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라마, Khundi Panda [송정맨션]

 

비현실적이거나 혹은 지극히 현실적인, 어쩌면 모순적일 수도 있는 양 끝 단의 성질을 모두 머금은 [송정맨션]은 그리하여 영화 같기도, 소설 같기도 한 오묘한 작품이다. 더불어 이러한 내용을 살아 숨 쉬게 하는 여러 서술적 장치들과 사운드적인 완성도는 말 그대로 ‘외강내강’에 가까운 마감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김라마, Khundi Panda
송정맨션
2021.10.03

 

무언가를 수식할 때 “영화 같다”라는 표현이 동반되는 경우, 우리는 그것이 시각적인 강렬함을 동반하며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을 법한 장면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어떤 사건의 전말이 믿기 어려울 만큼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경우를 두고 우리는 마치 “소설 같다”고 표현한다. 비슷해 보이는 두 표현은 이렇게 전혀 다른 뉘앙스를 풍기면서도 현실과 가상의 언저리에 걸쳐있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쿤디판다와 김라마의 합작품인 [송정맨션]은 영화 같기도, 동시에 소설 같기도 한 오묘한 인상을 풍긴다. ‘송정맨션’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마치 카메라 구도를 바꾸듯 서로 다른 인물들을 집요하리만치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 [송정맨션]은 그 과정에서 탄생하는 선명한 이미지들로 인해 마치 옴니버스 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착각을 준다. 뿐만 아니라 수록곡 간의 유기성과 그로 인해 탄생한 앨범 전반에 걸친 맥락의 완성도는 잘 짜인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완성도는 물론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무려 2년 전인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래서인지 결코 짧은 시간 내에 완성될 수 없는 탄탄한 마감을 자랑하는데, 여기에는 전 트랙을 프로듀싱한 미지의 아티스트 김라마의 디렉팅과 함께 이미 장르 씬에서 철두철미한 디테일로 손꼽히는 쿤디판다의 노련미가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참고로 쇼미더머니를 통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쿤디판다는 이미 장르 음악 팬이 아니더라도 들어봤을 법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만, ‘김라마’라는 이름의 아티스트는 생소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 또한 2016년에 데뷔하여 주기적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온 경력자이며, 가장 최근에 발표한 EP [외톨이갱을 기다리며]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번 [송정맨션]에서 김라마가 차지하는 지분에 관해 결코 토를 달 수 없으리라 장담한다.

 

 

여기서 ‘디테일’이라 한다면 먼저 사운드적인 절묘한 균형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특유의 탁성으로 뭉근하게 바탕을 깔아주는 김라마의 보컬과 날카로운 발성으로 어떠한 비트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 쿤디판다의 랩은 실과 바늘처럼 달라붙으며 부족함 없는 균형을 선사한다. 뿐만 아니라 1명의 보컬리스트와 1명의 래퍼가 함께 등장하는 곡에서 흔히들 예상하는, 벌스와 후렴을 번갈아서 차지하는 식상한 전개를 탈피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때로는 주거니 받거니, 때로는 한 사람이 주도권을 가지고 곡을 이끌어가거나 두 사람의 목소리를 중첩시켜 오묘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등, 단순히 랩과 보컬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을 넘어 두 사람의 목소리 자체를 여러 사운드 소스 중의 하나로 치환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있는 방식은 청자의 몰입감을 끊지 않으며 감정선을 유지하는 데에 일등 공신으로 작용한다.

 

귀로 들리는 물리적인 부분을 넘어 내용적인 부분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이들의 치밀한 설계는 감탄을 자아낸다. 앞서 언급했듯 ‘송정맨션’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마치 씬과 씬을 연결하듯 옴니버스식으로 연결된 각각의 수록곡은 때로는 가사적으로, 때로는 청각적으로, 때로는 내용적으로 은근한 연결고리를 내보이며 감상의 재미를 더한다. 연결된 트랙에서 특정 단어를 반복하거나(1번 트랙, 2번 트랙) 특정 멜로디 라인을 교묘히 변주하여 흐름을 이어가는 등(6번 트랙, 7번 트랙) 노골적으로 내용을 이어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청자로 하여금 곡 간의 연결성을 상상하게 만드는 이러한 장치들은 음악적 유기성이라는 측면에서 앨범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인지하게끔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특이하게도 이번 앨범은 10곡 전부가 타이틀곡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모두를 트랙 순서대로 듣고 있자면 전곡 타이틀곡 지정이라는 파격적인 결정을 수긍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를 통해 쿤디판다와 김라마가 궁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현실의 모습이다. 이들이 묘사하고 있는, 퇴폐적이거나 본능적이거나 혹은 병적으로 번져가는 사랑의 어두운 모습들, 혹은 돈이라는 절대적인 기준 앞에서 무력해지는 등의 삶의 그림자 같은 장면들은 결코 모른 척할 수 없는, 아니 어떻게 해서든 모른 척하고 싶은 우리 모두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송정맨션]은 현실 속 한순간 한순간을 너무나도 노골적이고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묘사하여 오히려 그것을 가상의 것인 양 낯설게 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외면하고 싶은 현실의 단편을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하게 되고 그것은 곧 그 대상들을 전혀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되는 생경한 경험으로 이어진다.

 

앞 단에서 이 작품을 두고 ‘현실과 가상의 언저리’에 있다고 표현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비현실적이거나 혹은 지극히 현실적인, 어쩌면 모순적일 수도 있는 양 끝 단의 성질을 모두 머금은 [송정맨션]은 그리하여 영화 같기도, 소설 같기도 한 오묘한 작품이다. 더불어 이러한 내용을 살아 숨 쉬게 하는 여러 서술적 장치들과 사운드적인 완성도는 말 그대로 ‘외강내강’에 가까운 마감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익살스러운 모습을 선보였던 밴드 ‘플랫샵’의 쿤디판다는 또 한 번 진중한 스토리텔러로서의 자아를 폭발시키며 스펙트럼 확장을 이어간다. 뿐만 아니라 이번 작품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작업자로서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 김라마는 자연스럽게 그의 차기작뿐만 아니라 과거 행적에 대한 궁금증까지도 덩달아 증폭시키고 있다. 쿤디판다와 김라마의 만남이 다시 한번 성사될지에 대한 여부는 물론 본인들에게 달려있겠지만, 일단 송정맨션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이 둘의 조합을 쌍수 들고 환영하는 바이다.

 


Editor / 월로비

PAR [PC음악]

누구도 할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재탄생시키는 일련의 과정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명언을 떠오르게 한다.

 


 

PAR
PC음악
2021.09.06

 

12곡을 꾹꾹 눌러 담아 완성된 이번 정규앨범 [PC음악]은 PAR의 데뷔작이다. 발매 이력 하나 없는 신인이 정규 앨범으로 데뷔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시선을 끌기 충분했지만 그 안의 모든 수록곡이 저마다의 색깔을 띠며 한데 뭉쳐있던 모습은 근래에 느껴본 적 없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충격은 곧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다 나타난 사람인가’ 하는 궁금증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PAR라는 뮤지션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PAR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통통 튀는 신디사이저 소스와 중저음의 음색이 대비되며 만들어내는 독특한 조화를 자랑한다. 물론 그 와중에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연주곡으로 완급조절을 하기도 하며 돌연 예상치 못한 가창력을 선보이며 앨범의 감정선을 쥐락펴락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어쿠스틱 악기와의 궁합으로 색다른 매력을 발산하기도, 지극히 팝적인 접근을 통해 타켓층의 무수한 취향을 12곡에 걸쳐 다방면으로 만족시킨다. 곡 하나하나를 찬찬히 뜯어보기 전부터라도 이미 청각적으로 다채로운 멋을 뽐내며 음악적 스펙트럼의 다양성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신인으로서 충분히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번 앨범을 단순히 듣기 좋은 음악으로 치부하기엔 아직 이야기해야 할 내용이 많이 남아있다. 지극히 사적인 개인의 이야기로 운을 떼고 있는 1번 트랙 ‘너 혹시’에서 시작하여 꾸준히 개인의 고뇌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PC음악]은 자칫 너무 사적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는 내용을 유머러스하게 포장하여 ‘일기장’과 ‘작품’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한다. 그 균형 위에 듣기 좋은 사운드를 첨가하여 결과적으로 이것을 ‘좋은 음악’으로 주조해내는 실력은 분명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리라.

 

더군다나 앨범의 후반부로 갈수록 ‘음악’과 ‘작업자’ 라는 조금 더 거대한 주제로 조금씩 시선을 옮겨 가고 있는 전체적인 서사 구조 또한 인상적이다. 결과적으로 앨범 전반에 걸쳐 소위 말하는 ‘컨셔스함’, 즉 동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로서의 의식 있는 태도를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이번 앨범의 메인 장르가 ‘포크’라고 표기되어 있는 이유와도 그 맥락을 함께한다.

 

한편, 앨범의 제목 ‘PC음악’의 ‘PC’는 개인용 컴퓨터를 뜻하는 ‘Personal Computer’의 약자이자 정치적 올바름을 뜻하는 ‘Political Correctness’의 약자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두 가지 의미를 전부 포함하고 있는 이번 앨범은 두 ‘PC’가 공유하고 있는 ‘가능성’이라는 키워드를 핵심으로 두고 있다. 실제로 이번 앨범은 PAR가 가진 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생산성의 혁명을 불러일으킨 PC의 무한한 가능성과,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수많은 것들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을 상징하는 PC의 교집합은 자연스럽게 PAR가 지향하는 음악과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PAR의 ‘가능성’은 비단 음악으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초상을 왜곡하여 음악적 맥락을 재구성하고 있는 아트워크 디자인은 전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으며 아스키 코드로 적힌 앨범 소개글은 마치 그만의 세계관을 구성하듯 음악을 중심으로 한 추가적인 의미의 확장을 유도한다. (코드를 해석한 결과는 감상의 재미를 위해 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 나갈 그의 ‘가능성’을 기대해보게 되는 대목이다.

 

물론 모든 아티스트의 작품이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의 이번 정규 1집은 그 자체로 PAR라는 아티스트를 요목조목 알아갈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나 다름없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재탄생시키는 일련의 과정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명언을 떠오르게 한다.

 

그래서 PAR는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다 나타난’ 사람일까? 신인이기에 알 수 없는 과거의 행적은 지금으로선 어찌할 수 없겠지만 한 가지 만큼은 확실하다. 이 뮤지션이 ‘앞으로 어디서 무엇을 하게 될 것인가’ 하는 기대감이 커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신선함 가득한 사운드로 꽉꽉 채워진 종잡을 수 없는 가능성은 과연 PAR의 다음 행보가 어떤 식으로 확장되어갈지에 대한 무궁무진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Editor / 월로비

Suwon Yim (임수원) [애벌레]

특정 시기에 만들어진 동요는 어떤 세대에게 기억으로 남아 어른이 되어도 감동을 주는 경우가 있고, 어떤 동요는 깊이 있는 가사로 어른의 마음도 울리고는 한다. 임수원의 작품 [애벌레]를 들으면 그러한 생각이 든다. 어른들을 위한 동요라는 것이 존재하는구나 싶어서 마음 한 켠에 울림이 있었고, 편안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Suwon Yim (임수원)
애벌레
2021.08.27

 

동화 중에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많지만 어른들을 위한 동화도 있다. 그걸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동화도 있다. 어떤 동화는 아이를 위해 쓰였지만 어른이 더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동요도 마찬가지다. 특정 시기에 만들어진 동요는 어떤 세대에게 기억으로 남아 어른이 되어도 감동을 주는 경우가 있고, 어떤 동요는 깊이 있는 가사로 어른의 마음도 울리고는 한다. 임수원의 작품 [애벌레]를 들으면 그러한 생각이 든다. 어른들을 위한 동요라는 것이 존재하는구나 싶어서 마음 한 켠에 울림이 있었고, 편안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임수원이라는 음악가를 지난 해 뒤늦게 GQ 어워즈 리스트에 올렸다. 동요라는 테마와 재즈를 동시에 가져가면서 훌륭한 재즈 앨범을 만들어낸, 그래서 새로운 재즈를 만드는 데 성공한 임수원의 데뷔 앨범은 코로나-19 시국에 발매된 데뷔작이라 반가운 동시에 활발한 라이브 활동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이번 앨범은 전작보다 좀 더 보컬에 비중을 두었고, 동시에 좀 더 동요에 무게를 옮겼다. 전작에서 보컬이 있었던 ‘Dottori’는 재즈 곡 위에 동요에 가까운 보컬을 두었다면, 이번에는 임수원의 보컬이 동요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낸다. 어린아이와 같은 음색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간결한 폭의 보컬 라인과 예쁘고 사랑스러운 가사는 동요로서도 훌륭한 가치가 있겠지만, 재즈라는 단단한 토대 위에 동요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애벌레’와 ’숲속에는’은 당장이라도 힙한 엄마, 아빠들이 아이에게 들려주며 같이 즐길 것 같은 곡이다. 조금은 차분한 ‘Hope’나 ‘인생이 그래’는 후에 나오는 ‘토닥이’와는 또 다른데, 아무래도 위로해주는 느낌을 주다 보니 어른들이 더 좋아할 것 같다. 마지막 두 곡 중 ‘토닥이’가 정말 아이들에게 힐링을 주는 곡이라면, ‘Leaving Nest’는 Edmund Lee의 음색도 그렇고 편안한 재즈 곡에 좀 더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하면서도 동요 음악을 만드는 것을 놓지 않는 임수원의 음악을 들으며, 그의 다른 활동을 함께 보며 동요를 만든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느낀다. 아마 동요를 만들 때 필요한, 혹은 꼭 있어야 하는 그런 감성이 존재하기에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최근 루나(LUNA), 솔(SOLE)과 협업한 것은 물론 풀리 볼드(Fully Bold)로 마제스틱 채널을 통해 제이문과 선보인 곡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하면서도 임수원은 자신의 것을 단단하게 가져간다. 앞으로 나올 동요 앨범도, 재즈 앨범도, 그리고 작곡가, 연주자로서의 멋진 협업도 계속 기대하게 되는 건 자신의 것을 선보였을 때 더욱 가치가 느껴지는 아름다움 덕분이 아닐까 싶다.

 


Editor / 블럭

실리카겔 [Desert Eagle]

누구도 가지 않은 미지의 사막을 횡단하듯 ‘얼터너티브’의 대명사로서 묵묵히 전진해온 실리카겔의 여정은 마치 홀로 걷는 사막이 너무나도 외로워 자기 발자국을 보기 위해 뒷걸음질로 걸었다는 오르텅스 블루의 시 ‘사막’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이들이 실제로 외로움에 몸서리쳤을 리 만무하지만, 이제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으니 걱정 없다.

 


 

실리카겔
Desert Eagle
2021.08.15

 

실리카겔의 ‘새로운 데뷔’ 선언 이후 1년이 흘렀다. 사실상 새로운 데뷔곡이나 마찬가지였던 <kyo 181>을 시작으로 아홉 달에 걸쳐 총 3장의 싱글을 발표한 실리카겔의 행보는 아직 보여줄 것이 차고 넘친다는 듯 매번 새로운 충격을 동반했다. ‘실리카겔식 메탈’로 대변되는 <Hibernation>과 24분에 달하는 <S G T A P E – 01>로 이어지고 있는 이들의 새로운 음악적 시도는 본인들조차도 실리카겔의 음악을 특정 장르로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물론 그럴 생각도 없을 테지만) 다양한 표정을 지어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무한한 가능성이야말로 실리카겔이 실리카겔일 수 있는 가장 명확한 속성일 것이다.

 

물론 충격이라는 키워드는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실리카겔의 음악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만큼 여전히 충격적이니까. 그러나 이번 <Desert Eagle>가 선사하는 ‘충격’의 맥락은 지금까지 주를 이루었던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과 달리, 오히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맞닥뜨린 익숙함, 그리고 그 익숙함이 서서히 낯설어지는 새삼스러운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

 

복귀 이후로 팝 음악의 포맷을 조금씩 차용해오던 실리카겔은 <Desert Eagle>를 통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형식 간의 융화를 시도한다. 얼마 전 진행된 모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작품 또한 곡의 초중반 부는 팝 음악의 그것처럼 보컬 중심으로 편곡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곡의 구성 또한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진행 순서를 따르고 있다. 인트로, 벌스1, 후렴, 벌스2, 후렴, 브릿지, 하이라이트, 아웃트로로 이어지는 진행은 대부분의 기성 음악이라면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전형적인 포맷이다. 집요하다고 느껴질 만큼 반복적인 구성이 돋보였던 <kyo 181>을 떠올려본다면 오히려 실리카겔의 음악에서 마주한 이 ‘전형적인’ 구성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신선함은 단순히 ‘기성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라는 표현에서 끝나지 않는다. 전형적이라는 것은 다시 말해 다수가 선택할 만큼 효율적이라는 뜻이며, 실리카겔은 그 효과를 극한까지 뽑아내며 이번 작품의 서사적인 분위기를 밀도 있게 쌓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지막한 저음으로 시작해 서서히 상승하는 멜로디와 함께 후반부를 향해 치닫는 격정적인 연주는 자연스럽게 음악적 기승전결을 확보할 수 있는 진행 방식으로 인해 설득력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형식 안에서도 노골적으로 구분된 각각의 파트와 그 사이 사이를 메우는 잠깐의 정적들은 마치 막과 막 사이의 인터미션을 연상시키며 장대한 뮤지컬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청자와 밀당이라도 하듯 신들린 완급조절로 곡의 긴장감을 쥐었다 폈다 하는 이번 작품은, 결국 실리카겔에게 있어 다수에게 선택받은 ‘기성의 포맷’ 조차 원하는 대로 취사선택하여 본인들만의 색깔로 덧칠해버릴 수 있는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소위 ‘실리카겔 음악의 특징’이라 불리곤 하는 몇 가지 요소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들 색깔의 농도를 더욱 진하게 만든다. ‘사막’, ‘섬광’, ‘죽은 분들의 세계’ 등, 언뜻언뜻 귀를 스치는 몇 가지의 묵직한 단어들이 마치 별자리처럼 연결되어 곡 전체의 서사를 뒷받침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비록 이들이 가사 하나하나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는 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도리어 가사가 가진 힘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 집요하리만치 반복적인 사운드가 가진 멋을 선보인 바 있는 실리카겔은 이번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통해 다시 한번 그 효과를 입증해 보이고 있다. 장장 32마디에 걸쳐 반복되는 구절로 꽉 차있는 곡의 후반부에서는 차근차근 쌓아 올린 감정선이 폭발하며 절정에 이르는데 “지금까지의 실리카겔 곡 중 가장 화려한 연주가 녹음되어 있다”고 전해온 멤버 김한주의 말처럼 비할 바 없는 웅장한 사운드로 자기도 모르게 이어폰의 볼륨을 올리게 된다. 이후 모든 소리가 잦아들며 마무리되는 곡의 아웃트로는 5분간의 러닝타임을 감히 ‘여정’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진하고 또 진한 여운을 남긴다.

 

매번 새로운 시도로 음악적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는 실리카겔은 그렇게 누구에게나 새로울 수밖에 것들을 넘어 누군가에겐 새롭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들마저 모조리 흡수하는 중이다. 앞선 세 작품을 통해 잇따라 보여준 신선한 시도에 이어 선보이는 <Desert Eagle>는 검증된 형식 위에서 그 모든 시도를 자양분 삼아 완성되었으니, 그리하여 팝 음악의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결코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유아독존의 세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누구도 가지 않은 미지의 사막을 횡단하듯 ‘얼터너티브’의 대명사로서 묵묵히 전진해온 실리카겔의 여정은 마치 홀로 걷는 사막이 너무나도 외로워 자기 발자국을 보기 위해 뒷걸음질로 걸었다는 오르텅스 블루의 시 ‘사막’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이들이 실제로 외로움에 몸서리쳤을 리 만무하지만, 이제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으니 걱정 없다. 공식적으로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식구들과 한솥밥을 먹기 시작한 후 발표하는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한 이번 싱글은 그렇게 여러모로 이들의 다음 행보를 가늠케 할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또 한 번 그 영역을 넓혀갈 실리카겔의 음악을 기대하며, 앞으로 무수한 발자국이 더해질 광활한 사막에 덩달아 몸을 맡겨본다.

 


Editor / 월로비

신박서클 (SB Circle) [유사과학]

때로는 미신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밀실에서 선풍기를 틀지 않으면 전기세를 줄일 수 있고, 혈액형이나 별자리를 통해 가벼운 대화 주제를 만들 수도 있다. 실질적으로 도움보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그릇된 행동을 낳을 수도 있지만, 그 믿음이 안심을 줄 때가 있기도 하다.

 


 

신박서클 (SB Circle)
유사과학
2021.08.23

 

유사과학은 말 그대로 과학이 아닌, 과학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근거가 잘못되었거나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앨범 내에 곡명으로 담겨 있지만 밀실 내에서 선풍기를 틀면 사망한다는 주장이나 지구가 평면이라는 주장, 게르마늄 팔찌나 음이온이 건강에 좋다는 주장 등이 해당된다. 혈액형이나 별자리로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유사과학은 이름만 과학이지 학술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점에서 미신과 다를 바가 없기도 하다. 이러한 유사과학은 정보화 사회인 2021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데, 멤버들은 이러한 현상에서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앨범 제목과 곡의 제목이 만들어졌다.

 

 

신박서클은 신현필, 박경소, 서영도, 크리스티안 모란이 모여 결성한 그룹이다. 네 사람 모두 단순히 뛰어난 연주자라고 하기에는 그 이상의 역할을 각자의 영역 내에서 해왔다. 가장 전통적인 영역부터 가장 상상력을 동원하는 영역까지 함께 해오며 더욱 그 역량을 입증하는 중이다. 여기에 일렉트릭 앙상블로 이미 평단의 호평을 얻어 온 서영도, 연주로 인정받은 신현필과 크리스티안 모란까지 쟁쟁한 슈퍼 그룹이다. 각 멤버 이름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기도 하지만, 신박한 서클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해볼 수 있다. 1집이 위치와 형체에 관한 수학을 의미하는 [Topology](위상수학)이었다면, 이번에는 오히려 반대로 정교함과 긴밀한 연결을 떠나 좀 더 자유분방하고 어딘가 수상한 모습까지 지니고 있다. 직관적으로 붙였다는 곡의 제목과 곡의 모습이 사실 논리적인 연결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물론 상상하기 나름인지라 “피톤치드”를 들으며 숲에 와있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고(그러기엔 제법 신나지 않나 싶지만), 곡의 제목과 곡의 모습 사이의 관계를 마음대로 펼쳐 나가볼 수도 있다. 하지만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완벽하게 분리되지 않은 역할 가운데 유연하면서도 유기적인 연주는 충분한 흥미를 불러온다. 여기에 특정 장르나 문법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지나치게 힘을 주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세련된 표현이 가능해졌고, 각자의 장점에 충실하면서도 전면으로 나왔다가 그 자리를 내어주는 과정이 자연스럽다. 아마 국악, 재즈 이러한 장르를 떼고도 충분히 재미있고 좋은 앨범이기에 리드미컬한 연주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좋아할 것이다. 박경소 덕에 묘하게 녹아 있는 한국적인 표현, 재즈를 기반으로 하지만 무작정 고집하지 않는 전개까지 매력적인 요소가 많다.

 

때로는 미신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밀실에서 선풍기를 틀지 않으면 전기세를 줄일 수 있고, 혈액형이나 별자리를 통해 가벼운 대화 주제를 만들 수도 있다. 실질적으로 도움보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그릇된 행동을 낳을 수도 있지만, 그 믿음이 안심을 줄 때가 있기도 하다. 진지하게 믿으면 문제가 되겠지만 화장실 변기 커버를 닫아야 돈이 새지 않는다는 미신이 위생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것처럼 때로는 삶에 긍정적인 역할도 하니, 앨범도 호기심과 마음의 위안으로 접근해보자.

 


Editor / 블럭

김일두 [새 계 절]

세상 풍파를 다 겪은 듯 짙은 우수로 가득한 사내의 진심 한 켠에 담긴 해맑도록 낙천적인 로맨티시즘, 이토록 선명한 대비가 자아내는 진득한 정서적인 울림, 이런 것들이야말로 음악가 김일두만의 확고한 매력이자, 개성인 것이다.

 


 

김일두
새 계 절
2021.01.16

 

최근에 개인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경험을 공유하며 글을 시작한다.

꼭 한 달 전 즈음, 오늘처럼 글을 쓰느라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혼자 남아있던 밤의 일이다. 시간이 갈 수록 집중력이 떨어져 어느 순간 글이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않는 상황이 되었고, 잠시 한숨 돌리자 싶어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 인스타그램을 켰다. 때마침 눈에 띈 김오키님(이하 김오키)의 라이브 알림. 라이브의 공간은 어느 작은 방이고 그 곳엔 김오키와 다른 한 사내가 함께 있다. 담배를 맛깔나게 태우던 그 사내가 이윽고 기타를 들고 노래를 시작하는데 그 노래가 덤덤하면서도 동시에 참으로 절절하다. 영상을 찍던 김오키가 어느새 훌쩍거리고 있고, 화면 너머로 노래를 듣던 나도 덩달아 눈시울이 잔뜩 붉어져선 텅빈 사무실에서 혼자 훌쩍거리고 있다. 그토록 묵직하게 가슴을 두드리는 노래를 부르던 사내의 이름은 ‘김일두’, 그리고 노래는 그의 대표곡인 ‘문제없어요’였다.

 

[김일두 / 문제없어요] (Live @ 온스테이지)

 

김일두. 한국의 인디음악, 특히 포크 계열 음악을 좋아하는 리스너들에겐 익숙할 이름이다. 펑크 밴드 ‘지니어스’ 등 여러 록밴드들을 거쳐오며 뼛속까지 로커임을 보여준 한편, 2011년 첫 솔로 EP [문제없어요]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이어온 솔로 작품들에선 주로 포크, 혹은 포크에 방점을 둔 채 여기에 장르적, 사운드적인 시도나 변화를 가미한 음악들을 해왔다. 김일두는, 그리고 김일두의 음악은 마치 80년대 한국 청춘영화의 남자 주인공들과 똑 닮았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대체로 무뚝뚝하고, 투박하고, 종종 거칠게도 느껴지지만 사실 그 속내는 더없이 낭만적이고, 맑고, 여리고, 또 수줍다. 예컨대 ‘터프가이의 모습을 한 순수한 로맨티스트’의 캐릭터이고 바로 이 지점에 그만의 독보적인 매력 포인트가 자리잡고 있다. 세상 풍파를 다 겪은 듯 짙은 우수로 가득한 사내의 진심 한 켠에 담긴 해맑도록 낙천적인 로맨티시즘, 이토록 선명한 대비가 자아내는 진득한 정서적인 울림, 이런 것들이야말로 음악가 김일두만의 확고한 매력이자, 개성인 것이다.

 

 

한편으로 김일두는 참 성실하고 꾸준한 음악가다. 데뷔 이래 눈에 띄게 큰 공백 없이 꾸준하게 발표를 이어오고 있으며 이는 최근에도 마찬가지,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무려 세 장의 솔로 정규앨범을 발표했으며 그 사이엔 동료 음악가 김창희, ENGELR HASHIM과 함께한 전자음악 앨범 [I AM NOT I]도 선보였다. 이 중 21년 초에 발표된 정규작 [새 계 절]을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 앨범이 김일두 특유의 정서를 여전히 유지하면서도 음악적으로는 이를 보다 친절하게(?) 풀어낸 작품으로 여겨지기에, 그래서 행여 이 글을 통해 처음으로 김일두의 음악을 접하게 되는 이들도 보다 자연스럽게 김일두 음악의 매력을 맛볼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최근 김일두의 작품들이 드럼 프로그래밍과 신스 사운드를 활용해 신스팝적인 접근을 선보이거나(꿈 속 꿈), 특유의 투박한 질감을 더욱 극단적인 로파이 사운드로 표현하는 등(When Do You Come?) 여러 시도들을 선보이고 있는 가운데 [새 계 절]은 그의 음악에서 언제나 중요한 요소인 ‘낭만적인 정서’를 보다 대중가요적인 터치, 특히 80-90년대의 옛 가요적인 정취로 풀어내고자 하는 작품으로 읽힌다. 다양한 악기들을 대동한 편곡으로 전작들에 비해 한층 소리가 풍성해졌지만 그 속엔 명백하게 의도된 ‘촌스러움’이 가득한데 특히 앨범 곳곳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아날로그 신스는 이러한 편곡적 의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해내는 필살기다. 몇 곡의 신곡들, 한 곡의 커버, 그 외엔 과거에 발표되었던 자신의 곡들을 다시 레코딩해 담은 총 열두 트랙은 순서대로 1월부터 12월까지 일년 열두 달을 상징하며 시간의 흐름, 계절의 흐름을 표현하고 있다.

 

단출한 통기타 발라드였던 원곡을 가슴 시리게 청초한 피아노 발라드로 재해석한 ‘일곱박자’, 아날로그 신스, 기타, 드럼이 조화로운 밴드 사운드의 편곡을 선보이는 감성적인 발라드 ‘투명한 너’, 아날로그 신스를 보다 적극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며 임백천의 히트곡을 커버한 ‘마음에 쓰는 편지’ 등 유재하로 대표되는 한국 발라드의 순수한 서정미를 재현하는 곡들도 모두 좋지만 역시 이 앨범의 백미는 타이틀곡인 ‘가깝고도 머언’일 것이다. 리드미컬한 일렉 베이스와 드럼 프로그래밍이 중심이 되어 조성된 경쾌한 그루브에 아날로그 신스, 미니무그, 브라스 사운드 등이 함께하며 흥겨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행복하고도 기분 좋은 곡이다. 개인적으로 유재하의 ‘지난 날’이 지닌 희망적 정서, 김현철 풍 AOR(Adult Oriented Rock)의 도회적 사운드를 두루 닮은 곡이라 여겨진다.

 

[김일두 / 가깝고도 머언] (Official Audio)

 

김일두 하면 흔히 떠올리게 되는 다소 거칠고 투박한 분위기, 사운드와는 사뭇 다른 결의, (여전히 매끈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전작들에 비해 훨씬 멜로디가 선명하고 오밀조밀하고 예쁜 사운드들로 채워진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런 변화가 조금도 생경하지 않은 것은 김일두 고유의 유일무이한 캐릭터가 단단히 중심을 잡아주는 덕일 테다. 그만의 – 짙은 경상도 억양과 금속성 질감의 목소리로 – 진심을 꽉꽉 담아 부르는 노래가 여전하기 때문에, 그 속에 담겨있는 소년처럼 순수하고 해맑은 낭만이 여전히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가요 앨범이 김일두 팬들에겐 그의 새로운 매력을 만나는 기회가 되기를, 또 지금껏 그를 몰랐던 이들에겐 이 멋진 싱어송라이터의 음악 세계를 처음으로 접해볼 수 있는 좋은 마중물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김일두 / 사랑의 환영] (Official M/V)

Editor / 김설탕

Moldy [Godspeed Love]

몰디의 [Godspeed Love]는 고차원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클럽에서 틀 수 있는, 들으며 놀 수 있는 앨범이다. 한 트랙도 겹치지 않는 프로덕션과 그걸 시종일관 힘있게 끌고 가는 몰디의 퍼포먼스는 싱랩과 보컬, 랩 사이에서 애써 구분을 두려 하지 않으며 매력적인 곡을 만들어낸다.

 


 

Moldy
Godspeed Love
2021.07.28

 

아직도 몰디를 레프트필드와 같은 단어로 설명하거나 ‘다른 영역’의 래퍼로 구분을 두는 것은 솔직히 게으른 처사라고 생각한다. 가장 재미있고 가장 최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음악가가, 심지어 자신의 이름으로 이제는 제법 많은 작품이 쌓여 있고 이미 많은 것이 증명된 상태임에도 그렇게 분류되는 것은 아쉬움이 크다. 물론 몰디 특유의 속도감 있으면서도 탄탄한 랩을 만나지 못해 아쉬울 수는 있겠지만, 몰디는 이번 앨범을 통해 이제 정규 단위의 작품에서 뚜렷한 캐릭터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음을 몸소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몰디라는 음악가의 세계를 정식으로 한 차례 공개했다고 생각한다.

 

 

몰디의 [Godspeed Love]는 고차원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클럽에서 틀 수 있는, 들으며 놀 수 있는 앨범이다. 한 트랙도 겹치지 않는 프로덕션과 그걸 시종일관 힘있게 끌고 가는 몰디의 퍼포먼스는 싱랩과 보컬, 랩 사이에서 애써 구분을 두려 하지 않으며 매력적인 곡을 만들어낸다. 그런 점에서 이 앨범의 가장 큰 장점은 몰디의 장점과도 일치한다. 바로 청각적 쾌감이다. 때로는 은유와 추상적 단어의 배열을, 때로는 회화적이라고 하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영상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만드는 가사를 선보이며 몰디는 완급조절은 하되 단 한 번도 쉬어 가지 않는다. 첫 곡 ‘Godspeed’에서 등장한 여유는 자신을 자연재해로 비유한 ‘폼페이’에서 몰디가 가진 랩 특유의 타격감으로 전환된다. 이어지는 ‘Pow Pow Pow’에서 ‘번지점프’까지는 강렬함을 유지하지만, ‘여행’과 ‘놓여’, ‘영’과 같은 곡에서는 좀 더 세련된 표현으로 몰디가 지닌 감성을 좀 더 섬세하게 표현한다. 그러한 부분이 잘 섞여 있는 것이 선공개된 ‘청춘’이나 ‘LOVE’가 아닐까 싶다. 인터넷 속 몰디부터 현실 세계의 몰디까지가 절묘하게 담겨 있는 정규 앨범은 여러 프로듀서가 참여했음에도 단단하게 결을 유지하고 있으며 저마다 훌륭한 변주와 매력적인 프로덕션을 선보였지만 몰디의 존재감은 트랙에 묻히기는커녕 큰 시너지를 내며 에너지를 생성해낸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당연히 이 앨범을 추천하고 싶어서다. 다만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이 몰디를 두고 ‘실험적인’, 혹은 ‘어려운’ 것으로만 바라보고 들으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며, 시장 내에서 언급되는 이들이 실험적인 걸 하면 멋지다고 하며 듣고는 하지만 여전히 몰디의 음악적 성과는 ‘멋지지만 잘 모르겠는’ 것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안타깝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언오피셜보이의 앨범뿐만 아니라 펀치넬로의 [Demon Youth], 레디와 스월비의 [HEARTCORE] 같은 작품이 좋은 실험을 잘 담아냈다면 몰디는 그것보다 조금 더 먼저, 좀 더 풍성하게 앞서행동했을 뿐이다. 이번 기회에 사람들이 몰디의 디스코그라피를 쭉 몰아 들으며, 몰디가 이만큼이나 멋지게 해왔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ditor / 블럭

KailorKyle [A HOT MINUTE]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그의 아티스트 소개 글이다. “캐나다 토론토 드레이크 맨션의 화장실”에서 생활 중이라며 호기롭게 적혀 있는 이 짧은 글에는 반신반의한 내용들이 함께 실려있는데, 놀라운 점은 이것을 그저 ‘컨셉’ 혹인 ‘기믹’이라고 치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의 탄탄한 음악성이라는 사실이다.

 


 

KailorKyle
A HOT MINUTE
2021.08.03

 

캡사이신 소스로 범벅되어 매운맛의 극단을 달리는 음식을 떠올려보자. 이중 몇몇은 원래의 맛이 어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자극적인 인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울 것이다. 그에 비해 소위 ‘맛있게 매운맛’을 적절히 버무린, 이를테면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은 된장찌개 등의 음식은 맛의 끝자락을 경쾌하게 강조해주는 강렬함으로 되려 풍미를 살리곤 한다.

 

뜬금없이 음식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상당히 비슷한 맥락을 음악 시장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기믹’이라 불리우는, 뮤지션 본인이 독특한 캐릭터성을 잡아가는 이 일련의 현상은 마치 강렬한 매운맛처럼 뇌리에 각인되기는 쉽지만, 그 정도가 지나칠 경우 배보다 배꼽이 커져 음악 자체가 뒷전이 되어버릴 수 있는 리스크를 동반한다. 물론 음악에는 왕도가 없기에 맞고 틀리고의 기준으로 이것을 판가름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떠한 자극을 넘기 위해 더 큰 자극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아티스트의 지속가능성과 생명력이 줄어든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소개할 래퍼 KailorKyle의 음악은 ‘맛있게 매운’ 청양고추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2020년 갑자기 등장한 이 신인 래퍼는 먼저 해외 시장을 기반으로 6장의 싱글을 잇따라 발표하며 활동을 이어갔는데, 2020년 11월 발표한 EP [EXPERIMENT #1]를 기점으로 한국 진출(?)을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그의 아티스트 소개 글이다. “캐나다 토론토 드레이크 맨션의 화장실”에서 생활 중이라며 호기롭게 적혀 있는 이 짧은 글에는 반신반의한 내용들이 함께 실려있는데, 놀라운 점은 이것을 그저 ‘컨셉’ 혹은 ‘기믹’이라고 치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의 탄탄한 음악성이라는 사실이다.

 

이번 EP [A HOT MINUTE]도 마찬가지다. 트랜디한 신스 톤 위로 멜로디컬하게 포문을 여는 1번 트랙(‘yuh yuh’)을 넘어 거친 베이스라인보다 더 거친 발성으로 기선을 제압하는 2번 트랙(‘Margiela’)과 이후 순식간에 bpm을 올린 일렉트로닉 사운드(‘bitch I just wanna dance’)로 텐션을 올리는가 하면 귀신 같은 완급 조절로 느긋한 그루브(‘Sober Thoughts’)를 뽐내기도 한다. 앨범의 후반부에선 다시 장르 음악의 멋을 강조(‘Dunno’)하며 칠한 바이브로 깔끔한 마무리(‘flower’)를 선사한다. 도대체가 비슷한 부분을 찾을 수가 없는 트랙 분배는 “181도 다른 문화들 속에서 살아”왔다는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팔색조 같은 매력을 듬뿍 담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 모든 트랙을 정주행해도 단 6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보편적인 곡 구성의 ⅓ 정도 분량에 해당하는 각 트랙의 러닝타임에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는 패기가 느껴지는 듯 하다. 그렇게 그의 독특한 자기소개는 쉽게 보기 힘든 여러 가지 요소들을 통해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것 같다’라는 리스너의 근거 없는 확신과 함께 생명력을 얻어 뮤지션 자체의 찰떡같은 캐릭터로 뿌리를 내린다.

 

이번 앨범 메인 프로듀서로 참여한 ‘Rook’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전작을 시작으로 이번에도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그는 카멜레온 같은 KailorKyle의 랩에 착 달라붙는 비트를 통해 사실상 KailorKyle이라는 뮤지션의 또 다른 자아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컨셉과 그 결을 함께 하는 탄탄한 음악성으로 완성된 뮤지션의 자아는 생명력을 잃기는커녕 다음 단계로의 진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한국에 본인의 음악을 소개하기 시작한 지 이제 막 반년을 넘은 지금, 또 다른 자극을 양껏 흡수하고 있는 그의 음악은 맵고 또 매워도 저절로 손이 가는 그런 맛이다.

 


Editor / 월로비

방민혁 [NOV3L]

스스로 대부분의 작업을 해내는 그이기에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구름의 참여가 그의 음악을 어떠한 방향으로 다듬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구름과 함께 한 곡과 그렇지 않은 곡의 차이를 보는 것도 또 다른 감상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방민혁
NOV3L
2021.07.24

 

방민혁은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작사, 작곡은 물론 보컬도 뛰어나다. 2014년에 첫 작품을 내고 지금까지 꾸준히 자신의 음악을 선보여왔다. 여기에 다른 음악가의 앨범 아트워크를 제작하기도 했으며, 캘리그라피 작업은 물론 미술로 작지만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여기에 디제이처럼 셋을 선보이기도 하며, 라이브로 기존 재즈 스탠다드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거의 2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고 그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이다. 3이라는 숫자를 더해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있다는 소설을 의미하는 [NOV3L]은 방민혁과 구름 외에는 다른 누구도 참여하지 않았다(5번 곡에 기타로 죠니가 참여한 것 빼고).

 

스스로 대부분의 작업을 해내는 그이기에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구름의 참여가 그의 음악을 어떠한 방향으로 다듬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구름과 함께 한 곡과 그렇지 않은 곡의 차이를 보는 것도 또 다른 감상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대표적인 예로 들고 싶은 곡은 “I feel you”가 있는데, IDM 느낌의 글리치 사운드와 매력적인 신스 톤의 절묘한 조화, 여기에 등장하는 변조된 보컬과 심플한 진행까지 방민혁의 음악 세계 중 일부를 만날 수 있는 구간이다. 반대로 “사진첩”이나 “나만의 이야기”는 심플하면서도 재즈의 요소를 강하게 느낄 수 있는,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으면서도 음악적 깊이가 느껴지는 곡이다.

 

하지만 첫 곡 “OAOA”를 듣는 순간부터 방민혁의 다양한 매력 가운데서도 장점에 포인트를 잘 두는 듯한 편곡과 방향에 감탄하게 된다. 특히 알앤비/소울 음악의 매력을 잘 아는 이들에게는 더욱 반가운 곡이 아닐까 싶다. 이어지는 “Pushover”나 “쉽게 설명되지 않는”, “새벽, 봄” 같은 곡은 발라드부터 재즈까지 다양한 결의 음악을 능숙하게 소화하는 그이기에 가능한 앨범이다. 방민혁에 입문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세 곡이기도 하다. 여기에 “친구로 지내자”는 방민혁의 매력이 강하게 다가오며, 음색에서 오는 텐션이나 매력적인 편곡의 변주는 “OAOA”를 좋아하는 장르 음악 팬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보사노바를 매력적으로 녹여낸 “Cuando”, 90년대 알앤비 음악을 닮은 댄서블한 리듬의 “Butterfly”까지 앨범은 단단하게 하나의 결을 유지하면서도 멋진 구성을 담고 있다.

 

짧은 글로는 미처 다 풀지 못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방민혁의 정규 앨범을 기다리기도 했고 좋은 작품을 어떻게든 소개하고 싶었으나 글이 다소 부족했을 수도 있다. 이 글은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글인데 이 글이 왜 아쉬운지, 어떤 점에서 아쉬운지는 직접 앨범을 들으며 확인해보자. 그리고 많은 사람이 이 글의 아쉬움을 채우는 좋은 글을 더 많이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Editor / 블럭

Corduroy (코듀로이) [Tails On The Hill]

기타의 리드가 독보적이며, 이 앨범을 다시 듣고 싶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 Corduroy(코듀로이) 그녀가 직접 연주한 기타의 매력 때문일 것이다. 처음 듣는 이에게는 이 낯섦을 음미할 수 있는 충분한 여백을, 다시 듣는 이에게는 기분좋은 사색을 끄집어내게 하는 묵직한 기타를, 나는 매우 오랜만에 만났다.

 


 

Corduroy (코듀로이)
Tails On The Hill
2021.05.30

 

좋은 음악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매일 생각한다. 시대에 응답하는 음악,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 수려한 연주자들과 테크니션들이 정성스레 빚어낸 사운드가 느껴지는 음악, 창작자가 창작을 지속할 수 있도록 탄탄한 물질적 양분이 되어주는 음악, 등등. ‘좋음’의 사유는 세상에 나와있는 앨범 수만큼이나 다양하나, [Tails On The Hill]의 좋음은 이 앨범이 개개인에게 선사하는 ‘숙연함, 벅참, 그리고 용기’라는 다소 소박한 지점에서 소개하고 싶다.

 

기타와 목소리 단 둘로 구성된 다른 앨범들을 떠올려보자. 열에 아홉은 기타가 목소리를 받쳐주는 형태일 테지만 [Tails On The Hill]은 정반대이다. 기타의 리드가 독보적이며, 이 앨범을 다시 듣고 싶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 Corduroy(코듀로이) 그녀가 직접 연주한 기타의 매력 때문일 것이다. 처음 듣는 이에게는 이 낯섦을 음미할 수 있는 충분한 여백을, 다시 듣는 이에게는 기분좋은 사색을 끄집어내게 하는 묵직한 기타를, 나는 매우 오랜만에 만났다.

 

마지막 ‘Bonus Track’을 제외한 6개 트랙 중 무려 절반동안 기타가 홀로 모든 서사를 이끌며, 그렇게 전해져오는 울림은 그 어느 화려한 악기 구성, 혹은 가창보다 진하고 깊다. Corduroy(코듀로이)의 가창이 등장하는 나머지 3개 트랙에서조차 목소리의 음량은 겸손하다. 그렇게 6개 트랙은 나도 모르게 숨을 매우 죽여, 귀를 매우 기울여 듣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무려 14분에 달하는 마지막 트랙 ‘Prayer13,16,15,21 (Bonus Track)’에는 피아노 페달 밟는 소리, 손가락들이 지나가는 건반들 오르내리는 소리, 다음 가사를 위해 들이마시는 숨소리까지 투명하게 담겼다. 누군가가 보내온 애정어린 음성메모 마냥, 무방비하게 그녀의 가깝고 친근한 소리를 듣게 된 것이 당혹스럽기보다는 매우 반갑다.

 

마지막 50초 남짓을 차지하는 기도문으로 끝나는 이 앨범은 어쩌면, 가장 낮은 자세의 가장 작은 목소리가 주는 힘 덕분에 다시 듣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다른 의미로 압도를 느끼며 이 앨범이 ‘좋음’을 강력하게 말할 수 있다.

 

Corduroy (코듀로이)는 2018년 가을에 데뷔하여 지금까지 총 3개의 EP를 발매했다.

 


Editor / 김은마로

마찰 [마찰시험]

놀랍고도 재미있는, 이태훈이라는 음악가의 에너지와 그에 충분히 동행할 수 있는 민상용이라는 음악가의 합이 놀라우며 이태훈이 기타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동안 민상용은 그것을 훌륭하게 때로는 뒷받침하고, 때로는 그 장단에 맞춰 놀고, 때로는 잘 정리한다.

 


 

마찰
마찰시험
2021.07.23

 

워낙 훌륭한 소개글이 있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어떤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을 하며 이 앨범을 들었는데, 앨범은 예측하는 것과 거리가 멀 것 같다는 예측만을 맞췄을 뿐 그 외에는 온통 흥미로움의 연속이었다. 앨범 소개글 중에서 굳이 내가 생각했을 때 가장 적합한 단어를 찾는다면 스토너 록이 아닐까 싶다. 물론 얼터너티브 메탈에 가깝다는 이야기도 동의한다. 실제로 이 앨범에서 특정 장르 문법을 찾으려고 애를 쓰면 별로 건질 만한 단서는 없을 것이다. 놀랍고도 재미있는, 이태훈이라는 음악가의 에너지와 그에 충분히 동행할 수 있는 민상용이라는 음악가의 합이 놀라우며 이태훈이 기타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동안 민상용은 그것을 훌륭하게 때로는 뒷받침하고, 때로는 그 장단에 맞춰 놀고, 때로는 잘 정리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비단 연주자로서의 역량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민상용이라는 엔지니어가 얼마나 뛰어난 기술을 지니고 있는지 특히 밸런스와 기타 녹음의 측면에서 감탄할 수 있다. 일전에도 몇 차례 소리에 감탄하여 엔지니어를 찾아봤을 때 민상용이라는 이름을, 혹은 스튜디오 로그라는 이름을 발견했는데 이번 앨범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가장 익숙한 사람과의 호흡이기 때문에 더욱 긴밀하고 밀도 높은 결과를 만든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듣는 이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이 앨범이 실험이 아닌 시험인 이유에 관하여 사실 궁금함이 큰데, 그러한 질문을 가지고 앨범을 몇 차례나 반복해서 들었다. 결국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변화무쌍한 호흡과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이희문의 소리만큼은 들으면 들을수록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희문이 모든 곡에 피쳐링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함께 호흡을 맞춘 팀원이 아니라 피쳐링인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비단 곡에 파편적으로 배치되어 그런 것이 아니라, 곡을 이끄는 주역이 아닌 객원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좀 더 마찰의 색에 이희문을 끌어온 것에 가깝다고 느껴서다. 잼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며 한국의 소리를 더한 것이지만 여기에는 즉흥과 연주의 태도가 느껴지지만 그 안에 담긴 한국의 소리에 관한 설득력은 이희문이 끌어올렸다. 국악 크로스오버라는 세간의 범주에 넣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잘 살펴 들어보면 어떤 부분은(혹은 어떤 정신-spirit-은) 온전히 마찰이라는 2인조 밴드의 것이자 한국의 것이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희문이라는 인물을 끌어들인 것은 톤의 측면에서도,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여러모로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마찰의 음악은 한여름에 더울 때 들으면 더 좋다. 이유는 직접 들어보면 알 수 있다.

 


Editor / 블럭

김오키 [편견에 대하여]

시종 음울한 톤을 유지하는 김오키의 색소폰은 혼돈, 분노, 조소, 체념 등 갖가지 마이너스적 감정들 사이를 온탕과 냉탕을 오가듯 넘나들고, 이런 연주에 호응하듯 수시로 불온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더블베이스의 나지막한 울림, 종종 불규칙하고 또 강박적으로 느껴져 왠지 모르게 초조함을 불러 일으키는 드럼의 타건이 여기에 어우러지면서 각각의 곡들이 지닌 부정적인 뉘앙스는 보다 또렷해진다.

 


 

김오키
편견에 대하여
2021.06.18

 

‘음악의 속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소리를 재료로, 매개로 삼아 작가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이 예술의 속성은 지금껏 이 세상에 태어난 악곡들의 수만큼이나 각양각색일 테고, 그래서 “당신은 음악의 속성을 뭐라 생각하느냐”라고 주변에 물으면 아마도 꽤나 다채롭고 흥미로운 답들이 돌아올 것 같다. 정작 나 스스로가 떠올리는 답들은 하나같이 의외성이라곤 없이 뻔하여 약간 실망스러울 지경이지만.

 

『음악은 감정적이고, 자유롭고, 즉흥적이다. 동시에 이성적이고, 구조적, 형식적이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세상의 (적어도 내가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범주 내에서의) 대부분의 음악들은 대체로 위의 속성들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서 음악의 이런 속성을 가장 잘 설명하는 장르는 무엇일까-로 생각의 흐름을 조금 더 진전시키면 아주 자연스레 ‘재즈’를 떠올리게 된다. 특히 음악의 즉흥성과 구조적인 면의 양립, 대립 등을 그럴싸하게 떠들기에 재즈만큼이나 좋은 소재가 이 세상 그 어디에 또 있겠나.

 

‘김오키’는 한국의 테너 색소폰 주자, 그리고 프로듀서다. 돈만스키, 성자 조야표도르미하일로비치개돈만스키 등 여러 다른 예명들로도 불리고 있다. 2013년 EP [Cherubim’s Wrath (천사의 분노)]로 등장한 이래 현재까지의 8년 남짓한 시간 동안 개인 정규앨범 열세 장, 여기에 ‘김오키 새턴발라드’, ‘Fucking Madnesds’ 등의 프로젝트까지 포함하면 무려 열일곱 장의 정규, 혹은 EP를 세상에 내놓았으며 동시에 수많은 동료 음악가들의 작품에서 협연해왔다. 놀라운 행보다.

 

정작 더 놀라운 것은 이토록 다작을 하고, 또 다채로운 활동을 이어오는 속에서도 좀처럼 특정한 스타일에 안착하거나 동어반복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김오키의 음악은 재즈뿐 아니라 다른 여러 대중음악 장르들과 자유롭게 교류한다. 그 결과물은 때로는 감정적이고, 때로는 즉흥적이었으며, 반면 한편으로는 다양한 장르의 문법을 적절히 활용하거나 명징한 테마, 구성을 갖추며 매우 구조적인 면모를 선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김오키를 편의상(?) ‘재즈’ 음악가로 분류하곤 하지만 정작 김오키 본인의 태도는 재즈, 혹은 다른 어떤 형식에도 얽매인 적 없이 늘 자유롭게, 새로움을 향해 뻗어간다. 그리고 나는 이와 같은 그의 행보, 그리고 그의 음악이 서두에서 이야기한 ‘음악의 속성’과 꽤나 닮은 모습이라 생각한다.

 

[편견에 대하여]는 김오키의 열세 번째 정규앨범이다. 색소폰, 더블베이스, 그리고 드럼의 전형적인 색소폰 트리오 편성으로 레코딩되었는데 그간 대부분의 작품, 공연에서 함께해온 베이시스트 ‘정수민’이 아니라 과거 ‘The South Korean Rhythm Kings’으로 함께한 적이 있는 ‘송남현’이 모처럼 합을 맞추며 참여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제목 그대로 ‘편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음악가 개인의 어떤 경험들이 동기가 되어 출발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극히 사적이고, 또 감정적인 면모가 도드라진다. (조금 더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하자면 사회에 여전히 만연한 온갖 편견들을 성토하는, 일종의 ‘시대유감’ 성명 같은 것으로도 바라볼 수 있으려나) 시종 음울한 톤을 유지하는 김오키의 색소폰은 혼돈, 분노, 조소, 체념 등 갖가지 마이너스적 감정들 사이를 온탕과 냉탕을 오가듯 넘나들고, 이런 연주에 호응하듯 수시로 불온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더블베이스의 나지막한 울림, 종종 불규칙하고 또 강박적으로 느껴져 왠지 모르게 초조함을 불러 일으키는 드럼의 타건이 여기에 어우러지면서 각각의 곡들이 지닌 부정적인 뉘앙스는 보다 또렷해진다. 특히 이 작품 속 김오키의 블로잉은 하나같이 ‘응어리진 어떤 감정들의 표출 내지는 배설’처럼 다가온다.

 

직전에 나온 또 다른 정규작 [Everytime]과 이 작품을 비교해 감상하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두 작품의 음악적 색채, 접근법, 태도 등이 완전히 반대 지점에 서있는 까닭이다. 프리재즈적인 곡들로 연주자 김오키의 일면을 부각시키는 [편견에 대하여]에 비해 전작 [Everytime]은 여러 연주자들과 피쳐링진을 대거 동반하는 동시에 장르적으로도 힙합, 일렉트로닉, 팝 등을 넘나드는 프로덕션, 그렇게 탄생된 다양한 색채의 트랙들을 균형감 있게 배치한 구성, 더불어 본인이 전면에 나서기보다 곡의 일부로 기능하며 밸런스를 추구한 듯한 연주 등을 통해 ‘프로듀서’로서의 김오키’의 면모를 분명히 드러낸다. 동일한 아티스트가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작품들임에도 이토록 확연히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꼭 이 두 앨범을 함께 감상해보길 권한다. 김오키라는 음악가가 지닌 흥미진진한 다양성을 직관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가장 쉽고도 훌륭한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ditor / 김설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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