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Artist BrokenTeeth,
- Release2021.09.10
- Genre Rock,
- LabelBrokenTeeth
- FormatAlbum
- CountryKorea
- 1.수취인오류(blank)
- 2.불꽃놀이
- 3.Whitebird
- 4.내일은비가내린다.(어제도)
- 5.첫눈
- 6.거북이는 발이 무겁다
- 7.벚꽃이 화사했던 계절처럼
BrokenTeeth 데모 앨범 [편지]
전하지 못하고 삼켜버린 말들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저의 데모음원을 모은 앨범 [편지]는 그렇게 전하지 못한, 끝내 불태워버린 편지 같은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가능한 한 크게 들으십시오
“1990년대 초, 영국의 대중음악 주간지 <멜로디 메이커>의 스티브 서덜랜드(Steve Sutherland)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잉글랜드까지 이곳저곳의 인디 록에서 나타나던 일련의 밴드들을 지칭하며 사용했다고 추정되는 어구가 하나 있다. “the scene that celebrates itself”이라는 표현인데, 이것은 서덜랜드가 의도한 비난보다는 묘하게 일종의 상찬처럼 들린다. 애초에 ‘슈게이즈(shoegaze)’라는 장르명 자체도 ‘신발만 쳐다보고 있대요,’라고 치사하게 놀려먹는 의도보다 신발 쪽에 놓인 수많은 이펙트 페달과 그로 만들어지는 사운드의 질감에 더욱 집중해야만 하는 탐색적인 성질이 더 크지 않을까, 싶은 입장에서 말이다. 여기서도 비슷한 접근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비꼬듯 해석하면 ‘자화자찬하는 씬’ 정도의 의미를 담겠지만 또 달리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응원하는(혹은 축복하는) 씬’이 될 수도 있듯이 말이다.
물론 이 뜻들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지만, ‘스스로를 응원’한다는 말은 왜인지 멀게는 20년 전까지로 뻗을 수 있을 국내의 슈게이즈 밴드들과도 어울린다. 이들은 전기기타 소리를 최대한 일그러트려 거친 질감과 빽빽한 밀도로 사운드의 결을 구성해 ‘분위기’를 충분하게 조성하는 것은 비슷했다. 다만 각자마다의 접근법이 다르더라도 한 줄기의 확연한 코드와 리프, 그리고 멜로디만큼은 꽉 잡으면서 형성된 정서가 특히나 두드러지고, 무언가 공유된다고 느껴진다. 슈게이즈의 여러 질감과 대비되는 동시에 그를 보충할 수도 있는 멜로디를 적극 이용해 고유한 서정을 만들기. 개인적인 의미를 더하자면 이는 어느 정도 자율적으로 만들어진 성질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거기서부터 현 시점으로 돌아와 다시금 ‘스스로를 축복/응원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와 BrokenTeeth의 [편지]의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편지]에는 BrokenTeeth가 손수 제작해 인터넷에 업로드한 음악들이 담겼다. ‘스스로’의 성질은 음반 자체가 원래 가상악기에 큰 기반을 둔 홈레코딩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내재되었을 것이다. 카 시트 헤드레스트(Car Seat Headrest)의 초창기 밴드캠프 작업에 대한 존경과 함께, BrokenTeeth는 이른바 ‘인디’의 오랜 동력이었던 DIY 방식을 택하여 [편지]를 썼고, 밴드캠프에서 발매된 이후 믹싱과 마스터링을 더욱 다듬어, 그의 편지는 마침내 음원 사이트에 이르렀다. 온라인상에서도 충분히 오랫동안 존재해온 자급자족의 방식이 그렇게 ‘스스로를 응원하는’ 모습에 겹쳐지는 한편, 비슷한 상황과 태도로 만들어졌을 이전의 국내 슈게이즈와도 방법론을 느슨하게 공유하는 덕에 [편지]는 어쩌면 각자의 ‘두 잇 유얼셀프’로 음악을 만들어온 ‘스스로들을 축복하는’ 음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초점을 두고 싶은 건 이런 과정상의 특징이 어떻게 [편지]의 사운드를 만들었는지다.
음반의 첫 트랙인 “수취인오류(blank)”가 꽉 막혀있던 음질을 서서히 열어젖히면서, 조금 텁텁한 가상 드럼과 지글거리는 전기기타가 함께 들려오는 것은 의미심장하게도 [편지]의 두 가지 핵심을 함께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음반에는 두 종류의 ‘노이즈’가 존재하는 셈이다. 한쪽에서는 전기기타에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어 그 사운드를 풍성하게 왜곡시키며 소음을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낮은 충실도’의 사운드를 형성하는 녹음 과정에서 손실된 소리들로 로우파이한 잡음이 만들어진다. BrokenTeeth가 더스터(Duster)가 정말로 잘 섞어낸 로우파이한 질감과 정서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만큼, ‘로우파이 슈게이즈’ 음반으로서 [편지]의 매력적인 질감은 각기 다른 성질의 두 가지 ‘노이즈’들이 공통된 정서의 트랙에서 공존할 때에 생성된다. 이를테면 “불꽃놀이”의 후반에서 파열된 채 울리는 심벌 소리가 스테레오를 오가는 겹겹의 전기기타 소리와 병치되는 것이 그렇다. 각양각색의 이펙트를 사용해 하나로 덧대진 소음 덩어리에 로우파이하게 내파된 잡음이 삽입되어, 형질이 각자 다른 소리들이 맞닿을 때의 긴장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셈이다. 질감끼리의 충돌은 이렇게 두터운 전기기타 사운드와 그 외의 소리들 사이에서 주로 발생한다. “내일은비가내린다. (아마도)”의 후반부에서 센티멘털한 솔로 리프가 조용히 공간을 채운 후 떠난 후 사운드 전체가 광활하게 고조되다 못해 과포화된 소음으로 아름답게 터져나갈 때에도, 그 처음부터 끝까지 깨진 듯한 드럼 소리의 반복을 분명히 들을 수 있는 또 다른 예시도 있다. 서서히 거세지는 배경의 기타 노이즈와 감정적인 멜로디를 담고 오르내리는 보컬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동일한 박자와 세기를 유지하는 드럼이 만난 “Whitebird”도 그렇다. 인공악기로 조형된 드럼 소리들은, 묘하게도 그 어떤 소음과 잡음이 몰아쳐 와도 꿋꿋하게 존재하고 있다.
다양한 유형의 소음과 잡음이 [편지] 속의 글씨체와 문장이 되어 자기주장을 내세우면서도, 더욱 강한 한쪽이 모든 걸 완전히 덮어버리진 않는다는 점은 음반의 또 다른 미덕이다. 시끌벅적한 슈게이즈 기타 사운드가 공간을 꽉 매우더라도, 노이즈의 질감을 능숙하게 조정한 덕에 쉽사리 묻히지 않는 리듬이 트랙의 구조를 지탱해줘, 이 기반은 더욱 단단해진다. 이글대는 소리들 안에서도 그 존재가 분명히 들려오는 특징은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는데, 서정적이게 악곡을 이끄는 멜로디와 코드, 그리고 리프의 진행이 바로 그것이다. BrokenTeeth가 발송한 [편지] 안에 담긴 명확한 온도와 충실한 감정이 담긴 각종 멜로디는 진한 디스토션의 질감으로 감싸져 청자에게 보내진다. 그 포장을 풀어보는 과정에 [편지]를 듣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다시 음반의 초반부에 집중하면, 시종일관 강렬한 두께의 리프를 쏟아내는 “수취인오류(blank)”의 후반부에서 오른편에 삽입되는 실로폰의 천연덕스러운 음계가 트랙의 분위기를 얼마나 밝게 고양시키는지를 떠올려보면 좋을 것이다. 아니면 “불꽃놀이”처럼 따스함을 잔뜩 품다가도 거친 속내를 드러내는 기타가 지나간 뒤 분위기를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여린 목소리나, “whitebird”의 하단에 두껍게 깔린 노이즈의 음량이 더욱 짙게 불어나도 그에 굴하지 않고 한 단어씩 꾹꾹 눌러 부르는 힘 있는 목소리도 그렇다. 나중에는 그러한 BrokenTeeth의 목소리를 가장 잘 들리게 조절한 “거북이는 발이 무겁다”가 나오기도 하고 말이다. 곧, [편지]에서 무거운 전기기타 노이즈의 인력으로 사운드가 안쪽부터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잡아내는 것은 무엇보다 감정에 충실한 코드 진행으로, 선율의 진행은 이렇게 [편지]의 또 다른 단단한 축이 된다. 음반의 곳곳에는 무겁고 거친 톤 속에 따뜻한 음계를 담아 ‘서정적인 소음’을 만드는 BrokenTeeth의 정석적이고 세밀한 수사법들이 들어있다. 이로써 음반 내내 희미하게 들려오지만 절대 불분명해지지 않는 목소리는 자신의 필치로 흥얼거리며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 이제 [편지]를 열어 그렇게 담긴 내용들을 읽을 때가 왔다.
커버아트에서도 보이듯 이 편지는 이미 군데군데 그을리고 없어진 낡은 편지에 가깝다. 슈게이즈의 소음이 어떻게 질감 전체를 흐리거나 짙게 덮는지, 또한 로우파이한 잡음이 어떻게 사운드의 주요 정보들을 잃게 하는지를 다시 떠올려보자. [편지]를 청취하는 ‘수취인’일 청자들은 또렷하게 존재하는 멜로디 라인을 인식할 수는 있으나, 사운드 전체에 깔린 소음과 잡음 때문에 노랫말 전체를 정확히 짚어내기는 힘들다. 그렇기에 이 편지의 내용이 청자에게 완벽히 가닿진 않겠지만, 이러한 수취인상의 ‘오류’를 연료로 삼고, 잔해처럼 남은 말의 조각들을 단서로 삼아 청자들은 그 내용을 상상해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확실히 잡혀진 사운드와 분명하게 풀리는 멜로디에도 불구하고 들릴 듯 말 듯 나타나는 목소리는 암호처럼 해석의 여지를 만든다. 그렇게 내용을 숨긴 편지의 해독법은 소리에 담긴 어절들을 이야기로 재구성할 수 있는 청자들의 능력에 있으니, 그를 활용해보는 것 또한 [편지]를 읽는 좋은 방식이 될 것이다. 우선 무수한 소리들 속에서 어떨 때에는 관형사가 달린 명사들을 잡아내 하나의 풍경을 재구성해볼 수가 있겠다. 찰랑거리는 기타의 “첫눈”에서 쏟아지는 슈게이즈 눈발과 함께 묘사되는 정경이나 “거북이는 발이 무겁다”에서 가장 잘 들려오는 단어를 수수께끼 같은 트랙 제목에 엮어볼 수도 있다. 또 한편, 문단을 시작할 때마다 주저하듯 말문을 여는 표현이나, 편지를 쓰는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만 같은 문장도 잡아낼 수가 있다. 그렇게 소음과 잡음 속에 묻혀있던 소리에 형체를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어쩌면 BrokenTeeth가 [편지]를 보내려 하는, ‘마냥 간직할 순 없’는 ‘너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전달 과정에서의 수취인오류가 곳곳에 ‘공백’을 만들더라도, [편지]는 적어도 음반이 진행되는 시간동안에는 풍성한 슈게이즈 소음과 먹먹한 로우파이 잡음, 또 솔직한 감정과 풍부한 멜로디를 전부 놓지 않으며 그 스스로를 사운드와 진행의 연료로 삼아 활활 타오른다. 마치 그 작별인사 격인 “벚꽃이 화사했던 계절처럼”처럼 말이다. “내일은비가내린다.(어제도)”에서 들었던 장엄한 풍경을 구성했던 것보다 더욱 직설적인 리프와 이글거리는 기타 노이즈가 내뿜는 에너지를 외피에 두른 이 트랙에서, [편지]는 마지막으로 불타오른다. 이 마무리에서 [편지]에 담겨있던 모든 소리들은 그 음량을 최대치로 키워버려 기어이 감정과 노이즈가 모조리 거대하게 뭉쳐진 형상을 만들고야 말고, 자그마한 보컬이 임계점을 넘어서까지 차오르는 피드백 노이즈에 서서히 묻혀버리는 결말은 끝에 대한 하나의 신호가 된다. 그렇게 [편지]는 최후의 화사함을 화려하게 활활 발화한 뒤 결국 재로 화하며 끝맺어진다.
아마도 그런 지점들을 즐기며 나는 ‘자화자찬하는’, 혹은 ‘스스로를 응원하는/축복하는’ 것을 떠올린 걸지도 모르겠다. 슈게이즈라는 형식은 록의 중대한 재료인 왜곡된 전기기타 사운드에 종종 팝적으로 아름다운 멜로디를 담은 후, 이를 최대한 경계까지 밀어붙여 상상도 못한 부드러운 굉음들을 만들어냈다. 바로 그 때문에 한 발짝만 걸어 나가면 더 이상 록이 되어버리지 못할 상한선까지 도달하며 서서히 멈춰버린 후에 가볼 수 있는 경로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보거나, 이미 한순간에 발명된 자기 자신의 안쪽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었다. 슈게이즈의 어법이 종종 내밀한 감정 표현의 수단으로 도입되는 것도 함께 두면, 여러 방식과 의미로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려는 슈게이즈의 경향과 특성은 사뭇 필연적인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슈게이즈는 스스로의 지속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위해 그 자신을 자양분 삼았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서 어떠한 ‘자화자찬’도 이끌어낼 수 있겠으나, 여기서만큼 나는 스스로를 응원하고 서로를 축복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이르게 다다른 한계점에서 자신들이 이뤄온 것을 파고들어가듯 탐구하면서, 슈게이즈는 적어도 그들 안쪽에서부터 끝나지 않는 자가발전 동력원을 발굴해냈다. 전하고 싶은 말을 담아두었지만 그 말을 부치지 않은 채 가능태로 돌고 돌며, 영원히 활활 불타오르는 편지처럼 말이다. 그 편지에 담긴 말들을 온전히 짐작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 나름대로의 축복을 떠올린다. 그렇게 열린 BrokenTeeth의 [편지]는 이제 다시 봉인되어 새로운 소인과 주소지를 달고, 불완전연소의 상태를 유지하며, 다시 슈게이즈의 우편망을 유유히 또 열렬히 돌아다닐 것이다.”
나원영 (대중음악비평가, 웹진 weiv 필진)
Credits
Composed, Recorded, Mixed by 김민하 (BrokenTeeth)
Guitar, Bass, Vocal, MIDI by 김민하 (BrokenTeeth)
Guitar (Track 5) by 이성진
Mastered by 박병준 (프리웨이브 스튜디오)
Artwork by 조영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