한 시도에 이어 선보이는 <Desert Eagle>는 검증된 형식 위에서 그 모든 시도를 자양분 삼아 완성되었으니, 그리하여 팝 음악의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결코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유아독존의 세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누구도 가지 않은 미지의 사막을 횡단하듯 ‘얼터너티브’의 대명사로서 묵묵히 전진해온 실리카겔의 여정은 마치 홀로 걷는 사막이 너무나도 외로워 자기 발자국을 보기 위해 뒷걸음질로 걸었다는 오르텅스 블루의 시 ‘사막’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이들이 실제로 외로움에 몸서리쳤을 리 만무하지만, 이제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으니 걱정 없다. 공식적으로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식구들과 한솥밥을 먹기 시작한 후 발표하는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한 이번 싱글은 그렇게 여러모로 이들의 다음 행보를 가늠케 할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또 한 번 그 영역을 넓혀갈 실리카겔의 음악을 기대하며, 앞으로 무수한 발자국이 더해질 광활한 사막에 덩달아 몸을 맡겨본다.

 


Editor / 월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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