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와 설빈이 정규 3집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전해 들은 것은 올해 4월이다. 그날은 제주에서 올라온 여유와 처음 인사를 나눈 날이기도 한데, 본격적으로 농도를 높여가던 봄기운 덕에 라운지 문을 활짝 열어두고 앨범에 대한 청사진을 공유받으며 이 포크 듀오가 도착해 있을 늦가을 어느 날을 어렴풋하게나마 상상해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난 정규 2집으로부터 4년, 본격적인 작업 기간으로 따져도 1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거쳐 탄생한 여유와 설빈의 3번째 정규 앨범은, 그리하여 이들이 관통해 온 기억과 감정을 사려 깊게 수놓으며 새로운 형태의 위로를 건네준다. 전작에 비해 한층 내밀해진 언어로 꾸려진 아홉 곡의 노래가 꾸밈없는, 아니 구태여 꾸미지 않아도 부족함 없는 ‘나’의 이면을 내어 보이며 찬찬한 공감으로 이어지는 덕이다.
제주에 터를 잡은 여유와 설빈 본연의 모습을 녹여내기 위해 대부분의 작업이 제주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던 이번 앨범은 이렇듯 음과 음 사이, 그리고 단어와 단어 사이마다 넘침 없는 ‘자연스러움’을 담고 있다. 비로소 후회나 미련이 남지 않았던 앨범을 선보이게 되었다며 밝혀온 두 사람의 소회처럼 여러모로 지금 가장 ‘여유와 설빈스러운’ 소리를 담고 있는 셈이다. 어느새 저녁공기에서 제법 한기가 느껴지던 늦가을 어느 날, 제주와 강남을 잇는 화상 인터뷰로 함께 한 여유, 그리고 설빈과 이번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인터뷰 시작에 앞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여유: 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포크 듀오 여유와 설빈입니다. 보통은 단출하게 둘이서 기타 한 대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설빈: 이름은 여유와 설빈인데 요즘 여유롭지는 않은 것 같아요. 원래는 여유가 진짜 여유롭고 저는 성향상 좀 바쁜 편이었는데 이제는 둘 다 여유가 점차 사라지고 있던 상태예요.
Q: 이번 정규 3집 [희극]이 4년 만에 발표하신 작품이라는 점에서 아무래도 준비 과정이 여러모로 많이 바쁘셨을 것 같아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보니 오랜만에 음악을 발표하신 것에 대한 소회도 궁금합니다.
여유: 후회와 미련이 없는 작업이었어요. 전작들도 물론 다 소중하고 귀한 앨범들이었지만 약간의 미련을 남기고 타협하면서 발표해 왔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전혀 그런 찝찝함이 없는 상태로 후련하게 발표했기 때문에 더 좋아요. 덕분에 다행히 바로 일상으로 복귀를 했고요. 앨범 발매할 때쯤 제가 일을 하나 시작했는데 지금 중국집에서 일을 하고 있거든요. 규칙적인 생활 덕분에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가 됐던 것 같습니다.
설빈: 저는 앨범 발매되고 나서 일주일 동안 매일매일 인터넷에 저희 검색해 보고 사람들은 어떻게 들었는지 반응을 엄청 열심히 살폈고요. (웃음) 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있어서 평소와 다름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지냈고 바빴던 일들이 정리되고 있어서 점차 안정을 찾게 될 것 같아요.
Q: 그러면 이제 앨범과 관련한 질문부터 하나씩 드려볼게요. 사실 제가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설빈 님이 브런치에 연재하셨던 작업기를 많이 참고했는데요,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에서 유독 제주라는 지역성이 전작들보다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지더라고요.
설빈: 제주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면, 제주라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휴양지의 느낌이라든지, 아니면 섬이 주는 비밀스러우면서도 독립적이기도 한 여러 인상들이 있잖아요. 그걸 내세우려고 의도했던 건 아니고요. 다만 저희가 제주도에 산 지 7년째가 되어가고 있는데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제주도다 보니까 이곳의 특성들이 작업하는 데도 되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사람들이 제주 하면 떠올리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인상도 있지만 섬이 주는 홀로 되는 감상이 있어요. 한편으론 제주가 땅은 넓지만 사람들 사이가 굉장히 촘촘해서 한 다리 건너면 다 알고, 같은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끼리는 서로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게 되는 그런 복합적인 관계성도 있고요. 이런 경험들이 노래하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이걸 풀어내는데 서울에서 작업을 하게 되면 뭔가 선명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일차적으로 들었어요.
여유: 덧붙이자면 ‘제주에서’라는 표현은 어쨌든 저희 둘의 손길이라는 뜻이기도 해요. 저희 둘이서 그동안 작업했던 어떤 앨범보다 정성을 많이 들였고 앨범 작업 전반에 있어서 저희 둘이 스스로 한 것들이 정말 많아요.
Q: 제주에 있는 레코딩 스튜디오 ‘램프 스튜디오’와의 작업도 이러한 맥락의 일환이었을까요?
실빈: 제가 제주에서 작업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여유한테 좀 고집을 부렸어요. 램프 스튜디오는 2집 작업할 때부터 하고 싶었던 곳인데 이제 본격적으로 함께해 보자고 얘기를 했었죠.
여유: 그때 저는 이미 머릿속에 서울에 계신 많은 분들이 후보로 있었어요. 근데 설빈이 이번 앨범은 우리가 제주도에 뿌리를 내리듯이 작업적으로도 완전하고 명확하게 제주에서 출발했으면 좋겠다고 강력히 이야기했었어요. 그렇게 몇 달 정도는 계속 그런 소통을 나누면서 작업이 진행되었고요. 마스터링이나 디자인, 그리고 몇몇 연주자분들의 도움을 제외하곤 서울에 계신 분들의 손길이 아주 적게 들어갔죠. 많은 것들이 제주에서 이루어진 앨범인 건 분명해요.
램프 스튜디오 (왼쪽부터 설빈, 엔지니어 강경덕, 들국화 최성원, 여유)
Q: 램프 스튜디오와 작업 과정은 어떠셨나요?
여유: 지금 생각해도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램프 스튜디오의 강경덕 형이 가능성을 많이 열어줬는데, 제가 마치 실험실의 과학자가 실험을 하는 것처럼 스튜디오에 있는 거의 모든 악기를 사용해 봤거든요. 제가 잘 다루지 못하는 악기들조차도 실험적으로 다 넣어봤는데 경덕이 형이 그렇게 펼칠 수 있게 많이 도와줬죠. 믹싱 부분에 있어서도 제가 믹싱의 디테일한 지점들을 마음에 들어 할 때까지 계속 시간을 줬고 때로는 저한테 컴퓨터를 넘겨주기도 했어요. 그런 부분들이 공부가 많이 되었고 거의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덕을 많이 봤어요.
설빈: 엔지니어님 이름도 강경’덕’이에요. (일동 웃음)
여유: 특히 경덕이 형한테 고마운 게 있는데 2번 트랙 ‘너른 들판’에 삽입된 바람 소리나 8번 트랙 ‘하얀’이라는 노래의 파도 소리 같은 엠비언트 사운드가 제주 토박이인 형이 그동안 수집해 왔던 필드 레코딩 소스였거든요. 덕분에 그런 사운드를 저희 작업에 녹여낼 수 있었어요.
Q: 램프 스튜디오의 경덕 님과 더불어 이번 앨범에 함께 해주신 여러 작업자분과의 인연도 인상 깊더라고요.
설빈: 물론 이전 작업 때도 그랬지만, 이번 3집 같은 경우에는 특히나 함께하는 사람들을 크게 조명했던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함께 만나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들을 살펴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고요. 제 작업기에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번에 새롭게 만나게 된 분은 강경덕 엔지니어님을 통해 만난 코프로듀서(co-producer) 이대봉 님이 있는데, 올해 여름쯤 저희 둘 다 작업적으로 너무 에너지를 많이 쏟아서 점점 지쳐가고 있을 때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초대한 분이에요. 안면도 없다 보니 처음에는 전화나 이메일로 연락하다가 실제로 만나게 된 경우인데, 만들어지고 있는 저희의 노래를 굉장히 사랑해 주시고 섬세한 부분까지 제안을 많이 해주셨거든요. 저희 둘 다 지쳐가는 마당에 그렇게 따뜻하게 그 노래들을 안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되게 감사한 일이었어요.
트럼페터 장보석
여유: 드러머 김창원, 베이시스트 노선택 님은 2집에 이어 이번 3집까지 같이 해주신 분들이에요. 그리고 아주 우연한 기회에 합류하게 된 장보석이라는 트럼펫 연주자가 있어요. 제주도에 왔다가 태풍 때문에 비행기가 결항해서 제주에 발이 묶이는 바람에 지인이었던 창원한테 연락을 했었는데요. 그때 마침 저희가 곡 작업 중이었어서 즉흥적으로 녹음을 함께하게 되었어요. 말 그대로 여행 왔던 거다 보니 제주에 계신 이웃 뮤지션 전찬준 님께 트럼펫을 빌려서 임시로 녹음을 했죠. 아무래도 너무 즉흥적으로 진행된 면이 있어서, 나중에 보석이 자기 악기를 바리바리 챙겨가지고 내려와서 추가 녹음을 했었어요.
Q: 정말 말 그대로 신기한 인연이었네요. 저도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관악기 사운드를 되게 인상적으로 들었는데 그게 전부 보석 님의 연주였군요.
여유: 네, 트럼펫, 베이스 트럼펫, 그리고 플루겔혼이라는 악기와 뮤트(트럼펫 홀에 끼우는 약음기)를 이용해서 되게 다양한 트럼펫 사운드를 연주해 주셨어요. 그런데 또 빼놓을 수 없는 관악기 소리가 설빈이 연주한 클라리넷이에요. 클라리넷과 트럼펫의 협연으로 만들어진 부분도 있고요.
Q: 연주자분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자연스럽게 악기 관련된 내용도 조금 나눠보겠습니다. 이번 앨범에서 특히 다양한 악기들의 조합이 눈에 띄어요. 때론 단출하게, 때론 웅장하게 운용되는 여러 악기 구성에 있어서 특별히 염두에 두신 부분이 있을까요?
여유: 작사 작곡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이미 저는 머릿속으로 항상 웅장하고 풍성한 편곡, 말하자면 오케스트라까지 그리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쉽지 않기도 하고 노래 자체가 그 정도까지의 편곡을 요하지 않는 경우도 있죠. 그래서 진행하다 보니 그 곡에 맞는 편곡으로 또 흘러가게 되는데 어쨌든 이번에는 정말 해보고 싶은 걸 다 해본 작업이었어요.
설빈: 1집은 거의 프로듀싱을 맡겼던 앨범이고, 2집은 저희가 직접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세션 연주자들의 감각에 따라 흘러가는 대로 바라봤던 그런 앨범이었어요. 그에 비해 3집은 악기 구성이나 편곡적인 부분까지도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잡아갔던 작업이었죠. 1년 동안 작업 한 거니까 사계절 동안 넣어봐야겠다 싶은 부분은 과감하게 다 시도를 했고, 그중에 살릴 건 살리고 쳐낼 건 쳐내고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전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에 있어서 타협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는 우회하지 않고 제주에서 들려줄 수 있는 소리들로 구체적인 심상을 구현해 보자고 생각했던 게 가장 큰 차이인 것 같아요.
Q: 그럼 이번 앨범들의 많은 소리들은 처음 만들고자 했던 것에 거의 근접한 결과물로 나왔다고 봐도 되겠네요.
설빈: 네, 저는 너무 만족해요.
여유: 근데 사실 어떤 의도가 명확했던 건 아니에요.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도화지에 스케치를 해놓고 거기에 색칠을 하고 또 계속 덧입히는 작업을 1년 동안 한 거죠. 그렇게 완성된 그림이 지금은 마음에 드는 거예요.
Q: 이어서 작업 과정에 대해서도 질문드리고 싶어요. 앞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초기 작곡 단계에서는 여유 님이 많은 부분을 맡고 계신데 그것들이 결과적으로 설빈 님과 동기화 되는 과정이 신기하더라고요. 설빈 님께서 말씀해주신 앨범에 대한 정서가 여유 님께서 말씀하신 내용과 일맥상통한다고 느껴지는데 어떤 식으로 이런 정서적인 합이 맞춰지는 건지 궁금합니다.
여유: 지긋지긋하게 들어서 그런가. (웃음)
설빈: 이것도 일정 부분 맞고요. (웃음) 일단 여유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들의 맥락을 알고 있는 부분이 큰 것 같아요. 어쨌든 같이 1, 2집을 거쳐왔기 때문이라는 게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특히나 이번 3집은 저도 여유 못지않게 앨범에 마음을 많이 들였고, 여유의 노래를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가짐이나 노래에 스며드는 정도가 커지면서 이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보니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더라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항상 가지고 있는 것 같네요.
Q: 어떻게 보면 이상적인 협업의 형태라고도 느껴져요. 사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동기화가 되면 정말 좋겠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되게 많잖아요.
설빈: 사실 별로 동기화되고 싶지 않은 것도 동기화되기 때문에 별로 추천하고 싶진 않아요. (웃음)
여유: 말하자면 설빈은 저한테 직장으로 치면 상사예요. 노래는 제가 많이 만드니까 설빈에게 들려주면 ‘여유와 설빈 앨범 수록곡으로 쓸 수 있음’이라고 결재를 해주는 거죠. (웃음) 그렇게 해서 탈락하는 곡들이 생각보다 되게 많아요. 물론 저한테는 다 똑같이 귀한 노래들이어서 언제 한 번 기회가 되면 모아서 내야 할 것 같아요.
Q: 트랙 단으로 대화 주제를 넘기기 전에 앨범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마저 나눠볼게요. 제가 이번 3집을 처음 듣고 느낀 점이 2집에 비해서 분위기가 훨씬 묵직해지고 감정의 이면을 조금 더 가감 없이 담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희망을 기반으로 한 2집과 상반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던 만큼 이번 앨범의 표현 방식이나 정서적인 측면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여유: 이번 노래들은 만들어진 시기가 되게 다양해요. 5년 전에 만든 노래도 있고 한 1년 전에 만든 노래도 있고, 그렇게 모인 9곡이에요. 노래들의 대부분이 내면적으로 가장 침잠해 있었을 때 창작됐던 곡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신 지점이 있을 거예요.
Q: 그렇다면 그렇게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곡들을 작곡 당시가 아닌, 이번 3집을 통해 엮어내시게 된 의도나 배경이 있을까요?
여유: 평소에 어떻게 보여지고 싶다는 생각을 아예 못하는 성격이긴 한데요. 일단 만들어 놓고 세상에 나왔을 때 일어나는 일들은 전부 흐름에 맡기는 편이죠. 다만 분명하게 이 노래들이 하나의 앨범으로 묶이게 된 데에는 확실히 의도성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설빈: 1집과 2집은 말씀하셨듯이 좀 더 희망적인 느낌, 그러니까 아프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성장하려고 하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통증이라고 잘 이해해 주셨던 것 같아요. 그에 비해 3집은 잠깐 멈출 수밖에 없는 나의 상태, 그러니까 정말 홀로가 되어서 여기서 어떠한 의지도 없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를 반영한 앨범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그렇게 살면서 여러 겹의 다층적인 감정들이 무력하게 몸 안에 쌓여가는 과정도 나의 삶이고, 알고보니 나뿐만 아니라 너도 그렇고 우리 모두가 그렇다고 느끼게 된 경험들이 집약된 앨범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이번 앨범을 두고 저는 분명하게 섬의 정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너와 나 모두 섬이라는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요. 여유가 이런 부분을 분명하게 의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유의 작업들을 차근차근 듣다 보면 그런 정서가 많이 느껴지거든요.
Q: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모여서 자연스럽게 어떤 맥락을 이루는 과정이 참 신기해요. 앨범이 그리고 있는 정서들도 그렇고 그것들을 표현하는 방식도 그렇고 뭔가 애쓰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여유: 말씀을 듣다 보니 방금 떠오른 것이 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 노래들을 2집에 수록하지도 않았었고 밖으로 꺼내 보이는 데에도 시간이 좀 필요했던 과정이 있었어요. 새로 만든 노래라고 해서 바로 앨범으로 내지는 않지만 공연장에서 부를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항상 1, 2집에 비해 너무 무거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희망 같은 긍정적인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던 전작들에 비해서 절망 같은 마음을 이렇게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괜찮을까, 이게 과연 좋은 노래가 맞을까 하는 자기 의심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그럴 때마다 이런 노래만이 줄 수 있는 위로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주변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제 저도 마침내 그런 마음이 좀 정리가 됐어요. 조금은 아프고 서늘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마냥 따뜻하고 다정한 위로는 줄 수 없는 위로’가 되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앨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Q: 사실 오늘 이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각 곡들의 작곡 연도를 몰랐다 보니 3집의 음악들이 여유와 설빈의 현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닐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오히려 이제야 마침내 그것들을 꺼내놓으실 준비가 된 거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네요.
여유: 아주 정확하고요, 이 앨범을 통해서 그 상태를 극복하고 싶었던 거죠.
Q: 그렇다면 이제는 그런 마음들이 극복되신 것 같나요?
여유: 그런 것 같아요. 극복이라기 보다는 포용? 일단은 후련한 게 너무 크죠. 아무래도 가장 무거운 시기에 꺼내놓은 것들인데 어쨌든 잘 익은 열매처럼 내보낸 거니까 이제는 가벼운 마음이기도 하고 또 다른 작업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도 생겨요.
Q: 이어서 트랙에 대한 질문도 몇 가지 드려볼게요. 이번 3집은 더블 타이틀곡 설정도 눈에 띄더라고요.
여유: 네, 2번 트랙 ‘너른 들판’이랑 6번 트랙 ‘밤하늘의 별들처럼’이라는 두 곡인데요. 저희는 처음부터 ‘밤하늘의 별들처럼’이 타이틀 곡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대봉 님이 ‘너른 들판’에 꽂히셔서 무조건 타이틀로 넣어야 한다며 너무 좋아해 주셨어요. 그렇게 두 곡을 전부 타이틀곡으로 두게 되었고요. 만약 LP 같은 매체로 만들어진다면 A 사이드, B 사이드 각각 하나씩 타이틀곡으로 하기도 좋을 것 같더라고요.
설빈: 또 이렇게 더블 타이틀로 결정을 하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까 이 앨범에서 ‘너른 들판’과 ‘밤하늘의 별들처럼’이 가지고 있는 장소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너른 들판’이 가지고 있는 심상은 들판에 바스락거리는 풀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곳에 동떨어져있는 느낌을 주는데, ‘밤하늘의 별들처럼’은 되게 광활한 공간에서 홀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거든요. 그런 두 가지 장면의 결이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번 앨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장면들이 두 곡 안에 잘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블 타이틀로 선정하길 잘했다 싶었어요.
여유: 맞아요. 그리고 ‘너른 들판’ 마지막 가사는 “밤하늘엔 아직 별들이 있고”로 끝나는데 ‘밤하늘의 별들처럼’은 “밤하늘의 별들처럼 밝지 않아도”라고 시작하거든요. 두 곡만 따로 떼어놓고 들어도 메시지적으로 연결돼요.
Q: 특히 6번 트랙 ‘밤하늘의 별들처럼’ 후반부에 2집 수록곡인 ‘길고 긴 밤’의 한 구절이 레이어드 되어있는 것도 눈에 띄더라구요.
여유: 그 부분은 동물적인 감각 같은 거였어요. 머리로 생각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있지만 그럴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진행되는 작업도 있거든요. 그런 맥락이에요.
Q: ‘밤’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도 그렇고 6번 트랙에서 이야기하는 후회의 대상이 ‘길고 긴 밤’에서 노래하는 대상과 일맥상통한다고도 느껴졌다 보니 치밀하게 설계된 부분인가 싶었어요. 이렇게 여유 님의 본능으로 얹혀진 부분에 대해 설빈 님도 만족하셨나요?
설빈: 네, 처음 가이드 녹음을 할 때는 없었던 부분인데, 어느 날 여유가 갑자기 기타 한 대 덜렁 들고 나타나더니 마지막 부분에 ‘길고 긴 밤’ 넣는 거 어떠냐면서 막 연주를 하는 거예요. 그때 처음 들려줬는데 너무 좋았어요. 잘 어울렸고 확 끌린다고 해야 하나. 구체적인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좋다는 감각이랄까요.
Q: 이어서 4번 트랙 ‘희극’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눠보겠습니다. 앨범명과 동명의 트랙인 만큼 눈이 가는 트랙인데 앨범명에 대한 이야기까지 함께 소개 부탁드립니다.
여유: 곡 제목이 먼저 지어졌고 앨범 제목으로까지 ‘희극’을 쓰는 것에는 고민이 좀 있었어요. 인생이나 세상 같은 것들을 한 편의 연극으로 빗대서 은유적으로 표현해 보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비극’이라는 반대되는 단어가 연상되는 부분에서 괜찮을지 대봉 님이랑 같이 고민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희극’이라는 말 자체가 반어법처럼 쓰였고, 여기서 비극이 떠오르는 게 좀 더 양면적인 감상이 될 것 같아 은유적인 표현으로 ‘희극’이라는 제목을 쓰게 된 거죠.
설빈: 네, 비극이라는 단어는 너무 호소적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꼬집고 싶은 포인트가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희는 결과적으로 희극이 맞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고요.
Q: 저도 이 제목을 처음 보고 나서 바로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떠오르더라고요.
여유: 맞아요. 앨범 디자인에서도 찰리 채플린의 영향이 조금 있었어요. 앨범 커버가 흑백으로 되어있는데 찰리 채플린의 흑백 영화 이미지를 따온 게 있거든요. 디자이너 혜리 님이나 설빈은 또 의견이 다를 텐데 저 혼자서는 그렇게 상상하면서 만족했습니다. 제목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넓게 상상할 수 있는 앨범이었으면 좋겠어요.
Q: 곡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게요. 마지막 트랙 같은 경우에는 설빈 님이 작곡하신 곡이더라고요. 아무래도 정규 단위 작업인 만큼 1번 트랙부터의 기승전결을 짜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트랙 순서를 정하시면서 이 곡으로 마지막 트랙을 장식하시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설빈: 일단은 사전 질문지를 전달해 주셨을 때 트랙 순서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반가웠어요. 왜냐하면 이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트랙 순서가 굉장히 중요했거든요. 어떤 날은 여유가 9곡의 수록 순서를 1안, 2안, 3안, 4안까지 짜왔어요.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노래들의 순서를 두고 조금씩 조금씩 바꿔가면서 이게 낫니, 저게 낫니 했을 정도로 트랙 순서가 이번 작업에서 되게 중요한 주제였고요.
그리고 1, 2집 때도 각각 ‘먼 훗날 당신과 나’, ‘선인장’이라는 제 노래가 수록되어 있는데요. 이번 3집에서도 ‘푸른’이라는 노래의 순서를 어느 곳에 위치시킬까도 큰 고민이었어요. 아무래도 여유가 만들어 내는 노래와 제가 만들어 내는 노래의 색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거든요. 평소에 사용하는 표현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다는 점, 그리고 구상하고 있는 공간감 같은 것들도 약간은 차이가 있어서 어떻게 앨범에 전체적으로 녹여낼 수 있을지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작업 중반기까지는 8번 트랙 ‘하얀’이 곡이 첫 번째 트랙이었는데, ‘하얀’으로 도입부에서 세상을 펼쳐내는 방식으로 구상했었거든요. 그러다 작업 말미에 ‘하얀’이라는 곡을 통해서 오히려 이 세계를 점차 정리하는 느낌을 주고 맨 마지막에 여유가 만들어 내는 음악보다는 무게감이 덜하고 느낌도 다른 ‘푸른’으로 마무리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Q: 말씀을 듣고 보니 ‘푸른’이 마치 엔딩 크레딧 같은 그런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 같네요.
여유: 네, 그렇게 볼 수도 있죠. 작업이 처음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사계절에 걸쳐 트랙 리스트 고민이 계속됐었어요. 근데 그게 제가 작업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그동안 정규 앨범 밖에 작업해 보지 않아서 그쪽의 감각만 갖고 있기도 하구요. 친한 친구들은 병적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트랙 리스트에 많이 집착하는 편인데 의도에 잘 맞는 순서로 배치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특히 이번 3집은 유난히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같은 곡이어도 어떤 순서로 듣느냐에 따라서 너무 다른 이야기가 되니까요.
덧붙여서 이번 앨범과 관련한 감상을 하나 공유하자면, 1번과 2번, 3번과 4번, 5번과 6번, 7번과 8번이 각각 봄, 여름, 가을, 겨울 같다고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리고 다시 ‘푸른’에서 겨울이 끝나고 봄으로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하루로 치면 아침부터 시작해서 밤과 새벽을 다 지나고 다시 아침이 밝아오는 느낌을 주는 곡이 ‘푸른’이라서 마지막 곡으로 잘 배치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작업 기간도 4계절에 걸쳐있다 보니 비단 감정선이나 사운드뿐만 아니라 오늘 대화 나눈 모든 이야기에서 의도하지 않아도 대입되는 자연스러움이 느껴져요. 여러모로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앨범인 것 같습니다. 어느덧 인터뷰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데요, 이번 3집과 발매와 함께 계획하고 계신 활동들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서 소개 부탁드릴게요.
설빈: 우선은 가장 가까운 11월 25일 6시에 제주도 ‘반짝반짝 지구상회’에서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이 예정되어 있고요.
여유: 기회가 되면 서울에서 또 열 수도 있겠지만, 인터뷰 초반에 나눴던 제주도에 대한 맥락 그대로 발매 기념 공연까지 우선은 제주도에서 잘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앨범 작업이 처음 출발했을 때 설빈이 이야기했던(제주에서 시작해서 제주에서 완성하는) 맥락과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다음에 차근차근 일상을 잘 살아내면서 또 좋은 기회로 노래를 들려드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설빈: 물론 서울과 다른 지역에서도 성실하고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 나갈 예정입니다. (웃음)
Q: 지난 작업 기간 사이에도 꾸준히 공연을 통해 팬분들과 소통해 주셨던 만큼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가 많이 되네요. 두 분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이야기 있으시면 마지막 인사와 덧붙여 이번 인터뷰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여유: 저는 요새 중국집에서 일을 하고 있거든요. 요즘의 저한테 아주 중요한 일상이에요. 주로 홀에 있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최근에 한 노부부가 오신 적이 있어요. 드시고 난 후에 맛있었다고 따뜻하게 얘기해주시고 먹은 자리까지 티끌 하나 없이 말끔하게 정리해두고 가셨는데 감동이었어요. 사람을 대할 때 비록 생판 모르는 남이더라도 따뜻하고 진실되게 대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어디서 밥을 먹든 그릇을 한 곳으로 모아두는 정도의 작은 배려는 잃지 않으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설빈: 모두 건강하게 지내시면 좋겠고요. 요즘 들어서 뭔가 사는 것 자체가 가만히 멈춰서 있는다고 멈춰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멈춰있는 것 조차도 에너지가 필요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쨌든 다들 무탈하시고 또 좋은 기회로 만나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뮈가 새로운 EP <가을은 흐릿한 오후>로 돌아왔다. 싱글 <본>을 발매한 지 약 2년의 세월이 흐른 뒤의 첫 EP다. 밴드 사운드 위주의 전작과는 사뭇 다른 담백한 여백이 느껴지는 앨범이기도 하다.
동시에 ‘사뮈’ 개인으로는 꽤 오랜만의 발매라는 점 또한 눈길이 간다. 정규 앨범 <농담>을 발매하기까지 3년 반의 시간이 걸렸던 사뮈가 그 후 이번 EP를 발매하기까지 마찬가지로 3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앨범명만큼이나 흐릿한 가을날, 그를 만나 이번 EP부터 그가 걸어온 행보까지 다양한 주제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사뮈의 EP <가을은 흐릿한 오후>가 발매되었어요. 오랜만의 발매인데,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마콤마의 앨범 <Mind, Heart>를 꽤 오랫동안 준비하고 있었어요. 작업을 시작했던 타이밍이 <농담>을 발매한 해였고, 해경이 형도 그 해에 <속꿈, 속꿈> 을 발매했고요. 8월 즈음 마콤마 앨범을 준비한 후에 작년에 <Mind, Heart>를 발매했어요. ‘이제 내 앨범을 제대로 준비해야겠구나’ 생각이 있었는데, 시간이 이렇게 흘렀더라구요.
말씀대로 마콤마의 EP <Mind, Heart> 도 발매가 되었는데, 신해경 님과의 합은 잘 맞았나요?
해경이 형이랑은 합이 굉장히 잘 맞았고, 작업하는 방식이 꽤 비슷했어요. 사용하는 시퀀서도 같은 걸 사용하다 보니 훨씬 용이한 것도 있었구요. 서로의 음악에 대한 리스펙이 있다보니 각자의 의견을 잘 존중할 수 있다는 점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근데 왜 2년이나 걸렸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쩌다 2년이나 걸렸지? (웃음)
마콤마가 아니라 사뮈 개인으로는요?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였어요. <농담>을 발매하고 정신적인 데미지가 컸거든요. 공연이나 다른 활동에 대한 기대가 무너져버리니까 선뜻 무언가를 진행하는 게 쉽지 않더라구요. 제가 생각했던 결말과는 다르다보니 혼란스러운 부분이 좀 컸던 것 같아요. 다음의 방향, 넥스트 스텝을 밟는 것에 대한 고민에 시간을 오래 쓴 것 같아요. 이상 핑계였습니다. (웃음)
<농담>과 <Mind, Heart>를 발매했는데, 앨범 단위로 작업하면서 에너지 소모가 크지는 않았나요?
크다고 느끼면서 작업해 오진 않았는데, 지나고보니 컸던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농담> 발매하기까지의 4~5년이 (저에게 있어서) 에너제틱한 상황이었기에 그런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 생각해요.
<농담>을 발매하고 겪은 고민의 시기를 신해경 님과의 마콤마를 통해 회복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겠네요.
맞아요. 단순히 동료 뮤지션 중에 한 명이라기보다는, 척박한 세상에서 형제를 하나 더 얻은 기분도 들어요. 해경이 형은 어떻게 생각할 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아무래도 음악을 하는 동료다보니, 제가 겪는 고충이나 그 밖의 자잘한 이야기를 많이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가 됐어요. 함께 팀을 하다 보니 더욱 끈끈해진 것도 있죠.
이제 본격적으로 앨범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하는데요. <가을은 흐릿한 오후>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를 먼저 부탁드립니다.
<가을은 흐릿한 오후>는 비워내는 데에 많이 집중했던 앨범이에요. 좀 더 날 것일 수도 있구요, 심플하거나 단순할 수도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굳이 채우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서 멜로디, 가사, 악기들에 좀 더 집중되기를 바랐어요. ‘가을은 흐릿한 오후’라는 이름과 비슷하게 너무 우울하거나 너무 쓸쓸하지도 않은 적당한 무드를 가지고 있는 앨범입니다.
밴드 사운드 위주의 기존작과는 사뭇 다른 앨범이에요. 보다 담백한 구성을 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언젠가 데모와 흡사한 곡으로 앨범을 내보고 싶었다는 마음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기도 했고, <농담> 이후에 어떤 앨범이 나오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공백기가 길기도 해서 바로 정규 앨범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조금 더 고민해보니, 연속적으로 정규를 내는게 스스로에게 부담스러운 스텝일 수도 있겠더라구요.
SNS에 기재해두신 포스팅을 보니 개인적인 만족도가 높다고 하셨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그랬나요?
예전에는 편곡적으로나 사운드적으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음악적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음악이 더 좋은 음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편곡하면서 감정이 닳는다는 기분이 든다는 점에서 한편의 아쉬움도 있었던 것 같아요. 무조건 예뻐야 할 필요는 없지만, 예쁘게 다듬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도 작업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느꼈어요. 아마 뮤지션들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겠지만, 새로운 시도를 발매로 이어가기가 쉽지는 않거든요. 기존에 내던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보니까 개인적으로 앨범에 대한 반응이 특히 궁금했어요.
평소 함께하는 공동 프로듀서 ‘배상언’ 님이 이번 앨범에서는 참여하지 않기도 하셨잖아요.
상언이 형은 고민이 되는 지점들을 이야기할 때, 가장 진지하게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이에요. 상언이 형의 의견이 제 선택에 있어서 참 도움을 많이 줬고요.
이번에는 편곡이랄 게 많이 없어서 혼자 진행했지만, 중간중간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앨범을 만들 때마다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온 사람인데, 한 발자국 뒤에 떨어져서 결과물을 볼 때는 어떻게 느낄지가 궁금해서 소개글을 부탁하기도 했고요. 옆에 없어서 힘들긴 했지만 그런대로 재미있게 작업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함께할 때가 더 좋습니다. (웃음)
이번 EP는 가을과 겨울이라는 시간적 배경이 일관되게 묘사되고 있어요. 의도한 부분인가요?
앨범에 담고자 했던 가장 큰 감정은 ‘쓸쓸함’인 것 같아요. 가을과 겨울이 쓸쓸한 감정을 가장 많이 느끼는 계절이기도 하잖아요.
앨범의 전반적인 무드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한 곡을 듣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뾰족뾰족 튀어나오지 않고 일관된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2번 트랙 ‘새벽 눈’에는 콘트라베이스 연주가 들어갔는데, 곡의 분위기와 참 잘 어울려요. 처음으로 활용된 악기인데, 고민되는 지점은 없었나요?
‘새벽 눈’을 작업할 때 ‘한 곡에만 드럼과 베이스가 들어가도 괜찮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기타 한 대로 가기엔 심심할 것 같은데, 나머지 모든 트랙은 리듬악기가 없는 구성이었어요. 그래서 고민이 컸는데, 일단 해보자하고 작업을 하게 된 곡이기도 해요.
다른 곡에는 피아노 혹은 기타 연주만 들어가니, 이 곡에는 콘트라베이스와 드럼이 들어가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기타 솔로가 나오는 것보다 베이스 솔로가 나와도 좋겠더라구요. 비워져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음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낮은 음을 채우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4번 트랙 ‘가을은 흐릿한 오후’에서는 이이언 님이 피처링으로 함께 했어요. 이이언 님과는 어떻게 작업하게 되었나요?
제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 스포티파이처럼 음악 연말 결산을 내면 아마 최상단에 ‘못’이 위치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언이 형님은 고등학교 시절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뮤지션이었어요.
이언이 형님의 목소리를 참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렇게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도 잘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해주셔서 너무 좋았죠. 제가 작업을 한 곡에 이언이 형님이 불러주신 파트를 얹어서 듣는데. 와.. 진짜 미쳤더라구요. (웃음) 실감이 안 났어요.
어떤 부분이 이이언 님과 특히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하셨어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가을은 흐릿한 오후>를 혼자 불러주시는 부분이었어요. 쓸쓸함이 잘 묻어날거라고 생각했죠. 그게 1순위였어요.
그리고 공동 1순위가 있는데, (웃음) 멜로디가 달라지는 중간 파트에서 유니즌으로 불러주시는게 필요했어요. 좀 더 권태롭고 멜랑꼴리한 느낌이 나길 바랐는데, 제 목소리만으로는 너무 덤덤한 거예요. 혼자서는 원하는 느낌이 살지 않았어요. 이언이 형님이 함께 불러주신다면 완성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부탁을 드렸죠.
학창 시절부터 동경하던 뮤지션과 작업하게 되는 거라면 의미가 남다르시겠네요.
그러니까요. 아직도 안 믿겨요. (웃음) 거의 3주 동안 (피처링 제의에 대해) 고민했어요. 거절당하면 속상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너무 욕심이 나니까 ‘에라 모르겠다’하고 보냈는데, 음악을 들어보시고는 잘 해볼 수 있겠다는 답변과 함께 승낙해주셨어요. 너무 감사했어요. 간절히 바랐던 진심이 닿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눈 쌓인 거리’라는 마지막 트랙은 호소력 짙은 가창이 돋보이는 트랙 같아요. 감정이 더욱 잘 실리기를 바란다는 의도를 제대로 보여주는 곡이라는 느낌도 들구요. ‘눈 쌓인 거리’를 작업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지점이 있을까요?
눈치를 채신 분도 있고, 못 채신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1번 트랙부터 4번 트랙까지는 모두 4분의 3 박 혹은 8분의 6박이에요. 쿵짝짝, 쿵짝짝 이런 느낌. ‘눈 쌓인 거리’라는 곡만 4/4박자고, 피아노가 메인으로 연주가 되는 곡이다 보니 여러모로 끝을 장식해주면 좋을 것 같았어요.
에너지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가장 격정적인 곡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뭔가, 그래야될 것 같았어요. 피아노가 메인으로 들어가는 곡도 기존 사뮈의 곡에는 없는 방식이다보니 더 좋았던 것 같네요.
특별히 애착이 가는 트랙이 있나요?
발매 후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했었는데요. 동일한 질문을 받았을 때, 모든 트랙에 애착이 간다고 답했어요. 근데 다시 생각하니 이언이 형님이 함께 해주신 트랙을 이길 수 있는 곡이 없는 것 같아요. (웃음) 개인적인 감정을 싣는다면 ‘가을은 흐릿한 오후’이고요.
이 곡을 제외하고 고른다면 첫 곡인 ‘동백’인 것 같아요. ‘동백’은 <농담>을 발매하고 고민하는 와중에 썼던 트랙인데, 팬분들을 위해서 쓴 곡이에요.
곡의 후반부에 ‘긴 겨울 지나가고 있어요’라는 가사가 나오는데요. 겨울을 지나왔다는 의미를 주고 싶었고, 기다려주셔 감사하다는 마음도 담고 싶었어요. 당시의 제가 느끼던 상태가 되게 겨울 같고, 한밤중인 것 같았어요. 매번 그랬듯 언젠가 봄이 올 거라는 마음은 갖고 있었지만요.
‘새벽 눈’이랑 ‘눈 쌓인 거리’ 두 곡은 라이브 촬영도 진행하셨잖아요.
‘새벽 눈’이랑 ‘눈 쌓인 거리’ 두 곡은 조금 오래된 곡들이에요. 언제 낼 수 있을 지 고민했었는데, <가을은 흐릿한 오후>를 구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이 두 곡을 기준으로 잡았던 것 같아요.
‘눈 쌓인 거리’의 경우에는 피아노로 단독 연주하는 곡이 하나도 없기도 했고, ‘새벽 눈’ 같은 경우도 콘트라베이스나 브러쉬 드럼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라이브 영상으로 공개하신 이유도 있나요?
원래 뮤직비디오를 꽤 많이 만들었어요. 풍성한 사운드가 담긴 곡들을 뮤직비디오가 여러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뮤직비디오가 잘 안 어울릴 것 같았어요. 비어있는 곡들이다보니 어떤 이야기로 인해 너무 명확하게 이미지를 줄 거 같다는 생각을 했죠.
어릴 때 소설을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즐거움 때문이었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이 음악을 들으며 ‘본인만의 상상에 빠져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힘을 빼고 담백하게 표현하려는 시도가 담긴 앨범인데요. 실제로도 ‘비워내려고 했던 앨범’이라고 말씀을 주셨어요.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에 있어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최대한 넣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넣을까 말까 고민이 들 때는 넣지 않으려고 노력하니 크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다만 ‘이래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은 한 번씩은 했던 것 같아요. 기존의 작업에 대한 마음가짐과 다른 부분이 많다 보니 헷갈리는 지점들은 있었던 것 같아요.
음악이 해소의 창구이자 스스로에 대한 위로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이번 앨범에서의 새로운 시도들이 곧 ‘사뮈 개인에게도 변화가 발생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을까요?
보통은 앨범을 발매하면서 제 것이 빠져나가는 기분을 많이 느꼈었는데, 이번 앨범은 조금 달랐어요. 오히려 채워지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아무래도 기존과 다른 자세로 작업에 임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스스로 설정한 족쇄들을 풀어낸 느낌이에요.
새로운 시도를 발매까지 이어가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셨는데요. 쉽지 않은 시도를 선보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 무엇일까요?
<농담>과의 텀이 길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사뮈라는 뮤지션을 바라보는 제 시선이 달라진 걸 수도 있죠. 다채로운 음악을 하고 싶다는 욕심을 풀어내는 데에 집중했던 시기를 지나, 이후 앨범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을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과거에도 이런 앨범을 내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꽤 들었었거든요. 당시에는 당장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이번에는 ‘지금 해볼 수 있겠네?’ 싶었어요. 이번 앨범 이후에 작업을 하면, 본래의 편곡적인 부분에서 어떤 지점이 달라질 지 궁금하기도 해요. ‘조금은 더 비워도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아요.
EP를 두 장 정도 낸 이후에 정규를 발매하겠다는 대략적인 계획이 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EP 두 장을 낸 후 정규 앨범을 발매하셨잖아요. 정규 이후 새로운 EP를 발매한 시점의 사뮈가 보는 당시의 사뮈는 어떤가요?
<농담> 앨범이 나오고 난 뒤 단독 공연을 진행했을 때, 사뮈라는 뮤지션의 음악 인생에서 1막이 끝난 기분이라는 말을 했어요. <농담>을 발매하기까지의 사뮈는 제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능력을 증명해 내는 데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개인적인 만족이나 해소에 비중을 더 크게 뒀던 것 같고, 저한테 위로가 된다면 ‘세상의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해왔어요.
이번 앨범은 제2막의 1장을 여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시작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멋있는 비유네요. 제2막의 사뮈는 어떤 사람이 될 것 같으세요?
결과적으로는 남을 만족시키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음악을 만드는 게 제 일이잖아요.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응원해주시고 계시지만,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값진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듣는 이들이 어떻게 감상할 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은 아예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긴 했어요. 그런데도 이 앨범을 낼 수 있었던 건 ‘이 음악도 내가 생각하는 사뮈의 음악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2막의 사뮈는 어떤 모양으로 나올지,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지도 모르겠지만 사뮈는 사뮈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모양일지는 모르겠습니다.
2023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올해의 남은 시간은 어떻게 보내실 계획인가요?
11월 18일에 벨로주에서 단독공연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보통 4인조 공연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앨범의 무드를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해요.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등 기존에 함께 하지않던 악기들과 함께 공연하는 방식으로 셋을 짜고 있어요. 재미있는 공연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공연까지 하고 나면 연말은 조용하게 쉬면서 보내고. 새해와 함께 다음 앨범과 내년의 모습을 좀 더 구상하게 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팬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사뮈라는 이름으로는 정말 오랜만에 음악이 나오게 됐는데요. 죄송하다는 생각도 들고, 기다려 주셔 감사하다는 생각도 드는 것 같아요. 어찌 됐든 음악을 좋게 들어주셨으면 좋겠구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꿈은 모호하고 신비롭다. 사람들은 꿈을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단서로 사용하거나, 미래를 예견하는 데에 활용한다. 창작자들에게 있어 꿈은 커다란 영감을 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싱어송라이터 시와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시와가 꿈을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방식은 어딘가 색다르다. 꿈에서 영감을 얻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넘어, 자신이 꿨던 꿈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완성하기 때문이다.
올해 8월 시와가 발매한 싱글 <꿈속의 새>는 2017년 꿨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곡이다. 좀처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꿈의 이야기를 완성하고자 그가 택한 방법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저마다의 세계를 포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꿈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실체화하는 모습에서 ‘들여다보고 안아주는 노래를 부른다’는 시와의 음악적 정체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건네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 보이는 시와를 만나 작품과 사람 시와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들여다보고 안아주는 노래를 부르는 음악가 시와입니다.
꿈속의 새가 발매된 지 열흘 정도 지났어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싱글 작업을 하면서 함께했던 사람들을 소개하는 글을 SNS에 시리즈처럼 올리고 있어요. 음악 관계자분들께 보도 자료 같은 것을 첨부한 신곡 소개 메일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발매 후에야 떠올라, 그것을 위한 예열의 시간을 좀 가졌어요. 현재는 좋아하는 음악 필자 두세 분께만 개인적인 안부도 여쭈면서 발매 소식을 전달한 상태예요.
시와 <꿈속의 새> 앨범 커버
<꿈속의 새>는 2017년에 꿨던 꿈을 꾸고 만든 곡이라고 말씀하셨어요.
평소 꿈을 자주 꾸고 관심이 많아서 (꿈에 대한) 공부도 하고 워크샵도 많이 듣는 편이에요. 그래서 꿈을 이해하고 싶은 욕망이 항상 있죠. 꿈은 항상 자기 생각 너머의 것들에 의미를 담고 있대요. 그래서 꿈을 이해하기 위한 활동 중의 하나가 예술적으로 표현해 보는 거죠. 노래를 만든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일기를 써본다거나. 모든 꿈을 노래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 꿈은 노래로 만들게 됐어요.
오랜 시간 동안 품고 있다가 완성된 건데, 특별히 오래 걸린 이유가 있을까요?
꿈을 만들긴 했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멜로디와 가사와 코드는 있지만 어떤 사운드로 표현해야 될지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아서 발표를 못 하고 있었죠. 그러다 6년이 흘렀어요. 한 2~3년 전부터는 이제는 내야겠다, 어떻게든 내야 하지 않을까 구상을 쭉 하다가 오래 걸리게 됐네요.
발매 이후에 마음은 좀 어떠세요?
‘이제는 때가 됐나 보다’, ‘때가 돼서 가장 알맞을 때 이 노래를 발표한 게 아닐까’라는 저만의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이 곡을 어떻게 들었을까가 다른 어느 곡보다도 많이 궁금하고 묻게 돼요. 그런데 제 노래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저만큼이나 말을 아끼는 분들이셔서 잘 안 알려주세요. (웃음) 그래서 늘 궁금해하고 있어요. 누구라도 말해주면 엄청 반가워하고 있어요.
시와가 꿈을 꾼 후 그린 그림
당시에 꿨던 꿈이 정확히 어떤 꿈이었나요?
꿈속에서 집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들어갔는데, 경찰, 선생님, 신부, 수녀, 목사 등등 여러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쭉 둘러서서 무언가를 보고 있었는데, 아는 사람이 누워 있었어요. 그 사람을 둘러싸고 여러 사람이 보기만 하고 있는데, 그냥 안아주고 싶었거든요. 거기서 빼내 주고 싶기도 했고.
근데 그걸 원하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서 가까이 가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그냥 집 밖으로 나왔죠. 집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저기 멀리서 새가 날아왔어요. 새가 날아오는 길이 보였는데, 하늘길이 아니라 땅에 길이 보였어요. 땅에 방울방울 (물기가) 떨어져 지나온 자리가 보이는 거예요. 그런 장면이어서 ‘날아가는 자리마다 땅이 젖는다’ 같은 가사를 썼죠.
곡을 완성해 가는 동안 그 꿈을 둘러싼 생각이나 감정이 변화하던가요?
특별히 그런 건 없었어요. 만드는 당시에는 의미 있는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고, 노래로 만든 후에는 머리로만 생각해 두고 (작업은) 놓고 있었어요. 그런 시간이 보통 예열의 시간인 것 같아요. 어디 들어가거나 시작하기 전에 책상을 치우는 것처럼. 지금까지 하던 방식이랑은 다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예열의 시간을 가진 것 같아요.
발매 이후에는 어떤 변화는 없었나요?
사람들이 어떻게 들었는지를 궁금해하는 걸 적극적으로 표현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그게 변화라면 변할 것 같아요.
그동안에도 고맙다는 말은 했지만, 함께한 사람들을 소중하게 소개한 것도 변화인 것 같아요. 항상 사람을 만나서 작업을 해왔는데 과연 한 사람과 나라는 또 다른 사람이 만난다는 사실을 잘 깨닫고 있었는지, 그분의 역할 만을 바래온 건 아닐지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참여한 사람의 이름을 먼저 쓴 후에 역할을 써봤어요.
사운드나 컨셉트적인 부분에서 그간의 포크 기반의 음악과는 다르게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가미된 곡을 하셨어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꿈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었고요. 2017년 당시에 코드 진행만 정해놓은 게 있었어요. ‘곡을 하나 써야지’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다 이 꿈을 꿨고, 생각해 놓은 코드로 가사랑 멜로디를 한 번에 엮었거든요. 원래 자주 쓰던 코드 진행이 아니라 손으로 짚어가면서 새롭게 알게 된 코드 진행이었어요. 그래서 멜로디도, 노래 자체도 기존에 썼던 것과 다르다 느꼈고, 편곡도 다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전혀 감을 못 잡았지만, 한 2~3년 전부터는 ‘불규칙적인 드럼 사운드로 곡을 시작하면 좋겠다’라고 연상한 것 같아요.
비가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를 드럼으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때쯤에 김사월 씨가 <드라이브>라는 EP앨범에 ‘레슬링’이라는 곡을 발매했어요. 근데 ‘레슬링’이 (원하던 방식으로) 그렇게 시작하는 거예요. 이미 나온 곡이니까 생각했던 방식으로 진행하면 따라 하는 게 되겠다 싶어서 한동안 듣지 않았어요. 그 노래가 너무 좋은데, 혹시나 영향을 많이 받을까 봐요.
카코포니 님이 편곡에 참여하셨잖아요. <꿈속의 새>에서 비가 오는 분위기를 구현해 줄 아티스트로 직접 요청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카코포니 음악의 어떤 부분이 곡과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하셨나요?
<꿈속의 새>가 지금까지 제 노래랑은 다르게 나왔고,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도가 있었어요. 제가 가진 음악적 상상력으로는 뻔할 것 같았고, 다른 분과 작업하면 좋겠다 싶었던 차에 정우의 <옛날이야기 해주세요>를 들었어요. 그 곡이 저한테는 예상치 못한 순간이 있었거든요. 누가 편곡했는지 봤더니 카코포니 님인 거에요. 그래서 바로 메일을 보냈어요.
카코포니 님은 이미 ‘정규 앨범 작업 중이라 피처링 이외의 다른 작업은 받지 않습니다’라고 인스타에 쓰셨더라고요. 이 곡은 발매일을 정하지 않았고, 카코포니 님과 작업하는 게 중요하니 기다릴 수 있다고 말씀드리면서 녹음한 데모도 보내드리고, 곡에서 구현하고 싶은 이미지를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다고 전했어요. 근데 수락을 해줬어요. 기한을 정해두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이 편하셨나 봐요. 또 정규 앨범을 작업을 하면서 중간중간 환기할 기회가 필요하대요. 이 곡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해주셔서 너무 좋았죠.
그때 처음 드린 데모가 이 싱글의 두 번째 트랙이에요. 그래서 청취자분들께는 이 노래의 처음과 완성을 모두 들려드리고자 하는 의도를 앨범에 담았어요.
정우의 <옛날이야기 해주세요>의 어떤 부분이 예상치 못한 편곡으로 느껴지셨어요?
<옛날이야기 해주세요>를 들으면 초반부에 사운드가 빠지고, 정우 목소리만 남아요. 그 부분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리고 나레이션이 등장하는데, 정우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이어받으면서 계속 읽어요. 그것도 감동 포인트였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카코포니 님이 꼭 여러 사람이 읽어야 한다고 했다더라고요.
제가 상상하던 그림은 사월 님이 이미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어떤 길을 가야할지 고민할 때는 정우 님의 음악을 들었네요.
다른 뮤지션들의 작품도 영감의 원천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영감의 원천은 꿈에서 왔다고 말하고 싶고요. 지도는 지도인데, 그쪽으로 가면 안 되는 지도 같아요. (웃음) 이미 서 있는 이정표들을 보고, 다른 길로 가야겠다는 면에서 영향을 받았죠.
<꿈속의 새> 녹음실 현장사진
평소 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편이에요?
인간의 전체의식이 넓은데, 저희가 알고 있는 부분(의식)보다 모르는 부분(무의식)이 더욱 많잖아요. 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부분이어서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알 수 없고, 다른 사람이 자기 생각을 말해줄 때 조금씩 이해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꿈을 이해하려는 그런 학계나 관심 있는 사람들은 ‘그룹 꿈 투사’라는 걸 해요.
그룹 꿈 투사에 대해서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꿈에 관해서 서로의 마음을 비추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예전에 느티나무 아카데미라는 데서 고혜경 선생님이 18명의 사람을 모아두고 봄, 가을마다 워크샵을 내셨거든요. 지금도 하실 거예요. 여기에 네 번 정도 참여했어요. 모인 사람 중에 매주 한 사람이 자신의 꿈 이야기를 내놔요. 그러면 17명이 듣잖아요. 17명이 한 사람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 꿈에 대해서 선명하게 상상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질문을 해요. 그 장면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실제로 꿈을 꾼 사람밖에 없잖아요. 나머지 사람들은 그 이야기와 질문을 통해서 자기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거예요. ‘그 꿈이 내 꿈이라면,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고 말하는 거죠.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 이유가 꿈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이야기’가 아니라 ‘장면’을 노래한다고도 말씀하셨잖아요. 기존의 방식과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그동안 가사를 썼던 걸 생각해보면, ‘장면’을 그리는 노래들도 많긴 했어요. 데뷔곡이라고 할 수 있는 <길상사에서>나 <화양연화>나 <랄랄라>도 그렇고. 듣는 분의 마음속에 풍경이 하나 그려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정리하곤 했어요. 근데 <꿈속의 새>는 실제가 아닌 꿈속의 장면이니까 맥락이 없이 느껴지는 것 같은 거죠. ‘꿈처럼 두서없고 모호한 장면을 듣는 사람에게 어떻게 납득시키지’라는 고민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 도중 인간의 의식과 꿈에 대해 시와가 직접 그림을 그려주며 설명하는 사진
그래서 여러 방식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을 시도하셨던 것 같아요.
꿈이 혼자 이해하려는 것이 거의 무의미하고, 언제나 인식 너머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했듯이, 그 노래를 저 혼자 표현을 못 해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카코포니 님께 프로듀서를 맡아달라고 요청을 드렸고, 꿈 이야기를 자세히 듣기도 전에 멜로디와 가사만으로 자신이 이해한 만큼을 표현해 주신 거예요. 뮤직비디오 작업도 제 꿈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어서가 아니라 그 노래에 담긴 만큼만 자신의 시각에서 해석해 주시는 거죠. 논센소 작가님이 참여하신 앨범 커버도 원래 존재하던 작품이었어요. 당신의 작품으로 커버를 하고 싶은데, 이 노래를 듣고 작가님의 작품 중에 하나 골라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협업 역시 제 인식 너머의 것이었으면 했고 그 과정들을 합쳐보니, 이 꿈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라는 사람이 내 몸을 갖고 살아온 시간 이상의, 이외의 것들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보는지를 계속 알고 싶어 했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꿈속의 새> 음악 자체가 함께한 사람들, 그리고 듣는 사람들과 시와 님이 그룹 꿈 투사를 진행하는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죠. 그럴 수 있죠. 그래서 제가 더욱 다른 사람들이 이 노래를 어떻게 들으셨을지가 그렇게 궁금한가 봐요. 꿈을 이해한 실마리를 더 많이 얻고 싶어요.
협업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어려웠던 점은 크게는 없었는데요. 처음에는 이 작업이 하나의 사물을 여러 방향에서 각각 바라보는 거라는 걸 인식하지 못했어요. ‘내가 보는 방향을 다른 분들께 납득시켜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어요. 그러다 저의 배우자가 그런 얘길 했어요. 이 작업이 당신이 말하던 그룹 꿈 투사 작업이 아니냐고. 사람들에게 당신이 보는 관점을 납득시킬 게 아니라, 그대로 두는 게 꿈을 이해하는 방식 아닐까 얘기해주면서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이를테면 반가사유상이 있어요. 정면에서 보는 것과 측면이나 뒷면에서 보는 반가사유상이 모두 다르잖아요. 제가 보여드린 게 정면이라면, 카코포니 님이 들려주시고자 했던 건 측면이고,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다른 측면이고. 논센소 작가님의 앨범 커버도, 백은선 시인이 써준 소개글도 전부 다른 측면의 일부였던 것 같아요.
그다음부터는 술술 작업이 된 것 같아요. 근데 저와 함께 호흡하셨던 분들은 제가 마이크로 매니징을 한다고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어요. (웃음)
진주 ‘다원’에서 열린 시와의 공연 | Photographer 배길효
올해 벌써 많은 공연 스케줄이 잡혀 있어요. 이번 곡은 어떻게 보여주실 예정이세요?
혼자 솔로 셋으로 할 때는 데모 버전으로 하고요. 11월 12일에는 밴드 셋으로 공연할 예정인데, 그때는 사운드를 최대한 구현하려고 해요. 밴드가 만들어 내는 사운드가 있을 거예요. 아까 말씀드린 반가사유상에 또 한 면이 추가되겠죠? 9월 21일에 밴드 첫 모임 하기로 했거든요. 그 날을 생각하면 무슨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무척 설레요.
곡을 듣고 연주자분들께서 생각하시는 방향들이 또 다를 수 있겠네요.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카코포니 님의 편곡에도 베이스와 드럼 파트를 리얼 악기로 충분히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아 의뢰할까 하다가 마음을 접었어요. 그분들이 연주하면 더 좋아지는 부분도 있겠지만, 카코포니가 구현한 세계가 조금 옮겨갈 수 있잖아요. 카코포니가 구현하는 세계를 그대로 온전히 남겨두는 게 맞겠다 싶어 따로 연주자 의뢰하지 않았어요.
오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이번 시도가 새로웠던 만큼, 음악적인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해요. 앞으로의 작업에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을 것 같으세요?
다음 곡을 발매할 때가 되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인터뷰를 읽으면서 궁금해하실 분이 계신다면 4집 <다녀왔습니다>를 들어봐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거기에도 스펙트럼이 있거든요. 어쩌면 그 안에서 많이 펼쳤기 때문에 그 이후에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라는 미니 앨범에서는 최소화할 수 있었고 그게 <봄을 만든다>까지 갔었고요. 이번 싱글에서 다시 펼친 거거든요. 물론 <다녀왔습니다>는 제가 프로듀싱을 했으니 제 상상력 안의 것이라 <꿈속의 새>보다는 좁을 수 있지만, 그때도 이규호 님이라든가, 굉장히 훌륭하고 멋진 음악가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서 스펙트럼을 확 넓혀서 진행했어요.
<꿈속의 새>를 통해 꿈으로 만든 노래를 발표해 본 경험을 가졌으니까 앞으로 꿈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덜 어려워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감정적인 예감은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구상 중인 계획이 있으실까요?
최근에 오디오북이 나왔어요. 작년에 쓴 <나는 노래하는 시와로 산다> 책이 오디오북으로 오늘 출시됐어요. 네이버 오디오클립, 구글 오디오북과 팟빵에서 들어보실 수 있어요.
다음 발매 계획도 있을까요?
이어서 발표하고 싶은 곡은 다른 음악가랑 함께 작곡한 곡이에요. 진행은 하나도 안 돼 있고요. 곡은 작년 가을에 같이 썼는데 안복진 씨랑 곡을 만든 게 있거든요. 본인은 아직 (이 계획을) 모를 거예요. (웃음) 그리고 이제 5집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작년부터 하고 있어서요. 어쩌면 이전에 4집을 냈을 때처럼 앨범을 먼저 완성하고 차례차례 공개하는 식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좋아서 하는 밴드’의 안복진 씨랑 만든 곡이 다음 후속곡이 될지, 아니면 계획 중인 정규에 수록될지 모르겠지만 복진 씨랑 얼른 작업하고 싶어요.
2022년 출간된 시와 저서 <나는 노래하는 시와로 산다>
앞으로의 시와를 기대해 주실 분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제 본명은 강혜미인데요. 그동안 혜미하고 시와를 잘 분리할 줄 몰랐던 것 같아요. 시와가 곧 혜미고 혜미가 곧 시와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게 지난 18년인 것 같아요. 지금은 시와가 혜미의 부분 집합이라는 걸 의식하기 시작했어요. 매주 인스타 라이브를 하면서부터 인 것 같아요.
그동안 음악 외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 삼가해 왔어요. 근데 라이브를 하면서 어떻게 지내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더니 (의도적으로 외적인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했을 때보다 마음이 훨씬 편하더라고요. 신기하게 시와와 혜미는 다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시와는 혜미일 수 있는데, 혜미는 시와가 아닌 거죠.
제 공연에 찾아와 주시고, 음악을 들어주시는 분들을 예전에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랐어요. 늘 머뭇거리고 소심하게 행동했고, 고맙긴 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었어요. 근데 라이브를 통해서 마음이 많이 열렸어요. 여러분과 대화를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상태가 되었으니, 지금부터의 음악과 활동이 또 제가 생각한 것 이상의 무언가가 될 수 있겠다 싶어요. 그 모습을 지켜봐 주시는 분이 계시면 좋겠어요.
정말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여쭙고 싶어졌어요. 시와와 혜미는 각각 어떤 사람인가요?
시와는 들여다보고 안아주는 사람이기를 바라죠. 혜미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은데요. 누군가 저를 들여다봐 주고 안아주길 바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미리 생각해 본 말이 절대 아니에요. 지금 생각났어요.
지난주 인스타 라이브에서 요조가 쓴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너의 이름에 바칠 수 있는 코드’라는 소제목으로 쓴 글인데, 그 글의 말미에 제 음반 <다녀왔습니다>를 듣고 쓴 글이 있어요. 진짜 나답게 살고 있는지를 고민하며 만든 앨범이어서, 그 앨범의 첫 곡이 새로운 이름을 갖고 싶다는 걸로 시작해요.
근데 요조는 충격이었대요. ‘시와가 지금의 자기를 부정하고 새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단 말이야?’로 시작하는데, 글의 마지막에 저를 돕고 싶다고 썼어요. 너무 좋은 거예요. 여러 번 읽다 소리 내어 읽으니 더 마음이 잘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요? 이 사람이 나를 돕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졌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도움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우느라 마지막 부분을 낭독하기 힘들었어요.
무려 16트랙의 꽉 찬 정규 앨범과 함께 등장한 프로듀서 김도언. 씬에서의 경험과 영감을 바탕으로 그가 쌓아 올린 청각적인 서사는 꽉 찬 볼륨에 못지않은 밀도와 집적된 유기성을 자랑한다. 장르를 넘나드는 유수의 피쳐링진으로 눈길을 끌지만 곧이어 앨범의 끝에 가서는 김도언이라는 인물의 시선으로 귀결되는 이번 앨범은 그만큼 세세한 부분까지 아티스트의 손이 닿아있는 작품이다. 레이블 ‘SoundSupply_Service’ 소속 아티스트로서 본격적인 솔로 활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그를 만나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작품의 겉과 속을 모두 관통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Q. 마침 정규 앨범 발매 날에 인터뷰하게 되었네요. 앨범이 발매된 지 채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시점인데 오늘 하루 어떻게 지내다 오셨나요?
제가 원래 좀 늦게 일어나는데 오늘은 모처럼 발매 날이어서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났어요. 발매가 무사히 잘 됐나 확인도 하고 제가 근처에 사는데 마침 인터뷰 장소가 되게 가까워서 머리 비울 겸 산책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하루였네요.
Q.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SNS 등을 통해서 좋게 들어주셨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도 많고 아무래도 다양한 분들이 참여를 해주셔서 샤라웃도 많이 해주셨던 것 같아요.
Q. 아무래도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김도언이라는 아티스트를 처음 알게 된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번에 [Damage]라는 정규 1집을 들고나온 김도언이라고 해요. 처음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던 게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될 때쯤부터였던 것 같은데 그때부터 항상 앨범 단위의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더라고요. 그 시간 동안 주로 만나게 됐던 분들이 오히려 음악 하시는 분들 보다도 음악 외적인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가령 미술이나 영상을 하신다거나 그림을 그리신다거나 전방위적인 예술 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많이 만났는데 그럴 때마다 그분들도 제가 음악 하는 걸 아시다 보니까 이래저래 외주 격으로 부탁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래서 전시 형태로 이루어진 작업에서 배경 음악 작업을 한다던가 졸업 작업을 준비하는 친구의 단편 영화 배경 음악이나 애니메이션 배경 음악 등을 작업하기도 했어요. 알게 모르게 음악이 필요한 일들을 많이 했던 것 같고 또 그와 동시에 음악에 필요한 일들, 예를 들면 믹싱 같은 일들도 마다하지 않고 했었어요. 사실 다 재밌었기 때문에 일이라기보다 작업의 일부로 해왔던 것 같네요.
Q. 그 작업들이 어떻게 보면 전부 정규 작업을 위한 밑바탕이 됐다고도 볼 수 있을까요?
네, 충분히 도움이 됐죠. 사실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만들 수 없던 앨범이에요. 왜냐면 그 경험들 하나하나가 저한텐 다 도전이었기 때문인데, 외주라는 특성상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기준이 있고 그것들이 전부 저 혼자서는 두지 않았던 기준이거든요. 그걸 미션처럼 수행했던 기억이 있어요. 예컨대 전시 음악 같은 경우는 사진과 어우러지는 20분짜리 음악을 만드는 작업이었는데 클라이언트 측에서는 되게 미니멀한 음악을 요구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 당시에 꽉꽉 채우는 것에 급급해서 비우는 작업이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그 일을 함으로써 비우는 연습이 됐죠. 그리고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도 서사가 있는 작업이다 보니까 고조되는 파트에 맞춰서 초 단위의 디테일을 요구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되게 힘들었지만 도움이 됐어요. 물론 영화 음악도 마찬가지고 일단 저한테 부탁을 주셨던 작업자분들이 저보다도 좋은 음악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계신 분들이었어서 많이 배우기도 했습니다.
Q. 단순히 완성이 미뤄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 과정에서 내실을 다질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네, 그렇죠.
Q. 디스코그라피 찾아보다 ‘잠자코도’라는 이름으로 한때 활동하셨던 것도 눈에 띄었어요.
그 이름으로 처음 활동했던 게 이수호 님의 앨범에 참여했던 건데 그때는 본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아예 못 하기도 했고 뭔가 예명이 있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별 뜻 없이 지었던 이름이에요. 그 당시에는 제가 인스트루멘탈이나 기악곡 위주로 만들었다 보니까 보컬이나 가사 같은 언어 없이도 감상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잠자코도’라고 지었죠.
Q. 그러다 활동명을 본명으로 바꾸게 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그렇게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웃음) 뭐랄까 나중에 가서 생각해보니까 굳이 제가 그런 음악만 할 것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 앨범을 제가 직접 만들고 전면으로 나설 상황을 앞두고 있다 보니까 그냥 나한테 제일 익숙한 이름이 맞겠다 싶기도 했고. 그리고 그 예명이 입에 계속 안 붙었어요. 괜히 민망하기도 하고 (웃음). 그렇게 본명으로 바꾸고 나니까 마음이 좀 편해졌던 것 같아요.
Q. 이름 따라간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활동명에서부터 한계가 규정되어 버리는 느낌도 있었겠네요.
네, 오히려 약간 답답하더라고요. 이름에 맞춰서 뭔가 해야 할 것 같고, 그리고 그 ‘잠자코도’라는 이름으로 엄청 활발하게 활동하지도 않았어서 본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Q. 뒤에서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나누겠지만 이번 정규 앨범 피쳐링진도 인상적이에요. 친분이 있는 분들 위주로 섭외하신 건가요?
그런 분도 있고 아닌 분도 있는데, 한주 님과 소윤 님의 경우는 작년에 제가 이수호 님의 [Monika]라는 앨범의 믹싱 엔지니어로 참여했을 때 같이 믹싱 세션을 가지면서 처음 만났어요. 그 이후에 몇 달이 지나서 앨범 데모를 들어달라고 따로 연락을 드렸고 감사하게도 두 분 다 흔쾌히 응해주셨어요. 그 외의 분들 같은 경우는 다 작업 때문에 처음 뵙게 된 분들이었는데 직접 작업 요청 메일을 드렸어요. 그때 되게 긴장이 많이 됐는데, 왜냐면 일단 팬으로서 너무 좋아하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연락이 닿았을 때 너무 기뻤던 기억이 있어요.
Q. 참여해주신 분들이 장르적인 다양성도 인상적이더라고요. 실제로 도언 님의 장르 전반적인 관심이 반영된 부분일까요?
요즘은 어떤 특정한 장르에 초점을 맞추는 게 어려운 시대라고 생각해요. 조금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저를 포함한 또래 친구들 대부분이 미디어나 컨텐츠에 많이 노출되어 있고 중독도 되어 있단 말이죠. 예컨대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러시아 영화감독 중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라는 분이 있어요. 보통 호흡이 느리고 긴 시간의 영화를 만드시는데 그분 영상을 유튜브로 보다가 버튼을 몇 번 잘못 누르기만 해도 ‘매운 팽이버섯 먹방’ 같은 쇼츠가 갑자기 뜨는 거예요. 아니면 요즘 카페 같은 곳에서 턴테이블이나 바이닐이 놓여 있고 80년대 소울 알앤비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사실 알고 보니 아이맥에서 틀어진 애플뮤직 플레이리스트였다던지 하는 순간에 느껴지는, 이상한 경계선에 놓여있는 것 같은 기분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 시대는 무겁고 가벼운 게 혼재되어 있는, 뒤섞여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그 경계선 사이를 오갈 때 저는 약간 머리가 붕 뜨는 기분을 느끼거든요. 돌고 돌아 처음 해주신 질문에 답을 하자면, 그런 상태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까 실제로 모호한 경계선에 놓은 결과물들이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제 삶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 보니 어떠한 ‘장르’에 관심을 두었다기보다 많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섞여버린 거죠.
Q. 자연스럽게 앨범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이번 정규 1집 [Damage]에 대해서 도언 님이 직접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Damage]는 제 첫 번째 앨범이에요. 어린아이를 화자로 내세우고 크게는 ‘순수성’과 ‘폭력성’을 키워드로 생각하며 작업했습니다.
Q. 도언 님이 생각하시는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번 작품은 그것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기보다 질문을 던져보는 느낌이에요. 여기서 구성적인 장치가 하나 있는데, 1번 트랙이 ‘청명(淸明)’이라는 제목이고 마지막 16번 트랙이 ‘Green Screen (feat. Fisherman)’인데 그게 사실은 수미상관 느낌으로 배치했던 거예요. ‘청명’의 한자 뜻을 풀어보면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인데 푸른 하늘과 그린 스크린 사이의 경계도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모호한 느낌을 의도했던 것 같아요. 중국 철학자 장자가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라고 했던 ‘호접지몽’이라는 이야기하잖아요. 그러니까 청명과 그린 스크린 사이에 놓은 트랙들 전부가 판타지일 수도 있는 거고 현실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거죠. 그렇게 의도적으로 경계가 모호하도록 만들었던 것 같네요.
Q. 전체적으로 디테일한 설계가 눈에 띄어서 들으면 들을수록 다시 보이는 지점이 많은 앨범인 것 같아요. 이렇게 많은 공을 들이신 솔로 작품이신 만큼 그간의 외주 작업이나 다른 아티스트 앨범에 참여하셨던 것과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점이 있었나요?
단순하게 생각해봤을 때 결국 외주냐, 내 작업이냐의 차이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가, 아니면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초점을 맞추는가의 차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것도 사실 차이가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타인과 이야기를 하고 그들을 이해하다 보면 어느 순간 오히려 나 자신에 대해서 이해가 되는 순간도 있고 반대로 오로지 나 자신에 대해서 집중을 하려고 할 때도 자연스럽게 타인이 생각이 날 때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결국에는 끝에 가서 맞닿아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어쨌든 솔로 작업을 함에 있어서 제가 주도적으로 완성까지 끌고 나가야 하니까 조금 더 책임감도 생기고 중간중간 스스로 지치지 않도록 당근과 채찍을 적당히 줘야한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Q. 당근과 채찍을 어떤 식으로 주셨는지 궁금합니다. (웃음)
사실 당근을 잘 못 줬던 거 같은데 주로 그냥 훌쩍 국내 여행을 떠났던 것 같아요. 진짜 작업하다가 너무 안 돼서 새벽에 그냥 강원도에 갔던 적도 있어요. 일단 자신한테 너무 잡아먹히는 느낌이 싫어서 전시도 보러 다니고 계속 환기를 시키려고 했던 것 같은데 사실 구체적인 방법은 매번 달랐던 것 같네요. 어쨌든 작업실을 나오는 것. (웃음)
Q. 앞서 해주신 이야기 중에 두 작업 스타일이 결국 맞닿아있다고 하신 내용도 재미있어요. 그렇다면 마치 타인을 이해하듯이 나 자신도 타자화해서 바라보신 적도 있을까요?
네 맞아요. 타자화, 객관화해서 멀리서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아니면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그리고 차분해지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사실 모든 작업자분들이 그렇겠지만 고독해지는 순간이 많이 있는데 그때를 잘 이겨내려고 했던 것 같네요.
Q. 참고로 이번 앨범은 저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인상적으로 들었어요. 물론 4월 말 발매된 선공개 싱글이 있기는 하나 본격적인 데뷔 작품은 이번 [Damage]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싱글 위주의 시장 흐름 속에서 이렇게 거대한 규모로 커리어를 시작하신 의도가 궁금합니다.
사실 생각보다 그 이유는 단순해서, 그리고 아까 음악 시작하던 시절에 앨범 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씀드렸던 이유도 제가 소비하던 음악이 주로 앨범의 형태였기 때문에 그게 저한테는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그렇다 보니 생산자 입장에서도 앨범 단위로 아웃풋이 나오게 된 것 같아요.
Q. 특히 이번 작품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대주제가 확실하기도 해요. 아무래도 규모 있는 작업이다 보니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사실 쉽지 않았는데요. (웃음) 16트랙이지만 데모로 치면 거의 20~30트랙까지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결국에는 비워내고 덜어내고 재배치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한 곡 안에서도 파트가 있다 보니까 그 안에서 퍼즐 느낌을 주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했어요. 근데 그 퍼즐 조각을 맞추는 데 있어서 하나의 그림 같이 정답이 있는 퍼즐이라기보다 자유롭게 상상의 여지를 많이 남겨두고 싶었던 앨범이었어요. 물론 제가 속으로 생각했던 이야기는 있지만요.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1번 트랙 ‘청명(淸明)’에서 다음 트랙 ‘Newbie (feat. 이랑)’로 넘어가는데 여기서 ‘Newbie (뉴비)’가 인터넷 용어로 어떤 게임에서 시작 단계에 있는 사람을 말하기 때문에 그때부터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을 설정하고 시작이 되는 셈이에요. 사실 이 앨범은 게임과도 많이 맞닿아있어서 그런 설정을 넣었던 트랙이기도 해요.
Q. 곡 간의 유기성이나 서사를 설계하시는 것도 만만치 않으셨을 것 같네요.
배치하는 데 있어서 어쨌든 제가 듣기에 음악적으로 잘 연결되는 구조로 가져가고 싶었고 제 트랙들에서 이펙트나 노이즈 같은 요소가 되게 많기 때문에 진행될수록 단순해지는 구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무드에 있어서는 비교적 밝은 느낌의 초반 트랙들을 앞에 배치하고 중간중간 마치 날씨가 어두워지듯이 어두운 느낌의 구간을 중후반부에 배치했는데 마지막에 다시 그 구름이 걷히는 느낌으로 직관적인 장치를 많이 이용하기도 했죠.
Q. 마치 소설로 치면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는 사건처럼 이번 앨범에도 서사에 방점을 찍는 특별한 트랙이 있을까요?
16개 트랙 중에 9번 트랙 ‘SaGA’가 제일 어떻게 보면 그런 챕터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요. 8번 트랙 ‘When You Were…’는 이제 9번을 위한 힌트의 역할을 하고 있고요. ‘SaGA’는 소설이나 이야기 속 영웅담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제목인데 이때부터 연달아 나오는 트랙들의 분위기가 비교적 어두운 편이에요. 이 트랙을 통해서 분위기의 전환을 가져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음악과 함께 하는 뮤직비디오도 인상 깊어요. 지금까지 총 두 곡의 뮤직비디오가 나왔고 영상을 비롯해 앨범 커버 같은 비주얼적인 부분 또한 도언 님의 작품 속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아트 디렉션을 저랑 전재민이라는 친구가 함께 맡았는데요, 그 친구는 ‘요새 (feat. So!YoON!)’ 비디오 디렉터도 하고 싱글 아트워크, 앨범 아트워크까지 맡아서 해준 친구예요. 작업 초반의 기획 단계 때부터 음악적인 부분까지도 피드백을 주고받아서 자연스럽게 비주얼과 음악이 섞이게 됐어요. 그리고 황현진, 박형준, 이수호, 윤준희 같은 창의적인 디렉터들과도 평소에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기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아왔어요.
Q. 뮤직비디오도 직접 참여하신 부분들이 많은 편인가요?
비디오 같은 경우도 음악만큼이나 신경을 저도 많이 썼죠. 저도 사실 뜬금없이 몰래몰래 나오는데 아마 못 찾으실 거예요. (웃음) 저도 어떻게 보면 스탭 역할로 촬영장에 항상 갔었죠.
Q. 주변에 시각 작업자들이 많이 계시다 보니 다방면으로 영감을 주고받으시는 것 같네요.
네, 맞아요. 그리고 다들 앨범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주시는 분들이라서 더더욱 따로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Q. 사운드적인 측면도 재미있게 들었어요. 굉장히 다양한 요소가 얽혀있는데 평소에 이런 음악적인 영감은 어디서 받으시는 편인가요?
물론 양한 인풋이 있지만 저는 악기 자체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제가 처음으로 가져봤던 악기가 아이폰에 있는 ‘가라지밴드’라는 어플이에요. 작은 핸드폰에서 다양한 악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그 후 컴퓨터로 환경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가상악기와 플러그인을 만져보며 제가 좋아하는 소리를 만들게 됐던 것 같아요. 영감이 어디서 따로 오는 편은 아닌 것 같고, 실제로 기술을 다루고 익히며 경험으로 배우는 편입니다.
Q. 인터넷 라디오 ‘Worldwide FM’에서 객원 믹스셋으로 참여하신 소식도 들었어요. 전세계를 대상으로 송출되는 방송에서 한국 가요들을 선곡해주신 것이 인상 깊었는데 한국 가요에서도 작업적인 영향을 받으시는 편일까요?
물론 관심 가는 한국 가요가 있지만 앨범 전반에 걸쳐 한국 가요의 영향이 들어갔다고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싱글로 나왔던 ‘요새’ 같은 경우가 좀 두드러지게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네요.
Q. 마치 고전 게임을 연상시키는 전자음들도 재미있는 요소 중에 하나에요. 앞에서도 잠깐 이번 앨범에 녹아든 게임적인 요소들을 언급해주시기도 했는데 평소에 게임도 많이 즐겨 하시는 편이신가요?
사실 게임에 재미를 붙여보려고 했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재미를 느끼고는 싶은데 자꾸 플레이어로서 몰입은 잘 안 돼요. 다만 사운드트랙 같은 건 많이 좋아했어요. 유일하게 열중해서 했던 게임이 초등학교 때 닌텐도 게임보이로 하던 ‘포켓몬스터 골드 버전’인데 생각해보면 그때 그 음악들이 영향이 있기는 했을 것 같아요. 유저는 아니지만, 관련 음악을 디깅하면서 ‘크로노 트리거’나 ‘파이널 판타지’ 같이 한 명의 주인공이 세상을 탐험하는 RPG류 게임의 사운드트랙을 개인적으로 좋아했죠.
Q. 보컬리스트 혹은 싱어송라이터에 비해 가창을 겸하지 않는 프로듀서라는 역할은 곡 작업 과정을 바라보는 각도도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래도 다양한 피쳐링진을 자랑하는 앨범이기도 한 만큼, 보컬이라는 요소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갖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평소에 주로 인스트루멘탈 음악을 들어서 목소리를 음악적인 소스 단위로 쓰는 악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 앨범에서 가창을 겸하는 뮤지션분들과 협업을 하며 가사가 주는 힘을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Q. 예를 들면 어떤 곡에서 그런 느낌을 크게 받으셨나요?
방금 말씀드린 ‘Newbie (feat. 이랑)’라는 트랙이 그래요. 이랑 님이 “위험, 위험, 위험, 주의, 주의, 주의”라고 경고 신호 같은 사인을 주시거든요. 덕분에 이미지가 확장된 느낌을 받기도 했고요. 소윤 님이 참여했던 ‘요새 (feat. So!YoON!)’ 같은 경우에는 글로만 보면 어두울 수 있는 내용이 멜로디가 붙으니까 서로 이상한 모순을 만들어내는 것도 느꼈고요.
Q. 말씀하신 것처럼 각양각색의 목소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얹어진 모습들이 인상적이에요. 곡별로 피쳐링 아티스트를 선정하셨던 특별한 기준이 있으셨을까요?
네, 그렇죠. 그리고 기본적으로 제가 너무 좋아했던 앨범들을 내주신 분들이라는 게 또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었던 것 같고, [Damage]의 각 곡에 들어있는 특징적인 사운드가 어울릴 것 같은 목소리를 가진 분들께 섭외를 드린 것 같아요. 예를 들어, Newbie에서 콘트라베이스가 주가 되는 파트가 있는데, 이랑 님의 음악에서도 콘트라베이스가 두드러지는 인상을 받았기에 그 트랙에 요청을 드렸어요.
Q. 정말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재미있는 앨범이에요.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오늘이 딱 앨범 발매일이라서 더 의미 있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후에 이번 앨범에 관련된 추가적인 활동도 계획 중이신가요?
일단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뮤비가 더 릴리즈될 예정입니다.
Q. 혹시 앞으로도 정규 단위의 활동을 이어갈 생각이실까요?
미정. 아직은 미정이고 일단은 앨범을 기준점으로 삼아서 다음을 향해 움직일 것 같긴 해요. 그렇지만 중간중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니까. 저도 언젠간 싱글로 낼 수도 있다 생각을 하고 아니면 누군가와 협업을 할 수도 있고 사실 어떤 포맷을 딱 정해두진 않았어요.
Q. 그렇죠. 마치 활동명을 본명으로 정하셨던 계기처럼 굳이 벌써부터 길을 좁혀둘 필요는 없으니까요. (웃음)
그렇죠. (웃음)
Q. 이후의 작품활동은 어떤 식으로 이어지게 될지에 관한 도언 님의 간단한 힌트와 함께 마지막 한 마디 부탁드리면서 인터뷰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음반 같은 경우는 ‘인더박스’라고 하는데 컴퓨터 하나로 끝내버리는 작업이었거든요. 다음에는 라이브 레코딩을 한다던가 워크 플로우를 좀 바꿔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그리고 5월 말쯤에 CD가 소량 제작될 예정인데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웃음) 참여해준 모든 친구들 너무 모두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어요.
질문지를 준비하는 내내 사적으로도, 동시에 공적으로도 계속해서 물음표가 이어졌던 부분이 하나 있다. 어쩌면 아래 이어질 내용의 핵심일지도 모를, 과연 ‘인간 오하이오래빗’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마치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상반된 음악 스타일을 꾸준히 병행해온 그의 광범위한 커리어에서부터 이어진 물음이었다. 그렇게 이번 인터뷰는, 이다지도 멀게만 느껴지는 평행선 사이 어디쯤에 녹아있을 이야기들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시작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는 어느 한쪽을 굳건히 대표하기보다 평행선 같은 양극단을 이어붙이고자 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리하여, 공교롭게도 본인 스스로 ‘래빗’임을 자처한 오하이오래빗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부단히 나아가는 중이다. 음악 생활의 시작부터 크루 활동과 솔로 작업, 그리고 최근 발표한 첫 번째 EP [덤]으로 까지 이어지는 유연한 맥락은 지금의 그를 충분히 설명해줌과 동시에, 자연스레 우리의 시선을 그의 다음 행보, 그리고 그다음 행보 너머로 향하게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하이오래빗이라고 하구요. 스스로 래퍼라는 타이틀이 좀 더 적합한 인물이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굉장히 오랜만에 이런 단위의 앨범을 내는 것 같은데 제가 작업물이 많은 편도 아니지만 많이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앨범 발매 후에 인터뷰가 업로드될 텐데 어떤 식으로 앨범을 들으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재밌게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공식적으로 다룬 적은 없지만 사적으로 굉장히 많이 물어보시는 질문이에요. 이름 따라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름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서 그때마다 적절한 답변을 찾기가 어렵더라구요. 우선은 거창하거나 멋진 뜻을 담아서 지은 이름은 아니에요. 제가 한창 랩을 연마하고 있던 20대 초반, 2015, 2016년 즈음에 사운드 클라우드 씬이 굉장히 활발했는데 그때쯤에 기존에 쓰던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바꿔야 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마침, 그 당시 한창 혁오의 ‘Ohio’라는 노래를 굉장히 많이 듣고 있었던 것과 함께 또 마침 ‘래빗’에도 한창 꽂혀 있었어서 ‘아 오하이오래빗이다’라는 생각에 만들게 된 이름이에요.
Q. 다른동물도아니고토끼에꽂히신이유가있을까요?
왜 토끼에 꽂혀있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크리스마스 래빗’, ‘X-Mas 래빗’ 같은 후보들도 있었는데 주변 친구들한테 물어봤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 OLNL (오르내림)이라는 친구가 오하이오래빗이 가장 나은 것 같다고 말해줘서 결정됐던 것 같은데 유튜브에 제 이름을 쳐보면 실제로 오하이오주에서 토끼를 사냥하는 영상이 많더라구요. 그래서 ‘사냥당하는 토끼’ 같은 이미지를 갖고 가고 있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 이미지도 나름 나쁘지 않은 것 같았어요.
Q. 그래도그 ‘사냥당한다’라는이미지를긍정적으로해석하신거겠죠?
관련해서 한 가지 이야기 드리자면, 제가 첫 앨범을 냈을 때 멜론에서 댓글로 유명하신 어떤 리스너분이 “비정한 세상, 피 토하는 음악”이라고 댓글을 달아주신 적이 있어요. 버벌진트님이 그 제목으로 곡도 발매하신 적도 있는데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제 정규 작업물에 한해서는 스스로가 자존감이나 자신감을 내뿜는 스타일보다는 공격당하는 느낌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고 저 자신도 그걸 나쁘지 않게 생각하고 있더라구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사냥당한다는 이미지와 제 이름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Q. 그렇게 ‘오하이오래빗’이라는이름의공식데뷔작이기했던정규 1집 [ㄹ위한정신적사랑]은신예라고보기힘든짜임새덕분에반대로그이전아마추어시절의활동을궁금해하시는분들도많을것같아요.
사운드 클라우드라는 매체를 기반으로 크루 활동을 했었어요. ‘juiceoveralcohol’이라고, 그 당시 멤버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쿤디판다, OLNL, ACACY 등등 여러 친구들이 있었는데 소울렉션이 한창 인기였기 때문에 퓨쳐베이스 기반으로 작업물을 계속 내던 시기가 있었어요. 2016년부터 2018년쯤? 그 2년 동안 20곡 정도를 작업하면서 꾸준히 발표를 이어갔던 것 같아요. 근데 그 작업들을 생각보다 점점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제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이전까지는 제가 정규 1집에서 보여드린 것처럼 서사적인 내용보다는 한창 랩에 빠져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냥 뭔가 ‘랩을 잘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이어갔었는데 정규 단위의 작업물에 와서 좀 진지하게 할 수 있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네요.
Q. 서사적인메시지전달에대한니즈도그때쯤부터커지기시작하셨던거군요?
그 이전에도 그런 것들에 대한 열망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걸 표현할 능력이 안됐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규 앨범을 만들면서 처음 시도해 본 것들이 많았어요. 서사적으로 짜임새 있는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2020년 4월쯤에 전역을 하고 그 후에 정규 앨범에 대한 답가를 만들고 싶어서 [구애]라는 싱글로 저 스스로를 향한 답가를 발표하기도 했구요. 음악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안 해본 시도들을 계속하면서 지냈어요. [구애] 이후에 [뉴부자관광]이라는 싱글도 내고, 열심히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작업하면서 지냈습니다. (웃음)
Q. 열심히내실을다지고계셨군요.
네 그랬던 것 같아요.
Q. 오랜만에규모있는작업을완성하신소감도궁금해요.
가장 큰 소감이라면, 저는 확실히 데드라인이 정해져야 작업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고 느꼈고 (웃음). 사실 저번 정규 1집을 낼 때는 이번 앨범이 음악 인생에서 마지막이겠거니 하면서 작업했어요. 물론 이번 작업 때는 그런 생각을 덜 하긴 했지만 앨범을 낼 때마다 텐션이 가장 낮아지는 것 같아요. 뭔가 마무리하면서 집중력은 올라가지만 결과적으로 자존감이 좀 떨어지지 않나.
Q. 그감정에대해서조금더자세히설명해주실수있을까요?
저번 앨범은 굉장히 짜임새 있게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서사적으로 모든 플롯을 짜놓고 곡 제목부터 먼저 정하고 작업하는 식이었어요. 그래서 어떠한 ‘완성물’이라는 것이 굉장히 눈에 잘 띄어서 ‘와 완성했다’라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앨범은 그런 서사라던가 계획 같은 것이 전혀 없이 그냥 하나의 묶음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서 ‘이게 완성이 됐나 안됐나’라는 생각이 컸어요. ‘내도 될까’라는 생각까지 있었는데 우선 발매일이 잡히고 마음속으로 데드라인이 정해지면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충실히 마무리했습니다. 그래도 항상 그렇지만 제 음악이 싫어지는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뭔가 못난 부분만 보이고. 그리고 딱 전달을 드리고 제 역할이 끝났다 싶어지면 다시 제 노래가 좋아지더라구요.
Q. 정규 1집당시 “음악인생에서마지막이겠다”라고생각하셨다는부분도인상적이에요. 실제로음악을접으려고하신건지, 아니면그런마음가짐으로임하셨던건지궁금합니다.
실제로 그만두려고 했었고 (웃음), 사실 24살에 시작한 군생활이 생각보다 너무 길게 느껴져서 2년이라는 시간이 끝나면 다른 길을 찾아서 떠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정규 1집도 사실 굉장히 억지로 희망차게 끝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도 하구요. 실제로 같이 작업하던 비트메이커 친구들한테도 그게 아마 마지막 앨범인 것 같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었고. 근데 또 계속할 이유를 못 찾았던 것과 별개로 그만둘 이유를 찾는 게 더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잘 하는 걸 계속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그래서전역후에 [구애]라는답가도만드시고다시행보를이어나가신거군요?
네, 그렇죠.
Q. 이제슬슬신보이야기로넘어가볼게요. 먼저이번 EP [덤]에관한소개부탁드립니다.
이번 작품은 8곡이 수록된 EP 앨범이고 제목은 ‘덤’이에요. 사실 제목을 정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원래도 곡 제목 정하는 것을 힘들어하는데 특히 더 힘들었던 이유가, 이번 작품이 ‘묶음’ 이나 ‘모음집’ 같은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이걸 한 단어로 묶어줄 게 별로 없었어요. 여러 안들이 있었는데, 예를 하나 들자면 저의 스물여섯부터 스물여덟을 표현하는 것 같아서 제 나이를 쓰려고도 했어요. 아니면 그냥 듣기 예쁜 이름들을 생각하기도 했는데 결국 덤이라는 제목으로 정해졌어요. 사실 그냥 느낌이 좋아서인 것도 있지만 어느 순간 이번 앨범이 ‘덤덤해지는 감정’에 대해서 조금씩 꾹꾹 눌러 담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조금 회의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 앨범을 만들면서 느꼈던 제 하루하루가 덤처럼 그냥 살아가는 것 같다고 느껴지기도 했구요. 물론 덤이라는 이름이 예뻐서인 이유가 커요.
Q. 앨범의영어제목은 ‘Dumb’으로표기하셨더라구요. 이것도뭔가의도가담긴제목일까요?
사실 멋이 없을 수도 있는데 (웃음) 영어 제목에 대해서 생각을 전혀 안 하고 만들다가 ‘덤’을 어떻게 영어로 바꿔야 될까 친구한테도 물어봤거든요. 그런데 예쁜 단어가 없더라구요.
Q. 그렇죠. 한국말의뉘앙스를오롯이담아내는영어단어가없다보니까.
네, 그래서 그냥 ‘Dumb’이라고 적었는데 사실 그 의미 자체는 꽤 부정적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한국어로 적은 ‘덤’도 생각보다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고 직관적으로 보기에도 예쁘기도 해서 ‘Dumb’으로 짓게 되었습니다.
Q. 의도하신워드플레이가아닐까생각을했어요.
아 그렇게 말할 걸 그랬나요. (웃음)
Q. 말씀하시는내용을듣고보니작업방식에서도꽤많은변화가있으셨던것같아요.
뒤에 이어질 질문과도 연관이 있겠지만, 어떤 이야기를 피력하거나 아니면 서사적인 몰입을 위해 끝까지 놓치지 않고 들어야 하는, 가사적으로 집중해야만 하는 음악들에 대해서 ‘이런 것들만이 좋은 앨범일까?’ 같은 의문이 들었어요. 사실 힙합이라는 장르 안에서 보자면 꽤 필수 불가결한 명반의 기준일 수도 있지만 제가 듣는 음악이 변해서일 수도 있고 피로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그냥 듣기 좋은 노래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했어요. 그런데 제가 어떤 주제나 할 이야기를 정하고 쓰는 것에 익숙해져서 작업을 못하겠는 거에요. 그래서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메모장 켜고 생각 나는 단어들을 적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마치 추상화를 그리는 것처럼 생각을 비우고 만들었는데 그런 곡들의 연속인 것 같아요. 그런데 결국 저는 제 감정에 대해서밖에 쓸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결이 다 비슷한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완성되어서 그 부분은 만족스러워요. 그렇지만 반대로 정답이나 가이드라인을 정해놓지 않고 만들어서 확신이 하나도 없기도 했어요. 목표로 했던 것이 없기 때문에 노래가 다 만들어졌을 때 이게 잘 나온 건지에 대한 판단을 오직 제 감에 의존해서 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 피드백도 잘 안 들었던 것 같지만 동시에 애정이 더 가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구애] 이후에 [뉴부자관광]이라는 싱글을 냈었어요. 그 당시 막연하게 인트로로 쓰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이번 앨범의 인트로를 장식하게 돼서 좋네요.
Q. 처음부터어떤규모있는작업물의인트로를염두에두시고만드셨던곡일까요?
‘뉴부자관광’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덧붙이자면, 그냥 길을 걷다가 집 가는 길에 있던 버스 정류장에서 ‘뉴부자관광’이라고 적힌 버스를 봤는데 이름이 되게 강렬한 거예요. 물론 그저 어떤 회사의 이름이었을 테지만, 사람들이 놀러 가기 위해 이용하는 관광버스 조차도 ‘새로움’이나 ‘부자’ 같은 이미지를 쫓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렇게 해서 작곡가 ‘honu’라는 친구와 같이 만들게 된 노래에요. 그리고 편곡적으로 봤을 때 뒷부분이 굉장히 난해하고 불친절해서 뭔가의 인트로를 장식하면 너무 멋있을 것 같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처음 만들 때부터 ‘인트로처럼’이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Q. 혹시여덟트랙중에뉴부자관광을제외하고조금더애착이가는곡이있을까요?
발매자료 넘겨드리기 이틀, 하루 전에 ‘비밀’의 뒷 부분이 추가되었는데 그 부분이 앨범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해준 것 같아서 그 곡을 가장 많이 듣고 있긴 해요. 그런데 설명을 따로 드리고 싶은 곡은 사실 ‘fade’라는 곡이에요. 이 곡은 다른 곡들과 다르게 만들어진 이유가 조금은 있는데요,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부모님이 유튜브를 자주 보시거든요. 그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한 번 관심을 갖고 보기 시작하면 추천 동영상에 계속 그것에 관련된 영상이 나오는데 이게 방대한 정보의 바다 안에서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자연스럽게 일상 속 생각을 한 쪽으로 강제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실제로 그런 의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 같아서. 이런 것들이 자꾸 다양한 생각들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서 굉장히 무섭다는 생각을 한창 가졌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만들어지게 된 노래에요.
Q. 도입부에서부터이어지는영어가사는어떤의미를담고있나요?
벌스 1에 되게 길게 영어 가사가 나오는데 처음에는 그 내용을 한글로 전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굉장히 현학적이면서 가르치려고 하는 것 같아서 제가 용납을 못하겠더라구요. 조금 번역을 해보자면, ‘구글 추천 검색어가 너를 한쪽으로 생각하게 한다.’, ‘핸드폰 뒤에 있는 선악과 로고가 사람들을 옥죄게 한다.’ 같은. 이걸 한국어로 전했을 때 너무 부담이 심할 것 같아서 듣는 분들도 가볍게 넘어갈 수 있게 못 하는 영어를 써가면서 작업했던 기억이 있어서 특히 ‘fade’에 애착이 갑니다.
굉장히 웃긴 말이지만 예전부터, 정규 1집 만들던 시절에 저는 스스로가 사랑 노래를 잘 만들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아이러니하게 제목에도 사랑이 들어가는 앨범을 만들게 됐네요. 그 당시 사랑이라는 키워드는 굉장히 폭넓은, 어떤 정답에 가까운 것의 대체어처럼 사용했던 것 같아요. 앨범 소개글에 “날, 널, 우릴 위한 정신적 사랑”이라고 적었던 것처럼 ‘사랑’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 이번 EP를 만들면서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만들었지만 무의식 속에서 꺼내 만든 음악들에서도 사랑이라는 키워드가 유효한 것을 보면 1집 때의 가치관을 제가 스스로 조금 증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재미있어요. 물론 이번 앨범에도 ‘lily’ 같이 사랑에 관한 노래가 있는데 그것을 어떤 ‘정답’이라는 생각 없이 그냥 제가 겪고 느낀 사랑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두 앨범의 사랑이라는 키워드의 느낌은 조금 다른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제 삶에 빗대어 보면 비슷한 결론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Q. 그렇다면그사이에발표된 [구애]에서의 ‘사랑’은어떤모습일까요?
구애라는 제목이 워드 플레이인데 사랑을 갈구한다는 의미와 어떤 것에 구애받는다는 뜻의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실제로 뒷부분에 ‘구애받지 않게 된다’라는 내용의 스님 목소리가 잠깐 나오기도 하구요. 그 곡은 어떤 정답 같은 사랑을 찾던 것에 너무 집착했던 저 자신에 대한 답가에요. 무언가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것 자체가 조금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이후 발매된 곡들도 잘 끼워 맞춰보면 결국 비슷한 결로 나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 앨범은 뭔가 흩어지거나 무의미해지는 느낌이 강해요. 사랑 노래인 ‘비밀’ 마저도 뒷부분 가사에 “잘 가, 건강해” 같은 표현들로 끝나다 보니까 조금 더 이번 앨범 맥락이 모아지는 것 같네요. 우선 1집은 의도적으로 해피엔딩을 만들었고 이번 앨범은 어떤 의도 없이 살면서 느낀 감정들에 대해서 표현한 거라 자연스럽게 무언가 희미해진다거나 사라진다는 느낌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그것들이 제 마음속에 이미 단단해진 생각들 중 하나인 것 같네요. 처음부터 사운드적으로만 잘 이어지면 좋겠다는 의도가 가득했는데도 불구하고 동일한 감정선을 보여드릴 수 있었던 건 제 음악이 굉장히 수필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떤 작가의 수필 모음집을 보면 그 사람의 특정 시기의 이야기들이 다 비슷한 범주 안에 포함되는 것처럼 제 음악도 그런 결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우선은 굉장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처음 정규 1집을 만들 때만 해도 하이햇이 잘 안 들렸어요. 음악에 대해서 순전히 저의 감으로만 작업했던 사람이었고 랩이나 가사적인 부분에 훨씬 중점을 뒀었거든요. 막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사운드에 굉장히 무지했었는데 전역 후에 우연찮게 Snaggle Owky 프로듀서님의 비트 레슨을 받게 되었어요. 이번 앨범에 참여해주시기도 한 분인데 그분 덕분에 조금은 듣는 귀가 넓어진 것 같아요. 그 과정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가사가 전달되는 힘보다는 그냥 의도된 ‘듣기 좋음’을 바탕으로 사운드적인 걸 많이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목소리가 너무 가공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해요. 단 한 개의 보컬 트랙도 일반적인 믹스가 된 트랙이 없거든요. 어린아이가 찰흙으로 뭔가 만들어가듯이 막 조립해서 말도 안 되는 걸 가지고 좋지 않냐고 물어보면, 믹스, 마스터를 담당해준 ACACY라는 친구가 그 타협점을 잘 잡아줘서 가능했던 일이에요. 아무래도 가사적으로 전하고 싶은 주제가 없다 보니 곡의 기승전결을 사운드에 의지하게 된 것이 컸거든요. 예를 들면 ‘앞 쪽의 어떤 딜레이가 걸려서 어떤 이펙트가 나왔으면 그것이 점점 심화되면서 어떤 식으로 곡이 끝나야 조금 더 감동이 있지 않을까’ 같은 것들에 집중했고. 가사가 했던 역할의 빈자리를 사운드가 많이 채워준 것 같아서 좋습니다.
그렇죠. 목소리가 주가 아니고 다 같이 조화로운 하나의 감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악기로써 사용이 된 거 같아요.
Q. 말씀하신내용에이어가사중심의랩비중이 1집보다도더줄어들었다는사실도눈에띄어요.
제가 하루에 평균적으로 음악을 50곡을 듣는다고 한다면 48곡은 랩이 없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나왔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게 단순히 취향에 기인하기보다는 제가 래퍼로서의 커리어를 이어감에 있어서 심리적으로 조금 불편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서리 크루 활동같이 힙합의 범주 안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간다고 했을 때, 물론 그 문화의 멋을 부정하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저는 저라는 사람이 그것에 잘 융화되지 못한다고 느꼈거든요. 뛰어들어서 감내한다는 느낌이 굉장히 컸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좀 기피하게 됐던 것 같아요. 어떤 노래를 만들 때도 옛날에는 그냥 제가 랩을 잘하고 랩이 좋았기 때문에 뒤에 이어질 커리어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점점 나이가 차면서 음악적으로 어떤 것을 이룰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지금의 심리 상태로는 힙합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간다면 제가 너무 불행해질 것 같았어요. 자존감을 펼친다거나 공격적인, 힙합 안에서 용인되는 멋에 있어서 제가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서리 앨범에 벌스로 참여했던 것도 저에게는 도전이었어요. 그래서 창작이라기보다는 기술적으로 무언가에 맞추어나간다는 이미지가 훨씬 컸고. 물론 아직도 제가 더 잘하는 것은 랩이지만 개인 작품 안에서는 조금 더 맘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랩의 비중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Q. 혹시힙합을처음시작하셨을당시에도마음에불편함같은것들이있으셨을까요?
아니요, 전혀 없었죠. 그때는 랩을 굉장히 좋아하는 소년이었고 (웃음). 이건 저만의 피해 의식이고 못난 부분이지만, 제 주위에 있는 분들이 열심히 자기 작업물을 펼치는 모습을 봤을 때 무력감을 느낄 때가 조금 많았어요. 제가 말할 수 있는 저만의 멋과 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와는 다르게 씬 안에서 통용되는 멋과 어떠한 스타성 같은 것들과는 스스로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느꼈거든요. 그 부분에서 ‘내가 달라져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어느 순간 그냥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생각이 커졌던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조금 자신감 넘치는 답변을 하자면, 랩은 사실 언제든 어느 정도는 잘하기 때문에 그냥 해달라는 부탁이 있을 때마다 알겠다고 하고 해도 어느 정도 괜찮은 작업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다만 그 부분에 있어서 제가 힘을 더 쏟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놓고 있지도 않은 이유는 여태껏 커리어를 쌓아오면서 래퍼로서의 모습을 기대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제가 잘할 수 있는 무기 중에 하나라고도 생각해서예요. 물론 서리가 거의 유일하긴 하지만,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듯이 어떤 기술의 영역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커리어에 있어서 눈에 띄는 발전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너무 무의미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게, 우선은 꽤 즐거워요. 서리 크루 활동이. 물론 대외적으로 어떻게 비칠지는 모르겠지만 힙합의 최전선에 있는 그런 느낌도 있고 냉정히 말해서 거기에 제가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힙합 파이 안에서 리스너분들께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언젠가는 제가 힙합의 멋에 조금 더 매력을 느끼고 그런 라이프 스타일에 녹아들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늘어나는 거라고도 생각해서 놓지 않고 있어요.
Q. 혹시작년쇼미더머니도 ‘할수있으니까한다’라는느낌으로참가하신걸까요?
우선은 제작진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나갔던 것도 있는데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도전의 의미가 훨씬 컸어요. 그리고 쇼미더머니를 나가기 전에 제 개인적인 상황이 너무 힘들어져서 무언가 시선을 돌릴 곳이 많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Q. 자기자신의시선을돌릴곳이필요하셨다는말씀인가요?
네,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언가에 열중할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했어요. 방송 자체에는 거의 안 나왔지만 돌이켜보면 굉장히 빡센 랩들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도전이 잘 되지 않았던 이유는 제가 쌓아왔던 것들에 의한 개연성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방송에서 예쁘게 포장될 수 있는 스타성을 갖고 가기에는 저에게 준비된 것들이 많이 없었고, 물론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제가 힙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억지로 랩을 하면서 무대를 준비했었기 때문에 오히려 떨어졌을 때 납득이 많이 됐어요. 자이언티, 슬롬 팀의 무대를 보고 너무 감명받아서 팀 선택을 부탁드리러 갔는데 그때 좀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제 모습이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어떻게 보면 제가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말도 안 되는 어떤 것을 설득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찌 보면 잘 되지 않은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Q. 결과만놓고보았을때아쉬움이나후회같은감정은없으셨을까요?
많이 아쉬웠죠. 그래서 한동안은 쇼미더머니에 관련된 것들을 잘 찾아보지 않고 길거리에 관련된 노래가 나와도 이 악물고 모른 척했어요. 그 당시 조금 불편했던 일도 있었는데, 서리 친구들이 소코도모 씨의 ‘BE !’라는 노래를 리믹스했었어요. 그때 저한테도 참여 제안이 들어왔었는데 저는 그 팀에 지원했다 떨어졌거든요. 그래서 그 당시 저는 ‘내가 왜 해’라는 태도였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내가 이걸 왜 직면하지 않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기도 했고 별로 제 마음가짐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해서 노래를 막 들어봤는데, ‘회전목마’가 너무 좋더라구요. (웃음) ‘아 이거 좋네’ 하면서 많이 들었습니다. (웃음)
우선은 굳이 나눠보자면, 다른 정체성이 맞아요. 지금까지 오하이오래빗이라는 이름으로 낸 앨범이나 작품들이 조금 더 저에 가깝다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구요. 서리 크루라던가 빡센 랩을 뱉을 때처럼 저의 유약함을 강하게 어필해야 할 때, 그러니까 센 척 해야 할 때는 굉장히 날카로워져요. 평소에 누가 저를 칭찬할 때도 못 견뎌 하는 성격인 만큼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표현할 방도가 없기도 하고 용납이 안 되기도 해서 그 시도의 일환으로 자연스럽게 좀 저 자신을 향해서 날카로워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두 방향성은 다른 캐릭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죠. (웃음) 사실 이번 앨범을 내면서 ‘이름을 바꿔서 내도 모르겠는데?’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실제로 이름을 바꿀까 하는 생각도 몇 번 했었고. 저도 인지하고 있었던 거죠. 그동안 제 노래를 즐겨들어 주셨던 분이라면 꽤나 예상치 못한 음악들일 테니까요. 투 트랙 활동 중 하나를 다른 자아로 만들어서 가져갈까 하는 고민도 했었는데 주변에서 많이 말리더라구요. 사실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 느끼고 있는 것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제가 이기적인 태도를 취해왔던 것 같아요. ‘내가 만드는 노래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내가 지는 건데 그냥 나 좋은 거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물론 앞으로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힙합적인 모습을 좋아해 주시던 분들과 이번에 나온 음악의 괴리가 점점 줄어들수록, 둘 다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가져온다면 저도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것 같고 음악적으로도 많은 성취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사실 이 질문을 받고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다른 내용은 쉽게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음악적인 방향성이나 목표 같은 것은 제가 이걸 하고 있는 이유와도 굉장히 밀접한 내용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음악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음악이라는 것이 조금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타인의 인생에 영향을 주기가 쉬운 것 같더라구요. 어떠한 영향력이 힘이 될 수 있는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람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어떤 감흥을 주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막연할 수도 있지만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치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그리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자신감의 결여로 인해서 표현하지 못하는 이야기들도 할 수 있게 되고 두 가지 방향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듣는 분들께 앞서 말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게 음악적으로도 스스로가 만족스러울 것 같고 제 삶에 있어서도 굉장한 축복일 거라고 생각해요.
Q. 그모든것들이융합됐을때의모습이어떻게될지저도기대가많이됩니다. 혹시 EP 발매이후의구체적인계획도있으실까요?
사실 인터뷰 전에는 힙합이나 랩에 대해서 조금 더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것과 더불어서 또 들었던 생각은, 이번에 제가 들려드린 음악들이 너무 가공된 맛이었는데 개인적으로 감흥이 오래 갔던 감동은 가공되지 않은 노래들에서 얻었던 경우가 많았더라구요. 그런데 그걸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건 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사운드적으로도 그렇지만 이야기하는 내용도 조금 더 거침없을 필요가 있지 않겠냐는 생각도 들어서 우선은 힙합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사실 잘 모르겠네요. (웃음)
Q. 마지막으로하고싶으신이야기가있다면부탁드립니다.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요, 말씀드렸던 ACACY라는 친구가 없었으면 이번 앨범이 못 나왔을 거예요. 사실 앨범을 같이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사운드적으로 신경을 많이 써줘서 마지막으로 감사 인사 한마디를 남기고 싶네요.
은도희라는 음악가는 특별하다. 포크음악을 하지만 전자음악의 성격을 띠고 있고, 처음 발표한 정규 앨범 [Unforeseen]에서는 그보다 조금 더 넓은 스펙트럼을 들려준다. 다양한 장르의 요소를 입혔지만 그것이 모두 포크 안으로 귀결되는 듯했고, 그의 포크 음악은 본 이베어(Bon Iver)처럼 자연스럽게 확장을 꾀하는 듯했다. 은도희의 첫 앨범 관련 인터뷰를 위해 가을에 그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미안하게도 인터뷰는 한참이 지나 공개되었고, 그래서 새롭게 발표하는 싱글 “Barefoot”에 관해서도 짧게 들어봤다. 그래도 은도희의 디스코그래피와 음악을 이해하는 데에는 약간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Q. 앨범 발매 이후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제가 원래 앨범 내고 나면 작업을 안 해요. 기타도 안 치고 아예 오디오 인터페이스 전원을 꺼놓고 안에 넣어두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한 두 달 지내다가 쉬고 이제 개인적으로 해야 되는 일들 하다가 요즘에 다시 곡 쓰고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Q. 첫 정규 앨범이잖아요. 그러면 좀 신경도 많이 쓰셨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다른 앨범에 비해 마음가짐이나 이런 게 좀 달랐는지도 궁금합니다.
좀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좀 더 제가 하고 싶었던 작업들, 옛날부터 하고 싶었던 음악들 위주로 하려고 하고 그래서 이제 믹싱도 혼자 한 게 좀 컸던 것 같아요. 좀 더 제가 원하는 거를 그래도 90% 정도 끌어내고 싶어서 편곡도 좀 혼자 많이 해보려고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Q. 지니 매거진이 올라왔을 때 보니까 한 7개월 정도 작업하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긴 시간이기도 한데 그 시간 동안 좀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하셨는지, 어떻게 보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때 제가 잠시 본가에 내려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근처에 작업실을 찾고 그냥 틈날 때마다 작업실 가서 녹음하고, 생각보다 다른 앨범보다는 좀 편하게, 마음도 편하게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는 대신에 결과는 생각하지 말자 뭐 이런 생각으로 좀 편하게 작업했어요.
Q. 그러면 수록곡 중에 처음 만들어진 곡이 “혀”하고 “오래된 말”이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보면 한국어 가사가 먼저 나온 거잖아요. 그렇게 작업하게 된 이유가 있으실까요? 워낙에 영어로 작업도 하셨었으니까 한국어 가사가 좀 더 먼저 나왔다는 게 궁금해서요.
정규를 내면 한국어 곡을 많이 들어가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국어 곡이 두 곡 정도 더 있었는데 작업하다가 뭔가 너무 똑같더라고요. 내용도 좀 비슷하고. 그런 곡은 서로 비슷해서 빼고. 그리고 나서 이제 그 중간에 들어가는 “Les Augen”이라는 두 곡을 대신 넣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들어갔던 방향이랑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Q. 그러면 “혀”하고 “오래된 말” 작업하고 나서 다른 곡들을 계속 쓰셨던 거잖아요. 그러면 계속 그 뒤의 곡들을 쓰면서 조금 고민했던 거나 ‘이렇게 써야겠다’ 하셨던 게 좀 있으셨나요?
그런 건 없었어요. 제가 그때 12월에 이제 하던 일도 코로나 때문에 한 달 동안 강제로 쉬게 돼서 한 2주 동안 아무것도 안 하다 연말에 거의 그 정규 앨범에 있는 곡들을 한 2주 동안 되게 열심히 다 썼어요. 그래서 이제 그때 다 만들고 나서 버릴 거 버리고 가질 것 가지고 그렇게 하다가 한 3월쯤에 곡 구성이나 컨셉 같은 것들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Q. 그러면 조금 앨범 안에서 순서 배치나 이런 것들은 좀 어떤 기준으로 배치하셨나요?
그게 엄청 많이 바뀌었어요. 원래 그 반대였어요. 원래 처음에 한국어를 다 넣고 이제 뒤쪽에 영어 곡들을 넣으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공들인 걸 위에 넣어야 된다고 해서 그래서 그거 위주로 위에 올렸던 것 같아요.
Q. 그러면 앞이 확실히 좀 더 공을 들인 곡이군요.
네 좀 더 그런 것 같아요.
Q. 사실은 이전에 이제 [모든] 냈을 때도 그렇고 약간 한국어로 된 곡이랑 영어로 된 곡이 조금 뭔가 다르다고 느꼈었는데 이번 앨범은 앨범 안에 있는 곡들이 되게 그래도 다 같은 결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기존 작품하고는 다르다 생각했어요. 한국어 가사를 쓸 때 어떤 부분을 좀 더 고민하셨는지 이런 것들도 좀 궁금했어요.
사실 한국어 곡을 쓸 때의 가사가 다 제 이야기나 아니면 제가 겪었던 일들이 많아요. 그래서 혹시 그걸 누군가가 알아채거나 그 곡에 나왔던 대상이 그걸 알까봐 저는 그게 항상 많이 걱정이 돼요. 그래서 이제 한국어 가사를 쓸 때는 좀 더 무모하게 바꾸거나 다양한 해석이 나오게 바꾸려고 해요.
Q. 첫 번째 곡 얘기부터 해볼 텐데 첫 번째 곡 “Uncertainly”는 아무래도 좀 짧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사운드스케이프가 워낙 명확하고. 도입부라는 것을 좀 의식하고 곡을 썼을까요?
원래 첫 번째 인트로로 들어갈 곡이 다른 곡이 있었어요. 근데 그걸 작업하다가 재미없어서 사실 도중에 쓴 곡이었어요. 근데 썼는데 뭔가 생각보다 괜찮다고 생각을 하다가 보컬을 녹음하고 마음에 안 들어서 한동안은 안 들었어요. 한참 동안 안 듣다가 버스에서 들었는데, 인트로 곡으로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서 다시 작업을 했어요.
Q. 이게 어떻게 보면 전대한님 소개글에도 쓰여 있듯이 약간 다운템포 느낌도 있어요. 그리고 예전에 쓰신 글들을 봤을 때도 처음에는 연주해줄 사람이 없어서 에이블톤으로 작업을 하셨다고 그렇게 말씀하셨는데요. 그러면 곡에서 만들어지는 그런 사운드스케이프는 전자음악의 방향으로 고민을 하신 건가요, 아니면 작업하다 보니까 그렇게 나오신 걸까요?
제가 이제 대학교 때 전자음악 전공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아마 제가 그때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쓰는 곡들은 지금 혼자 할 수 있는 것들로만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아마 학생 때 좀 패드 들어가고 엠비언트 사운드, 좀 많이 느린 다운 템포 음악만 써서, 많이 있었던 게 그렇게 나왔던 것 같아요.
Q. 그러면 이전에는 그런 음악들을 좋아하시고 만들고 하셨나요?
네 맞아요. 신스가 많이 들어가거나 아니면 아예 피아노만. 왜냐하면 제가 그전에 기타를 못 쳤어요. (웃음) 기타를 못 쳐서 이제 또 배울 힘이 없길래, 그래서 이제 신스 위주의 곡을 많이 썼어요.
Q. 그러면 궁금한데, 연주해줄 사람이 없어서 에이블톤을 택했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처음에는 전자 음악 하시다가 나중에 그런 연주로 된, 세션을 쓰거나 이런 것들로 넘어가게 되신 건가요?
네 왜냐하면 처음에 이제 학교 준비를 할 때는 그냥 ‘이걸 해야 되니까 이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하다가 학교에 가서 제가 듣는 음악을 들었는데 죄다 밴드 음악이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팀을 같이 해서 그 전에 잠깐 밴드 하다가 다시 혼자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지금 하는 세션분들이랑 같이 작업을 하고 있어요.
Q. 그러면 원래 처음 좋아했던 곡 음악들은 좀 어떤 음악들이었어요?
저는 고등학생 때는 지금 생각하니까 팝 음악도 많이 들었고 한국 음악도 많이 사실 많이 들었었는데 그때 그냥 저희가 지금 들으면 되게 익숙한 팝 음악들 있잖아요. 그런 것도 되게 많이 들었었던 것 같아요.
Q. 지금 세션들이 워낙 고정적으로 오래 해 오셨잖아요. 세션들하고는 어떻게 연이 닿게 된 건지도 궁금하거든요.
혼닙 씨는 그냥 친구 소개로 알게 되었다가 기타를 너무 제 스타일로 치길래 잡아놔야겠다 해서 계속 같이 연주를 하고, 드럼 치는 분은 혼닙 씨랑 학교 동기였어요. 뭔가 잘 어울릴 것 같다 해서 같이 작업하고. 베이스 치는 친구는 학교 친구의 친구여서 이제 너무 오랫동안 알던 친구다 보니까 제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서 부탁하기 편해서 계속하고, 또 사운드도 되게 제가 원하는 느낌으로 잘 잡아줘서 같이 하고 있어요.
Q. 그러면 작업 방식은 주로 어떻게 되나요? 아예 만나서 이렇게 녹음을 같이 받으시는지, 아니면 녹음을 따로 받아서 그냥 작업하시는지.
제가 제 곡에 좀 집착이 강해요. (웃음) 그래서 처음에 데모를 제가 먼저 다 만들어요. 기타 메인 라인이라든지 드럼 메인이든 베이스 메인 할 것들, 꼭 바꾸지 말아줬으면 하는 것들을 미리 다 찍어서 그거를 보내주고. 기타는 녹음실에서 안 하고 혼닙 씨가 그냥 혼자서 작업실에서 해서 보내주고 드럼은 주로 녹음실에서 받아요. 그때 베이스도 같이 받고. 아니면 베이스는 이제 저희 집에 가서 옆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Q. 그러면 녹음된 걸 받으실 때도 있지만 직접 가셔서 이렇게 디렉션을 주실 때도 있는 거네요.
근데 주로 이제 세션분들이 다 원하는 느낌을 아셔서 딱히 디렉션을 안 하고 그냥 같이 빨리빨리 잘 끝나는 것 같아요.
Q. 내용이 약간 건너뛰는데, 밴드 음악을 좋아하셨다고 하셨는데 또 어쨌든 전자음악으로 입학하게 되신 거잖아요. 그럼 전자음악으로 입학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왜냐하면 제가 처음에 작곡을 배우고 있었는데, 건반으로 안 치는 게 재미가 없고 싫은 거예요. (웃음) 사실 어떻게 큐베이스라는 걸 보고 시작했는지 기억은 안 나요. 근데 그냥 컴퓨터에서 드럼을 내가 찍을 수 있고, 미디를 찍을 수 있다는 걸 어떻게 해서 안 다음에 이제 ‘아, 나는 저기도 재밌을 것 같다’ 생각해서 하게 되었어요.
Q. 그러고 나서 자연스럽게 전자음악에도 좀 관심 있으셨나요?
전자 음악은 사실 잘 몰랐어요. 학교 준비하면서 선생님이 이것저것 알려주셨는데 그때 제가 처음 들었던 게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 포티스헤드(Portishead),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 이런 사람들이었는데, 밴드 느낌도 나고 좋아서 듣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Q. 사실 영향을 받은 음악가나 음악이 어떤 건지 되게 궁금했거든요. 예전에도 노보 아모르(Novo Amor)나 코난 모카신(Connan Mockasin) 같은 음악가를 좋아한다고 하셔서, 그러면 좀 더 팝에 가까운 음악을 좋아하시나 궁금했어요.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되게 자주 바뀌어요. 뭔가 조금만 마음에 들어도 그 아티스트의 앨범만 한두 달 정도 계속 듣거든요. 근데 꾸준히 계속 들었던 건 영국 밴드 도터(Daughter)의 음악을 제일 많이 들었고, 베스 기븐스(Beth Gibbons) 솔로 앨범이 포크 앨범이에요. 그래서 그 앨범만 계속 꾸준히 들었던 것 같아요.
Q. 많은 음악을 또 좋아하시고 거쳐오셨는데, 그 가운데 포크를 조금 더 중심에 둔 이유 같은 게 있나요?
제가 듣는 음악들 보니까 통기타가 많이 나오고 보컬들이 힘이 다 빠져 있는 그런 것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이런 걸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만들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Weak] 앨범이 제가 제일 하고 싶었던,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앨범이었어요.
Q. “Time” 같은 경우에도 어쨌든 라이브 클립으로도 나왔는데 악기들 간의 밸런스 같은 것들이 되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어떻게 구현할까, 이 밸런스를 어쨌든 한 공간에서만 녹음하지는 않을 거니까 제작할 때는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을까 했는데 집착이 비결이었군요. (웃음)
근데 그 세션분들이 제가 노래 부를 때 목소리가 작아서 드럼도 되게 살살 쳐주시고 기타는 그리스도 다 살살 쳐주세요.
Q. 그렇게 하면서 섬세함이나 이런 게 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기도 하네요. 다음은 “Songbird”인데 제일 애착이 간다고 꼽은 곡이기도 하지만 곡의 전개도 그렇고 드럼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는 은도희 님의 음악 중에서도 제가 제일 좋아했던 그런 것들이 이 곡에 집약돼서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처음에는 원래 지금의 곡처럼 안 만들었어요. 사실 그냥 옛날 팝 느낌, 90년대 팝 느낌처럼 쓰고 싶어서 만들었던 건데요. 뭔가 괜찮다는 느낌만 있고 막 좋다고 느끼지 못해서 되게 이것저것 많이 해봤어요. 그리고 또 제가 좋아했던 음악이 찰리 푸스(Charlie Puth) 같은 그런, 어쿠스틱 기타와 같이 전자 드럼이 나왔던 음악도 되게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만들어야지 하다가 중간중간에 그냥 제가 좋아했던 것들이 다 섞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중간에 코러스가 끝나고 이제 악기만 나오는 부분이 있고, 거기도 그래서 그냥 평소에 좋아하던 그런 게 나온 것 같아요. 어울리는 사운드도 넣어보고, 제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저도 다 넣어서 좋아했던 것 같아요.
Q. 지금까지 얘기를 들어보면 좋아하시는 음악 중에는 사실 하이파이에 가까운 음악도 많은데, 앨범을 들어보면 완전 로우파이하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앨범만의 질감이 강하게 있어서 신기하네요. 앨범 안에 담겨 있는 질감이나 지금까지 작품을 발표했을 때 그때 그 질감들이나 이런 게 결이 꾸준하게 유지된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초반에 냈던 앨범은 믹싱을 제가 하지 않았어요. 근데 이후에 그 앨범들에 맞춰서 제가 하는 곡들을 비슷하게 믹싱하려고 했고 또 기타 세션은 계속 혼닙 씨가 쳐줬고 한 사람이 계속 작업을 해줘서 그 느낌도 계속 이어져서 그런 것 같아요.
Q. 사실 믹싱이 어떻게 보면 한없이 길어질 수 있는 작업인데요. 믹싱 레퍼런스를 둘 수도 있지만 어떤 날에는 마음에 들어도 다음 날 들어보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잖아요.
예전에는 믹싱에 대해서 뭔가 좀 약하다고 느꼈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어떤 소리를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뭔가 제가 그냥 제 기준점을 정한 것 같아요. ‘이 정도면 됐다’. 그래서 주변에서 조금만 더 해보라고 하는데 그러면 해 놓은 것이 무너질까 봐 좀 걱정이 돼서, 제 기준에서 좋다 까지는 아니어도 이 정도면 괜찮다고 느끼면 거기서 멈추는 것 같아요.
Q. 이후 “Les Augen” 두 곡이 연달아 있는데 사실은 뭐 앨범 안에서도 그렇고 나름 어떻게 보면 되게 파격적인 곡이잖아요. 곡의 생김새도 그렇고 뭔가 다른 장르가 좀 더 전면에 드러나는 느낌인데, 이런 걸 좀 넣어야겠다 생각하고 구현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사실 이거는 다른 팀으로 내려고 했어요. 그래서 저 이름으로 3, 4도 있어요. 근데 다른 팀으로 낸다는 게 많이 부담스러워서 그냥 제 이름으로 낼까 고민하다가 “Songbird”랑 조금 더 어울릴 것 같아서 뒤에 연달아서 넣었어요.
Q. 그러면 다른 프로젝트들도 계속 준비하거나 고민하시는 게 있으신 건가요?
네. 고민은 하고 있는데, 제 이름으로 내는 거랑 별반 다르지가 않아서 이걸 프로젝트로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그냥 제 이름으로 내야 하나 아직도 고민이 좀 많이 되는 것 같아요.
Q. 잠깐 다른 얘기로 넘어와서, 그 전에 이제 2016년에 크레센트라는 밴드를 하셨잖아요. 그때 음악은 제가 들어보니까 완전 일렉트로팝 느낌이더라고요.
학교 친구 중에 목소리가 되게 좋았던 친구랑 같이 만들어서 팀으로 활동을 했어요. 그래서 그때 한 홍대에서 두 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공연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하다가 시간이 좀 지나니까 제가 하고자 했던 방향과 밴드 친구들이 하는 방향이 좀 달라져서 저 혼자 해야 할 것 같다고 얘기를 했죠.
Q.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은도희님 음악을 들으면 사람들이 겨울, 유럽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더라고요. 곡을 쓸 때 이런 분위기를 내야겠다 의도하신 건지 아니면 좀 자연스럽게 그런 이미지가 이렇게 쌓인 건지도 궁금했거든요.
[Weak] 앨범 내고 나서 다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조금 신기하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곡을 쓸 때 뭔가 이미지를 생각하거나 뭔가 그런 걸 안 하고 그냥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작업을 하거든요. 근데 제가 2016년에 아이슬란드 뮤지션들 음악만 계속 들었을 때가 있어요. 그런 비슷한 사람들의 음악만 계속 듣는데 그분들 사운드가 제가 되게 좋아하는 느낌이에요. 뭔가 저음이 많이 없고 좀 몽글몽글한 소리가 있는. 그래서 그걸 저도 만들고 싶다 생각하다 보니까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나 하고 생각은 했던 것 같아요.
Q. 포크 음악에도 되게 애정이 있으신 것 같은데 어쨌든 포크 음악이라고 하면 사실 한국에서는 아직 전통적인 형태의 곡들이 더 많은데요. 보통 포크 하면 이제 그런 음악을 떠올리는데 그런 것들과 조금 다른 결을 갖고 있으세요.
맞아요. 그리고 왜 한국어로 안 쓰냐고, 한국어로 가사를 써봤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해 주시는 분도 있어서 뭔가 써보고 싶은데, 사실 그래서 앨범 작업할 때 정말 힘들었어요. 인디 포크 신이 있었다는 것도 2015년인가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그전에는 한국 포크 음악이 어떤 건지 잘 몰랐어요. 그래서 좀 지금도 일부러 들으면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아직도 조금 어려운 것 같아요.
Q. 2016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언플러그드에서 공연을 했을 때는 전통적인 형태의 포크 음악에 가까운 편성으로 하셨어요.
그때 이제 제가 처음에 포크 음악을 썼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혼닙 씨랑 둘이서만 작업을 하기도 했었고 그냥 제가 아는 방식이 그거여서 저도 이제 그렇게 그냥 시작했던 것 같아요.
Q. 그러면 기타와 건반 중 곡을 쓸 때는 어떤 악기가 좀 더 쓰이나요?
요즘은 기타로만 쓰는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원래 피아노가 훨씬 더 편하거든요. 기타로 치면 약간 좀 힘들 때가 많아요. 계속 똑같은 것만 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근데 좀 더 제가 기타를 혼자서 배웠고, 가끔씩 혼닙 씨가 가르쳐줘요. 보다가 답답해서. (웃음) 코드 잡는 걸 좀 가르쳐줘서 그걸로도 치고, 또 잘 모르는 건 그냥 귀로 들으며 만들어요.
Q. 그러면 뭔가 혼닙 님께 원하는 형태의 퍼포먼스를 얘기하면 알아서 구현해 주시는…?
네. 부탁을 하면 원하는 사운드를 잘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특정하게 ‘이렇게 해줘’라고 구체적으로 부탁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그 딱 느낌으로 해 주더라고요.
Q. “혀”는 어쨌든 단어 자체가 직설적인 느낌이 들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좀 고르신 이유가 있으신지도 궁금했거든요.
전부터 말을 혀가 한다고 생각을 자주 했어요. 그냥 혀가 움직이니까 그걸 오랫동안 왠지 모르겠지만 많이 생각했고, 이 가사를 쓰면서 곡에다가 ‘혀’라는 가사를 넣었는데, 그 곡을 다 쓰고 나서 계속 ‘혀’가 제 머릿속에는 많이 남았어요. 뭔가 입이라든지 목보다는 저한테 혀가 그냥 좀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혀가 주는 이미지도 그렇고.
Q. 마지막 곡은 본인이 아닌 신온유 님이 부르셨는데, 그렇게 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그 곡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한참 뒤에 썼던 곡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제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말을 아예 하지를 않았는데 후에 좀 마음이 괜찮아져서 그 곡을 썼어요. 그리고 노래도 뭔가 다른 사람이 그냥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솔직하게는 나보다 좀 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다가 온유 목소리가 제가 좋아하는 밴드 보컬이랑 확실히 다른데 저는 뭔가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어요. 빅 티프(Big Thief) 밴드의 메인 보컬이랑 언어도 다르고 다 다른데 그냥 뭔가 제가 느꼈을 때는 소리가 좀 비슷하다고 느껴져서 본인한테도 부탁을 했던 것 같아요.
Q. 저는 사실 그 라이브 클립 보면서도 좀 되게 감탄했던 것 중의 하나가 질감이나 사운드 스케이프가 라이브에서도 그렇게 드러난다는 거였거든요.
제가 사실 그거를 그냥 너무 좀 간단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근데 영상을 찍으면서 오히려 고생을 하고 녹음은 괜찮았어요. 라이브 믹싱도 제가 해서 곡과 비슷한 느낌이 났고, 스튜디오 로그에서 민상용 감독님께서 워낙 잘 받아주셔서 그랬던 것 같아요.
Q. 계속 소리에 관해서 얘기를 했는데요, 다른 주제로 넘어가서 가사를 보면 타인과의 관계에 관한 가사들이 있잖아요. 근데 그러면서도 관계의 대상보다는 화자인 주체가 더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관계를 얘기하다가도 결국 스스로의 이야기인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주로 곡을 쓸 때, 기분이 안 좋거나 그럴 때는 작업을 아예 안 해요. 그래서 다운이 된 게 다시 올라오고 걱정했던 일들이 다 해결이 되면 이제 그걸 가사로 많이 써요. 그래서 아무래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보다 다 끝나고 나서 제가 느낀 것을 많이 쓰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Q. 반면에 “Time”은 굉장히 밝은 가사였어요. 그런 건 기분이 좋을 때 쓰시는 편인가요?
그럴 때도 쓰긴 하는데, 중의적으로 남겨둘 때도 많아요. “Time”을 썼을 때는 제가 신나기도 했지만 해야 할 일을 일부러 외면하고 친구 만나고 맛있는 거 먹고 이랬던 것들도 좀 담고 싶었어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도 있고요. 일부러 그렇게 쓰려고도 했어요. 곡 분위기가 밝으니까요.
Q. 정규 앨범 내기 한 8개월 전에 세 곡이 담긴 앨범을 발표하셨어요. 데이먼스 이어(Damons Year)도 참여했는데, 그때 코멘터리를 보면 그 앨범 내고 힘이 많이 빠졌다는 얘기를 쓰셨어요. 아무래도 2019년에 너무 꾸준히 발표해서 그랬는지 궁금했거든요.
그랬던 것 같아요. 근데 사실 저는 작업하고 곡을 내는 거는 스트레스는 안 받아요. 곡을 내는 건 재밌는데 이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자꾸 내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좀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냥 좀 마음에 들면 자꾸 내니까 지나고 나서 제가 못 듣겠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내가 계속 들을 수 있는 곡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서, 좀 지쳐서 프랑스로 도망갔던 것 같아요.
Q. 그러면 정규 앨범은 그래도 돌아봤을 때 그래도 어느 정도 마음에 차시나요?
그런 것 같아요. 제가 가끔씩 듣기도 하고. 아쉬운 게 있기는 한데 ‘난 내가 하고 싶은 거 했어’라는 마음이 들어서 홀가분해요.
Q. [모든] 작업기를 공개하셨을 때 이게 거의 한 1년간의 기록이더라고요. 그래서 보통 작업 과정이나 이런 게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했어요.
저는 곡을 뭔가 써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그냥 뭔가 지금 뭔가 해야 할 것 같다고 하는 신기하게 나올 때가 많아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메인 리프라든지 멜로디랑 가서 어느 정도 만들어 놓고 그걸 되게 오랫동안 들어요. 이거를 낼까 말까, 낼까 말까를 계속 고민하면서 한 몇 주 아니면 몇 달 정도까지 듣다가 앨범 발매 날짜를 잡고 작업을 보다 하는 것 같아요.
Q. 그렇게 해도 나중에 내고 나서는 만족을 못 하시는 경우가 있군요.
네 그런 경우는 제가 작업을 하면서 좀 힘이 빠져서 덜 신경을 썼던 부분들, 그런 부분들 때문인 것 같아요.
Q. 확실히 사운드에 있어서 디테일에 많이 신경 쓰시는 편이시군요.
좀 그런 것 같아요. 뭔가 제가 원했던 그 느낌이 있으면 그거를 어떻게든 내고 싶어서. 정규 앨범 첫 번째 트랙은 내고 싶었던 느낌이 너무 명확해서 그거는 좀 오랫동안 만졌던 것 같아요.
Q. 어떻게 보면 후반 작업이 되게 좀 긴 편이네요?
맞아요. 한 곡 작업이 조금 긴 것 같아요.
Q. 앨범을 내실 때마다 그래도 작업기나 이미지나 이런 거에 있어서 공을 되게 많이 들이시는데, 그런 거에 에너지 쓰는 것도 사실 쉽지 않을 것 같거든요. 이미지나 콘텐츠 같은 것들도 준비하시니까요, 그런 것들도 좀 힘들지 않았는지 궁금했어요.
저는 이미지나 커버 작업 같은 건 되게 좋아해요. 왜냐하면 제가 음악을 고를 때 앨범 커버를 보고 음악을 들을 때도 있고, 제일 중요한 게 어떤 사람의 앨범을 듣고 나서 이 사람의 색깔 같은 걸 제가 떠올렸을 때 앨범 커버 색깔을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게 무의식에 크게 반영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커버도 그렇게 많이 공들이지는 않아요. 그냥 제 음악을 계속 듣다가 앨범을 보거나 아니면 뭐 사진을 부탁할 때 딱 눈에 띄는 게 있으면 이걸로 해야겠다고 그냥 빨리 결정을 하는 편입니다.
Q. 프로필도 계속 찍으시잖아요. 그런 거는 좀 어색하거나 이런 건 없으셨나요.
아니요. 너무 힘들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안 찍었어요. 제가 평소에 화장이나 머리를 할 때도 10분 이상 공을 들이지 않아요. 그냥 호다닥 하고 나가는데 그걸 몇 시간 동안 하고 있으니까 너무너무 힘도 들고. 카메라 앞에 있다는 것 자체가 제 자신이 어색해서 조금 힘든 것 같아요.
Q. 이번 정규 때도 찍으셨잖아요.
네 그때 굉장히 힘들었어요.
Q. 되게 자연스러우셔서 그런 것들을 편하게 잘하시는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가서 최대한 길게 안 하고 싶어서 ‘이렇게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짧게 하려고 했어요. 사실 그것도 정규 앨범 커버 때문에, 눈이 이렇게 비껴가는 이미지를 하고 싶어서 그것 때문에 찍은 거였거든요.
Q. 외에도 이제 다른 얘기를 조금 해볼 텐데요, 두 편의 단편영화 음악 감독으로 참여를 하셨어요.
제가 학생일 때 그런 걸 해보고 싶었어요. 영상 음악이라든지… 그래서 둘 다 제가 먼저 공고 글 같은 걸 보고 연락을 드렸어요. 두 번째로 했던 단편 영화는 사실 [Weak] 앨범에 들어간 사진을 찍어 주신 언니였는데, 그 영화는 아직도 안 나왔어요. 근데 그때 영화 소재라든지 그런 게 흥미로워서 했어요.
Q. 앞으로 나올 음악은 또 어떤 느낌일지, 정규의 연장 선상인지 그런 것들도 궁금합니다.
새로 낸 음악(“Barefoot”)은 포크 음악이에요. 그리고 다른 곡을 내려고 했는데 그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요. 신스팝을 만들고 싶은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노래하는 것도 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일단은 조금 더 자연스러운 느낌을 먼저 하고 그 뒤에 다른 장르를 해보고 싶어요. 제가 테임 임팔라(Tame Impala)도 좋아하고 MGMT도 좋아하고 사이키델릭 쪽도 좋아해요. 그래서 좀 더 그런 느낌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음악도 하고 싶어요.
Q. 음악도 그렇고 인터뷰하실 때 되게 정적인 분인데 또 음악을 이렇게 얘기하실 때는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어요. 그런 본인의 성향이나 성격도 어느 정도 반영된 것 같네요.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친구들이랑 있을 때는 또 되게 밝거든요. 그래서 음악은 그 중간인 것 같아요.
Q. 주로 이제 집에서 작업하시잖아요. 그럼 작업하실 때는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해요.
작업할 때는 사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요. 그냥 ‘녹음을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녹음을 하고. 근데 약간 스트레스를 풀려고도 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 재밌게 하는 것 같아요.
Q. 이번 곡 “Barefoot”은 어떤 곡인지 간단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는 대구에서 서울 쪽으로 올라왔어요. 어렸을 땐 지방에 있는 것이 답답해서 빨리 음악 공부를 하고 활동을 해야지 생각하며 성인이 되고 올라왔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니 대구에 있는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있었던 시간이 그립고 생각이 많이 나서 쓰게 된 곡이에요.
Q. 당분간은 계속 이러한 느낌의 포크 음악이 이어질 예정인지 궁금합니다.
두 달 뒤쯤 또 다른 포크 음악을 내려고 해요. 비슷하다면 비슷하다 할 수 있는데 악기 편곡이 조금 달라질 것 같아요. 그 뒤로는 어떤 음악을 낼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음악을 계속 이것저것 많이 만들어놓고 뭘 하고 싶은지 보고 있어요.
Q. 끝으로 이번 곡에 보컬 믹싱이나 코러스 등에 좀 더 많은 신경을 쓰신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셨는지 궁금해요.
맞아요. 이 전에 아이슬란드 아티스트들을 이야기하면서 말한 저음이 많이 없고 고음역대 사운드가 부드러운 포크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악기, 보컬, 코러스 등에 그런 느낌을 많이 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최근 몇 년 사이 영국이나 아일랜드에서는 신인 밴드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포스트 펑크가 음악씬을 다시 뜨겁게 달구고 있다. 소음발광의 새 앨범 [기쁨, 꽃]을 들었을 때 처음 느낀 것은 바로 지금 뜨거운 포스트 펑크의 피가 멀리 바다를 건너 한국의 인디씬에서도 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조선 펑크는 물론 옆 나라 일본의 펑크사까지 흡수한 소음발광은 이번 앨범을 통해 그들만의 독자적인 색깔을 보여준다. 또한 진지하게 음악사를 바라보고 성찰해야 좋은 음악이 탄생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앨범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음악의 체계적인 역사, 동시대성을 빼도 이 앨범은 생생한 에너지와 솔직한 노랫말로 매력이 넘친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듯한 노이즈 기타,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치닫는 드럼 비트, 차가운 톤으로 노랫말을 내뱉고 때로는 힘차게 샤우트하는 보컬… 낯선 밴드명인데도 재생하자마자 들리는 그 심상치 않은 에너지는 청자에게 마지막까지 달려가 보라고 하는 듯하다.
우울감이나 절망감이 드러나는 가사에서도 이번 인터뷰에서 보컬 강동수가 말하는 바와 같이 다같이 외쳐보면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것이야말로 펑크라는 음악이 갖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펑크를 사랑하고 진지하게 대하며 배워온 그들이라 완성시킬 수 있었던 앨범 [기쁨, 꽃]. 그 앨범의 작업 과정이나 음악성, 그리고 이번 앨범을 완성시키는 데에 빼놓을 수 없는 친구들이자 서로 의지하는 부산 밴드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강동수 / ‘이 음반이 우리의 명반이다’ 이렇게까지는 말을 못하겠지만 저희 멤버들도 전부 자신감이 붙어 있는 앨범인 것 같아요. 전작까지는 거의 제가 독자적으로 드럼킥 하나 리프 하나 요구하는 식으로 했었는데 모든 멤버들이 다 같이 참여해서 만든 음반이 이번에 처음이거든요. 다 같이 만들어서 너무 기분이 좋고 그렇게 하면서 재밌는 작업물이 나온 거 같아요.
Q. 데뷔 EP [풋]부터디스코그래피를들어보면그변화의과정이굉장히재미있더라고요. EP [풋] 때는산뜻한기타록을하셨는데이제는보컬은샤우트도많이하고기타는노이즈가강하고전체적으로보다공격적인음악을하고있죠. 이런변화의계기가있었나요?
강동수 / 처음에 소음발광을 했을 때는 쟁글 팝을 하고 싶었는데 펑크 음악을 어렸을 때부터 듣다 보니까 계기라기보다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펑크 음악이 된 것 같아요. 밴드를 하면서 음악을 듣는 폭도 넓어지고 제가 영향을 쉽게 받는 스타일이라서 음악 스타일도 살짝살짝 변했던 것 같아요.
강동수 / 음악을 조금 젊게 만들게 된 것 같아요. 평균 연령대도 낮춰줬어요. 음악적으로는 좀 더 충격적이고 파괴적인 뉘앙스가 소음발광에서 생긴 것 같아요. 이 친구도 팝을 굉장히 좋아하고 추구하는 친구지만 그런 (충격적이고 파괴적인)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친구라고 생각하거든요. 소음발광에 기태가 합류하면서 그런 것들이 투영된 것 같아요.
강동수 / 1집 [도화선]까지는 하고 싶은 대로 해왔어요. EP [풋]은 코-프로듀서 (co producer) 느낌으로 머쉬룸 레코딩스튜디오의 천학주 씨가 함께 해줬는데 저희가 만들었다기 보다는 그분이 만들어 주신 느낌에 영향을 받았고요. 그래서 1집은 ‘우리가 만들고 싶은 대로 해보자, 그래야 원 없이 해보는 느낌이 들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 당시 제가 Pavement에 꽂혀 있어서 로파이한 걸 해보고 싶어서 그냥 합주실에서 녹음했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저희가 성장하려면 조금 더 나은 퀄리티로 해보는 기회도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로파이가 안 좋다는 게 아니라 좀 더 다른 다양한 방식으로 레코딩을 해보고 많은 걸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더 세련되게 표현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강동수 / 포스트 펑크라고 하는 밴드의 음악을 들어보면 하나의 장르로 보기가 어려울 정도 다양한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많잖아요. 저희는 각자가 전부 하고 싶어 하는 음악이나 좋아하는 성향이 달라요. 우리가 펑크를 표방하지만 포스트 펑크라고 하면 우리의 그런 성향을 자유롭고 아름답게 표출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기영 / 저는 포스트 펑크에 대해서 동수가 추천해줘서 듣게 되었는데 펑크와 포스트 펑크의 차이에 관한 역사적인 부분을 자세히는 몰라요. 근데 초기의 펑크는 노동자들이 쉬운 코드로 자신들의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런 것들을 차용해서 좀 더 예술적이고 다양한 사운드를 낼 수 있는 게 포스트 펑크라고 했을 때 되게 흥미로웠어요. 펑크의 시류 자체도 흥미로웠어요. 노동자들의 솔직함과 그것을 이어받아서 예술인들이 표현했다는 것도.
강동수 / 느끼셨던 것처럼 사운드도 ‘Fontaines D.C’.나 ‘Shame’을 레퍼런스로 했었어요. 사실 저는 언젠가 펑크 붐이 다시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저는 (포스트 펑크가 다시 유행하고 있는 상황에) 가슴이 뜨거워지더라고요. 저희가 작업하는 데에 있어서 그런 동시대 밴드들이 많은 자극을 줬어요. 그래서 저희가 작업기에 쓴 것처럼 동시대의 가장 멋있는 밴드들을 우리가 따라 하지는 않지만 ‘펑크를 한다고 한다면 같이 어깨를 견줄 수 있는 밴드가 되어야 되지 않겠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강동수 / 대중적이든 비대중적이든 들었을 때 뭔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을 팝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Sonic Youth의 변칙적인 요소나 노이즈 사이에서도 아름다운 요소들이 있는 것 같고 저는 특히 [Sister]라는 앨범을 듣고 아름다운 음악이 팝이 아닌가라는 정의를 개인적으로 내리게 된 것 같아요. 근데 아티스트들은 그걸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대중적인 음악을 써야겠어’ 해서 팝을 만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Q. 그런 ‘팝의아름다움’을추구하는성향이어렸을때부터있었던걸까요?
강동수 / 사실 록 음악을 처음 접했던 중고등학교 때는 거칠고 시끄러운 게 최고고 뭔가 조금이라도 ‘팝적이다, 말랑하다, 아름답다’ 하면 그건 음악이 아니라고 했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근데 이거는 부산에서 함께 활동하는 ‘검은잎들’의 형, 누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이 사람들이 말하고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멋있는 거예요. 그분들과 친해지기 전에도 팝에 대해 눈이 트이기 시작했지만 그분들이 그걸 열어주는 물꼬가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아름다운 것에 대해서 사실 광적으로 집착하게 된 것이 있어요.
김기태 / 애초에 너무 좋아하는 밴드였는데 ‘세이수미’의 수미님이 소음발광의 1집을 좋게 들었다는 말씀을 하셔서 접점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런 말들이 너무 기뻤고 작업하면서도 부산에서 먼저 음악을 했던 선배, 형들로서 저희 방향성을 많이 잡아주셨던 것 같고 작업 이외에 인간적으로도 위로나 응원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워낙 펑크나 팝 같은 것에서 지금 한국에서 되게 높은 지위에 있는 밴드이다 보니까 음악적으로도 많은 코멘트를 해주셨고 저희 곡들이 좋게 만들어질 수 있게 도움을 주신 것 같아요.
김기영 / 저희가 말을 안 들을 수도 있잖아요. 좀 트러블 생길 경우도 있고. 근데 ‘세이수미’라는, 저희가 믿고 있는 분들의 기타리스트이기도 하고 리스펙트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도 말이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것 같아요. 저희가 무작위하게 꽉 채웠던 것들을 덜어내주시고 우리가 원했던 세련되면서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여러 요소들에 대해 ‘이렇게 해보면 좋겠다, 생각해 봐라’ 같은 식으로 조언을 해주신 것 같아요.
김보경 / 기타 같은 경우는 이펙팅도 많이 하고 이것저것 전자 장비를 사용해서 할 수 있는 게 많잖아요. 그런데 드럼은 거의 아날로그 방식에 집중하다 보니 톤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신경을 써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냥 ‘내가 좋아하는 톤은 무거운 톤, 어떤 스네어에서 나오는 어떤 톤이 마음에 든다’ 이 정도였는데 병규 씨랑 같이 작업을 하면서 세팅이나 뮤트나 톤이나 엄청 세밀하게 신경을 쓰고 잡아주셔서 그런 것이 많이 좋았어요.
강동수 / 밴드를 처음에 시작했을 때 느낌 같았었어요. 저희가 1집을 내고 이제 2집을 준비함에도 불구하고 학생인 것 같았었어요. 팝적인 걸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을지 지시를 하거나 가르쳐준다기 보다는 함께 고민을 해주는 어떤 좋은 선배, 선생님, 이런 느낌이었어요. 저희도 ‘무조건 시끄럽고, 멜로디만 이렇게 하면 팝인 거지’ 이런 느낌을 사실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걸 깨게 해준 게 이번 작업에서 가장 큰 성과이자 배움이었던 것 같아요.
강동수 / 1집 같은 경우는 일기를 기반으로 가사를 썼어요. 근데 2집은 그냥 코드 진행이나 편곡이 어느 정도 되었을 때 길면 30분, 짧으면 5분 안에 가사들이 다 쓰여졌어요. 1집은 내면에 있는 것보다 머리에서 내가 알고 있는 나의 감정을 적었다면 2집은 그냥 지금 당장의 상황 같은 거나 눈에 보이는 어떤 키워드들을 나열해서 적었어요. 그래서 그게 조금 다르게 느껴지고 스토리도 조금 모호하게 들릴 수 있는 것 같아요. 주제는 딱히 정한 건 아니었는데 제 이야기를 가사에 쓰다 보니까 제가 기본적으로 조금 우울한 사람이라 2집은 그런 것들이 폭력적으로 표출이 되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누군가에게 트리거(trigger)가 될 수 있는 정도의 우울이고 그게 그 당시 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주제가 된 것 같아요.
강동수 / 그 노래는 처음에 가이드 상태였을 때는 제목이 ‘자살’이었어요. 근데 보경이가 ‘노래는 너무 좋은데 가사나 제목이 나에게 너무나 트리거(trigger)다. 이 노래를 쓰고 싶지 않아’라고 해서 안 쓰려고 했었는데, 기태는 작업하면서 ‘행님, 이 노래 너무 좋은데 왜 안 써요?’라고 한 거예요. 그래서 가사를 바꾸기로 했고 보경이의 트리거가 되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가장 솔직한 걸 적자고 해서 써봤어요. 이 가사는 유일하게 일기를 기반으로 쓴 가사예요. 사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닌데 우리는 충분히 우울할 수도 있고 기쁠 수도 있고 좌절할 수도 있고 우리의 감정에 충실해서 살 수 있을 텐데 모든 매체에서는 기쁨만 강요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다 같이 외치는 “이렇다 뭘 해본 적도 없구요 / 살아보려 애쓴 적도 없어”라는 부분은 ‘내일을 살아가자’라는 느낌을 주려고 쓴 건 아니지만 다 같이 체념하고 내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고 그렇게 하다 보면 해방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지금 제 감정은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서 같이 불렀고 이렇게 노래로 만들게 되었어요.
강동수 / 예를 들어 ‘세이수미’, ‘검은잎들’, ‘해서웨이’, ‘보수동쿨러’, ‘더 바스타즈’ 그렇게 다섯 밴드들하고 저희가 교류를 하고 있고 ‘검은잎들’과 ‘더 바스타즈’랑은 ‘도적단’이라는 크루도 만들었거든요. 어떤 존재라기보다는, 저희한테는 부산에서 음악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존재들이고, 언급한 밴드들이 중심이 되면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우리가 또 다른 문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
Q. 음악을하는사람들이서울에집중하는상황에서부산에서활동하는것은밴드활동에어떤영향을주고있나요?
김기영 / ‘세이수미’ 같은 경우에는 바다가 좋아서 부산에 남는다는 이야기도 하거든요. 근데 저희는 지역에 애정이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니에요. 서울에 가서 라이브를 볼 수도 있지만 충분히 여기서도 라이브를 가깝게 볼 수 있다는 것도 있었어요. 자랑은 아니지만 특히 2016, 17년 부산에 한창 아티스트가 많았을 때는 어떻게 보면 서울보다 큰 씬이 있었고 부산이 가장 선두에서 음악을 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 시기에 제가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물론 지금은 많이 죽었지만 ‘우리도 부산에서 충분히 할 수 있겠다, 전혀 못할 구석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근데 지금 제일 큰 부분은 살고 있던 데에 대한 안정감인 것 같아요. 사실 음악을 한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나 생각할 요소들이 너무 많은데 서울에 가서 더 많은 스트레스를 확장시킬 이유는 없는 것 같고. 부산에서도 활동을 할 수 있고 서울의 팀들을 부를 수도 있는 충분한 관계가 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계속 부산에서 할 수 있다,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요.
Q. 2016, 17년부산의음악씬이뜨거웠을때는지금이랑어떻게달랐나요?
김기영 / 그때는 밴드도 많았고 기반도 많았어요. 펍이 아니라 라이브 클럽이 많이 있었고.
강동수 / 지금은 라이브클럽은 두 군데 밖에 없을 정도로 많이 사라졌는데 두 군데라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2016,17년에는 라이브 클럽 기반도 잘 돼 있었지만 새로 나오는 밴드도 선배 밴드들도 많아서 그런 것들이 저희한테 많은 영향을 줬었죠. 아쉬운 것은 (그때 나온 밴드 중) 남은 팀이 ‘보수동쿨러’랑 저희 밖에 없다는 것이에요.
강동수 / 크라잉넛이 나오는 [Our Nation]라는 음반을 들으면서 밴드를 하겠다고 생각했고, 펑크의 멋짐을 알게 된 것은 노브레인의 [대조선펑크 노브레인: 청년폭도맹진가]라는 앨범이었어서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는 사람들이에요. 크라잉넛, 노브레인은 20년 넘게 활동하는 펑크 밴드이고 존경할 수 있는 대상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거라 저희에게 좀 의지가 되죠.
김기영 / 스쿨 밴드들 모두 커버했죠. 델리스파이스, 노브레인, 크라잉넛, 그리고 자우림…
강동수 / ‘Number Girl’ 같은 경우는 한국에서는 “일본의 Pixies, Sonic Youth”란 그런 수식어으로 불리더라고요. 저도 ‘Pixies’랑 ‘Sonic Youth’를 좋아하니까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죠. ‘Blue Hearts’ 같은 경우는 ‘검은잎들’ 영향이에요. ‘검은잎들’이 완전 ‘Blue Hearts’ 매니아이거든요. 오타쿠… ‘긴난보이즈 (Ging Nang Boyz)’는 어느 날 유튜브 통해서 듣게 되었는데 눈물 흘리면서 소리치는 그 라이브가 팝 자체였어요. 너무 아름다웠어요. ‘카케누케데 세이슌 (駆け抜けて性春)’은 항상 들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게 있어요.
Q. 활동관련해서목표가있으면듣고싶어요.
강동수 / 현시대에 가장 멋있는 밴드, 가장 아름다운 밴드가 되고 싶어요. 예전에는 부산이라고 하면 소음발광을 떠올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왕에 음악을 한다면 큰 꿈을 가지고 있는 게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절반은 도달하겠지’라고 생각해서요.
구원찬이 돌아왔다. 몇 차례의 피쳐링을 거쳐 약 2년 만에 선보이는 솔로곡 ‘표현’으로 성공적인 컴백을 알린 그는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새로운 모습이다.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는 따뜻한 감성과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섬세한 표현이 선사하는 기분 좋은 낯섦은, 그렇게 구원찬이라는 아티스트의 새로운 막을 향한 중요한 이정표인 셈이다. 지나온 모든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하나의 과정으로 설명되고 싶다는 그의 바람처럼, 하나하나 모이고 모여 분명 빛나는 여정으로 이어질 구원찬의 뚝뚝한 발자국을 따라가 보았다.
제 노래 중에 ‘Long Time No’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 가사(“변한 건 아닌데 뭔가 낯설기는 해 / 여전하네 네 느낌 더 뚜렷해졌네”)처럼 원래 제가 가지고 있던 모습들에서 조금 더 진해진 색깔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물론 가사를 떠나서 그냥 공연을 2년 만에 하니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멘트를 잘 못 하거든요. 뭔가 우물쭈물하고 어리숙하고. 그런 부분들은 ‘Long Time No’ 가사처럼 여전히 그대로인데 노래적인 부분에서는 사람들이 더 좋아졌다거나 탄탄해졌다는 피드백들 많이 해주셔서 마치 ‘가수가 노래 가사 따라간다’라는 말처럼 가사 내용대로 공연이 전개된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어요. 아쉬움이나 이런 것 없이 그 자체가 좋았습니다.
Q. 본격적으로이번새싱글 [표현]에관해이야기를나눠보려고해요. 곡에관한간단한소개부탁드려요.
‘표현’이라는 노래 자체는 사랑 노래에요. 그런데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그 감정이 너무 벅차서 ‘사랑한다’라는 말 안에 다 안 담기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미를 담은 곡이에요. 뭔가 벅찬 감정을 최대한 음악적으로 담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고요. 가사가 너무 짧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게 사실 단어로 표현이 안 돼서 음악으로 표현을 한 거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상황이었어요
뮤직비디오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영상 감독님과도 얘기를 많이 했는데 최대한 음악적인 무드와 영상적인 무드가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고 일차적으로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여러 가지 멋이 있는데 어떤 음악에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뮤비가 나와서 그게 하나의 멋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조금 더 1차원적으로 바라봤던 것 같아요. 정말 이 영상이 음악이랑 잘 어울리는 무드였으면 좋겠다는 게 1차 목표였어요.
‘표현’ 같은 경우는, 노래 자체는 2018년도에 만들었고 이후에 프로듀서 ‘haventseenyou’와 디벨롭하는 과정을 전역하자마자 진행했어요. 물론 복무 중에도 작업을 계속했어요. 이제는 군대 안에서도 휴대폰 반입이 돼서 그 안에 ‘개러지 밴드’ 같은 음악 프로그램들을 깔아서 녹음도 많이 했죠. 전역하자마자 음원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protonebula’나 ‘PJNOTREBLE’ 피쳐링 같은 경우는 다 군대 안에서 진행했던 작업이고요, 복무 중에 나온 ‘Fisherman’ 피쳐링 같은 경우는 입대 전이 이미 만들었던 곡이에요. 그리고 전역하자마자 ‘Hoody (후디)’님께 연락이 와서 바로 앨범 피쳐링 작업을 하기도 했어요.
Q. 복무중에도꾸준히작업을멈추지않으셨던만큼창작에대한갈증이심하셨던것같네요.
갈증보다는 불안함이 컸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시기적인 문제로 군악대가 아닌 일반병으로 입대했다 보니 음악과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일이 휴대폰으로 할 수 있는 것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일반병으로서 작업을 이어가고 싶었고 여러 루트를 찾다 보니 휴대폰으로 녹음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사실 그게 지금도 제가 아쉬워하는 부분 중에 하나에요. 제 일상이 작업 따로, 일상이나 쉼 따로가 아니라 생활 자체가 작업이거든요. 예를 들어 작곡을 할 때도 “어 이거 좋은데” 하면서 떠오른 것들을 바로바로 옮기고 녹음을 하는 행위들이 일상 곳곳에 녹아 있어서 굳이 구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근데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들의 구분이 조금 필요하다는 생각을 최근에서야 하게 되었어요.
Q. 최근에작업을이어오시면서요?
네, 이번 앨범 만들기까지. 물론 일상과 작업이 분리되면 정말 베스트겠지만 그게 안 된다는 가정하에 한 달 정도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쉬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전역하고 나서 바로 작업에 들어간 이유는 그게 일상이기도 했거니와 괜히 빨리 돌아가고 싶은, 빨리 일을 하고 싶은 욕구도 있었던 것 같고 되게 복합적인 마음들이 작용한 것 아닌가 싶네요.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번아웃 상태가 왔었는데도 인지하지 못 하고 그 상태에서도 작업을 진행하려고 했어요. 근데 결국에 힘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 힘이 없으면 일상생활도 안되고. 그러한 지경까지 갔었던 것 같아요. 그런 상황들을 ‘@konartg’ 라고 팬들이랑 소통하는 제 또 다른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는데 거기에 솔직한 상황들을 적기도 하고 그랬어요.
Q. 일과삶의경계에대해서고민이많으셨던것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군대를 다녀왔으니까, 군대는 확실히 일과하고 쉬는 시간이 구분이 돼 있잖아요. 그래서 전역을 하고 나서의 생활도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고 삽시간에 원래대로 돌아오더라고요. 아무래도 군대에서는 계속 그 경계를 구분하면서 살아왔는데 그런 것들이 잘 안 되다 보니 번아웃이 왔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음악이 잘 나왔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음악에대한이야기로조금씩넘어가볼게요. 최근 ‘지큐코리아’에기고하신글에서입대전에내셨던작업들에대한아쉬움을언급하시기도했어요. 여기서의아쉬움은어떤종류의것이었나요?
예전에 ‘Tyler The Creator’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거기서 타일러가 예전에 ‘내가 왜 이런 음악을 했었는지 모르겠다, 만약에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물론 그 정도까지 제 지난 음악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마음이 들었던 같아요. 그냥 다시 들어봤을 때 ‘아 지금 들으니까 좋네’ 하는 것도 있었고, ‘편곡을 왜 이렇게 했지?’ ‘가사를 왜 이렇게 썼지?’ 하는 부분의 아쉬움들이 상대적으로 눈에 많이 띄었어요.
Q. 디테일적인부분들을말씀하시는걸까요?
네. 과거의 음악 전체를 다 부정했다기보다는, ‘이때 이랬다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후회스럽다’라고 표현된 것 같아요. 사실은 후회까지는 아니지만 괜한 아쉬움들이 좀 내포되어 있는 거죠.
Q. 그아쉬움들이이번작품에반영되었다고생각해도괜찮을까요?
네, 그래서 이번 노래에서는 최대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중에 포인트가, 생동감을 많이 넣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전에는 조금 딱딱한 느낌이 있었다면 이번 음악에는 최대한 생기를 불어넣고 싶은, 라이브감을 불어넣고 싶은 생각이 강했어요. 이번 곡은 기존 작업 방식과 다르게 전부 리얼 세션으로 녹음을 받아서 작업했는데요, 전부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죠.
사실 어떻게 보면 크게 변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음악을 만드는 방식에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제가 곡을 다 만들어 놓고 편곡이 되는 작업의 방향이 하나 있고요. 아니면 비트를 받아서 그 위에 제가 멜로디를 써서 만드는 방향의 두 가지가 있는데 그 두 가지도 계속 유효해요. 물론 그 방식 안에서 좀 더 유연하려고 하는 편이죠. 근데 어떠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면, 예전에는 군대라는 조금 확실한 챕터 이전의 음악 생활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아 내가 하고 싶은 거 하자, 어차피 갈 건데’ 이런 생각이었던 것과 다르게 이제는 아무래도 더 이상 갈 데가 없으니까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하는 편이에요.
어떻게 보면 그 행성 이야기도 제 삶, 제 인생을 행성과 우주선, 그리고 그곳을 유영하는 여행자로 비유한 거거든요. 어떻게 보면 제 삶이라는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데 행성 이야기는 어쨌든 그것을 은유적인 이야기로 만드는 거죠. 그래서 뭔가 첫 번째 행성, 심지어는 375번째, 1200 몇 번째 같은 디테일까지 표현하려고 했었는데 그렇게 은유적으로 돌려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이제 조금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것을 선호하게 된 것 같아요. 그게 제 성격의 변화일 수도 있는데요, 물론 그런 디테일에서 오는 느낌들도 너무 좋다고도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것보다도 내 인생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가감 없이 얘기하는 게 요즘의 저의 성격과 더 맞닿아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어쨌든 같은 이야기이지만 직설적으로 풀어내는 거죠.
Q. 그러한성격의변화에혹시군대영향도있을까요?
네, 그 영향도 있는 거 같아요. 제가 간부한테 들었던 되게 좋은 말 중의 하나가 ‘그런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누가 “뭐뭐 했어?”라고 물어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라고 했을 때 그분이 “‘그런 것 같습니다’라는 건 없다. 그냥 그렇다고 말을 해라”라고 하셨거든요. 어떻게 보면 제가 제 의견에 조금 자신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이후로는 ‘그렇다’, ‘아니다’로 얘기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그 행성 이야기가 그렇게 와닿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실 전역 후에 생활 패턴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처럼 요즘 성격도 조금씩 부딪히는 것 같긴 해요. 그래서 또 어떠한 계기가 있다면 다시 행성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죠. 지금은 그러진 않아요.
Q. ‘변화’에대해서굉장히유동적인생각을갖고계신것같아요.
뭐랄까 어쨌든 세상은 계속 변하는데 나는 그대로라면 저는 퇴보한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물론 좋은 쪽으로의 ‘그대로’일 수도 있지만요. 그리고 아무래도 제가 프로듀서가 아닌 송라이터고 작사를 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변화에 좀 더 유연한 포지션인 것 같아요. 그래서 예를 들어, 한 시대에 어떤 사운드가 대세라고 한다면 그 사운드를 제 노래에 적용을 시킬 수 있다는 점이 다른 셀프 프로듀싱 아티스트들에 비해 훨씬 유연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래서 그 변화적인 부분에 대해서 크게 거부감은 없어요. 그렇다고 제 뿌리가 변하는 건 아니니까. 그것에 대해서 제가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이유가 오히려 음악의 중심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작곡을 한다는 게 고유한 인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트렌드나 변화 같은 것들은 ‘옷’이라고 생각을 해요. 어떤 옷이 그 시대에 조금 안 어울리면 다른 옷을 입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그 사람 자체는 변하지 않으니까. 그런 맥락으로 변화를 바라보는 것 같아요.
Q. 레이블에들어오면서음악이달라졌다는피드백을언급하신적도있어요. 실제로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에들어오기전, 후로음악이달라졌다고생각을하시나요?
레이블에 들어오고 나서 나온 앨범들은 되게 많은 의도가 들어간 앨범들이었어요. 그 전의 앨범들은 진짜 원초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여기서 원초적이라는 건, ‘누가 들어줬으면 좋겠다’ 혹은 ‘나 이걸로 성공했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그냥 그때 당시에 너무 좋다고 생각했던 음악들을 담았다는 뜻이고요. 아무래도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가 전부터 되게 들어가고 싶어 했던 레이블이었고, 더불어서 개인 아티스트가 어떤 회사 소속의 아티스트가 됐다는 건 되게 많은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변화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스스로의 기대에 일조할 수 있는 음악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뭔가 멋있는 음악이 아니더라도 조금 더 대중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어필이 되면서 나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그런 노래가 나와야 된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슬퍼하지 마’ 같은 노래가 나온 건데 그 곡들도 어떻게 보면 그 ‘기대’라는 의도에 의한 노래이기 때문에 스스로 110% 만족하는 노래는 아니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거는 사실 아직도 딜레마에요. 정말 웃긴 게, 그 의도한 노래들이 제 음악 커리어에서 제일 잘됐어요. 생각해보면, ‘아 나는 어떤 음악을 해야 될까’에 대한 고민도 군대 갔다 오면 끝일 줄 알았는데 그냥 계속되더라고요. 레이블에 들어오고 나서 나온 노래들이 굉장히 많이 밝아졌다는 피드백도 있었고 단순해졌다거나 조금 더 이지리스닝에 가까워졌다는 피드백도 받았어요. 이전의 음악들은 좀 차분하지만 나름의 멋이 있었고요. 그래서 이번 신곡 ‘표현’에서 그 두 부류를 모두 만족시키고 싶었어요. 물론 문제는 또 문제를 낳고 고민은 또 고민을 낳기 때문에 이 부분은 제가 아직도 풀어나가야 할 숙제인 것 같아요.
Q. 그 ‘기대’라는부분이단순히단순히듣기편한음악인것만은아니겠죠?
그렇죠.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말 그대로 사람들의 귀에 걸리는걸 캐치하다고 표현을 한다면 캐치하고 조금 더 단순하면서도 그냥 사람들이 계속해서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노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노래를 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아까 말했듯이 고민은 고민을 낳기 때문에 또 다른 고민과 이유로 장석훈 형이랑 냈던 ‘너에게’가 나왔었는데요. 그런데 이전에 확 왔던 많은 반응들이 ‘너에게’에서는 없으니까 또 거기에서 고민이 생겼어요. 지금 정리해보면 엄청나게 방황을 많이 했던 그런 시기였던 것 같네요. 그래서 군대에 있을 때 한 가지 기로를 정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어요. 어떨 때는 빨간색, 어떨 때는 파란색이라면 ‘이 사람은 어떤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냐’ 라는 질문을 받아도 저조차 제대로 설명을 못 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건 좀 아닌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죠.
Q. 이 ‘기로’라는게, 원찬님음악의향후방향성에대한이야기이신가요?
그렇죠. 그러니까 제가 만든 음악은 그대로인 거예요. 예를 들어 그런 거죠. 만약에 제가 한복만 입는다고 했을 때 그 한복이 디벨롭된 옷을 쭉 입고 나온다면 ‘얘는 한국과 관련이 된 사람이야’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한복 입었다가 기모노 입었다가 치파오 입었다가 한다면 ‘이 사람은 뭐다’라고 한 마디로는 정의할 수 없잖아요. 근데 또 팝 시장을 보면 다른 얘기이긴 해요. 어떤 옷을 입든 어울리는 사람들도 있는 거죠.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스트릿 패션만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정장만 어울리는 사람이 있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제 음악은 어떠냐에 대한 대답은 아직 고민해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네, 특히 피셔맨이랑 같이 만든 앨범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진짜 많아요. 어떻게 보면 그게 정답이라고도 할 수도 있겠어요. 근데 어쨌든 저도 한 명의 창작자로서 그냥 개인으로서의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 작품들은 어떻게 보면 하프 앤 하프로 만든 창작물이잖아요. 근데 그것들 말고 그냥 ‘구원찬’ 하나로 고유한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하고 있어요.
저도 그런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아무래도 피아노로 작곡을 하다 보니까 이게 어울리는 옷들이 또 노래마다 각각 다른 거예요. 제 개인적으로는 한 옷이 어울리는 아티스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Q. 그렇게한문장으로설명될수있는아티스트가될수있길바라시는거군요?
네. 한 장르로 묶이는 아티스트였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힙합이면 힙합, 알앤비면 알앤비, 발라드면 발라드처럼 하나의 장르로 묶이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기도 하고 웰메이드 앨범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이 ‘Bruno Major(브루노 메이저)’의 To Let A Good Thing Die 앨범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한 앨범을 냈을 때 장르가 바뀌어도 한 마디로 설명될 수 있는 그런 앨범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이런 욕구가 앞으로 음악 방향성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 좌지우지하지 않을까 싶네요. 따지고 보면 피셔맨이랑 만든 앨범도 그랬었고요. 그래서 그 앨범 같은 경우는 특정 트랙을 좋아하는 것보다는 앨범 전체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죠.
Q. 앞에서 ‘변화’에대해유동적으로생각하신다는내용도그렇고쭉이야기를들어보니 ‘변화’라는키워드앞에서단순히어떤결과에집중하기보다도과거의것까지전부끌어와서하나로아우르려는모습으로보여요.
네, 그것들이 전부 다 과정처럼 보였으면 좋겠어요. 이런 것도 했었고 저런 것도 했었지만 결국에 가장 최신의 것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전부 담겨 있는 거죠. 어떻게 보면 완성형 아티스트가 아니라 계속 진행이 되고 발전하면서 모든 걸 융합하고 결국 고유한 것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로 비쳤으면 좋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지난 것들을 더더욱 부정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 고민은 예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한테는 필수적인 지점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것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에 아예 그냥 돈이 되는 것만 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제 환경에는 그 두 가지 경우들의 사람들이 전부 주변에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사실 각자의 삶 자체가 다르고 추구하는 게 다른 거죠. 그리고 저는 그 두 가지를 전부 가지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그것을 어떻게 하면 영리하게 캐치 할 수 있을까 하는 게 요즘 고민하는 것 중에 하나에요.
그리고 저는 제가 가진 무기가 어떻게 보면 이쪽이랑도 어울리고 저쪽이랑도 어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비트씬의 음악이라고 한다면 그런 음악에 속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김동률, 이소라 음악처럼 발라드 음악을 하고 있다고 해도 속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이게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죠. 사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그 중간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확실한 건 지금보다 더 큰 사람이 되려면 어쨌든 그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아요.
Q. 그게아까말씀하신 ‘기로’에관련된내용이겠네요.
어떻게 보면 ‘표현’이라는 노래도 저는 굉장히 만족하지만 ‘아 이거 상업적인 노래야’ 라던지 ‘이 곡 진짜 멋있는 노래야’라는 감상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노래인 것 같거든요. 물론 말씀드렸다시피 너무 마음에 드는 트랙이긴 하죠. 사실 지금까지 낸 노래 중에서 제일 좋아해요. 그렇지만 만족감과는 별개로 더 큰 사람이 되려면 아예 한 가지 기로를 정해야 할 것 같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는 거죠. 진짜 상업예술의 끝을 보고 대중들이 좋아하는 쪽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독고다이로 갈 것인가. 근데 그렇다고 대중적인 것만 한다고 예술가가 아니라고 하는 것도 모순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저는 현재 딱 중간에 서 있는 상황인 것 같아요. 결국에는 음악도 업이기 때문에 흥행에 대한 것도 생각을 안 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Q. 일종의장인정신같다고도느껴져요.
네, 저는 둘 다 멋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한 길로 가야 뭔가 납득이 되고 그런 게 좀 있는 것 같아요.
Q. 결국과정전체를납득시키는것이목표이신거군요.
그래서 이제 제가 해야 할 숙제가 그것들을 모두 아우르는 저만의 앨범을 내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지금 저의 디스코그라피에 있어서는 특정 앨범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많아도 제가 걸어온 모든 디스코그라피를 두고 ‘와 진짜 미쳤다’라고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거든요.
Q. 이야기를듣고나니까이전에내셨던모든작품이마치발자국처럼보이기도하네요.
그렇죠. 나중에 그것들을 전부 아우르는 작품이 하나 나온다면 지금까지의 과정이 전부 설명이 되는 거죠.
저는 혼자 가지고 있는 비밀은 많이 없어요. 최대한 공유를 하려고 하고 그게 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인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어쨌든 그 계정은 팬들을 위한 계정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제 성격상 공식 계정에 그런 생각을 적는 게 개인적으로 좀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계정을 파고 그 안에서 저의 진짜 솔직한 생각을 남기게 됐어요. 그리고 진짜로 저를 응원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 계정을 팔로우한다고 생각을 해서 더 솔직한 마음들이 담겼던 것 같네요.
엄청 돼요. 그게 어떤 포인트냐면, 제가 예전에 음악을 만들고 작사를 할 때 픽션을 되게 많이 썼단 말이에요. 물론 그 과정에서 실제로 발매까지 이어진 곡은 거의 없지만 작사를 하면서 이상한 허무함이나 후회 같은 것들을 느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힙합이라고 가정했을 때, 금목걸이 있고 비싼 차 끌고 다닌다는 가사들이 사실은 다 픽션인데 그런 것에 대해 덧없는 감정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최대한 내 솔직한 감정을 적는 게 훨씬 설득력 있고 와닿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솔직한 내용을 많이 담으려고 일기장처럼 노력을 많이 하기도 했어요. 음악에 자전적인 얘기를 많이 담았던 이유도 다 그런 것들 때문이고요.
근데 이게 또 너무 개인적인 내용이다 보니까 표현적인 부분들에서 최대한 중의적으로 적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상황에 그 노래가 적용될 수 있도록.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게 아니라, 이 노래를 들으면서 각자의 상황에도 적용되게끔 가사를 쓰려고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직설적으로 쓰는 거죠. 특히 저는 사랑 노래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게 오히려 더 안되더라고요. 사랑하고 좋아하는데 그 감정 자체를 그대로 담는 걸 선호해서 제 사랑 노래는 좀 많이 직설적인 것 같아요.
Q. 그래서이번곡을듣고가사가왜이렇게짧냐는피드백이나온걸수도있겠어요.
그렇죠. 그런데 이번 노래는 사실 개인적으로 가사가 짧다고는 생각 안 하긴 했어요. (웃음)
Q. 모두가공감할수있는지점을마련하는게정말중요하면서도신경쓸부분이많아보이네요.
그렇죠. 제 음악을 들으시는 분들 중에 가사 때문에 제 음악을 듣는 분들도 꽤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가사를 쓸 때도, 예를 들어서 ‘그는’, ‘그가’, 그를’ 같이 글자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최대한 중의적으로 쓰려고 하다 보니까 많은 부분에서 신경을 쓰게 되는 거죠.
일단은 장르가 그 설명에 대한 키라고 생각해요. 조만간 앨범을 하나 작업할 텐데 그 앨범을 한 프로듀서랑만 작업할 계획이에요. 그게 한 마디로 설명을 할 수 있는 키를 위한 한 가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제가 조금 더 자유롭게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도 생각해요. 현재는 여러 사람 중에서 제안할 프로듀서를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버둥은 솔직하게 나아가는 음악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결핍과 두려움을 마주하고, 실패 한 적은 있어도 패배하지 않고 앞으로만 간다.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좋은 친구와 동료를 만나며 사랑과 고난을 동시에 엮어, 긴 이야기 <지지 않는 곳으로 가자>를 만들었다. 언젠가 마주치게 될 슬픔을 예감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행복을 향해 나아간다.
음악가이기도 하고 개인이기도 한 버둥을 처음으로 만나 지나치게 솔직할 정도로 이야기한 90분 간, 웃고 농담하는 사이에서도 온전히 버둥 혼자서 헤쳐 나아가는 방식이 쉽지 않았음과 함께 단단해진 다짐을 느꼈다. 다짐하고 나아가는 말을 이야기로 만들고, 그 이야기를 음악으로 전해주는 버둥은 언제나 그래 왔듯이 또 다른 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저는 올해 10월에 이제 정규 1집 <지지 않는 곳으로 가자> 를 발매한, 나아가는 이야기를 음악에 담는 뮤지션 버둥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괜히 아이돌이야 뭐야 그러실 수 있을 것 같아 걱정이지만 저는 이 문장을 찾고 굉장히 행복했어요. 뭔가 나를 관통하는 한 가지가 분명히 있을 텐데 생각하면서 작년부터는 이렇게 저를 소개하고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Q.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지금 최근 텀블벅 펀딩을 통해 실물 음반 제작 지원금을 확보했고, 요즘 열심히 제작 중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 내내, 오늘도 계속 리워드에 필요한 굿즈와 원고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요. 일정대로 발주되지 못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고, 덕분에 멘탈이 깨져서… 그래도 어쨌든 해결을 해야 하니까 어떻게 할지 구상하다 보니 어려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Q. 종일 어떡하지 고민하는 하루를 보내신 거네요. 그렇다면 텀블벅 펀딩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해 볼까요?
사실은 안 하려고 했다가 진행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지난 EP에서도 텀블벅 펀딩을 이미 진행해 본적이 있어요. 이게 지난 발매와 연달아서 하게 되어 ‘너무 자주 하면 오히려 달성율이 떨어진다’ 혹은 ‘한 번 했으면 기간을 길게 두는 게 좋다’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구요. 인지를 붙여 정식으로 실물을 유통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지금은 에세이집 형태로 만들고 있지만요. 그래도 제작비는 들고 어떤 발매 루트가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제 음악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실물을 만나시려면 아직은 텀블벅이 제일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다면 한번 다시 진행해보자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매주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는데 그 때 참고를 하고 싶어 시청자 분들께 물어봤어요. 펀딩을 진행한다면 팬 여러분에게 부담 드리는 것 같아 이번에는 그냥 심플하게 음반만 만들까 싶다고. 그렇게 말씀을 드리고 다른 피드백을 받으니 함께 만드는 것 같았고 또 팬들 입장에서도 좋다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결국에는 대박이 났네요.
사실 텀블벅 펀딩 페이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굉장히 불친절하게 해 놨어요. 불친절 하다는 건, 어떻게 할 건지 적어만 놓은 거죠. 실제 다른 프로젝트는 시안도 올리고 뭔가 많이 안내 되어있는데, 저는 부족한 것 같고 그냥 이런 거를 이렇게 할 거다 정도였기 때문에 그래서 목표 금액도 적게 잡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인쇄 비용 정도만 나와도 감사히 제작 하자 생각했는데 다들 기대를 많이 해주시고 계셨나 봐요. 감사합니다.
Q. 정규 1집으로 준비하고 있는 에세이집에는 어떤 이야기가 들어가나요?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는 걸 이제야 안 지금인데요. 저는 사실 cd 제작 단가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지금 출판물을 해보니 이것에 비하면 정말 낮은 편이긴 하지만, 요즘은 cd로 음악을 듣는 것 같지 않고 저도 cd플레이어는 없으니까 서서히 음원을 소유하는 방식이 변해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구요. 평소의 저는 작업기를 써 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악기를 사용했고 어떻게 믹스를 했는지도 대부분 적어 놓거든요.
왜냐하면 다음에 작업을 할 때에는 이전에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을 해내려면 디테일한 기록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과정을 팬들도 궁금해하실 수도 있는데, 실제로 음악을 만드는 입장에서 프로듀서나 선배들이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 그 작업기의 한 두 마디에 아이디어나 영감을 받기도 했고, 저에게는 도움이 아주 많이 되었더라고요. 그래서 실제로 음반을 만드시는 분께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너무 어렵지 않게, 하지만 그냥 에세이만 담기지 않도록 곡마다의 이야기들을 준비했습니다.
곡 별로 보통 제가 느끼는 곡의 ‘감상’_말 그대로 에세이 적인 부분이 있을 것이고, 작사와 작곡에 관련된 ‘이야기’_언제 어떻게 만들었고 멜로디는 어떠한 이유로 만들었으며, 곡에 재미있는 요소를 첨가하거나. 곡에 어떠한 이미지가 보였으면 좋겠으니까 무슨 악기로 녹음했는지 전반적인 과정도 들어가 있을 거예요.
Q. 음반 하나를 위해 프로듀서와 밴드세션이 붙고, 편곡을 해서 녹음을 하고 트랙별로 믹스와 마스터링 하고 그런 과정들이 사실은 이게 듣기로는 되게 그냥 되게 쉬워 보이긴 하지만 그 순간순간에 조율하는게 영향을 받죠.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니 궁금하고 흥미가 생기는데 저도 펀딩하시는걸 알았다면 좋았을텐데 너무 아쉬워요. 돈으로 표현 못해서 죄송합니다.
하하하.
버둥 – [조용한 폭력 속에서]
Q. 버둥님은 2018년에 첫 EP를 내고부터 꾸준히 매년마다 음악을 계속 발표하고 있지만, 그 뿐 아니라 TV에도 나오고 라디오 디제이나 유튜브도 하는 등, 뭔가 많은 것을 해왔어요. 그리고 드디어 첫 정규 1집을 발표했습니다. 어떤 느낌이 드나요?
일단, 이제서야 내가 일을 정말로 많이 했다고 드디어 스스로 인정을 하게 되었어요.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 직장을 다니며 음악도 하신 동료는 음악가가 전업으로 음악을 한다고 말을 하려면 ‘하루에 8시간 이상은 음악을 만들고 연습하거나 그런 음악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야 되는 거다.’ 라고 말해 주신 게 저에게는 큰 영감이 되었어요. 그렇다면 나도 직업으로 음악이라는 일을 가지기 위해서는 하루에 8시간 정도 그리고 주 5일은 음악과 연관된 일을 하고 있어야 되는 것이라 생각해서 그 시간 동안 할 일을 처음에는 많이 찾아 해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도 다 이렇게 산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삶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는 것과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많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음악과 함께 열심히 살아왔구나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정규 앨범 작업을 하면서 첫 EP를 요즘 많이 돌이켜봤어요. 왜냐하면 첫 EP와 정규음반까지 같은 프로듀서님과 작업했고 자연스럽게 당시 서로 못했던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때는 이게 좀 아쉬웠으니까 이번 작업에는 이렇게 개선을 해보자. 그리고 저의 노래하는 방식이 그 때와 지금 어떻게 달라졌고, 달라짐의 기준을 첫 EP에 많이 두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돌아보니 저는 거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데 같은 프로듀서님과 작업을 하게 되니 그때와의 이미지가 겹치지 않을까 고민도 있었어요. 하지만 당연히 프로듀서님도 그 사이에 많은 경험을 하시고 발전된 모습과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우리가 달라지고 변화한 부분을 음악을 통해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 음반 작업하면서 가장 큰 의미가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Q. 버둥님과 함께 작업해온 프로듀서는 밴드 줄리아드림의 박준형님이신데. 어떻게 처음부터 같이 일을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막 홍대에서 공연하기 시작하던 스물 두살에 파제라는 뮤지션을 만나게 되었어요. 파제님이 싱글을 발매하면서 처음으로 음원 사이트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파제님의 친형이 지금 저와 계속 작업하고 계신 프로듀서 박준형님이세요. 파제의 싱글을 작업하시면서 저의 목소리와 노래를 너무 칭찬하셨다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아. 그렇구나’ 라고만 생각하다가 EP을 내야겠다고 결심은 했는데 혼자서는 막상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나를 아끼고 잘 챙겨줄 수 있는 프로듀서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고 찾다가 문득 그 때 좋은 얘기를 해 주셨던 게 생각나서, 연락을 드렸더니 흔쾌히 또 시간을 내주셔서 지금까지 함께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Q. 시간이 지나면서 프로듀싱의 결이 어떻게 조금씩 달라졌는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저에게는 음악이나 어떠한 예술은 언어(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언어가 필요한 상황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언어는 이야기를 활용하는 도구잖아요. 저는 장르를 특별하게 정해서 언어를 갈고 닦는 사람은 아니었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길 때마다 음반을 만드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저는 계속 언어에 대한 고민을 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매번 조금씩 바뀌어서 애초에 같은 결의 음악을 만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준영 님은 저의 목소리를 워낙 좋아해 주세요.
그래서 프로듀서님은 저의 목소리가 있으면 장르가 무엇이 되었든, 악기가 많든 적든 크게 신경 쓰지 않기도 해요. 프로듀서님은 지금 대중음악 전반적으로 꾸준히 작업을 하고 계시니까 제가 보기엔 장르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고 계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어쨌든 목소리가 있고 이야기가 있으면 어떻게 바뀌어도 저도 상관없고 프로듀서님은 마침 하고 싶으신 게 있고 잘 맞겠다 싶은 게 있으면 편곡을 전복시키기도 하고. 이런 방식으로 크게 구애 받지 않고 계속 새로운 걸 만드는 게 편해졌어요.
그리고 신기해요. 하고 싶은 의사가 둘 다 있어도 서로 시간과 일정이 맞지 않으면 할 수 없었을텐데 지금까지 그래도 타이밍이 맞았어요. 사실 저는 이번 정규음반은 같이 못할 줄 알고 다른 분을 알아봐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타이밍이 맞아서 다행입니다.
Q. 그러면 이 정규음반 작업은 언제부터 시작을 하셨나요? 왜냐면 음반 소개 글에서 트랙 제목 옆에 연월을 적어 두었어요. 적어 둔 연월은 작업을 시작한 시간이 기준인가요 아니면 완성된 기준일까요?
한 곡을 처음 썼을 때 제가 항상 옆에다 써 놔요. 곡을 처음 만든 날, 처음 데모가 나온 날. 혹은 이 노래가 전해야 되는 언어는 ‘이거다’ 라고 제가 생각 하고 중요한 테마나 벌스가 나온 날이라고 해도 사실 어쨌든 저만 알고 있기는 하죠. 그 의미의 대부분은 ‘좋아 이 이야기로부터 출발하면 되겠다’라고 생각한 그 날짜를 적어 둡니다.
Q. 그렇다면 시작을 하기 위해서 시작이 되는 과정이 마무리된 날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왠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제 생각의 버둥님은 가사를 먼저 쓰는 사람일 것 같기는 한데 맞나요?
네. 그런데 요즘 바뀌고 있어서 좀 당황스러워요. 요즘에는 가사 없는 멜로디가 쌓여 있어요. 이전에는 가사만 얼만큼 있어도 멜로디가 붙는 건 없었어서 아무튼 좀 혼란스럽습니다. 하하하.
Q. 노래를 쓰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는 계기 혹은 난 이걸 쓰고 불러야겠어라는 순간 중에 기억나는 게 있어요? 사실은 어떤 트랙이든지 물어보면 다 얘기해 주실 것 같지만요. 하하.
저는 아직 자식을 낳아본 적은 없지만 작업을 하면 할수록 내 노래가 내 아이 같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해요. 그러니까 언제 곡을 만들었고, 어떤 상황에서 노래가 나왔던 기억이 결국에는 곡마다 전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음반을 어떤 주제로 만들자 하고 결정해서 곡을 쓰는 게 아니라, 곡들이 점점 쌓이기 시작하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건 무엇일까 찾아내서 엮는 것 같아요. 제 노래는 저의 고민과 해답이 계속 생기면서 만들어지니까요. 그리고 이번에는 긴 이야기 였고요. 그래서 장편이라 생각을 하고 정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엮어보다가 처음으로 앨범에 넣어야겠다 생각하고 만들어서 완성시킨 곡도 있어요.
버둥 – 공주 이야기
Q. 오, 무슨 노래인가요?
5번 트랙, 공주 이야기라는 노래가 있어요. 저는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만들다 보니, 그렇게 치면서 노래할 수 있는 트랙을 만드는거에요.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스타일에 한계가 생기는 점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혼자서 이 노래를 라이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지만 사실 이 노래는 라이브 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든 건 아니었어요. 기타를 따로 쳐서 루프를 돌리고, 그 위에 멜로디를 얹고, 드럼 비트를 받아서 넣은 뒤에 또 그 리듬에 맞는 멜로디를 다시 짜고 그렇게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한 곡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걱정만큼 제일 마음에 드는 곡이 되었습니다.
Q. 어떻게 보면 정규를 통해서 새로 시도해본 방식이었다는 답이 나오네요. 사실 제가 할 다음 질문의 답을 해 주셨어요. 이건 질문할 필요가 없네요. 하하하.
버둥씨를 두고 네오포크 뮤지션으로 소개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이번 정규는 네오포크보다 팝의 느낌이 더 많이 들고 있어요. 하지만 팝의 느낌은 이제 음반의 처음에 배치되어 있고, 듣다 보면 밴드 사운드에도 충실한 위에, 프로듀서님의 터치와 부풀어 가는 듯한 편곡이 또 이렇게 얹어져서 음반의 마지막까지 듣는 재미가 있었어요.
네, 맞아요.
Official髭男dism – Pretender
Q. 그렇다면 이 음반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장르를 팝으로 수렴하다 보니 작업할 때 영향 받았다는 음반이나 작업 중에 유별하게 많이 들었던 노래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레퍼런스를 디테일 하게 잡는 편이에요. 예를 들자면 믹스는 이런 곡으로, 편곡은 저 앨범 따로 따로 잡는데, 당시 저와 프로듀서님이 함께 많이 들었던 건 일본 밴드 중에 오피셜 히게단디즘_Official髭男dism의 1집 <Traveler>, Pretender가 수록된 음반이었는데 그게 사운드믹스를 정말 잘해 놓은 앨범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저는 지금까지 편곡과 믹스를 간결하게 해온 편이라서, 밴드 사운드로 채우기 위해 악기를 많이 쓰고 더블링도 쳐서 구현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떤 방향으로 우리가 음악적 공간을 채우면 좋을까 그런 대화를 많이 하면서 그 앨범의 믹스를 좀 많이 참고하며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정규 음반 하면서 개인적으로 충격적이라고 느낀 건, 전 보통 4-5곡의 EP사이즈로 음반작업을 마무리 해왔기에 뭐랄까… 몸이 그 정도에 맞춰져 있더라고요. 다섯 곡을 끝냈는데 아직 다섯 곡이 남아있는 거예요. ‘응? 왜 곡이 계속 나오는 거죠?’ 세상에 그게 그렇게 섬뜩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나쁜 기억은 빨리 잊기 때문에 생각나는 게 많이 없지만, 당시에 장필순님의 5집을 다시 많이 들었어요.
저는 의도해서 만든 건 아니었지만, ‘나의 모든 슬픔이’ 라는 트랙을 들어 주신 분들께서 조동익님이 만든 발라드와 비슷한 느낌이 있다 라는 말씀도 있었어요. 제가 처음으로 공연장에서 커버로 불렀던 노래가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 였거든요. 정규 앨범을 통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음악을 해왔던 저의 이야기를 그리고 배워 온 노하우가 전부 들어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서, 그렇다면 나는 처음에 무슨 마음으로 노래를 했는지 이 노래가 그때는 어떻게 느껴졌고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해서, 내가 이 앨범을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만들고 있는지 흔들릴 때 다시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Q. 음반을 작업하는데 굉장히 고심하고 고민한 모습이 많이 보이네요. 에피소드 천국인데요?
대외적으로 저의 음반에 대해 소개하거나, 아껴 주시는 분들께 단순하게 어떤 음반이에요 라고 말하는 것보다 작업하던 그 때 정말로 작업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를 시니컬하게 이야기 하는게 더 재밌을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계속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저는 일단 작업하는 것이 매우 즐거운 사람입니다. 그냥 저의 몸에 무리가 가는 것들이 있잖아요. 프로듀서님의 일정이 많으셔서 보통 작업들은 밤 10시부터 시작하게 되고 끝나고 나면 아침이 되어 귀가하는 패턴이었어요. 그리고 수록해야 하는 곡이 많아서 열흘을 넘게 그런 일과를 보낸 거예요.
사실 그 과정만 힘든 거예요. 작업 막바지가 다가오니 내가 다음 작업을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고요. 인디음악가에게는 제작비가 쉽지 않아서요. 하지만 저는 작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모든 과정이 마법 같아요. 혼자서 기타를 치며 만든 데모가 어떻게 이런 멋진 노래가 됐는지, 이 모든 과정을 워낙에 좋아하고 즐기는데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뭐랄까 기약 없는 이별의 느낌도 있죠. 프로듀서님과 새벽까지 동고동락하며 계속 음반을 만들어 왔지만 언제 또 같이 만들자는 기약 없이 마무리될 때면 ‘다음에 또 배울게요.’ 그렇게 마무리되는 이 과정을 매번 겪었지만 아직까지는 저에겐 좀 힘든 것 같습니다.
저는 언제나 프로듀서님과 미팅할 때 정말로 열심히 준비해서 가거든요. 제가 가진 데모를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잘 준비하고 녹음해서 결과적으로는 프로듀서님이 낚인 느낌도 있어요. 제작비에 부담이 있어 스스로 프로듀싱을 하려고 궁금한 부분을 여쭤보러 가는 식으로 ‘커피 한 잔 마셔요’ 이러고 ‘작업실로 놀러 갈게요’ 이렇게 준비했던 데모를 다 가지고 가서 들려드리면 프로듀서님은 ‘제가 해볼까요?’ 그런 말을 들으면 저는 너무 좋았죠. 프로듀서님도 작업을 하다가도 내가 이렇게 바쁜데 이걸 또 한다면서 ‘저 지금 제 앨범보다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러시더라고요. 하하하.
Q. 두 분 너무 즐겁네요. 언제나 일은 그렇게 흘러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이게 음반을 작업하면서 생긴 즐거운 에피소드인 것 같아요. 실제로 저의 첫 EP 작업 전에도 프로듀서님은 정말 바쁘셨고 거절을 해도 들어보고 거절을 하자 생각하셨다고 해요. 그래도 들어 주시고는 어떻게든지 시간을 내서 작업하고 싶다 라는 마음으로 해 주셨는데, 그러니까 제 음악이 마음을 바꿔 놓을 수 있었다는 것. 이것을 시작점으로 해서 만났고 지금까지 함께 해온 일련의 작업 과정이 저는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버둥 – 연애
Q. 버둥씨는 자기 자신을 잘 끌고 가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중요한 건 내 음악에 자신감이 있어요. 음악에 자신감이 있다는 게 언제나 느껴지네요.
전반적인 음반 작업 이야기라든가 좀 해봤으니까 타이틀 곡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요? 먼저 ‘연애’는 워낙 버둥님의 팬들이 좋아하는 트랙인데 어때요?
‘연애’가 타이틀곡이 된 이유는 깁니다. 저의 첫 EP부터 이번 정규음반까지의 제가 연결되어 있어요. 10대에서 20대 넘어오면서 예술을 하면서 대부분 이렇지 않을까 생각하는 게 있어요. 예민한 경향이 있고, 예민하면 남과 같은 일을 겪어도 그보다 더 힘들고 더 슬프고 근데 또 더 기쁘고 더 즐겁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또 있으니 나름 똑같이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요. 초연하고 담담한 영화의 주인공을 보면 물론 대본이 있으니 당연히 화나는 순간에도 침착했고 너무 슬픈 순간에도 결국엔 뭐랄까 멋있고 모양이 빠지지 않잖아요.
그렇게 저는 거기에 이입되고 스스로 힘들어하는 모습이 싫어서 완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완벽해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첫 EP는 내 잘못이 아닌 것에도 너무 움츠러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으로 만들었고, 두 번째 EP는 잘못에 대해 정확히 인정하고 그걸 해결하고 넘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이후에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후에는 담담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이번 정규 1집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좋은 친구들이 옆에 있었어요. 음악을 하기 전부터 저를 좋아해준 친구. 음악을 하면서 만나게 된 친구. 이 친구들은 제가 뭘 잘하고 완벽한 사람이라 좋아해 주는 게 아니라 각각의 이유가 있었겠죠. 이제 그것을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타이밍이 된 것과 그리고 그 친구들도 함께 예술을 하고 있어요. 그 친구들과 같이 밀고 나갈 수 있는 타이밍이 된 덕분에 완벽해야겠다는 마음을 버리게 된 첫 음반이에요.
그래서 완전한 인간이 되고 싶다. 더 이상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결국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과는 다르다는 걸 깨닫고 계속 옆에 있어 주는 사람 덕분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 라는 걸 표현하고 싶었던 노래입니다. 그래서 노래 제목은 ‘연애’이지만 영어로는 ‘Lovers’라고 붙였어요.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사랑이라 느끼는 감정을 나에게 보여준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사람에게 환상을 가지고 나를 더 잘 보여주려고 하는 겉치레보다, 일단 겉치레를 버렸을 때가 되어야 보이는 서로의 모습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연애’를 음반에 수록했고 타이틀곡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편곡하는 과정에서 사실은 정말 마지막까지 ‘연애’가 너무 힘들었어요. 뮤직비디오 촬영하기 전이 되어서야 겨우 완성을 했습니다. 프로듀서님이 정말 많이 힘들어 하셨어요. 제가 너무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보이니까요. 그리고 특히 이 코로나 시대에 활동하고 있는 제가 가사에 너무 부합하는 거예요. 내가 이 시국에 사치스러운 일을 벌였는데 함께 하겠다는 당신이 있어서 진행이 되고 있다고. 멘트도 항상 그렇게 했고 공연에서도 그렇게 노래해 왔으니, 공연 중 가장 행복한 순간에 저는 늘 이 노래를 불렀어요.
공연장에 와서 보신 분들은 이 노래가 굉장히 밝고 따뜻한 노래라고 느껴지겠지만, 이 노래가 가지고 있는 코드 진행과 구성은 마이너해요. 하려는 이야기도 질문이 아니라 이미 다 확정되어 있는 거 거든요. 나는 사치스러운 일을 했고 네가 왔고 이게 다 정해진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편곡의 의도는 검정치마나 혁오밴드 같은 편곡처럼 풀어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어요. 편곡 과정에서 프로듀서님과 학부모 상담하는 마음으로 ‘어머니 제 아이가 자기 고집이 좀 세서 안 되겠다’고. 대체 우리는 뭘 하고 싶은 걸까요? 결국에는 타이틀곡을 바꿔야하나 싶은 고민도 마지막까지 했어요.
‘씬이 버린 아이들’을 메인타이틀로 하고 ‘연애’를 서브로 수록하거나 해야 한다. 왜냐면 기존에 제가 생각한 대중적인 이미지에서 멀어지는 것 같아서 괜찮을까 고민하다가도 음반의 전체적 흐름으로 봤을 때 ‘연애’는 타이틀곡이 될 수밖에 없어서 지금의 편곡 그대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라이브 버젼과 음반의 편곡이 달라지는 부분에 있어서는 두번째 EP의 ‘태움’이라는 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밴드셋 편곡을 통해서 사고 친 케이스와 비슷하구나 생각하거든요. ‘태움’이라는 노래는 애초부터 밴드 편곡이 아니었고 EP에서도 난해한 트랙이지만, 그 편곡에서 제가 보고 있는 그림이 있었어요. 혼자 하는 라이브에서는 구현이 되지 않는 트랙이다 보니 밴드셋으로 하게 되었는데, 밴드 버전을 너무 좋아해 주셔서 사실 쫄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저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가 들어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래도 뭐 어때? 하며 완전 다른 노래로 만들었지만 크게 다른 이야기는 없었거든요. ‘연애’도 새로운 편곡으로 수록했지만 기본적으로 밴드 편곡이고 제 기준에서는 크게 달라진 부분이 없으니 괜찮을 거야 했지만, 이 노래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너무 아쉬워해 주셔서 리워드로 받으실 에세이에 해명을 길게 쓰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라이브에서 했던 편곡을 그대로 음원으로 옮겼을 때 별로인 곡들이 은근 많아요. 밴드셋 라이브에서는 현장감으로 채워지는 이미지가 있지만, 음원에서는 채워야 되는 공간도 많고 편곡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져서 음원으로 넘어 갈 때 더 욕심을 내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이번에 라이브에서 또 어떻게 편곡하게 될지 몰라도 일단 의견은 다 들으면서 맞춰보려고 합니다.
Q. ‘연애’의 편곡이 전체적인 음반의 유기성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아서 순서대로 쭉 들으면 너무나 무난하게 어떤 음반인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음반을 해치지 않기 때문에 저는 더 좋게 들었던 것 같아요.
늘 죄송하다고 제가 말씀드려요. 여러분도 저의 죄송한 마음을 아시겠지만, 제가 죄송하다고 해서 제가 하고 싶은 걸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너무 죄송한 마음이지만 제가 하고 싶었던 건 이거였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버둥 – 씬이 버린 아이들
Q. ‘씬이 버린 아이들’도 이야기를 해 볼까요? 이거는 영어 제목이 ‘Guess Who’잖아요. 음반의 트랙들이 한글 제목과 영어 제목의 결이 다 달라요. 그리고 솔직히 저는 이 노래의 가사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자부심이 있는 가사예요. 쓰고 나서 저에게 후련한 가사들이 있어요. 고민으로 뭉뚱그려져 있다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딱 만들어지는 순간 내가 산을 하나 넘었구나 생각하는 경우가 되어서 좋아하는 가사에요.
Q. ‘씬이 버린 아이들’은 버둥님께서 지금까지 해 왔던 이야기들과 유기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시원시원하게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느낌. 그래서 좋다고 느끼는 걸까라고 생각 했어요.
어떻게 보면 누구든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까요?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사람들. 사람도 그렇지만 내 마음도 그런데요. 그러한 관점으로 봤을 때 저도 굉장히 허를 찔렸던 가사인 것 같습니다.
Q. 스스로도 후련하고 작업하시면서도 되게 만족도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처음부터 그림이 그려지는 노래가 있어요. 저는 페스티벌에 맞는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관심은 없었지만, 2019년부터 여러가지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페스티벌에 갈 일이 생기면서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당시 저에게 웃겼던 상황에서 출발을 해 보려고 했어요. 이메일로 데모를 드리며 연락을 드리고 공연장에 CD 들고 찾아다니던 시절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곳에서 역으로 공들인 메시지들을 받게 되었어요. 무관심하던 사람들이 음악 잘 듣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뭐지 싶다가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 거죠. 어떠한 동기라도 저를 찾아 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프로듀서님께도 제 음악을 들려드리고 난 뒤의 상황이 바뀐 것처럼 제 음악을 들려 드리고 보여드리면 다음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의 저를 웃게 했던 상황이었어요. 이 상황과 고등학교 학생들이 스쿨밴드로 연습하기에 적합한 난이도로 곡을 만들자는 의도로 곡을 완성했습니다. 제 공연을 봐주시는 분들이 따라 부르기 쉽고 마음 먹으면 연주도 할 수 있는 류의 노래를 만들자 하고 처음부터 구상해서 만들어 봤어요.
‘씬이 버린 아이들’의 이야기와 코드가 단순하고 귀에 잘 들어와서 그런지 왜 타이틀곡인지 알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씬이 버린 아이들’은 그러니까. 이야기가 가진 힘은 사실 ‘연애’가 더 컸어요. 그래서 음반의 어딘가 대중적인 면을 보이려면 다른 제목을 붙여야 생각을 해서 내기 전까지 고민이 있었어요. 가제로 그냥 일단 정해 둔 건데 막상 저는 특별히 어디서 저를 선택했다 생각하지 않거든요. 저는 제가 씬의 아이들 중 한 명이라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중요한 순간에 기적적으로 선택 받은 사람은 또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이 곳이 나를 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내가 이런 노래를 내면 버려지는 게 아닌가 그런 걱정도 들었어요.
Q. 어떻게 보면, 버둥님이 씬을 선택한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노래의 제목을 ‘씬이 버린 아이들’로 할지 ‘씬을 버린 아이들’로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근데 어떻게 하다 보니 가제가 진짜 제목이 되어 버린 그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하하.
버둥 – 처음
Q. 혹시 이 두 곡 외에, ‘공주 이야기’도 이야기했지만, 또 애착이 가는 곡 하나 더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첫 번째 트랙 ‘처음’이라는 노래는 정규 앨범을 위해 곡을 추려낼 때 나온 곡 중 처음으로 나오고 완성한 노래예요. 첫EP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이걸로 음악을 그만 두자라는 생각으로 만들었었거든요. 지금까지 해 온 것이 있으니 정리를 하고 끝내자는 마음으로 만들었지만 작업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음악 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느끼고, 사실 사비를 들여서 음반을 만들어 놓고 나니까 이대로 끝내기 아쉬운 거예요.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작업이 마무리될수록 끝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커지고, 그런 고민을 문득 프로듀서님께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물어도 봤어요. 막상 프로듀서님도 당시에는 뭐라고 설명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던 거였죠. 그래도 음악이나 예술 쪽에 있어서는 갑자기 찾아오는 기회를 통해 몇 단계씩 올라가 있기도 하니 다양한 경연대회를 경험하면 어떨지 대답해 주셨죠. 경연의 위상도 시기에 따라 달라서 쉽지 않게 느껴지고, 저 나름대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답답한 마음에 쓴 가사였어요.
당시에는 스스로에게 하소연하듯이 썼는데, 그 뒤로 3년이 지난 시점에 작업하면서 다시 보니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저에게 비슷하게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어요. 친한 동생들이나 이제 막 음악을 시작하려는 분들께서 보기에는 제가 제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이나 봐요. 그래서 어떻게 저의 커리어가 탄탄하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어떻게 해야 작업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을까요? 라는 말을 들을 때 저는 대답하기가 어려워졌어요. 왜냐하면 지금 헬로루키는 없어졌고, 싱어게인에서는 저도 제 능력으로 잘했다고 말하긴 어려우니까, 저도 그 친구들과 비슷한 위치가 되어 ‘처음’을 다시 해석할 때 과거의 내가 나에게 편지를 쓰고 난 뒤, 시간이 지나 제가 다시 답장하는 편곡이 되어 완성하고 기분이 묘했던 곡이에요.
‘처음’은 첫 시작의 처음이 아니라, 처음으로 과거를 돌아보고 음악을 만든 경험이 처음이라는 뜻이에요. 과거에는 내가 어떻게 했지 과거와 지금이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하면서 작업한 게 ‘처음’인데, 가사에 “아는 체 하는 건 어디까지 인지/모르는 것들은 물어봐도 되는지” 라는 가사가 있어요. 과거에는 이게 답답했거든요. 사실 잘 모르는데 모르는 티를 내면 무시 당하기도 하고 이 사람은 잘 모르니까 대충 하자 그러면서 넘어가는 사람도 있으니 몰라도 아는 척을 하게 되는 것이 어렵고, 아는 척을 하게 되면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으니 이렇게 생각하고 살면 안 될 것 같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3년 뒤, 제가 이 가사를 다시 읽으면서 지금의 나는 어떻게 하고 있나 돌아보았죠. 이제는 저 사람에게는 내가 모르는 걸 물어보면 대답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정도의 사람을 보는 노하우가 생긴 것 같아요.
Q. 음반 작업을 통해서 많이 돌아보고 느낀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지금은 또 새로운 고민들이 계속 생겨요. 저를 소개하는 문장처럼 제가 나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을 연다는 식으로 생각해요. 익숙한 곳을 벗어나는 것, 새로운 곳에 간다는 건 좋을 수 있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고, 다시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그러면 겉으로 보기에 다시 잘 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익숙해지는 동안에 이전부터 하던 것도 잘 안 되고 새로운 것도 잘 되지 않을 수 있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 힘듦, 기쁨 이런 감정들이 새삼스러워요.
Q. 텀블벅 펀딩을 통해서 스스로에게 답을 내는 과정을 통해 정규 1집을 만든 것 같다고 소개하셨어요. 정규 음반을 통해서 나름대로의 마무리를 지었지만, 새로운 고민이 생긴 것이군요.
네. 현실적인 고민도 있어요. 결국 저는 펀딩을 통해서 음반제작을 위한 큰 제작비를 수령했고 그 제작비를 통해서 기존에 하려던 걸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작비가 예상보다 늘었으니 이전의 견적에서 더 좋은 것으로 시도해서 결국 예산 전체를 사용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그저 음악적인 일을 이어가는 게 목적이었지만 이제는 직업으로서 수익을 만들 수 있어야 할 텐데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 저는 적자가 나지 않을 정도로만 하고 있어서 저의 직업을 일종의 사업으로 봤을 때 버둥은 흑자를 만들 수 있을까 라는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 가지고 있던 고민은 이번 정규를 통해 답을 냈다고 하기보다 직업인으로서의 음악가 버둥이 평생 나아가야 하는 고민에 가까운 것 같고, 이번 펀딩을 통해서 정리된 것 같아요.
Q.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고민을 통해 느낀 것 같네요.
하나의 답만 생각하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애초에 나에게 던진 질문 자체가 어딘가의 핀트가 다른 거였어요. 사람이 완벽해진다는 것에 대해서 마지막 곡인 ‘기일’로 음반을 마무리하게 되었어요. 완벽한 안정은 결국 죽음으로 오는 걸까? 그러니까 미래가 없는 걸까?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없는 상황을 나는 원하고 있는 걸까? 그럼 나는 죽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이대로 사람들이 나를 좋다고 인정해주면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이어가다가 생각이 든 거에요. 그렇다면 내가 3년 전 스스로 한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거라고. 나는 실제로 완벽한 사람이 되는 걸 원하는 게 아니라, 완벽하지 않아도 나를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떠나지 않을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부족함과 외로움을 함께 공유하면서 같이 나아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래서 결국 내가 가진 질문부터 핀트가 좀 나가 있을 수도 있다 라는 생각도 하면서 더 좋은 질문과 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하려고 해요.
Q. 앞만 보고 음악만 만들었던 과거의 자신에게 뒤도 돌아보자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럴 수도 있어요. 이번 음반을 만들면서 중간에 굉장히 쓸쓸한 상황이 있었어요. 음반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니까, 이 음반은 처음 노래를 쓰던 그 때의 버둥에게 필요한 음반이었어요. 음반을 만들면서 과거를 떠올렸을 때, 내가 노래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건지, 그러니까 재능이 있는 건지, 좋은 건지 감도 못 잡겠고 그래서 계속 음악을 할 수 있는 걸까? 라는 불안감이 컸는데 이제는 이렇게 10곡을 만들어서 음반의 흐름을 짤 수 있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어. 네가 계속 고민을 하면서 받아들이고 살면 이렇게 좋은 작품을 계속 만들 수 있어 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사실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 때의 나에게 어떻게든 전달할 수 있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에게 전해줘야 되는 무언가를 쥐고 있던 마음이어서 복잡했던 것도 있고 계속 음악을 할 수 있어 라는 마음보다 어떻게든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느리고 아무도 몰라주고 이렇게 예산을 모으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려도, 결국 어떤 고민을 계속하고 결과가 나오면 노래로 만들고 그 안의 공통점을 찾아서 또 음반으로 만들고 이거를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는 계속 하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이 생각이 저를 편하게 해줬어요. 나아가는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든다고 한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끊이지 않아야 하니까. 내가 더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으면 어떡하지 걱정이었는데, 이번 음반을 작업하면서 나는 3-4집까지 계속 이야기를 하고 싶겠다, 당분간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사라질 걱정은 없습니다.
Q. 지금까지 4~5곡이 들어간 ep를 제작하시다가 10곡의 정규를 마무리하셨는데 후련하지 않으세요?
후련한 느낌을 예로 들자면 단편 영화를 찍다가 드디어 장편 영화 입봉 한 감독이 된 것 같아요. 나 이제 긴 이야기도 다룰 줄 알아 그런 뉘앙스로요. 원래 두번째 ep를 정규로 만들고 싶었고 지원사업도 받아서 예산이 있었지만 그 때의 그 이야기는 아무리 늘려도 지금의 정규처럼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억지로 이 노래를 여기에 왜 넣었을까 의문이 생기는 음반보다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정규로 만들 수 있는 긴 이야기는 때가 되면 오지 않을까? 쉽지 않은 마음으로 넘겼는데 드디어 해낸 것 같아서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시작이에요. 여기까지 에너지를 다 쓰고, 음반이 나오자마자 힘이 떨어진다면, 이후에 감당이 되지 않았던 경우를 지난 ep를 통해서 경험했기 때문에 에너지 분배를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긴 호흡의 음반을 만드는 과정에 최대한 신경을 쓰되, 이후 활동을 끌어갈 수 있는 에너지와 자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업을 했습니다.
20211011 마포fm 뮤직홍 <버둥의 둥둥이는 섬> 118화
Q. 정규음반 작업 사이에도 유튜브 라이브 방송과 라디오 디제이도 계속 하고 계셨어요. 10월에 라디오 <버둥의 둥둥이는 섬> 첫 시즌 마무리 하셨잖아요. 정말로 수고하셨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방송하는데 쉽지 않거든요.
맞아요. 끝내고 서야 알았어요. 해야 할 때는 어떻게든 시간 맞추어 해온 걸 마무리하고 다른 일정을 소화하면서 ‘와 내가 진짜 저걸 어떻게 했지?’ 싶은 거예요. 대본 멘트 선곡 편집까지 전부 다 제가 혼자 했거든요. 제가 혼자 다 준비해서 파일을 전달하면 마포FM에서 송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SBS 김창환 님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PD님께 저 라디오 원고 잘 쓸 수 있다고 자기PR도 하고 왔습니다.
Q. 라디오를 혼자서 꽤 오랜 시간 진행했고 시즌 1 종료를 했는데 시즌 2의 계획이 있나요?
마지막 방송에서는 12월에 돌아오겠다고 이야기했는데, 조금 더 잘 준비해서 1월에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라디오 방송을 2년 반 정도 했더라고요. 처음 제가 라디오 방송을 하겠다 생각 했을 때, 저에게 정기적인 일이 있는 게 아니었어요. 음악 관련한 일로 일주일에 한 번 마감을 쳐야 되는, 정기적인 사이클을 유지할 수 있는 이타적인 힘이 필요했어요. 규칙적인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마감 일자를 정하고 그 마감을 지켜야 하는 약속이요. 1시간 분량을 하려면 a4용지 5장 정도의 대본을 써요. 쓰고 읽기 전에 수정을 한번 하고 다시 읽고 수정하는 과정이 저의 글쓰기에 도움이 많이 되었고 또 좋은 점이 있다면 공연할 때 멘트가 확실히 좋아졌어요. 시즌 1을 마무리하게 된 계기는 언젠가 했던 말을 또 하고 있는 걸 어느 순간 느끼게 되어서, 제 방송이 계속 발전하는 콘텐츠가 되려면 다른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 결정했어요. 함께 진행 할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인원 충원을 해서 돌아오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 중입니다.
Q. 혼자서 이걸 또 2년 반이나 했다는 게… 리스펙트 합니다.
스스로도 많이 배우고 자부심도 생겼어요. 음악가로서 실패하게 된다면 어디 가서 라디오 막내 작가 들어가도 할 수 있지 생각해요. 이 정도 경력이 있다면 장난 없죠. 저. 지금까지 한 방송도 대본도 정리를 다 해 두었거든요. 대본만 100개는 되는 것 같고, 제가 방송에서 부른 게스트만 해도 저의 사력으로 불렀기 때문에. 질문부터 시작해서 저도 이렇게 인터뷰를 준비한다면 질문 짜는 것도 할 수 있고 그래서 다른 직업을 가져도 될 것 같아요. 하하하
Q. 저는 <살롱 드 헤르츠> 에피소드를 잘 들어서 시즌 2로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는데요. 혹시 다른 새로운 프로그램에 도전해 보고 싶은 것도 있나요?
<살롱 드 헤르츠>는 마포 fm에서 주최를 하신 거예요. 저한테 해 볼 생각이 있는지 이야기를 해서 진행했던 프로젝트입니다. 음악을 만들면서 가사를 만드는 게 도움이 됐던 부분이 많아서 일종의 심리 상담 요소로도 되게 잘 쓰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글을 쓰고 작사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경향도 있겠지만, 글을 쓰고 가사로 다듬으면서 한 단어나 한 문장의 주제를 남겨야 해요. 자신의 생각에서 필요 없는 말을 걸러내면 스스로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즐거울 것 같아 함께 작업을 한 건데, 실제 그 것도 제가 공부하는 마음으로 하게 되어서 해야 할 일이 많았어요. 곡을 녹음하고 편집하는 과정이니까요.
시즌 2 라기 보다 저의 텀블벅 펀딩을 통한 <부둥켜 프로젝트>가 있어요. 제 노래 중에 마음에 드는 한 곡이나 상황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사연이나 노래로 만들고 싶은 이야기를 가지고 기존 저의 곡을 개사하고 편곡도 새로 해서 한 곡 만드는 작업이 있습니다. 두 곡을 섞어서 만들어 본 적도 있어요. 펀딩을 위해 제공하는 리워드 중 <부둥켜 프로젝트>를 정말 좋아해 주셔서 기다려지고 재미도 있겠지만 일단은 제가 한 두 달 안으로 끝내야 하는 다른 작업이 있어서 연락을 드려야 해요.
Q. 매번 스스로 나의 이야기를 쓰다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드는 것도 공부하는 느낌으로 하셨다고 하지만 아주 많은 도움이 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도움이 많이 되고 또 새로워요. 많은 사람이 나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구나, 아니면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를 같이 느낄 수 있어서요.
Q. 너무 좋아요. 유튜브 채널은 라디오보다 더 이전부터 했잖아요.
대학교 다닐 때부터는 조금씩이요. 6-7년전 처음 제가 유튜브를 한다고 말하기에 그 때는 꾸준히 뭔가를 업로드 하기 보다도 그냥 내 채널을 가지고 있던 거였죠
Q. 노래 커버 영상부터 브이로그, 라디오의 아카이브, 뮤직비디오까지 전부 스스로 채널 관리를 하고 계시잖아요.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 스스로의 채널을 가지고 라이브 방송이나 콘텐츠를 유지해 나가는 부분에 많이 노력하셨을 것 같아요.
네. 그렇죠. 그래서 아직 타협점을 잘 못 찾겠어요. 실제로 유명한 크리에이터처럼 매일 영상을 만들 수는 없고, 저는 영상 편집이 어렵다고 느끼지만 좋아하시는 분도 계시더라구요. 제가 음반을 자주 내는 사람이 아닌 만큼 콘텐츠도 빨리 만들 수 없는 사람이지만요.
Q. EP사이즈로 1년에 한 번이면 부지런하다고 생각해요. 싱글을 네다섯개 한번에 내는 거니까.
최근 인터넷으로 어느 분이 저는 혼자 끌어가서 그런지 음악을 발매하는 기간에 있어 텀이 긴 게 아쉽지만 그것만 빼면 다 좋다라는 이야기를 읽어서요. 저는 음악으로 소통을 계속 하고 싶었어요. 특히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요. 저는 일주일에 공연 하나씩은 하던 사람인데 공연을 할 수 없게 되니 감이 떨어지는 것도 느껴지고 그래서 어떻게든 만나면 좋지 않을까 싶어 연습한다 생각을 하고 라이브 스트리밍을 계속 한 것도 있어요. 지금까지 저는 유지해 온 일이 많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이게 유지를 하려고 노력을 했다기보다, 배우는 자세로 어떻게든 지난 방송보다는 낫게 하려고 노력하고 그런 마음으로 나아간 것 같아요.
라이브 방송은 처음에는 100% 저의 의지로만 이끌어 나가야 했는데, 지금은 감사하게도 들어 와 주시는 분들이 너무 좋아해 주세요. 공연을 하게 되면 제 이야기만 하잖아요. 제가 일방적으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제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하는데, 라이브 방송에서는 실시간으로 감상도 들려주시고 같이 이야기로 소통 할 수 있는 게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해외에 계신 분들도 시청해 주세요. 가끔 미국이나 독일에서 보고 계신다고 하는데 그냥 출근하거나 일하시면서 틀어 놓으시는 거예요. 저는 저녁에 하지만 그 분들은 다른 시간이라는 게 느낌이 새로웠어요. 이제 저의 공연이 연말까지 일주일에 하나씩은 있을 예정인데, 라이브 방송은 계속하고 싶어요. 저를 마냥 좋아해 주시지만 민감한 부분도 있어요. 예를 들면 휴방이겠죠. 또 지난주에는 10곡을 불렀는데 이번주에 8곡을 하면 더 불러 달라는 요청도 있고 앵콜도 물러서지 않으세요. 팽팽한 덕분에 저도 혼나면 안된다고 생각하니까 일주일에 한 번 꼭 시간을 비워서 준비하려고 해요.
Q. 슬기롭게 판데믹을,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 넘어가신 것 같아요. 그래도 공연 하셔야죠.
최근의 라이브 방송은 라디오와 섞어 놓은 방식으로 하고 있어요. 말도 많이 하고 노래도 실전 연습하는 느낌으로요. 예전에 라이브 방송 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지금은 열심히 준비한 건 대면 공연으로 와서 봐 주십사 비교적 편하게 방송하고 있어요. 가끔 댓글로 설렁설렁한 거 아니냐는 피드백 들어요.
Q. 정말로 2021년 열심히 달려오셨네요. 벌써 11월이잖아요. 어때요? 올해를 돌아 보니까.
결과에 집착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정규 음반이 나오기 이전만 해도 올해의 나는 게을렀던 게 아닐까 생각 했어요. 보이는 결과가 딱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예를 들어 19년에는 헬로루키가 있었고 20년에 싱어게인에 출연 했다면, 올해는 정규 음반을 빼면 제가 무엇을 했다라고 보여 줄 수 있는 결과가 없잖아요. 그래도 10월에 정규음반을 내 놓았지만, 그 전까지의 과정은 공연이 없는 상태에서 해결한 것도 없다는 마음으로 지나 왔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도 결국 2021년에 결과물이 나왔고 음반에 대한 피드백이 좋으니 갑자기 저도 그 앞의 힘들었던 기억이 미화가 되는 거예요. 내가 열심히 살았나 보다 라구요.
Q. 추억 보정 같은 느낌일까요?
어떤 결과물이 좋으면 예전에 실패한 과거도 역경을 딛은 미화가 되기도 하니까요. 이제 저는 결과물에 대해 때가 되면 나올 것이 나오겠지. 또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이 의미를 부여해서 생각하는 일은 없게 해야 어떤 일이든 오래 하겠다라는 생각이 올해에 들은 것 같아요.
Q. 지금까지 나아 간 내 자신에 대해서, 드디어 올해 정규음반을 냈고 생각보다 해온 일도 많아서 괜찮은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뭐 나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어때요? 스스로에 대해 만족 할 수 있나요?
네. 조금만 생각을 돌아 보면 매우 행복한 한 해였어요. 사실 정규 음반을 내도 되겠다라고 생각했던 계기 중 하나는 진짜 내 음악을 내 주변의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만 듣고 그 사람들만 좋다라고 이야기 해주면 그저 내가 조용히 없어져도 괜찮겠다 라는 마음으로 음반을 만든 거예요.
당연히 반응이 좋으면 또 좋겠지만, 그런 건 제가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저 나는 최선을 다했고 피드백이 어떻든 이 음반은 올해 나와야 되는 음반이었으며 나는 제 때에 일을 마쳤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에 만족할 수 있었기 때문에 행복하고 만족합니다. 뭐랄까 이번 음반을 통해 저의 음악을 더 좀 다른 분들도 많이 들어주시고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요소가 된 것 같아요.
잘 안 되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 없이 작업 자체에 만족하면서 친구들과 뮤직비디오도 즐겁게 찍었고 그저 행복하게 보내는 지금입니다. 이전의 저라면 한 해를 보내는 게 힘들었고 불안하고 불행하게 느껴져서 스스로 채찍질 하는 마음이었지만, 지금의 저는 왜 이렇게 많이 들어주시지? 아니 이게 이렇게 잘 될 일이었어? 펀딩으로 천만 원이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야? 230장에 사인을 해야 된다고? 지금? 이런 상태이구요.
Q. 숫자로 보이는 척도가 대중이 보이는 반응들 가운데 가장 와닿잖아요.
돈으로 보이는 부분에 저는 진짜로 놀랐으니까요. 평소에 인스타그램을 올려도 좋아요 200개 까지 되지 않지만, 그런 저의 음반을 위해 좋아서 펀딩해 주신 분이 200명이 넘은 게 좋아요. 아끼는 마음을 돈과 숫자로 표현해 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Q. 아끼는 마음은 돈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진짜 가지고 싶은 리워드를 만들려고 많이 노력 했습니다. 연말이라 그런지 인쇄소가 많이 바쁜가 봐요. 원고 교정 다 끝났고 곧 인쇄 넘길 것 같은데 나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 불안해요. 펀딩에 알려드린 스케줄보다 밀릴 것 같은 예감이 있어요. 원래도 약속한 날짜에서 일주일 정도 밀리는 일정이었는데, 오늘 연락 받은 따끈따끈한 소식으로는 12월 중순쯤에야 완료가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어서 이 상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될지 지금 고민 중이에요. 제일 속상한 건 이 손해를 펀딩해 주신 분들이 감수해야 하니까 제가 어떻게든 AS를 드려야죠.
Q. 힘내세요. 텀블벅이 마무리 되면 연말은 어떻게 보내실 예정인가요?
12월 17일 벨로주에서의 단독 공연이 올해의 마지막 공식 스케줄이에요. 곧 홍보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단독 공연을 마치면 올해 활동을 마무리하고 연말엔 쉬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 그리고 2022년, 내년에는 전국 투어를 할 계획이에요. 처음으로 지방 공연을 예정하고 있어서 계속 지켜봐 주시면 제가 찾아가는 공연으로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의 연말은 합주나 공연 준비가 없다면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Q. 유튜브도 휴방인가요?
그건 아직 디테일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일단 할 일을 해야겠죠. 리워드를 마무리 하고 단독 공연 전 까지는 매주 다른 공연도 있고 라이브 방송도요. 홍보 제 때에 못한다고 혼나는데 제가 잘 할게요.
Q. 스스로를 돌본다는 게 개인으로서의 버둥이 아니라 음악가로서의 버둥까지, 혼자서는 힘들죠.
혼자서는 버거울 정도로 해야 할 일이 많은데요. 이 일을 두 명으로 나누면 수익이 되지 않는 상황이 그런 것 같아요. 혼자서 다 하면 저 하나 먹고 살 수 있지만, 이걸 나눠서 일을 더 키우기에는 계산이 되지 않아서 이런 부분을 고민하고 함께 할 수 있는 회사를 찾는 게 내년의 목표 중에 중요한 하나에요.
제가 혼자 낑낑 대고 있으면 옆에서 저에게 회사가 필요하겠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어요. 적극적으로 저에게 회사가 필요하다는 걸 말해야 알아 줄 수 있다고 하셔서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살면서 지금까지 이렇게 크게 어필 해본 적은 없지만 여기저기 열심히 이야기 하겠습니다.
Q. 그렇게 하셔도 돼요. 이 정도 하셨으면 스스로 자신감 가져도 됩니다. 원하는 대로 되실 거예요. 이제 슬슬 마무리 해볼까요? 혹시 지금까지 한 이야기 중에 한마디 더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해 주시면 마무리 하겠습니다.
요즘은 비교적 싱글을 많이 발매하는데, 저는 정규 앨범의 10곡이 한 번에 나오게 되니까 싱글 10개 처럼 한 곡 한 곡이 다 주목 받았으면 좋겠어요. 작업 하면서 프로듀서님이 정말 열심히 작업 한 노래들, 이 아이들이 한 곡씩 다 주목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 주셨거든요. 저도 작업에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았고, 결국 발매를 했으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한 곡, 한 곡 다 홍보할 수 있게 끔 노력하겠습니다. 전국 투어를 할 내년까지 쭉 이어서요. 그래서 한 곡 마다 담겨진 이야기나 앞으로 제가 어떻게 곡을 또 소개할지도 많이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타깝게도, ‘나’가 정말로 ‘우리’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I Mean Us”, ‘나’가 ‘우리’를 의미한다고, 혹은 “I’M U”, ‘나’는 ‘너’라고 발화하면, 분명하게 나뉜 줄 알았던 의미 값들이 서로에게 충돌하고 각자와 겹쳐지며 인상적인 장면들이 나타날 수 있다. 대만의 인디 팝 밴드 I Mean Us의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의 현장이 만들어진다. 록 밴드로서 주로 사용하는 악기들부터 온갖 전자음을 만들어내는 신스와 가상악기들, 오랜 역사의 관현악기와 전통 악기 등에 얽힌 장르적 특징을 결합하며, I Mean Us는 웅장하고 극적이게 펼쳐지는 사운드스케이프로 꿈과 상상, 혹은 기억과 같은 신비한 세계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두 번째 정규 음반인 [Into Innerverse]에서 밴드는 감정이 흔치 않아진 미래를 배경으로, 폭넓고 다채로운 내면세계로 들어가는 탐험자가 되었다. 멤버들부터 악기 소리와 구간들의 전개, 장르 문법까지 제각기 다른 요소들이 한데 모여 ‘우리’이면서도 ‘너와 나’로 풍부히 나타날 때, 몽환적인 동시에 직설적이고자 하는 사운드 속에서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뜻은 정말로 가까워질지 모른다. 한국의 청자들에게는 아직은 낯설 I Mean Us의 세계에 대해 메일과 번역을 거쳐 질문을 보내, ‘이너버스’의 여행자들을 위한 안내서를 그 답변으로 받아보았다.
Q.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미 [OST]가 Beeline Records를 통해 한국에서도 정식 발매되기도 했지만, 이번에 [Into Innerverse]로 처음 만나는 청자들을 위해 I Mean Us를 간략하게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우리는 대만의 인디팝 밴드 I Mean Us입니다. Sigur Rós, M83 그리고 Agnes Obel에게 큰 영향을 받았고, 드림팝을 기반으로 포스트록, 사이키델릭, 슈게이징과 클래식 음악의 요소들을 결합한 음악을 만들고 있습니다.
I Mean Us의 음악에서는 현대의 악기들과 관현악기와 전자음, 신비로운 사운드들이 조화를 이룹니다. 이러한 풍부한 요소들로, 우리의 음악은 사람들의 사고를 제한하지 않고, 청자들을 가능성으로 가득 찬 차원으로 인도합니다. Into Innerverse는 모든 종류의 상상, 감정, 기억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프리즘이 될 것입니다.
Q. I Mean Us, 가끔씩 줄여서 ‘I’m U’이나 IMU로도 표현되는 팀명이 참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이름 속에 ‘나’와 ‘우리’와 ‘너’가 다 함께 있다는 게 마음에 들더라고요. 혹시 팀명에 의미가 있다면 무엇인지, 어떻게 아이디어를 떠올렸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밴드의 이름은 우리가 밴드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일상의 대화 속에서 나왔던 말이에요. 누군가가 “I mean us”라고 말했고 그 이름이 우리를 바로 뭉치게 했습니다. 음악도 우리에게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아요. 공연이나 파티 장면들을 보면, 사람들은 음악 속에서 하나가 되어 기쁨과 슬픔을 나누잖아요.
Q. 이러한 팀명에서는 바이오그래피에서 “각기 다른 모든 악기, 아이디어와 생각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uniting every single piece of different instruments, ideas and thoughts as one)”이라고 하신 것도 생각났는데, 이 문장이 마치 밴드의 형태로 음악을 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지더라고요. 하나의 ‘밴드’로서 I Mean Us가 지향하는 음악이나 그 이미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리가 특별히 집중하고 있는 장르는 없어요. 모든 멤버들은 각각 다른 음악적인 배경과 취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클래식부터 포스트록, 전자음악, 한국 힙합까지 모든 장르를 포함해요.
우리는 모든 악기, 아이디어 그리고 생각들이 각 멤버들의 강점과 취향이 드러나는 응축된 문장으로 결합되는 걸 목표로 합니다. 밴드로서 우리가 함께일 때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Q. I Mean Us의 음악에서 또한 ‘각기 다른 부분이 통합된 전체’와 비슷한 인상이 들었어요. 신시사이저와 전기기타 모두가 다른 소리를 내지만 균형을 잡으면서, 선잠을 잘 때 꾸는 꿈같은 분위기의 사운드를 만드는 인상이 느껴졌습니다. 작업을 하실 때에 이렇게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 있어 가장 집중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 처음에는 보컬라인에 집중해요. 그리고 나서 다른 악기들이나 이펙트를 매치해요. 각 악기가 가지고 있는 음색 외에도, 소리의 잔향이나 울림에 집중해서 더 몽환적인 사운드를 만들고자 합니다.
Q. [Into Innerverse]에서는 그러한 ‘균형’이 느슨하게 머물고 있던 드림 팝의 기반을 아예 떠나서, 악기들을 더 폭넓게 사용하며 가볼 수 있는 많은 영역들을 탐색하는 느낌입니다. 이번 음반을 “전적으로 새로운 여정(whole new journey)”이라 부르셨던 것이 함께 생각났는데요, 특히나 이번 음반에서는 어떤 측면이 ‘전적으로 새롭게’ 될 수 있도록 하셨나요?
“여정”이라는 단어는 앨범의 제목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청자들이 앨범을 듣는 동안 각자의 내면의 세계를 탐험하는 마음의 여정을 떠나길 바라요. 물론 더 로맨틱하고 젊음을 담고 있는 첫 번째 앨범 OST와 비교했을 때 Into Innerverse는 더 성숙하고, 어둡고, 공격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음악적인 스타일과 주제적인 측면 모두에 있어서요. 지난 3년 동안 너무나 많은 쓰라리고 달콤한 변화들이 있었어요.
Q. 이 ‘전적으로 새롭다’는 느낌은 이번에 새로 찍으신 프로필 사진에서도 좀 느껴졌습니다. 저마다의 색깔이 담긴 흰옷을 입고 눈가에 페이스 페인팅을 한 것이 묘하게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Aladdin Sane] 속 글램한 이미지들이 떠올랐거든요. 어쩌다가 이런 프로필 사진을 찍게 되셨는지, 그것이 [Into Innerverse]와 관련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앨범의 비주얼 아트의 배경과 주제는 감정들이 드물고 귀중해진 초현실적인 미래를 배경으로 합니다. 수정 구슬은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고 각각의 목적지가 다른 정서적인 감각을 나타내죠.
콘셉트 회의를 기반으로, 우리의 스타일리스트 Dorene은 각 멤버들의 착장에서 먼 곳으로부터 방랑하고 있는 “수정 구슬 요정”의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했습니다. 흰색이 다른 색들을 중화시켜주고, 무(無)의 개념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녀는 흰색을 착장의 시각적 포인트로 사용했어요. 또 보존 처리된 꽃잎으로 만든 얼굴 장식은 사랑과 애정의 지속을 나타내고, 소중한 감정들을 지난한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지키고 영원한 기억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기억으로 간직합니다.
Q. 음반 제목에 ‘Innerverse’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이 ‘이너버스(Innerverse)’가 정확히 어떤 “세계”인지가 궁금해지더라고요. 밴드 자체가 탐험해 보고 싶은 어떠한 공간인지, 정말 단어 뜻 그대로 누군가의 “내적 우주” 같은 곳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지 알려주세요.
우연히 앨범의 메인 아이디어를 지난 질문에서 이야기했네요.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소중한 감정들을 살펴보고 지켜내길 바랍니다. 각 노래들에 특정 감정을 부과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며 느꼈던 감정들을 간직하길 바라요.
Q. 이제 본격적으로 [Into Innerverse] 속 음악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우선 트랙들에 새로 들어온 소리가 두드러지는 편이었어요. 대표적으로는 “E.D.E.N”에서의 색소폰과 함께 몽골 지역의 전통 창법인 흐미(khoomei)의 소리가 있을 거 같네요. 어쩌다가 대중음악 트랙에서 흔히 사용하지 않는 이런 창법의 목소리를 넣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E.D.E.N’의 작곡가 Chun은 트라이벌한 사운드에 주목하고 있어요. 그는 전세계 곳곳에 있는 오래된 노래들이 어머니 지구에 대한 사랑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E.D.E.N’의 데모를 만들고 있는 중에 마침 그의 친구가 내몽골에서 흐미와 마두금을 배우고 귀국했고 친구를 초대해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습니다. Chun이 전통음악에 대해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 트랙의 작곡가로서 곡의 사이키델릭한 분위기와 흐미가 완벽하게 호응할 것이라는 걸 알았죠. 흐미 파트의 가사는 “욕정을 삼가라”라는 의미로, 문수보살(Manjushri)의 진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Q. “E.D.E.N” 얘기를 좀 더 하자면 ‘네오 사이키델리아’나 ‘드림 팝’의 분위기를 강조하던 전작과는 거리가 꽤 먼 것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댄서블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신스음을 중심으로 반복적인 그루브를 강조한 건 “E.D.E.N”의 앞뒤에 놓인 “普通人類”이나 “I Dot Car”에서도 그랬고요. 어떻게 해서 이런 트랙들에서 그루브나 리듬감을 특히 강조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조금 더해서, 춤추게 하는 음악들을 꿈꾸게 하는 음악들보다 좋아하시는지요?
둘 다 좋습니다! 공중에서 부유하는 것과 땅 위에서 춤추는 것 둘 다요.
‘I Dot Car’는 우리가 함부로 보냈던 어느 멋진 밤을 위한 노래에요. 이 곡의 믹싱 엔지니어인 Caesar Edmunds는 이 노래가 고등학교 무도회를 떠올리게 한다고 했어요, 하하.
‘普通人類 Humans’를 만들 때 우리가 집중했던 단 한 가지는 “더 스타일리시하면서도 거침없는 사운드를 만들자”였습니다. 절대 “댄서블”하게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Q. 한편, 한 트랙 안에서도 분위기나 박자, 장르적인 특징이 지속적으로 뒤바뀔 때가 많다고 느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E.D.E.N” 얘기를 하자면 곡 내의 강약의 조절이 굉장히 극적인 것도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 무언가 지난 음반의 제목이 ‘OST’였던 것도 떠올랐습니다. 이를테면 “Run Ran Run”의 도입부나 브릿지 구간들이 트랙에 ‘삽입’된 듯 들어간 것이 은근히 블록버스터 영화의 시퀀스처럼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이외에도 “普通人類”의 도입부나 장엄한 “Muséum”의 시계 소리 효과음이 비슷한 감상을 줬는데, 곡 작업을 할 때 어떤 극적인 이미지나 진행을 염두에 두셨는지 궁금합니다.
‘Muséum’은 평화와 슬픔으로 가득 찬 혼란 속의 꿈과 같습니다. 도입부의 퍼커션은 시간에 대한 감각을 의미하고 반복되고 패닝하는 리버스 기타 사운드와 함께 우리 머릿속의 작은 카오스를 포착합니다.
‘普通人類 Humans’에서는 무감각의 차원에서 비생물적인 존재가 된 당신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 곡에는 이교도적이고 종교적인 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사운드를 넣었어요.
‘Run Ran Run’의 이미지는 바쁜 날을 보내고 한 후 침대에 누워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당신과 닮아 있습니다.
Q. [Into Innerverse]에는 현악기를 사용하는 트랙들도 있었습니다. “Run Ran Run”에서는 컨트리나 웨스턴 음악과 같은 스트링 솔로가 들어오고, “9”에서는 왈츠가 울려 퍼지는 무도회장처럼 나타난 현악 연주가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전환시키네요. 이런 식의 사운드가 록에 현악기를 접목시키는 일반적인 방법들과 조금 다르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스트링 세션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려 하셨나요?
두 노래에서는 실제 브라스, 스트링 세션과 녹음했어요. ‘9’는 감정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곡이고, 첫 번째 파트와 두 번째 파트의 갭이 상당히 큰 곡이에요. 프로듀서는 브라스의 톤과 텐션이 곡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연결 고리의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또한 두 번째 파트의 (왈츠풍의) 우아한 분위기는 오케스트라로 인해 두드러지죠.
‘Run Ran Run’의 작곡가의 의도대로 원 데모에서 스트링과 바이올린을 추가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넓고 광대한 느낌을 좋아하는데, 도입부가 마치 옛 중국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기도 해요. 프로듀서는 이 노래에서 블루그래스의 정신이 느껴진다고 했는데, 와이드한 코러스와 스트링을 사용해서 클라이맥스 부분을 만들고자 했어요. 아웃트로를 들을 때 모두가 “와우!”라고 느낄만한 요소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Q. 굉장히 인상적인 톤의 건반과 함께 현악기를 탄탄히 적용한 “24 Years Old of You”는 음반에서 특히나 돋보이는 곡입니다. 싱글로서는 이번 음반과 지난 음반 사이에 놓인 연결점 같은 위치에 있기도 하고,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가사(“Something begin to change and embrace / But you might not know that my feelings will never change”)도 있어서, [Into Innerverse]의 정수가 담겨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곡에서 가장 중점으로 두었던 요소가 있다면, 어떤 걸 담아보려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24 Years Old of You’는 I Mean Us에게 굉장히 중요한 곡이에요. 대만의 멋진 시상식에서 상을 받게 해주었고, 밴드로서 우리의 발전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작곡가인 Mandark는 이곡의 특별한 요소로, 오보에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녀는 보통 머릿속에 있는 멜로디와 노래의 이상적인 사운드로부터 작업을 시작해요. 그래서 오보에와 스트링 사운드가 그 노래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 거죠. 프로듀서인 LUB의 제안으로 오보에와 스트링 사운드를 실제 악기의 질감과 가장 비슷하게 구현했지만 더 독특한 느낌을 주는 신스와 가상악기를 사용했습니다. 우리 모두 그게 마음에 들었어요.
Q. 이번엔 노랫말에 대해서 조금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음반 내내 ‘너’와 ‘나’가 함께 혼란스러운 감정들의 공간 속에서 헤맨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첫 곡인 “Muséum”에서 제시되는 ‘Suddenly awake from the end of the dreams’이나 ‘What if we turned around / There’s nothing there?‘에서 불안하게 요동치는 심정이 음반이 진행될수록 격해진다고 느껴졌는데요, [Into Innerverse]를 관통하는 감정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각각의 노래를 독립적인 개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사와 감정의 측면에서, 듣는 사람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들을 남겨두고 싶었어요.
굳이 이야기하자면, 어떤 감정이든 좋고 나쁜 건 없어요. 그저 지켜보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거죠. 어느 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그게 완전히 나쁜 것만은 아닐 거예요.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동반하니까요. 모든 감정을 평가하거나 정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흘러가게 놔두는 거죠.
Q. 조금 뜬금없게 느껴질 수도 있긴 한데, 음반의 8번째 곡이자 마지막 곡의 제목이 하필 “9”더라고요. 이런 불일치가 일종의 농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한편, ‘Fear landing / Inside your heart and you break’ 같은 가사를 보면 “Muséum”에서 시작된 혼란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채 끝난다는 인상도 있습니다. “9”의 진행 또한 에너지가 가장 높이 오른 부분이 갑작스레 뚝 끊기면서 음반을 끝내는 게 겹쳐지기도 했고요.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음반을 마무리하거나 “9”를 끝내보려 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트랙의 순서에 대해서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 모두 이 앨범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지막 트랙을 끝내고 ‘Muséum’으로 돌아와 반복해서 듣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몰입하고, 반복하는 거죠.
Q. 2018년에는 <Focus Asia 3>으로, 2019년에는 <잔다리 페스타>로 내한을 하셨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올여름에는 <On-Tact ‘ALIVE’ 축제>로 ‘온라인 내한’을 하시기도 했고요. 그중에서도 18/19년도의 내한 공연 때에 이러저러한 에피소드들이 있었다는데, 그게 어떤 것이었는지, 아니면 내한 공연 당시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한국에 머무르며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요. 그 친구들과 우리의 음악을 사랑해 주는 팬들은 우리가 가장 아끼는 아름다운 것들이에요. 솔직히 한국의 음악 시장은 외국의 인디밴드가 진입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한국의 팬들이 나날이 늘어간다는 사실에 굉장히 감사하고 있어요. 매번 한국에 갈 때마다 긍정적인 피드백도 많이 받았고요. 게다가 우리는 삼겹살의 노예에요. 사랑하는 친구들과 삼겹살/오겹살을 먹었던 순간들이 그리워요.
Q. 반대로 대만에서 열렸던 공연에 보수동쿨러(Bosudong Cooler)를 초청하기도 하셨죠. 종종 한국과 대만 밴드들 사이에서 이렇게 공연을 통해 오고 가며 만나는 일들이 많은데, 한국 공연에 함께 가고 싶은 다른 대만 밴드나, 아니면 대만 공연을 함께 하고 싶은 다른 한국 밴드가 있을까요?
우리의 친구인 淺堤 Shallow Levée와 함께 하고 싶네요. 예전에 한국에서 공연을 한 적도 있죠. 두 팀이 함께 한국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면 엄청 재미있을 것 같네요. 倒車入庫 Reversing into Garage, 甜約翰 Sweet John, Deca Joins와 함께 하는 것도 좋겠네요. 대만에는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리고 싶은 좋은 음악가들이 굉장히 많아요.
한국에도 저희가 좋아하는 음악가들이 많아요. 잔나비, 카더가든, 우효, 장기하, 라드 뮤지엄, Mokyo, 나이트오프 등 셀 수 없이 많아요. 물론 우리 친구들인 보수동쿨러, 랜드 오브 피스, 플랫폼 스테레오, 사뮈도 사랑합니다. 지금, 드러머 PP L의 최애는 원슈타인이에요.
Q.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다시 한번 [Into Innerverse]를 되짚어보는 의미에서, 멤버분들 별로 이번 음반에서 애정이나 개인적인 의미가 많이 담겼다거나, 이것만큼은 한국의 청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곡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드려요!
Vitz: ‘Muséum’과 ‘I Dot Car’ 중에 고르기가 아주 어렵네요. 둘 다 제가 처음 썼던 데모로부터 많은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좋아해요. 두 곡 모두 소중한 밴드 멤버들과 프로듀서가 없었다면 아름답게 변하지 못했을 거예요. 우리가 함께일 때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곡들입니다.
PP L: 사람들은 변하고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이번 앨범은 저에게는 발전이자 성장의 증거에요. 지난 앨범인 [OST]에서 [Into Innerverse]로 오기까지 저의 연주와 편곡 실력이 더 깊이 있어졌고 풍성해졌습니다. 제 자신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 밴드 멤버들에게 감사해요. 또 저의 개성을 지켜주면서 드럼 사운드를 더 멋지게 만들어준 프로듀서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Chun: ‘Run Ran Run’을 가장 추천하고 싶어요. 당신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가만히 멈춰서 생각하게 만드는 곡입니다. 저녁노을과 잘 어울릴 거예요.
Mandark: ‘Unicode’에요. 저에게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Hank: 우리가 만든 사운드와 음악들 이외에 앨범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은 앨범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요. 더 이상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나 로맨틱한 감정에만 집중하지 않고 죽음이나 증오, 후회와 같은 감정들도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우리의 음악을 들으며 더 많이 느끼고 상상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앨범의 모든 곡을 추천하고 싶지만 한 곡을 꼭 골라야 한다면 ‘I Dot Car’를 추천합니다. 젊고, 무모하고 멋진 느낌을 주는 곡입니다. 저는 그러한 정신을 소중하게 여기는데, 우리가 너무 커버린 다면 사라질 감정들이기 때문이죠.
Interview | 나원영 (대중음악비평가, 웹진 weiv 필진)
번역 및 협조 | Beeline Records
I mean, I Mean Us is us.
Hello, nice to meet you! [OST] has already been officially released in Korea through Beeline Records, but can you briefly introduce I Mean Us to the listeners who are discovering the band for the first time through “Into Innerverse”?
Hi everyone. We are I Mean Us, an indie pop band from Taiwan. Having been greatly influenced by Sigur Rós, M83 and Agnes Obel, our music is based in Dream pop, but also combines styles from genres such as Post Rock, Psychedelic Rock, Shoegaze and Classical music as well.
Modern instruments are combined delicately with orchestral and electrical/ethereal sounds in our songs. With those plentiful elements, our music won’t limit one’s thoughts. On the contrary, it can lead the audiences to a dimension full of possibilities. Into Innerverse can be that prism which reflects any kind of imaginations, emotions or memories.
I Mean Us, sometimes abbreviated as “I’m U” or IMU, thought the team name was very interesting. I liked the fact that “me,” “we” and “you” are all represented in the one name. Can you tell me what exactly the name means and how you came up with it?
Before we started the band, this name had already come up just through general conversation. Someone had said “i mean us”, and we instantly bonded over that name. We thought music meant the same thing to us. In a scene like a gig or party, it’s because of the music that people gather together to share their joy and sorrow.
In the album biography you say you are “uniting every single piece of different instruments, ideas and thoughts as one,” and this sentence felt like the story of music being told by a band. What kind of music and image is IMU aiming for as a band?
So there’s no specific genre that we try to focus on. All the members of the band have really different music backgrounds and tastes. Everything from classic music, post-rock, electronic music to Korean hip hop.
We aim to unite all the different instruments, ideas and thoughts into one cohesive sentence that shows each member’s strengths and tastes. As a band we want to make music that only we can do when we get together.
I also had a similar impression that I Mean Us’s music unites instruments, ideas and thoughts as one. Both the synthesizer and the electric guitar make different sounds, but it is balanced well and I felt the impression of a dream-like sound like I was sleeping. What do you focus on the most when making music to create this special atmosphere?
Basically we focus on the vocal lines first and then try to match them with other instruments and effects. Besides the timbre of each instrument, we focus on the reverberation and echo effects to make it sound more dreamy.
[Into Innerverse] although loosely still tied to Dream Pop feels like you’re exploring instruments more widely and searching out new musical territories to explore. I remembered that you called this album “a whole new journey,”what aspect of it did you make completely new?
The word “journey” kind of relates to the album title. We hope that the listeners can go on a journey of the mind to explore their innerverse with us while they listen to the album. Of course, compared to our first album OST which delivers a more romantic and young spirit, Into Innerverse is more mature, dark, and aggressive……? Both in terms of the music style and the topic of the songs. There have been so many bitter and sweet changes during the past three years.
This “completely new” feeling was also felt with the new profile picture you took this time. The white clothes with splashes of colour around the eyes reminded me of glam images such as David Bowie’s [Aladdin Sane]. How did this idea come about and how does it relate to the album [Into Innerverse].
The time frame/theme for the visual arts of the album is set in a surrealist future where emotions are rare and treasured. The crystal balls act as vehicles for emotional transmission, with each destination representing a different emotional sensation.
Based on the concept discussed with us, our stylist, Dorene, attempted to construct an impression of “crystal ball fairies” for the band members’ attire —vagabond fairies who have drifted from afar to many places. She has chosen the color white as the main visual cue for the outfits, because white neutralizes other colors and embodies the concept of nothingness. Also, the ornamental petals on the faces made from preserved fresh flowers attributes to the longevity of love & affection; safeguarding precious emotions from the unforgiving passage of time and forever preserving them in our minds as ever-lasting memories.
You used the word “Innerverse” in the title of the album, and I was curious about exactly what an “Innerverse” is. Please let me know what kind of space the band itself wants to explore, is it really someone’s “internal universe” or something else.
Coincidentally we mentioned the main idea of the album in the last question. We want to explore and preserve the precious emotions in peoples’ minds. We didn’t assign specific emotion or image to each song, we just hope the listeners could feel something while the music plays, and preserve it.
Now, let’s talk about the music on [Into Innerverse]. The first thing that stood out to me is the new sound of the tracks. ‘E.D.E.N’ with the saxophone and the sound of khoomei (a traditional Mongolian throat singing technique) is a good example of this. How did you work this rarely used vocal technique into a pop song?
The composer of “E.D.E.N.”, Chun, is really into tribal sounds in music. He thinks ancient chants from all over the world have a deep connection to our love for mother earth. At the time he was making the demo of “E.D.E.N.”, a friend of his has recently returned from Inner Mongolia where he has been learning khoomei and morin khuur, so Chun invited him to collaborate on this song. Even though Chun does not specialize in ethnic music, as the composer of this song, he knew immediately that the sounds of khoomei would fit perfectly with the psychedelic atmosphere of the song. Notably, the lyrics of the khoomei part of the track are from the Manjushri buddha mantra, which means “refrain from the lust”.
To talk a little more about “E.D.E.N,” despite it being quite far removed from your previous work that emphasized “neo psychedelia” and “dream pop,” it is very danceable and a lot of fun. The emphasis on repetitive grooves centered on synths was also apparent in “普通人類” and “I Dot Car,” which come lie before and after “E.D.E.N.” on the album. I wonder how you came to emphasize grooves and rhythms in these tracks. Do you like music that makes you dance more than music that makes you dream?
We like both! Floating above and dancing on the ground.
“I Dot Car” is a song for those wonderful nights that we spent recklessly. Our mixing engineer of this song, Caesar Edmunds, said the song reminded him of high school prom haha.
When we were producing “普通人類”, the only thing we thought was to “make it sounds more stylish and ruthless”. We never tried to make it “danceable” at all.
On the other hand, even within one individual track, I feel that the atmosphere, beat, and genre characteristics often change continuously. Last mention of “E.D.E.N,” the control of the strong and quiet parts within the song make it very dramatic, and that reminded me that the title of the last album was “OST.” Also, the introduction part of “Run Ran Run” and the bridge section seems to have been “inserted” into the track, and that feels like a sequence in a blockbuster movie. In addition, the introduction of “普通人類” and the sound effects of the majestic “Muséum” gave similar impressions. I wonder what dramatic image or process you had in mind when working on these songs.
“Muséum” is like a dream in chaos, filled with peace and sadness. In the beginning, the percussion instruments imply a sense of time, and with those repeating, panning reverse guitar sounds, it captured that tiny chaos inside our brain.
In our song “普通人類”, you can imagine yourself as a non-biological being living in a senseless dimension. We also added some heretic and ritual flavors in it.
The image from “Run Ran Run” is quite like after you’ve been through a busy day, lying on your bed and starting to get along with yourself.
[Into Innerverse] also has tracks that use string instruments. The song “Run Ran Run” contains string solos that are almost like ‘country and western’ music. The song “9” has a string performance that has a waltz-like feel that completely changes the mood of the song. I felt that this kind of sound was a little different from the general methods of incorporating string instruments into rock music, but how did you intend to use the string session in your songs?
We recorded real brass and string sessions for both of these two songs. “9” is a song that builds up the emotions little by little, and has a huge gap between the first part and the second part. Our producer thought that the tone and the tension of real brass would work as a link, helping the whole song be more united. Also, the elegant feeling of the second part (waltz-like feel) was accentuate against the orchestra.
“Run Ran Run” has arranged strings and violin in the original demo as the composer wanted. We all like the wide and vast feeling, and make fun of it sometimes during rehearsal – in the beginning it feels like riding horses in ancient China. The producer feels the Bluegrass spirit on this song, and tries to make the climax of the song by adding a wide chorus and real strings. We hope everyone can feel the “WOW!” factor while they’re listening to the outro.
“24 Years Old of You,” with its very impressive tone keyboard and a solid string instrument part is a stand out track on the album. As a single, I felt like this song links your previous work on the last album with this new album. It also contains the lyrics “Something begin to change and embrace / But you might not know that my feelings will never change” . I think this might be the essence of [Into Innerverse] and thus is a vital part of the album. Was there a particular element you focused on the most in this song, if so, what was it?
“24 Years Old of You” is really an important song for I Mean Us! It not only brought us a cool award in Taiwan, but also represents a great improvement for us as a band.
As for a particular element of this song, the composer of this song, Mandark insisted on using an “Oboe”. She usually starts her works by having a melody in her brain, and imagining the ideal sounds of the song. So she really insisted on having oboe and the strings in this song. With the suggestions of our producer, LUB, we chose to combine some synth and VST which made the “oboe” and “strings” sounds really close to the texture of real instruments, but also have a more distinctive flavour. All of us really love it.
This time, I’ll ask you a question about your lyrics. Personally, throughout the album, I felt that the words “you” and “me” were wandering together in a space of confused emotions. The first song “Muséum” features the lyrics ‘Suddenly awake from the end of the dreams’ and ‘What if we turned around / There’s nothing there?’. The song sets ther scene with an anxious feeling that grows as the listener progresses through the album. What is the emotion that penetrates throughout [Into Innerverse]?
We regard each song as an independent individual. As for the lyrics and emotions of songs, we like to leave some space for the listener to interpret it in their own way.
If it has to be said, no matter what kind of emotion, there is no good or bad. Just look at it, feel it, then accept it. For instance, if one day we must leave this world, it is not an entirely bad thing. An end must be accompanied by a new beginning. We don’t need to rate or define every feeling, just go with the flow.
It may feel a little out of the blue, but the title of the eighth and last song on the album happens to be “9.” While this inconsistency feels like a kind of joke, there is also an impression that the confusion that started with Muséum ends without being properly resolved when looking at lyrics like ‘Fear landing / Inside your heart and you break’. On top of that, the song seems to suddenly end, right at its most intense moment. Why did you decide to end the song and the album in this way?
We didn’t think too much about the meaning when we were discussing the track order. But we all agree that the perfect way to listen to this album is on a loop and to go back and restart from Muséum once you have finished. Immerse in it, and repeat.
You visited Korea as part of Highjink’s Focus Asia project in 2018 and Zandari Festa in 2019. After the COVID-19 pandemic, you also took part in an online festival called <On-Tact ‘ALIVE’ festival> this summer. Can you tell us about anything you remember from your trips to Korea in 2018/2019. Also, what was the atmosphere like at those concerts?
We made many good friends during our stay in Korea. These friends and the people who love our music are the most beautiful things that we want to cherish. To be honest, the Korean music scene seems like it is very hard for a foreign indie band to break into. However, we really appreciate the fact that there are more and more Koreans listening to our music. We received positive feedback every time we were there. Besides, we are slaves of 삼겹살. We miss every moment we had 삼겹살 or 오겹살 with our lovely friends.
You also invited Bosudong Cooler to play at one of your shows in Taiwan. There are often times when Korean and Taiwanese bands have performed together. Are there any other Taiwanese bands you would want to bring with you to Korea next time? Or are there any other Korean bands you would like to play with?
One of our good friends, 淺堤 Shallow Levée, used to play gigs in Korea too. If we could play shows in Korea with them it would be a lot of fun. Besides them playing in Korea alongside 倒車入庫 Reversing into Garage, 甜約翰 Sweet John, Deca Joins would be great. There are so many good Taiwanese bands we love and want to introduce to you guys.
There are many Korean artists we like. Such as JANNABI, Car the Garden, OOHYO, Kiha Chang, Rad Museum, Mokyo, Night Off… Countless. We also love our friends 보수동쿨러, Land of Peace, Platform Stereo, and Samui (3amui). For now, the top of PP L’s dream list is Wonstein. (Haha)
This is the last question. To reflect on [Into Innerverse], could each member of the band tell us what they love most about the album or what it means to them personally. Or, if there is a song you want to recommend to Korean listeners, please let us know which one and why. Thank you so much!
Vitz: It’s hard for me to pick my favorite between “Muséum” and “I Dot Car”. I love them both so much because they changed so much from the demos I wrote at first. Neither song would have turned out as beautiful as they did without my dear band members and our producer. It symbolizes how much we can do when we stay together.
PP L: People change and improve, so does music. For me, it’s progress and proof of my growth. My playing and arrangement become deeper and richer from [OST] to [Into Innerverse]. I’m grateful that my band members give me space to be myself. I also appreciate our producer kept my personality in the recording and made my drums sound better.
Chun: I sincerely recommend “ Run Ran Run”. It’s a song that makes you stop and think about what you lost and got in your life. It also fits with the sunset!
Mandark: “Unicode”. It meant a lot to me.
Hank: Beside all the sounds and music we made, I think the most precious part in this new album is its core idea. We no longer only focus on “love” or “romantic” emotions between people, but also talking about “death”, “hatred” and even “regrets”. We’d like the audiences to be able to feel and picture more while listening to our music.
Actually I recommend all the songs in our new album. However if I really have to pick one, I’d recommend “I Dot Car”. I love the young ,reckless and groovy feeling it represents. I cherish that kind of spirit because it may disappear after you grow up.
Interview | 羅元煐, Na Won Young Support | Beeline Records
우연히 ‘알레프’라는 이름을 알게된 건 꽤나 인기 있는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채널에서였다. 음악 한 곡을 귀로 다 소화하기도 전에 먼저 호기심이 갔던 건 흡사 단편소설의 제목 같은 제목들이었다. ‘홰홰’, ‘궁전’, ‘맞불’ 같은 단어들이 담긴 [홰홰] 앨범이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홰홰], [파수꾼] EP 2개를 내고도 3월부터 매달 싱글을 하나씩 내고 있는 알레프의 이야기와 그 저변의 기록들이 궁금했다. 누군가는 스쳐지나갈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시절을 대변하는 단편선이 될지도 모르는 알레프라는 사람의 음률은 어떻게 탄생한 걸까.
시작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궁금한 게 많아요. 어린 시절 이야기가 별로 없어서 궁금했어요.
인터뷰 자체를 많이 하지 않아서 드러난 게 많이 없죠. 초등학교 때 중국으로 가족이 다 함께 가서 살게 됐어요. 그러다가 대학을 미국으로 가서 생활을 했고, 군대 때문에 한국에 왔어요. 전역할 때쯤 마음 맞는 친구들이랑 한국에서 밴드를 하다가 학교 때문에 미국으로 돌아가려던 찰나에 소속사랑 계약을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2016년부터 쭉 지금까지 음악을 하면서 한국에 남아있게 됐죠.
중국에서 미국으로, 다양한 나라에서 살았던 게 영향을 미쳤겠네요. 어떤 아이였나요?
중2병이 오기 전까지는 좀 발랄하고 나서는 스타일이었는데요. 대부분이 그렇듯 중2 때부터인가, 중3 때부터 자아성찰을 하기 시작하잖아요. 그때부터 집에 오면 방 안에 틀어박혀있고, 자연스럽게 내향적인 성격에 가까워지지 않았나 싶어요.
그럼 중국에 있었던 시절부터 음악을 시작하게 된 거네요.
네,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한 게 고2였는데 그땐 음악을 업으로 할 생각은 전혀 없었죠. 제가 살던 중국 동네가 런던처럼 1존, 2존으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제가 학교 다니며 살던 곳이 제일 끝인 3존이었어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근데 친구들은 1존에 거의 사니까 친구들이랑 어울리려면 버스 타고 1-2시간은 이동해야 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뭐라도 해보자’ 해서 기타를 치기 시작했어요. 글 쓰는 걸 좋아하니까 가사도 같이 쓰게 된 거고요.
그러다가 고3이 됐는데, 딱히 특출난 분야가 없는 거예요. 당시 국제 학교 음악선생님이 “내가 다니던 학교를 한번 가볼래?” 권유해 주셨던 게 계기가 됐고, 또 장학금도 준다고 해서 미국에 있는 대학교로 진로를 정하게 된 거였어요. 미국에서 가서 2년 정도 학교를 다니다가 군대 때문에 한국에 돌아왔죠.
글 쓰는 걸 좋아했나 보네요.
기록하는 걸 좋아했던 거 같아요. 일기는 쓰면서도 누가 볼 것 같다는 불안감이 항상 있잖아요. 중학교 2,3학년 때는 그래서 일부러 영어 필기체로 못 알아보게 쓰려고 하고. 국제 학교를 다녀서 중국어보다는 영어가 편했거든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읽고 쓰는 행위에 대해서 파고 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시집도 읽고, 문학도 읽고요.
궁금했어요. [홰홰]는 전 트랙이 다 한글로 구성되어 있는데, 8월에 발매했던 ‘Like No Other’ 같은 경우는 한글이 한 글자도 나오지 않죠. 왜 둘로 나뉠까 궁금했어요. 곡마다 들려주고 싶은 청취자가 다른 건가요?
데뷔 앨범을 다 영어로 썼었어요. 그런데 한국 음원 시장에서는 영어 가사만 있으면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주변의 권유를 받아서, 개사를 하게 됐었죠. 이전에는 언어를 섞는 걸 싫어했어요. 왜냐하면 한 언어로 들었을 때 통일감이 있는데 섞이게 되면 청취자가 한번 더 번역해서 들어야하니까요. 청취자를 통일해서 영어는 영어대로, 한국어는 한국어대로, 이렇게 하자라고 해서 썼는데 개사를 하라고 하니까 처음엔 좀 거부감이 있었죠.
그런데 해보니 어떤 부분은 영어로 불러야 뉘앙스가 살고 어떤 건 한국어로 개사해도 괜찮은 거예요. 그래서 낸 게 2017년에 냈던 EP [1] 앨범이었고요. 그런데 작년에 몸 담았던 회사를 나오고 관념에 빠졌었어요. 한국어가 더 아름답다고요. 소위 국뽕에 찼다고 하는… (웃음). 그렇게 [홰홰] 앨범을 만들었어요. 앨범 전체에 쓰인 영어 문장이 몇 개 안돼죠.
[홰홰] 이후에 발매했던 ‘Morning Sun’이라는 곡이 담긴 노래는 해외 여행 하며 써뒀던 노래라 가사가 전부 다 영어였거든요. 미리 써놓은 곡들이기도 하고, 영어로 표현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영어로 앨범을 내봤는데요. 여러 시도 이후로는 영어과 한글에 대한 고정관념이 많이 풀린 것 같아요.
[도시 단편]도 국뽕에 취해있을 때 만드신 거예요? (웃음)
살짝… 있었어요. 그때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던 거죠. 맞아요.
앨범에 대한 변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꽤 오랫동안 활동을 이어왔어요.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받았을까요.
중간에 음악을 그만두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서 학위를 따야 하나, 마음먹은 적도 당연히 있었지만 제 안의 열망 덕에 그만 두지 않고 온 것 같아요. 제가 작업 속도가 되게 빠른 편인데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컨펌을 받아야 하고, 제작비를 지원 받아야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제가 내고 싶을 때 바로 내기가 어려운 환경이었어요.
그래서 내지 못한 곡이 몇 년간 쌓였는데, 그걸 다 못 내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든 이걸 내야겠다는 생각에 제가 저의 ‘셀프 제작자’가 되어서 음원을 내기 시작한 거죠.
그렇게 나온 게 [홰홰] 앨범이군요.
네, 그렇게 [홰홰]를 낸 건데 앨범을 내고도 여전히 내고 싶은 곡이 많은 거예요. “지금까지 있는 쓴 곡들을 다 소진을 해보자!” 그래서 또다시 내게 된 게 [파수꾼]이었죠. 회사에 있었을 때나, 미니 앨범에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썼던 곡도 몇 가지 섞여있지만 대부분 예전에 쓴 노래들이에요.
쌓아뒀던 곡들을 보여주고 싶은 열망이 계속 음악을 이어오게 한 모티베이션이 됐네요.
네, 지금 돌아보면 회사의 입장도 이해가 가요. 하지만 회사에서 나오고 순수히 제가 혼자가 됐을 때, 회사에 소속되지 않았을 때 ‘하고 싶은 걸 얼른 확 하자’는 마음이 연료가 되어서 지금까지 혼자서도 음악을 이어온 것 같아요. 일 년 정도 이렇게 셀프 제작자로 활동을 하니까 조금씩 길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이 기간을 더 유지해 볼 수 있겠다 싶어서 다달이 싱글을 내고 있죠.
어떤 길이 보이나요.
우선 스스로의 작업 스타일을 더 잘 알게 됐어요. 외국에서 왔다 보니까 같이 음악에 대해서 피드백을 주고받거나, 함께 작업할 수 있는 풀(Pool)이 없었는데요. 이제 같이 작업할 수 있는 작업자들도 생겨서 좋아요. 제 주변 사람들이랑 합을 맞춰가면서 2-3년은 더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혼자 음악을 하는 뮤지션에게 그런 ‘풀’, 네트워크 형성은 어려운 일이죠. 알레프는 자연스럽게 형성이 됐나요?
몇몇 친구들 덕분인 거 같아요. 알레프 밴드 세션을 도와주던 친구들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다 음대를 나왔으니까 그 친구들 주변에 알음알음 괜찮은 친구들을 소개받았어요. 그러다가 ‘전현명’이라는 친구를 만났는데요. 작업을 하면서 합이 되게 잘 맞아서 쭉 함께 해오고 있죠.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더라고요.
[도시 단편](2019), [홰홰](2020), [파수꾼](2021), 20대 후반에 짧지 않은 기간 동안 3부작을 냈어요. 지금 29살이시죠? 어떻게 보면 알레프의 20대 후반의 기록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각각의 앨범에 대해서 그리고 의미에 대해서 말해준다면?
재작년에 [도시 단편]을 만들 때만 해도 지쳐있었던 것 같아요. 보컬 아티스트로서의 스트레스도 있었고, 앨범 작업 자체도 좀 힘들었고요. 스스로가 지치니까, 주변에 저희를 도와주는 분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으로 만들었던 거죠. 앨범이 잘 돼야한다는 압박을 받으면서도 ‘잘 안된다면?’ 같은 앞서가는 생각들 때문에 더 힘들었던 거 같아요.
당시 일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업을 했는데, 컴퓨터 한 대랑 마이크 하나 있는 작은 작업실에서 어렵사리 앨범을 만들었죠. [홰홰]부터는 그런 마음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저에게 집중했던 앨범이에요. 소설 쓰는 걸 좋아해서 요즘도 글을 쓰거든요. 단편, 장편 소설들이요. 장편 소설은 공모전에도 출품할 만큼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물론 공모전은 떨어졌지만요. (웃음)
[홰홰] 앨범을 봤을 때 단편소설집 같다는 인상을 받은 게 그런 의도였군요.
네. ‘이야기’로 만들어진 무언가를 좋아하다 보니까. 앨범도 그렇게 구색을 맞춰서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제목도 다 두 글자로 일부러 통일했었고. 곡이 각각 한 편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되, 앨범 소개를 읽으면 “이게 이런 걸로 이어지는구나”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게 그 앨범의 목표였는데 잘 됐다고 생각해요.
[파수꾼]은 제가 제일 아끼는 앨범이에요. 그 앨범 내기까지가 제일 오래 걸렸어요. 2014년에 만든 곡도 있고. ‘바람들’이나 ‘조금 일찍 알았더라도’는 2015년 쯤에 만들어졌고 나머지는 대부분 군대에 있을 때 쓰거나, 2016~17년도에 작업했던 곡들이에요. 좋아하지만 차마 다 못 냈던 노래들을 모아서 낸 앨범이죠.
[파수꾼] 앨범 중에 그래도 제일 애정이 가는 곡을 고른다면요?
‘파수꾼’을 제일 좋아해요. ‘파수꾼’ 가사에는 [도시 단편]을 작업하며 느꼈던 저의 아쉬움이 담겨 있어요. 주변인들을 챙기고 싶지만 챙기지 못했던, 나의 능력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서 오는 무력함. 자기 자신이 남들에게 미운 사람이 되는 거 같은 초라함들이 담긴 곡인데요. 스스로의 감정에 가장 진실 되게 쓴 곡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 개의 EP가 어쩌면 알레프의 성장의 기록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올해는 매달 한 곡씩 노래를 내고 있어요.
제일 큰 이유는 일단 다작을 하고, 그 곡들을 빨리 소진하고 싶고 세상 밖으로 보여주고 싶은 욕구예요. 왜냐면 겪어보니까 EP 앨범 하나를 만드는데도 큰 에너지가 필요한 거예요. 앨범이라는 구색을 맞춰야 하고, 제작비도 많이 들어가죠. 그런데 한편으로 곡의 반응을 미리 가늠할 수 없으니까 리스크가 있는 것에 비해 싱글은 좀 더 가볍게 낼 수 있어서 좋아요. 시장의 흐름이라는 게 있고 그 물살을 같이 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음원을 자주 내서 ‘노출’이 일단 많이 되야겠다는 게 두 번째 생각이었고요.
세 번째로는, 그냥 마음이 편해요. 제가 작업을 다 하고도 마음에 안들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일단 내고 보겠다는 마음이요. 저는 어차피 세상 밖으로 곡을 내보내면 그 이후로는 상관 안 해요. 평가는 어차피 청취자들이 하는 거기 때문에. 물론 각 곡에 대한 의미는 있지만, 발매하고 나서는 “알아서 너네가 자생해서 살아라 곡들아~내가 너희를 곳간에 꿍쳐 두지 않겠다.”라는 마음인 거죠. 오히려 그 편이 곡들한테도 좋은 것 같고요.
매달 내는 것에 대한 압박은 없나요? 영감이나 체력이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거나요.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힘이 나요. 많이 작업을 하고 이걸 바로바로 내니까. 스스로 나름 부지런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한 번 늘어지면 정말 한없이 늘어지는 편이어서요. 작업을 하는 게 스스로 채찍질하는 느낌도 있어서 오히려 괜찮아요. 근데 최근에 1년 반 정도하다 보면 지치는 타이밍이 있겠다고 요즘 느끼고 있어서, 계획은 내년 상반기까지 지금처럼 하다가 EP 준비하면서 쉼도 좀 가지려고요. 페이스를 맞추고 있죠.
매달 낸 음원을 묶어서 낼 계획도 있나요?
내년 1월쯤 아카이브 개념으로 앨범을 묶어서 하나 내려고요. [2021 아카이브]로 해서 3월부터 12월까지 낸 노래, 그 외에 2-3곡 추가해서요. 곡이 1년만 지나도 낡은 곡이라는 평가를 받는 시대인데, 그런 걸 좀 무마하면서 재조명 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할까요. (웃음)
그럼 매달 지금까지 낸 싱글 중에 특별히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요?
‘Instant Lover’요. 일단 작업이 엄청 간단했어요. 마이크도 원래 콘덴서 마이크를 쓰는데 유독 다이내믹 마이크를 쓰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4만 원짜리 SM58 마이크를 썼는데 오히려 다이내믹 마이크가 주는 느낌이 곡이랑 잘 맞아서 놀랐어요. 실험적인 부분이 잘 살았고, 부르기도 쉽고. 모든 게 편했던 것 같아요. 반면에 제일 힘들었던 곡이 ‘순애보’라는 5월에 낸 곡인데. 그 곡은 과정에서 레트로함을 살리려고 테크닉이랄까, 가성이나 이런 걸 사용하는 데 있어서 힘들었어요.
알레프 노래를 이야기할 때 가사에 대한 이야기를 안할 수 없어요. [파수꾼]까지는 굉장히 시적이고 무거운 가사들이 많았어요.
이성에 대한 사랑 노래를 쓰는 걸 시도를 많이 했었는데요. 그럴 때마다 가사를 다 뒤집어엎게 되는 거예요. 결국 맘에 드는 가사를 보면 스스로에 대한 고찰과 관련된 가사가 많았어요. 마음에 어떤 빈 감정들을 담아내야 직성이 풀리더라고요. 마음의 그런 빈 공허함들을 가사로 풀어내면서 스스로 치유하는 편인데 너무 적나라하게 담아내면 듣는 사람들이 불편해 할 것 같아서 은유적으로 많이 담아내는 편이었죠.
근데 주변 친구들이 어렵고, 못 알아듣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피드백을 들은 이후로 ‘내가 굳이 가사를 어렵게 쓸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좀 덜해진 것 같아요. [파수꾼] 다음 앨범부터는 좀 더 의미를 줄이고 직설적으로 쓰고 있어요. 좀 더 표면적으로 드러내려고 하고요. 가사에 대한 그런 사소한 변환점이랄까, 그런 게 스스로 보이니까 스스로에 대한 에너지가 되기도 하는 거 같아요.
가사를 쓸 때나, 노래를 만들 때 가장 동기 부여가 되는 감정이 어떤 것들이예요?
[파수꾼] 때까지는 우울감, 공허함이었다면 그 이후에는 평정심인 거 같네요. 요즘 뭐가 없어요. 걸리는 게 없으니, 막 쓰면 나오더라고요. [파수꾼] 이전에는 어떤 감정에 심취해서 썼다면 지금은 편안한 상태예요. 이것저것 끄적이다가 ‘이거 마음에 드네’하면 그 소절이 출발점이 되기도 하고요. 요새는 물 흐르듯 가사도 편안한 상태에서 잘 쓰는 것 같아요.
지금은 직업으로서 뮤지션 같네요. (웃음) 때 되면 책상에 앉아서 차분히 노래 쓰고, 매달 노래 내고.
맞아요. 아, 근데 어떤 소절이 출발점이 돼서 노래를 만들더라도 평정심의 상태와 어떤 감정에 취해 있는 상태와는 또 다른 게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완전히 평정심이라고만 이야기할 순 없겠네요. 가사는 짜깁기를 할 때도 있고, 직업인처럼 이것저것 탐구하는 느낌이라면 곡을 쓸 때는 확실히 어떤 무드가 필요한 거 같긴 해요. 기쁜 무드의 멜로디를 슬픈 상태에서 쓸 순 없으니까요.
그럼 요즘 제일 영향을 받는 존재는 뭔가요?
전 자연? 아티스트를 이야기하면 끝도 없죠. 20대 초반에 좋아했던 제이슨 므라즈, 제이미 칼럼… 포크, 재즈, 락에 돌아가면서 빠지고 음악을 듣고 하면서 아티스트한테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20대 중반이 되니까. 어르신들 왜 나무 사진 찍고, 꽃 사진 찍으시는지 너무 알 거 같아요.
(카페 창문 밖으로 보이는 맞은편 건물 벽을 가리키며) 문득 저런 돌로 된 벽을 보면서도, 지하철 창문으로 잠깐 보이는 한강을 보고도. 바쁜 도시에서도 저한테 평정심을 주는 존재들이 그런 자연이라, 자연에서 가장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알레프에게서 묻고 싶던 질문이 있어요. 만약 알레프가 스스로, 알레프를 하나의 단어로 설명한다고 하면 어떤 단어로 표현하고 싶은지요.
음, 요새는 ‘유유자적’(悠悠自適)이요. 걱정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 편히 지낸다는 뜻이잖아요. 있는 듯 없는 듯한데, 보면 그대로 있는? 그런 느낌이에요. 지금 제가 그런 느낌의 생활을 주로 하기도 하고요. 일상도 주로 집-작업실 반복이고, 코로나19 때문에 돌아다니는 데도 제약이 있으니까요. 근데 제 곡도 그런 것 같아요. 아는 사람들은 알고,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고. 아는 사람들은 편하게 부담 없이 듣기 좋다고 하셔서, 제 음악은 ‘유유자적’ 하면서 틀어도 좋지 않은 음악일까 싶고요.
내년엔 어떨까요?
내년엔 좀 바뀌지 않을까요. 제가 다음, 다다음으로 낼 곡들이 색깔이 조금씩 다른데요. 기존 알레프와 조금 다르지만 팬분들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실험을 하고 있거든요. 만약 R&B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싶으면 R&B 부담 없게 조금씩만 섞어서 만들고 있거든요. 하지만 내년에는 알레프가 한 색채를 뚜렷하게 낼 생각이어서 그때는 다른 단어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지금은 내년을 위한 선택적 ‘유유자적’의 기간이라고 봐야겠네요
그렇죠. 지금은 궁금했던 것들을 시도해 보고 데이터를 모으는 시기인 것 같아요. 기존 알레프가 기존에 포크와 락과 팝의 색을 가져갔다면, 타 장르들을 섞는 시도를 하고. ‘아 내가 이 음악에 묻었을 때 이런 식으로 표현이 되는구나’라는 걸 직접 경험해가면서 알아가고 있으니까요. 조금씩 어떤 장르는 좀 더 깊게 표현해 봐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기고 있죠. 그래서 내년에는 올해 냈던 곡 중에서 ‘이 색깔이 맘에 들었었지?’ 하는 색들을 뚜렷하게 하는 과정일 것 같아요. 올해 친 곁가지들을 더 깊게 파는, 마인드맵을 확장시키는 해가 되겠네요.
‘월간’이 그럼 실험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네, 맞아요. 다분히 저의 만족을 위해서 내는 앨범이죠. 스스로의 진로 상담 같은? (웃음)
미끼를 던지면서 대중들의 반응을 보고요.
아티스트들은 어느 한 색깔로 국한되고 싶지 않아 하잖아요. 물론 30대든, 40대든 언제 해도 이 실험들이 늦은 건 아니겠지만 지금의 제 에너지와 그때의 에너지가 너무 다를 것 같은 거예요. 29살인 제가 낼 수 있을 때 많이 많이 내보려고요. ‘이 장르 좋아했었지.’, ‘이 느낌으로 내보자.’라며 스스로 생각하면서요.
앞서 알레프를 단어로 표현하면 ‘유유자적’이라고 했어요. 그럼 한 권의 책으로 비유를 해서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라는 책을 꼽고 싶어요. 파블로 네루다가 칠레의 공산당 출신의 시인인데요. 그런 작가의 배경을 제외하고 읽더라도, 자연을 굉장히 잘 풀어냈어요. 자연이 요즘 제일 좋다 보니 그런 거 같아요. 파블로 네루다 책을 다시 읽고 있는데 진짜로 충만한 힘은 자연에 대한 느낌에서 오는 거 같아요.
최근에 발매한 ‘Night and Night’은 어떤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건가요?
사실 ‘Night and Night’은 만든지 오래 안된 노래예요. 저번 달에 만들었거든요. 요즘 한밤중에 밖이 너무 소란스러운 거예요. 주택가에 살고 있는데 저녁만 되면 취객들이 넘쳐나고, 이른 새벽에는 어르신들 소리에 잠이 깨기도 하고요. 외부인들의 소리 때문에 조금 괴로워서… (웃음). 그래서 쓰게 된 노래예요. 방해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요.
앨범 소개를 보면 ’고요함 속 스스로가 내는 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이라고 적혀 있어서 굉장히 상상하게 됐는데 그런 생활적인 비하인드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재밌네요. 앞으로는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데이터를 구축하는 게 현재, 29살의 알레프라고 하면, 30대에는 파악하고 수집한 것으로 “와 정말 잘 만들었다”라는 생각이 드는 앨범을 내고 싶어요. 지금은 저라는 아티스트의 색채가 굳어지기 전에, 확고해지기 전에 이것 저것 덧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요. 저만의 색깔을 만들어내서 한 앨범을 장편소설처럼 풀어낼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그게 바로 알레프의 정규 1집이 될 거라고 기대해봐도 될까요?
네. 앞서 말씀드린 내년 1월쯤 낼 아카이브 앨범을 제외하고요. 아마 내년 하반기나 내후년 상반기를 목표로 준비 하게 되겠죠. “알레프가 이제 뭘 하는지 알겠다”라는 느낌이 들었으면 하는 거죠. 쓰고 싶었던 악기부터 곡의 퀄리티까지. 쓰고 싶은 재료들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아티스트요. 지금의 알레프는 가성비 기준으로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만 하자는 생각인데, 점점 더 상황이 나아지면 음악 색깔뿐만 아니라 곡에 대한 퀄리티도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다양한 협업들도 많이 하면서 더 재밌게 하는 게 목표인 거 같아요.
지금은 새롭고 재밌는 걸 시도해 보는 시기인 거네요?
네. 근데 그 새롭고 재밌는 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기엔 아직 무리인 거 같아요. 아직까진 혼자 작업하는 게 좋고 편해서요. 몇 사람이 합쳐졌을 때 산으로 가는 게 싫고요. 지금은 혼자 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올해는 오로지 혼자서 실험하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내년, 내후년쯤은 다른 분들과의 작업도 고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읽고, 이 인터뷰를 듣고 알레프님의 노래가 궁금해서 들어보려고 하는 사람에게 추천 하는 가장 ‘알레프’스러운 노래? 제일 먼저 들어봤으면 좋겠다는 곡, 추천해 줄 수 있을까요?
‘파수꾼’이요. 저를 제일 잘 표현한 노래여서요. [파수꾼] 앨범에서는 ‘파수꾼’이랑 ‘호랑이의 숲’을 추천해드리고 싶고 그 이외에는 ‘홰홰’라는 곡을 추천하고 싶어요. 그 곡에 담은 메세지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라는 건데요. 저 역시 아티스트로서 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고. 그 생각으로 열심히 고민하며 곡을 만들고 있거든요. 알레프를 경험하고 싶다면 [파수꾼]부터 앨범을 시간 역순으로 들어보시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Photographer | Park Young Jun @khuss_goods
Stylist | Jo Hye Su @sooksmell
Hair & Make up | Kim Jung Hyun @_beenb
Lim Kim이 [MAGO] 이후 4개월 만에 새 싱글 [FALLING]으로 돌아왔다. 신화 속 존재인 세이렌에서 모티브를 얻어 주조한 [FALLING]에서 Lim Kim은 회상을 통해 기억의 시간축을 움직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끊임없이 횡단한다.
발매로부터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일찌감치 뮤직비디오가 100만 뷰를 돌파하는 등 자신의 파급력을 실시간으로 몸소 증명 중인 Lim Kim. 그를 만나 신곡 ‘FALLING’을 비롯하여 그간 Lim Kim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어 보았다.
4개월 만에 신곡 ‘FALLING’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보내셨나요?
일단 최근에는 싱글 발매 후 여러 가지 활동들을 계속 하고 있고요. 인디펜던트로 활동하고 있다 보니, 대부분의 활동에 집중하는 시간들로 많이 보내는 것 같아요.
직접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니 정신없겠어요.
사실 스케줄 자체가 너무 빡빡해서 힘든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웃음). 단지, 제가 직접 출연하는 방송이나 프로그램에서 최대한의 모습을 잘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그런 측면에서 에너지들을 많이 쓰게 되네요. 제 스스로의 욕심일 수도 있고요.
최근엔 <비긴 어게인>을 통해 오랜만에 TV 출연을 하기도 했죠. 실없는 질문이지만, 가족들이 좋아하셨겠어요. (웃음)
네네. 아무래도 엄마 아빠는 다른 활동보다 TV에 나오는 걸 훨씬 좋아하시니까요. (웃음)
본격적으로 새 싱글에 관한 얘기를 해볼까 해요. [FALLING]에 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세이렌에서 모티브를 얻은 노래로, 과거에 대한 회상에서 출발해 미래로 자유롭게 나아가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았어요. 그런 측면에서, 과거의 저를 회상하게 하는 목소리가 보컬적인 요소로 들어가게 되었고요.
흥미롭게도 최근작인 [MAGO] 역시 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마고할미를 주제로 하고 있어요.
[MAGO]는 브랜드 미스치프(MISCHIEF)와 함께 발매했던 노래였는데, 당시 미스치프의 컬렉션이 <MAGO> 였어요. (웃음) 그래서 MAGO라는 주제가 처음부터 정해진 상태에서 저의 생각을 담았던 케이스였고, [FALLING]은 ‘회상을 일으키는 노래’를 이미지로 옮겼을 때 세이렌에 다다랐던 경우라 약간 접근이 달랐어요.
바다의 여신 세이렌은 신화 속 인물이잖아요. 평소 판타지나 신화에 관심을 많이 두는 편인지, 아니면 어떠한 계기에 의해서 불현듯 세이렌 모티브를 얻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세이렌은 노래로 사람들을 유혹하는데, 사람들의 익숙한 무언가를 불러내어서 유혹하게 될 테잖아요. 그 과정에서 ‘회상하는 노래’를 부른다는 아이디어가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신화 속 세이렌을 그저 신비로운 이미지로만 생각했는데, 그런 비화들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니 작업하면서도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예전에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듣고 ‘인어 목소리 같다’던 평도 떠올랐고요. (웃음)
세이렌의 단편적인 요소에서 한층 더 생각한 고민의 결과물이네요.
그렇죠.
목소리 얘기가 나왔으니, 질문을 또 이어가 볼게요. 전작과 달리 이번 싱글에서는 보컬적인 측면이 더욱 부각되었어요.
맞아요, 이 노래엔 회상을 갖게끔 하는 보컬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음악적 측면에서의 회상도 충족하지만, 또 사람들이 기억하는 김예림의 목소리에 대한 회상이기도 해요.
목소리가 음악을 완성하는 일종의 도구처럼 사용되었네요.
예전 인터뷰에서 얘기한 적 있는데, 제가 지금 말하는 목소리와 노래할 때 목소리가 다르잖아요. 그때그때 작품에 따라 ‘제가 되어야 할 무언가’가 정해지면 거기에 맞게 가사부터 목소리까지 모든 적합한 메이킹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의도한 부분이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유독 이번 앨범 댓글에서 예전 김예림의 목소리를 좋아하던 팬들의 반색이 자주 보여요.
맞아요. 그런 반응을 보니 기분이 좋더라고요. (웃음)
앨범과 함께 공개한 뮤직비디오는 현재 100만 뷰를 돌파했네요. 형식적인 질문이지만 소감이 궁금합니다.
어떤 뮤지션이라도 당연히 그렇겠지만, 열심히 작업한 결과물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닿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질 거예요. 감사한 일이죠.
트랙 프로듀서로 DPR CREAM이 참여했어요. 림킴님과의 첫 협업인데,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2~3년 정도 전에 DPR 크루 멤버 중 한 분께 연락이 와 같이 만난 적이 있어요. 그 자리에 DPR CREAM씨도 계셨고, 나중에 한 번 기회가 되면 작업하자고 얘기를 나눴어요. 그렇게 인연이 닿았다가 한동안 서로 연락이 없었는데, 갑자기 DPR CREAM과 같이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DM을 보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작업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FALLING]의 스케치나 데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DPR CREAM이 적임자로 떠올랐을까요, 아니면 어떠한 작업물을 그와 함께 본격적으로 같이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이었을까요.
후자인 것 같아요. DPR CREAM과 같이 작업하기로 한 이후로 만날 때마다 계속 작업을 이어갔어요. 어느 날엔 EP (Electric Piano) 만들고, 또 만나서는 보컬 라인 조금 만들어보고. 그렇게 처음부터 같이 두 달 만에 작업한 노래라 할 수 있어요.
이전 작품들보다 확실히 인터뷰나 라디오/방송 출연의 빈도가 높아졌어요. [FALLING]을 통해 이전에 많이 만들지 못했던 대중과의 소통을 갖고 싶다는 의중이 있었을까요.
그런 측면이 아예 없지 않고, 확실히 출연 횟수가 많아진 것도 맞지만요. 어떻게 보면, 많은 사람에게 제 모습을 보이고 제 음악을 들려주는 게 저의 직업이기도 하잖아요. 물론 이전에도 일부러 출연을 안 한 것은 전혀 아니지만요. (웃음)
누군가는 분명 오해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Lim Kim으로 다시금 등장했을 때 모든 것이 달라졌잖아요. 이름부터 시작해 장르적 색채, 음악적 태도까지 전부요.
사실 Lim Kim은 저의 영어 이름이기도 해서, 활동명을 영어로만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당시 있었는데 ‘이름을 완전히 바꿨다’고 많이들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마침 음악 스타일도 많이 바뀌다 보니 더욱이 그런 크고 작은 오해들이 생겼던 것 같고요. 저는 시리어스한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되게 열려있는 사람이거든요 (웃음). 이런 오해들을 앞으로 더 쌓지 않으려면 저의 오픈된 모습을 더욱 보여드려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최근에 하기도 했어요.
어떻게 보면, [SAL-KI]가 워낙 임팩트가 컸기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아무래도 이렇게 소통할 기회도 많이 없었고, 오래 쉬다가 갑자기 이런 음악을 시도하다 보니 (웃음) 그런 오해가 들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이번 싱글을 발표하면서, 음원 플랫폼 내 아티스트명을 “Lim Kim”에서 “김예림 (Lim Kim)”으로 병기 표기했어요. 지금까지 얘기 나눴던 내용들과 맞닿아있는 지점이라 생각해도 좋겠네요.
네. 사실 저는 그냥 Lim Kim이면서 김예림이기도 하잖아요. 이름도 김예림이고 (웃음). 오늘 한 TV 프로그램 사전 인터뷰를 하고 왔는데요. 작가님께서 “Lim Kim을 부캐라고 소개해도 되지 않을까요?”라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인간 김예림의 다양한 음악적 색깔을 나타내는 방법이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구분하진 않았으면 해요.
[SAL-KI]와 [GENERASIAN]을 발표하던 2019년 당시에도 그 생각은 같았을까요.
항상 제 마음에 충실했던 거 같아요. 제가 가장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음악으로 발표하고 싶었고, [SAL-KI]와 [GENERASIAN]때도 마찬가지였죠. 그때 당시에 제가 너무나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다 토해냈어요. 원래 사람이 화를 내고 나면 힘을 소진하고 고요해진다 하잖아요. (웃음) 저에게 지금 그런 시기가 찾아온 것 같아요. 인간 김예림으로서 생각했을 때, 어떻게 보면 사실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고요. 사람은 계속 변화하고, 그러한 흐름에 저는 계속 충실해지는 것 같아요.
이제는 조금 가벼운 질문을 드리려 해요. 포크라노스의 플레이리스트 컨텐츠인 <WONDER!>를 통해 여러 음악들을 선곡해 주셨지요. 빛과 소금이나 유재하의 음악들이 빌리 아일리시나 브록햄튼과 같은, 소위 트렌드한 넘버들 사이에 섞여 있어 흥미로웠어요.
음악은 예전부터 장르 상관없이 다양하게 들어왔어요. 주제가 ‘저녁에 혼자 방 안에서 있을 때 시간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음악’이다 보니, 그에 걸맞은 음악들을 선곡하게 됐던 것 같아요. 요즘 활동기에 노래를 부를 일이 많았다 보니 보컬 중심의 팝을 많이 듣기도 했네요.
여가는 주로 어떻게 보내시나요.
제가 별거 안 하긴 하는데요. (웃음) 혼자 시간을 보낼 땐 산책하거나 커피 마시러 카페에 주로 가요.
평이하네요. (웃음)
혼자 처리해야 할 것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요.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로서 여러 행정적인 업무까지 아우르고 있는데, 힘에 부치진 않아요?
인디펜던트의 단점이라 말하는 그런 일련의 업무들이 물론 혼자 다 해내기엔 어려운 일들이긴 하지만 ‘못할 일은 아니다’. 딱 이 정도인 것 같아요. (웃음)
인터뷰도 어느덧 막바지입니다. 차기작을 비롯해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활동과 조금씩 병행하면서 꾸준히 신곡을 작업하고 있고요. 정규 앨범 단위의 규모 있는 앨범에 관해서도 항상 고민 중이에요. 코로나로 해외 활동에 여러모로 제약이 있지만, 내년에는 해외 페스티벌을 비롯해서 더 넓은 음악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