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서클 (SB Circle) [유사과학]

때로는 미신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밀실에서 선풍기를 틀지 않으면 전기세를 줄일 수 있고, 혈액형이나 별자리를 통해 가벼운 대화 주제를 만들 수도 있다. 실질적으로 도움보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그릇된 행동을 낳을 수도 있지만, 그 믿음이 안심을 줄 때가 있기도 하다.

 


 

신박서클 (SB Circle)
유사과학
2021.08.23

 

유사과학은 말 그대로 과학이 아닌, 과학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근거가 잘못되었거나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앨범 내에 곡명으로 담겨 있지만 밀실 내에서 선풍기를 틀면 사망한다는 주장이나 지구가 평면이라는 주장, 게르마늄 팔찌나 음이온이 건강에 좋다는 주장 등이 해당된다. 혈액형이나 별자리로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유사과학은 이름만 과학이지 학술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점에서 미신과 다를 바가 없기도 하다. 이러한 유사과학은 정보화 사회인 2021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데, 멤버들은 이러한 현상에서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앨범 제목과 곡의 제목이 만들어졌다.

 

 

신박서클은 신현필, 박경소, 서영도, 크리스티안 모란이 모여 결성한 그룹이다. 네 사람 모두 단순히 뛰어난 연주자라고 하기에는 그 이상의 역할을 각자의 영역 내에서 해왔다. 가장 전통적인 영역부터 가장 상상력을 동원하는 영역까지 함께 해오며 더욱 그 역량을 입증하는 중이다. 여기에 일렉트릭 앙상블로 이미 평단의 호평을 얻어 온 서영도, 연주로 인정받은 신현필과 크리스티안 모란까지 쟁쟁한 슈퍼 그룹이다. 각 멤버 이름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기도 하지만, 신박한 서클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해볼 수 있다. 1집이 위치와 형체에 관한 수학을 의미하는 [Topology](위상수학)이었다면, 이번에는 오히려 반대로 정교함과 긴밀한 연결을 떠나 좀 더 자유분방하고 어딘가 수상한 모습까지 지니고 있다. 직관적으로 붙였다는 곡의 제목과 곡의 모습이 사실 논리적인 연결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물론 상상하기 나름인지라 “피톤치드”를 들으며 숲에 와있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고(그러기엔 제법 신나지 않나 싶지만), 곡의 제목과 곡의 모습 사이의 관계를 마음대로 펼쳐 나가볼 수도 있다. 하지만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완벽하게 분리되지 않은 역할 가운데 유연하면서도 유기적인 연주는 충분한 흥미를 불러온다. 여기에 특정 장르나 문법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지나치게 힘을 주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세련된 표현이 가능해졌고, 각자의 장점에 충실하면서도 전면으로 나왔다가 그 자리를 내어주는 과정이 자연스럽다. 아마 국악, 재즈 이러한 장르를 떼고도 충분히 재미있고 좋은 앨범이기에 리드미컬한 연주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좋아할 것이다. 박경소 덕에 묘하게 녹아 있는 한국적인 표현, 재즈를 기반으로 하지만 무작정 고집하지 않는 전개까지 매력적인 요소가 많다.

 

때로는 미신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밀실에서 선풍기를 틀지 않으면 전기세를 줄일 수 있고, 혈액형이나 별자리를 통해 가벼운 대화 주제를 만들 수도 있다. 실질적으로 도움보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그릇된 행동을 낳을 수도 있지만, 그 믿음이 안심을 줄 때가 있기도 하다. 진지하게 믿으면 문제가 되겠지만 화장실 변기 커버를 닫아야 돈이 새지 않는다는 미신이 위생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것처럼 때로는 삶에 긍정적인 역할도 하니, 앨범도 호기심과 마음의 위안으로 접근해보자.

 


Editor / 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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