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시와라는 이름에 접속조사 “와”가 이미 품어진 것은, 그 뒤로 오는 무엇이든 그 이상으로 이어낼 수 있단 뜻이기도 할 것이다. 시와 소리, 시와와 정현서, 그리고 시와와의 또 다른 우연한 만남으로.
시와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
2022.02.06
시와의 새 EP에 작년 트랙들뿐만 아니라, ‘리메이크’된 과거의 트랙들에 오랜 협연자였던 베이시스트 정현서의 이름이 나란히 붙여져 실린 모습은 어째 세 장의 정규 음반을 비롯해 ‘시와 무지개’의 두 음반 등으로 쉼 없이 이어졌던 2010년대 상반기의 시와부터 떠올리게 한다. 이는 당대의 가장 훌륭한 포크와 인디 팝에 덧대진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 같은 정형화된 비평적 어구에 ([逍遙]의 프로듀서였던 오지은과 함께) 조용히 반문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길상사에서’에서 천천히 끌어올려진 “바람에…”의 선율이 서서히 솟아오른 신스음과 조응해 자그마한 풍경소리로 수렴될 때, 그런 신스음과 목소리가 함께 두런거리면서 시작된 ‘Dream’이 전기기타 솔로가 돋보이는 밴드 연주로 차차 나아갈 때처럼 말이다. 공기의 불안한 떨림이 들어갈 여지없이 견실하게 ‘대지에 내려와 있는’ 낮은 목소리와, 나일론 기타와 피아노 건반이 만들어내는 느린 정취 사이에 생겨나는 빈 공간, 그 틈에 채워 넣어진 RAINBOW99의 지글거리는 전기기타부터 정현서의 묵직하고 든든한 프렛리스 베이스, 아니면 이규호(Kyo)의 작곡을 박용준이 실내악으로 편성한 관현악기들에, 목소리와 맞물리는 서늘함을 머금고 심어진 전자음까지. 분명한 무게감을 지닌 재료들을 저마다의 자리에 서두르지도 머뭇거리지도 않고 차분히 정돈하면서, 시와는 포크와 팝에 걸친 “평범함”의 유별난 구석에 내재된 균형점들을 정갈히 이끌어내 이 시공들을 관제해왔다.
청소년기의 청취 경험이었던 80년대 후반의 가요 테이프들을 떠올리며 “내 음악의 기원은 발라드였어! (“[아니 어떻게 이렇게 9-1] 시와 편 / 발라드야 나?”)”라고 외쳤던 모습이 멜로디와 화성의 진행이나 이를 뒷받침해주는 풍성한 편성으로까지 비춰져 [머무름 없이 이어지다]와 [다녀왔습니다]의 시간적 간격을 이어줬다면,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는 최소적인 구성 속에서 소리들 간의 배치와 왈츠 박자의 활용으로, 일찌감치 정립됐던 시와의 형상을 갈무리해온다. 21년도에 발표된 세 트랙은, 목소리가 나타나는 시간과 나타나지 않는 시간을 건반으로 연결 지어 동등하게 배치하고(‘곁에 있어도 될까’), 세 박자 속에 “하나 둘 셋 넷”을 슬며시 끼워 넣으며(‘waltz at night’), 건반과 목소리 사이 또 홀수박의 강약에 주어진 거리를 좁히고 넓히며(‘숨’) 어떻게 소리들이 안정적인 세모꼴로 지어질 수 있는지를 들려준다. 이는 물론, 시간이 그리 배치된 소리들 사이로 “서서히 스밀 수 있”고, 제 자신의 속도로 “천천히 흐를 수 있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곁에 있어도 될까’가 후렴구 없이 한 단위의 (혹은 반쪽짜리처럼 느껴질 수 있을) 절로 마무리되어도 사뭇 불완전하거나 미완성된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숨’과 ‘waltz at night’가 트랙 안에서 속도를 슬쩍 조절해도 느린 산책 같은 걸음이 비틀거리지 않는 것도 그 덕일 테다.
정현서와 함께 한 두 개의 트랙은 낮은 소리의 존재감을 활용해, 적은 수의 부품들만으로도 성긴 틈새 없이 소리의 아귀를 맞물려놓는 시와의 트랙들에 무게감 있는 말동무를 달아놓는다. 이전에 발표한 트랙들에 대한 “일종의 정본(正本) 작업 (김병우, [음악취향 Y])”으로서 스튜디오 작업으로 리메이크된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는, 라이브 버전과 달리 오로지 시와의 목소리로만 시작된다. 분명한 질감의 목소리 저변에서 베이스음이 현현하듯 시공을 채워 넣는 모습은 순식간에 곡의 “채도를 높이고 명확히 선을 그리 (김병우)”면서 형상을 부여한다. 박자에 대한 그 어떤 표지 없이 시작된 트랙이 세 개의 소리들을 차곡차곡 엮어가며 이전 곡들과 같은 세 박자의 뼈대를 서서히 드러내고, 어느덧 세 개의 확연한 선분들이 서로와 나란히 교차된 무늬를 만들며, 그 마무리가 완성된다. [다녀왔습니다]의 예고로 발매되었으나, 마찬가지로 이번 EP에 다시 녹음되어 실린 ‘완벽한 사랑’에서 또한, 정현서의 베이스음을 들이며 그 “명확한 채도”가 올라간다.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의 도입부와 조금은 반대되듯, 이번에는 시와의 목소리 없이 두 대의 악기로만 트랙이 시작된다. 여기서도 베이스음는 원테이크라는 환경에 담겼던 2017년 판 ‘완벽한 사랑’의 단출함에 두터운 겹을 하나 깔아놓는다. 두 소리 사이에서 나타난 하나의 관계에 또 다른 소리 하나가 더해진 것만으로도, 두 관계들이 새로이 나타난다. 둘에서 셋으로, 또 하나에서 셋으로, 그렇게 셋에서 여섯으로. 그 중앙이자 밑바닥에서 미끄러지는 베이스음은 나머지 소리들과 멜로디를 주고받듯 오르내리며, 더욱 많은 이야기를 트랙에 더해놓는다.
3이라는 숫자가 안정성을 상징한다면, 이는 시와와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려 보인다. 21년도의 두 곡이 삼박자를 따르는 세 개의 소리들을 세 방향으로 교차해 그 구심점 주위를 돌고 돈다면, 뒤쪽의 두 곡은 두꺼운 소리를 부드럽게 추가한 삼각형의 소리 꼴에서 달라진 무게중심을 차근차근 찾아 나선다. “숨소리를 내어보면 사이가 생각나”는 것처럼, 시와의 셋은 무언가와 다른 무언가, 이 둘만큼의 값을 띄고 나타난 그 사이와 함께 한다. 양쪽 소리 간의 거리를 유유히 소요하는 정적이거나, 두 소리가 원래 놓인 땅에 내려앉은 저음이라거나, 너와 나를 머무름 없이 잇는 관계쌍이거나. 그러므로 시와라는 이름에 접속조사 “와”가 이미 품어진 것은, 그 뒤로 오는 무엇이든 그 이상으로 이어낼 수 있단 뜻이기도 할 것이다. 시와 소리, 시와와 정현서, 그리고 시와와의 또 다른 우연한 만남으로.
Editor / 나원영 (대중음악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