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아요]

 

어쩌면,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아요’의 바다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바라다보는 바다이기에, 정지되어있는 것 마냥 느린 속도감을 띠고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노랫말에서 ‘상상은 우리가 더 많이 믿는 것’이라고 하듯이 말이다. 이렇게 트랙은 ‘겁낼 것이’ 또 ‘급할 것이’ 전혀 없는 바다를 그러하게 믿어보며, 그렇게 나타난 상상을 이러하게 풀어낸다.

 


 

이설아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아요
2022.01.08

 

1991년에 최초로 발견되어 호주의 대보초 해역에서 드물게 모습을 드러내는 “미갈루”는 현 시점까지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알려진 백색증 혹등고래다. 검푸른 바다빛깔의 해류를 타고 유유히 헤엄치는 거대한 흰 몸뚱이의 그 모습을 상상해보면, 그것은 이설아의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아요’가 그리는 소리들과도 무척 닮아있기도 하다. 반대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아요’의 이야기에 잠시 등장하는 미갈루가 그 소리들과 닮았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물이라도 먹인 것처럼 느린 속도를 따라 둔중하게 울려 퍼지듯 조절된 베이스음이 트랙 전체에 짙게 깔려있는 형상은, 깊숙한 수심의 흐름과 닮아있다. 먼발치에서 머나먼 바다를 내다볼 때에, 바다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안쪽에서부터 천천히 흐르듯,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아요’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소리 또한 상대적으로 느린 제 속도를 따라 울려 퍼져나간다. 이런 베이스처럼 리버브 효과로 처리된 전기기타 소리가 느린 물살을 함께 거들어주며, 트랙의 느낌은 깊은 바다의 그것, 혹은 깊은 바다에서 유영하고 있는 그것, 어쩌면 깊은 바다에서 유영하고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그것과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다. 울림소리의 큰 잔향에 의해 전체적인 사운드에 대체로 무게감이 걸려있게 된다. 그렇다 해서 그 음색은 거대한 수압에 짓눌리듯 둔탁해지기보다는, 매질을 타고 느리게 전파되는 고래의 울음소리처럼 부드럽게 조절되어, 거대한 부피의 물이 부유하는 느낌을 충분히 이끌어낸다. 때문에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아요’에서의 이 바다는, 심한 풍랑이나 높은 파고가 그렇게 자주 일지 않는, 거대하고 잔잔하며 느릿느릿한 곳이다.

 

하지만 이 트랙은 미갈루와 바다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갈루가 어디선가 천천히 잠영하고 있을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그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다. 이설아의 목소리가 베이스와 전기기타의 바다 같은 효과음에 동일하게 덮이지 않고, 그보다는 상대적인 고음역대에서 조금 분리된 채 좀 더 분명히 나타나는 것이 그 때문 아닐까. 대신에 이 목소리에는 멀리 보이는 바다에 대해 대화를 나누듯, 코러스들이 쌓아올려지며 그만의 깊이감을 더한다. 모든 게 그 자신의 속도로 찬찬히 흘러가는 여기선 급할 것이 없기에, 이 목소리들 또한 바다 같은 낮은 소리들이 흘러가는 것에 발을 맞추며 그를 바라본다.

 

어쩌면,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아요’의 바다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바라다보는 바다이기에, 정지되어있는 것 마냥 느린 속도감을 띠고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노랫말에서 ‘상상은 우리가 더 많이 믿는 것’이라고 하듯이 말이다. 이렇게 트랙은 ‘겁낼 것이’ 또 ‘급할 것이’ 전혀 없는 바다를 그러하게 믿어보며, 그렇게 나타난 상상을 이러하게 풀어낸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부터 상상된 바다가 사운드를 통해 천천히 파도를 이끌며 넘나든다. 그곳은 물론 언제나 고요하고 유유히 흘러가는 곳이 절대로 아니며, 특히나 백색증이 있는 생물들은 이런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생존하기가 더 힘든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아요”의 바다는, 바다에 대한 많은 것들을 함께 믿어보기에 나타날 수 있는 모습의 바다가 된다. 그 바다에서 백색증의 혹등고래인 미갈루는 급하지도, 겁내지도 않으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진짜로 저 머나먼 대보초 인근의 넓고 깊은 바다에서, 미갈루가 지금 이 순간에만큼은 여전히 존재하는 채로 유영하고 있듯이 말이다.

 


Editor / 나원영 (대중음악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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