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들어 나가는 협화음, 잭킹콩 2집 발매 기념 인터뷰

 

함께 만들어 나가는 협화음, 잭킹콩 2집 발매 기념 인터뷰

 

살면서 저마다의 여정이나 모험을 떠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동료’를 만나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함께 떠나는 일은 말 그대로 한 배를 타는 일과 다름없다. 키를 잡고 같은 구호에 맞춰 한마음 한뜻으로 힘차게 노를 저어야 한다. 선명할 것 같았던 종착지가 흐릿하게 보이거나, 의도치 않게 뱃머리가 돌아가며 방향이 틀어지기도 하면 마음을 일치시키기란 더욱 어렵다.

 

음악씬에서 밴드로 활동한다는 것은 같은 목적지를 향하는 선원이 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밴드 잭킹콩은 튼튼하고 착실한 함선이 아닐까 싶다. 추구하는 음악의 리듬을 표현하다가 우연히 ‘잭, 킹, 콩’이라는 소리를 캐치한 것처럼,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잭킹콩은 자신들 특유의 리듬감 넘치는 유연한 태도로 극복해왔다. 꾸준하고 굵직한 이력 속에서, 매순간마다 찾아왔을 위기를 극복해왔다는 사실은 이들이 인간적으로도, 뮤지션으로서의 유대도 깊은 밴드임을 실감하게 만든다. 벌써 5년이란 시간을 의기투합해오며 동일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선원들, 밴드 잭킹콩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Q. 간단하게 잭킹콩 멤버 분들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심강훈: 잭킹콩에서 노래와 트럼펫을 맡고 있는 심강훈입니다반갑습니다.

 

신유동: 베이스를 치고 있는 신유동입니다.

 

장세훈: 드럼치고 있는 장세훈입니다.

 

이범호: 기타치고 있는 이범호입니다.

 

장세훈(서원 목소리로) 저는 건반이랑 피아노를 치고 있는 고서원이라고 합니다.

 

 

Q. 서원 님은 아쉽게도 미리 잡혀있던 일정이 있어서 참여하지 못했는데요다른 멤버분들은 정규 준비가 끝나고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이범호사실 준비할 때도 쉬지 않았던 건 아니라서.. (웃음따로 쉴 필요가 없었습니다.

 

장세훈: 음악과 생계를 병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다시 생계로 돌아간 상태예요사실 이번 정규 작업 때는 유동이의 역할이 컸어요후작업을 대부분 유동이가 작업했거든요일이 세 배 정도 많아졌죠.

 

신유동작업하다가 죽을 뻔했어요. (웃음음악은 아예 손도 안 대고친구들 만나 술 마시고스트레스를 엄청 분출하고 다녔어요.
 


 
 

Q. 잭킹콩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주가 인상깊은 밴드라고 생각하는데요곡 작업은 주로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이범호: 보통 합주하면서 노래를 많이 만드는 편이긴 한데요기타 리프나 전체적인 코드 진행을 연습하다가 괜찮은 게 나오면 합주할 때 들려줘요전체적으로 애들이 괜찮다고 말하면세훈이는 세훈이대로강훈이는 강훈이대로 색을 입혀가는 방식이에요어떤 한 멤버가 자기가 생각할 때 괜찮은 라인이나 아이디어를 던지면그걸 토대로 덧붙이는 느낌이죠.

 

 

Q. 처음에 아이디어를 던지는 사람은 주로 누구예요?

 

심강훈: 범호랑 서원이보통은 멜로디파트를 담당하는 멤버들이 스케치를 가장 많이 내요.

 

이범호: 전부 채택이 되지는 않고 날리는 것도 많아요그래도 아이디어를 만드는 순간 본인 자체는 애들이 좋아하겠다는 느낌은 와요여담이지만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 중에 ‘Meet Me at the bay’ 2020년에 제가 합주할 때 들고 갔다가 까였던 곡이에요이번 정규를 준비를 하면서 강훈이가 저한테 메인이 되는 기타 리프를 준비해 오라고 오더를 줬었거든요두 곡 정도 준비했는데나머지 한 곡은 도저히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그때 예전에 썼던 곡이 기억이 나서 가져왔어요이번에는 반응이 괜찮더라고요인간의 약간.. (웃음)

 

장세훈: 5년 사이에 바뀐 트렌드로 인해 맞아떨어졌다고 해야 하나그때는 조금 촌스럽기도 했는데다시 들어보니까 괜찮더라고요.

 

이범호좋은 게 좋은 거라고당시에 이 곡이 반려된 후에 만든 곡이 ‘Garden’이긴 했어요이번 기타 리프가 세상 밖에 나올 수 있게 돼서 개인적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Q. 이제 정규 2집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정규 1집 이후로 4년 만에 선보이는 발매작인데요정규 2 [Apophenia]을 발매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심강훈: 사실 저희가 EP를 두 번싱글을 세 번 정도 내면서 쉬지 않고 달려왔거든요그러다 보니 번아웃이 왔던 것 같아요번아웃을 이겨낼 계기가 필요하겠다 싶어서 정규 준비를 시작하게 됐어요.

 

 

Q.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들에서 연결성을 기인하는 현상이라는 용어인 Apophenia로 타이틀을 짓게 된 연유가 궁금해요.

 

심강훈: Apophenia가 관련이 없는 것들에 특징이나 의미를 부여하는 현상이잖아요인간관계에 빗대어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살아가면서 지극히 평범하게 지나가는 일들에 크게 의미를 두고 살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살아가는 일상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짙게 남아있더라고요잔잔하게 흘러갔던 것들이 삶의 패턴에 짙게 묻어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Q. 앨범의 컨셉이나 주제는 강훈 님이 메인으로 잡고 간 건가요?

 

장세훈: 주제나 가사 같은 스토리적인 부분은 강훈이가 모두 그렸어요믿고 맡기는 편인 것 같아요강훈이가 메인을 잡아주면멤버들이 내용적인 피드백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심강훈: 가사 작업을 보통 제가 하니까 주제를 정하는 게 자연스러워지더라고요이번에 주제를 정하면서 챗GPT랑 대화를 많이 했어요. 9곡이나 써야 하고전부 영어 가사를 쓰다보니 해야할 일이 많아서 정리가 잘 안되더라고요GPT에게 추천 받은 키워드 중 하나가 Apophenia였는데그 단어에 꽂혔어요.

 

장세훈밴드 멤버보다 챗GPT랑 대화를 더 많이 하더라고요.

 

심강훈우리끼리 얘기하면 ‘너 좋을 대로 해라는 대답이 제일 많이 나오기도 하니까. (웃음)

 

 

Q. 악기 연주를 제외하고작업에 있어서 멤버 각자의 암묵적인 역할이 있나요?

 

이범호암묵적이지 않고 확실하게 파트가 나뉘어져있어요한 사람이 맡기에는 양도 많고싸우게 되잖아요주로 강훈이가 곡 작업을 하고서원이는 콘서트 편곡을 담당하고유동이는 믹스와 후작업세훈이는 A&R과 비즈니스적인 부분을 담당하고저는 사람들이랑 컨택을 주로 해요그런 게 잘 맞기도 하고사람의 성향을 많이 따라가는 것 같아요.

 

 

 

Q. 정규 2집을 위해 여름 휴가 겸 좋은 곡을 쓰러 가기 위해 범호님의 시골집으로 내려가서 송캠프를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어요. 2년 전에도 다녀왔던 곳으로 잭킹콩 브이로그의 첫 시작이기도 한 곳이잖아요송캠프를 위한 곳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세훈합주할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었어요매번 쓰던 합주실에서 하기에는 새롭지가 않았어요. 5명의 사운드를 전부 담아야하니까 소음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곳이었어야 했어요그러다 범호형의 시골집을 찾게 됐어요자주 놀러 가기도 했고단독 주택이고 낮에는 다들 일하러 가니까 조용해서 작업하기도 제격이더라고요.
이범호완전 웰컴 투 동막골에 나올 법한 시골이에요거기서 태어나서 자랐기도 하고멤버들이랑 자주 방문하기도 했던 공간이에요아침 9시에 기상해서 밥 먹고, 12시부터 시작해서 딱 5시까지 작업을 했어요이후에는 알아서 개인 정비 시간을 가지고나름의 어떤 규칙을 갖고 송캠프에 임했어요.  단지 하나 힘들었던 건에어컨이 없었어요.

 

장세훈: 에어컨이 없는 게 제일 큰 이슈였죠.

 

 

Q. 처음으로 간 송캠프였잖아요앞으로도 다녀오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이범호: 여름에는 못 갈 것 같아요. (웃음)

 

신유동: 거의 모든 소스가 송캠프에서 완성된 것 같아요합주실이 너무 익숙한 공간이잖아요아예 많은 곡을 쓰겠다는 목표를 정해두고 다녀오니 확실히 달랐던 것 같아요.

 

이범호개인적으로 송캠프 장소를 정하면서 중요하게 고려한 지점이 ‘합주실이랑 취침하는 공간이 멀지 않아야한다’ 였어요보통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장소가 거의 없거든요인간이 환경에 지배 당한다고 느낀 게노래를 만들면 합주를 하잖아요합주가 힘들거나 만들기 싫어질 수도 있거든요근데 싫으면 어쩔 거야잠도 여기서 자야하는데그런 환경을 조성하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곡이 나온다는 걸 체감했어요망원동 작업실에서 했었으면 그렇게는 못 했을 것 같아요합주가 끝나면 본인의 개인 공간으로 갈 수 있는데여기서는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요.

 

장세훈: 확실히 낭만은 있었어요.

 

 

 

 

 

 

Q. 여름에 송캠프를 다녀와서인지이번 앨범에서 유독 여름이라는 계절이 잘 떠오르는데요살랑거리는 바람흐르는 물을 연상하게 만들고요전반적으로 어떤 사운드를 의도했는지 궁금해요.

 

심강훈곡마다 사운드가 전부 다른데요다르면서도 비슷하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전체적인 사운드 보다는 개별 곡 자체에 신경을 쓴 감이 있어요지금은 9곡이지만 원래는 몇 곡이 더 있어서 추렸어요한여름에 가서 에어컨 없이 작업해서 그런지 여름의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해요.

 

신유동겨울에도 다녀오면 좋겠다.

 

장세훈잘 다녀오고. (웃음원래는 10곡을 채우려고 했어요그런데 1-2곡 정도 추리고 지금 완성된 9곡이 구성이 잘 맞더라고요곡이 너무 많으면 개별 곡에 집중하기 힘들기도 할 테니 적당한 양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Q. 곡이 영어 가사이고앨범 타이틀도 어려운 영어 용어구요평소 한글과 섞어 쓰기는 했어도 본격적인 영어 가사를 차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잖아요의도된 부분일까요?

 

심강훈: 5년 동안 한글이랑 영어를 섞어서 쓰긴 했는데요영어를 유창하게 쓸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보니 저희에게도 도전이고 첫 시도였어요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가삿말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좀 더 다양한 인종이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는데그걸 싱글이나 EP로 풀어내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그래서 정규로 작업하게 된 배경도 있어요.

 

 

Q. 예전 브이로그를 보면 강훈 님이 영어 공부를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잖아요.

 

장세훈: 당시에는 강훈이의 낭만 수치가 100일 때였어요그 이후로 급격하게 (낭만 수치가바닥으로 내려가긴 했어요.

 

심강훈작업을 하다보면 꾸준할 수가 없어요다 내릴 걸 그랬어요.

 

 

 

 

 

Q. 타이틀곡의 뮤직비디오는 제주도에서 촬영했다고 들었어요제주도가 배경인 이유가 있을까요?

 

심강훈‘bay’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 제주도라서 로케이션을 그렇게 잡았어요. ‘Meet me at the bay’는 이별한 연인한테 마지막으로 만나서 춤을 추자는 슬픈 내용을 담은 곡이잖아요다행인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당시에 비가 와서 날씨가 되게 우중충했어요그래서 오히려 가삿말과 비슷한 분위기로 나오지 않았나 싶네요.

 

 

Q. 강훈 님이 배우로 MV에 직접 나와요. MV 촬영을 해보니 어떠셨나요?

 

심강훈음악이 안 나오고 영상만 볼 때는 어색하다고 생각했는데뮤직비디오로 보니까 잘 묻어나더라고요직접 쓴 가사다보니 이입이 잘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장세훈: 진지하게 임하긴 했지만처음에 강훈이가 춤을 추는 장면만 볼 때는 웃음을 참았어요강훈이가 덩치가 꽤 있는 편인데 살랑살랑 움직이니까 조금 웃기더라고요근데 완성본으로 다시 보니까 되게 잘 어울리더라고요어색했지만 보다 보니 잘 맞았다 싶었어요.

 

 

Q. 첫 곡 ‘Meet Me at the Bay’와 마지막 곡 ‘Turn off the Jazz’가 타이틀 곡에 속해요두 트랙을 타이틀로 지정한 이유가 있나을까요?

 

장세훈유력 후보가 세 곡 정도 있었어요기승전결이라고 하죠분위기가 완전히 상반되는 곡이 양 끝에 있으면 괜찮겠다는 이야기도 나눴는데발매 이전부터 미공개 곡으로 공연하고 합주를 많이 했던 곡이 마지막 트랙 ‘Turn off the Jazz’였어요곡 자체가 갖고 있는 스토리가 있다 보니 리스너 분들께 쉽게 와닿을 것 같아서 강훈이에게 어필을 많이 했어요.

 

신유동: 타이틀은 강훈이 형한테 다 맡기자고 했어요제가 의견을 내면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에. ‘Turn off the Jazz’는 사실 제가 앨범에서 제일 좋아하는 곡이라 어필을 많이 했어요흔들리지 않을 만큼만.

 

 

Q. 앨범 전체적인 사운드는 어떤 흐름으로 완성한 걸까요?

 

심강훈이번에는 가삿말로 스토리가 연결되기보다는사운드적인 부분을 신경쓰면서 자연스럽게트랙리스트를 정한 것 같아요앨범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질 수 있게.

 

장세훈밝았다가 어두워지는 것도 있는데갑자기 뜬금없는 사운드가 확 나오기도 하는 것도 있고요스토리 자체로 이어진다기보다 개별 곡에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Q. 뜬금없는 사운드가 나온다고도 했는데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가장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가는 곡이 ‘8’이라고 느껴졌어요앨범에서 유일하게 다른 아티스트가 프로듀싱에 참여한 곡이기도 하구요. BETHEBLUE와 함께 작업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심강훈: ‘8’이라는 곡은 BETHEBLUE 형의 작곡 스타일이나 보컬 멜로디를 같이 녹여보고 싶었어요팔칠댄스를 너무 좋아하기도 하고요이미 틀을 만들어놓은 단계에서 보컬 멜로디나 구성을 같이 작업했어요생각하지 못했던 멜로디나 화성이나 코러스가 나온 것 같아요.

 

장세훈첫 도전이었죠피처링을 요청드리거나 공동 프로듀싱은 해봤어도외부 프로듀서를 초빙해서 아예 맡긴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프로듀싱을 하면서 합주하는데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프로듀싱 방식이 아예 달랐어요드럼 연주를 예시로 말씀드리면, 8비트로 아예 쭉 비슷한 리듬으로 가다가갑자기 16비트로 쪼개질 타이밍이 아닌데 쪼개지는 그런 순간들이 꽤 있었거든요그래서 서로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핑퐁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신유동: 그 곡도 송캠프에 가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곡이에요. BETHEBLUE 형한테 맡기기 전까지는 베이스라인이랑 기본적인 리듬밖에 없었거든요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좋은 편곡이 나와서 되게 긍정적으로 반응했어요가끔은 그런 식으로 다른 아티스트와 함께 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더라고요.
 
 
 
Q. 평소에도 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나요?

 

장세훈: 각자가 하고 싶은 아티스트는 있어요같이 협업하고 싶기도 하고꿈이기도 한데요제가 앤더슨 팩 (Anderson Paak)을 정말 좋아하거든요장르적으로도 잭킹콩이랑 연결성이 조금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드러머이기도 해서 개인적으로도 애착이 가요프로듀싱을 받아보고 싶어요.

 

심강훈: 유동이 핸드폰으로 찾아보고 있는 게 너무 웃겨. (웃음저는 제이클레프를 너무 좋아해서 함께 해보고 싶어요최근에 수민 님 영상을 보고 있는데 수민 님도 너무 좋구요제이클레프와 수민 님 이렇게 함께 해보고 싶습니다.

 

신유동저는 DRP IAN님이랑 작업해 보고 싶어요너무 멋있더라고요.

 
이범호스타일이 다 달라가지고저는 성시경이요개인적으로 발라드 앨범을 내고 싶어요.

 

 

 

 

Q. CJ아지트 광흥창에서 30일에 쇼케이스가 열려요라이브 맛집으로 소문난 밴드가 잭킹콩이잖아요이번 쇼케이스에서 각 멤버별로 공연에서의 라이브나 연주가 가장 기다려지는 트랙은 무엇일까요?

 

심강훈저는 ‘Vultures’이번에 혼세션도 같이 하거든요사운드가 빵빵하게 채워질 것 같아서 기대됩니다.

 

신유동: 아까 좋아하는 곡이 ‘Turn off the Jazz’라고 말하긴 했는데라이브 연주만 놓고 봤을 때는 ‘8’이 제일 기대돼요.

 

장세훈: 강훈이가 먼저 얘기하긴 했지만저도 ‘Vultures’가 이번 앨범에서 가장 넘어야 할 산 같은 트랙으로 느껴져요곡 자체가 되게 타이트하거든요연주를 하면 음악에 흥을 실어야 하니까 흥분을 잘하는 편인데절제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으면서 진행해야잖아요애증의 곡이기도 해요쇼케이스 때 야무지게 했으면 좋겠어요.

 

이범호라이브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곡은 ‘Vultures’에요.

 

 

Q. 이번 쇼케이스에서 관람 포인트로 여겨볼 만한 부분은 뭐가 있을까요?

 

심강훈Apophenia를 설명하면서 이번 앨범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에 대한 인트로 나레이션이 나오면서 공연이 시작되거든요. 100분에서 120분 가량의 러닝타임인데, Apophenia라는 정규 작품을 보고 왔고 느껴질 수 있도록 세심하게 인트로부터 준비했어요첫 인트로부터 강렬하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어요)

 

장세훈스포아냐?

 

심강훈그런가어쨌든 인트로가 정말 멋진 것 같아요준비하면서도 소름 돋았어요.

 

이범호: 너가 나레이션을 하는게?

 

심강훈: 관악기가 등장하는 파트가 너무 멋있어.

 

 

 

Q. 멤버분들의 케미에 대해서도 여쭙고 싶어요온스테이지 2.0에 출연하기도 했고뮤즈온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하고펜타포트 슈퍼루키 대상자로 무대에 선 적도 있죠최근에는 라디오에도 출연했어요매번 우직하게 성장한다는 게 이력에서도 느껴지는데요밴드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각자 무엇일까요?

 

심강훈온스테이지가 제일 컸던 게어려서부터 꼭 해보고 싶은 무대였어요반대로 제일 아쉬운 무대이기도 해요활동한지 얼마 안 됐을 때여서지금 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잘할 수 있겠다 싶어요온스테이지 자체가 지금은 없어져서 아쉬운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장세훈: 저희 합이 완전히 잭킹콩이 되었다 싶었을 때 나갔더라면 좋았을텐데 싶긴 해요. ‘잭킹ㅋ’ 정도일때 였나그때는 그 정도였어요.

이범호: 근데 그런 느낌이 오히려 좋다고 생각해요음악적으로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는 것도 맞으니까요물론 지금 그 영상을 보면 너무 아쉽죠더 멋있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그런 생각 덕분에 이런 콘텐츠나 음악적인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근데 다시 생각하니까 너무 아쉬워요세 영상을 보면  때묻지 않은 아이의 모습이 보여요.

 

심강훈: 범호 형은 뭐가 제일 좋았어?

 
이범호: 나는 부산 록페갔을 때가 제일 좋았어펜타도 정말 좋았지만 코로나 시기라 무관중 송출 때였거든요그래서 희열을 느끼기가 어려운 감이 있었고전날에 도착해서 마지막 헤드라이너 공연을 보고 숙소에 들어갔거든요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밤인데도 ‘사람이 이렇게 많아도 되나?’ 싶은 거예요정말 3대 락페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어요그 다음 날 정말 설레면서 스테이지로 이동했던 것 같아요.

 
 

 

 

 

Q. 그런데 잭킹콩 멤버들은 각자 개인으로 음악 작업을 하지는 않나요?

 

심강훈: 음악 작업은 따로 없고요잭킹콩에 올인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범호: 서원이 같은 경우는 나상현씨밴드나 팔칠댄스, off the menu 등 다른 밴드의 세션으로 활동은 많이 해요건반 연주자가 잘 없기도 해요.

 
장세훈5인조에 풀 세션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흔치 않더라고요주위 친한 밴드들이 많이 찾는 것 같아요.

 

 

Q. 잭킹콩이 함께 한 지 5년차에요인디펜던트 5인 체제로 밴드를 유지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해요잭킹콩의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건 무엇일까요?

 

심강훈: 2집을 준비하는 맥락이랑도 비슷한 게번아웃이 오면 저희는 이겨내려는 마음이 큰 것 같아요잭킹콩이 여기서 무너지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고 생각하거든요제 생각에는 모든 멤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잡초 같은 그런 근성이 있지 않나 싶어요무너지는 순간은 사실 정말 많았어요어쨌든 다른 스텝으로 넘어가면서 이겨내려고 하거든요.

 
 

 

 

Q. 아까 가장 기억에 남은 일과 반대로 가장 시련에 가까웠던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장세훈정규 1집을 발매하고 코로나가 바로 터졌거든요정규를 내고 가보자 하는데갈 수 있는 길이 내리막길 뿐이더라고요그때부터 급격하지는 않지만 텐션이 서서히 내려가지 않았나 싶었어요나름대로 다들 버티고는 있지만 그때 많이 지쳤던 것 같아요.

 

이범호: 데뷔 연도에 비하면 1집을 엄청 빨리낸 편이거든요기억하기로는 발매 후 1년 간의 스케쥴이 어느 정도 그려져있는 상황이었는데 하나씩 취소가 됐어요. 1~2주 전에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하면서 예정되어 있던 공연이 갑자기 취소되는 경우가 많았어요콘텐츠도 찍을 수가 없었어요. 4인 이상 모일 수가 없으니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죠지금에야 추억이지만당시에는 괴로웠죠.

 

장세훈아예 못하면 상관없는데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취소되니까 힘들었죠페스티벌에도 나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는데전부 취소가 됐고공통된 시련이라고 하면 당시가 아닐까 싶네요.

 

 

Q.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있을까요?

 

장세훈: 술 때문에 싸우고술로 화해하는 느낌이 있어요술이 양날의 검처럼결속력을 주다가도 갑자기 흐트러지기도 하잖아요.

 

 

Q. 요즘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밴드 소식을 홍보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밴드 붐이 올 거다와 같은 밈이 넘쳐나는 시대잖아요밴드 멤버로서 밴드 씬이 조금씩 부흥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심강훈전보다는 훨씬 활발해졌다고 생각해요그런데 잭킹콩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밴드 사운드에 부합하는 밴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록밴드가 흥행하는 과정에서 한 번씩 노출이 될 수는 있겠지만편승만 하지 않고 저희 나름의 계획을 짜는 게 훨씬 필요하다고 생각해요밴드씬이 커진다고 우리의 음악도 같이 상승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지도 않아요.


장세훈: 기존의 밴드와 다른 색깔이 유니크하니까 자신감을 키워줄 수 있는 무기라고 처음에 생각했어요색깔이나 결이 맞는 밴드랑 색다른 공연을 만들고 싶은데장르적으로는 록 밴드가 많잖아요의외로 재미있는 기획을 만드는 데에 한계점이 될 때도 있어요다양성의 측면으로 볼 때는 아직도 엄청 색깔이 화려하지는 않다고 생각하거든요강점이면서도 단점이랄까.

 

 

 

 

 

 

Q. 밴드 활동을 하지 않는 상황에도 불현듯 잭킹콩이 떠오르는 순간이 있나요?

 

이범호음악 외적으로 다섯 명이 있다고 치면잭킹콩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있을 때는 굉장히 동네 친구들처럼 놀거든요싸우기도 꽤 싸우고그리고 유동이나 다른 멤버들이 빵 터지게 했던 개그가 있어요특히 야구로 따지면유동이가 타율은 높지 않는데 한방을 치면 무조건 만루홈런이거든요그런 게 갑자기 생각날 때는 있죠어울리면서 술 한잔 하고재미를 느끼고 싶다는 생각은 하죠.

 

장세훈수많은 시도 끝에 한번이 터지는 거예요.

 

심강훈0 7푼이죠. 10번 중의 0.7그런데 그 한번이 모든 것을 상쇄시켜요.

 

신유동: (웃음개그 욕심이 있는 건 아닌데형들한테 계속 장난을 치고 싶어져요모든 자리에서는 아니지만형들이랑 있을 때는 확실히 케미가 좀 있는 것 같아요.

 

 

Q. 유동님은 확실한 막내인 것 같은데멤버 분들한테 예쁨을 받는 것이 느껴지시나요?

 

신유동.

 

장세훈: 미운 네 살이라고 하잖아요한창 귀여울 때 말고귀엽다가 얄밉다가 해요.

 

심강훈: 막내 같다는 느낌이 나지는 않지만그래도 막내는 막내가 맞는 것 같아요그냥 못된 고양이라고 적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웃음)

 

 

 

Q. 각자가 생각하는 잭킹콩은 어떤 존재인가요?

이범호예전부터 멤버들한테 강요 아닌 강요를 했었는데, (잭킹콩을인생의 0순위를 두라고 했어요차선으로 계속 밀려나게 되면잭킹콩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생길 수도 있지만음악을 하면서 가장 0순위를 두어야 할 건 잭킹콩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장세훈: 공부하라고 하면 하기 싫잖아요다들 0순위로 생각하고 있는데그걸 말로 꺼내면 괜히 거부반응이 생기는 느낌? (웃음진짜 듣기 싫었어요.

 

신유동범호 형 말이 너무 길어서 그런데질문이 뭐였죠? (웃음저는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장세훈지금은 정말 삶의 일부인 것 같아요전부라고 하고 싶지는 않고요일부긴 일부인데 퍼센티지가 많은 일부제 삶의 루틴이 잭킹콩만을 위해 돌아가고 있기도 하고요어떻게든 잘 해내고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커서 인생 자체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요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일부라고 볼 수 있겠네요.

 

심강훈지금까지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도 잭킹콩 덕이고저한테는 꿈같은 존재이긴 한데요현실적으로 따지면 직장인 것 같아요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고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잭킹콩 밖에 없거든요다니고 싶었던 직장을 다니는 느낌이에요.

 

신유동음악이라는 직업이 중간이 없다고 생각해요모 아니면 도인 직업인데예전에는 기대도 많이 하고 베팅하는 것처럼 정말 쏟아붓고 그랬어요.

 

장세훈: 그래서 잃은 게 많아얻은 게 더 많아?

 

신유동: 지금 이 순간은 잃은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웃음인생의 일부전부라고 할게아뇨일부라고 하겠습니다. (웃음덤덤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허황된 꿈을 꾸려고도 하지 않고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올해 잭킹콩을 만날 수 있는 기회나 구상 중인 계획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범호이번 쇼케이스를 마치면 저희가 참여하는 공연들이 있을 예정인데요각지 공연장에서 뵙게 될 것 같아요.

 

심강훈24년에는 잭킹콩이 더 많은 공연으로 찾아뵐 것 같고또 그게 목표이고요라이브 클립이라던가브이로그 같은 콘텐츠로도 찾아뵙는 것이 목표입니다.

 

장세훈더 나아가 해외까지.

 

신유동더 나아가 화성까지미안.

 

장세훈: 유동이가 저런 식으로 시도를 많이 하다가어느 순간 얻어걸려요해외 진출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주변 밴드를 보면 대만이나 일본도 많이 가더라고요가까운 나라부터 방문하면서 해외 공연을 경험해 보고 싶은 그런 마음도 있습니다.

 

 

 

리스너에서 아티스트까지, ‘요’ 정규 1집 발매 기념 인터뷰

리스너에서 아티스트까지, ‘요’ 정규 1집 발매 기념 인터뷰

 

음악을 즐겨 듣고, 더 나아가 제작하던 사람들이 인터넷을 매개로 조금씩 단결하면서 국내에서 슈게이징/포스트록 장르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요즈음이다. 이와 같은 국내 음악씬의 특이점을 잘 설명하는 현상 중 하나가 기획공연 <Digital Dawn>이 아닐까싶다. 유사한 흐름 속에서 또 한 명의 아티스트가 혜성같이 등장했다. 바로 독특한 소재와 전개 방식을 담은 데뷔작으로 국내외 매체에서 조명을 받고 있는 ‘요’다.

요는 지난 1월에는 밴드 캠프, 그리고 2월에는 포크라노스를 통해 정규 1집 <희망열차를 타고 우주로 가요>라는 음반을 발매한 아티스트다. 음악을 소비하는 흐름에 나날이 가속도가 붙고, 뮤지션들은 음악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머무르기에 각박한 시대에서 6개의 트랙이 수록된 40분짜리 정규 앨범을 발매했다는 점은 인상 깊은 사실이다. 보기 드문 방식으로 주목을 받으며 등장한 점도 놀랍지만, ‘보다 많은 청취자를 모으기 위한 간단한 해결책이 바로 정규를 발매하는 것’이라는 본인의 고민에 대한 결론이 더욱이 흥미롭다.

연휴가 끝난 후, 요를 만나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티스트로서 음악을 대하는 모습만큼이나 리스너로서 음악을 대하는 모습이 인상깊은 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실감하는 가운데, 현실과 괴리감이 느껴진다는 그는 정말이지 음악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리스너로서의 모습이 더욱 두드러졌다. 그럼에도 장르라던지, 세션에 대한 갈증이라던지 음악이 발매되는 현상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겠다는 음악을 향한 순수한 포부와 애정에서는 아티스트적인 면모가 돋보였다. 이처럼 리스너와 아티스트 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는 이유는 진부할 지는 몰라도, 그간 오랜 시간 보여온 음악을 향한 순수한 사랑 덕분이 아닐까 싶다. 이번 작품을 발매하기까지 리스너이자 음악가로서의 삶부터 정규 1집의 제작기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학교를 다니고 있고, 예전에 다니던 동네 수학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하나의 ‘요’입니다. 평범한 대학생이고요. 지난 1월 밴드캠프를 통해 릴리즈한 정규 앨범 <희망열차를 나고 우주로 가요>를 2월에 정식으로 발매했습니다.

 

 

Q. ‘요’라는 아티스트 명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아티스트명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은 전혀 없어요. 재작년 쯔음부터 세션 활동을 하면서 음악 하는 친구들을 조금씩 만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불리는 것에 익숙해졌어요. 장난으로 시작한 이름이기도 해서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요’가 소장 중인 The Velvet Underground 음반

 

 

 

Q. 첫 정규 앨범이 정식으로 발매된 지 일주일 정도 시간이 지났어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설 연휴를 앞두고 발매했던 지라 그냥 평범하게 큰집을 다녀왔고요. 많이 쉬었던 것 같아요. 철저하게 리스너로서의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Q. 리스너의 삶을 살았다고 하셨는데, 안 그래도 예전부터 사운드 클라우드에 여러 커버곡을 올려왔어요. 평소 음악을 다양하게 들으시는 편인 것 같은데요,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나요?

 

인생 앨범이라고 여겨질 만한 작품이 몇 개 정도 있는데요. 스무 살 때 The Velvet Underground의 2집 <White Light / White Heart>를 처음 듣고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요. 거의 반년 동안은 이 음반만 들었던 것 같아요.

 

 

 

‘요’가 11살때 살던 집의 마당

 

 

 

Q. 이번 정규를 정식으로 발매하기 전부터 밴드 캠프나 사운드 클라우드 등을 통해 음악 활동을 계속 해왔어요. 음악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11살 때부터 기타를 쳤었는데, 당시 살았던 집에 넓은 마당이 있었어요. 노래를 크게 부르거나 기타를 시끄럽게 칠 수 있는 그런 자유로운 환경에 놓여 있었던 거죠.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그러진 못하지만, 그때는 마당에서 통기타 한 대 들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그러면서 음악을 만들었어요.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고, 편곡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만들게 된 지는 2년이 조금 넘은 것 같아요.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부터 제대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Q. 정규 단위로 작업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나요?

 

예전부터 제가 음악을 해오던 사실을 알고 계신 분들이나 주변 지인들은 알고 있을텐데요. 2년 전 유튜브에 정식으로 발매한 앨범이랑 똑 같은 타이틀로 정규 작업물을 올린 적 있어요. 동명의 6번 타이틀 트랙 ‘희망열차를 타고 우주로 가요’를 제외하고는 지금의 수록곡이랑 전부 다른 곡이었어요. 아무리 들어도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부끄럽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내려버렸어요.

 

이후로 제대로 뭔가를 만들어본 건 처음인 것 같아요. 내리고 나서 반년 후부터 EP를 계획했어요. EP의 수록곡으로는 ‘틸리쿰’, ‘신의 선물’, ‘3:16’이 있었어요. 거기에 살을 조금 더 붙이고, 몇 트랙을 추가해서 만든 앨범이 지금의 <희망열차를 타고 우주로 가요>입니다.

 

 

Q. 본격적으로 정규 단위로 앨범을 제작하는 데에 있어서 어떤 부분의 공이 제일 컸을까요?

 

어떤 특정한 기회 덕분에 앨범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고요. 모르겠어요. 음악을 만드는 방식이 자유로운 편에 속하는 것 같아요. (음악이) 저를 계속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어서 그냥 만들어요. 평상시 말로 풀어내기 힘든 이야기들이 음악으로 표현되는 걸 몇 번 경험한 덕분인 것 같아요.

 

 

Q. 파란노을의 단독공연 <~After the Night~>에서 기타 세션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요’라는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어요. 파란노을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요?

 

소중한 비밀의 인터넷 공간에서 만났습니다. (웃음)

 

 

Q. 큰 공연에서 세션으로 참여한 경험도 남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네, 살면서 300명 앞에서 기타를 연주할 수 있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아직도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희망열차를 타고 우주로 가요> 앨범 커버

 

 

 

Q. 그러면 본격적으로 정규 앨범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희망열차를 타고 우주로 가요>에 대해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사실 앨범을 발매하기 직전까지도 인터넷에 업로드할 생각만 했지, 앨범에 관한 설명이나 홍보에 대한 준비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어요. 발매된 후부터 비즈니스적인 측면을 생각하다 보니, 리스너 분들한테 앨범을 제대로 소개드리지 못한 것 같아요.

 

간단하게 소개하자면요, 수록곡 전부 제각각 다른 시기에 만들어졌어요. 가장 가까운 시기가 1년 전이고, 가장 먼 시기는 7년 전이에요. 7년 전에 만들어진 곡은 ‘희망열차를 타고 우주로 가요’구요, 1년 전에 만들어진 곡은 ‘황금성’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희망열차를 타고 우주로 가요>가 요의 첫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Q. 자택을 비롯하여 Studio Tardis, JS Studio, Studio Pangea, 무중력 연구소 총 5곳에서 레코딩을 진행했어요. 여러 장소에서 작업한다는 것에 분명 장단점이 명확했을 것 같은데, 소회가 궁금해요.

 

말씀해주신대로 장단점이 정말 명확하다고 느꼈어요. 당시에는 ‘앨범을 만들게 되면 레코딩은 무조건 스튜디오에서 진행하자’라고 생각했어요. 60~70년대 음악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 시대의 앨범들은 거의 다 스튜디오에서 제작했거든요. 홈레코딩이라는 개념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기도 했지만, 하여튼 녹음하게 된다면 꼭 스튜디오에서 해야겠다고 다짐했었어요.

 

그러고 나서 실제로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받아본 파일을 제 노래에 입혀보는데, 그 작업이 정말로 어렵더라고요. 감당하기 벅찬 소스들을 다루다 보니 스스로 미숙함이 느껴져서 발매 직후에 후회가 남더라고요. 지나간 일이기도 해서 그냥 특이한 경험으로 남아있긴 해요. 아마 다음 작업을 하면 조금 더 디벨롭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긴 해요.

 

 

Q. 연주에 참여한 세션 분들과 더불어 작업 과정에서 맺어진 다양한 인연이 분명 존재했을 것 같아요. 이번 작업을 통해 맺게 된 새로운 인연이나, 그분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생긴 일화가 있을까요?

 

우선 앨범과 관련해서 조금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어요. 레코딩 엔지니어 분들이 직접 연주에 참여한 걸로 알고 계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Piano shoegazer 님의 경우, 연주에 직접 참여하신 게 아니라 레코딩을 도와주신 거였어요. 그래서 작업에 참여한 사람이라고 하면 트럼펫의 Fin Fior, 피아노의 이수민, 드럼의 이근원, 이렇게 3명 정도예요. Fin Fior 님은 <~After the Night~> 공연을 같이 진행하면서 만나게 됐어요. 근원 님 같은 경우는 수민 님을 통해서 알게 됐고요.

 

처음에는 많은 세션 분들이 참여하는 음반을 만들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연주할 수 없는 특정한 악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제가 연주하긴 했어요. 우선 드럼을 못 치고, 피아노를 수민 님만큼 연주하지 못하고, 트럼펫도 불 줄 몰라서 그런 부분을 세 분께 맡겼어요. 많은 사람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지라 다음에는 조금 더 스케일을 크게 가져갈 생각입니다.

 

 

 

스튜디오 현장 속 레코딩 도중에 찍은 사진

 

 

 

Q. 처음에 구상했던 세션 인원은 대략 몇 명 정도였나요?

 

정확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연주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1인 다역을 해야한다는 점이 가장 어려웠거든요. 어제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었다가, 오늘은 기타를 치는 사람이 되고. 내일은 베이스를 치는 사람이다가, 모레에는 믹싱을 하는 사람이 돼야 했어요. 그 과정이 쉽지 않았던 것 같아서 다음 작업에서는 협업을 조금 더 늘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Q. 협업을 늘린다고 하더라도 ‘이 부분만큼은 꼭 내가 담당해야겠다’ 하는 파트가 있다면요?

 

제가 하고 싶은 건 우선 보컬이요. 그리고 믹싱은 일부분 정도로만 참여하고 싶어요. 물론 허황된 꿈일 수도 있습니다.

 

 

Q. Piano Shoegazer 님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아 레코딩 작업을 해주셨나요?

 

공연장 뒷풀이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어요. 몇 번 대화를 나누다, Piano Shoegazer 님의 작업실에 굉장히 좋은 피아노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어요. 그래서 겁도 없이 부탁을 드렸어요. (웃음) 그런데 흔쾌히 받아주셨고 결과물도 만족스러워서 좋은 레코딩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오르간 사운드 레코딩 현장

 

 

 

Q. ‘신의 선물’이라는 트랙에는 “꿈을 태운 희망열차”라는 소재가 등장하기도 하고, 밴드캠프에서는 선공개 싱글로도 발매된 적이 있어요. ‘신의 선물’이 이번 앨범의 기반이 되는 트랙으로 이해해도 무방할까요?

 

실제로 앨범의 중추적인 곡을 ‘신의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 노래 때문에 앨범을 만드는 중간에 트랙리스트를 바꾸기도 했고요.

 

‘신의 선물’은 살면서 가장 끔찍한 경험을 했던 때에 만들어진 곡인데요. 원래는 제가 희망적인 편에 속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 일을 겪고 난 뒤로는 많이 바뀌었거든요. 그런 과정을 잘 담아낸 곡이기도 해요. 그래서 ‘신의 선물’은 사실 희망열차가 무너지는 모습에 가까운 곡이에요.

 

 

Q. 7년 전부터 1년 전까지의 시기에서 ‘신의 선물’은 언제 만들어진 곡이에요?

 

2021년에서 22년 사이에 만들어졌는데요. 가사는 더 오래전에 써놨었고, 곡으로 만들었던 게 22년도쯤이었던 것 같아요.

 

 

 

 

 

 

Q. 각 트랙의 러닝타임이 기본적으로 5분이 넘어가고, 트랙 내에서도 전개 방식이 빈번히 전환한다는 점이 인상 깊어요. 멜로디 라인을 짜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요소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말씀해 주신 부분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트랙들이 ‘틸리쿰’, ‘신의 선물’, ‘3:16’일 텐데요. 그 곡들은 전부 원테이크로 제작됐어요.   녹음할 때 즉흥적으로 연주하면서 마음가는 대로 멜로디를 만들었어요. 구성상으로도 데모 버전에서 크게 바뀐 부분은 없어요.

 

이번에 작업할 때는 첫 테이크를 훼손하지 말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희망열차를 타고 우주로 가요’는 아무래도 7년 전에 만든 곡이라 하도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진 않고요. 2번 트랙 ‘단비’는 갖고 있던 세 곡을 합친 곡이고,  평소 갖고 있던 짤막한 기록물처럼 데모를 많이 남겨뒀던 편이라 합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수록된 트랙은 6개인데, 앨범의 러닝타임이 40분이잖아요. 그런데 세 곡 씩이나 원테이크로 만들어졌다니 놀랍습니다.

 

앨범을 만들기 전에 유일하게 고려했던 것 중 하나가 음반 길이에요. 앨범의 러닝타임은 40분으로 정해두고 있었어요. 70년대 아티스트의 앨범을 되게 즐겨듣는 편이에요. 아까 말씀드렸던 The Velvet Underground의 앨범도 6곡에 40분의 길이가 되는 음반이고요. 제가 즐겨듣는 앨범을 말씀드리면, David Bowie의 <Station to Station>, ‘The The’라는 밴드의 <Soul Mining>, Slint의 <Spiderland> 등이 있어요. 그 당시를 살아보지 않아서 많은 아티스트들이 40분의 길이를 의도하고 발매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음악을 듣다 보니 본능적으로 이게 맞다고 느껴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6~7곡 정도로 발매하게 된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부족한 점이 많이 느껴져서 다음에 조금 더 괜찮게 내 볼 생각입니다.

 

 

 

인터뷰에서 언급된 앨범들, (우측 상단에서부터) David Bowie <Station to Station>,
The The <Soul Mining>, Slint <Spiderland>, 파란노을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Q. <희망열차를 타고 우주로 가요>에 영향을 준 앨범이나 아티스트도 있을까요?

 

음악적으로 영향을 준 앨범은 너무 많지만, 내 음악을 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앨범은 아마 당연히 파란노을의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이지 않을까 싶어요.

 

 

Q. 개인적으로 특별히 애착이 가는 트랙이 있을지도 궁금해요.

 

그 질문을 하루 종일까지는 아니어도, 꽤 오래 생각해 봤는데요. (웃음) 그런 건 없더라고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신의 선물’이라는 곡을 기점으로 트랙 리스트를 바꾸기도 했어요. ‘신의 선물’이 들어간다면 ‘3:16’이랑 ‘황금성’을 수록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몇몇 곡은 빠지게 되었습니다.

 

 

Q. 빠진 곡은 대략 몇 곡 정도가 되나요?

 

사실 2CD로 내겠다는 위험한 생각도 했었어요. (웃음) 그만큼 꽤 많았어요. 도중에 ‘신의 선물’이 수록되면서, ‘3:16’이랑 ‘황금성’도 앨범에 함께 수록이 됐고, 아쉽게 몇몇 곡들은 빠졌어요.

 

대부분의 음악 하는 분들은 아마 공감하실 것 같아요. 이미 만들어 둔 곡은 많은데, 그중에서 어떤 트랙을 배치해서 작품을 만들까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하게 되거든요. 결국에는 제가 듣기에 제일 좋다고 생각되는 노래들을 고른 것 같아요.

 

 

Q. 여섯 곡 모두 소재도 독특하고, 가사도 마냥 희망적이지 않아요. 그럼에도 ‘우주를 향해 가는 희망열차’로 엮어낼 수 있었던 교집합이 무엇이었을까요?

 

제일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 같아요.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저는 이 앨범이 컴필레이션 앨범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분들이 ‘희망열차’라는 틀로 엮어주신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구요. 듣는 분들에게 앨범을 넘겨드린 거라고 생각해서, 그분들이 판단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Yo / khc 신도시 라이브 포스터

 

 

 

Q. 24일, 신도시에서 khc와 공연을 앞두고 있어요. 아마 공연이 끝난 후에 인터뷰가 릴리즈되겠지만, <희망열차를 타고 우주로 가요>를 라이브로 감상하는 사람들이 눈 여겨보면 좋았을만한 포인트가 있을까요?

 

정식으로 앨범을 발매하고 난 후의 첫 라이브 공연인데요. 라이브 제의가 들어올 거란 기대를 아예 하지 않았다가 감사하게도 연락을 주셔서 준비하고 있어요. 가볍게 보고 재미있게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공연에 이수민 님이 참여를 해주세요. 그분과 저의 대결을 눈여겨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승자가 누군지 알아맞히는 공연이 될 것 같아요.

 

외람된 이야기긴 하지만 평소에도 세션 활동을 여러 번 해봤다 보니까, 세션 활동에서도 피로함이 있다는 걸 연습하면서 좀 느꼈어요. 세션하는 사람들도 너무 피곤하게 하지는 않았으면 해서 제대로 준비를 했을 때 밴드 셋을 하고 싶어요. 하게 될지 안 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요.

 

 

Q. 세션 활동의 피로감이라하면, 어떤 이유에서 느껴지는 것일까요?

 

그냥 갈증이었던 것 같아요. 제 음악을 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의 곡을 연주하는 거니까요. 자기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갈증이라고 생각해요.

 

 

 

유튜브 채널 Crushing Dreams에 업로드된 <희망열차를 타고 우주로 가요>

 

 

 

Q. 밴드캠프 뿐만 아니라 정식 발매 이후로 각종 국내외 커뮤니티, 음악 매체에서 조금씩 언급이 되고 있어요. 주변의 반응은 실감되는 편인가요?

 

여태까지 사람들한테 이렇게까지 많은 반응을 받아 본 적 있는 사람이 아닌데, 처음에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다 찾아봤었어요. 특히 Crushing Dreams 채널 덕분에 외국 청취자 분들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채널을 운영하는 분께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외국 청취자 분들한테 연락이 더 많이 오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청취율이 더 높게 나오기도 하더라고요.

 

언젠가부터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 같아서 최근에는 검색하고 찾아보는 게 조금 꺼려지더라고요. 작년부터 꾸준하게 하고 있던 것들을 갑작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다보니까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부담감 같은 것도 있을까요?

 

사실 <희망열차를 타고 우주로 가요>를 발매하고 나면 더 이상 음악을 만들고 싶지 않을 줄 알았어요. 작년에 작업하면서 정말 질리도록 준비했거든요. 다시는 음악을 안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막상 발매하니까 음악이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다시 리스너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좋아하는 곡들을 찾아 들을 것 같아요. 정규 앨범을 준비하다보니 부족한 점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서, 그런 포인트를 잘 보완해서 만들고 싶어졌어요.

 

 

Q. 어떤 부분에서 특히 아쉬움을 느꼈나요?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믹싱이요. 혼자 하니까 결과물이 아주 아쉽더라고요. 그리고 이번 앨범에서는 제가 만든 곡 중에서도 유독 극단적인 곡들을 많이 수록했어요. 지금보다는 조금 더 편안한 노래들을 넣은 앨범을 만들고 싶어요. 사실 ‘신의 선물’ 같은 노래를 내면 사람들이 ‘뭐야, 이 시끄러운 건?’이라고 받아들일까봐 걱정되기도 했어요. (웃음) 재미있게 들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희망열차를 타고 우주로 가요> 앨범 커버 가안

 

 

 

Q. 짧은 길이의 음악이 속도감 있게 소비되는 세상에서 <희망열차를 타고 우주로 가요>와 같은 정규 앨범으로 정식 데뷔를 한 점이 인상깊어요.

이번에 발매를 하면서 정규를 발매하는 방향으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 사운드 클라우드에 여러 곡을 꽤 자주 올릴 때마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듣게 만들지?’와 같은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냥 정규 앨범을 내는 거더라고요. 정규를 내니까 많이 들어주시더라구요.

 

 

Q. 본인만의 해답이 간단명료하게 나온 것처럼 보여도, 꽤 오랜 시간 음악 활동을 하다 이제 막 빛을 보기 시작했다고 해도 무방하잖아요. 이 시대에 프로그레시브 록, 혹은 슈게이징 아티스트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희망열차를 타고 우주로 가요>를 검색하면 ‘아트록 앨범이다’, ‘아트록이다’, ‘프로그레시브록이다’, ‘인다 록이다’ 같이 장르에 대한 정보가 나와요. 정작 저는 앨범을 발매하기 직전까지도 이 앨범의 장르를 모르고 있었어요. 노래를 만들면서도 생각해 본 적은 없고요.

 

또 기획공연 <Digital Dawn>을 필두로 슈게이징 아티스트들이 되게 많아지고 있는데, 저는 사실 슈게이징이라는 장르를 고려하고 앨범을 만들지는 않았긴해요. 장르에 노래를 가두는 것도 딱히 좋은 현상은 아닌 것 같아요. 좋은 음악은 들었을 때 좋은 거지, 장르가 크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잘 모르기도 하고요.

 

일생 내내 음악을 만들면서 살아 간 아티스트들이 몇 분 계시잖아요. 예를 들면, David Bowie (데이비드 보위)나 Microphones (마이크로폰즈)와 같은 아티스트들이요. 둘다 좋은 앨범을 꾸준히, 그리고 많이 내던 음악가이기도 하죠. 저도 그런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Q. 이때까지 들어온 음악의 영향이 정말 큰 것 같아요. 발매 이후에 이어질 활동 계획이 있다면 이 자리를 통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먼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마도 학교에 다니고 있을 거예요. 지금처럼 아이들을 봐주고, 만들고 싶은 음악을 만들 것 같습니다.

 

 

Q. 리스너 분들께도 한 말씀 해주시고 인터뷰 마무리하겠습니다.

 

진심으로 앨범을 들어주신 한 분 한 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많은 분이 들어주실 줄 몰랐어요. 발매 직전까지도 가늠이 안 됐고, 예측도 전혀 못 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특히 외국에서 청취하고 계실 분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데,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웃음) 다양한 방식으로 서포트를 해주신 분들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불안이라는 무기, JOONIE 인터뷰

 

불안이라는 무기, JOONIE  EP <No one can hunt me> 발매 기념 인터뷰

 

음악을 매개로 아티스트와 청자가 소통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기에, 분출 직전에 놓인 에너지에 음악이라는 뼈대를 기반으로 언어적인 살을 붙여내는 아티스트도 존재하는 반면, 쉽사리 언어적으로 풀어내기 어려운 예술적인 감각을 직관적으로만 전달하는 아티스트도 존재한다. 일렉트로닉 뮤지션 JOONIE는 후자에 가깝다. 자신만의 뚜렷하고 명확한 지향성을 본능적인 감각을 통해 세련되게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청자로 하여금 상상력의 지평을 더욱 확장시킬 수 있게 하고, 어쩌면 직관적으로 와닿기에 더욱 강렬하게 다가올지 모른다.

 

몽환적이면서도 칠한 사운드에 신비로운 보컬이라는 개성을 가진 아티스트 JOONIE가 지난 12월, 세 번째 EP <No one can hunt me>로 돌아왔다. 내면의 불안함을 강점으로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을 지켜낼 무기로 삼겠다는 앨범의 테마에 맞게, 깔끔한 사운드에서는 비장하고 결연한 자세가 드러나는 듯하고, 시각적으로 신선한 비주얼적인 컨셉에서는 감각적인 요소를 세심하게 엮어낸 흔적이 느껴진다. 사회적 이슈뿐만 아니라 미술이나 영화 등, 전반적인 예술 분야에서 영감을 받아 다채로운 감각을 밀도있게 채워내는 JOONIE를 만나 앨범에 대한 이야기부터 종합적인 관심,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지향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Q.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얼터너티브 일렉트로닉 뮤지션 JOONIE 라고 하고요. 이번에 세 번째 EP를 발매했습니다.

 

 

Q. EP가 발매된 지 한 달 가량 흘렀는데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첫 단독 공연이 잡혀 있어, 앨범을 내고 바로 공연 준비에만 집중했어요. ‘첫 단독공연’이라는 키워즈에 욕심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공연이 다가올수록 부담스럽긴 했는데, 중간에 3일 정도 캠핑을 다녀왔어요. 머릿속이 좀 정리되면서 ‘될 대로 돼라’ 이런 자세로 임하게 되더라고요. 공연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눈 떠보니, 벌써 새해더라고요. 어영부영 살아가는 느낌입니다.

 

 

Q. 최근 iiR에서 진행했던 공연 말씀이죠? 붉은 조명이 인상 깊었어요.

 

원래는 조명 없이, 저한테만 붉은빛을 작게 비추는 걸 기획했어요. 시각적으로 강렬하기도 하고, 저격용 총을 조준하면 물체에 빨간 불빛이 뜨잖아요. 그런 점이 앨범 컨셉이랑도 잘 맞겠다 싶었어요. 그러다가 전체적으로 붉은 톤을 내게 되었는데, iiR에서도 주로 사용하는 조명이 붉은색이더라고요. 공간 특유의 분위기가 제 기획과 잘 맞아서 조명을 붉은색으로 쓰게 됐어요.

 

 

 

 

 

Q. ‘조용한 방’이라는 AI 아트워크 작업 계정을 운영하고 계신 걸 인스타그램에서 봤어요. 최근의 관심사일까요?

 

1년 반? 2년 전에 처음 시작했어요. 우연히 AI 포토그래퍼들이 만든 사진을 접했는데, 무슨 원리인지 궁금해지더라고요. 디깅하면서 그게 AI작업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때까지는 AI가 수면 위로 올라올 만큼 발전된 상태는 아니었어요. 손가락이나 이목구비 같은 디테일이 잘 다듬어지지 않아서 기괴한 형상으로 표현되는 수준이었어요.

 

키워드를 넣어 가면서 연습하는데, 빠른 시간 안에 실사에 가깝게 구현되더라고요. 그래서 욕심과 호기심이 생겼어요. 평소 상상하는 그림이 많은 편이라, 시각적으로 기록을 남겨보면 좋겠다는 마음에 여러 작업물을 만들기도 했고요. 혼자 보기 아까우니까 계정을 만들어 아카이빙하고. 지금은 본업에 집중하느라 계정 운영이 소홀하긴 했는데, 조만간 다시 해볼 생각이에요.

 

 

Q. 실제 작업물을 ‘pigfrog’의 앨범 아트워크로도 활용하기도 했잖아요. 이번 작업에서는 AI 아트워크가 아닌 다른 작가와 함께한 이유가 있나요?

 

만들어내고 싶은 정확한 것이 있을 땐 작업자 분과의 협업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요. 확실하게 원하는 디테일적인 이미지는 없고, ‘분명 재미있는 게 있을 것 같은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 때는 AI의 도움을 받아보는 거죠.

 

 

Q. 음악도 그렇고, 시각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보여요. 평소 영향을 주는 아티스트가 있나요?

 

누구한테 어떤 부분을 영향받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웃음), 의식하지 않아도 영향받는 아티스트들이 있긴 한 것 같아요. 베아1991 (BEA1991), 사야 그레이 (Saya Gray), 세가 보데가 (Sega Bodega), 제임스 블레이크 (James Blake)처럼 사운드적인 에고가 분명한 프로듀서의 음악을 좋아해요. 시각적으로는 곤 사토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등이 생각나네요.

 

아티스트가 아니더라도 평소 온갖 것들에 영감을 많이 받아 아카이빙을 많이 해요. 게임의 한 장면이라든지, 어느 브랜드 룩북이나 가구, 건물 등 다양한 이미지들이 그 안에 있어요.

 

JOONIE의 AI 아트워크 작업물

 

 

Q. 앨범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세 번째 EP <No One Can Hunt Me>를 간단하게 소개해주세요.

 

불안과 자유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서 만든 앨범인데요. 불안이 늘 저와 함께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나서부터는 그게 제 무기가 되었어요. 전혀 의도한 바는 없었지만, 내 음악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결국 불안이라는 뿌리에서 나온 것 같더라고요. 의식하지 못한 순간에도 불안을 무기로 사용하고 있었구나 싶었어요. 제 자신을 괴롭히던 불안이 무기가 된 이상, ‘이젠 나를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어’라는 무식하고 용감한 마음이 담긴 앨범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Q. 불안에 대해 언급해 주셨는데, 많은 키워즈 중에서도 이번 앨범에 ‘Hunt’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가 있나요?

 

넷플릭스 드라마 ‘1899’라는 시리즈에 독일의 민요가 나와요. <그러므로 언제라도 생각은 자유로워라>라는 제목의 민요인데요. ‘생각은 자유로워라, 누가 그것을 짐작할 수 있을까, 생각은 밤의 그림자처럼 자유로이 날아다니네’와 같은 가사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중에서도 ‘누구도 그 사실을 알 수 없고, 어떤 사냥꾼도 쏠 수 없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그 구절이 ‘누구도 나를 방해할 수 없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더 큰 기백이 느껴지더라고요. 그 표현력이 좋았어요. 그때 사냥이라는 키워드에 꽂혔던 것 같아요.

 

 

 

 

 

Q. 사냥이라는 키워드 때문인지 이번 앨범의 비주얼 컨셉도 굉장히 강렬해요. 앨범아트 속의 ‘가위’, ‘염소’ 등의 아이템이 상징하는 바가 있나요?

 

비주얼 작업을 할 때, 꼭 어떤 메시지를 담으려고 하기보다는 사운드와 어울리는 이미지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에요. 처음엔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어떤 크리쳐를 내세우고 싶은 의도가 있었어요.

 

디벨롭 하다보니 새하얀 아기염소가 돼버리긴 했지만.. ‘염소’같은 경우는, 원래 흰 털을 가진 새끼 염소가 예전에는 악마의 동물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종교적 배경이나 특유의 눈동자 때문이라고도 하고요. 그런 부분은 우연히 잘 들어맞은 경우이긴 해요. (웃음) 대단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는 않아요.

 

 

Q. 비주얼 협업은 어땠어요?

 

아트워크 같은 경우도 그렇고, 앨범의 컨셉을 잡아가는 과정에서도 비주얼 디렉터 Now Kim과 함께 작업했어요. 원래 비주얼 작업을 항상 혼자 하다가 이번에 처음 협업을 진행했는데요. 두 명 이상의 사람이 소통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만들고 싶은 그림에 관해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발생하잖아요. 오히려 그런 상황 덕분에 스스로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원하던 그림을 더욱 선명하게 이해하게 되고요.

 

 

Q. 올 화이트 의상 컨셉에서도 중요하게 고려했던 지점이 있나요?

 

잘 보일진 모르겠지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겉에 두르고 있는 딱딱한 재질의 코르셋이에요. 원래는 허리디스크 보조기구거든요. 나영(Now Kim)이가 관련 레퍼런스를 보여줬을 때 ‘이거다’ 싶었어요. 갑옷 같으면서도 미학적으로 괜찮더라고요. 유약해 보이지만, 준비가 되어 있다는 느낌을 내기 위해 보조기구를 선택했던 것 같아요.

 

 

 

 

 

Q. 트랙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게요. JOONIE 님은 앨범 단위의 작업물을 만든다는 점에 신경을 쓰는 듯해요. 첫 트랙을 들으면 그렇게 느껴져요. 이번 앨범의 첫 트랙 ‘Julie’를 작업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먼저 ‘율리에’라고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웃음) ‘Julie’는 이번 EP에서 가장 먼저 나온 트랙이고, 원래는 싱글로 발매를 구상하던 곡이었어요. 앨범에 대한 생각이 크게 없었어요. ‘공백기가 조금 길어지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하던 찰나에 프로듀서 친구인 현우가 데모를 짧게 올렸어요. 평소 그런 걸 잘 안 올리는 친구인데, 새벽에 데모 파일을 들어보니 너무 좋아서 보내달라고 했어요. 파일을 받은 다음에 허밍으로 가이드를 만들고, 가사도 짧게 써서 벌스 정도만 보내줬어요.

 

현우는 이 곡에 보컬이 잘 붙을 수 있을 거라 생각을 못하기도 했고, 보컬의 자리를 남겨두고 쓴 트랙이 아니어서 보내달라고 할 때도 의문이 들었대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게 나와서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발매까지 가자고 마음먹었죠.

 

 

 Q. 싱글 단위에서 EP 단위의 작업으로 확장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인가요?

 

트랙을 완성하려면 테마를 구상해야 하잖아요. 서로의 직감만으로 만들어낸 트랙이기도 하고, 현우도 오랜만에 목적의식 없이 만든 트랙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유에 관해 쓰면 재미있겠다 했어요.

 

자유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나의 자유가 불안이라는 키워드랑 계속 엮이는구나’ 깨달았어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불안함, 그리고 자기 확신이 없는 지점에서 비롯되잖아요. 할 수 있는 말이 많아진다는 게 느껴지면서 싱글로만 풀기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Julie를 기점으로 EP를 작업하게 됐어요.

 

 

Q. 비주얼 작업에서의 협업처럼, 이번에도 명확해지는 지점이 있었나요?

 

그 친구가 프로듀서이긴 하지만, 저도 제 음악을 만드는 프로듀서잖아요. 사실 다른 프로듀서랑 일하는 게 어렵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작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늘 실패했거든요. 현우랑 <Mother Nature>를 작업할 때, 제가 잘 보지 못하는 걸 보면서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면만 깔끔하게 충족시켜 줬어요. 그러면서도 제 고집은 건드리지 않고요.

 

그런 사람을 참 만나기 힘든데, 그 친구의 존재 자체가 ‘자유’였던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걸 나보다 잘 캐치해주고. 내가 구상하는 그림을 망가뜨리지 않으면서도 도움을 주면서 제 자유에 힘을 실어준 것 같아요.

 

 

 

 

 

Q. 2번 트랙 ‘Doomed’는 유년 시절의 불안에 대한 곡인데요. 이번 EP의 타이틀 곡으로 지정하신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불안이 제 안에 자리 잡기 시작한 시점의 곡이기도 하고, 사운드적으로도 가장 이 앨범을 ‘대표’할 수 있는 트랙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아웃트로에 나오는 신스 사운드를 들을 때마다, 울컥할 때가 많았어요. 무슨 감정인진 정확히 형용할 순 없지만, 제 주변 분들도 같은 부분에서 무언갈 느끼신 것 같더라고요. 이것만으로 ‘타이틀 곡’의 역할을 다하는 트랙 아닐까요?

 

 

 

 

Q. 마지막 트랙 ‘Guitar Song’은 여태까지 선보인 음악 중에서 가장 경쾌한 리듬이 깔리는 것 같아요. 불안 바깥의 세상을 알려 준 사람에 대한 헌정곡이라고 했는데요, 어떤 사람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7년을 함께 한, 제 연인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데요. 같이 있는 것만으로 정말 아무 일도 없을 것 같다는 기분을 처음으로 느끼게 만든 사람이에요. 처음에는 함께 붙어있으면 이유도 모르고 잠이 왔어요. 유독 편하게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은데, 그 친구가 가진 힘인 것 같아요. 제가 혼란스러워하고, 흔들릴 때도 그 친구가 괜찮다고 하면 정말 다 괜찮아지더라고요. ‘이 사람이랑 있으면 행복하겠지’가 아니라 ‘불행하더라도 이 사람이랑 있으면 괜찮을 것 같다’고 느껴지게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Q. JOONIE 님의 음악에는 늘 영어로 된 가사가 등장해요. 영어 가사만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요?

 

의식해서 영어 가사를 사용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고, 자연스러운 게 큰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한국 노래보다 외국 노래를 많이 들었던 영향도 확실하게 있는 것 같고요.

 

그럼에도 자주 받는 질문이라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많이 고민해 봤는데요. 제가 만들 음악에 어울리는 소리적 재료로서 영어의 소리를 선택한 것 같아요. 음악의 가사에 담고 있는 메시지가 전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음악은 결국 ‘사운드’라고 생각해요. 모국어가 아님에도 영어를 선택한 건 제 음악, 목소리에 잘 묻는 소리가 영어라고 판단한 것 같아요. 제 음악이 아니더라도 참여한 프로젝트에 종종 한글로 부른 곡도 몇 개 있어요. 그 곡에는 한글이 잘 묻어서 사용한 것 같아요.

 

 

Q. 사운드에 대해 언급해주셨는데, JOONIE의 음악에서는 ‘분위기’와 ‘공간감’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 해요. 노래를 할 때도 랩을 하듯 가사를 쏟아낼 때가 있는데, 가사가 비트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럼 작업할 때 가사보다 사운드를 더 중시하는 편인가요?

 

제 음악이 청자로 하여금 그런 느낌을 들게 한다는 게 신기한 것 같아요. 무언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해봤어요.

 

예전에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사운드와 가사 중에 어떤 걸 중시하는 지’ 투표를 올린 적이 있는데, 반응이 반반이 나오더라고요. 성향 차이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분명히 가사가 더 와닿는 음악이 있거든요 저도. 그런데 주로 제가 음악을 들으면서 너무 좋다고 느꼈던 음악들은 사운드로서 기능할 때의 음악 같아요. 사실 강경 사운드파인 것 같아요.

 

 Q. 오존(O3ohn)과 함께 하는 듀오 프로젝트 pigfrog 역시 전자음악 기반의 사운드를 선보이고 있는데요. 오직 JOONIE의 음악에서만 기대할 수 있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pigfrog는 확실한 의도 아래 만들어진 프로젝트 팀이에요. 둘 다 취향이 너무 분명하지만, 또 그 사이엔 굉장히 이지리스닝 팝을 좋아하는 취향도 있거든요. 가볍고 댄서블하면서 쉽게 다가오는 그런 트랙들이요. 사실 그런 트랙도 쉽게 다가올 뿐이지, 들여다보면 굉장한 구조를 가지고 있거든요. 믹싱도 너무 화려하고요. 그래서 그냥 ‘우리도 이런 거 한번 해볼까?’ 하는 음악적 호기심에서 시작한 팀이에요.

 

그래서 사실 진짜 제가 하고싶은 사운드와 말들은 JOONIE로 다 풀어내고 있는게 맞아요. 많은 분이 말씀해 주시는 공간감, 분위기, 시각적으로 무언가 상상되는 음악은 제 음악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이번 앨범의 키워즈 중 하나가 ‘불안’인 만큼, 예민과 불안을 많이 느끼는 기질일 수 있겠다 싶어요. 불안을 다스리는 JOONIE 만의 방법이 있나요?

 

아직도 잘 다룰 수 있다고는 말 못 해요. 어느 특정한 상황에 놓이면 불안해진다기보다는 언제나 곁에 있어요. 그런데도 몇 가지 깨달은 점을 말씀드리면, 햇빛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 불안감이 커질 때 혼자 그 시간을 길게 가지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명상을 습관화하는 것이에요. 그게 저의 방법입니다.

 

 

 

 

 

Q. 공연을 하게 된다면, 꼭 해보고 싶은 장소가 있나요?

 

성당이요. (웃음)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베뉴가 아니면서, 그 베뉴의 힘이 강한 곳에서 공연해 보고 싶어요. 그래서 그런지 꼭 성당에서 공연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층고도 어마무시하게 높고, 스테인드글라스로 가득 찬, 백색의 공간?

 

 

Q. 성당이라니 참신한 답변이예요. JOONIE는 예술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인물 같은데요. 아티스트로서 지향점에 대해 듣고 싶어요.

 

요즘은 모든 것들이 인스턴트화되는 게 슬퍼요.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것들이요. 그래서 무엇을 위해서 만드는 음악보다는, 최대한 끝까지 저를 위해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였으면 좋겠습니다.

 

 

Q. 24년은 어떻게 보내고 싶으신지 소망에 대해 들어보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부지런히 작업물을 더 많이 내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꼭 공연을 하고 싶어요. 제 미래의 JOONIE가 그래 줬으면 좋겠어요.

 

 

 

 

모든 자아 끌어안기, 카코포니 인터뷰

 

모든 자아 끌어안기, 카코포니 정규 3집 <DIPUC> 발매 기념 인터뷰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오랜 시간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면, 우리가 모르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외면해왔던, 혹은 외면하고 싶은 모습임을 깨닫게 될 때는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카코포니의 세 번째 정규 앨범 <DIPUC>은 어쩌면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험난한 과정에 용기를보태는 앨범이 될 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둘러싼 상흔을 노래하던 카코포니는, 사랑의 신 CUPID를 뒤집은 앨범명 <DIPUC>을 통해 지난날의 입장을 역전시켜 상처를 주는 이가 되어본다. 카코포니는 자기 자신을 한 차례 뒤집어내면서, 그 안에 감추어져 있던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의 일부로 기꺼이 받아들인다.

 

적당한 온도로 자신을 사랑하기 보다 끊임없는 감정적 동요를 감내하고 자신의 모든 모습을 사랑하겠다는 인터뷰 끝자락 속 답변에서 <DIPUC>의 시작부터 끝까지 치밀하게 카코포니가 고뇌한 흔적이 드러나는 듯하다. 내면의 불협화음을 끌어안기까지, 자기 자신을 해체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왔을 카코포니를 만나 이번 정규 앨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온 마음과 온몸으로 노래하는 카코포니입니다. 2018년에 <和(화)>라는 앨범으로 음악 씬에 나타나서, 정말 열심히 앨범을 내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이번 앨범은 텀블벅 홍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는데, 214%를 달성하면서 마무리됐잖아요. 열심히 홍보하신 만큼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앨범을 작업할 때 정말 앨범만 만들고, 발매가 되자마자 ‘으악!’하고 죽어버리는 편이예요. 앨범을 세 장 만들어 오면서 (발매 후) 겨울잠을 자러 가서 사라 사라지는 걸 매번 반복해 왔어요. 그러다 보니 매체에서 언급되거나 누군가 샤라웃해주는 기회가 생길 때도, 놓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앨범을 낼지 많이 알려보자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임했어요. 변화가 크다 보니, 오해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앨범이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올바르게 알리는 것에 조금 더 목표가 있었고, 어떤 기회가 오더라도 미리 자료를 넘길 수 있도록 준비해 보자 했어요. 인터뷰 영상을 찍거나 텀블벅을 진행한 이유도 돈을 모으는 목적보다는 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유일하게 텀블벅이라는 매체가 글을 읽게 만드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Q. 힙합엘이 게시판에 직접 텀블벅 펀딩 홍보글을 올리신 것도 봤어요.

 

친구가 제안해줬어요. 힙합하는 분들이랑 접점이 거의 없는 편인데요, 힙합엘이에서 제 언급이 꽤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글을 한번 올렸어요. 묻힐거라 생각했던 글이 일간 베스트로 선정되고, 댓글로도 저를 알아봐주시는 거예요. 신선한 충격이기도 하고, 제 소식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의미가 있었어요.

 

최근에 진행했던 단독 공연에 와서 앨범 전 장을 구매했다고, 사인을 받으면서 ‘엘이에서 보고 왔어요’라고 말씀하는 분도 있었어요. 내향인이라 글을 업로드할 때도 소리 지르면서 올리고 그랬는데, 댓글도 많이 달리고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음악을 4-5년 정도 했는데, 헛된 활동은 아니었구나 싶었어요.

 

 

 

 

Q. 정규 발매 전부터 편곡자로서 두각을 드러내기도 하셨어요. 쓰다 (Xeuda) 의 정규 1집과 정우 ‘옛날이야기 해주세요’, 그리고 시와 ‘꿈속의 새’까지. 의외의 협업이면서도 카코포니가 할 수 있는 입체적 시도들이 돋보였어요. 여러 아티스트의 편곡에 참여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첫 프로듀싱은 거누와 함께 했던 도마의 정규 2집이었어요. 도마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프로듀서는 아니었어요. 도마가 잘하겠지 믿으면서도 작업이 길어지니 어려움을 겪고 있겠구나 싶었어요. 제가 프로듀싱 역량이 없다보니 선뜻 도와주겠다는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도마가 죽고, 거누가 혼자 진행하다 함께 하자고 제안을 주면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 프로젝트 파일을 열어 보니, 너무 잘한 거예요. 구상도 잘 해놓고, 음악이 좋아서 어디로 가고 싶은 건지 알 것 같더라고요. 도마가 한번만 물어봤더라면, 도와줬을텐데. 외롭고 힘들게 작업하지 않았을 텐데 싶었어요. 슬프더라고요. 그래서 누군가가 도움을 청한다면, 반드시 열심히 돕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더라고요. 꼭 칭찬해주고, 외롭지 않게 만들자고 다짐했어요.

 

그러다 쓰다 님한테 프로듀싱을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그냥 하겠다고 말씀드렸던 것 같아요. 예전이라면 ‘내가 다른 사람의 작업에 프로듀싱을 어떻게 맡아’하고 말았을 것 같은데, <도마>를 프로듀싱한 이후로는 누군가 도움을 청하면 기꺼이 돕겠다는 마음으로 바뀐 것 같아요.

 

프로듀싱을 하면서 쓰다의 색채와 제 색채를 합치니 재미있고 의미있더라고요. 서로가 상상하는 걸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 음악 활동하면서 가장 꿈꿔 온 순간이 아닐까 싶었어요. 쓰다 님 작업이 끝나니까 정우 님한테 연락이 왔고. 정우의 ’옛날이야기 해주세요’ 작업이 끝나니까 시와 님의 ‘꿈속의 새’ 편곡 참여 제안이 왔고. 프로듀서가 될 거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누군가 꿈꿔온 걸 제 능력으로 도와줄 수 있게 되니, 다들 행복해하는 모습이 보기 좋고 의미 있더라고요.

 

 

 

 

Q. 본격적으로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텀블벅에 이미 상세하게 기재가 되어있지만, 정규 3집 <DIPUC>에 대해 한번 더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목은 <DIPUC>이고요. CUPID (큐피드)를 뒤집은 글자입니다. 큐피드가 화살을 쏴서 사람이 그 화살을 맞으면 사랑에 빠지잖아요. 그게 굉장히 폭력적이고 강압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평소 사랑에 빠지면 화살을 맞은 것처럼 말도 안되게 사랑하고, 위하는 모습을 보여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화살을 쏘는 입장이 되어보자는 마음으로 글자를 뒤집게 되었어요.

 

 

Q. 이번 앨범에서는 기존의 나 자신과는 다른 내가 되어보았잖아요. 상황을 지배하는, 혹은 상처를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노래해보니까 어땠나요?

 

일단 작업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요. 상처를 다 끄집어내서 그 사람이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가사를 쓰다 보니 과정이 많이 아팠어요. 노래 부르는 입장에서는 재미있었지만요. 다 끝난 지금은 ‘정말 별거 없네’, ‘별로 멋있지 않네’ 생각도 들고, 허무하기도 해요. 쉽게 보면 치명적이고 멋있어 보일 수 있겠지만, 상처를 주는 행위를 매력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면 공허하겠다 싶었어요.

 

 

 

 

Q. 치명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이번 앨범에서 파격적인 컨셉과 퍼포먼스를 빼놓고 말할 수가 없는데, 특히 폴 댄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요. 예전부터 요가와 폴 댄스를 배우고 계시단 소식을 인터뷰에서 접한 적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취미로 시작한 폴 댄스인데, 음악에까지 접목시키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작업실 앞에 폴 댄스 학원이 있는데요. 이번에 비주얼 작업을 맡아줬던 도이가 권해서 갔다가, 그 친구는 등록을 안 하고 저만 등록하면서 시작하게 됐어요. (웃음) 처음에는 음악과 관계 없이 삶에 큰 도움이 됐어요. 음악에만 매몰되어 있던 삶인데, 몸이 힘들어지니까 정신이 말끔해지더라고요.  또 폴 댄스를 하다 보면 마찰 때문에 옷을 벗어야 하는데, 벗은 몸을 보는 게 자연스러워지더라고요. 벗으면 부끄러워하고 당당하지 못하게 되는 태도가 이해되지 않고. 특히 옷을 벗으면 성적인 측면으로만 바라보게 되는 그 시선에 불만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 지점이 이번 앨범을 만든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저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이 그런 시선으로 많이 바라봤어요.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육체적인, 에로틱한 시선으로요. 그런 지점이 분노스러웠고, 탈피하고 싶었어요. 앨범 커버도 전부 벗은 채로 촬영했어요. 자극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했고요. 폴 댄스가 그런 시선을 명확하게 일깨워준 것 같아요.

 

 

Q. SNS에 폴 댄스 영상이 많이 올리다보니 사람들도 퍼포먼스적으로 기대했을 것 같아요.

 

취미로도 폴 댄스 영상을 많이 올리니까 주변에서 FKA Twigs의 ‘Cellophone’ 뮤직비디오를 정말 많이 보여줬어요. ‘민경아, 이 영상 알아? 너도 이렇게 해봐’라는 반응이 많았어요. 작년 단독 공연에도 폴이 있을 줄 알았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고요.

그래서 이번에 주변 사람들은 옷을 벗고 나오고, 폴을 춰도 아무도 놀라지 않았어요. 그냥 그러려니하더라고요. (웃음) 자연스러운 제 흐름 속에서 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신체를 적극 활용한다는 점에서 음악 작업할 때 집중해야하는 포인트가 달라지는 건 없었나요?

 

매력적으로 보여지고, 들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많이 집중했어요. 기존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전달됐는가?’, ‘가사에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편곡적으로 잘 드러나는가?’에 신경을 많이 썼거든요. 이번에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곡 자체가 관능적이여야 되잖아요. 그런 시도는 해본 적 없어서 어렵긴 했어요. 악기 구성을 단순화해서 듣기 편하도록 깔끔한 상태에서 매력적으로 보이고자 했어요. 창법이나 이펙팅을 넣는 방법, 보컬을 쌓아올리는 방법 등 전반적인 부분을 많이 다듬은 것 같아요.

 

 

 

 

Q. 선공개 싱글인 ‘End’는 앨범의 전환점이 되는 트랙인데요. 앨범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본 트랙이 제작된 시점이 궁금합니다.

 

‘End’는 거의 후반부에 작업한 노래예요. 처음에는 앨범 초반부의 매력적인 부분만 실으려 했어요. 듣기 편한 앨범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가짐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렇게 끝내자니 찝찝하고 허무하게 느껴졌어요. ‘매력적으로만 보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싶었어요. 그래서 사실 ‘변화’같은 곡도 관련성이 크게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최종적으로 앨범에 수록했고 ‘살아남은’이나 ‘MIRACLE!’ 같은 트랙을 추가적으로 배치했어요.

 

 

Q. ‘End’부터 ‘변화’까지의 트랙 구성은 큐피드와 프시케의 사랑을 내면의 과정으로 표현했다는 말씀도 온음 인터뷰에서 접했어요. 내면의 과정이 어떤 흐름으로 진행되는 걸까요?

 

비록 상처 주는 입장이 공허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로부터 인정하고 바라보게 된 부분이 제 안에 있던 에로스적인 욕망이었어요. 기존의 저는 감정적 측면은 잘 지켜내고 있었지만, 트라우마와 관련된 일들로 인해 에로스적 측면은 인정해오지 않았어요. 여성적으로 보이는 것이 늘 꺼려지고, 욕망이 아예 없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어요.

 

그런데 작업하면서 재미있었다는 건, 결국 제 안에 그런 욕망이 확실하게 존재하는 거잖아요. 상처들을 전부 끄집어 내면서 ‘에로스적인 측면을 영혼과 결합시키면 진정한 즐거움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 같아요. 여성으로서의 자아와 인간으로서의 자아가 만난 셈이죠.

 

 

Q. ‘Psyche’와 이번 앨범에 수록된‘변화’트랙에서는 “사랑하기 위해선 가장 추잡한 면을 알아채야 하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는 가사가 반복된다는 점이 맥락이 비슷해요.

 

추잡한 면이라고 말했던 부분이 말씀드린 욕망에 해당하는 것 같아요.

 

 

 

 

Q. 세번째 타이틀 ‘살아남은’이 인상깊었어요. 11번 트랙이기도 한 ‘살아남은’부터 ‘MIRACLE!’까지 사운드가 확장된 느낌도 들면서 앨범의 분위기가 마지막으로 반전돼요. 경쾌한 분위기의 음악이 후반부에 배치된 점도 궁금했어요.

 

욕망만 남는 것도 부질없지만, 욕망을 인정해야 진정한 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어요. 상처를 극복해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전 트랙에서 아껴왔던 꽉 찬 사운드, 신나는 비트를 후반부에 터뜨렸어요. 제가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주변 사람들과 팬들이 주는 영향 때문인 것 같아요. 그 덕분에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Q. 실제 사랑을 대하는 카코포니의 모습과 가장 유사한 트랙이 있을까요?

 

‘MIRACLE!’이 가장 비슷한 것 같아요. 평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진짜 모르겠다’, ‘난 왜 이럴까’ 인데요. 죽고 싶어하다가도 행복해하고요. 기복이 심한 사람인데, 제가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잘 담긴 노래이지 않나 싶습니다.

 

 

 

 

Q. 이번 앨범에서는 3건의 뮤직비디오 촬영도 진행하셨어요. ‘당겨요, 바로 지금’, ‘End’, ‘살아남은’ 각 트랙의 뮤직비디오 감독님이 모두 다른데요. 그럼에도 누워있는다거나, 시야를 차단하고 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해요. 카코포니 님이 의도한 연출일까요?

 

다른 아티스트에게 작업을 맡길 때는 개입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씀드리는 편이라 연출에 대한 부분은 많이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도 3부작처럼 느껴졌어요. 언어로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것 같아요. 비주얼 작업하시는 분들과 협업하면 항상 그래요.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비주얼로 멋있게 표현해주시죠. 늘 감사함을 느껴요.

 

세 분 모두 ‘죽음과 삶’에 초점을 맞춘 것 같아요. 제 음악에서 죽은 이후 다시 부활한다는 점을 느낀 것 같아요. 죽음을 상징할 때는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 있거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장면들로 연출하신 것 같아요. 트라우마적 시기나 피하고 싶었던, 무시하고자 했던 감정이나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자아를 상징하는 것 같고요. 이후 ‘End’ 후반에 조명 속에 있는 장면이나 ‘당겨요, 바로 지금’의 폴 댄스를 추는 장면, ‘살아남은’에서 우비를 벗고 달려나가는 장면에서는 극복해내고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 같아요.

 

 

Q. 다채로운 사운드를 아우르는 앨범인데요. 앨범의 컨셉을 일관되게 유지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다듬어가면서 오히려 날것의 감정이 마모되는 어려움은 없었나요?

 

날 것이 다듬어지는 것에 대한 정서적인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영상 인터뷰에서도 말했듯이, 그런 지점으로 칭찬을 많이 받았던 사람이거든요. 절규하는 모습이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있는데, 가장 잘 활용하는 무기를 버리는 것이 두려웠어요. 근데 버려야하는 앨범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죠. (웃음)

 

많이 다듬었는데도, 숨겨지지 않는 무언가가 남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신기했던 점이 제 음악을 자주 듣던 분들은 이번 앨범을 듣고 ‘그렇게 크게 변하진 않았어요’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잘 해낸 건가 싶으면서도 좋았어요. 듣기 편해진 것도 맞고 다듬어진 것도 맞는데, 나를 잃지 않고 해낸 것 같더라고요.

 

 

 

 

Q. 새로운 시도를 보였는데도 카코포니가 갖고 있는 개성을 일관되게 묻어날 수 있게끔 했던 요소가 무엇일까요?

 

가장 코어한 작업 방식을 바꾸지 않았다는 점 같아요. 아주 사소한 방식이나 손길에도 의도를 계속 반영시켜요. ‘이 곡에 가사를 붙이면 가장 어울리는 편곡 스타일은 무엇일까?’와 같은 질문을 다른 사람이나 다른 음악이 아닌,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답했거든요. 답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계속 제가 개입되는 건 예전과 똑같았어요.

 

매력적인 누군가가 되어보는 앨범이지만, 그걸 제 안에서 찾으려고 했다는 점이 이 앨범을 일관되게 만들어준 것 같고요. 제 커리어에서도 굉장히 다른 앨범이지만, 일관된 음악처럼 느껴지게 했던 지점 같아요. 이번 앨범에서는 기존의 나 자신과는 다른 내가 되어보았잖아요.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Q. 음악적 스타일 뿐만 아니라 ‘사랑’이라는 주제도 카코포니의 음악에서 빼놓고 말할 수 없어요. 카코포니가 정의하는 사랑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예전에는 DIPUC 초반부에 묘사된 사람처럼, 관능적이고 무책임하게 불타오르는 게 사랑일까 싶은 단계를 많이 겪었었어요. 근데 음악을 하면서 제 자신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게 되고, 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변화한 것 같아요.

 

진정한 사랑은 어떤 사람이 가장 그 사람다운 모습이 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팬분들한테 받는 사랑도 비슷한 것 같아요. 카코포니답게, 카코포니가 하고 싶은 음악을 계속하는 걸 지지해주시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가장 따뜻한 것 같아요, 뜨겁지는 않아도. 애인이나 친구와도, 모든 사람의 관계에서도 제가 만나는 사람들이 가장 그 사람다운 선택을 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응원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그러면 카코포니 님이 생각하기에 가장 카코포니다운 모습은 무엇일까요?

 

세세한 부분까지 따진다면 정말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저다운 모습은 음악을 사랑한다는 점 같아요. 인정하기 싫었지만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요. (웃음) 늘 배우고, 성장하고 싶어해요.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도 과하다 느낄 정도였어요. 무언가를 감상하거나 공부하거나, 혹은 나아가고 있지 않으면 안되겠더라고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 같아요. 그리고 되게 솔직한 사람인 것 같아요. 모든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고,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 것 같아요.

 

 

 

 

 

Q. 이번 앨범이 사랑과 자아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는 앨범이기에 궁금한 점이 있었어요. 카코포니 님은 스스로에 대한 애정의 척도를 10점 만점에 몇 점이라고 메길 수 있을까요?

 

처음 이 질문을 받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의 점수로 메길 수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스스로에 대한 애정이 0점이었다가 10점이기도 하고, 늘 변하거든요. 그런 점 때문에 굉장히 힘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10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0점의 기간이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만약 (나에 대한 애정을) 7점 정도로 계속 유지하는 삶을 살겠냐고 한다면, 간극이 심하더라도 10점의 순간들을 계속 경험하면서 살고 싶어요.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내 악마들을 가져가지 말라, 그러면 천사들도 함께 떠날 테니까’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이 너무 공감 돼요. 자기 부정과 자기 혐오의 시간이 없으면, 진정한 쾌락의 시간도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두 가지가 공존하는 삶을 인정하기로 했어요.

 

 

Q. 점수로 이야기를 해주실 줄 알았는데, 흥미로운 답변을 주셨어요.

 

그런가요? (웃음) 최근에 텀블벅을 마무리하고 단독 공연을 마친 이후에 일본 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때 비행기에서 일본 드라마가 보고 싶어져서 넷플릭스에서 아무거나 골랐는데, ‘우주를 누비는 쏙독새’라는 드라마가 있더라고요. 내용이 조금 유치하기는 한데요. 반에서 가장 못 생기고 형편도 안 좋은 여자 아이가 가장 예쁘고 인기 있는 아이가 되고 싶어서 영혼을 바꾸는 내용이거든요.

 

그 시리즈를 킬링타임용으로 보다가, ‘만약 내가 다른 사람과 영혼을 바꿀 수 있다면 누가 되고 싶을까?’ 생각해봤어요. 웃기게도 어떤 사람과도 바뀌고 싶지 않더라고요. 태생적으로 자기혐오가 워낙 심한 사람인데도, 내 삶을 살고 싶다는 점이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나는 정말 나를 좋아할지도?’ 싶더라고요. (웃음) 음악적으로나 인간성에 있어서도 결함이 되는 부분은 정확히 알고 있어요. 바꾸고 싶은 점이 많지만, 제 손으로 바꿔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나의 삶을 되게 사랑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Q. 스스로에 대해 많이 고민했던 흔적이 묻어나는 답변 같아요. 발매 이후에 단독 공연부터 시작해서 전시나 인터뷰 등, 바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2024년도를 어떻게 구상 중이신지 들어보면서 인터뷰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에너지를 남김없이 썼어요. 정말 마지막 앨범일 것 같다는 생각으로 발매했어요. 공연을 준비할 때도 ‘이것보다 뭘 어떻게 더하지?’라는 마음으로 임했고요. (웃음) 에너지를 많이 고갈한 상태라서 규모가 큰 작업을 할 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짜증이 날 정도로 저는 음악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서요. (웃음) 노래하는 게 정말 즐거운 사람이라 작은 무대들을 많이 해보려고 합니다.

 

휴식의 시간을 갖겠다고 했지만 영상 음악을 하고 있고, 힙합 아티스트 분들과 함께 협업도 할 것 같고요. 예전에 음악 감독으로 참여한 영화 <신세계로부터>가 12월 20일에 개봉을 해요. 앞으로도 저를 너무 갉아먹지 않는 선에서 행복한 방식으로 작업할 것 같아요.

 

 

Q. 정말 마지막으로 팬 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모두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길 바래요. 제 앨범을 들으면서 그런 믿음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대를, 그리고 일생을 살아간다는 것 – 도재명 정규 2집 발매 인터뷰

 

시대를, 그리고 일생을 살아간다는 것 – 도재명 정규 2집 발매 인터뷰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녹록지 않은 일이다. 뉴스나 기사를 접하면서도, 어떤 지표를 보면서도 느낄 수 있다. 친구와의 가벼운 만남 속에 한숨 섞인 이야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개개인의 인생 역시도 쉬운 건 없다. 여러 관계가 얽히면서 부여되는 역할들에 우리는 진정 나다운 면모를 잃어가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정규 발매 소식이 우르르 쏟아져나온 듯한 11월, 오래전부터 인디 음악을 사랑해 왔던 이들에게는 하나의 반가운 이름을 접할 수 있었다. 바로 ‘도재명’이라는 이름이다. 별다른 홍보 없이 어느 날 서울레코드페어 최초공개반 리스트를 통해 정규 2집 <21st Century Odyssey> 신보 발매 소식을 처음 알렸다.

 

개인 정규로는 무려 6년 만에 발매된 이번  앨범은 사회와 개인의 면면을 담아낸다. 도재명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환경 속에서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오히려 편안하고 담대한 자세로 이야기한다. 힘을 덜어낸 모습은 그가 이번 앨범에서 제시하고자 했던 방향성과도 닮아 있다. 앨범 속 숨겨진 여러 장치부터 그가 그리는 시대에 대한 모습까지. 다양한 주제로 정규 2집에 관해 도재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11월 11일에, 2집 앨범 <21st Century Odyssey>를 발매한 뮤지션 도재명입니다.

 

 

Q. 이번 정규 2집이 서울레코드페어 한정반/최초공개반으로 선정이 되면서 팬 분들이 발매 소식을 접하셨을 것 같기도 해요. 어떻게 서울레코드페어 한정반으로 나오게 되었을까요?

 

함께 LP를 제작한 무선지에서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고요. 음원이 발매되는 시기가 레코드 페어가 시작되는 시점(11월 18일)쯤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프레스 제작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생겨서 현장 판매를 진행하지는 못하고, 온라인 판매만 진행을 했었어요. 제작사 측과 레코드 측도 아쉬워하긴 했지만, 그래도 온라인 판매가 무사히 진행되었어요.

 

 

Q. 어제(12월 3일)는 현대 음률에서 음감회도 진행하셨다고 들었어요. 잘 마무리하셨나요?

 

재미있게 진행했어요. 구체적인 생각은 없었는데, 발매 후에 현대음률 대표님과 만나서 대화하다 보니 음감회 이야기가 나왔어요. 얼떨결에 진행하게 되었지만, 30명 정도 참석해 주셔서 재미있게 진행했던 것 같습니다.

 

음감회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냥 LP 틀고 앨범에 대해 말해야겠다 정도로 생각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혼났어요. ‘로로스 시절에도 무대에서 그렇게 어버버 거리던 애가 퍽이나 잘 진행하겠다’와 같은 식으로요. 제가 말주변이 없는 편이거든요. 라이너 노트를 작성해 주신 김윤하 님께 요청드렸는데, 부탁하지 않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했습니다. (웃음)

 

 

Q. 2017년에 발매된 <토성의 영향 아래> 이후로 6년만에 발매된 정규 2집인데요. 그 사이 이선지 님과 EP <A True Travel>을 발매했지만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일적으로는 특별한 건 없었어요. 그간 진행해왔던 무용, 전시, 영상 음악 작업 등, 일종의 품앗이처럼 작가분들 도와드리면서 지냈어요. 개인적으로는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어머니와 교대로 병간호를 진행했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음반을 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업하게 됐던 것 같아요.

 

 

 

 

 

 

Q. 말씀해주신 개인적인 이야기가 이번 앨범에 담겨 있기도 한데요. 정규 2집 <21ST Century Odyssey>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21st Century Odyssey>는 크게 전반부, 후반부로 곡을 배치한 앨범인데요. 전반부에서는 일상을 살아가는 관찰자의 시점에서 보고 듣게 되는 사회적 현상을 주로 담았고요. 후반 5번 트랙 ‘Nostalgie’부터 9번 트랙 ‘Manée & Conti’까지는 개인적인, 가정사라고 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담았어요. 정규 단위이기 때문에 파트를 나눠 작업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번 앨범을 LP로 제작하면서 신기했던 건, LP판이 앞면과 뒷면으로 나뉘잖아요. 감쪽같이 앞뒷면이 (앨범의 구성대로) 나뉘더라고요. A사이드에는 말씀드린 전반부가 담기고, B사이드에는 후반부 트랙이 담겼어요.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인데 재미있었어요.

 

 

Q. 앨범의 구성이 두 파트로 나뉜다는 말씀은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 인터뷰를 통해 접하게 됐어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전반부가 아닌 후반부에 녹여낸 까닭이 있을까요?

 

곡을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전반부와 후반부 색깔이 분명하게 구분돼요. 앞부분은 되게 리드미컬한 반면에 뒷부분은 정적이에요. 음악을 처음 접할 수 있는 전반부에 임팩트를 담아내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Q. 영상 인터뷰를 보면 Daft Punk의 <Random Access Memory>를 차용했다고도 말씀하셨는데, 포스트록 기반의 앨범이지만, 장르적으로 전자음악의 색이 확실히 짙어졌어요.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할까요? ‘그냥 받아들여지겠지’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전자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혼자 작업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신디사이저를 많이 사용하게 됐어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병간호로 인해) 어머니와 교대로 움직여야 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이랑 함께하기 보다 혼자 하는 게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의외로 그런 얘기를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결심을 갖고 작업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Q. 맞아요. 특히 이번 앨범에서는 내레이션이나 인용구가 많이 쓰인 것도 특징 중의 하나인데, 도재명 님이 의도하고 싶은 소리들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 일렉트로닉이었던걸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내레이션이나 인용구를 사용하게 된 점도 자연스러운 현상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목 컨디션이 예전에 비해 많이 안 좋아졌어요.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게 듣기에는 거슬리는 상태여서 제 목소리를 담고 싶지 않더라고요.

 

Q. 평소 자주 즐겨듣는 전자음악 아티스트가 있나요?

 

너무 많은데요. (웃음) 아까 말한 Daft Punk도 포함이 되고요. 유튜브에 ‘Cercle’이라고, DJ들이 여러 장소에서 전자음악을 하는 채널이 있는데, 자주 보는 편이예요. 찾아들으면 재미있더라고요.

 

 

Q.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인용구나 내레이션을 사용하게 되었지만, 작업 방식에 있어서 달라진 점은 없었나요?

 

아무래도 직접 노래를 부르면 좀 더 감정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데, 그런 점이 없다보니 듣는 사람에게는 차갑거나 낯설 수도 있고, 또 불친절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기는 했어요. 속상하기도 했어요.

 

특히 ‘Happy Meal’같은 경우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보니 직접 노래를 부르고 싶었거든요. 이번 앨범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상태를 받아들이고 작업하는게 처음엔 쉽지 않았는데, 그런 아쉬움은 초반에 작업을 하면서 잊어버렸던 것 같아요.

 

 

Q. 도재명 님 음악의 특징 중 하나가 다양한 언어가 혼재된 점 같아요. 이번 앨범에서도 한국어, 영어, 독일어 등 여러 언어가 등장하잖아요.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줄곧 사용하게 된 요인이 있을지 궁금해요.

 

외국에 자주 나가는 편은 아닌데요. 다른 언어가 주는 속도감이나 뉘앙스가 있잖아요. 악기로 따지면 (평소에 사용하던 악기와) 다른 악기라고 느껴지는 재미가 있어요. 물론 메시지는 다른 문제지만요. 같은 메시지를 한글로 읽는 것보다 영어나 도구로 읽는 건 다른 느낌이 있죠. 외국어를 뽐내고 싶어서 그런 식으로 차용한 것은 아니고요. (웃음) 개인적인 흥미가 있어서 그런 부분에서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Q. 그러면 트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앨범 타이틀과 동명의 트랙 ‘21st Century Odyssey’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해 격정적인 연주로 마무리되는 곡이에요. 곡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을까요?

 

곡의 초반에 등장하는 내레이션은 비행기 방송음으로 나오는데요. 공감하는 분들이 계실 진 모르겠지만, 저는 비행기에 탑승하면 무서운 상상을 하게 돼요. 기본적인 공포감이 있어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안전 지침 같은 걸 찾아보거든요. (웃음) 메시지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경각심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텍스트를 처음에 던져놓고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텍스트에 ‘Will it be doom? or new hope? (파멸일까? 아니면 새로운 희망일까?)’라는 질문이 나오는데요. 트랙 후반부 격렬한 연주가 끝나고, 방향을 유추할 수 있는 피아노 연주로 마무리할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피아노 연주를 삽입하면 질문을 던져놓고, 리스너에게 아예 답을 주는 것 같아 없앴어요.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목표였어요.

 

 

Q. 후반부의 휘몰아치는 연주가 일품인 곡이기도 한데요. 구현해내기까지 연주자 분들과 소통하면서 크게 어렵지는 않았나요?

 

사실 걱정을 했거든요. 연주자 분들한테 곡을 들려줄 때만 해도 ‘과연 구현이 될까?’ 생각이 들 만큼 드럼 연주를 난해하고 거칠게 찍어놨어요.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제가 우리나라 연주자들을 과소평가했더라고요. (웃음) 컨트롤 룸에서 연주를 듣는데, 감탄의 연속이었어요. 특별한 설명도 없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트해줘’, ‘하고싶은 거 다 해봐’라고 말씀드렸던 것 같아요.

 

 

 

 

 

 

Q. 4번 트랙 ‘In Our Darkness Hour’는 라이너 노트에 따르면 젊은 세대의 아픔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고 적혀있어요. 빈센트 반 고흐와 프리다 칼로의 편지에 대한 내레이션이 중첩되는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두 아티스트의 편지 속에 본 트랙의 주제와 맞닿아 있는 공통적인 메시지가 있었던 걸까요?

 

대략적으로 말씀드릴게요.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는 경감에게 붙잡혀서 요양시설에 감금이 되어있을 때, 동생 테오에게 자신의 상황을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프리다 칼로의 편지는 교통사고 이후 뼈가 아스라져서 코르셋을 착용해야할 만큼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걸 친구에게 토로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요.

 

아직까지 고흐와 프리다 칼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질문하신 분은 없었어요. 빈센트 반 고흐와 프리다 칼로가 등장하는 건 앨범 속에 숨겨놓은 힌트 같은 장치예요. 고흐는 자살을 택하는 반면, 프리다 칼로는 그 와중에도 살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잖아요. 개인적으로는 프리다 칼로를 조금 더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Q. 처음에 던진 질문인 ‘파멸일까? 아니면 새로운 희망일까?’랑 비슷한 맥락이 숨어 있는 거네요.

 

후반부를 집중해서 들어보시면, 다른 연주가 끝나고도 드럼 연주가 오래 남아 있어요. 앞서 말했던 타이틀곡 ‘21st Century Odyssey’에서 지워진 부분인데, 이 트랙에서는 조금 더 (제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드러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말씀드린 것처럼 앨범 속에 몇 가지를 조금씩 숨겨두었어요. 저만의 유희 같은 건데요. ‘다른 분들이 발견해서 자기만의 해석대로 질문해주시면 재미있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Q. 앨범의 초반부가 지금 시대의 군상을 담았다면, 후반부에는 도재명 개인의 삶과 기억에 초점이 맞춰져있어요. (앨범 후반부에서) 담아내고자 한 감정들, 생애의 기억들에 대해 여쭤보아도 될까요?

 

한 단어나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후반부의 곡들이 전달될 때의 바람이 있다면 위안이었어요. 듣는 분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어요. 제 바램은 그런데, 성공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Q. ‘Nostalgie’에는 장례식 때 상여를 메고 가는 상여꾼의 ‘상여소리’가 등장해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도 그렇고, ‘두 곡이 아버지를 추억하고 기리는 마음이 담긴걸까?’ 그런 생각을 조심스럽게 했어요. 이번 곡을 통해 위로하고자 했던 감정이나 상황이 있을까요?

 

아버지를 대상으로 했다기보다는 유년 시절을 대상으로 한 것 같아요.  상여소리를 녹음해주신 황민왕 님께 부탁드릴 때, 사람에 대한 상여가 아니라 시대에 대한 상여 소리를 부탁드렸어요. 그 말씀만 드렸었는데, 상여소리를 나열해주시더라구요. 가사를 정확하게 전달받지 않았었는데. 사람이 대상이 아니라 지나간 시절에 대한 추억 등에 대한 상여소리 등을 얻었어요. 무거운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재미있게 담아낸 트랙이예요.

 

 

Q. 언급하신 유년 시절에서, 어떤 기억들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담은 걸까요?

 

곡의 시작은 되게 엉뚱하고 재미있어요. 어릴 적에 등산을 하러 가서 계곡에서 행복하게 놀고 있는 가족 사진에서 비롯된 음악이기도 해요. 당시에는 코미디언이나 어린 아이가 나오는 SF물 영화가 많았어요. 그중에서 ‘은하에서 온 별똥동자’라는 영화를 좋아했어요. ‘이건주’라고 아역 배우로 유명했던 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명왕성을 떠나 지구에 와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악당들을 물리치는 내용의 영화에요. 당시에는 그런 영화가 꽤 많았어요. 연두색 총알이 나오기도 하고. 지금보면 조악할 수도 있는 영화에요.

그 시절에 봤던 영화를 모티프로 삼고 사고가 튀는 소재로 가공을 했어요. 명왕성이 원래는 행성이었지만 지금은 그 지위를 잃었잖아요. 그런 것과 맞물려서 명왕성이 행성이던 제 유년 시절이 지나간 것에 대한 표현을 담았어요. 가령 ‘명왕성의 식별 번호는 134340이니까, 그에 맞춰서 비트는 하이햇을 활용하거나 악센트를 맞춰보자’ 등 사운드적으로 장난을 쳐보기도 했고요. 무겁거나 심각한 내용을 담진 않았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유희적으로 표현했습니다.

 

 

Q. 실제로 사운드적으로 다양한 시도들이 묻어있는 곡이라고 생각했어요.

 

음악에 ‘하’, ’하’ 하는 Breath(숨) 소리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어릴 때부터 장미셸 쟈르(Jean-Michel Jarre)라는 프랑스 전자 음악가의 음악을 많이 들었었어요. 장난이라면 장난이고, 오마주라면 (장미셸 쟈르 곡에 대한) 오마주에요. 그 시절에는 그 아티스트가 정확히 어떤 아티스트인지는 몰랐고 나중에 커서 알았죠. 그런 식으로 조금씩 앨범에 숨겨둔 것들이 있어요. 재미있게 작업했던 곡입니다.

 

 

Q.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후반부에는 아기와 아버지의 대화가 나오는데요. 도재명 님의 실제 음성일까요? 당시의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계신지도 궁금해요.

 

어릴적 부모님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했던 건데,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음성이에요. 이런 식으로 쓰이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요. 온전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되었던 시기의 사진이 있더라고요. 그걸 보면 어렴풋이 생각이 나는 것 같기도 해요. 세네 살 쯔음에 녹음되었던 음성이에요.

 

 

 

 

 

 

Q. ‘Happy Meal’에서는 ‘라이너스의 담요’의 연진 님과, ‘Fractal’에서는 ‘로로스’의 제인(Jane Ha)님과 함께 했어요. 오랜만에 합을 맞추시는 것일 텐데 그에 대한 소회도 궁금해요.

 

연진 누나한테 (곡을 불러달라고) 제의했을 때, 누나가 처음에는 제목만 듣고 그냥 귀엽고 앙증맞은 음악이라고만 생각했대요. 보통 Happy Meal(해피밀)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부분 맥도날드를 떠올리잖아요. 음악의 분위기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곡을 듣고 울었대요. 그런 노래인 줄 미처 몰랐다고. 그래도 최선을 다해 불러준다고 흔쾌히 말해줘서 너무 고마웠고, 녹음실에서도 불러주는 곡을 들을 때도 정말 좋았어요.

 

‘Fractal’같은 경우에는, 의도한 건 아니지만 로로스 시절의 제인이 불렀던 노래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안을 하게 됐어요. 제인이 걱정을 많이 하기도 했어요. 노래를 안한 지 오래되어서 곡에 해가 될까 걱정된다고, 정말로 자기 목소리를 원하는 게 맞냐고 물어봤었어요. 막상 와서 녹음하니까 너무 잘하더라고요.

 

 

Q. <토성의 영향 아래>가 외롭고 허심탄회한 마음을 조명한다면, <21st Century Odyssey>는 같은 결의 감정이 담긴 듯하면서도 방황하는 이들을 위한 “초대장”이라는 점에 집중하게 돼요. 전작과 비교하여, 작업할 때의 마음가짐이나 태도 등에 있어 변화한 부분이 있을까요?

 

1집에 비해 힘이 덜 들어갔던 것 같아요. 힘을 뺀 상태로 작업했고요. 그래서 조바심이나 초조함 없이 마음이 편안한 상태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1집뿐만 아니라 <A True Travel>이나 기존에 해왔던 여러 프로젝트는 에너지가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 작업 했었고, 그런 와중에 제 마음처럼 진행되지 않는 시기도 겪었죠. 그러는 사이에 6년이 지나고, 여러 과정을 겪어가면서 이번 앨범은 힘을 빼고 작업할 수 있었어요.

 

마음이 편한 상태에서 만들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죠. 앨범이 갖고 있는 메시지가 담고 있는 감정이 무거울 수 있지만, 작업은 편안하고 마음에 여유 있는 상태에서 작업을 시작했어요. 큰 폭풍이 지나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요.

 

 

 

 

 

 

Q. <21st Century Odyssey>를 소개하실 때,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상태에 공감하는 이들을 위한 초대장 같은 앨범이라고 하셨어요. 도재명 님은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거창하게 말하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지실 수 있는데, 음감회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어요. 로로스가 2015년도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음악 박람회 ‘미뎀(MIDEM)’에 초청받아 공연했을 때, 공연 이후에 시간이 생겨 멤버들이 각자 여행하고 싶은 지역으로 흩어졌던 적이 있어요. 사람들에게 어디가 가장 핫한 도시인지 물어보니까 베를린이라고 했고, 제인도 마침 대학교 동창을 만나야해서 함께 베를린에 갔어요.

 

그때 하루 이틀 제인과 같이 거리를 걸었는데, ‘단 한 번이라도 나답게 살아보고 싶다’, ‘관계에서 벗어나서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 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사회생활도 하고, 여러 관계를 맺어가면서 그 속에서 굳어진 채로 살아가잖아요.

 

평소에도 대자연 속 에서의 삶을 동경하고, 그해서 여행을 가면 자연을 찾아 떠나는 편인데요. ‘나 답게 사는 게 어떤 느낌일까’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시도하고픈 마음에서 자연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근데 그런 모습이 저인 것 같아요.

 

 

Q. 정규 2집을 발매한 지금 시점에서는 나답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아직도 나답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것 같아요. 항상 그런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Q. 나답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도재명 님에게 있어서 음악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궁금해요.

 

얼마 전에 어깨가 안 좋아져서 진찰받은 적이 있는데, MRI를 찍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찍고 왔어요. 찍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MRI 기계 안으로 들어갈 때 무섭거든요. 안으로 들어가면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요. 근데 그 소리가 비트처럼 들리는데 너무 멋져서 녹음해서 집에 가져가고 싶더라고요. (웃음) 환자복을 입은 와중에 기계 소리가 근사하다고 감탄하는 모습이 웃기기도 했어요.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싶더라고요.

 

사람들이 자켓을 사고 싶을 때 전철을 타거나 밖으로 나가면 남들이 입고 있는 자켓을 보게 되잖아요. 신발을 사고 싶으면 신발을 유심히 쳐다보고. 그런 것처럼 음악은 오랜기간 동안 꽂혀 있는, 제일 관심이 가게 만드는 무언가 같아요. 최우선적으로 관심을 두게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사고방식과 연결되는 존재 같아요.

 

 

Q. 도재명 님이 바라보는 지금 이 시대는 어떠한가요?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앨범에서 느꼈던 지점이 제가 시대를 바라보는 모습 같아요. 객관적인 지표를 보면 어둡고 비관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세상이잖아요. 그런데 지표만 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행동을 취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 에너지는 결국 긍정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희망을 가져야 행동으로 나오니까요. 시대상에 매몰되면 힘들잖아요. 좋은 걸 많이 보고, 에너지를 얻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요.

 

 

Q. 정말 오랜만의 정규 소식에 반가우신 팬 분들이 많을 텐데요. 발매 후 음감회나 LP제작 등 여러 가지를 진행하셨지만, 앞으로 남아있는 활동도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해야 할 일이 딱 한 가지 남아있어요. 아버지 기일이 12월 24일인데요. 아버지가 팻 분 (Pat Boone)이라는 미국의 가수가 부른 캐롤을 정말 좋아하세요. 아버지한테 가서 팻 분 캐롤이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들려드리면 올해가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팬 분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요. 최근에 음원 앱 중에 어떤 지역이나 도시에서, 어떤 연령대가 제 음악을 듣는지 데이터를 집계할 수 있기도 하더라고요. 슬로바키아나 아프리카처럼 정말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한 지역에서도 음악을 듣는다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기하더라고요.

 

그런걸 보면서 요즘 들어 고마운 마음이 더욱 큰 것 같아요. 제 음악을 들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Interview | 박현영

사진제공 | 도재명

스스로 그러함을 받아들이는 뚝뚝한 여정, 여유와 설빈 3집 발매 인터뷰

 

 

스스로 그러함을 받아들이는 뚝뚝한 여정, 여유와 설빈 3집 발매 인터뷰

 

여유와 설빈이 정규 3집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전해 들은 것은 올해 4월이다. 그날은 제주에서 올라온 여유와 처음 인사를 나눈 날이기도 한데, 본격적으로 농도를 높여가던 봄기운 덕에 라운지 문을 활짝 열어두고 앨범에 대한 청사진을 공유받으며 이 포크 듀오가 도착해 있을 늦가을 어느 날을 어렴풋하게나마 상상해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난 정규 2집으로부터 4년, 본격적인 작업 기간으로 따져도 1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거쳐 탄생한 여유와 설빈의 3번째 정규 앨범은, 그리하여 이들이 관통해 온 기억과 감정을 사려 깊게 수놓으며 새로운 형태의 위로를 건네준다. 전작에 비해 한층 내밀해진 언어로 꾸려진 아홉 곡의 노래가 꾸밈없는, 아니 구태여 꾸미지 않아도 부족함 없는 ‘나’의 이면을 내어 보이며 찬찬한 공감으로 이어지는 덕이다.

 

제주에 터를 잡은 여유와 설빈 본연의 모습을 녹여내기 위해 대부분의 작업이 제주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던 이번 앨범은 이렇듯 음과 음 사이, 그리고 단어와 단어 사이마다 넘침 없는 ‘자연스러움’을 담고 있다. 비로소 후회나 미련이 남지 않았던 앨범을 선보이게 되었다며 밝혀온 두 사람의 소회처럼 여러모로 지금 가장 ‘여유와 설빈스러운’ 소리를 담고 있는 셈이다. 어느새 저녁공기에서 제법 한기가 느껴지던 늦가을 어느 날, 제주와 강남을 잇는 화상 인터뷰로 함께 한 여유, 그리고 설빈과 이번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인터뷰 시작에 앞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여유: 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포크 듀오 여유와 설빈입니다. 보통은 단출하게 둘이서 기타 한 대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설빈: 이름은 여유와 설빈인데 요즘 여유롭지는 않은 것 같아요. 원래는 여유가 진짜 여유롭고 저는 성향상 좀 바쁜 편이었는데 이제는 둘 다 여유가 점차 사라지고 있던 상태예요.

 

 

Q: 이번 정규 3집 [희극]이 4년 만에 발표하신 작품이라는 점에서 아무래도 준비 과정이 여러모로 많이 바쁘셨을 것 같아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보니 오랜만에 음악을 발표하신 것에 대한 소회도 궁금합니다.

 

여유: 후회와 미련이 없는 작업이었어요. 전작들도 물론 다 소중하고 귀한 앨범들이었지만 약간의 미련을 남기고 타협하면서 발표해 왔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전혀 그런 찝찝함이 없는 상태로 후련하게 발표했기 때문에 더 좋아요. 덕분에 다행히 바로 일상으로 복귀를 했고요. 앨범 발매할 때쯤 제가 일을 하나 시작했는데 지금 중국집에서 일을 하고 있거든요. 규칙적인 생활 덕분에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가 됐던 것 같습니다.

 

설빈: 저는 앨범 발매되고 나서 일주일 동안 매일매일 인터넷에 저희 검색해 보고 사람들은 어떻게 들었는지 반응을 엄청 열심히 살폈고요. (웃음) 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있어서 평소와 다름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지냈고 바빴던 일들이 정리되고 있어서 점차 안정을 찾게 될 것 같아요.

 

 

 

 

Q: 그러면 이제 앨범과 관련한 질문부터 하나씩 드려볼게요. 사실 제가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설빈 님이 브런치에 연재하셨던 작업기를 많이 참고했는데요,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에서 유독 제주라는 지역성이 전작들보다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지더라고요.

 

설빈: 제주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면, 제주라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휴양지의 느낌이라든지, 아니면 섬이 주는 비밀스러우면서도 독립적이기도 한 여러 인상들이 있잖아요. 그걸 내세우려고 의도했던 건 아니고요. 다만 저희가 제주도에 산 지 7년째가 되어가고 있는데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제주도다 보니까 이곳의 특성들이 작업하는 데도 되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사람들이 제주 하면 떠올리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인상도 있지만 섬이 주는 홀로 되는 감상이 있어요. 한편으론 제주가 땅은 넓지만 사람들 사이가 굉장히 촘촘해서 한 다리 건너면 다 알고, 같은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끼리는 서로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게 되는 그런 복합적인 관계성도 있고요. 이런 경험들이 노래하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이걸 풀어내는데 서울에서 작업을 하게 되면 뭔가 선명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일차적으로 들었어요.

 

여유: 덧붙이자면 ‘제주에서’라는 표현은 어쨌든 저희 둘의 손길이라는 뜻이기도 해요. 저희 둘이서 그동안 작업했던 어떤 앨범보다 정성을 많이 들였고 앨범 작업 전반에 있어서 저희 둘이 스스로 한 것들이 정말 많아요.

 

 

Q: 제주에 있는 레코딩 스튜디오 ‘램프 스튜디오’와의 작업도 이러한 맥락의 일환이었을까요?

 

실빈: 제가 제주에서 작업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여유한테 좀 고집을 부렸어요. 램프 스튜디오는 2집 작업할 때부터 하고 싶었던 곳인데 이제 본격적으로 함께해 보자고 얘기를 했었죠.

 

여유: 그때 저는 이미 머릿속에 서울에 계신 많은 분들이 후보로 있었어요. 근데 설빈이 이번 앨범은 우리가 제주도에 뿌리를 내리듯이 작업적으로도 완전하고 명확하게 제주에서 출발했으면 좋겠다고 강력히 이야기했었어요. 그렇게 몇 달 정도는 계속 그런 소통을 나누면서 작업이 진행되었고요. 마스터링이나 디자인, 그리고 몇몇 연주자분들의 도움을 제외하곤 서울에 계신 분들의 손길이 아주 적게 들어갔죠. 많은 것들이 제주에서 이루어진 앨범인 건 분명해요.

 

 

램프 스튜디오 (왼쪽부터 설빈, 엔지니어 강경덕, 들국화 최성원, 여유)

 

 

Q: 램프 스튜디오와 작업 과정은 어떠셨나요?

 

여유: 지금 생각해도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램프 스튜디오의 강경덕 형이 가능성을 많이 열어줬는데, 제가 마치 실험실의 과학자가 실험을 하는 것처럼 스튜디오에 있는 거의 모든 악기를 사용해 봤거든요. 제가 잘 다루지 못하는 악기들조차도 실험적으로 다 넣어봤는데 경덕이 형이 그렇게 펼칠 수 있게 많이 도와줬죠. 믹싱 부분에 있어서도 제가 믹싱의 디테일한 지점들을 마음에 들어 할 때까지 계속 시간을 줬고 때로는 저한테 컴퓨터를 넘겨주기도 했어요. 그런 부분들이 공부가 많이 되었고 거의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덕을 많이 봤어요.

 

설빈: 엔지니어님 이름도 강경’덕’이에요. (일동 웃음)

 

여유: 특히 경덕이 형한테 고마운 게 있는데 2번 트랙 ‘너른 들판’에 삽입된 바람 소리나 8번 트랙 ‘하얀’이라는 노래의 파도 소리 같은 엠비언트 사운드가 제주 토박이인 형이 그동안 수집해 왔던 필드 레코딩 소스였거든요. 덕분에 그런 사운드를 저희 작업에 녹여낼 수 있었어요.

 

 

Q: 램프 스튜디오의 경덕 님과 더불어 이번 앨범에 함께 해주신 여러 작업자분과의 인연도 인상 깊더라고요.

 

설빈: 물론 이전 작업 때도 그랬지만, 이번 3집 같은 경우에는 특히나 함께하는 사람들을 크게 조명했던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함께 만나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들을 살펴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고요. 제 작업기에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번에 새롭게 만나게 된 분은 강경덕 엔지니어님을 통해 만난 코프로듀서(co-producer) 이대봉 님이 있는데, 올해 여름쯤 저희 둘 다 작업적으로 너무 에너지를 많이 쏟아서 점점 지쳐가고 있을 때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초대한 분이에요. 안면도 없다 보니 처음에는 전화나 이메일로 연락하다가 실제로 만나게 된 경우인데, 만들어지고 있는 저희의 노래를 굉장히 사랑해 주시고 섬세한 부분까지 제안을 많이 해주셨거든요. 저희 둘 다 지쳐가는 마당에 그렇게 따뜻하게 그 노래들을 안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되게 감사한 일이었어요.

 

 

트럼페터 장보석

 

 

여유: 드러머 김창원, 베이시스트 노선택 님은 2집에 이어 이번 3집까지 같이 해주신 분들이에요. 그리고 아주 우연한 기회에 합류하게 된 장보석이라는 트럼펫 연주자가 있어요. 제주도에 왔다가 태풍 때문에 비행기가 결항해서 제주에 발이 묶이는 바람에 지인이었던 창원한테 연락을 했었는데요. 그때 마침 저희가 곡 작업 중이었어서 즉흥적으로 녹음을 함께하게 되었어요. 말 그대로 여행 왔던 거다 보니 제주에 계신 이웃 뮤지션 전찬준 님께 트럼펫을 빌려서 임시로 녹음을 했죠. 아무래도 너무 즉흥적으로 진행된 면이 있어서, 나중에 보석이 자기 악기를 바리바리 챙겨가지고 내려와서 추가 녹음을 했었어요.

 

 

Q: 정말 말 그대로 신기한 인연이었네요. 저도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관악기 사운드를 되게 인상적으로 들었는데 그게 전부 보석 님의 연주였군요.

 

여유: 네, 트럼펫, 베이스 트럼펫, 그리고 플루겔혼이라는 악기와 뮤트(트럼펫 홀에 끼우는 약음기)를 이용해서 되게 다양한 트럼펫 사운드를 연주해 주셨어요. 그런데 또 빼놓을 수 없는 관악기 소리가 설빈이 연주한 클라리넷이에요. 클라리넷과 트럼펫의 협연으로 만들어진 부분도 있고요.

 

 

Q: 연주자분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자연스럽게 악기 관련된 내용도 조금 나눠보겠습니다. 이번 앨범에서 특히 다양한 악기들의 조합이 눈에 띄어요. 때론 단출하게, 때론 웅장하게 운용되는 여러 악기 구성에 있어서 특별히 염두에 두신 부분이 있을까요?

 

여유: 작사 작곡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이미 저는 머릿속으로 항상 웅장하고 풍성한 편곡, 말하자면 오케스트라까지 그리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쉽지 않기도 하고 노래 자체가 그 정도까지의 편곡을 요하지 않는 경우도 있죠. 그래서 진행하다 보니 그 곡에 맞는 편곡으로 또 흘러가게 되는데 어쨌든 이번에는 정말 해보고 싶은 걸 다 해본 작업이었어요.

 

설빈: 1집은 거의 프로듀싱을 맡겼던 앨범이고, 2집은 저희가 직접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세션 연주자들의 감각에 따라 흘러가는 대로 바라봤던 그런 앨범이었어요. 그에 비해 3집은 악기 구성이나 편곡적인 부분까지도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잡아갔던 작업이었죠. 1년 동안 작업 한 거니까 사계절 동안 넣어봐야겠다 싶은 부분은 과감하게 다 시도를 했고, 그중에 살릴 건 살리고 쳐낼 건 쳐내고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전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에 있어서 타협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는 우회하지 않고 제주에서 들려줄 수 있는 소리들로 구체적인 심상을 구현해 보자고 생각했던 게 가장 큰 차이인 것 같아요.

 

 

 

 

Q: 그럼 이번 앨범들의 많은 소리들은 처음 만들고자 했던 것에 거의 근접한 결과물로 나왔다고 봐도 되겠네요.

 

설빈: 네, 저는 너무 만족해요.

 

여유: 근데 사실 어떤 의도가 명확했던 건 아니에요.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도화지에 스케치를 해놓고 거기에 색칠을 하고 또 계속 덧입히는 작업을 1년 동안 한 거죠. 그렇게 완성된 그림이 지금은 마음에 드는 거예요.

 

 

Q: 이어서 작업 과정에 대해서도 질문드리고 싶어요. 앞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초기 작곡 단계에서는 여유 님이 많은 부분을 맡고 계신데 그것들이 결과적으로 설빈 님과 동기화 되는 과정이 신기하더라고요. 설빈 님께서 말씀해주신 앨범에 대한 정서가 여유 님께서 말씀하신 내용과 일맥상통한다고 느껴지는데 어떤 식으로 이런 정서적인 합이 맞춰지는 건지 궁금합니다.

 

여유: 지긋지긋하게 들어서 그런가. (웃음)

 

설빈: 이것도 일정 부분 맞고요. (웃음) 일단 여유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들의 맥락을 알고 있는 부분이 큰 것 같아요. 어쨌든 같이 1, 2집을 거쳐왔기 때문이라는 게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특히나 이번 3집은 저도 여유 못지않게 앨범에 마음을 많이 들였고, 여유의 노래를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가짐이나 노래에 스며드는 정도가 커지면서 이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보니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더라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항상 가지고 있는 것 같네요.

 

 

 

 

Q: 어떻게 보면 이상적인 협업의 형태라고도 느껴져요. 사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동기화가 되면 정말 좋겠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되게 많잖아요.

 

설빈: 사실 별로 동기화되고 싶지 않은 것도 동기화되기 때문에 별로 추천하고 싶진 않아요. (웃음)

 

여유: 말하자면 설빈은 저한테 직장으로 치면 상사예요. 노래는 제가 많이 만드니까 설빈에게 들려주면 ‘여유와 설빈 앨범 수록곡으로 쓸 수 있음’이라고 결재를 해주는 거죠. (웃음) 그렇게 해서 탈락하는 곡들이 생각보다 되게 많아요. 물론 저한테는 다 똑같이 귀한 노래들이어서 언제 한 번 기회가 되면 모아서 내야 할 것 같아요.

 

 

Q: 트랙 단으로 대화 주제를 넘기기 전에 앨범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마저 나눠볼게요. 제가 이번 3집을 처음 듣고 느낀 점이 2집에 비해서 분위기가 훨씬 묵직해지고 감정의 이면을 조금 더 가감 없이 담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희망을 기반으로 한 2집과 상반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던 만큼 이번 앨범의 표현 방식이나 정서적인 측면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여유: 이번 노래들은 만들어진 시기가 되게 다양해요. 5년 전에 만든 노래도 있고 한 1년 전에 만든 노래도 있고, 그렇게 모인 9곡이에요. 노래들의 대부분이 내면적으로 가장 침잠해 있었을 때 창작됐던 곡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신 지점이 있을 거예요.

 

 

 

 

Q: 그렇다면 그렇게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곡들을 작곡 당시가 아닌, 이번 3집을 통해 엮어내시게 된 의도나 배경이 있을까요?

 

여유: 평소에 어떻게 보여지고 싶다는 생각을 아예 못하는 성격이긴 한데요. 일단 만들어 놓고 세상에 나왔을 때 일어나는 일들은 전부 흐름에 맡기는 편이죠. 다만 분명하게 이 노래들이 하나의 앨범으로 묶이게 된 데에는 확실히 의도성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설빈: 1집과 2집은 말씀하셨듯이 좀 더 희망적인 느낌, 그러니까 아프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성장하려고 하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통증이라고 잘 이해해 주셨던 것 같아요. 그에 비해 3집은 잠깐 멈출 수밖에 없는 나의 상태, 그러니까 정말 홀로가 되어서 여기서 어떠한 의지도 없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를 반영한 앨범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그렇게 살면서 여러 겹의 다층적인 감정들이 무력하게 몸 안에 쌓여가는 과정도 나의 삶이고, 알고보니 나뿐만 아니라 너도 그렇고 우리 모두가 그렇다고 느끼게 된 경험들이 집약된 앨범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이번 앨범을 두고 저는 분명하게 섬의 정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너와 나 모두 섬이라는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요. 여유가 이런 부분을 분명하게 의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유의 작업들을 차근차근 듣다 보면 그런 정서가 많이 느껴지거든요.

 

 

 

 

Q: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모여서 자연스럽게 어떤 맥락을 이루는 과정이 참 신기해요. 앨범이 그리고 있는 정서들도 그렇고 그것들을 표현하는 방식도 그렇고 뭔가 애쓰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여유: 말씀을 듣다 보니 방금 떠오른 것이 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 노래들을 2집에 수록하지도 않았었고 밖으로 꺼내 보이는 데에도 시간이 좀 필요했던 과정이 있었어요. 새로 만든 노래라고 해서 바로 앨범으로 내지는 않지만 공연장에서 부를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항상 1, 2집에 비해 너무 무거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희망 같은 긍정적인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던 전작들에 비해서 절망 같은 마음을 이렇게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괜찮을까, 이게 과연 좋은 노래가 맞을까 하는 자기 의심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그럴 때마다 이런 노래만이 줄 수 있는 위로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주변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제 저도 마침내 그런 마음이 좀 정리가 됐어요. 조금은 아프고 서늘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마냥 따뜻하고 다정한 위로는 줄 수 없는 위로’가 되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앨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Q:  사실 오늘 이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각 곡들의 작곡 연도를 몰랐다 보니 3집의 음악들이 여유와 설빈의 현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닐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오히려 이제야 마침내 그것들을 꺼내놓으실 준비가 된 거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네요.

 

여유: 아주 정확하고요, 이 앨범을 통해서 그 상태를 극복하고 싶었던 거죠.

 

 

Q: 그렇다면 이제는 그런 마음들이 극복되신 것 같나요?

 

여유: 그런 것 같아요. 극복이라기 보다는 포용? 일단은 후련한 게 너무 크죠. 아무래도 가장 무거운 시기에 꺼내놓은 것들인데 어쨌든 잘 익은 열매처럼 내보낸 거니까 이제는 가벼운 마음이기도 하고 또 다른 작업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도 생겨요.

 

 

 

 

Q:  이어서 트랙에 대한 질문도 몇 가지 드려볼게요. 이번 3집은 더블 타이틀곡 설정도 눈에 띄더라고요.

 

여유: 네, 2번 트랙 ‘너른 들판’이랑 6번 트랙 ‘밤하늘의 별들처럼’이라는 두 곡인데요. 저희는 처음부터 ‘밤하늘의 별들처럼’이 타이틀 곡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대봉 님이 ‘너른 들판’에 꽂히셔서 무조건 타이틀로 넣어야 한다며 너무 좋아해 주셨어요. 그렇게 두 곡을 전부 타이틀곡으로 두게 되었고요. 만약 LP 같은 매체로 만들어진다면 A 사이드, B 사이드 각각 하나씩 타이틀곡으로 하기도 좋을 것 같더라고요.

 

설빈: 또 이렇게 더블 타이틀로 결정을 하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까 이 앨범에서 ‘너른 들판’과 ‘밤하늘의 별들처럼’이 가지고 있는 장소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너른 들판’이 가지고 있는 심상은 들판에 바스락거리는 풀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곳에 동떨어져있는 느낌을 주는데, ‘밤하늘의 별들처럼’은 되게 광활한 공간에서 홀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거든요. 그런 두 가지 장면의 결이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번 앨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장면들이 두 곡 안에 잘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블 타이틀로 선정하길 잘했다 싶었어요.

 

여유: 맞아요. 그리고 ‘너른 들판’ 마지막 가사는 “밤하늘엔 아직 별들이 있고”로 끝나는데 ‘밤하늘의 별들처럼’은 “밤하늘의 별들처럼 밝지 않아도”라고 시작하거든요. 두 곡만 따로 떼어놓고 들어도 메시지적으로 연결돼요.

 

 

 

 

Q:  특히 6번 트랙 ‘밤하늘의 별들처럼’ 후반부에 2집 수록곡인 ‘길고 긴 밤’의 한 구절이 레이어드 되어있는 것도 눈에 띄더라구요.

 

여유: 그 부분은 동물적인 감각 같은 거였어요. 머리로 생각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있지만 그럴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진행되는 작업도 있거든요. 그런 맥락이에요.

 

 

Q:  ‘밤’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도 그렇고 6번 트랙에서 이야기하는 후회의 대상이 ‘길고 긴 밤’에서 노래하는 대상과 일맥상통한다고도 느껴졌다 보니 치밀하게 설계된 부분인가 싶었어요. 이렇게 여유 님의 본능으로 얹혀진 부분에 대해 설빈 님도 만족하셨나요?

 

설빈: 네, 처음 가이드 녹음을 할 때는 없었던 부분인데, 어느 날 여유가 갑자기 기타 한 대 덜렁 들고 나타나더니 마지막 부분에 ‘길고 긴 밤’ 넣는 거 어떠냐면서 막 연주를 하는 거예요. 그때 처음 들려줬는데 너무 좋았어요. 잘 어울렸고 확 끌린다고 해야 하나. 구체적인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좋다는 감각이랄까요.

 

 

 

 

Q:  이어서 4번 트랙 ‘희극’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눠보겠습니다. 앨범명과 동명의 트랙인 만큼 눈이 가는 트랙인데 앨범명에 대한 이야기까지 함께 소개 부탁드립니다.

 

여유: 곡 제목이 먼저 지어졌고 앨범 제목으로까지 ‘희극’을 쓰는 것에는 고민이 좀 있었어요. 인생이나 세상 같은 것들을 한 편의 연극으로 빗대서 은유적으로 표현해 보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비극’이라는 반대되는 단어가 연상되는 부분에서 괜찮을지 대봉 님이랑 같이 고민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희극’이라는 말 자체가 반어법처럼 쓰였고, 여기서 비극이 떠오르는 게 좀 더 양면적인 감상이 될 것 같아 은유적인 표현으로 ‘희극’이라는 제목을 쓰게 된 거죠.

 

설빈: 네, 비극이라는 단어는 너무 호소적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꼬집고 싶은 포인트가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희는 결과적으로 희극이 맞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고요.

 

 

Q:  저도 이 제목을 처음 보고 나서 바로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떠오르더라고요.

 

여유: 맞아요. 앨범 디자인에서도 찰리 채플린의 영향이 조금 있었어요. 앨범 커버가 흑백으로 되어있는데 찰리 채플린의 흑백 영화 이미지를 따온 게 있거든요. 디자이너 혜리 님이나 설빈은 또 의견이 다를 텐데 저 혼자서는 그렇게 상상하면서 만족했습니다. 제목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넓게 상상할 수 있는 앨범이었으면 좋겠어요.

 

 

 

 

Q:  곡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게요. 마지막 트랙 같은 경우에는 설빈 님이 작곡하신 곡이더라고요. 아무래도 정규 단위 작업인 만큼 1번 트랙부터의 기승전결을 짜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트랙 순서를 정하시면서 이 곡으로 마지막 트랙을 장식하시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설빈: 일단은 사전 질문지를 전달해 주셨을 때 트랙 순서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반가웠어요. 왜냐하면 이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트랙 순서가 굉장히 중요했거든요. 어떤 날은 여유가 9곡의 수록 순서를 1안, 2안, 3안, 4안까지 짜왔어요.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노래들의 순서를 두고 조금씩 조금씩 바꿔가면서 이게 낫니, 저게 낫니 했을 정도로 트랙 순서가 이번 작업에서 되게 중요한 주제였고요.

 

그리고 1, 2집 때도 각각 ‘먼 훗날 당신과 나’, ‘선인장’이라는 제 노래가 수록되어 있는데요. 이번 3집에서도 ‘푸른’이라는 노래의 순서를 어느 곳에 위치시킬까도 큰 고민이었어요. 아무래도 여유가 만들어 내는 노래와 제가 만들어 내는 노래의 색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거든요. 평소에 사용하는 표현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다는 점, 그리고 구상하고 있는 공간감 같은 것들도 약간은 차이가 있어서 어떻게 앨범에 전체적으로 녹여낼 수 있을지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작업 중반기까지는 8번 트랙 ‘하얀’이 곡이 첫 번째 트랙이었는데, ‘하얀’으로 도입부에서 세상을 펼쳐내는 방식으로 구상했었거든요. 그러다 작업 말미에 ‘하얀’이라는 곡을 통해서 오히려 이 세계를 점차 정리하는 느낌을 주고 맨 마지막에 여유가 만들어 내는 음악보다는 무게감이 덜하고 느낌도 다른 ‘푸른’으로 마무리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Q:  말씀을 듣고 보니 ‘푸른’이 마치 엔딩 크레딧 같은 그런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 같네요.

 

여유: 네, 그렇게 볼 수도 있죠. 작업이 처음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사계절에 걸쳐 트랙 리스트 고민이 계속됐었어요. 근데 그게 제가 작업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그동안 정규 앨범 밖에 작업해 보지 않아서 그쪽의 감각만 갖고 있기도 하구요. 친한 친구들은 병적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트랙 리스트에 많이 집착하는 편인데 의도에 잘 맞는 순서로 배치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특히 이번 3집은 유난히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같은 곡이어도 어떤 순서로 듣느냐에 따라서 너무 다른 이야기가 되니까요.

 

덧붙여서 이번 앨범과 관련한 감상을 하나 공유하자면, 1번과 2번, 3번과 4번, 5번과 6번, 7번과 8번이 각각 봄, 여름, 가을, 겨울 같다고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리고 다시 ‘푸른’에서 겨울이 끝나고 봄으로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하루로 치면 아침부터 시작해서 밤과 새벽을 다 지나고 다시 아침이 밝아오는 느낌을 주는 곡이 ‘푸른’이라서 마지막 곡으로 잘 배치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작업 기간도 4계절에 걸쳐있다 보니 비단 감정선이나 사운드뿐만 아니라 오늘 대화 나눈 모든 이야기에서 의도하지 않아도 대입되는 자연스러움이 느껴져요. 여러모로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앨범인 것 같습니다. 어느덧 인터뷰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데요, 이번 3집과 발매와 함께 계획하고 계신 활동들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서 소개 부탁드릴게요.

 

설빈: 우선은 가장 가까운 11월 25일 6시에 제주도 ‘반짝반짝 지구상회’에서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이 예정되어 있고요.

 

여유: 기회가 되면 서울에서 또 열 수도 있겠지만, 인터뷰 초반에 나눴던 제주도에 대한 맥락 그대로 발매 기념 공연까지 우선은 제주도에서 잘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앨범 작업이 처음 출발했을 때 설빈이 이야기했던(제주에서 시작해서 제주에서 완성하는) 맥락과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다음에 차근차근 일상을 잘 살아내면서 또 좋은 기회로 노래를 들려드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설빈: 물론 서울과 다른 지역에서도 성실하고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 나갈 예정입니다. (웃음)

 

 

Q:  지난 작업 기간 사이에도 꾸준히 공연을 통해 팬분들과 소통해 주셨던 만큼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가 많이 되네요. 두 분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이야기 있으시면 마지막 인사와 덧붙여 이번 인터뷰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여유: 저는 요새 중국집에서 일을 하고 있거든요. 요즘의 저한테 아주 중요한 일상이에요. 주로 홀에 있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최근에 한 노부부가 오신 적이 있어요. 드시고 난 후에 맛있었다고 따뜻하게 얘기해주시고 먹은 자리까지 티끌 하나 없이 말끔하게 정리해두고 가셨는데 감동이었어요. 사람을 대할 때 비록 생판 모르는 남이더라도 따뜻하고 진실되게 대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어디서 밥을 먹든 그릇을 한 곳으로 모아두는 정도의 작은 배려는 잃지 않으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설빈: 모두 건강하게 지내시면 좋겠고요. 요즘 들어서 뭔가 사는 것 자체가 가만히 멈춰서 있는다고 멈춰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멈춰있는 것 조차도 에너지가 필요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쨌든 다들 무탈하시고 또 좋은 기회로 만나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Interview | 월로비

사진제공 | 여유와 설빈

겨울을 지나 맞이하는 가을, 싱어송라이터 사뮈

 

겨울을 지나 맞이하는 가을, 싱어송라이터 사뮈

 

사뮈가 새로운 EP <가을은 흐릿한 오후>로 돌아왔다. 싱글 <본>을 발매한 지 약 2년의 세월이 흐른 뒤의 첫 EP다. 밴드 사운드 위주의 전작과는 사뭇 다른 담백한 여백이 느껴지는 앨범이기도 하다.

 

동시에 ‘사뮈’ 개인으로는 꽤 오랜만의 발매라는 점 또한 눈길이 간다. 정규 앨범 <농담>을 발매하기까지 3년 반의 시간이 걸렸던 사뮈가 그 후 이번 EP를 발매하기까지 마찬가지로 3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앨범명만큼이나 흐릿한 가을날, 그를 만나 이번 EP부터 그가 걸어온 행보까지 다양한 주제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사뮈의 EP <가을은 흐릿한 오후>가 발매되었어요. 오랜만의 발매인데,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마콤마의 앨범 <Mind, Heart>를 꽤 오랫동안 준비하고 있었어요. 작업을 시작했던 타이밍이 <농담>을 발매한 해였고, 해경이 형도 그 해에 <속꿈, 속꿈> 을 발매했고요. 8월 즈음 마콤마 앨범을 준비한 후에 작년에 <Mind, Heart>를 발매했어요. ‘이제 내 앨범을 제대로 준비해야겠구나’ 생각이 있었는데, 시간이 이렇게 흘렀더라구요.

 

 

말씀대로 마콤마의 EP <Mind, Heart> 도 발매가 되었는데, 신해경 님과의 합은 잘 맞았나요?

 

해경이 형이랑은 합이 굉장히 잘 맞았고, 작업하는 방식이 꽤 비슷했어요. 사용하는 시퀀서도 같은 걸 사용하다 보니 훨씬 용이한 것도 있었구요. 서로의 음악에 대한 리스펙이 있다보니 각자의 의견을 잘 존중할 수 있다는 점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근데 왜 2년이나 걸렸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쩌다 2년이나 걸렸지? (웃음)

 

 

 

 

마콤마가 아니라 사뮈 개인으로는요?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였어요. <농담>을 발매하고 정신적인 데미지가 컸거든요. 공연이나 다른 활동에 대한 기대가 무너져버리니까 선뜻 무언가를 진행하는 게 쉽지 않더라구요. 제가 생각했던 결말과는 다르다보니 혼란스러운 부분이 좀 컸던 것 같아요. 다음의 방향, 넥스트 스텝을 밟는 것에 대한 고민에 시간을 오래 쓴 것 같아요. 이상 핑계였습니다. (웃음)

 

 

<농담>과 <Mind, Heart>를 발매했는데, 앨범 단위로 작업하면서 에너지 소모가 크지는 않았나요?

 

크다고 느끼면서 작업해 오진 않았는데, 지나고보니 컸던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농담> 발매하기까지의 4~5년이 (저에게 있어서) 에너제틱한 상황이었기에 그런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 생각해요.

 

 

<농담>을 발매하고 겪은 고민의 시기를 신해경 님과의 마콤마를 통해 회복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겠네요.

 

맞아요. 단순히 동료 뮤지션 중에 한 명이라기보다는, 척박한 세상에서 형제를 하나 더 얻은 기분도 들어요. 해경이 형은 어떻게 생각할 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아무래도 음악을 하는 동료다보니, 제가 겪는 고충이나 그 밖의 자잘한 이야기를 많이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가 됐어요. 함께 팀을 하다 보니 더욱 끈끈해진 것도 있죠.

 

 

 

 

 

이제 본격적으로 앨범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하는데요. <가을은 흐릿한 오후>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를 먼저 부탁드립니다.

 

<가을은 흐릿한 오후>는 비워내는 데에 많이 집중했던 앨범이에요. 좀 더 날 것일 수도 있구요, 심플하거나 단순할 수도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굳이 채우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서 멜로디, 가사, 악기들에 좀 더 집중되기를 바랐어요. ‘가을은 흐릿한 오후’라는 이름과 비슷하게 너무 우울하거나 너무 쓸쓸하지도 않은 적당한 무드를 가지고 있는 앨범입니다.

 

 

밴드 사운드 위주의 기존작과는 사뭇 다른 앨범이에요. 보다 담백한 구성을 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언젠가 데모와 흡사한 곡으로 앨범을 내보고 싶었다는 마음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기도 했고, <농담> 이후에 어떤 앨범이 나오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공백기가 길기도 해서 바로 정규 앨범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조금 더 고민해보니, 연속적으로 정규를 내는게 스스로에게 부담스러운 스텝일 수도 있겠더라구요.

 

 

SNS에 기재해두신 포스팅을 보니 개인적인 만족도가 높다고 하셨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그랬나요?

 

예전에는 편곡적으로나 사운드적으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음악적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음악이 더 좋은 음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편곡하면서 감정이 닳는다는 기분이 든다는 점에서 한편의 아쉬움도 있었던 것 같아요. 무조건 예뻐야 할 필요는 없지만, 예쁘게 다듬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도 작업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느꼈어요. 아마 뮤지션들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겠지만, 새로운 시도를 발매로 이어가기가 쉽지는 않거든요. 기존에 내던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보니까 개인적으로 앨범에 대한 반응이 특히 궁금했어요.

 

 

평소 함께하는 공동 프로듀서 ‘배상언’ 님이 이번 앨범에서는 참여하지 않기도 하셨잖아요.

 

상언이 형은 고민이 되는 지점들을 이야기할 때, 가장 진지하게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이에요. 상언이 형의 의견이 제 선택에 있어서 참 도움을 많이 줬고요.

 

이번에는 편곡이랄 게 많이 없어서 혼자 진행했지만, 중간중간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앨범을 만들 때마다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온 사람인데, 한 발자국 뒤에 떨어져서 결과물을 볼 때는 어떻게 느낄지가 궁금해서 소개글을 부탁하기도 했고요. 옆에 없어서 힘들긴 했지만 그런대로 재미있게 작업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함께할 때가 더 좋습니다. (웃음)

 

 

 

 

이번 EP는 가을과 겨울이라는 시간적 배경이 일관되게 묘사되고 있어요. 의도한 부분인가요?

 

앨범에 담고자 했던 가장 큰 감정은 ‘쓸쓸함’인 것 같아요. 가을과 겨울이 쓸쓸한 감정을 가장 많이 느끼는 계절이기도 하잖아요.

 

앨범의 전반적인 무드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한 곡을 듣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뾰족뾰족 튀어나오지 않고 일관된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2번 트랙 ‘새벽 눈’에는 콘트라베이스 연주가 들어갔는데, 곡의 분위기와 참 잘 어울려요. 처음으로 활용된 악기인데, 고민되는 지점은 없었나요?

 

‘새벽 눈’을 작업할 때 ‘한 곡에만 드럼과 베이스가 들어가도 괜찮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기타 한 대로 가기엔 심심할 것 같은데, 나머지 모든 트랙은 리듬악기가 없는 구성이었어요. 그래서 고민이 컸는데, 일단 해보자하고 작업을 하게 된 곡이기도 해요.

 

다른 곡에는 피아노 혹은 기타 연주만 들어가니, 이 곡에는 콘트라베이스와 드럼이 들어가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기타 솔로가 나오는 것보다 베이스 솔로가 나와도 좋겠더라구요. 비워져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음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낮은 음을 채우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4번 트랙 ‘가을은 흐릿한 오후’에서는 이이언 님이 피처링으로 함께 했어요. 이이언 님과는 어떻게 작업하게 되었나요?

 

제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 스포티파이처럼 음악 연말 결산을 내면 아마 최상단에 ‘못’이 위치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언이 형님은 고등학교 시절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뮤지션이었어요.

 

이언이 형님의 목소리를 참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렇게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도 잘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해주셔서 너무 좋았죠. 제가 작업을 한 곡에 이언이 형님이 불러주신 파트를 얹어서 듣는데. 와.. 진짜 미쳤더라구요. (웃음) 실감이 안 났어요.

 

 

어떤 부분이 이이언 님과 특히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하셨어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가을은 흐릿한 오후>를 혼자 불러주시는 부분이었어요. 쓸쓸함이 잘 묻어날거라고 생각했죠. 그게 1순위였어요.

 

그리고 공동 1순위가 있는데, (웃음) 멜로디가 달라지는 중간 파트에서 유니즌으로 불러주시는게 필요했어요. 좀 더 권태롭고 멜랑꼴리한 느낌이 나길 바랐는데, 제 목소리만으로는 너무 덤덤한 거예요. 혼자서는 원하는 느낌이 살지 않았어요. 이언이 형님이 함께 불러주신다면 완성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부탁을 드렸죠.

 

 

학창 시절부터 동경하던 뮤지션과 작업하게 되는 거라면 의미가 남다르시겠네요.

 

그러니까요. 아직도 안 믿겨요. (웃음) 거의 3주 동안 (피처링 제의에 대해) 고민했어요. 거절당하면 속상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너무 욕심이 나니까 ‘에라 모르겠다’하고 보냈는데, 음악을 들어보시고는   잘 해볼 수 있겠다는 답변과 함께 승낙해주셨어요. 너무 감사했어요. 간절히 바랐던 진심이 닿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눈 쌓인 거리’라는 마지막 트랙은 호소력 짙은 가창이 돋보이는 트랙 같아요. 감정이 더욱 잘 실리기를 바란다는 의도를 제대로 보여주는 곡이라는 느낌도 들구요. ‘눈 쌓인 거리’를 작업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지점이 있을까요?

 

눈치를 채신 분도 있고, 못 채신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1번 트랙부터 4번 트랙까지는 모두 4분의 3 박 혹은 8분의 6박이에요. 쿵짝짝, 쿵짝짝 이런 느낌. ‘눈 쌓인 거리’라는 곡만 4/4박자고, 피아노가 메인으로 연주가 되는 곡이다 보니 여러모로 끝을 장식해주면 좋을 것 같았어요.

 

에너지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가장 격정적인 곡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뭔가, 그래야될 것 같았어요. 피아노가 메인으로 들어가는 곡도 기존 사뮈의 곡에는 없는 방식이다보니 더 좋았던 것 같네요.

 

 

특별히 애착이 가는 트랙이 있나요?

 

발매 후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했었는데요. 동일한 질문을 받았을 때, 모든 트랙에 애착이 간다고 답했어요. 근데 다시 생각하니 이언이 형님이 함께 해주신 트랙을 이길 수 있는 곡이 없는 것 같아요. (웃음) 개인적인 감정을 싣는다면 ‘가을은 흐릿한 오후’이고요.

 

이 곡을 제외하고 고른다면 첫 곡인 ‘동백’인 것 같아요. ‘동백’은 <농담>을 발매하고 고민하는 와중에 썼던 트랙인데, 팬분들을 위해서 쓴 곡이에요.

 

곡의 후반부에 ‘긴 겨울 지나가고 있어요’라는 가사가 나오는데요. 겨울을 지나왔다는 의미를 주고 싶었고, 기다려주셔 감사하다는 마음도 담고 싶었어요. 당시의 제가 느끼던 상태가 되게 겨울 같고, 한밤중인 것 같았어요. 매번 그랬듯 언젠가 봄이 올 거라는 마음은 갖고 있었지만요.

 

 

 

 

새벽 눈’이랑 ‘눈 쌓인 거리’ 두 곡은 라이브 촬영도 진행하셨잖아요.

 

‘새벽 눈’이랑 ‘눈 쌓인 거리’ 두 곡은 조금 오래된 곡들이에요. 언제 낼 수 있을 지 고민했었는데,  <가을은 흐릿한 오후>를 구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이 두 곡을 기준으로 잡았던 것 같아요.

 

‘눈 쌓인 거리’의 경우에는 피아노로 단독 연주하는 곡이 하나도 없기도 했고, ‘새벽 눈’ 같은 경우도 콘트라베이스나 브러쉬 드럼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라이브 영상으로 공개하신 이유도 있나요?

 

원래 뮤직비디오를 꽤 많이 만들었어요. 풍성한 사운드가 담긴 곡들을 뮤직비디오가 여러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뮤직비디오가 잘 안 어울릴 것 같았어요. 비어있는 곡들이다보니 어떤 이야기로 인해 너무 명확하게 이미지를 줄 거 같다는 생각을 했죠.

 

어릴 때 소설을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즐거움 때문이었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이 음악을 들으며 ‘본인만의 상상에 빠져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힘을 빼고 담백하게 표현하려는 시도가 담긴 앨범인데요. 실제로도 ‘비워내려고 했던 앨범’이라고 말씀을 주셨어요.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에 있어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최대한 넣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넣을까 말까 고민이 들 때는 넣지 않으려고 노력하니 크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다만 ‘이래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은 한 번씩은 했던 것 같아요. 기존의 작업에 대한 마음가짐과 다른 부분이 많다 보니 헷갈리는 지점들은 있었던 것 같아요.

 

 

음악이 해소의 창구이자 스스로에 대한 위로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이번 앨범에서의 새로운 시도들이 곧 ‘사뮈 개인에게도 변화가 발생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을까요?

 

보통은 앨범을 발매하면서 제 것이 빠져나가는 기분을 많이 느꼈었는데, 이번 앨범은 조금 달랐어요. 오히려 채워지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아무래도 기존과 다른 자세로 작업에 임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스스로 설정한 족쇄들을 풀어낸 느낌이에요.

 

 

새로운 시도를 발매까지 이어가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셨는데요. 쉽지 않은 시도를 선보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 무엇일까요?

 

<농담>과의 텀이 길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사뮈라는 뮤지션을 바라보는 제 시선이 달라진 걸 수도 있죠. 다채로운 음악을 하고 싶다는 욕심을 풀어내는 데에 집중했던 시기를 지나, 이후 앨범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을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과거에도 이런 앨범을 내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꽤 들었었거든요. 당시에는 당장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이번에는 ‘지금 해볼 수 있겠네?’ 싶었어요. 이번 앨범 이후에 작업을 하면, 본래의 편곡적인 부분에서 어떤 지점이 달라질 지 궁금하기도 해요. ‘조금은 더 비워도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아요.

 

 

 

 

EP를 두 장 정도 낸 이후에 정규를 발매하겠다는 대략적인 계획이 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EP 두 장을 낸 후 정규 앨범을 발매하셨잖아요. 정규 이후 새로운 EP를 발매한 시점의 사뮈가 보는 당시의 사뮈는 어떤가요?

 

<농담> 앨범이 나오고 난 뒤 단독 공연을 진행했을 때, 사뮈라는 뮤지션의 음악 인생에서 1막이 끝난 기분이라는 말을 했어요. <농담>을 발매하기까지의 사뮈는 제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능력을 증명해 내는 데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개인적인 만족이나 해소에 비중을 더 크게 뒀던 것 같고, 저한테 위로가 된다면 ‘세상의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해왔어요.

 

이번 앨범은 제2막의 1장을 여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시작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멋있는 비유네요. 제2막의 사뮈는 어떤 사람이 될 것 같으세요?

 

결과적으로는 남을 만족시키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음악을 만드는  게 제 일이잖아요.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응원해주시고 계시지만,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값진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듣는 이들이 어떻게 감상할 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은 아예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긴 했어요. 그런데도 이 앨범을 낼 수 있었던 건 ‘이 음악도 내가 생각하는 사뮈의 음악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2막의 사뮈는 어떤 모양으로 나올지,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지도 모르겠지만 사뮈는 사뮈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모양일지는 모르겠습니다.

 

 

 

 

2023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올해의 남은 시간은 어떻게 보내실 계획인가요?

 

11월 18일에 벨로주에서 단독공연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보통 4인조 공연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앨범의 무드를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해요.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등 기존에 함께 하지않던 악기들과 함께 공연하는 방식으로 셋을 짜고 있어요. 재미있는 공연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공연까지 하고 나면 연말은 조용하게 쉬면서 보내고. 새해와 함께 다음 앨범과 내년의 모습을 좀 더 구상하게 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팬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사뮈라는 이름으로는 정말 오랜만에 음악이 나오게 됐는데요. 죄송하다는 생각도 들고, 기다려 주셔 감사하다는 생각도 드는 것 같아요. 어찌 됐든 음악을 좋게 들어주셨으면 좋겠구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Interview | 박현영

사진제공 | 사뮈

인식 너머의 세계를 구현해내는 힘, 싱어송라이터 시와

 

인식 너머의 세계를 구현해내는 힘, 싱어송라이터 시와

 

꿈은 모호하고 신비롭다. 사람들은 꿈을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단서로 사용하거나, 미래를 예견하는 데에 활용한다. 창작자들에게 있어 꿈은 커다란 영감을 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싱어송라이터 시와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시와가 꿈을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방식은 어딘가 색다르다. 꿈에서 영감을 얻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넘어, 자신이 꿨던 꿈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완성하기 때문이다.

 

올해 8월 시와가 발매한 싱글 <꿈속의 새>는 2017년 꿨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곡이다. 좀처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꿈의 이야기를 완성하고자 그가 택한 방법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저마다의 세계를 포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꿈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실체화하는 모습에서 ‘들여다보고 안아주는 노래를 부른다’는 시와의 음악적 정체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건네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 보이는 시와를 만나 작품과 사람 시와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들여다보고 안아주는 노래를 부르는 음악가 시와입니다.

 

 

꿈속의 새가 발매된 지 열흘 정도 지났어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싱글 작업을 하면서 함께했던 사람들을 소개하는 글을 SNS에 시리즈처럼 올리고 있어요. 음악 관계자분들께 보도 자료 같은 것을 첨부한 신곡 소개 메일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발매 후에야 떠올라, 그것을 위한 예열의 시간을 좀 가졌어요. 현재는 좋아하는 음악 필자 두세 분께만 개인적인 안부도 여쭈면서 발매 소식을 전달한 상태예요.

 

 

시와 <꿈속의 새> 앨범 커버

 

<꿈속의 새>2017년에 꿨던 꿈을 꾸고 만든 곡이라고 말씀하셨어요.

 

평소 꿈을 자주 꾸고 관심이 많아서 (꿈에 대한) 공부도 하고 워크샵도 많이 듣는 편이에요. 그래서 꿈을 이해하고 싶은 욕망이 항상 있죠. 꿈은 항상 자기 생각 너머의 것들에 의미를 담고 있대요. 그래서 꿈을 이해하기 위한 활동 중의 하나가 예술적으로 표현해 보는 거죠. 노래를 만든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일기를 써본다거나. 모든 꿈을 노래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 꿈은 노래로 만들게 됐어요.

 

 

오랜 시간 동안 품고 있다가 완성된 건데, 특별히 오래 걸린 이유가 있을까요?

 

꿈을 만들긴 했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멜로디와 가사와 코드는 있지만 어떤 사운드로 표현해야 될지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아서 발표를 못 하고 있었죠. 그러다 6년이 흘렀어요. 한 2~3년 전부터는 이제는 내야겠다, 어떻게든 내야 하지 않을까 구상을 쭉 하다가 오래 걸리게 됐네요.

 

 

발매 이후에 마음은 좀 어떠세요?

 

‘이제는 때가 됐나 보다’, ‘때가 돼서 가장 알맞을 때 이 노래를 발표한 게 아닐까’라는 저만의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이 곡을 어떻게 들었을까가 다른 어느 곡보다도 많이 궁금하고 묻게 돼요. 그런데 제 노래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저만큼이나 말을 아끼는 분들이셔서 잘 안 알려주세요. (웃음) 그래서 늘 궁금해하고 있어요. 누구라도 말해주면 엄청 반가워하고 있어요.

 

 

시와가 꿈을 꾼 후 그린 그림

 

당시에 꿨던 꿈이 정확히 어떤 꿈이었나요?

 

꿈속에서 집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들어갔는데, 경찰, 선생님, 신부, 수녀, 목사 등등 여러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쭉 둘러서서 무언가를 보고 있었는데, 아는 사람이 누워 있었어요. 그 사람을 둘러싸고 여러 사람이 보기만 하고 있는데, 그냥 안아주고 싶었거든요. 거기서 빼내 주고 싶기도 했고.

 

근데 그걸 원하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서 가까이 가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그냥 집 밖으로 나왔죠. 집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저기 멀리서 새가 날아왔어요. 새가 날아오는 길이 보였는데, 하늘길이 아니라 땅에 길이 보였어요. 땅에 방울방울 (물기가) 떨어져 지나온 자리가 보이는 거예요. 그런 장면이어서 ‘날아가는 자리마다 땅이 젖는다’ 같은 가사를 썼죠.

 

 

곡을 완성해 가는 동안 그 꿈을 둘러싼 생각이나 감정이 변화하던가요?

 

특별히 그런 건 없었어요. 만드는 당시에는 의미 있는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고, 노래로 만든 후에는 머리로만 생각해 두고 (작업은) 놓고 있었어요.  그런 시간이 보통 예열의 시간인 것 같아요. 어디 들어가거나 시작하기 전에 책상을 치우는 것처럼. 지금까지 하던 방식이랑은 다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예열의 시간을 가진 것 같아요.

 

 

발매 이후에는 어떤 변화는 없었나요?

 

사람들이 어떻게 들었는지를 궁금해하는 걸 적극적으로 표현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그게 변화라면 변할 것 같아요.

 

그동안에도 고맙다는 말은 했지만, 함께한 사람들을 소중하게 소개한 것도 변화인 것 같아요. 항상 사람을 만나서 작업을 해왔는데 과연 한 사람과 나라는 또 다른 사람이 만난다는 사실을 잘 깨닫고 있었는지, 그분의 역할 만을 바래온 건 아닐지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참여한 사람의 이름을 먼저 쓴 후에 역할을 써봤어요.

 

 

 


사운드나 컨셉트적인 부분에서 그간의 포크 기반의 음악과는 다르게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가미된 곡을 하셨어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꿈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었고요. 2017년 당시에 코드 진행만 정해놓은 게 있었어요. ‘곡을 하나 써야지’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다 이 꿈을 꿨고, 생각해 놓은 코드로 가사랑 멜로디를 한 번에 엮었거든요. 원래 자주 쓰던 코드 진행이 아니라 손으로 짚어가면서 새롭게 알게 된 코드 진행이었어요. 그래서 멜로디도, 노래 자체도 기존에 썼던 것과 다르다 느꼈고, 편곡도 다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전혀 감을 못 잡았지만, 한 2~3년 전부터는 ‘불규칙적인 드럼 사운드로 곡을 시작하면 좋겠다’라고 연상한 것 같아요.

 

비가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를 드럼으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때쯤에 김사월 씨가 <드라이브>라는 EP앨범에 ‘레슬링’이라는 곡을 발매했어요. 근데 ‘레슬링’이 (원하던 방식으로) 그렇게 시작하는 거예요. 이미 나온 곡이니까 생각했던 방식으로 진행하면 따라 하는 게 되겠다 싶어서 한동안 듣지 않았어요. 그 노래가 너무 좋은데, 혹시나 영향을 많이 받을까 봐요.

 

 

카코포니 님이 편곡에 참여하셨잖아요. <꿈속의 새>에서 비가 오는 분위기를 구현해 줄 아티스트로 직접 요청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카코포니 음악의 어떤 부분이 곡과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하셨나요?

 

<꿈속의 새>가 지금까지 제 노래랑은 다르게 나왔고,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도가 있었어요. 제가 가진 음악적 상상력으로는 뻔할 것 같았고, 다른 분과 작업하면 좋겠다 싶었던 차에 정우의 <옛날이야기 해주세요>를 들었어요. 그 곡이 저한테는 예상치 못한 순간이 있었거든요. 누가 편곡했는지 봤더니 카코포니 님인 거에요. 그래서 바로 메일을 보냈어요.

 

카코포니 님은 이미 ‘정규 앨범 작업 중이라 피처링 이외의 다른 작업은 받지 않습니다’라고 인스타에 쓰셨더라고요. 이 곡은 발매일을 정하지 않았고, 카코포니 님과 작업하는 게 중요하니 기다릴 수 있다고 말씀드리면서 녹음한 데모도 보내드리고, 곡에서 구현하고 싶은 이미지를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다고 전했어요. 근데 수락을 해줬어요. 기한을 정해두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이 편하셨나 봐요. 또 정규 앨범을 작업을 하면서 중간중간 환기할 기회가 필요하대요. 이 곡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해주셔서 너무 좋았죠.

 

그때 처음 드린 데모가 이 싱글의 두 번째 트랙이에요. 그래서 청취자분들께는 이 노래의 처음과 완성을 모두 들려드리고자 하는 의도를 앨범에 담았어요.

 

 

정우의 <옛날이야기 해주세요>의 어떤 부분이 예상치 못한 편곡으로 느껴지셨어요?

 

<옛날이야기 해주세요>를 들으면 초반부에 사운드가 빠지고, 정우 목소리만 남아요. 그 부분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리고 나레이션이 등장하는데, 정우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이어받으면서 계속 읽어요. 그것도 감동 포인트였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카코포니 님이 꼭 여러 사람이 읽어야 한다고 했다더라고요.

 

제가 상상하던 그림은 사월 님이 이미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어떤 길을 가야할지 고민할 때는 정우 님의 음악을 들었네요.

 

 

다른 뮤지션들의 작품도 영감의 원천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영감의 원천은 꿈에서 왔다고 말하고 싶고요. 지도는 지도인데, 그쪽으로 가면 안 되는 지도 같아요. (웃음) 이미 서 있는 이정표들을 보고, 다른 길로 가야겠다는 면에서 영향을 받았죠.

 

 

<꿈속의 새> 녹음실 현장사진

 

평소 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편이에요?

 

인간의 전체의식이 넓은데, 저희가 알고 있는 부분(의식)보다 모르는 부분(무의식)이 더욱 많잖아요. 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부분이어서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알 수 없고, 다른 사람이 자기 생각을 말해줄 때 조금씩 이해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꿈을 이해하려는 그런 학계나 관심 있는 사람들은 ‘그룹 꿈 투사’라는 걸 해요.

 

 

그룹 꿈 투사에 대해서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꿈에 관해서 서로의 마음을 비추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예전에 느티나무 아카데미라는 데서 고혜경 선생님이 18명의 사람을 모아두고 봄, 가을마다 워크샵을 내셨거든요. 지금도 하실 거예요. 여기에 네 번 정도 참여했어요. 모인 사람 중에 매주 한 사람이 자신의 꿈 이야기를 내놔요. 그러면 17명이 듣잖아요. 17명이 한 사람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 꿈에 대해서 선명하게 상상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질문을 해요. 그 장면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실제로 꿈을 꾼 사람밖에 없잖아요. 나머지 사람들은 그 이야기와 질문을 통해서 자기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거예요. ‘그 꿈이 내 꿈이라면,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고 말하는 거죠.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 이유가 꿈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이야기가 아니라 장면을 노래한다고도 말씀하셨잖아요기존의 방식과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그동안 가사를 썼던 걸 생각해보면, ‘장면’을 그리는 노래들도 많긴 했어요. 데뷔곡이라고 할 수 있는 <길상사에서>나 <화양연화>나 <랄랄라>도 그렇고. 듣는 분의 마음속에 풍경이 하나 그려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정리하곤 했어요. 근데 <꿈속의 새>는 실제가 아닌 꿈속의 장면이니까 맥락이 없이 느껴지는 것 같은 거죠. ‘꿈처럼 두서없고 모호한 장면을 듣는 사람에게 어떻게 납득시키지’라는 고민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 도중 인간의 의식과 꿈에 대해 시와가 직접 그림을 그려주며 설명하는 사진

 

 

그래서 여러 방식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을 시도하셨던 것 같아요.

 

꿈이 혼자 이해하려는 것이 거의 무의미하고, 언제나 인식 너머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했듯이, 그 노래를 저 혼자 표현을 못 해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카코포니 님께 프로듀서를 맡아달라고 요청을 드렸고, 꿈 이야기를 자세히 듣기도 전에 멜로디와 가사만으로 자신이 이해한 만큼을 표현해 주신 거예요. 뮤직비디오 작업도 제 꿈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어서가 아니라 그 노래에 담긴 만큼만 자신의 시각에서 해석해 주시는 거죠. 논센소 작가님이 참여하신 앨범 커버도 원래 존재하던 작품이었어요. 당신의 작품으로 커버를 하고 싶은데, 이 노래를 듣고 작가님의 작품 중에 하나 골라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협업 역시 제 인식 너머의 것이었으면 했고 그 과정들을 합쳐보니, 이 꿈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라는 사람이 내 몸을 갖고 살아온 시간 이상의, 이외의 것들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보는지를 계속 알고 싶어 했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꿈속의 새> 음악 자체가 함께한 사람들, 그리고 듣는 사람들과 시와 님이 그룹 꿈 투사를 진행하는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죠. 그럴 수 있죠. 그래서 제가 더욱 다른 사람들이 이 노래를 어떻게 들으셨을지가 그렇게 궁금한가 봐요. 꿈을 이해한 실마리를 더 많이 얻고 싶어요.

 

 

협업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어려웠던 점은 크게는 없었는데요. 처음에는 이 작업이 하나의 사물을 여러 방향에서 각각 바라보는 거라는 걸 인식하지 못했어요. ‘내가 보는 방향을 다른 분들께 납득시켜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어요. 그러다 저의 배우자가 그런 얘길 했어요. 이 작업이 당신이 말하던 그룹 꿈 투사 작업이 아니냐고. 사람들에게 당신이 보는 관점을 납득시킬 게 아니라, 그대로 두는 게 꿈을 이해하는 방식 아닐까 얘기해주면서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이를테면 반가사유상이 있어요. 정면에서 보는 것과 측면이나 뒷면에서 보는 반가사유상이 모두 다르잖아요. 제가 보여드린 게 정면이라면, 카코포니 님이 들려주시고자 했던 건 측면이고,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다른 측면이고. 논센소 작가님의 앨범 커버도, 백은선 시인이 써준 소개글도 전부 다른 측면의 일부였던 것 같아요.

 

그다음부터는 술술 작업이 된 것 같아요. 근데 저와 함께 호흡하셨던 분들은 제가 마이크로 매니징을 한다고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어요. (웃음)

 

 

진주 ‘다원’에서 열린 시와의 공연 | Photographer 배길효

 

 

올해 벌써 많은 공연 스케줄이 잡혀 있어요. 이번 곡은 어떻게 보여주실 예정이세요?

 

혼자 솔로 셋으로 할 때는 데모 버전으로 하고요. 11월 12일에는 밴드 셋으로 공연할 예정인데, 그때는 사운드를 최대한 구현하려고 해요. 밴드가 만들어 내는 사운드가 있을 거예요. 아까 말씀드린 반가사유상에 또 한 면이 추가되겠죠? 9월 21일에 밴드 첫 모임 하기로 했거든요. 그 날을 생각하면 무슨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무척 설레요.

 

 

곡을 듣고 연주자분들께서 생각하시는 방향들이 또 다를 수 있겠네요.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카코포니 님의 편곡에도 베이스와 드럼 파트를 리얼 악기로 충분히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아 의뢰할까 하다가 마음을 접었어요. 그분들이 연주하면 더 좋아지는 부분도 있겠지만, 카코포니가 구현한 세계가 조금 옮겨갈 수 있잖아요. 카코포니가 구현하는 세계를 그대로 온전히 남겨두는 게 맞겠다 싶어 따로 연주자 의뢰하지 않았어요.

 

 

 

 

오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이번 시도가 새로웠던 만큼, 음악적인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해요. 앞으로의 작업에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을 것 같으세요?

 

다음 곡을 발매할 때가 되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인터뷰를 읽으면서 궁금해하실 분이 계신다면 4집 <다녀왔습니다>를 들어봐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거기에도 스펙트럼이 있거든요. 어쩌면 그 안에서 많이 펼쳤기 때문에 그 이후에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라는 미니 앨범에서는 최소화할 수 있었고 그게 <봄을 만든다>까지 갔었고요. 이번 싱글에서 다시 펼친 거거든요. 물론 <다녀왔습니다>는 제가 프로듀싱을 했으니 제 상상력 안의 것이라 <꿈속의 새>보다는 좁을 수 있지만, 그때도 이규호 님이라든가, 굉장히 훌륭하고 멋진 음악가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서 스펙트럼을 확 넓혀서 진행했어요.

 

<꿈속의 새>를 통해 꿈으로 만든 노래를 발표해 본 경험을 가졌으니까 앞으로 꿈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덜 어려워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감정적인 예감은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구상 중인 계획이 있으실까요?

 

최근에 오디오북이 나왔어요. 작년에 쓴 <나는 노래하는 시와로 산다> 책이 오디오북으로 오늘 출시됐어요. 네이버 오디오클립, 구글 오디오북과 팟빵에서 들어보실 수 있어요.

 

 

다음 발매 계획도 있을까요?

 

이어서 발표하고 싶은 곡은 다른 음악가랑 함께 작곡한 곡이에요. 진행은 하나도 안 돼 있고요. 곡은 작년 가을에 같이 썼는데 안복진 씨랑 곡을 만든 게 있거든요. 본인은 아직 (이 계획을) 모를 거예요. (웃음) 그리고 이제 5집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작년부터 하고 있어서요. 어쩌면 이전에 4집을 냈을 때처럼 앨범을 먼저 완성하고 차례차례 공개하는 식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좋아서 하는 밴드’의 안복진 씨랑 만든 곡이 다음 후속곡이 될지, 아니면 계획 중인 정규에 수록될지 모르겠지만 복진 씨랑 얼른 작업하고 싶어요.

 

 

2022년 출간된 시와 저서 <나는 노래하는 시와로 산다>

 

 

앞으로의 시와를 기대해 주실 분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제 본명은 강혜미인데요. 그동안 혜미하고 시와를 잘 분리할 줄 몰랐던 것 같아요. 시와가 곧 혜미고 혜미가 곧 시와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게 지난 18년인 것 같아요. 지금은 시와가 혜미의 부분 집합이라는 걸 의식하기 시작했어요. 매주 인스타 라이브를 하면서부터 인 것 같아요.

 

그동안 음악 외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 삼가해 왔어요. 근데 라이브를 하면서 어떻게 지내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더니 (의도적으로 외적인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했을 때보다 마음이 훨씬 편하더라고요. 신기하게 시와와 혜미는 다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시와는 혜미일 수 있는데, 혜미는 시와가 아닌 거죠.

 

제 공연에 찾아와 주시고, 음악을 들어주시는 분들을 예전에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랐어요. 늘 머뭇거리고 소심하게 행동했고, 고맙긴 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었어요. 근데 라이브를 통해서 마음이 많이 열렸어요. 여러분과 대화를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상태가 되었으니, 지금부터의 음악과 활동이 또 제가 생각한 것 이상의 무언가가 될 수 있겠다 싶어요. 그 모습을 지켜봐 주시는 분이 계시면 좋겠어요.

 

 

정말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여쭙고 싶어졌어요. 시와와 혜미는 각각 어떤 사람인가요?

 

시와는 들여다보고 안아주는 사람이기를 바라죠. 혜미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은데요. 누군가 저를 들여다봐 주고 안아주길 바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미리 생각해 본 말이 절대 아니에요. 지금 생각났어요.

 

지난주 인스타 라이브에서 요조가 쓴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너의 이름에 바칠 수 있는 코드’라는 소제목으로 쓴 글인데, 그 글의 말미에 제 음반 <다녀왔습니다>를 듣고 쓴 글이 있어요. 진짜 나답게 살고 있는지를 고민하며 만든 앨범이어서, 그 앨범의 첫 곡이 새로운 이름을 갖고 싶다는 걸로 시작해요.

 

근데 요조는 충격이었대요. ‘시와가 지금의 자기를 부정하고 새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단 말이야?’로 시작하는데, 글의 마지막에 저를 돕고 싶다고 썼어요. 너무 좋은 거예요. 여러 번 읽다 소리 내어 읽으니 더 마음이 잘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요? 이 사람이 나를 돕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졌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도움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우느라 마지막 부분을 낭독하기 힘들었어요.

 

 

 


Interview | 박현영

사진제공 | 시와

김도언

 

김도언, 그의 경험과 영감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 청각적 서사

 

무려 16트랙의 꽉 찬 정규 앨범과 함께 등장한 프로듀서 김도언. 씬에서의 경험과 영감을 바탕으로 그가 쌓아 올린 청각적인 서사는 꽉 찬 볼륨에 못지않은 밀도와 집적된 유기성을 자랑한다. 장르를 넘나드는 유수의 피쳐링진으로 눈길을 끌지만 곧이어 앨범의 끝에 가서는 김도언이라는 인물의 시선으로 귀결되는 이번 앨범은 그만큼 세세한 부분까지 아티스트의 손이 닿아있는 작품이다. 레이블 ‘SoundSupply_Service’ 소속 아티스트로서 본격적인 솔로 활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그를 만나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작품의 겉과 속을 모두 관통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Q. 마침 정규 앨범 발매 날에 인터뷰하게 되었네요. 앨범이 발매된 지 채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시점인데 오늘 하루 어떻게 지내다 오셨나요?

 

제가 원래 좀 늦게 일어나는데 오늘은 모처럼 발매 날이어서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났어요. 발매가 무사히 잘 됐나 확인도 하고 제가 근처에 사는데 마침 인터뷰 장소가 되게 가까워서 머리 비울 겸 산책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하루였네요.

 

Q.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SNS 등을 통해서 좋게 들어주셨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도 많고 아무래도 다양한 분들이 참여를 해주셔서 샤라웃도 많이 해주셨던 것 같아요.

 

Q. 아무래도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김도언이라는 아티스트를 처음 알게 된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번에 [Damage]라는 정규 1집을 들고나온 김도언이라고 해요. 처음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던 게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될 때쯤부터였던 것 같은데 그때부터 항상 앨범 단위의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더라고요. 그 시간 동안 주로 만나게 됐던 분들이 오히려 음악 하시는 분들 보다도 음악 외적인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가령 미술이나 영상을 하신다거나 그림을 그리신다거나 전방위적인 예술 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많이 만났는데 그럴 때마다 그분들도 제가 음악 하는 걸 아시다 보니까 이래저래 외주 격으로 부탁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래서 전시 형태로 이루어진 작업에서 배경 음악 작업을 한다던가 졸업 작업을 준비하는 친구의 단편 영화 배경 음악이나 애니메이션 배경 음악 등을 작업하기도 했어요. 알게 모르게 음악이 필요한 일들을 많이 했던 것 같고 또 그와 동시에 음악에 필요한 일들, 예를 들면 믹싱 같은 일들도 마다하지 않고 했었어요. 사실 다 재밌었기 때문에 일이라기보다 작업의 일부로 해왔던 것 같네요.

 

 

Q. 그 작업들이 어떻게 보면 전부 정규 작업을 위한 밑바탕이 됐다고도 볼 수 있을까요?

 

네, 충분히 도움이 됐죠. 사실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만들 수 없던 앨범이에요. 왜냐면 그 경험들 하나하나가 저한텐 다 도전이었기 때문인데, 외주라는 특성상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기준이 있고 그것들이 전부 저 혼자서는 두지 않았던 기준이거든요. 그걸 미션처럼 수행했던 기억이 있어요. 예컨대 전시 음악 같은 경우는 사진과 어우러지는 20분짜리 음악을 만드는 작업이었는데 클라이언트 측에서는 되게 미니멀한 음악을 요구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 당시에 꽉꽉 채우는 것에 급급해서 비우는 작업이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그 일을 함으로써 비우는 연습이 됐죠. 그리고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도 서사가 있는 작업이다 보니까 고조되는 파트에 맞춰서 초 단위의 디테일을 요구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되게 힘들었지만 도움이 됐어요. 물론 영화 음악도 마찬가지고 일단 저한테 부탁을 주셨던 작업자분들이 저보다도 좋은 음악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계신 분들이었어서 많이 배우기도 했습니다.

 

Q. 단순히 완성이 미뤄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 과정에서 내실을 다질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네, 그렇죠.

 

Q. 디스코그라피 찾아보다 ‘잠자코도’라는 이름으로 한때 활동하셨던 것도 눈에 띄었어요.

 

그 이름으로 처음 활동했던 게 이수호 님의 앨범에 참여했던 건데 그때는 본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아예 못 하기도 했고 뭔가 예명이 있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별 뜻 없이 지었던 이름이에요. 그 당시에는 제가 인스트루멘탈이나 기악곡 위주로 만들었다 보니까 보컬이나 가사 같은 언어 없이도 감상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잠자코도’라고 지었죠.

 

 

Q. 그러다 활동명을 본명으로 바꾸게 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그렇게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웃음) 뭐랄까 나중에 가서 생각해보니까 굳이 제가 그런 음악만 할 것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 앨범을 제가 직접 만들고 전면으로 나설 상황을 앞두고 있다 보니까 그냥 나한테 제일 익숙한 이름이 맞겠다 싶기도 했고. 그리고 그 예명이 입에 계속 안 붙었어요. 괜히 민망하기도 하고 (웃음). 그렇게 본명으로 바꾸고 나니까 마음이 좀 편해졌던 것 같아요.

 

Q. 이름 따라간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활동명에서부터 한계가 규정되어 버리는 느낌도 있었겠네요.

 

네, 오히려 약간 답답하더라고요. 이름에 맞춰서 뭔가 해야 할 것 같고, 그리고 그 ‘잠자코도’라는 이름으로 엄청 활발하게 활동하지도 않았어서 본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Q. 뒤에서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나누겠지만 이번 정규 앨범 피쳐링진도 인상적이에요. 친분이 있는 분들 위주로 섭외하신 건가요?

 

그런 분도 있고 아닌 분도 있는데, 한주 님과 소윤 님의 경우는 작년에 제가 이수호 님의 [Monika]라는 앨범의 믹싱 엔지니어로 참여했을 때 같이 믹싱 세션을 가지면서 처음 만났어요. 그 이후에 몇 달이 지나서 앨범 데모를 들어달라고 따로 연락을 드렸고 감사하게도 두 분 다 흔쾌히 응해주셨어요. 그 외의 분들 같은 경우는 다 작업 때문에 처음 뵙게 된 분들이었는데 직접 작업 요청 메일을 드렸어요. 그때 되게 긴장이 많이 됐는데, 왜냐면 일단 팬으로서 너무 좋아하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연락이 닿았을 때 너무 기뻤던 기억이 있어요.

 

Q. 참여해주신 분들이 장르적인 다양성도 인상적이더라고요. 실제로 도언 님의 장르 전반적인 관심이 반영된 부분일까요?

 

요즘은 어떤 특정한 장르에 초점을 맞추는 게 어려운 시대라고 생각해요. 조금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저를 포함한 또래 친구들 대부분이 미디어나 컨텐츠에 많이 노출되어 있고 중독도 되어 있단 말이죠. 예컨대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러시아 영화감독 중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라는 분이 있어요. 보통 호흡이 느리고 긴 시간의 영화를 만드시는데 그분 영상을 유튜브로 보다가 버튼을 몇 번 잘못 누르기만 해도 ‘매운 팽이버섯 먹방’ 같은 쇼츠가 갑자기 뜨는 거예요. 아니면 요즘 카페 같은 곳에서 턴테이블이나 바이닐이 놓여 있고 80년대 소울 알앤비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사실 알고 보니 아이맥에서 틀어진 애플뮤직 플레이리스트였다던지 하는 순간에 느껴지는, 이상한 경계선에 놓여있는 것 같은 기분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 시대는 무겁고 가벼운 게 혼재되어 있는, 뒤섞여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그 경계선 사이를 오갈 때 저는 약간 머리가 붕 뜨는 기분을 느끼거든요. 돌고 돌아 처음 해주신 질문에 답을 하자면, 그런 상태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까 실제로 모호한 경계선에 놓은 결과물들이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제 삶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 보니 어떠한 ‘장르’에 관심을 두었다기보다 많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섞여버린 거죠.

 

 

Q. 자연스럽게 앨범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이번 정규 1집 [Damage]에 대해서 도언 님이 직접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Damage]는 제 첫 번째 앨범이에요. 어린아이를 화자로 내세우고 크게는 ‘순수성’과 ‘폭력성’을 키워드로 생각하며 작업했습니다.

 

Q. 도언 님이 생각하시는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번 작품은 그것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기보다 질문을 던져보는 느낌이에요. 여기서 구성적인 장치가 하나 있는데, 1번 트랙이 ‘청명(淸明)’이라는 제목이고 마지막 16번 트랙이 ‘Green Screen (feat. Fisherman)’인데 그게 사실은 수미상관 느낌으로 배치했던 거예요. ‘청명’의 한자 뜻을 풀어보면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인데 푸른 하늘과 그린 스크린 사이의 경계도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모호한 느낌을 의도했던 것 같아요. 중국 철학자 장자가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라고 했던 ‘호접지몽’이라는 이야기하잖아요. 그러니까 청명과 그린 스크린 사이에 놓은 트랙들 전부가 판타지일 수도 있는 거고 현실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거죠. 그렇게 의도적으로 경계가 모호하도록 만들었던 것 같네요.

 

Q. 전체적으로 디테일한 설계가 눈에 띄어서 들으면 들을수록 다시 보이는 지점이 많은 앨범인 것 같아요. 이렇게 많은 공을 들이신 솔로 작품이신 만큼 그간의 외주 작업이나 다른 아티스트 앨범에 참여하셨던 것과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점이 있었나요?

 

단순하게 생각해봤을 때 결국 외주냐, 내 작업이냐의 차이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가, 아니면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초점을 맞추는가의 차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것도 사실 차이가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타인과 이야기를 하고 그들을 이해하다 보면 어느 순간 오히려 나 자신에 대해서 이해가 되는 순간도 있고 반대로 오로지 나 자신에 대해서 집중을 하려고 할 때도 자연스럽게 타인이 생각이 날 때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결국에는 끝에 가서 맞닿아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어쨌든 솔로 작업을 함에 있어서 제가 주도적으로 완성까지 끌고 나가야 하니까 조금 더 책임감도 생기고 중간중간 스스로 지치지 않도록 당근과 채찍을 적당히 줘야한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Q. 당근과 채찍을 어떤 식으로 주셨는지 궁금합니다. (웃음)

 

사실 당근을 잘 못 줬던 거 같은데 주로 그냥 훌쩍 국내 여행을 떠났던 것 같아요. 진짜 작업하다가 너무 안 돼서 새벽에 그냥 강원도에 갔던 적도 있어요. 일단 자신한테 너무 잡아먹히는 느낌이 싫어서 전시도 보러 다니고 계속 환기를 시키려고 했던 것 같은데 사실 구체적인 방법은 매번 달랐던 것 같네요. 어쨌든 작업실을 나오는 것. (웃음)

 

 

Q. 앞서 해주신 이야기 중에 두 작업 스타일이 결국 맞닿아있다고 하신 내용도 재미있어요. 그렇다면 마치 타인을 이해하듯이 나 자신도 타자화해서 바라보신 적도 있을까요?

 

네 맞아요. 타자화, 객관화해서 멀리서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아니면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그리고 차분해지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사실 모든 작업자분들이 그렇겠지만 고독해지는 순간이 많이 있는데 그때를 잘 이겨내려고 했던 것 같네요.

 

Q. 참고로 이번 앨범은 저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인상적으로 들었어요. 물론 4월 말 발매된 선공개 싱글이 있기는 하나 본격적인 데뷔 작품은 이번 [Damage]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싱글 위주의 시장 흐름 속에서 이렇게 거대한 규모로 커리어를 시작하신 의도가 궁금합니다.

 

사실 생각보다 그 이유는 단순해서, 그리고 아까 음악 시작하던 시절에 앨범 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씀드렸던 이유도 제가 소비하던 음악이 주로 앨범의 형태였기 때문에 그게 저한테는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그렇다 보니 생산자 입장에서도 앨범 단위로 아웃풋이 나오게 된 것 같아요.

 

Q. 특히 이번 작품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대주제가 확실하기도 해요. 아무래도 규모 있는 작업이다 보니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사실 쉽지 않았는데요. (웃음) 16트랙이지만 데모로 치면 거의 20~30트랙까지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결국에는 비워내고 덜어내고 재배치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한 곡 안에서도 파트가 있다 보니까 그 안에서 퍼즐 느낌을 주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했어요. 근데 그 퍼즐 조각을 맞추는 데 있어서 하나의 그림 같이 정답이 있는 퍼즐이라기보다 자유롭게 상상의 여지를 많이 남겨두고 싶었던 앨범이었어요. 물론 제가 속으로 생각했던 이야기는 있지만요.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1번 트랙 ‘청명(淸明)’에서 다음 트랙 ‘Newbie (feat. 이랑)’로 넘어가는데 여기서 ‘Newbie (뉴비)’가 인터넷 용어로 어떤 게임에서 시작 단계에 있는 사람을 말하기 때문에 그때부터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을 설정하고 시작이 되는 셈이에요. 사실 이 앨범은 게임과도 많이 맞닿아있어서 그런 설정을 넣었던 트랙이기도 해요.

 

Q. 곡 간의 유기성이나 서사를 설계하시는 것도 만만치 않으셨을 것 같네요.

 

배치하는 데 있어서 어쨌든 제가 듣기에 음악적으로 잘 연결되는 구조로 가져가고 싶었고 제 트랙들에서 이펙트나 노이즈 같은 요소가 되게 많기 때문에 진행될수록 단순해지는 구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무드에 있어서는 비교적 밝은 느낌의 초반 트랙들을 앞에 배치하고 중간중간 마치 날씨가 어두워지듯이 어두운 느낌의 구간을 중후반부에 배치했는데 마지막에 다시 그 구름이 걷히는 느낌으로 직관적인 장치를 많이 이용하기도 했죠.

 

 

Q. 마치 소설로 치면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는 사건처럼 이번 앨범에도 서사에 방점을 찍는 특별한 트랙이 있을까요?

 

16개 트랙 중에 9번 트랙 ‘SaGA’가 제일 어떻게 보면 그런 챕터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요. 8번 트랙 ‘When You Were…’는 이제 9번을 위한 힌트의 역할을 하고 있고요. ‘SaGA’는 소설이나 이야기 속 영웅담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제목인데 이때부터 연달아 나오는 트랙들의 분위기가 비교적 어두운 편이에요. 이 트랙을 통해서 분위기의 전환을 가져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음악과 함께 하는 뮤직비디오도 인상 깊어요. 지금까지 총 두 곡의 뮤직비디오가 나왔고 영상을 비롯해 앨범 커버 같은 비주얼적인 부분 또한 도언 님의 작품 속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아트 디렉션을 저랑 전재민이라는 친구가 함께 맡았는데요, 그 친구는 ‘요새 (feat. So!YoON!)’ 비디오 디렉터도 하고 싱글 아트워크, 앨범 아트워크까지 맡아서 해준 친구예요. 작업 초반의 기획 단계 때부터 음악적인 부분까지도 피드백을 주고받아서 자연스럽게 비주얼과 음악이 섞이게 됐어요. 그리고 황현진, 박형준, 이수호, 윤준희 같은 창의적인 디렉터들과도 평소에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기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아왔어요.

 

 

Q. 뮤직비디오도 직접 참여하신 부분들이 많은 편인가요?

 

비디오 같은 경우도 음악만큼이나 신경을 저도 많이 썼죠. 저도 사실 뜬금없이 몰래몰래 나오는데 아마 못 찾으실 거예요. (웃음) 저도 어떻게 보면 스탭 역할로 촬영장에 항상 갔었죠.

 

Q. 주변에 시각 작업자들이 많이 계시다 보니 다방면으로 영감을 주고받으시는 것 같네요.

 

네, 맞아요. 그리고 다들 앨범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주시는 분들이라서 더더욱 따로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Q. 사운드적인 측면도 재미있게 들었어요. 굉장히 다양한 요소가 얽혀있는데 평소에 이런 음악적인 영감은 어디서 받으시는 편인가요?

 

물론 양한 인풋이 있지만 저는 악기 자체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제가 처음으로 가져봤던 악기가 아이폰에 있는 ‘가라지밴드’라는 어플이에요. 작은 핸드폰에서 다양한 악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그 후 컴퓨터로 환경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가상악기와 플러그인을 만져보며 제가 좋아하는 소리를 만들게 됐던 것 같아요. 영감이 어디서 따로 오는 편은 아닌 것 같고, 실제로 기술을 다루고 익히며 경험으로 배우는 편입니다.

 

 

Q. 인터넷 라디오 ‘Worldwide FM’에서 객원 믹스셋으로 참여하신 소식도 들었어요. 전세계를 대상으로 송출되는 방송에서 한국 가요들을 선곡해주신 것이 인상 깊었는데 한국 가요에서도 작업적인 영향을 받으시는 편일까요?

 

물론 관심 가는 한국 가요가 있지만 앨범 전반에 걸쳐 한국 가요의 영향이 들어갔다고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싱글로 나왔던 ‘요새’ 같은 경우가 좀 두드러지게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네요.

 

Q. 마치 고전 게임을 연상시키는 전자음들도 재미있는 요소 중에 하나에요. 앞에서도 잠깐 이번 앨범에 녹아든 게임적인 요소들을 언급해주시기도 했는데 평소에 게임도 많이 즐겨 하시는 편이신가요?

 

사실 게임에 재미를 붙여보려고 했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재미를 느끼고는 싶은데 자꾸 플레이어로서 몰입은 잘 안 돼요. 다만 사운드트랙 같은 건 많이 좋아했어요. 유일하게 열중해서 했던 게임이 초등학교 때 닌텐도 게임보이로 하던 ‘포켓몬스터 골드 버전’인데 생각해보면 그때 그 음악들이 영향이 있기는 했을 것 같아요. 유저는 아니지만, 관련 음악을 디깅하면서 ‘크로노 트리거’나 ‘파이널 판타지’ 같이 한 명의 주인공이 세상을 탐험하는 RPG류 게임의 사운드트랙을 개인적으로 좋아했죠.

 

Q. 보컬리스트 혹은 싱어송라이터에 비해 가창을 겸하지 않는 프로듀서라는 역할은 곡 작업 과정을 바라보는 각도도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래도 다양한 피쳐링진을 자랑하는 앨범이기도 한 만큼, 보컬이라는 요소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갖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평소에 주로 인스트루멘탈 음악을 들어서 목소리를 음악적인 소스 단위로 쓰는 악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 앨범에서 가창을 겸하는 뮤지션분들과 협업을 하며 가사가 주는 힘을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Q. 예를 들면 어떤 곡에서 그런 느낌을 크게 받으셨나요?

 

방금 말씀드린 ‘Newbie (feat. 이랑)’라는 트랙이 그래요. 이랑 님이 “위험, 위험, 위험, 주의, 주의, 주의”라고 경고 신호 같은 사인을 주시거든요. 덕분에 이미지가 확장된 느낌을 받기도 했고요. 소윤 님이 참여했던 ‘요새 (feat. So!YoON!)’ 같은 경우에는 글로만 보면 어두울 수 있는 내용이 멜로디가 붙으니까 서로 이상한 모순을 만들어내는 것도 느꼈고요.

 

 

Q. 말씀하신 것처럼 각양각색의 목소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얹어진 모습들이 인상적이에요. 곡별로 피쳐링 아티스트를 선정하셨던 특별한 기준이 있으셨을까요?

 

 

네, 그렇죠. 그리고 기본적으로 제가 너무 좋아했던 앨범들을 내주신 분들이라는 게 또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었던 것 같고, [Damage]의 각 곡에 들어있는 특징적인 사운드가 어울릴 것 같은 목소리를 가진 분들께 섭외를 드린 것 같아요. 예를 들어, Newbie에서 콘트라베이스가 주가 되는 파트가 있는데, 이랑 님의 음악에서도 콘트라베이스가 두드러지는 인상을 받았기에 그 트랙에 요청을 드렸어요.

 

 

Q. 정말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재미있는 앨범이에요.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오늘이 딱 앨범 발매일이라서 더 의미 있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후에 이번 앨범에 관련된 추가적인 활동도 계획 중이신가요?

 

일단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뮤비가 더 릴리즈될 예정입니다.

 

Q. 혹시 앞으로도 정규 단위의 활동을 이어갈 생각이실까요?

 

미정. 아직은 미정이고 일단은 앨범을 기준점으로 삼아서 다음을 향해 움직일 것 같긴 해요. 그렇지만 중간중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니까. 저도 언젠간 싱글로 낼 수도 있다 생각을 하고 아니면 누군가와 협업을 할 수도 있고 사실 어떤 포맷을 딱 정해두진 않았어요.

 

Q. 그렇죠. 마치 활동명을 본명으로 정하셨던 계기처럼 굳이 벌써부터 길을 좁혀둘 필요는 없으니까요. (웃음)

 

그렇죠. (웃음)

 

Q. 이후의 작품활동은 어떤 식으로 이어지게 될지에 관한 도언 님의 간단한 힌트와 함께 마지막 한 마디 부탁드리면서 인터뷰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음반 같은 경우는 ‘인더박스’라고 하는데 컴퓨터 하나로 끝내버리는 작업이었거든요. 다음에는 라이브 레코딩을 한다던가 워크 플로우를 좀 바꿔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그리고 5월 말쯤에 CD가 소량 제작될 예정인데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웃음) 참여해준 모든 친구들 너무 모두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어요.

 


Interview | 월로비

OHIORABBIT

 

마리 토끼 잡기

 

질문지를 준비하는 내내 사적으로도, 동시에 공적으로도 계속해서 물음표가 이어졌던 부분이 하나 있다. 어쩌면 아래 이어질 내용의 핵심일지도 모를, 과연 ‘인간 오하이오래빗’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마치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상반된 음악 스타일을 꾸준히 병행해온 그의 광범위한 커리어에서부터 이어진 물음이었다. 그렇게 이번 인터뷰는, 이다지도 멀게만 느껴지는 평행선 사이 어디쯤에 녹아있을 이야기들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시작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는 어느 한쪽을 굳건히 대표하기보다 평행선 같은 양극단을 이어붙이고자 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리하여, 공교롭게도 본인 스스로 ‘래빗’임을 자처한 오하이오래빗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부단히 나아가는 중이다. 음악 생활의 시작부터 크루 활동과 솔로 작업, 그리고 최근 발표한 첫 번째 EP [덤]으로 까지 이어지는 유연한 맥락은 지금의 그를 충분히 설명해줌과 동시에, 자연스레 우리의 시선을 그의 다음 행보, 그리고 그다음 행보 너머로 향하게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하이오래빗이라고 하구요. 스스로 래퍼라는 타이틀이 좀 더 적합한 인물이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굉장히 오랜만에 이런 단위의 앨범을 내는 것 같은데 제가 작업물이 많은 편도 아니지만 많이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앨범 발매 후에 인터뷰가 업로드될 텐데 어떤 식으로 앨범을 들으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재밌게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질문 준비를 위해서 여러 자료를 참고했는데 이번 자리가 번째 인터뷰이신 같더라구요.

 

네, 전혀 없어요. 그래서 굉장히 좋습니다. (웃음)

 

Q. 저뿐만 아니라 많은 팬분들 또한 이번 인터뷰를 기점으로 오하이오래빗에 대해 알아갈 있을 같다는 기대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했던 활동명의 유래에 관해서 잠시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공식적으로 다룬 적은 없지만 사적으로 굉장히 많이 물어보시는 질문이에요. 이름 따라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름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서 그때마다 적절한 답변을 찾기가 어렵더라구요. 우선은 거창하거나 멋진 뜻을 담아서 지은 이름은 아니에요. 제가 한창 랩을 연마하고 있던 20대 초반, 2015, 2016년 즈음에 사운드 클라우드 씬이 굉장히 활발했는데 그때쯤에 기존에 쓰던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바꿔야 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마침, 그 당시 한창 혁오의 ‘Ohio’라는 노래를 굉장히 많이 듣고 있었던 것과 함께 또 마침 ‘래빗’에도 한창 꽂혀 있었어서 ‘아 오하이오래빗이다’라는 생각에 만들게 된 이름이에요.

 

 

Q. 다른 동물도 아니고 토끼에 꽂히신 이유가 있을까요?

 

왜 토끼에 꽂혀있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크리스마스 래빗’, ‘X-Mas 래빗’ 같은 후보들도 있었는데 주변 친구들한테 물어봤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 OLNL (오르내림)이라는 친구가 오하이오래빗이 가장 나은 것 같다고 말해줘서 결정됐던 것 같은데 유튜브에 제 이름을 쳐보면 실제로 오하이오주에서 토끼를 사냥하는 영상이 많더라구요. 그래서 ‘사냥당하는 토끼’ 같은 이미지를 갖고 가고 있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 이미지도 나름 나쁘지 않은 것 같았어요.

 

Q. 그래도 사냥당한다라는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해석하신 거겠죠?

 

관련해서 한 가지 이야기 드리자면, 제가 첫 앨범을 냈을 때 멜론에서 댓글로 유명하신 어떤 리스너분이 “비정한 세상, 피 토하는 음악”이라고 댓글을 달아주신 적이 있어요. 버벌진트님이 그 제목으로 곡도 발매하신 적도 있는데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제 정규 작업물에 한해서는 스스로가 자존감이나 자신감을 내뿜는 스타일보다는 공격당하는 느낌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고 저 자신도 그걸 나쁘지 않게 생각하고 있더라구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사냥당한다는 이미지와 제 이름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Q. 그렇게오하이오래빗이라는 이름의 공식 데뷔작이기 했던 정규 1 [ㄹ위한정신적사랑] 신예라고 보기 힘든 짜임새 덕분에 반대로 이전 아마추어 시절의 활동을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많을 같아요.

 

사운드 클라우드라는 매체를 기반으로 크루 활동을 했었어요. ‘juiceoveralcohol’이라고, 그 당시 멤버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쿤디판다, OLNL, ACACY 등등 여러 친구들이 있었는데 소울렉션이 한창 인기였기 때문에 퓨쳐베이스 기반으로 작업물을 계속 내던 시기가 있었어요. 2016년부터 2018년쯤? 그 2년 동안 20곡 정도를 작업하면서 꾸준히 발표를 이어갔던 것 같아요. 근데 그 작업들을 생각보다 점점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제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이전까지는 제가 정규 1집에서 보여드린 것처럼 서사적인 내용보다는 한창 랩에 빠져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냥 뭔가 ‘랩을 잘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이어갔었는데 정규 단위의 작업물에 와서 좀 진지하게 할 수 있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네요.

 

Q. 서사적인 메시지 전달에 대한 니즈도 그때쯤부터 커지기 시작하셨던 거군요?

 

그 이전에도 그런 것들에 대한 열망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걸 표현할 능력이 안됐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규 앨범을 만들면서 처음 시도해 본 것들이 많았어요. 서사적으로 짜임새 있는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Q. 인사말에도 언급하셨던 것처럼 규모 있는 작업물도 오랜만이시지만 솔로 작품 자체도 7개월 만에 발표하셨어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도 궁금합니다.

 

2020년 4월쯤에 전역을 하고 그 후에 정규 앨범에 대한 답가를 만들고 싶어서 [구애]라는 싱글로 저 스스로를 향한 답가를 발표하기도 했구요. 음악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안 해본 시도들을 계속하면서 지냈어요. [구애] 이후에 [뉴부자관광]이라는 싱글도 내고, 열심히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작업하면서 지냈습니다. (웃음)

 

Q. 열심히 내실을 다지고 계셨군요.

 

네 그랬던 것 같아요.

 

 

Q. 오랜만에 규모 있는 작업을 완성하신 소감도 궁금해요

 

가장 큰 소감이라면, 저는 확실히 데드라인이 정해져야 작업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고 느꼈고 (웃음). 사실 저번 정규 1집을 낼 때는 이번 앨범이 음악 인생에서 마지막이겠거니 하면서 작업했어요. 물론 이번 작업 때는 그런 생각을 덜 하긴 했지만 앨범을 낼 때마다 텐션이 가장 낮아지는 것 같아요. 뭔가 마무리하면서 집중력은 올라가지만 결과적으로 자존감이 좀 떨어지지 않나.

 

Q. 그 감정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설명해 주실 있을까요?

 

저번 앨범은 굉장히 짜임새 있게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서사적으로 모든 플롯을 짜놓고 곡 제목부터 먼저 정하고 작업하는 식이었어요. 그래서 어떠한 ‘완성물’이라는 것이 굉장히 눈에 잘 띄어서 ‘와 완성했다’라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앨범은 그런 서사라던가 계획 같은 것이 전혀 없이 그냥 하나의 묶음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서 ‘이게 완성이 됐나 안됐나’라는 생각이 컸어요. ‘내도 될까’라는 생각까지 있었는데 우선 발매일이 잡히고 마음속으로 데드라인이 정해지면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충실히 마무리했습니다. 그래도 항상 그렇지만 제 음악이 싫어지는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뭔가 못난 부분만 보이고. 그리고 딱 전달을 드리고 제 역할이 끝났다 싶어지면 다시 제 노래가 좋아지더라구요.

 

Q. 정규 1 당시음악 인생에서 마지막이겠다라고 생각하셨다는 부분도 인상적이에요실제로 음악을 접으려고 하신 건지, 아니면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하셨던 건지 궁금합니다

 

실제로 그만두려고 했었고 (웃음), 사실 24살에 시작한 군생활이 생각보다 너무 길게 느껴져서 2년이라는 시간이 끝나면 다른 길을 찾아서 떠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정규 1집도 사실 굉장히 억지로 희망차게 끝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도 하구요. 실제로 같이 작업하던 비트메이커 친구들한테도 그게 아마 마지막 앨범인 것 같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었고. 근데 또 계속할 이유를 못 찾았던 것과 별개로 그만둘 이유를 찾는 게 더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잘 하는 걸 계속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그래서 전역 후에 [구애]라는 답가도 만드시고 다시 행보를 이어나가신 거군요?

 

네, 그렇죠.

 

 

Q. 이제 슬슬 신보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먼저 이번 EP [] 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번 작품은 8곡이 수록된 EP 앨범이고 제목은 ‘덤’이에요. 사실 제목을 정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원래도 곡 제목 정하는 것을 힘들어하는데 특히 더 힘들었던 이유가, 이번 작품이 ‘묶음’ 이나 ‘모음집’ 같은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이걸 한 단어로 묶어줄 게 별로 없었어요. 여러 안들이 있었는데, 예를 하나 들자면 저의 스물여섯부터 스물여덟을 표현하는 것 같아서 제 나이를 쓰려고도 했어요. 아니면 그냥 듣기 예쁜 이름들을 생각하기도 했는데 결국 덤이라는 제목으로 정해졌어요. 사실 그냥 느낌이 좋아서인 것도 있지만 어느 순간 이번 앨범이 ‘덤덤해지는 감정’에 대해서 조금씩 꾹꾹 눌러 담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조금 회의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 앨범을 만들면서 느꼈던 제 하루하루가 덤처럼 그냥 살아가는 것 같다고 느껴지기도 했구요. 물론 덤이라는 이름이 예뻐서인 이유가 커요.

 

Q. 앨범의 영어 제목은 ‘Dumb’으로 표기하셨더라구요. 이것도 뭔가 의도가 담긴 제목일까요?

 

사실 멋이 없을 수도 있는데 (웃음) 영어 제목에 대해서 생각을 전혀 안 하고 만들다가 ‘덤’을 어떻게 영어로 바꿔야 될까 친구한테도 물어봤거든요. 그런데 예쁜 단어가 없더라구요.

 

Q. 그렇죠. 한국말의 뉘앙스를 오롯이 담아내는 영어단어가 없다 보니까.

 

네, 그래서 그냥 ‘Dumb’이라고 적었는데 사실 그 의미 자체는 꽤 부정적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한국어로 적은 ‘덤’도 생각보다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고 직관적으로 보기에도 예쁘기도 해서 ‘Dumb’으로 짓게 되었습니다.

 

Q. 의도하신 워드 플레이가 아닐까 생각을 했어요.

 

아 그렇게 말할 걸 그랬나요. (웃음)

 

 

Q. 말씀하시는 내용을 듣고 보니 작업 방식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으셨던 같아요.

 

뒤에 이어질 질문과도 연관이 있겠지만, 어떤 이야기를 피력하거나 아니면 서사적인 몰입을 위해 끝까지 놓치지 않고 들어야 하는, 가사적으로 집중해야만 하는 음악들에 대해서 ‘이런 것들만이 좋은 앨범일까?’ 같은 의문이 들었어요. 사실 힙합이라는 장르 안에서 보자면 꽤 필수 불가결한 명반의 기준일 수도 있지만 제가 듣는 음악이 변해서일 수도 있고 피로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그냥 듣기 좋은 노래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했어요. 그런데 제가 어떤 주제나 할 이야기를 정하고 쓰는 것에 익숙해져서 작업을 못하겠는 거에요. 그래서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메모장 켜고 생각 나는 단어들을 적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마치 추상화를 그리는 것처럼 생각을 비우고 만들었는데 그런 곡들의 연속인 것 같아요. 그런데 결국 저는 제 감정에 대해서밖에 쓸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결이 다 비슷한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완성되어서 그 부분은 만족스러워요. 그렇지만 반대로 정답이나 가이드라인을 정해놓지 않고 만들어서 확신이 하나도 없기도 했어요. 목표로 했던 것이 없기 때문에 노래가 다 만들어졌을 때 이게 잘 나온 건지에 대한 판단을 오직 제 감에 의존해서 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 피드백도 잘 안 들었던 것 같지만 동시에 애정이 더 가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Q. 규모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정규가 아닌 EP 발매하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겠네요.

 

네, 맞아요.

 

Q. 사실 이런 설명 없이 인터뷰 전에 미리 받아본 음원 파일 기준으로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분위기 덕분에 이번 작품도 하나의 기획을 가지고 만들어진 앨범인 알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파편적으로 완성된 음악들이었다는 말씀을 듣고 놀랐습니다.

 

굉장히 기쁘네요.

 

Q. 그중에서도 앞서 발표하셨던 싱글 [뉴부자관광] 포함되어 있는 점도 인상적이에요.

 

[구애] 이후에 [뉴부자관광]이라는 싱글을 냈었어요. 그 당시 막연하게 인트로로 쓰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이번 앨범의 인트로를 장식하게 돼서 좋네요.

 

 

Q. 처음부터 어떤 규모 있는 작업물의 인트로를 염두에 두시고 만드셨던 곡일까요?

 

‘뉴부자관광’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덧붙이자면, 그냥 길을 걷다가 집 가는 길에 있던 버스 정류장에서 ‘뉴부자관광’이라고 적힌 버스를 봤는데 이름이 되게 강렬한 거예요. 물론 그저 어떤 회사의 이름이었을 테지만, 사람들이 놀러 가기 위해 이용하는 관광버스 조차도 ‘새로움’이나 ‘부자’ 같은 이미지를 쫓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렇게 해서 작곡가 ‘honu’라는 친구와 같이 만들게 된 노래에요. 그리고 편곡적으로 봤을 때 뒷부분이 굉장히 난해하고 불친절해서 뭔가의 인트로를 장식하면 너무 멋있을 것 같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처음 만들 때부터 ‘인트로처럼’이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Q. 혹시 여덟 트랙 중에 뉴부자관광을 제외하고 조금 애착이 가는 곡이 있을까요?

 

발매자료 넘겨드리기 이틀, 하루 전에 ‘비밀’의 뒷 부분이 추가되었는데 그 부분이 앨범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해준 것 같아서 그 곡을 가장 많이 듣고 있긴 해요. 그런데 설명을 따로 드리고 싶은 곡은 사실 ‘fade’라는 곡이에요. 이 곡은 다른 곡들과 다르게 만들어진 이유가 조금은 있는데요,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부모님이 유튜브를 자주 보시거든요. 그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한 번 관심을 갖고 보기 시작하면 추천 동영상에 계속 그것에 관련된 영상이 나오는데 이게 방대한 정보의 바다 안에서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자연스럽게 일상 속 생각을 한 쪽으로 강제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실제로 그런 의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 같아서. 이런 것들이 자꾸 다양한 생각들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서 굉장히 무섭다는 생각을 한창 가졌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만들어지게 된 노래에요.

 

 

Q. 도입부에서부터 이어지는 영어 가사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벌스 1에 되게 길게 영어 가사가 나오는데 처음에는 그 내용을 한글로 전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굉장히 현학적이면서 가르치려고 하는 것 같아서 제가 용납을 못하겠더라구요. 조금 번역을 해보자면, ‘구글 추천 검색어가 너를 한쪽으로 생각하게 한다.’, ‘핸드폰 뒤에 있는 선악과 로고가 사람들을 옥죄게 한다.’ 같은. 이걸 한국어로 전했을 때 너무 부담이 심할 것 같아서 듣는 분들도 가볍게 넘어갈 수 있게 못 하는 영어를 써가면서 작업했던 기억이 있어서 특히 ‘fade’에 애착이 갑니다.

 

Q. 이어서 내용적인 부분에 대해서 조금 여쭤볼게요. 물론 정규 1집과 방향성은 많이 다르다고 해도 여전히사랑이라는 키워드가 유효하다고 느꼈어요. 오하이오래빗의 음악에서사랑 가지는 의미가 궁금합니다.

 

굉장히 웃긴 말이지만 예전부터, 정규 1집 만들던 시절에 저는 스스로가 사랑 노래를 잘 만들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아이러니하게 제목에도 사랑이 들어가는 앨범을 만들게 됐네요. 그 당시 사랑이라는 키워드는 굉장히 폭넓은, 어떤 정답에 가까운 것의 대체어처럼 사용했던 것 같아요. 앨범 소개글에 “날, 널, 우릴 위한 정신적 사랑”이라고 적었던 것처럼 ‘사랑’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 이번 EP를 만들면서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만들었지만 무의식 속에서 꺼내 만든 음악들에서도 사랑이라는 키워드가 유효한 것을 보면 1집 때의 가치관을 제가 스스로 조금 증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재미있어요. 물론 이번 앨범에도 ‘lily’ 같이 사랑에 관한 노래가 있는데 그것을 어떤 ‘정답’이라는 생각 없이 그냥 제가 겪고 느낀 사랑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두 앨범의 사랑이라는 키워드의 느낌은 조금 다른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제 삶에 빗대어 보면 비슷한 결론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Q. 그렇다면 그사이에 발표된 [구애]에서의사랑 어떤 모습일까요?

 

구애라는 제목이 워드 플레이인데 사랑을 갈구한다는 의미와 어떤 것에 구애받는다는 뜻의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실제로 뒷부분에 ‘구애받지 않게 된다’라는 내용의 스님 목소리가 잠깐 나오기도 하구요. 그 곡은 어떤 정답 같은 사랑을 찾던 것에 너무 집착했던 저 자신에 대한 답가에요. 무언가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것 자체가 조금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이후 발매된 곡들도 잘 끼워 맞춰보면 결국 비슷한 결로 나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Q. 이야기를 듣고 보니구애라는 노래를 통해서 1집의 자기 자신을 부정한 내용이 심화되어 이번 EP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디스코그라피 전체로 봐도 맥락이 재미있게 이어지는 같네요. 덕분에, 같은사랑이어도 조금 시니컬한 분위기가 짙어진 이번 EP 감정선이 눈에 띄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 앨범은 뭔가 흩어지거나 무의미해지는 느낌이 강해요. 사랑 노래인 ‘비밀’ 마저도 뒷부분 가사에 “잘 가, 건강해” 같은 표현들로 끝나다 보니까 조금 더 이번 앨범 맥락이 모아지는 것 같네요. 우선 1집은 의도적으로 해피엔딩을 만들었고 이번 앨범은 어떤 의도 없이 살면서 느낀 감정들에 대해서 표현한 거라 자연스럽게 무언가 희미해진다거나 사라진다는 느낌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그것들이 제 마음속에 이미 단단해진 생각들 중 하나인 것 같네요. 처음부터 사운드적으로만 잘 이어지면 좋겠다는 의도가 가득했는데도 불구하고 동일한 감정선을 보여드릴 수 있었던 건 제 음악이 굉장히 수필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떤 작가의 수필 모음집을 보면 그 사람의 특정 시기의 이야기들이 다 비슷한 범주 안에 포함되는 것처럼 제 음악도 그런 결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Q. 사운드적인 부분을 잠깐 언급해주셨는데 다양한 이펙트들과 더불어 목소리 자체도 사운드 요소 중에 하나로 활용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전체적인 소리 구성에 신경을 많이 쓰신 같은데 조금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선은 굉장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처음 정규 1집을 만들 때만 해도 하이햇이 잘 안 들렸어요. 음악에 대해서 순전히 저의 감으로만 작업했던 사람이었고 랩이나 가사적인 부분에 훨씬 중점을 뒀었거든요. 막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사운드에 굉장히 무지했었는데 전역 후에 우연찮게 Snaggle Owky 프로듀서님의 비트 레슨을 받게 되었어요. 이번 앨범에 참여해주시기도 한 분인데 그분 덕분에 조금은 듣는 귀가 넓어진 것 같아요. 그 과정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가사가 전달되는 힘보다는 그냥 의도된 ‘듣기 좋음’을 바탕으로 사운드적인 걸 많이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목소리가 너무 가공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해요. 단 한 개의 보컬 트랙도 일반적인 믹스가 된 트랙이 없거든요. 어린아이가 찰흙으로 뭔가 만들어가듯이 막 조립해서 말도 안 되는 걸 가지고 좋지 않냐고 물어보면, 믹스, 마스터를 담당해준 ACACY라는 친구가 그 타협점을 잘 잡아줘서 가능했던 일이에요. 아무래도 가사적으로 전하고 싶은 주제가 없다 보니 곡의 기승전결을 사운드에 의지하게 된 것이 컸거든요. 예를 들면 ‘앞 쪽의 어떤 딜레이가 걸려서 어떤 이펙트가 나왔으면 그것이 점점 심화되면서 어떤 식으로 곡이 끝나야 조금 더 감동이 있지 않을까’ 같은 것들에 집중했고. 가사가 했던 역할의 빈자리를 사운드가 많이 채워준 것 같아서 좋습니다.

 

Q. 목소리도 결국 가사를 전달하는 수단보다는, 의도하신 사운드적 기승전결에 맞춰 믹스가 되고 조율이 거군요.

 

그렇죠. 목소리가 주가 아니고 다 같이 조화로운 하나의 감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악기로써 사용이 된 거 같아요.

 

 

Q. 말씀하신 내용에 이어 가사 중심의 비중이 1집보다도 줄어들었다는 사실도 눈에 띄어요.

 

제가 하루에 평균적으로 음악을 50곡을 듣는다고 한다면 48곡은 랩이 없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나왔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게 단순히 취향에 기인하기보다는 제가 래퍼로서의 커리어를 이어감에 있어서 심리적으로 조금 불편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서리 크루 활동같이 힙합의 범주 안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간다고 했을 때, 물론 그 문화의 멋을 부정하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저는 저라는 사람이 그것에 잘 융화되지 못한다고 느꼈거든요. 뛰어들어서 감내한다는 느낌이 굉장히 컸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좀 기피하게 됐던 것 같아요. 어떤 노래를 만들 때도 옛날에는 그냥 제가 랩을 잘하고 랩이 좋았기 때문에 뒤에 이어질 커리어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점점 나이가 차면서 음악적으로 어떤 것을 이룰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지금의 심리 상태로는 힙합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간다면 제가 너무 불행해질 것 같았어요. 자존감을 펼친다거나 공격적인, 힙합 안에서 용인되는 멋에 있어서 제가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서리 앨범에 벌스로 참여했던 것도 저에게는 도전이었어요. 그래서 창작이라기보다는 기술적으로 무언가에 맞추어나간다는 이미지가 훨씬 컸고. 물론 아직도 제가 더 잘하는 것은 랩이지만 개인 작품 안에서는 조금 더 맘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랩의 비중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Q. 혹시 힙합을 처음 시작하셨을 당시에도 마음에 불편함 같은 것들이 있으셨을까요?

 

아니요, 전혀 없었죠. 그때는 랩을 굉장히 좋아하는 소년이었고 (웃음). 이건 저만의 피해 의식이고 못난 부분이지만, 제 주위에 있는 분들이 열심히 자기 작업물을 펼치는 모습을 봤을 때 무력감을 느낄 때가 조금 많았어요. 제가 말할 수 있는 저만의 멋과 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와는 다르게 씬 안에서 통용되는 멋과 어떠한 스타성 같은 것들과는 스스로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느꼈거든요. 그 부분에서 ‘내가 달라져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어느 순간 그냥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생각이 커졌던 것 같네요.

 

Q. 앞에서 살짝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개인작품과 비교해서 대외적인 활동들은 결이 많이 다르잖아요. 부분은 의도적으로 병행을 하고 계신 건지 아니면 외부적인 요구에 의해서, 타의에 의해서 이어져 것인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조금 자신감 넘치는 답변을 하자면, 랩은 사실 언제든 어느 정도는 잘하기 때문에 그냥 해달라는 부탁이 있을 때마다 알겠다고 하고 해도 어느 정도 괜찮은 작업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다만 그 부분에 있어서 제가 힘을 더 쏟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놓고 있지도 않은 이유는 여태껏 커리어를 쌓아오면서 래퍼로서의 모습을 기대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제가 잘할 수 있는 무기 중에 하나라고도 생각해서예요. 물론 서리가 거의 유일하긴 하지만,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듯이 어떤 기술의 영역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커리어에 있어서 눈에 띄는 발전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너무 무의미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게, 우선은 꽤 즐거워요. 서리 크루 활동이. 물론 대외적으로 어떻게 비칠지는 모르겠지만 힙합의 최전선에 있는 그런 느낌도 있고 냉정히 말해서 거기에 제가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힙합 파이 안에서 리스너분들께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언젠가는 제가 힙합의 멋에 조금 더 매력을 느끼고 그런 라이프 스타일에 녹아들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늘어나는 거라고도 생각해서 놓지 않고 있어요.

 

 

Q. 혹시 작년 쇼미더머니도 있으니까 한다라는 느낌으로 참가하신 걸까요?

 

우선은 제작진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나갔던 것도 있는데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도전의 의미가 훨씬 컸어요. 그리고 쇼미더머니를 나가기 전에 제 개인적인 상황이 너무 힘들어져서 무언가 시선을 돌릴 곳이 많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Q. 자기 자신의 시선을 돌릴 곳이 필요하셨다는 말씀인가요?

 

네,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언가에 열중할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했어요. 방송 자체에는 거의 안 나왔지만 돌이켜보면 굉장히 빡센 랩들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도전이 잘 되지 않았던 이유는 제가 쌓아왔던 것들에 의한 개연성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방송에서 예쁘게 포장될 수 있는 스타성을 갖고 가기에는 저에게 준비된 것들이 많이 없었고, 물론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제가 힙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억지로 랩을 하면서 무대를 준비했었기 때문에 오히려 떨어졌을 때 납득이 많이 됐어요. 자이언티, 슬롬 팀의 무대를 보고 너무 감명받아서 팀 선택을 부탁드리러 갔는데 그때 좀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제 모습이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어떻게 보면 제가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말도 안 되는 어떤 것을 설득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찌 보면 잘 되지 않은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Q. 결과만 놓고 보았을 아쉬움이나 후회 같은 감정은 없으셨을까요?

 

많이 아쉬웠죠. 그래서 한동안은 쇼미더머니에 관련된 것들을 잘 찾아보지 않고 길거리에 관련된 노래가 나와도 이 악물고 모른 척했어요. 그 당시 조금 불편했던 일도 있었는데, 서리 친구들이 소코도모 씨의 ‘BE !’라는 노래를 리믹스했었어요. 그때 저한테도 참여 제안이 들어왔었는데 저는 그 팀에 지원했다 떨어졌거든요. 그래서 그 당시 저는 ‘내가 왜 해’라는 태도였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내가 이걸 왜 직면하지 않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기도 했고 별로 제 마음가짐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해서 노래를 막 들어봤는데, ‘회전목마’가 너무 좋더라구요. (웃음) ‘아 이거 좋네’ 하면서 많이 들었습니다. (웃음)

 

Q. 떨어진 것을 기회로 해서 깨닫게 지점들도 많았던 셈이네요.

 

네, 오히려 그런 경험에 의해서 확신이 생겼던 것 같아요.

 

 

Q. 말씀하신 것처럼 트랙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계시잖아요. 가지 방향성을 마치 부캐처럼 서로 다른 정체성으로 임하고 계신 거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우선은 굳이 나눠보자면, 다른 정체성이 맞아요. 지금까지 오하이오래빗이라는 이름으로 낸 앨범이나 작품들이 조금 더 저에 가깝다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구요. 서리 크루라던가 빡센 랩을 뱉을 때처럼 저의 유약함을 강하게 어필해야 할 때, 그러니까 센 척 해야 할 때는 굉장히 날카로워져요. 평소에 누가 저를 칭찬할 때도 못 견뎌 하는 성격인 만큼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표현할 방도가 없기도 하고 용납이 안 되기도 해서 그 시도의 일환으로 자연스럽게 좀 저 자신을 향해서 날카로워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두 방향성은 다른 캐릭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Q. 말씀하신 것처럼 소위 말하는빡센 좋아해 주시는 팬분들도 계시고, 반대로 개인 작업의 결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팬덤 사이의 괴리감에 대해서 고민은 없으실까요?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죠. (웃음) 사실 이번 앨범을 내면서 ‘이름을 바꿔서 내도 모르겠는데?’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실제로 이름을 바꿀까 하는 생각도 몇 번 했었고. 저도 인지하고 있었던 거죠. 그동안 제 노래를 즐겨들어 주셨던 분이라면 꽤나 예상치 못한 음악들일 테니까요. 투 트랙 활동 중 하나를 다른 자아로 만들어서 가져갈까 하는 고민도 했었는데 주변에서 많이 말리더라구요. 사실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 느끼고 있는 것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제가 이기적인 태도를 취해왔던 것 같아요. ‘내가 만드는 노래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내가 지는 건데 그냥 나 좋은 거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물론 앞으로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힙합적인 모습을 좋아해 주시던 분들과 이번에 나온 음악의 괴리가 점점 줄어들수록, 둘 다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가져온다면 저도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것 같고 음악적으로도 많은 성취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Q. 괴리감이 좁혀진다는 측면에서 봤을 , 앞으로 오하이오래빗이 추구하게 음악적 방향성은 어떻게 이어지게 될까요?

 

사실 이 질문을 받고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다른 내용은 쉽게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음악적인 방향성이나 목표 같은 것은 제가 이걸 하고 있는 이유와도 굉장히 밀접한 내용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음악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음악이라는 것이 조금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타인의 인생에 영향을 주기가 쉬운 것 같더라구요. 어떠한 영향력이 힘이 될 수 있는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람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어떤 감흥을 주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막연할 수도 있지만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치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그리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자신감의 결여로 인해서 표현하지 못하는 이야기들도 할 수 있게 되고 두 가지 방향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듣는 분들께 앞서 말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게 음악적으로도 스스로가 만족스러울 것 같고 제 삶에 있어서도 굉장한 축복일 거라고 생각해요.

 

Q. 그 모든 것들이 융합됐을 때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가 많이 됩니다. 혹시 EP 발매 이후의 구체적인 계획도 있으실까요?

 

사실 인터뷰 전에는 힙합이나 랩에 대해서 조금 더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것과 더불어서 또 들었던 생각은, 이번에 제가 들려드린 음악들이 너무 가공된 맛이었는데 개인적으로 감흥이 오래 갔던 감동은 가공되지 않은 노래들에서 얻었던 경우가 많았더라구요. 그런데 그걸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건 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사운드적으로도 그렇지만 이야기하는 내용도 조금 더 거침없을 필요가 있지 않겠냐는 생각도 들어서 우선은 힙합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사실 잘 모르겠네요. (웃음)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요, 말씀드렸던 ACACY라는 친구가 없었으면 이번 앨범이 못 나왔을 거예요. 사실 앨범을 같이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사운드적으로 신경을 많이 써줘서 마지막으로 감사 인사 한마디를 남기고 싶네요.

 


Interview | 월로비

eundohee

차가워 보이는 입김이 따뜻한 것처럼

 

은도희라는 음악가는 특별하다. 포크음악을 하지만 전자음악의 성격을 띠고 있고, 처음 발표한 정규 앨범 [Unforeseen]에서는 그보다 조금 더 넓은 스펙트럼을 들려준다. 다양한 장르의 요소를 입혔지만 그것이 모두 포크 안으로 귀결되는 듯했고, 그의 포크 음악은 본 이베어(Bon Iver)처럼 자연스럽게 확장을 꾀하는 듯했다. 은도희의 첫 앨범 관련 인터뷰를 위해 가을에 그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미안하게도 인터뷰는 한참이 지나 공개되었고, 그래서 새롭게 발표하는 싱글 “Barefoot”에 관해서도 짧게 들어봤다. 그래도 은도희의 디스코그래피와 음악을 이해하는 데에는 약간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Q. 앨범 발매 이후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제가 원래 앨범 내고 나면 작업을 안 해요. 기타도 안 치고 아예 오디오 인터페이스 전원을 꺼놓고 안에 넣어두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한 두 달 지내다가 쉬고 이제 개인적으로 해야 되는 일들 하다가 요즘에 다시 곡 쓰고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Q. 첫 정규 앨범이잖아요. 그러면 좀 신경도 많이 쓰셨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다른 앨범에 비해 마음가짐이나 이런 게 좀 달랐는지도 궁금합니다.

 

좀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좀 더 제가 하고 싶었던 작업들, 옛날부터 하고 싶었던 음악들 위주로 하려고 하고 그래서 이제 믹싱도 혼자 한 게 좀 컸던 것 같아요. 좀 더 제가 원하는 거를 그래도 90% 정도 끌어내고 싶어서 편곡도 좀 혼자 많이 해보려고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Q. 지니 매거진이 올라왔을 때 보니까 한 7개월 정도 작업하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긴 시간이기도 한데 그 시간 동안 좀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하셨는지, 어떻게 보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때 제가 잠시 본가에 내려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근처에 작업실을 찾고 그냥 틈날 때마다 작업실 가서 녹음하고, 생각보다 다른 앨범보다는 좀 편하게, 마음도 편하게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는 대신에 결과는 생각하지 말자 뭐 이런 생각으로 좀 편하게 작업했어요.

 

 

Q. 그러면 수록곡 중에 처음 만들어진 곡이 “혀”하고 “오래된 말”이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보면 한국어 가사가 먼저 나온 거잖아요. 그렇게 작업하게 된 이유가 있으실까요? 워낙에 영어로 작업도 하셨었으니까 한국어 가사가 좀 더 먼저 나왔다는 게 궁금해서요.

 

정규를 내면 한국어 곡을 많이 들어가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국어 곡이 두 곡 정도 더 있었는데 작업하다가 뭔가 너무 똑같더라고요. 내용도 좀 비슷하고. 그런 곡은 서로 비슷해서 빼고. 그리고 나서 이제 그 중간에 들어가는 “Les Augen”이라는 두 곡을 대신 넣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들어갔던 방향이랑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Q. 그러면 “혀”하고 “오래된 말” 작업하고 나서 다른 곡들을 계속 쓰셨던 거잖아요. 그러면 계속 그 뒤의 곡들을 쓰면서 조금 고민했던 거나 ‘이렇게 써야겠다’ 하셨던 게 좀 있으셨나요?

 

그런 건 없었어요. 제가 그때 12월에 이제 하던 일도 코로나 때문에 한 달 동안 강제로 쉬게 돼서 한 2주 동안 아무것도 안 하다 연말에 거의 그 정규 앨범에 있는 곡들을 한 2주 동안 되게 열심히 다 썼어요. 그래서 이제 그때 다 만들고 나서 버릴 거 버리고 가질 것 가지고 그렇게 하다가 한 3월쯤에 곡 구성이나 컨셉 같은 것들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Q. 그러면 조금 앨범 안에서 순서 배치나 이런 것들은 좀 어떤 기준으로 배치하셨나요?

 

그게 엄청 많이 바뀌었어요. 원래 그 반대였어요. 원래 처음에 한국어를 다 넣고 이제 뒤쪽에 영어 곡들을 넣으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공들인 걸 위에 넣어야 된다고 해서 그래서 그거 위주로 위에 올렸던 것 같아요.

 

Q. 그러면 앞이 확실히 좀 더 공을 들인 곡이군요.

 

네 좀 더 그런 것 같아요.

 

Q. 사실은 이전에 이제 [모든] 냈을 때도 그렇고 약간 한국어로 된 곡이랑 영어로 된 곡이 조금 뭔가 다르다고 느꼈었는데 이번 앨범은 앨범 안에 있는 곡들이 되게 그래도 다 같은 결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기존 작품하고는 다르다 생각했어요. 한국어 가사를 쓸 때 어떤 부분을 좀 더 고민하셨는지 이런 것들도 좀 궁금했어요.

 

사실 한국어 곡을 쓸 때의 가사가 다 제 이야기나 아니면 제가 겪었던 일들이 많아요. 그래서 혹시 그걸 누군가가 알아채거나 그 곡에 나왔던 대상이 그걸 알까봐 저는 그게 항상 많이 걱정이 돼요. 그래서 이제 한국어 가사를 쓸 때는 좀 더 무모하게 바꾸거나 다양한 해석이 나오게 바꾸려고 해요.

 

 

Q. 첫 번째 곡 얘기부터 해볼 텐데 첫 번째 곡 “Uncertainly”는 아무래도 좀 짧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사운드스케이프가 워낙 명확하고. 도입부라는 것을 좀 의식하고 곡을 썼을까요?

 

원래 첫 번째 인트로로 들어갈 곡이 다른 곡이 있었어요. 근데 그걸 작업하다가 재미없어서 사실 도중에 쓴 곡이었어요. 근데 썼는데 뭔가 생각보다 괜찮다고 생각을 하다가 보컬을 녹음하고 마음에 안 들어서 한동안은 안 들었어요. 한참 동안 안 듣다가 버스에서 들었는데, 인트로 곡으로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서 다시 작업을 했어요.

 

Q. 이게 어떻게 보면 전대한님 소개글에도 쓰여 있듯이 약간 다운템포 느낌도 있어요. 그리고 예전에 쓰신 글들을 봤을 때도 처음에는 연주해줄 사람이 없어서 에이블톤으로 작업을 하셨다고 그렇게 말씀하셨는데요. 그러면 곡에서 만들어지는 그런 사운드스케이프는 전자음악의 방향으로 고민을 하신 건가요, 아니면 작업하다 보니까 그렇게 나오신 걸까요?

 

제가 이제 대학교 때 전자음악 전공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아마 제가 그때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쓰는 곡들은 지금 혼자 할 수 있는 것들로만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아마 학생 때 좀 패드 들어가고 엠비언트 사운드, 좀 많이 느린 다운 템포 음악만 써서, 많이 있었던 게 그렇게 나왔던 것 같아요.

 

Q. 그러면 이전에는 그런 음악들을 좋아하시고 만들고 하셨나요?

 

네 맞아요. 신스가 많이 들어가거나 아니면 아예 피아노만. 왜냐하면 제가 그전에 기타를 못 쳤어요. (웃음) 기타를 못 쳐서 이제 또 배울 힘이 없길래, 그래서 이제 신스 위주의 곡을 많이 썼어요.

 

Q. 그러면 궁금한데, 연주해줄 사람이 없어서 에이블톤을 택했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처음에는 전자 음악 하시다가 나중에 그런 연주로 된, 세션을 쓰거나 이런 것들로 넘어가게 되신 건가요?

 

네 왜냐하면 처음에 이제 학교 준비를 할 때는 그냥 ‘이걸 해야 되니까 이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하다가 학교에 가서 제가 듣는 음악을 들었는데 죄다 밴드 음악이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팀을 같이 해서 그 전에 잠깐 밴드 하다가 다시 혼자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지금 하는 세션분들이랑 같이 작업을 하고 있어요.

 

 

Q. 그러면 원래 처음 좋아했던 곡 음악들은 좀 어떤 음악들이었어요?

 

저는 고등학생 때는 지금 생각하니까 팝 음악도 많이 들었고 한국 음악도 많이 사실 많이 들었었는데 그때 그냥 저희가 지금 들으면 되게 익숙한 팝 음악들 있잖아요. 그런 것도 되게 많이 들었었던 것 같아요.

 

Q. 지금 세션들이 워낙 고정적으로 오래 해 오셨잖아요. 세션들하고는 어떻게 연이 닿게 된 건지도 궁금하거든요.

 

혼닙 씨는 그냥 친구 소개로 알게 되었다가 기타를 너무 제 스타일로 치길래 잡아놔야겠다 해서 계속 같이 연주를 하고, 드럼 치는 분은 혼닙 씨랑 학교 동기였어요. 뭔가 잘 어울릴 것 같다 해서 같이 작업하고. 베이스 치는 친구는 학교 친구의 친구여서 이제 너무 오랫동안 알던 친구다 보니까 제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서 부탁하기 편해서 계속하고, 또 사운드도 되게 제가 원하는 느낌으로 잘 잡아줘서 같이 하고 있어요.

 

Q. 그러면 작업 방식은 주로 어떻게 되나요? 아예 만나서 이렇게 녹음을 같이 받으시는지, 아니면 녹음을 따로 받아서 그냥 작업하시는지.

 

제가 제 곡에 좀 집착이 강해요. (웃음) 그래서 처음에 데모를 제가 먼저 다 만들어요. 기타 메인 라인이라든지 드럼 메인이든 베이스 메인 할 것들, 꼭 바꾸지 말아줬으면 하는 것들을 미리 다 찍어서 그거를 보내주고. 기타는 녹음실에서 안 하고 혼닙 씨가 그냥 혼자서 작업실에서 해서 보내주고 드럼은 주로 녹음실에서 받아요. 그때 베이스도 같이 받고. 아니면 베이스는 이제 저희 집에 가서 옆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Q. 그러면 녹음된 걸 받으실 때도 있지만 직접 가셔서 이렇게 디렉션을 주실 때도 있는 거네요.

 

근데 주로 이제 세션분들이 다 원하는 느낌을 아셔서 딱히 디렉션을 안 하고 그냥 같이 빨리빨리 잘 끝나는 것 같아요.

 

 

Q. 내용이 약간 건너뛰는데, 밴드 음악을 좋아하셨다고 하셨는데 또 어쨌든 전자음악으로 입학하게 되신 거잖아요. 그럼 전자음악으로 입학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왜냐하면 제가 처음에 작곡을 배우고 있었는데, 건반으로 안 치는 게 재미가 없고 싫은 거예요. (웃음) 사실 어떻게 큐베이스라는 걸 보고 시작했는지 기억은 안 나요. 근데 그냥 컴퓨터에서 드럼을 내가 찍을 수 있고, 미디를 찍을 수 있다는 걸 어떻게 해서 안 다음에 이제 ‘아, 나는 저기도 재밌을 것 같다’ 생각해서 하게 되었어요.

 

Q. 그러고 나서 자연스럽게 전자음악에도 좀 관심 있으셨나요?

 

전자 음악은 사실 잘 몰랐어요. 학교 준비하면서 선생님이 이것저것 알려주셨는데 그때 제가 처음 들었던 게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 포티스헤드(Portishead),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 이런 사람들이었는데, 밴드 느낌도 나고 좋아서 듣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Q. 사실 영향을 받은 음악가나 음악이 어떤 건지 되게 궁금했거든요. 예전에도 노보 아모르(Novo Amor)나 코난 모카신(Connan Mockasin) 같은 음악가를 좋아한다고 하셔서, 그러면 좀 더 팝에 가까운 음악을 좋아하시나 궁금했어요.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되게 자주 바뀌어요. 뭔가 조금만 마음에 들어도 그 아티스트의 앨범만 한두 달 정도 계속 듣거든요. 근데 꾸준히 계속 들었던 건 영국 밴드 도터(Daughter)의 음악을 제일 많이 들었고, 베스 기븐스(Beth Gibbons) 솔로 앨범이 포크 앨범이에요. 그래서 그 앨범만 계속 꾸준히 들었던 것 같아요.

 

Q. 많은 음악을 또 좋아하시고 거쳐오셨는데, 그 가운데 포크를 조금 더 중심에 둔 이유 같은 게 있나요?

 

제가 듣는 음악들 보니까 통기타가 많이 나오고 보컬들이 힘이 다 빠져 있는 그런 것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이런 걸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만들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Weak] 앨범이 제가 제일 하고 싶었던,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앨범이었어요.

 

 

Q. “Time” 같은 경우에도 어쨌든 라이브 클립으로도 나왔는데 악기들 간의 밸런스 같은 것들이 되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어떻게 구현할까, 이 밸런스를 어쨌든 한 공간에서만 녹음하지는 않을 거니까 제작할 때는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을까 했는데 집착이 비결이었군요. (웃음)

 

근데 그 세션분들이 제가 노래 부를 때 목소리가 작아서 드럼도 되게 살살 쳐주시고 기타는 그리스도 다 살살 쳐주세요.

 

Q. 그렇게 하면서 섬세함이나 이런 게 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기도 하네요. 다음은 “Songbird”인데 제일 애착이 간다고 꼽은 곡이기도 하지만 곡의 전개도 그렇고 드럼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는 은도희 님의 음악 중에서도 제가 제일 좋아했던 그런 것들이 이 곡에 집약돼서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처음에는 원래 지금의 곡처럼 안 만들었어요. 사실 그냥 옛날 팝 느낌, 90년대 팝 느낌처럼 쓰고 싶어서 만들었던 건데요. 뭔가 괜찮다는 느낌만 있고 막 좋다고 느끼지 못해서 되게 이것저것 많이 해봤어요. 그리고 또 제가 좋아했던 음악이 찰리 푸스(Charlie Puth) 같은 그런, 어쿠스틱 기타와 같이 전자 드럼이 나왔던 음악도 되게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만들어야지 하다가 중간중간에 그냥 제가 좋아했던 것들이 다 섞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중간에 코러스가 끝나고 이제 악기만 나오는 부분이 있고, 거기도 그래서 그냥 평소에 좋아하던 그런 게 나온 것 같아요. 어울리는 사운드도 넣어보고, 제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저도 다 넣어서 좋아했던 것 같아요.

 

 

Q. 지금까지 얘기를 들어보면 좋아하시는 음악 중에는 사실 하이파이에 가까운 음악도 많은데, 앨범을 들어보면 완전 로우파이하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앨범만의 질감이 강하게 있어서 신기하네요. 앨범 안에 담겨 있는 질감이나 지금까지 작품을 발표했을 때 그때 그 질감들이나 이런 게 결이 꾸준하게 유지된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초반에 냈던 앨범은 믹싱을 제가 하지 않았어요. 근데 이후에 그 앨범들에 맞춰서 제가 하는 곡들을 비슷하게 믹싱하려고 했고 또 기타 세션은 계속 혼닙 씨가 쳐줬고 한 사람이 계속 작업을 해줘서 그 느낌도 계속 이어져서 그런 것 같아요.

 

Q. 사실 믹싱이 어떻게 보면 한없이 길어질 수 있는 작업인데요. 믹싱 레퍼런스를 둘 수도 있지만 어떤 날에는 마음에 들어도 다음 날 들어보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잖아요.

 

예전에는 믹싱에 대해서 뭔가 좀 약하다고 느꼈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어떤 소리를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뭔가 제가 그냥 제 기준점을 정한 것 같아요. ‘이 정도면 됐다’. 그래서 주변에서 조금만 더 해보라고 하는데 그러면 해 놓은 것이 무너질까 봐 좀 걱정이 돼서, 제 기준에서 좋다 까지는 아니어도 이 정도면 괜찮다고 느끼면 거기서 멈추는 것 같아요.

 

 

Q. 이후 “Les Augen” 두 곡이 연달아 있는데 사실은 뭐 앨범 안에서도 그렇고 나름 어떻게 보면 되게 파격적인 곡이잖아요. 곡의 생김새도 그렇고 뭔가 다른 장르가 좀 더 전면에 드러나는 느낌인데, 이런 걸 좀 넣어야겠다 생각하고 구현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사실 이거는 다른 팀으로 내려고 했어요. 그래서 저 이름으로 3, 4도 있어요. 근데 다른 팀으로 낸다는 게 많이 부담스러워서 그냥 제 이름으로 낼까 고민하다가 “Songbird”랑 조금 더 어울릴 것 같아서 뒤에 연달아서 넣었어요.

 

Q. 그러면 다른 프로젝트들도 계속 준비하거나 고민하시는 게 있으신 건가요?

 

네. 고민은 하고 있는데, 제 이름으로 내는 거랑 별반 다르지가 않아서 이걸 프로젝트로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그냥 제 이름으로 내야 하나 아직도 고민이 좀 많이 되는 것 같아요.

 

Q. 잠깐 다른 얘기로 넘어와서, 그 전에 이제 2016년에 크레센트라는 밴드를 하셨잖아요. 그때 음악은 제가 들어보니까 완전 일렉트로팝 느낌이더라고요.

 

학교 친구 중에 목소리가 되게 좋았던 친구랑 같이 만들어서 팀으로 활동을 했어요. 그래서 그때 한 홍대에서 두 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공연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하다가 시간이 좀 지나니까 제가 하고자 했던 방향과 밴드 친구들이 하는 방향이 좀 달라져서 저 혼자 해야 할 것 같다고 얘기를 했죠.

 

 

Q.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은도희님 음악을 들으면 사람들이 겨울, 유럽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더라고요. 곡을 쓸 때 이런 분위기를 내야겠다 의도하신 건지 아니면 좀 자연스럽게 그런 이미지가 이렇게 쌓인 건지도 궁금했거든요.

 

[Weak] 앨범 내고 나서 다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조금 신기하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곡을 쓸 때 뭔가 이미지를 생각하거나 뭔가 그런 걸 안 하고 그냥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작업을 하거든요. 근데 제가 2016년에 아이슬란드 뮤지션들 음악만 계속 들었을 때가 있어요. 그런 비슷한 사람들의 음악만 계속 듣는데 그분들 사운드가 제가 되게 좋아하는 느낌이에요. 뭔가 저음이 많이 없고 좀 몽글몽글한 소리가 있는. 그래서 그걸 저도 만들고 싶다 생각하다 보니까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나 하고 생각은 했던 것 같아요.

 

Q. 포크 음악에도 되게 애정이 있으신 것 같은데 어쨌든 포크 음악이라고 하면 사실 한국에서는 아직 전통적인 형태의 곡들이 더 많은데요. 보통 포크 하면 이제 그런 음악을 떠올리는데 그런 것들과 조금 다른 결을 갖고 있으세요.

 

맞아요. 그리고 왜 한국어로 안 쓰냐고, 한국어로 가사를 써봤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해 주시는 분도 있어서 뭔가 써보고 싶은데, 사실 그래서 앨범 작업할 때 정말 힘들었어요. 인디 포크 신이 있었다는 것도 2015년인가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그전에는 한국 포크 음악이 어떤 건지 잘 몰랐어요. 그래서 좀 지금도 일부러 들으면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아직도 조금 어려운 것 같아요.

 

Q. 2016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언플러그드에서 공연을 했을 때는 전통적인 형태의 포크 음악에 가까운 편성으로 하셨어요.

 

그때 이제 제가 처음에 포크 음악을 썼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혼닙 씨랑 둘이서만 작업을 하기도 했었고 그냥 제가 아는 방식이 그거여서 저도 이제 그렇게 그냥 시작했던 것 같아요.

 

Q. 그러면 기타와 건반 중 곡을 쓸 때는 어떤 악기가 좀 더 쓰이나요?

 

요즘은 기타로만 쓰는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원래 피아노가 훨씬 더 편하거든요. 기타로 치면 약간 좀 힘들 때가 많아요. 계속 똑같은 것만 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근데 좀 더 제가 기타를 혼자서 배웠고, 가끔씩 혼닙 씨가 가르쳐줘요. 보다가 답답해서. (웃음) 코드 잡는 걸 좀 가르쳐줘서 그걸로도 치고, 또 잘 모르는 건 그냥 귀로 들으며 만들어요.

 

Q. 그러면 뭔가 혼닙 님께 원하는 형태의 퍼포먼스를 얘기하면 알아서 구현해 주시는…?

 

네. 부탁을 하면 원하는 사운드를 잘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특정하게 ‘이렇게 해줘’라고 구체적으로 부탁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그 딱 느낌으로 해 주더라고요.

 

 

Q. “혀”는 어쨌든 단어 자체가 직설적인 느낌이 들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좀 고르신 이유가 있으신지도 궁금했거든요.

 

전부터 말을 혀가 한다고 생각을 자주 했어요. 그냥 혀가 움직이니까 그걸 오랫동안 왠지 모르겠지만 많이 생각했고, 이 가사를 쓰면서 곡에다가 ‘혀’라는 가사를 넣었는데, 그 곡을 다 쓰고 나서 계속 ‘혀’가 제 머릿속에는 많이 남았어요. 뭔가 입이라든지 목보다는 저한테 혀가 그냥 좀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혀가 주는 이미지도 그렇고.

 

Q. 마지막 곡은 본인이 아닌 신온유 님이 부르셨는데, 그렇게 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그 곡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한참 뒤에 썼던 곡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제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말을 아예 하지를 않았는데 후에 좀 마음이 괜찮아져서 그 곡을 썼어요. 그리고 노래도 뭔가 다른 사람이 그냥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솔직하게는 나보다 좀 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다가 온유 목소리가 제가 좋아하는 밴드 보컬이랑 확실히 다른데 저는 뭔가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어요. 빅 티프(Big Thief) 밴드의 메인 보컬이랑 언어도 다르고 다 다른데 그냥 뭔가 제가 느꼈을 때는 소리가 좀 비슷하다고 느껴져서 본인한테도 부탁을 했던 것 같아요.

 

 

Q. 저는 사실 그 라이브 클립 보면서도 좀 되게 감탄했던 것 중의 하나가 질감이나 사운드 스케이프가 라이브에서도 그렇게 드러난다는 거였거든요.

 

제가 사실 그거를 그냥 너무 좀 간단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근데 영상을 찍으면서 오히려 고생을 하고 녹음은 괜찮았어요. 라이브 믹싱도 제가 해서 곡과 비슷한 느낌이 났고, 스튜디오 로그에서 민상용 감독님께서 워낙 잘 받아주셔서 그랬던 것 같아요.

 

Q. 계속 소리에 관해서 얘기를 했는데요, 다른 주제로 넘어가서 가사를 보면 타인과의 관계에 관한 가사들이 있잖아요. 근데 그러면서도 관계의 대상보다는 화자인 주체가 더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관계를 얘기하다가도 결국 스스로의 이야기인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주로 곡을 쓸 때, 기분이 안 좋거나 그럴 때는 작업을 아예 안 해요. 그래서 다운이 된 게 다시 올라오고 걱정했던 일들이 다 해결이 되면 이제 그걸 가사로 많이 써요. 그래서 아무래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보다 다 끝나고 나서 제가 느낀 것을 많이 쓰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Q. 반면에 “Time”은 굉장히 밝은 가사였어요. 그런 건 기분이 좋을 때 쓰시는 편인가요?

 

그럴 때도 쓰긴 하는데, 중의적으로 남겨둘 때도 많아요. “Time”을 썼을 때는 제가 신나기도 했지만 해야 할 일을 일부러 외면하고 친구 만나고 맛있는 거 먹고 이랬던 것들도 좀 담고 싶었어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도 있고요. 일부러 그렇게 쓰려고도 했어요. 곡 분위기가 밝으니까요.

 

Q. 정규 앨범 내기 한 8개월 전에 세 곡이 담긴 앨범을 발표하셨어요. 데이먼스 이어(Damons Year)도 참여했는데, 그때 코멘터리를 보면 그 앨범 내고 힘이 많이 빠졌다는 얘기를 쓰셨어요. 아무래도 2019년에 너무 꾸준히 발표해서 그랬는지 궁금했거든요.

 

그랬던 것 같아요. 근데 사실 저는 작업하고 곡을 내는 거는 스트레스는 안 받아요. 곡을 내는 건 재밌는데 이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자꾸 내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좀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냥 좀 마음에 들면 자꾸 내니까 지나고 나서 제가 못 듣겠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내가 계속 들을 수 있는 곡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서, 좀 지쳐서 프랑스로 도망갔던 것 같아요.

 

Q. 그러면 정규 앨범은 그래도 돌아봤을 때 그래도 어느 정도 마음에 차시나요?

 

그런 것 같아요. 제가 가끔씩 듣기도 하고. 아쉬운 게 있기는 한데 ‘난 내가 하고 싶은 거 했어’라는 마음이 들어서 홀가분해요.

 

Q. [모든] 작업기를 공개하셨을 때 이게 거의 한 1년간의 기록이더라고요. 그래서 보통 작업 과정이나 이런 게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했어요.

 

저는 곡을 뭔가 써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그냥 뭔가 지금 뭔가 해야 할 것 같다고 하는 신기하게 나올 때가 많아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메인 리프라든지 멜로디랑 가서 어느 정도 만들어 놓고 그걸 되게 오랫동안 들어요. 이거를 낼까 말까, 낼까 말까를 계속 고민하면서 한 몇 주 아니면 몇 달 정도까지 듣다가 앨범 발매 날짜를 잡고 작업을 보다 하는 것 같아요.

 

Q. 그렇게 해도 나중에 내고 나서는 만족을 못 하시는 경우가 있군요.

 

네 그런 경우는 제가 작업을 하면서 좀 힘이 빠져서 덜 신경을 썼던 부분들, 그런 부분들 때문인 것 같아요.

 

Q. 확실히 사운드에 있어서 디테일에 많이 신경 쓰시는 편이시군요.

 

좀 그런 것 같아요. 뭔가 제가 원했던 그 느낌이 있으면 그거를 어떻게든 내고 싶어서. 정규 앨범 첫 번째 트랙은 내고 싶었던 느낌이 너무 명확해서 그거는 좀 오랫동안 만졌던 것 같아요.

 

Q. 어떻게 보면 후반 작업이 되게 좀 긴 편이네요?

 

맞아요. 한 곡 작업이 조금 긴 것 같아요.

 

Q. 앨범을 내실 때마다 그래도 작업기나 이미지나 이런 거에 있어서 공을 되게 많이 들이시는데, 그런 거에 에너지 쓰는 것도 사실 쉽지 않을 것 같거든요. 이미지나 콘텐츠 같은 것들도 준비하시니까요, 그런 것들도 좀 힘들지 않았는지 궁금했어요.

 

저는 이미지나 커버 작업 같은 건 되게 좋아해요. 왜냐하면 제가 음악을 고를 때 앨범 커버를 보고 음악을 들을 때도 있고, 제일 중요한 게 어떤 사람의 앨범을 듣고 나서 이 사람의 색깔 같은 걸 제가 떠올렸을 때 앨범 커버 색깔을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게 무의식에 크게 반영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커버도 그렇게 많이 공들이지는 않아요. 그냥 제 음악을 계속 듣다가 앨범을 보거나 아니면 뭐 사진을 부탁할 때 딱 눈에 띄는 게 있으면 이걸로 해야겠다고 그냥 빨리 결정을 하는 편입니다.

 

Q. 프로필도 계속 찍으시잖아요. 그런 거는 좀 어색하거나 이런 건 없으셨나요.

 

아니요. 너무 힘들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안 찍었어요. 제가 평소에 화장이나 머리를 할 때도 10분 이상 공을 들이지 않아요. 그냥 호다닥 하고 나가는데 그걸 몇 시간 동안 하고 있으니까 너무너무 힘도 들고. 카메라 앞에 있다는 것 자체가 제 자신이 어색해서 조금 힘든 것 같아요.

 

Q. 이번 정규 때도 찍으셨잖아요.

 

네 그때 굉장히 힘들었어요.

 

Q. 되게 자연스러우셔서 그런 것들을 편하게 잘하시는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가서 최대한 길게 안 하고 싶어서 ‘이렇게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짧게 하려고 했어요. 사실 그것도 정규 앨범 커버 때문에, 눈이 이렇게 비껴가는 이미지를 하고 싶어서 그것 때문에 찍은 거였거든요.

 

Q. 외에도 이제 다른 얘기를 조금 해볼 텐데요, 두 편의 단편영화 음악 감독으로 참여를 하셨어요.

 

제가 학생일 때 그런 걸 해보고 싶었어요. 영상 음악이라든지… 그래서 둘 다 제가 먼저 공고 글 같은 걸 보고 연락을 드렸어요. 두 번째로 했던 단편 영화는 사실 [Weak] 앨범에 들어간 사진을 찍어 주신 언니였는데, 그 영화는 아직도 안 나왔어요. 근데 그때 영화 소재라든지 그런 게 흥미로워서 했어요.

 

Q. 앞으로 나올 음악은 또 어떤 느낌일지, 정규의 연장 선상인지 그런 것들도 궁금합니다.

 

새로 낸 음악(“Barefoot”)은 포크 음악이에요. 그리고 다른 곡을 내려고 했는데 그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요. 신스팝을 만들고 싶은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노래하는 것도 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일단은 조금 더 자연스러운 느낌을 먼저 하고 그 뒤에 다른 장르를 해보고 싶어요. 제가 테임 임팔라(Tame Impala)도 좋아하고 MGMT도 좋아하고 사이키델릭 쪽도 좋아해요. 그래서 좀 더 그런 느낌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음악도 하고 싶어요.

 

Q. 음악도 그렇고 인터뷰하실 때 되게 정적인 분인데 또 음악을 이렇게 얘기하실 때는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어요. 그런 본인의 성향이나 성격도 어느 정도 반영된 것 같네요.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친구들이랑 있을 때는 또 되게 밝거든요. 그래서 음악은 그 중간인 것 같아요.

 

Q. 주로 이제 집에서 작업하시잖아요. 그럼 작업하실 때는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해요.

 

작업할 때는 사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요. 그냥 ‘녹음을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녹음을 하고. 근데 약간 스트레스를 풀려고도 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 재밌게 하는 것 같아요.

 

 

Q. 이번 곡 “Barefoot”은 어떤 곡인지 간단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는 대구에서 서울 쪽으로 올라왔어요. 어렸을 땐 지방에 있는 것이 답답해서 빨리 음악 공부를 하고 활동을 해야지 생각하며 성인이 되고 올라왔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니 대구에 있는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있었던 시간이 그립고 생각이 많이 나서 쓰게 된 곡이에요.

 

Q. 당분간은 계속 이러한 느낌의 포크 음악이 이어질 예정인지 궁금합니다.

 

두 달 뒤쯤 또 다른 포크 음악을 내려고 해요. 비슷하다면 비슷하다 할 수 있는데 악기 편곡이 조금 달라질 것 같아요. 그 뒤로는 어떤 음악을 낼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음악을 계속 이것저것 많이 만들어놓고 뭘 하고 싶은지 보고 있어요.

 

Q. 끝으로 이번 곡에 보컬 믹싱이나 코러스 등에 좀 더 많은 신경을 쓰신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셨는지 궁금해요.

 

맞아요. 이 전에 아이슬란드 아티스트들을 이야기하면서 말한 저음이 많이 없고 고음역대 사운드가 부드러운 포크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악기, 보컬, 코러스 등에 그런 느낌을 많이 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Interview | 블럭

소음발광

 

“힘있게 외치며 나아가다, 소음발광”

 

최근 몇 년 사이 영국이나 아일랜드에서는 신인 밴드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포스트 펑크가 음악씬을 다시 뜨겁게 달구고 있다. 소음발광의 새 앨범 [기쁨, 꽃]을 들었을 때 처음 느낀 것은 바로 지금 뜨거운 포스트 펑크의 피가 멀리 바다를 건너 한국의 인디씬에서도 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조선 펑크는 물론 옆 나라 일본의 펑크사까지 흡수한 소음발광은 이번 앨범을 통해 그들만의 독자적인 색깔을 보여준다. 또한 진지하게 음악사를 바라보고 성찰해야 좋은 음악이 탄생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앨범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음악의 체계적인 역사, 동시대성을 빼도 이 앨범은 생생한 에너지와 솔직한 노랫말로 매력이 넘친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듯한 노이즈 기타,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치닫는 드럼 비트, 차가운 톤으로 노랫말을 내뱉고 때로는 힘차게 샤우트하는 보컬… 낯선 밴드명인데도 재생하자마자 들리는 그 심상치 않은 에너지는 청자에게 마지막까지 달려가 보라고 하는 듯하다.

 

우울감이나 절망감이 드러나는 가사에서도 이번 인터뷰에서 보컬 강동수가 말하는 바와 같이 다같이 외쳐보면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것이야말로 펑크라는 음악이 갖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펑크를 사랑하고 진지하게 대하며 배워온 그들이라 완성시킬 수 있었던 앨범 [기쁨, 꽃].  그 앨범의 작업 과정이나 음악성, 그리고 이번 앨범을 완성시키는 데에 빼놓을 수 없는 친구들이자 서로 의지하는 부산 밴드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Q. 새 앨범 [기쁨, ]  들었습니다. 가사도 음악성도 이제 자기들만의 스타일이나 세계관을 확립한 같다고 느꼈어요. 앨범을 달이 됐는데 지금의 소감을 듣고 싶어요. 만족감이나 자신감 같은 감정도 있나요?

 

강동수 / ‘이 음반이 우리의 명반이다’ 이렇게까지는 말을 못하겠지만 저희 멤버들도 전부 자신감이 붙어 있는 앨범인 것 같아요. 전작까지는 거의 제가 독자적으로 드럼킥 하나 리프 하나 요구하는 식으로 했었는데 모든 멤버들이 다 같이 참여해서 만든 음반이 이번에 처음이거든요. 다 같이 만들어서 너무 기분이 좋고 그렇게 하면서 재밌는 작업물이 나온 거 같아요.

 

Q. 데뷔 EP []부터 디스코그래피를 들어보면 변화의 과정이 굉장히 재미있더라고요. EP [] 때는 산뜻한 기타록을 하셨는데 이제는 보컬은 샤우트도 많이 하고 기타는 노이즈가 강하고 전체적으로 보다 공격적인 음악을 하고 있죠. 이런 변화의 계기가 있었나요?

 

강동수 / 처음에 소음발광을 했을 때는 쟁글 팝을 하고 싶었는데 펑크 음악을 어렸을 때부터 듣다 보니까 계기라기보다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펑크 음악이 된 것 같아요. 밴드를 하면서 음악을 듣는 폭도 넓어지고 제가 영향을 쉽게 받는 스타일이라서 음악 스타일도 살짝살짝 변했던 것 같아요.

 

 

Q. 최근에 생긴 변화 하나로 1집을 새로운 기타리스트로 김기태 씨가 합류했네요. 기태 씨의 합류는 밴드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강동수 / 음악을 조금 젊게 만들게 된 것 같아요. 평균 연령대도 낮춰줬어요. 음악적으로는 좀 더 충격적이고 파괴적인 뉘앙스가 소음발광에서 생긴 것 같아요. 이 친구도 팝을 굉장히 좋아하고 추구하는 친구지만 그런 (충격적이고 파괴적인)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친구라고 생각하거든요. 소음발광에 기태가 합류하면서 그런 것들이 투영된 것 같아요.

 

Q. [기쁨, ] 로파이하게 만들어진 전작 [도화선]과는 달리 보다 팝하고 세련된 같아요. 이번 앨범은 어떤 테마나 비전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강동수 / 1집 [도화선]까지는 하고 싶은 대로 해왔어요. EP [풋]은 코-프로듀서 (co producer) 느낌으로 머쉬룸 레코딩스튜디오의 천학주 씨가 함께 해줬는데 저희가 만들었다기 보다는 그분이 만들어 주신 느낌에 영향을 받았고요. 그래서 1집은 ‘우리가 만들고 싶은 대로 해보자, 그래야 원 없이 해보는 느낌이 들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 당시 제가 Pavement에 꽂혀 있어서 로파이한 걸 해보고 싶어서 그냥 합주실에서 녹음했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저희가 성장하려면 조금 더 나은 퀄리티로 해보는 기회도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로파이가 안 좋다는 게 아니라 좀 더 다른 다양한 방식으로 레코딩을 해보고 많은 걸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더 세련되게 표현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이번 앨범 같은 경우는 펑크라고 해도 초기 펑크보다 포스트 펑크 사운드의 영향이 크게 느껴져요. 저도 듣자마자 70년대 후반부터 활동한 밴드 ‘The Fall’이나 동시대 밴드 중에는 아일랜드의 ‘Fontaines D.C.’ 같은 밴드가 떠올랐거든요. 블로그에 있는 앨범 작업기에도 이런 밴드를 언급하셨는데 포스트 펑크 사운드는 어떤 매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강동수 / 포스트 펑크라고 하는 밴드의 음악을 들어보면 하나의 장르로 보기가 어려울 정도 다양한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많잖아요. 저희는 각자가 전부 하고 싶어 하는 음악이나 좋아하는 성향이 달라요. 우리가 펑크를 표방하지만 포스트 펑크라고 하면 우리의 그런 성향을 자유롭고 아름답게 표출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기영 / 저는 포스트 펑크에 대해서 동수가 추천해줘서 듣게 되었는데 펑크와 포스트 펑크의 차이에 관한 역사적인 부분을 자세히는 몰라요. 근데 초기의 펑크는 노동자들이 쉬운 코드로 자신들의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런 것들을 차용해서 좀 더 예술적이고 다양한 사운드를 낼 수 있는 게 포스트 펑크라고 했을 때 되게 흥미로웠어요. 펑크의 시류 자체도 흥미로웠어요. 노동자들의 솔직함과 그것을 이어받아서 예술인들이 표현했다는 것도.

 

 

Q. 최근에는 ‘Fontaines D.C.’, ‘Shame’, ‘IDLES’, ‘Dry Cleaning’ 같은 밴드들을 비롯해 영국, 아일랜드를 중심으로 포스트 펑크가 다시 유행되고 있네요. 이런 동시대 밴드들에게는 자극을 받나요?

 

강동수 / 느끼셨던 것처럼 사운드도 ‘Fontaines D.C’.나 ‘Shame’을 레퍼런스로 했었어요. 사실 저는 언젠가 펑크 붐이 다시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저는 (포스트 펑크가 다시 유행하고 있는 상황에) 가슴이 뜨거워지더라고요. 저희가 작업하는 데에 있어서 그런 동시대 밴드들이 많은 자극을 줬어요. 그래서 저희가 작업기에 쓴 것처럼 동시대의 가장 멋있는 밴드들을 우리가 따라 하지는 않지만 ‘펑크를 한다고 한다면 같이 어깨를 견줄 수 있는 밴드가 되어야 되지 않겠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Q. 지금 코로나 때문에 영국이나 아일랜드에 가는 자체가 어렵지만아까 언급한 밴드들과 같이 공연하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같은 생각도 하시죠?

 

김기영 / 네. 원래 스타밴드가 되려면 처음에는 대단한 밴드의 오프닝 밴드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관객들이 ‘이 밴드를 보러 왔는데 이 밴드도 좋네’ 라고 느껴주면 좋잖아요. 그런 꿈을 저희도 꾸죠.

 

 

Q. 이번 앨범에 영향을 앨범을 알려주신 인스타그램 글을 흥미롭게 읽었어요. 중에 ‘The Beach Boys’ [Pet Sounds] 대해가장 훌륭한 음반’, 얼터너티브 밴드인 ‘Sonic Youth’ [Sister]어딘가 팝적인 요소가 있다라고 하신 읽고 좋아하는 음악의 기준 같은 생각할 것을 아주 중요시하시는 같다고 느꼈어요. 소음발광이 생각하는 팝의 정의는 무엇이고 팝의 어떤 부분에 끌리나요?

 

강동수 / 대중적이든 비대중적이든 들었을 때 뭔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을 팝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Sonic Youth의 변칙적인 요소나 노이즈 사이에서도 아름다운 요소들이 있는 것 같고 저는 특히 [Sister]라는 앨범을 듣고 아름다운 음악이 팝이 아닌가라는 정의를 개인적으로 내리게 된 것 같아요. 근데 아티스트들은 그걸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대중적인 음악을 써야겠어’ 해서 팝을 만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Q. 그런팝의 아름다움 추구하는 성향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걸까요?

 

강동수 / 사실 록 음악을 처음 접했던 중고등학교 때는 거칠고 시끄러운 게 최고고 뭔가 조금이라도 ‘팝적이다, 말랑하다, 아름답다’ 하면 그건 음악이 아니라고 했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근데 이거는 부산에서 함께 활동하는 ‘검은잎들’의 형, 누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이 사람들이 말하고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멋있는 거예요. 그분들과 친해지기 전에도 팝에 대해 눈이 트이기 시작했지만 그분들이 그걸 열어주는 물꼬가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아름다운 것에 대해서 사실 광적으로 집착하게 된 것이 있어요.

 

 

Q. 이번 앨범은세이수미 기타리스트 김병규 씨에게 전곡 프로듀싱을 맡겼네요. 어떤 경위로 같이 작업하게 되었는지, 협업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김기태 / 애초에 너무 좋아하는 밴드였는데 ‘세이수미’의 수미님이 소음발광의 1집을 좋게 들었다는 말씀을 하셔서 접점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런 말들이 너무 기뻤고 작업하면서도 부산에서 먼저 음악을 했던 선배, 형들로서 저희 방향성을 많이 잡아주셨던 것 같고 작업 이외에 인간적으로도 위로나 응원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워낙 펑크나 팝 같은 것에서 지금 한국에서 되게 높은 지위에 있는 밴드이다 보니까 음악적으로도 많은 코멘트를 해주셨고 저희 곡들이 좋게 만들어질 수 있게 도움을 주신 것 같아요.

 

김기영 / 저희가 말을 안 들을 수도 있잖아요. 좀 트러블 생길 경우도 있고. 근데 ‘세이수미’라는, 저희가 믿고 있는 분들의 기타리스트이기도 하고 리스펙트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도 말이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것 같아요. 저희가 무작위하게 꽉 채웠던 것들을 덜어내주시고 우리가 원했던 세련되면서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여러 요소들에 대해 ‘이렇게 해보면 좋겠다, 생각해 봐라’ 같은 식으로 조언을 해주신 것 같아요.

 

 

김보경 / 기타 같은 경우는 이펙팅도 많이 하고 이것저것 전자 장비를 사용해서 할 수 있는 게 많잖아요. 그런데 드럼은 거의 아날로그 방식에 집중하다 보니 톤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신경을 써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냥 ‘내가 좋아하는 톤은 무거운 톤, 어떤 스네어에서 나오는 어떤 톤이 마음에 든다’ 이 정도였는데 병규 씨랑 같이 작업을 하면서 세팅이나 뮤트나 톤이나 엄청 세밀하게 신경을 쓰고 잡아주셔서 그런 것이 많이 좋았어요.

 

강동수 / 밴드를 처음에 시작했을 때 느낌 같았었어요. 저희가 1집을 내고 이제 2집을 준비함에도 불구하고 학생인 것 같았었어요. 팝적인 걸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을지 지시를 하거나 가르쳐준다기 보다는 함께 고민을 해주는 어떤 좋은 선배, 선생님, 이런 느낌이었어요. 저희도 ‘무조건 시끄럽고, 멜로디만 이렇게 하면 팝인 거지’ 이런 느낌을 사실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걸 깨게 해준 게 이번 작업에서 가장 큰 성과이자 배움이었던 것 같아요.

 

Q. 가사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는 조금 추상적인 느낌이 들었어요. 주제를 잡고 가사를 쓰려고 하셨는지, 가사 쓰는 법에 바뀐 부분이 있는지 궁금해요.

 

강동수 / 1집 같은 경우는 일기를 기반으로 가사를 썼어요. 근데 2집은 그냥 코드 진행이나 편곡이 어느 정도 되었을 때 길면 30분, 짧으면 5분 안에 가사들이 다 쓰여졌어요. 1집은 내면에 있는 것보다 머리에서 내가 알고 있는 나의 감정을 적었다면 2집은 그냥 지금 당장의 상황 같은 거나 눈에 보이는 어떤 키워드들을 나열해서 적었어요. 그래서 그게 조금 다르게 느껴지고 스토리도 조금 모호하게 들릴 수 있는 것 같아요. 주제는 딱히 정한 건 아니었는데 제 이야기를 가사에 쓰다 보니까 제가 기본적으로 조금 우울한 사람이라 2집은 그런 것들이 폭력적으로 표출이 되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누군가에게 트리거(trigger)가 될 수 있는 정도의 우울이고 그게 그 당시 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주제가 된 것 같아요.

 

 

Q. ‘기쁨 같은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보수동쿨러’, ‘해서웨이멤버들과 같이 부르는 부분 때문인지그래도 내일도 살아가자같은 힘이나 희망이 느껴져요

 

강동수 / 그 노래는 처음에 가이드 상태였을 때는 제목이 ‘자살’이었어요. 근데 보경이가 ‘노래는 너무 좋은데 가사나 제목이 나에게 너무나 트리거(trigger)다. 이 노래를 쓰고 싶지 않아’라고 해서 안 쓰려고 했었는데, 기태는 작업하면서 ‘행님, 이 노래 너무 좋은데 왜 안 써요?’라고 한 거예요. 그래서 가사를 바꾸기로 했고 보경이의 트리거가 되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가장 솔직한 걸 적자고 해서 써봤어요. 이 가사는 유일하게 일기를 기반으로 쓴 가사예요. 사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닌데 우리는 충분히 우울할 수도 있고 기쁠 수도 있고 좌절할 수도 있고 우리의 감정에 충실해서 살 수 있을 텐데 모든 매체에서는 기쁨만 강요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다 같이 외치는 “이렇다 뭘 해본 적도 없구요  / 살아보려 애쓴 적도 없어”라는 부분은 ‘내일을 살아가자’라는 느낌을 주려고 쓴 건 아니지만 다 같이 체념하고 내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고 그렇게 하다 보면 해방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지금 제 감정은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서 같이 불렀고 이렇게 노래로 만들게 되었어요.

 

김기영 / 전 드러머도 저의 와이프도 같이 불렀어요.

 

Q. 굉장히 넓은 가족 같은 존재들이랑 작업한 거네요. ‘기쁨이라는 말이 앨범 제목에도 들어가 있는 만큼 역시 앨범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노래가 되었죠?

 

강동수 / 가장 중요한 노래입니다.

 

Q. 이번 앨범은 프로덕션도 김병규 씨랑 하셨고 부산 밴드들과의 연대감 같은 것도 개인적으로 느꼈는데 평소에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주변 밴드들은 어떤 존재일까요?

 

강동수 / 예를 들어 ‘세이수미’, ‘검은잎들’, ‘해서웨이’, ‘보수동쿨러’, ‘더 바스타즈’ 그렇게 다섯 밴드들하고 저희가 교류를 하고 있고  ‘검은잎들’과 ‘더 바스타즈’랑은 ‘도적단’이라는 크루도 만들었거든요. 어떤 존재라기보다는, 저희한테는 부산에서 음악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존재들이고, 언급한 밴드들이 중심이 되면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우리가 또 다른 문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

 

 

Q.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서울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부산에서 활동하는 것은 밴드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김기영 / ‘세이수미’ 같은 경우에는 바다가 좋아서 부산에 남는다는 이야기도 하거든요. 근데 저희는 지역에 애정이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니에요. 서울에 가서 라이브를 볼 수도 있지만 충분히 여기서도 라이브를 가깝게 볼 수 있다는 것도 있었어요. 자랑은 아니지만 특히 2016, 17년 부산에 한창 아티스트가 많았을 때는 어떻게 보면 서울보다 큰 씬이 있었고 부산이 가장 선두에서 음악을 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 시기에 제가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물론 지금은 많이 죽었지만 ‘우리도 부산에서 충분히 할 수 있겠다, 전혀 못할 구석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근데 지금 제일 큰 부분은 살고 있던 데에 대한 안정감인 것 같아요. 사실 음악을 한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나 생각할 요소들이 너무 많은데 서울에 가서 더 많은 스트레스를 확장시킬 이유는 없는 것 같고. 부산에서도 활동을 할 수 있고 서울의 팀들을 부를 수도 있는 충분한 관계가 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계속 부산에서 할 수 있다,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요.

 

Q. 2016, 17 부산의 음악씬이 뜨거웠을 때는 지금이랑 어떻게 달랐나요?

 

김기영 / 그때는 밴드도 많았고 기반도 많았어요. 펍이 아니라 라이브 클럽이 많이 있었고.

 

강동수 / 지금은 라이브클럽은 두 군데 밖에 없을 정도로 많이 사라졌는데 두 군데라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2016,17년에는 라이브 클럽 기반도 잘 돼 있었지만 새로 나오는 밴드도 선배 밴드들도 많아서 그런 것들이 저희한테 많은 영향을 줬었죠. 아쉬운 것은 (그때 나온 밴드 중) 남은 팀이 ‘보수동쿨러’랑 저희 밖에 없다는 것이에요.

 

 

Q. 마지막으로 소음발광의 음악적인 정체성을 상징하는 펑크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한국에서 펑크라고 하면 90년대 후반 한국 인디 1세대의 ‘Crying Nut’, ‘No Brain’ 같은 밴드가 역시 너무나 존재인 같아요

 

강동수 / 크라잉넛이 나오는 [Our Nation]라는 음반을 들으면서 밴드를 하겠다고 생각했고, 펑크의 멋짐을 알게 된 것은 노브레인의 [대조선펑크 노브레인: 청년폭도맹진가]라는 앨범이었어서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는 사람들이에요. 크라잉넛, 노브레인은 20년 넘게 활동하는 펑크 밴드이고 존경할 수 있는 대상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거라 저희에게 좀 의지가 되죠.

 

김기영 / 스쿨 밴드들 모두 커버했죠. 델리스파이스, 노브레인, 크라잉넛, 그리고 자우림…

 

Q. 밴드의 블로그를 읽어보면 ‘Blue Hearts’, ‘Number Girl’ 같은 일본 펑크, 포스트 펑크 밴드의 언급도 있네요. 이런 밴드들은 어떻게 찾으셨나요?

 

강동수 / ‘Number Girl’ 같은 경우는 한국에서는 “일본의 Pixies, Sonic Youth”란 그런 수식어으로 불리더라고요. 저도 ‘Pixies’랑 ‘Sonic Youth’를 좋아하니까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죠.  ‘Blue Hearts’ 같은 경우는 ‘검은잎들’ 영향이에요. ‘검은잎들’이 완전 ‘Blue Hearts’ 매니아이거든요. 오타쿠… ‘긴난보이즈 (Ging Nang Boyz)’는 어느 날 유튜브 통해서 듣게 되었는데 눈물 흘리면서 소리치는 그 라이브가 팝 자체였어요. 너무 아름다웠어요. ‘카케누케데 세이슌 (駆け抜けて性春)’은  항상 들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게 있어요.

 

Q. 활동 관련해서 목표가 있으면 듣고 싶어요.

 

강동수  / 현시대에 가장 멋있는 밴드, 가장 아름다운 밴드가 되고 싶어요. 예전에는 부산이라고 하면 소음발광을 떠올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왕에 음악을 한다면 큰 꿈을 가지고 있는 게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절반은 도달하겠지’라고 생각해서요.

 

 


 

Interview | 야마모토 다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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