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ndohee [Unforeseen]

그 안에는 록도 있고 일렉트로니카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포크가 있고, 결국 포크 음악이라고 설명하게 된다. 전작에서 훨씬 더 넓어진 세계가 정규라는 작품의 크기만큼이나 한꺼번에 몰려오지만, 그것이 결코 낯설거나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eundohee
Unforeseen
2021.07.07

 

개인적으로는 은도희의 음악을 정말 좋아한다. 전체적으로는 서늘하고 차가운 인상을 주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감정의 폭이 묘하게 진동을 이루고 있다. 얼핏 멀리서 보면 정적인 듯하지만, 그 안에는 따스하다가도 차가운 그런 변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은도희의 음악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많다. 온도에 비유할 수도 있고, 북유럽과 같은 풍경에 빗댈 수도 있으며 가사를 놓고 보면 그가 표현하는 정서를 언급할 수도 있다. 어딘가 미묘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음악이 들려주는, 그리고 보여주는 사운드스케이프와 풍경만큼은 뚜렷한 음악이기에 은도희의 음악은 좀 더 회화적인 묘사나 문학적 수사가 붙는 데 있어 이질적이지 않다. 만약 내가 훌륭한 문장가였다면 그의 음악을 들었을 때 눈에 보이는 풍경을 좀 더 세세히 썼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기에 그저 머릿속에 몇 가지 예술영화만이 둥둥 떠다닐 뿐이며, 꼭 들어보라는 식상한 문장만 쓰게 되어 아쉽다.

 

 

은도희의 첫 정규 앨범은 지난 EP 이후 약 9개월 만에 나왔고, 발매를 거듭할수록 기다린 시간만큼 높은 완성도를 선보인다. 우선 “Unforeseen”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예측하지 못한, 뜻밖의’라는 의미를 지닌 형용사라는 설명이 나온다. 실제로 앨범은 기존의 은도희를 포크 음악가라고만 알고 있었다면 뜻밖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포크를 기반으로 다양한 색채를 선보인다. 그 안에는 록도 있고 일렉트로니카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포크가 있고, 결국 포크 음악이라고 설명하게 된다. 전작에서 훨씬 더 넓어진 세계가 정규라는 작품의 크기만큼이나 한꺼번에 몰려오지만, 그것이 결코 낯설거나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특히 은도희의 전작을 즐겨 들었던 이들이라면 그의 세계가 확장되는 이 순간을 목도하는 것이 오히려 반갑게 느껴질 것이다. 음악적 분출만큼 드러내는 감정의 폭도 커질 법도 한데, 은도희는 특유의 차분한 말투로 자신의 시선을 전달한다. 주로 영어로 가사를 써왔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한글로도 자신의 감성을 풀어내는데, 어쩔 수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더욱 명료하고 간질간질하게 다가온다. 서정적인 면모뿐만 아니라 그는 음악적 완성도도 직접 챙겼는데, 모든 곡을 직접 혼자 썼을 뿐만 아니라 믹싱까지 직접 해냈으며 아트워크도 본인이 직접 작업했다. 아마 그렇기에 더욱 소리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여백과 거기서 오는 감정선, 독특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공간감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사운드에 있어서도, 감성의 표현에 있어서도 뛰어난 [Unforeseen]은 꼭 올해가 저물 무렵 여러 리스트에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내가 이토록 이 작품에 열광하는 이유를 다른 이들도 직접 작품을 들으면서 느꼈으면 한다.

 

 


Editor / 블럭

Q the trumpet [연구일지 1]

강렬한 트럼펫 사운드를 비롯하여 겹겹으로 쌓인 악기들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랩이라는 형식을 사운드적으로 조화롭게 버무릴 수 있을지를 파고든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큐 더 트럼펫의 이번 EP는 단순히 싱잉 랩이라는 단순한 수식어로 한정 지을 수 없는 보다 넓은 영역에 걸쳐있다고 할 수 있다.

 


 

Q the trumpet
연구일지 1
2021.06.30

 

랩에도 분명 음정이 존재한다. 물론 장르 특성상 박자의 비중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존재감이 좀처럼 부각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는 잇따른 코드 진행 위에 목소리를 얹어야 한다는 보편적인 가창의 형태로 인해 음정의 존재는 랩이라는 장르 안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새 EP [연구일지 1]을 발표한 Q the trumpet(이하 ‘큐 더 트럼펫’)의 행보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한 명의 트럼페터인 큐 더 트럼펫은 프로듀서이자 비트메이커이며 래퍼이자 보컬리스트로서 장르의 경계를 차례차례 깨부수며 음악적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 중인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다. 물론 세션 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이력만으로도 큐 더 트럼펫이라는 아티스트를 주목할만한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지만, 앞서 언급한 ‘랩에서의 음정’이라는 키워드는 그가 트럼페터라는 사실과 맞물려 또 다른 차별점을 낳는다.

 

존재감이 부각되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것을 섬세하게 다루는 경우 또한 많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간혹가다 코드 위로 딱 떨어져 완벽한 화음을 이루는 랩 구절(그것이 멜로디컬한 선율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을 들을 때면 새삼스러운 청각적 쾌감이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큐 더 트럼펫은 악기를 다루고 소리를 만들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연구일지 1]에서도 여전히 이 효과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신선한 연출을 이어간다. 사소하지만 매력적인 멜로디 라인, 혹은 복수의 보컬 트랙을 층층이 쌓는다거나 오토튠을 활용하는 등의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금관악기 중 가장 높은 음역대를 자랑하는 트럼펫이라는 악기의 특성상, 수많은 소리 위에서 어긋나지 않는 선율을 이어가는 데에 남다른 감각을 키워온 탓인지 그의 음악은 전체적으로 트랙 간의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쓴 흔적이 짙게 묻어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것은 흔히 말하는 ‘싱잉 랩’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전작 [YELLOW FLOWER]에 비해 멜로디컬한 라인의 비중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안 그래도 강렬한 트럼펫 사운드를 비롯하여 겹겹으로 쌓인 악기들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랩이라는 형식을 사운드적으로 조화롭게 버무릴 수 있을지를 파고든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큐 더 트럼펫의 이번 EP는 단순히 싱잉 랩이라는 단순한 수식어로 한정 지을 수 없는 보다 넓은 영역에 걸쳐있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주는 다양한 감정에 대한 연구’라는 원래 주제와는 전혀 다를지언정, 그야말로 소리에 대한 충실한 ‘연구일지’나 다름없는 셈이다.

 

5곡짜리 EP임에도 불구하고 Intro, Interlude, Outro 등의 요소를 알차게 끌어와 음악적 유기성을 의도하려 한 점이나, 상대적으로 저음역대를 가진 제이유나와Meego의 피쳐링으로 소리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점 또한 앞서 언급한 맥락과 함께 감상한다면 눈여겨볼 만한 지점들이다. 자칫 진지해질 수도 있는 시간이라는 주제를 두고 친근한 태도를 취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등, 작품의 전체적인 무게감은 전작에 비해 훨씬 가벼워졌지만 그 밀도 만큼은 지금껏 나온 큐 더 트럼펫의 작품 중 으뜸이 아닐까.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고, 연주자 출신의 아티스트가 엮어내는 소리의 조합은 그의 두 번째 연구일지를 기다려볼 만큼 충분히 신선하고 또 흥미롭다.

 

 


Editor / 월로비

GaYoung Bae (배가영) [Gugak and Jazz on Canvas Live Album]

[Gugak and Jazz on Canvas Live Album]은 전작에 수록된 곡의 또 다른 버전을 포함해 새로운 곡까지 담아냈다. 함께 했던 해외 연주자들도 국내 연주자들로 바뀌었고, 한층 더 깊이 있게 정서를 표현해낸다. 전통과 재즈, 어느 한 쪽에 구심점을 찍지 않고 오히려 그 두 가지를 정말 재료처럼 유연하게 녹여내는 과정과 결과를 감상하다 보면 앨범은 비교적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짧게 느껴진다.

 


 

GaYoung Bae (배가영)
Gugak and Jazz on Canvas Live Album
2021.07.05

 

한국에서의 첫 데뷔 앨범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크로스오버 음반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재즈 피아니스트 배가영의 이야기다. 한국의 악기를 포함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의 리듬, 그러니까 장단을 연주하고자 했고 한국의 음악과 재즈 음악 양 쪽 모두 자신의 앨범 안에 잘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크로스오버에 해당하는 많은 작품이 한국의 악기, 호흡과 재즈의 악기, 문법이 절묘하게 묶이는 작업을 해냈다면 배가영은 재즈를 도구로 한국의 것을 표현하는 방식을 택했다. 어쩌면 가장 원론적인 접근이기에, 그렇기에 더욱 어려운 길이어서 자칫하면 더 박한 평가를 받기 쉬운 형태다. 개인적으로도 [Sepia Painting]을 만나기 전까지는 한국 고유의 음악을 온전히 몸으로,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지 않은 이상 한국의 장단과 정서를 재즈로 표현하기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은 고민과 관찰, 애정과 관심이 만드는 것이라는 더 원론적인 사실을 깨닫게 해준 것이 바로 배가영의 작품이다.

 

 

[Gugak and Jazz on Canvas Live Album]은 전작에 수록된 곡의 또 다른 버전을 포함해 새로운 곡까지 담아냈다. 함께 했던 해외 연주자들도 국내 연주자들로 바뀌었고, 한층 더 깊이 있게 정서를 표현해낸다. 여기에 앨범의 절반 정도에 참여한 황애리의 소리가 앨범의 매력을 더욱 극대화하며, 한국적인 표현의 비중을 단숨에 끌어올린다. 황애리의 경우, 전작 [서울민요]에서 이미 한국의 소리가 보컬로서 구성될 수 있는 영역을 한 층 더 넓혔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그것을 또 한 번 구현해낸 듯하다. 아울러, 동시에 배가영의 음악과도 좋은 조화를 이룬다.

 

전통과 재즈, 어느 한 쪽에 구심점을 찍지 않고 오히려 그 두 가지를 정말 재료처럼 유연하게 녹여내는 과정과 결과를 감상하다 보면 앨범은 비교적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짧게 느껴진다. 버클리 음대 전액 장학생이라는 타이틀, 다닐로 페레즈(Danila Perez)와 같은 피아노 명인들과 호흡을 맞췄다는 점만큼 어쩌면 지금까지 발표한 두 장의 앨범이 배가영이라는 음악가를 소개하기에 훌륭한 이력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앨범 전곡 모두 라이브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고 하니, 연주와 합을 직접 볼 수 있는 영상이 궁금하고 또 기대가 된다.

 

 


Editor / 블럭

쟈드 (Jade) [Hometown]


 

독립적인 문화 정체성을 지닌 서드 컬쳐 키드로 자라온 그의 성장 배경과 COVID-19로 촉발된 작금의 상황 속에서 고향은 지친 마음을 뉘일 수 있는 따뜻하고 포근한 가상의 노스탤지어로 작동한다. 한국과 프랑스 어디에서도 속하지 못하는 본인을 외계인에 빗대어 써내려간 ‘Monster’, 향수와 공허를 노래하는 ‘Go Back’과 ‘Hometown’, 바이링구얼로 인한 애로사항을 담아낸 ‘Bug’ 등 고향을 주제로 한 다채로운 열네 개의 트랙이 앨범 내 빼곡히 담겨 있다.

 


 

쟈드 (Jade)
Hometown
2021.06.27

 

Jade라 쓰고 쟈드로 읽는다. 국내외 여러 동명의 아티스트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검색에 다소 애로사항을 겪기도 하지만, ‘쟈드’로 소리내어 부르는 Jade는 분명 유일무이하다. 크루 Biscuit häus의 일원으로 2018년 처음 씬에 등장한 쟈드는 두 장의 EP와 다수의 싱글을 발표하며 장르 팬들에게 일찍이 주목받았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크루 동료 Jclef와 Meego의 몫이었다. 동료의 성공을 지켜보면서 천천히 자신의 때를 준비해 온 쟈드가 마침내 엔진을 켜고 출격에 나선다. 그의 첫 번째 정규 앨범 [Hometown]을 소개한다.

 

앨범명에서 알 수 있듯, [Hometown]은 고향을 키워드로 하는 앨범이다. 하지만 쟈드가 이야기하는 고향은 특정 국가와 도시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다시금 한국에서 청소년-성인기를 보내며 독립적인 문화 정체성을 지닌 서드 컬쳐 키드로 자라온 그의 성장 배경과 COVID-19로 촉발된 작금의 상황 속에서 고향은 지친 마음을 뉘일 수 있는 따뜻하고 포근한 가상의 노스탤지어로 작동한다. 한국과 프랑스 어디에서도 속하지 못하는 본인을 외계인에 빗대어 써내려간 ‘Monster’, 향수와 공허를 노래하는 ‘Go Back’과 ‘Hometown’, 바이링구얼로 인한 애로사항을 담아낸 ‘Bug’ 등 고향을 주제로 한 다채로운 열네 개의 트랙이 앨범 내 빼곡히 담겨 있다. (유일한 피쳐링 뮤지션인 Sylo Nozra가 한국계 캐나다 아티스트라는 지점 역시 흥미롭다.)

 

 

베테랑 서사무엘을 비롯하여 박준우, ROMderful, hoiwave, Beautiful Disco 등 화려한 프로듀서진이 쟈드의 첫 풀렝스 앨범을 위해 의기투합했다. 이와 같이 다양한 프로듀서가 앨범에 참여하는 경우, 자칫 작품의 무게 중심이 흔들릴 수 있지만 일관된 주제과 이를 투영한 프로덕션으로 균형을 유지한다. 작품 속 쟈드의 퍼포먼스 역시 인상적인데, 그의 음악 특색이라 할 수 있을 내밀한 가사와 대중성을 겸비한 멜로디, 풍성한 코러스, 그리고 이를 모두 감싸 안는 몽환적인 사운드스케이프는 본작에서도 유효하다.

 

언어와 장르 문법에 구애받지 않는 자신의 음악적 강점을 성숙하게 다듬고, 그 토대 위에 새로운 시도를 얹어 완성한 [Hometown]. 올 상반기 주목할만한 작품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트렌디하면서 감성과 주제의식을 놓치지 않는 R&B를 찾고 있던 당신에게 쟈드의 음악을 소개한다.

 

 


Editor / 키치킴

7 [청춘]

오르간 연주를 들인 것도 신의 한 수지만, 담배 한 대 생각나는 먹먹한 분위기와 이를 잘 유지하는 연주, 포크 록에 소울풀함과 한국적인 멜로디가 더해지니 이것은 아무리 가까이 잡아도 1980년대 초반의 곡이 아닌가 싶다. 힘을 잔뜩 들인 뻣뻣한 연주가 아닌, 치열하면서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니 이들의 나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7
청춘
2021.05.07

 

기타에 문석민, 베이스에 박종우, 드럼에 서주영으로 구성된 세 사람은 7이라는 밴드를 결정했다. 작곡에 연주는 물론 믹싱, 마스터링, 커버까지 직접 해낸다. 여기에 세 사람의 면면이 모두 화려하다. 따로 또 같이 다니는 이들은 자이언티부터 스텔라장, 에릭남, 치즈, 이진아 등 하나 하나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들과 호흡을 맞춰오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각자 자신의 또 다른 이름을 건 작품들이다. 박종우는 PJNOTREBLE로, 서주영은 younghotstuff로, 문석민은 slowminsteady로 각자의 앨범을 발매한 바 있고, 여기에도 구원찬, 이진아 등 많은 음악가들이 참여했다. 그러다 보니 커버하는 장르도 다양하다. 재즈부터 록, 힙합, 알앤비 등 여러 형태를 자유롭게 오가는 가운데 그러면서도 각자의 색채는 어느 정도 유지한다. 파편적으로 들으면 각 연주자의 색채라는 것을 깊이 음미하긴 어렵겠지만 이들이 연주한 곡들을 쭉 모아서 들어보면 더욱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7은 한글로 칠이라고 읽지만, 영어로 생각해보면 chill이다. 하지만 ‘chill’이라는 단어에 가까운 음악을 연주했던 전작을 듣고 이번 앨범을 들어보면 다소 당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정도 되는 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감상해도 무방할 만큼 과거의 향수를 놀랍도록 천연덕스럽게 재현한다. 아트워크부터 심상치 않다. 옛 시대의 감성을 그대로 재현하며 마치 과거의 흑백 사진인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기억을 조작한다. 여기에 첫 곡 “연안부두”와 두 번째 곡 “처량한 경음악”까지 들으면 아마 소싯적 대학가요제 좀 들었다 하시는 분들은 혀를 내두를 것이다. 이 감성은 단순히 흉내 내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감탄할 수밖에 없다. 오르간 연주를 들인 것도 신의 한 수지만, 담배 한 대 생각나는 먹먹한 분위기와 이를 잘 유지하는 연주, 포크 록에 소울풀함과 한국적인 멜로디가 더해지니 이것은 아무리 가까이 잡아도 1980년대 초반의 곡이 아닌가 싶다. 힘을 잔뜩 들인 뻣뻣한 연주가 아닌, 치열하면서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니 이들의 나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세 사람의 본캐가 아주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네가 좋아하던 바다”부터 “안반데기”, “너랑 벚꽃”으로 이어지는 따뜻한 포크 록의 색채에는 결국 세련됨을 감추지 못하고 아름답게 풀어나간다. 마지막 “다음에 다시 만나요”는 어쩌면 본캐와 부캐의 좋은 합의점이 아닐까 싶다. 옛 정취를 살리는 톤과 깔끔한 진행의 조화는 멋 그 자체다.

 

앞서 말했듯 이들은 다양한 장르를 품어 왔다. 그리고 [청춘]을 통해 이들이 잘하는 새로운 것을 또 들려주며 세 사람의 세계관은 무척 넓어지는 중이다. 창고에서 만들어져 러프한 감성을 살린 전작, 한국적인 그룹 사운드의 본작을 지나 다음에는 어떤 것이 등장할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세 사람 모두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한 뒤 열심히 이들의 행보를 추적하며 기다리자.

 

 


Editor / 블럭

사라카야콤슨 (SarahKayaComson) [Crumbs of…]

규칙적인 라이밍과 이를 뒷받침하는 완벽한 글자 수 배치는 “근본 없는 음악을 지향”한다는 그의 아티스트 소개 글이 무색하게 힙합 작사의 근본이 가진 멋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물론 중간중간 등장하는 변칙적인 리듬과 멜로디컬한 라인들이 ‘근본’과 상반되는 맛으로 사운드의 밸런스를 잡아주니 지루할 틈이 없다.

 


 

사라카야콤슨 (SarahKayaComson)
Crumbs of…
2021.05.14

 

“사라카야콤슨이 도대체 누구야?”라는 물음에 말없이 그의 첫 번째 EP를 들어보라 권한다. 본인을 규정하던 많은 것들을 나열하며 “내가 꼭 누구여야 해?”라고 되묻는 패기 있는 노랫말에 잠깐이라도 멈칫했다면 슬며시 두 번째 EP를 추천해본다. 7곡에 걸쳐 지치지도 않고 “사랑이 전부”라 노래하는 진솔한 뚝심을 통해 사라카야콤슨이라는 아티스트의 핵심을 엿볼 수 있으리라.

 

이번 5월에 발표된 세 번째 EP [Crumbs of…]는 여기서 조금 더 사적이고 사소한, 본작의 제목과도 같은 ‘부스러기’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 자신’ 그리고 ‘나의 전부’를 통과하여 이제는 주변에 떨어진 부스러기 같은 감정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는 이번 작품은 아티스트 본인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의 음악을 꾸준히 지켜봐 온 리스너라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맥락의 스토리텔링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때로는 다 포기한 채로 도망치고 싶다거나(“Ain’t Nothing”) 종말이라는 상황에 빗대어 염세적인 태도로 거창한 무언가를 추구할 필요 없다 말하는(“End Of The Day”),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엄습해오는 외로움을 맞닥뜨리는(“Findmeinthetown”) 그의 모습들은 쉽사리 눈에 띄지 않지만 분명 어딘가에 존재하는 내밀한 감정을 기반으로 묘사되고 있다. 첫 번째, 두 번째 EP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솔직함으로 자연스럽게 그 내용적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앞선 설명만으로 이번 작품을 ‘인간의 어두운 이면을 다룬 컨셔스한 앨범’ 등으로 오해해서는 절대 안 된다. 오히려 그의 이름의 유래에서도 알 수 있듯(미국 시트콤 ‘오피스’에 나오는 “Sarah Kaya comes in”이라는 말장난에서 따왔다고 한다.) 진지하고 무거운 의미를 담지 않으려는 음악관에 따라 ‘월세’, ‘마트’, ‘따릉이’, ‘홍제역’ 같은 일상의 언어들과 특유의 익살스러움을 버무려 주제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있다. 말랑말랑한 표현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화자의 내면세계와 동화될 수 있도록 만드는, 이름하여 ‘사라카야콤슨식’ 스토리텔링의 완성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문득 사라카야콤슨은 그저 ‘좋은 이야기꾼’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를 두고 자신 있게 ‘좋은 이야기꾼’을 넘어 ‘좋은 뮤지션’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청각적인 부분에서도 여전히 빈틈없는 탄탄함 때문이다. 규칙적인 라이밍과 이를 뒷받침하는 완벽한 글자 수 배치는 “근본 없는 음악을 지향”한다는 그의 아티스트 소개 글이 무색하게 힙합 작사의 근본이 가진 멋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물론 중간중간 등장하는 변칙적인 리듬과 멜로디컬한 라인들이 ‘근본’과 상반되는 맛으로 사운드의 밸런스를 잡아주니 지루할 틈이 없다. 또한, 1번 트랙 “Ain’t Nothing”에서 극에 달하는, 귀에 걸리는 부분 하나 없이 부드럽게 연음 처리되어 물 흐르듯 이어지는 자음 배치와 발음법은 듣는 이의 청각적 쾌감을 자극하는 킬링 포인트 중에 하나다.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능청스러운 고유의 발성이 얹어지는 순간 사라카야콤슨은 비로소 ‘좋은 이야기꾼’에서 ‘좋은 뮤지션’이 되는 것이다.

 

[Crumbs of…]는 소보루 빵을 닮았다. 부스러기가 본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맛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보루 빵처럼, 자칫 진지해질 수도 있는 ‘부스러기’라는 키워드를 본인만의 방식으로 맛깔나게 요리하여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재탄생 시켰으니까. 내용과 형식의 완성도를 고루 갖춘 이번 작품을 통해 또 한 번, 안과 밖을 넘어 그의 다음 시선이 향할 곳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Editor / 월로비

강미경 [17]

본작은 근래 들은 국내 재즈 연주자들의 앨범 중 가장 밴드리더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그래서 강하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운 일종의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앨범이다. 더불어 최근 만난 작품들 중 가장 모던 재즈의 유산이 가장 강하게 들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결코 지루하거나 평범하지 않다.

 


 

강미경
17
2021.06.15

한사랑산악회 김영남 회장이 외치는 열정도 젊은 색소폰 연주자 강미경의 열정에 비하면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자신의 20대 마지막 생일에 발매했다고 하는 첫 앨범 [17]은 6분 길이 내외의 다섯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곡인 “Pupil”부터 마지막 곡 “17”까지 모두 강미경이 쓴 것으로, 기존 공연에서 이미 천천히 선보였던 곡들이 포함되어 있다. 모던 재즈의 모습을 한 첫 곡부터 여유 있는 리듬의 “The Walking Deer”를 지나 인상적인 전개를 선보이는 “숨구멍”, 힘있는 “Gatecrasher”를 지나 마지막 “17”까지,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다섯 곡 내내 타이트함과 열정이 있다. 밀어부치는 에너지는 물론 작곡가, 리더로서의 책임감까지 느껴질 정도다. 색소폰이 지니고 있는 장점 중 하나가 힘을 들려줄 수 있는 음색이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러한 연주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힘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강미경은 이를 훌륭하게, 첫 앨범이지만 능숙하게 소화해낸다.

 

 

처음 앨범을 들었을 때는 강미경의 연주가 가장 먼저, 그리고 존재감이 크게 들렸지만 몇 차례 더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연주자들과의 합은 물론 다른 연주자들의 뒷받침까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본작은 근래 들은 국내 재즈 연주자들의 앨범 중 가장 밴드리더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그래서 강하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운 일종의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앨범이다. 더불어 최근 만난 작품들 중 가장 모던 재즈의 유산이 가장 강하게 들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결코 지루하거나 평범하지 않다. 오히려 음악에서는 어떤 솔직함과 유연함의 여지도 담겨 있다. CD에는 각 곡마다 직접 쓴 글이 있다고 하는데, 아직 구매를 하지 못해 읽지는 못했지만 강미경이라는 음악가 개인의 이야기가 담겨있지 않을까 하여 내심 기대 중이다.

 

그의 인스타그램에 가면 캐논볼 애덜리(Cannonball Adderley)부터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웨인 쇼터(Wayne Shorter)부터 찰리 파커(Charlie Parker)까지 훌륭한 유산을 남긴 이들의 힘있는 연주를 꾸준히 올려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긱을 해온 것도 알 수 있지만, 여러 곳에서 세션을 해왔다는 정보도 볼 수 있지만 꾸준히 업로드해놓은 연주와 읽어온 책만 쭉 봐도 그가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해왔을 지 아주 어렴풋이지만 짐작할 수 있다. 열정 가득한 연주자 강미경의 첫 시작을 응원하며, 그의 마지막 20대도 축하하며 앞으로 더 많은 활동을 보여주길 진심으로 희망한다.

 

 


Editor / 블럭

leanon(리논) [BLOSSOM]

감상하는 동안 케이팝 앨범을 듣고 있는 듯한 감각을 이따금씩 느꼈다. 그런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실제로 어떤 지점들이 꽤나 케이팝과 닮았다 여겨진다. ‘멋짐’을 뽐내는 장르적인 색채 강한 트랙들과 편하게 들을 수 있는 팝 성향의 트랙들이 적당한 비율로 블렌딩된 밸런스 잡힌 구성이 일단 그렇고, 마치 노련한 프로듀서의 손길이 닿은 듯 곳곳에서 세련된 솜씨가 느껴지는 매끄러운 만듦새가 또한 그렇다.

 


 

leanon(리논)
BLOSSOM
2021.04.27

 

여전히 ‘플레이리스트’, ‘큐레이션’이 화두인 요즈음의 음악 시장이다. 대부분의 음악 서비스들이 고감도의 귀로 좋은 음악을 큐레이팅하는 좋은 에디터들을 보유하고, 그들을 앞세워 구독자들, 또 잠재적 구독자들에게 “우리가 너의 취향을 가장 잘 알아!”라며 열렬한 구애를 보내는 시대인 것이다.

 

최근 흥미롭게 느낀 사건(?)이 있었다. 애플뮤직이 제공하는 주요 플레이리스트들 중 몇 군데에 신예인 ‘leanon(리논)’(이하 ‘리논’)의 노래 ‘drownin’이 동시에 선곡된 것이다. 딱히 알려진 이력도 없고, 당연히 그 시점에서 어떠한 크레딧도 없었을 – 사실상 무명에 가까운 – 음악가의 데뷔작 수록곡이 ‘선곡 선수’들인 에디터들의 레이더에 포착되었다는 것, 그건 그의 음악이 오롯이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그들의 귀를 잡아 끌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일 거다.

 

‘리논’에 관한 정보는 많지 않다. ‘콜드’의 레이블 Wavy 소속 프로듀서 Stally와 함께 아이돌 음악의 곡 작업을 해왔다는 것, PAUL이란 이름으로 하나의 싱글을 냈고 알앤비 아티스트 Nieah의 곡을 쓰고 피쳐링한 적이 있다는 것, 그리고 래퍼 서출구의 2020년 정규앨범 [Spill]의 공동 프로듀서로 앨범의 프로듀싱 전반에 관여하고 대부분의 트랙들을 직접 만들었으며 그 즈음부터 ‘리논’이란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 이 정도가 지금 시점에서 공유 가능한 일말의 정보들이다.

 

 

지난 4월에 공개된 아직 따끈따끈한 데뷔작 [BLOSSOM] EP는 그간 그의 작업물들이 주로 힙합, 알앤비 계열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뜻밖인, 의외성 있는 컨셉트와 구성의 작품이다. 이제는 한국식 흑인음악의 특징적인 색채로 자리잡은 듯한, 소위 ‘K-알앤비’적인 무드 속에 Anderson .Paak의 그것처럼 느껴질 만큼 멋진 그루브를 엮어낸 오프너 ‘drowinin (feat. 서출구)’이 그의 장르 음악가적 일면이라면, 그룹 ‘구구단’ 출신의 해빈과 함께한 ‘TGIF’, 앨범 타이틀과 동명의 곡 ‘blossom’, 아웃트로인 ‘어떻게 알아요’까지 앨범의 중심에 놓인 곡들은 모두 어쿠스틱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운 감미로운 팝 넘버들로 그의 음악적인 범위가 단지 힙합/알앤비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은근히 드러낸다. 특히 ‘어떻게 알아요’는 이 곡만 따로 들었다면 기타 기반의 싱어송라이터가 쓴 곡이 아닐까-생각이 들 만큼 영롱하고도 그윽한 기타 선율이 인상적인 곡. (크레딧을 보니 ‘고형열’ 님의 연주라고 한다) 끝으로 보너스 트랙 ‘Hypnotized’에 이르면 다시 알앤비 음악가 ‘리논’의 모습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평소에 좋아한다는 OVO Sound(래퍼 Drake의 레이블) 소속의 ‘PARTYNEXTDOOR’나 ‘dvsn’ 등이 연상되는, 토론토 냄새 물씬한 트랩 알앤비 곡이다.

 

 

감상하는 동안 케이팝 앨범을 듣고 있는 듯한 감각을 이따금씩 느꼈다. 그런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실제로 어떤 지점들이 꽤나 케이팝과 닮았다 여겨진다. ‘멋짐’을 뽐내는 장르적인 색채 강한 트랙들과 편하게 들을 수 있는 팝 성향의 트랙들이 적당한 비율로 블렌딩된 밸런스 잡힌 구성이 일단 그렇고, 마치 노련한 프로듀서의 손길이 닿은 듯 곳곳에서 세련된 솜씨가 느껴지는 매끄러운 만듦새가 또한 그렇다. (어디까지나 뇌피셜이지만) 그는 아마 이런 구성을 통해 자신이 특정 장르의 스페셜리스트이기 이전에 이에 얽매이지 않는 음악적 다양성, 광범위함, 그리고 가능성을 지닌 음악가임을 사전에 알려두고 싶었던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마침 오늘 새 싱글 ‘Friend Zone’이 막 공개되었다.
데뷔작으로 제법 괜찮은 쇼케이스를 해낸 그가 이번엔 과연 어디로 경로를 택했을지, 이 글을 통해 리논의 음악에 조금이라도 호기심이 생긴 분들이라면 지금 바로 직접 확인해보길 바란다.

 

 


Editor / 김설탕

화분 [소만]

브라질 음악이라고 모두 신나는 축제 음악이 아니듯, 능수능란한 퍼커션의 넘실거리는 리듬과 존재감 강한 기타 톤이 있지만 사이키델릭한 순간부터 이지연의 보컬, 다양한 변칙 연주까지 때로는 잔잔하다가도 때로는 격정적으로 봄과 여름, 청춘과 낭만을 전달한다. 아마 브라질 음악에 대해, 혹은 삼바에 대해 전혀 모르더라도 이것이 우리의 여름에 훌륭한 주제곡으로 남을 수 있음을 한 번만 들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화분
소만
2021.06.11

 

소만은 24절기 중 하나로 해가 많이 들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시기다. 여름이 시작되는 즈음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삼바를 기반으로 브라질 음악을 선보이는 이들이기에 소만이라는 시기가 지닌 이미지와 화분은 잘 어울리는 듯하다. 화분은 2009년부터 지금까지 10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2012년 첫 정규 앨범을 시작으로 2016년 두 번째 앨범 [서교호텔], 세 번째 앨범 [봄, 꽃]에 이어 이번에 네 번째 [소만]을 발표했다.

 

 

화분의 음악은 비교적 그 방향이나 색채가 명료하다. 브라질 삼바 음악을 중심에 두고, 보다 본격적으로 브라질 음악에 깊이 있게 접근한다. 워낙 화분을 구성하는 멤버 구성이 화분의 색채와 가깝기도 하다. 솔로 앨범에서도 브라질 음악인 쇼로를 기반으로 다양한 작업을 했고 까데호의 1/3이기도 한 이태훈을 비롯해 라커퍼션에서도 중요한 인물인 유이엽, 소울소스의 드러머인 이종호까지 그 면면이 화려하기도 하지만 이들의 인연을 만들어 준 계기 중에는 삼바 스쿨인 에스꼴라 알레그리아(Escola Alegria)도 있다고 하니, 삼바 음악은 어쩌면 이들에게 필연적인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소개글대로 보사노바부터 브라질리언 훵크까지 다양하게 담아내며 브라질의 재즈 훵크 밴드인 아지무스(Azymuth)부터 주앙 지우베르투(Joao Gilberto), 일찍이 다양한 장르를 섞어냈던 에우미르 데오다토(Eumir Deodato)에 토킹뉴(Toquinho)까지 언급한 것을 보면 이들의 목적지는 단순히 삼바 하나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브라질 음악이라고 모두 신나는 축제 음악이 아니듯, 능수능란한 퍼커션의 넘실거리는 리듬과 존재감 강한 기타 톤이 있지만 사이키델릭한 순간부터 이지연의 보컬, 다양한 변칙 연주까지 때로는 잔잔하다가도 때로는 격정적으로 봄과 여름, 청춘과 낭만을 전달한다. 아마 브라질 음악에 대해, 혹은 삼바에 대해 전혀 모르더라도 이것이 우리의 여름에 훌륭한 주제곡으로 남을 수 있음을 한 번만 들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화분의 브라질 음악을 이국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들으면 그런 느낌보다는 오히려 각자의 여름에 관한 기억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서 이들만큼 삼바를 애정 있게 대하는, 그리고 잘 풀어내는 밴드도 없을 것이다. 때마침 날씨도 화분의 앨범을 듣기 딱 좋다. 올해 여름은 화분과 함께 보내보자.

 

 


Editor / 블럭

GREENVILLA [GREENVILLA EP]

여덟 트랙으로 이루어진 [GREENVILLA EP]는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인디 락의 미덕을 충실히 따른다. 낭만을 머금은 기타 사운드와 맑고 투명한 보컬, 정갈하고 차분한 프로덕션까지. 밴드의 정체성을 오롯이 담아낸 타이틀 넘버 ‘Venus’가 그중에서 단연 돋보인다.

 


 

GREENVILLA
GREENVILLA EP
2021.06.03

 

밴드 그린빌라(GREENVILLA)가 셀프타이틀 데뷔 EP를 발표했다.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그린빌라가 조금은 낯선 이름일 수 있기에, 간단하게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그린빌라는 창원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4인조 혼성 밴드로, 엉클밥과 Paper River 출신의 멤버들과 별도의 활동 이력을 지니지 않은 보컬 배우미가 의기투합하여 결성되었다. 앞서 소개한 두 밴드에 모두 몸담았던 기타리스트/송라이터 신가람이 음악적 중추를 담당하고 있다.

 

밴드 소개글에 따르면, 그린빌라는 1980년대 남쪽 나라의 따뜻하고 나른한 문화적 분위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남쪽 나라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을 오스트레일리아는 198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인 음악적 전성기를 맞이했다. Air Supply, Little River Band, Bee Gees, INXS, Olivia Newton John과 같은 팀이 세계 시장에서 그 위용을 떨쳤다. 비록 직접적인 연관은 없을지라도, 당대에 사랑받았던 남쪽 나라의 소프트 팝/락을 감상해본다면 그린빌라의 음악적 근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덟 트랙으로 이루어진 [GREENVILLA EP]는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인디 락의 미덕을 충실히 따른다. 낭만을 머금은 기타 사운드와 맑고 투명한 보컬, 정갈하고 차분한 프로덕션까지. 밴드의 정체성을 오롯이 담아낸 타이틀 넘버 ‘Venus’가 그중에서 단연 돋보인다. 앨범과 함께 공개된 뮤직비디오 역시 현재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얻고 있다. 댄서블한 리듬이 시종일관 이어지며 트랙 간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Cici’ 역시 주목할만하다. 밴드의 시작을 알리기에 이것보다 더 근사한 출사표가 있을까.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시끄러운 소음도, 매캐한 연기도 없는 따뜻한 국외의 어드메에서 이 앨범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팬데믹 시대가 하루빨리 종결되어 하늘길도 열리고 다시금 평범한 일상을 맞이했을 때, 그때의 감상을 여러분과 다시 함께 나눴으면 한다.

 

 


Editor / 키치킴

과수원 [상념채색]

두 사람은 음악적 공통분모 외에도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비주얼 작업을 직접 한다는 것이다. Mellow Blush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주로 하며, 미야오우는 회화 작업을 주로 한다. 두 사람은 이번 앨범의 비주얼도 함께 작업했는데, 그것마저도 훌륭하다. 기술적인 영역에서 시너지도 있겠지만, 앨범의 감성이 더없이 잘 표현된 앨범 커버를 만들었다.

 


 

과수원
상념채색
2021.05.31

 

서로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두 음악가가 만나지 않고도 함께 작업하여 좋은 작품을 낼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인해 각종 봉쇄와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음악가가 소통의 가능성을 보이며 이를 훌륭하게 증명해냈다. Mellow Blush와 미야오우(ミヤオウ)가 결성한 듀오, 과수원(果樹園, Kajuen)이 만든 [상념채색(想念彩色)]이 바로 그 증거다. 두 사람은 2020년부터 연을 맺게 되었고 놀랍게도 아직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음악적 성향이 맞기에 이정도 좋은 호흡이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결과적으로는 직접 만나서 작업한 만큼, 함께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알고 지낸 것처럼 긴밀한 호흡을 만들어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만들어낸 과정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소개글에 따르면 온라인 상에서 서로 곡의 토대를 바탕으로 주고받으며 곡의 구성을 쌓고, 그 과정을 반복하며 완성해나가는 작업방식을 택했다고 하는데,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어느 정도 자주 왔다갔다했는지 그런 것들마저 알고 싶어진다. 아마 이쯤 얘기했으면 여러분도 첫 곡을 재생하기 시작했으리라 생각한다.

 

 

두 사람은 음악적 공통분모 외에도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비주얼 작업을 직접 한다는 것이다. Mellow Blush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주로 하며, 미야오우는 회화 작업을 주로 한다. 두 사람은 이번 앨범의 비주얼도 함께 작업했는데, 그것마저도 훌륭하다. 기술적인 영역에서 시너지도 있겠지만, 앨범의 감성이 더없이 잘 표현된 앨범 커버를 만들었다. 수록된 다섯 곡에는 혼성 보컬이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노래를 한다.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듯한데 어쿠스틱한 악기 소리가 주를 이루고, 장르 역시 보사노바부터 포크까지 교묘하게 스며들어 있다. 곡을 구성하는 소리를 담아내는 방식도, 공간감도 흥미롭고 하나의 곡 안에서 진행되는 전개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다섯 곡 안에 담긴 감성과 분위기가 가장 큰 포인트다. 두 사람이 각자 했던 음악과는 묘하게 겹치는 듯 다른, 그래서 더 감상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다양한 장르를 한데 뒤섞어 음악가의 취향 혹은 의도대로 담아내는 것이 한 장르를 고집하는 것보다 더 당연해진 시대이기는 하다. 하지만 전혀 다른 세계의 두 사람이 이토록 새로운 과정을 통해 멋진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그 과정을 통해 이런 앨범을 만들었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이다. 포크부터 일렉트로닉까지, 엠비언트부터 재즈까지 비록 다섯 곡이지만 앨범은 다양한 들을 거리를 담고 있다. 만약 본인이 주변에서 음잘알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은 꼭 들어보자. 그리고 지면으로 다 이야기하기 어려운 수많은 감상 포인트를 함께 공유해보자.

 

 


Editor / 블럭

김마리 [淸, 靑]

맑을 청에 푸를 청, 이번 EP는 김마리의 두 번째 EP이자 김마리라는 음악가의 매력을 압축해 놓은 듯한 네 곡으로 되어 있다. 진심을 다하는 것과 그것을 전달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세상 속에서 이렇게 따뜻하고 온전하게 마음을 전하는 노래가 있다는 것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김마리
淸, 靑
2021.05.20

 

누군가는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을 대부분 비슷하다고 한다. 하지만 백 명의 음악가가 있으면 당연히 백 가지의 감성이 존재한다. 물론 그 안에는 표현력이나 자신의 감성을 풀어내는 언어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무리 비슷한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저마다 등장하는 결과는 다른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언컨대 김마리라는 싱어송라이터가 단 한 번도 매력적이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긴 시간 싱글 단위로 작품을 발표해왔고 그렇기에 어딘가 아쉬움을 느꼈을 수는 있지만, 스트리밍 시대의 생존 방법 때문에 음악가의 평가가 떨어지는 것은 팬으로서 아쉬운 일이다.

 

김마리의 곡은 지금까지도 그랬고 이번 앨범도 그랬지만 언제나 늘 예쁜 노랫말을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공개한 싱글의 제목만 둘러보아도 이미 음악가의 특색이 드러나는 듯한데, 가사만 읽어도 진심이 전해지는 가사가 팝-록, 혹은 발라드 넘버의 형식으로 전달된다. 음악도 그렇지만 가사도 담백하고 아름답다.

 

 

맑을 청에 푸를 청, 이번 EP는 김마리의 두 번째 EP이자 김마리라는 음악가의 매력을 압축해 놓은 듯한 네 곡으로 되어 있다. 앨범 제목만큼 청량하고 푸른 분위기의 음악이 가득 담겨 있는데, 첫 곡인 “너의 이름은 맑음”과 “우산을 들어줄게”는 자연스럽게 학원물이라 불리는,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 떠오른다. 어쩐지 어릴 적 투니버스에서 본 애니메이션의 오프닝이나 엔딩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김마리 특유의 분위기와 서정적인 전개, 결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감정선과 순수한 느낌의 전달까지 곡은 그야말로 듣는 이의 추억을 조작한다. 여기에 “영원을 걷자”는 스트링 전개가 들어옴에도 절절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좀 더 김마리만의 발라드에 가깝게 다가온다. 마지막 곡 “파란”은 내가 김마리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가 담겨 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가사를 천천히 읽어보고, 그 다음 가사를 부르는 김마리의 목소리에 집중해보자. 그리고 팝-록에 가까우며 악기의 편성을 적절하게 가져가는 곡의 구성까지 놓치지 말자.

텀블벅 프로젝트는 이미 성공적으로 끝났기에 뒤늦게 음악가의 매력에 빠져들었다면 아쉬움이 클 수도 있을 것 같다. 학생 컨셉의 비주얼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나는 [淸, 靑] 이후의 김마리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야 하겠지만, 진심을 다하는 것과 그것을 전달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세상 속에서 이렇게 따뜻하고 온전하게 마음을 전하는 노래가 있다는 것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김마리의 노래를 들으면 그 온전한 마음을 전달받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EP라서, 네 곡이어서 아쉬운 분들은 김마리가 발표한 모든 곡을 한데 모아 들어보자. 특히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이맘때 더없이 잘 어울린다.

 

 


Editor / 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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