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IORABBIT

 

마리 토끼 잡기

 

질문지를 준비하는 내내 사적으로도, 동시에 공적으로도 계속해서 물음표가 이어졌던 부분이 하나 있다. 어쩌면 아래 이어질 내용의 핵심일지도 모를, 과연 ‘인간 오하이오래빗’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마치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상반된 음악 스타일을 꾸준히 병행해온 그의 광범위한 커리어에서부터 이어진 물음이었다. 그렇게 이번 인터뷰는, 이다지도 멀게만 느껴지는 평행선 사이 어디쯤에 녹아있을 이야기들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시작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는 어느 한쪽을 굳건히 대표하기보다 평행선 같은 양극단을 이어붙이고자 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리하여, 공교롭게도 본인 스스로 ‘래빗’임을 자처한 오하이오래빗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부단히 나아가는 중이다. 음악 생활의 시작부터 크루 활동과 솔로 작업, 그리고 최근 발표한 첫 번째 EP [덤]으로 까지 이어지는 유연한 맥락은 지금의 그를 충분히 설명해줌과 동시에, 자연스레 우리의 시선을 그의 다음 행보, 그리고 그다음 행보 너머로 향하게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하이오래빗이라고 하구요. 스스로 래퍼라는 타이틀이 좀 더 적합한 인물이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굉장히 오랜만에 이런 단위의 앨범을 내는 것 같은데 제가 작업물이 많은 편도 아니지만 많이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앨범 발매 후에 인터뷰가 업로드될 텐데 어떤 식으로 앨범을 들으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재밌게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질문 준비를 위해서 여러 자료를 참고했는데 이번 자리가 번째 인터뷰이신 같더라구요.

 

네, 전혀 없어요. 그래서 굉장히 좋습니다. (웃음)

 

Q. 저뿐만 아니라 많은 팬분들 또한 이번 인터뷰를 기점으로 오하이오래빗에 대해 알아갈 있을 같다는 기대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했던 활동명의 유래에 관해서 잠시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공식적으로 다룬 적은 없지만 사적으로 굉장히 많이 물어보시는 질문이에요. 이름 따라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름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서 그때마다 적절한 답변을 찾기가 어렵더라구요. 우선은 거창하거나 멋진 뜻을 담아서 지은 이름은 아니에요. 제가 한창 랩을 연마하고 있던 20대 초반, 2015, 2016년 즈음에 사운드 클라우드 씬이 굉장히 활발했는데 그때쯤에 기존에 쓰던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바꿔야 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마침, 그 당시 한창 혁오의 ‘Ohio’라는 노래를 굉장히 많이 듣고 있었던 것과 함께 또 마침 ‘래빗’에도 한창 꽂혀 있었어서 ‘아 오하이오래빗이다’라는 생각에 만들게 된 이름이에요.

 

 

Q. 다른 동물도 아니고 토끼에 꽂히신 이유가 있을까요?

 

왜 토끼에 꽂혀있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크리스마스 래빗’, ‘X-Mas 래빗’ 같은 후보들도 있었는데 주변 친구들한테 물어봤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 OLNL (오르내림)이라는 친구가 오하이오래빗이 가장 나은 것 같다고 말해줘서 결정됐던 것 같은데 유튜브에 제 이름을 쳐보면 실제로 오하이오주에서 토끼를 사냥하는 영상이 많더라구요. 그래서 ‘사냥당하는 토끼’ 같은 이미지를 갖고 가고 있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 이미지도 나름 나쁘지 않은 것 같았어요.

 

Q. 그래도 사냥당한다라는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해석하신 거겠죠?

 

관련해서 한 가지 이야기 드리자면, 제가 첫 앨범을 냈을 때 멜론에서 댓글로 유명하신 어떤 리스너분이 “비정한 세상, 피 토하는 음악”이라고 댓글을 달아주신 적이 있어요. 버벌진트님이 그 제목으로 곡도 발매하신 적도 있는데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제 정규 작업물에 한해서는 스스로가 자존감이나 자신감을 내뿜는 스타일보다는 공격당하는 느낌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고 저 자신도 그걸 나쁘지 않게 생각하고 있더라구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사냥당한다는 이미지와 제 이름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Q. 그렇게오하이오래빗이라는 이름의 공식 데뷔작이기 했던 정규 1 [ㄹ위한정신적사랑] 신예라고 보기 힘든 짜임새 덕분에 반대로 이전 아마추어 시절의 활동을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많을 같아요.

 

사운드 클라우드라는 매체를 기반으로 크루 활동을 했었어요. ‘juiceoveralcohol’이라고, 그 당시 멤버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쿤디판다, OLNL, ACACY 등등 여러 친구들이 있었는데 소울렉션이 한창 인기였기 때문에 퓨쳐베이스 기반으로 작업물을 계속 내던 시기가 있었어요. 2016년부터 2018년쯤? 그 2년 동안 20곡 정도를 작업하면서 꾸준히 발표를 이어갔던 것 같아요. 근데 그 작업들을 생각보다 점점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제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이전까지는 제가 정규 1집에서 보여드린 것처럼 서사적인 내용보다는 한창 랩에 빠져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냥 뭔가 ‘랩을 잘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이어갔었는데 정규 단위의 작업물에 와서 좀 진지하게 할 수 있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네요.

 

Q. 서사적인 메시지 전달에 대한 니즈도 그때쯤부터 커지기 시작하셨던 거군요?

 

그 이전에도 그런 것들에 대한 열망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걸 표현할 능력이 안됐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규 앨범을 만들면서 처음 시도해 본 것들이 많았어요. 서사적으로 짜임새 있는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Q. 인사말에도 언급하셨던 것처럼 규모 있는 작업물도 오랜만이시지만 솔로 작품 자체도 7개월 만에 발표하셨어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도 궁금합니다.

 

2020년 4월쯤에 전역을 하고 그 후에 정규 앨범에 대한 답가를 만들고 싶어서 [구애]라는 싱글로 저 스스로를 향한 답가를 발표하기도 했구요. 음악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안 해본 시도들을 계속하면서 지냈어요. [구애] 이후에 [뉴부자관광]이라는 싱글도 내고, 열심히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작업하면서 지냈습니다. (웃음)

 

Q. 열심히 내실을 다지고 계셨군요.

 

네 그랬던 것 같아요.

 

 

Q. 오랜만에 규모 있는 작업을 완성하신 소감도 궁금해요

 

가장 큰 소감이라면, 저는 확실히 데드라인이 정해져야 작업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고 느꼈고 (웃음). 사실 저번 정규 1집을 낼 때는 이번 앨범이 음악 인생에서 마지막이겠거니 하면서 작업했어요. 물론 이번 작업 때는 그런 생각을 덜 하긴 했지만 앨범을 낼 때마다 텐션이 가장 낮아지는 것 같아요. 뭔가 마무리하면서 집중력은 올라가지만 결과적으로 자존감이 좀 떨어지지 않나.

 

Q. 그 감정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설명해 주실 있을까요?

 

저번 앨범은 굉장히 짜임새 있게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서사적으로 모든 플롯을 짜놓고 곡 제목부터 먼저 정하고 작업하는 식이었어요. 그래서 어떠한 ‘완성물’이라는 것이 굉장히 눈에 잘 띄어서 ‘와 완성했다’라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앨범은 그런 서사라던가 계획 같은 것이 전혀 없이 그냥 하나의 묶음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서 ‘이게 완성이 됐나 안됐나’라는 생각이 컸어요. ‘내도 될까’라는 생각까지 있었는데 우선 발매일이 잡히고 마음속으로 데드라인이 정해지면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충실히 마무리했습니다. 그래도 항상 그렇지만 제 음악이 싫어지는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뭔가 못난 부분만 보이고. 그리고 딱 전달을 드리고 제 역할이 끝났다 싶어지면 다시 제 노래가 좋아지더라구요.

 

Q. 정규 1 당시음악 인생에서 마지막이겠다라고 생각하셨다는 부분도 인상적이에요실제로 음악을 접으려고 하신 건지, 아니면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하셨던 건지 궁금합니다

 

실제로 그만두려고 했었고 (웃음), 사실 24살에 시작한 군생활이 생각보다 너무 길게 느껴져서 2년이라는 시간이 끝나면 다른 길을 찾아서 떠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정규 1집도 사실 굉장히 억지로 희망차게 끝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도 하구요. 실제로 같이 작업하던 비트메이커 친구들한테도 그게 아마 마지막 앨범인 것 같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었고. 근데 또 계속할 이유를 못 찾았던 것과 별개로 그만둘 이유를 찾는 게 더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잘 하는 걸 계속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그래서 전역 후에 [구애]라는 답가도 만드시고 다시 행보를 이어나가신 거군요?

 

네, 그렇죠.

 

 

Q. 이제 슬슬 신보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먼저 이번 EP [] 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번 작품은 8곡이 수록된 EP 앨범이고 제목은 ‘덤’이에요. 사실 제목을 정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원래도 곡 제목 정하는 것을 힘들어하는데 특히 더 힘들었던 이유가, 이번 작품이 ‘묶음’ 이나 ‘모음집’ 같은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이걸 한 단어로 묶어줄 게 별로 없었어요. 여러 안들이 있었는데, 예를 하나 들자면 저의 스물여섯부터 스물여덟을 표현하는 것 같아서 제 나이를 쓰려고도 했어요. 아니면 그냥 듣기 예쁜 이름들을 생각하기도 했는데 결국 덤이라는 제목으로 정해졌어요. 사실 그냥 느낌이 좋아서인 것도 있지만 어느 순간 이번 앨범이 ‘덤덤해지는 감정’에 대해서 조금씩 꾹꾹 눌러 담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조금 회의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 앨범을 만들면서 느꼈던 제 하루하루가 덤처럼 그냥 살아가는 것 같다고 느껴지기도 했구요. 물론 덤이라는 이름이 예뻐서인 이유가 커요.

 

Q. 앨범의 영어 제목은 ‘Dumb’으로 표기하셨더라구요. 이것도 뭔가 의도가 담긴 제목일까요?

 

사실 멋이 없을 수도 있는데 (웃음) 영어 제목에 대해서 생각을 전혀 안 하고 만들다가 ‘덤’을 어떻게 영어로 바꿔야 될까 친구한테도 물어봤거든요. 그런데 예쁜 단어가 없더라구요.

 

Q. 그렇죠. 한국말의 뉘앙스를 오롯이 담아내는 영어단어가 없다 보니까.

 

네, 그래서 그냥 ‘Dumb’이라고 적었는데 사실 그 의미 자체는 꽤 부정적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한국어로 적은 ‘덤’도 생각보다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고 직관적으로 보기에도 예쁘기도 해서 ‘Dumb’으로 짓게 되었습니다.

 

Q. 의도하신 워드 플레이가 아닐까 생각을 했어요.

 

아 그렇게 말할 걸 그랬나요. (웃음)

 

 

Q. 말씀하시는 내용을 듣고 보니 작업 방식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으셨던 같아요.

 

뒤에 이어질 질문과도 연관이 있겠지만, 어떤 이야기를 피력하거나 아니면 서사적인 몰입을 위해 끝까지 놓치지 않고 들어야 하는, 가사적으로 집중해야만 하는 음악들에 대해서 ‘이런 것들만이 좋은 앨범일까?’ 같은 의문이 들었어요. 사실 힙합이라는 장르 안에서 보자면 꽤 필수 불가결한 명반의 기준일 수도 있지만 제가 듣는 음악이 변해서일 수도 있고 피로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그냥 듣기 좋은 노래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했어요. 그런데 제가 어떤 주제나 할 이야기를 정하고 쓰는 것에 익숙해져서 작업을 못하겠는 거에요. 그래서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메모장 켜고 생각 나는 단어들을 적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마치 추상화를 그리는 것처럼 생각을 비우고 만들었는데 그런 곡들의 연속인 것 같아요. 그런데 결국 저는 제 감정에 대해서밖에 쓸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결이 다 비슷한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완성되어서 그 부분은 만족스러워요. 그렇지만 반대로 정답이나 가이드라인을 정해놓지 않고 만들어서 확신이 하나도 없기도 했어요. 목표로 했던 것이 없기 때문에 노래가 다 만들어졌을 때 이게 잘 나온 건지에 대한 판단을 오직 제 감에 의존해서 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 피드백도 잘 안 들었던 것 같지만 동시에 애정이 더 가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Q. 규모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정규가 아닌 EP 발매하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겠네요.

 

네, 맞아요.

 

Q. 사실 이런 설명 없이 인터뷰 전에 미리 받아본 음원 파일 기준으로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분위기 덕분에 이번 작품도 하나의 기획을 가지고 만들어진 앨범인 알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파편적으로 완성된 음악들이었다는 말씀을 듣고 놀랐습니다.

 

굉장히 기쁘네요.

 

Q. 그중에서도 앞서 발표하셨던 싱글 [뉴부자관광] 포함되어 있는 점도 인상적이에요.

 

[구애] 이후에 [뉴부자관광]이라는 싱글을 냈었어요. 그 당시 막연하게 인트로로 쓰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이번 앨범의 인트로를 장식하게 돼서 좋네요.

 

 

Q. 처음부터 어떤 규모 있는 작업물의 인트로를 염두에 두시고 만드셨던 곡일까요?

 

‘뉴부자관광’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덧붙이자면, 그냥 길을 걷다가 집 가는 길에 있던 버스 정류장에서 ‘뉴부자관광’이라고 적힌 버스를 봤는데 이름이 되게 강렬한 거예요. 물론 그저 어떤 회사의 이름이었을 테지만, 사람들이 놀러 가기 위해 이용하는 관광버스 조차도 ‘새로움’이나 ‘부자’ 같은 이미지를 쫓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렇게 해서 작곡가 ‘honu’라는 친구와 같이 만들게 된 노래에요. 그리고 편곡적으로 봤을 때 뒷부분이 굉장히 난해하고 불친절해서 뭔가의 인트로를 장식하면 너무 멋있을 것 같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처음 만들 때부터 ‘인트로처럼’이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Q. 혹시 여덟 트랙 중에 뉴부자관광을 제외하고 조금 애착이 가는 곡이 있을까요?

 

발매자료 넘겨드리기 이틀, 하루 전에 ‘비밀’의 뒷 부분이 추가되었는데 그 부분이 앨범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해준 것 같아서 그 곡을 가장 많이 듣고 있긴 해요. 그런데 설명을 따로 드리고 싶은 곡은 사실 ‘fade’라는 곡이에요. 이 곡은 다른 곡들과 다르게 만들어진 이유가 조금은 있는데요,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부모님이 유튜브를 자주 보시거든요. 그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한 번 관심을 갖고 보기 시작하면 추천 동영상에 계속 그것에 관련된 영상이 나오는데 이게 방대한 정보의 바다 안에서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자연스럽게 일상 속 생각을 한 쪽으로 강제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실제로 그런 의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 같아서. 이런 것들이 자꾸 다양한 생각들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서 굉장히 무섭다는 생각을 한창 가졌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만들어지게 된 노래에요.

 

 

Q. 도입부에서부터 이어지는 영어 가사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벌스 1에 되게 길게 영어 가사가 나오는데 처음에는 그 내용을 한글로 전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굉장히 현학적이면서 가르치려고 하는 것 같아서 제가 용납을 못하겠더라구요. 조금 번역을 해보자면, ‘구글 추천 검색어가 너를 한쪽으로 생각하게 한다.’, ‘핸드폰 뒤에 있는 선악과 로고가 사람들을 옥죄게 한다.’ 같은. 이걸 한국어로 전했을 때 너무 부담이 심할 것 같아서 듣는 분들도 가볍게 넘어갈 수 있게 못 하는 영어를 써가면서 작업했던 기억이 있어서 특히 ‘fade’에 애착이 갑니다.

 

Q. 이어서 내용적인 부분에 대해서 조금 여쭤볼게요. 물론 정규 1집과 방향성은 많이 다르다고 해도 여전히사랑이라는 키워드가 유효하다고 느꼈어요. 오하이오래빗의 음악에서사랑 가지는 의미가 궁금합니다.

 

굉장히 웃긴 말이지만 예전부터, 정규 1집 만들던 시절에 저는 스스로가 사랑 노래를 잘 만들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아이러니하게 제목에도 사랑이 들어가는 앨범을 만들게 됐네요. 그 당시 사랑이라는 키워드는 굉장히 폭넓은, 어떤 정답에 가까운 것의 대체어처럼 사용했던 것 같아요. 앨범 소개글에 “날, 널, 우릴 위한 정신적 사랑”이라고 적었던 것처럼 ‘사랑’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 이번 EP를 만들면서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만들었지만 무의식 속에서 꺼내 만든 음악들에서도 사랑이라는 키워드가 유효한 것을 보면 1집 때의 가치관을 제가 스스로 조금 증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재미있어요. 물론 이번 앨범에도 ‘lily’ 같이 사랑에 관한 노래가 있는데 그것을 어떤 ‘정답’이라는 생각 없이 그냥 제가 겪고 느낀 사랑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두 앨범의 사랑이라는 키워드의 느낌은 조금 다른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제 삶에 빗대어 보면 비슷한 결론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Q. 그렇다면 그사이에 발표된 [구애]에서의사랑 어떤 모습일까요?

 

구애라는 제목이 워드 플레이인데 사랑을 갈구한다는 의미와 어떤 것에 구애받는다는 뜻의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실제로 뒷부분에 ‘구애받지 않게 된다’라는 내용의 스님 목소리가 잠깐 나오기도 하구요. 그 곡은 어떤 정답 같은 사랑을 찾던 것에 너무 집착했던 저 자신에 대한 답가에요. 무언가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것 자체가 조금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이후 발매된 곡들도 잘 끼워 맞춰보면 결국 비슷한 결로 나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Q. 이야기를 듣고 보니구애라는 노래를 통해서 1집의 자기 자신을 부정한 내용이 심화되어 이번 EP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디스코그라피 전체로 봐도 맥락이 재미있게 이어지는 같네요. 덕분에, 같은사랑이어도 조금 시니컬한 분위기가 짙어진 이번 EP 감정선이 눈에 띄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 앨범은 뭔가 흩어지거나 무의미해지는 느낌이 강해요. 사랑 노래인 ‘비밀’ 마저도 뒷부분 가사에 “잘 가, 건강해” 같은 표현들로 끝나다 보니까 조금 더 이번 앨범 맥락이 모아지는 것 같네요. 우선 1집은 의도적으로 해피엔딩을 만들었고 이번 앨범은 어떤 의도 없이 살면서 느낀 감정들에 대해서 표현한 거라 자연스럽게 무언가 희미해진다거나 사라진다는 느낌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그것들이 제 마음속에 이미 단단해진 생각들 중 하나인 것 같네요. 처음부터 사운드적으로만 잘 이어지면 좋겠다는 의도가 가득했는데도 불구하고 동일한 감정선을 보여드릴 수 있었던 건 제 음악이 굉장히 수필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떤 작가의 수필 모음집을 보면 그 사람의 특정 시기의 이야기들이 다 비슷한 범주 안에 포함되는 것처럼 제 음악도 그런 결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Q. 사운드적인 부분을 잠깐 언급해주셨는데 다양한 이펙트들과 더불어 목소리 자체도 사운드 요소 중에 하나로 활용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전체적인 소리 구성에 신경을 많이 쓰신 같은데 조금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선은 굉장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처음 정규 1집을 만들 때만 해도 하이햇이 잘 안 들렸어요. 음악에 대해서 순전히 저의 감으로만 작업했던 사람이었고 랩이나 가사적인 부분에 훨씬 중점을 뒀었거든요. 막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사운드에 굉장히 무지했었는데 전역 후에 우연찮게 Snaggle Owky 프로듀서님의 비트 레슨을 받게 되었어요. 이번 앨범에 참여해주시기도 한 분인데 그분 덕분에 조금은 듣는 귀가 넓어진 것 같아요. 그 과정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가사가 전달되는 힘보다는 그냥 의도된 ‘듣기 좋음’을 바탕으로 사운드적인 걸 많이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목소리가 너무 가공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해요. 단 한 개의 보컬 트랙도 일반적인 믹스가 된 트랙이 없거든요. 어린아이가 찰흙으로 뭔가 만들어가듯이 막 조립해서 말도 안 되는 걸 가지고 좋지 않냐고 물어보면, 믹스, 마스터를 담당해준 ACACY라는 친구가 그 타협점을 잘 잡아줘서 가능했던 일이에요. 아무래도 가사적으로 전하고 싶은 주제가 없다 보니 곡의 기승전결을 사운드에 의지하게 된 것이 컸거든요. 예를 들면 ‘앞 쪽의 어떤 딜레이가 걸려서 어떤 이펙트가 나왔으면 그것이 점점 심화되면서 어떤 식으로 곡이 끝나야 조금 더 감동이 있지 않을까’ 같은 것들에 집중했고. 가사가 했던 역할의 빈자리를 사운드가 많이 채워준 것 같아서 좋습니다.

 

Q. 목소리도 결국 가사를 전달하는 수단보다는, 의도하신 사운드적 기승전결에 맞춰 믹스가 되고 조율이 거군요.

 

그렇죠. 목소리가 주가 아니고 다 같이 조화로운 하나의 감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악기로써 사용이 된 거 같아요.

 

 

Q. 말씀하신 내용에 이어 가사 중심의 비중이 1집보다도 줄어들었다는 사실도 눈에 띄어요.

 

제가 하루에 평균적으로 음악을 50곡을 듣는다고 한다면 48곡은 랩이 없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나왔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게 단순히 취향에 기인하기보다는 제가 래퍼로서의 커리어를 이어감에 있어서 심리적으로 조금 불편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서리 크루 활동같이 힙합의 범주 안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간다고 했을 때, 물론 그 문화의 멋을 부정하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저는 저라는 사람이 그것에 잘 융화되지 못한다고 느꼈거든요. 뛰어들어서 감내한다는 느낌이 굉장히 컸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좀 기피하게 됐던 것 같아요. 어떤 노래를 만들 때도 옛날에는 그냥 제가 랩을 잘하고 랩이 좋았기 때문에 뒤에 이어질 커리어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점점 나이가 차면서 음악적으로 어떤 것을 이룰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지금의 심리 상태로는 힙합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간다면 제가 너무 불행해질 것 같았어요. 자존감을 펼친다거나 공격적인, 힙합 안에서 용인되는 멋에 있어서 제가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서리 앨범에 벌스로 참여했던 것도 저에게는 도전이었어요. 그래서 창작이라기보다는 기술적으로 무언가에 맞추어나간다는 이미지가 훨씬 컸고. 물론 아직도 제가 더 잘하는 것은 랩이지만 개인 작품 안에서는 조금 더 맘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랩의 비중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Q. 혹시 힙합을 처음 시작하셨을 당시에도 마음에 불편함 같은 것들이 있으셨을까요?

 

아니요, 전혀 없었죠. 그때는 랩을 굉장히 좋아하는 소년이었고 (웃음). 이건 저만의 피해 의식이고 못난 부분이지만, 제 주위에 있는 분들이 열심히 자기 작업물을 펼치는 모습을 봤을 때 무력감을 느낄 때가 조금 많았어요. 제가 말할 수 있는 저만의 멋과 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와는 다르게 씬 안에서 통용되는 멋과 어떠한 스타성 같은 것들과는 스스로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느꼈거든요. 그 부분에서 ‘내가 달라져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어느 순간 그냥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생각이 커졌던 것 같네요.

 

Q. 앞에서 살짝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개인작품과 비교해서 대외적인 활동들은 결이 많이 다르잖아요. 부분은 의도적으로 병행을 하고 계신 건지 아니면 외부적인 요구에 의해서, 타의에 의해서 이어져 것인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조금 자신감 넘치는 답변을 하자면, 랩은 사실 언제든 어느 정도는 잘하기 때문에 그냥 해달라는 부탁이 있을 때마다 알겠다고 하고 해도 어느 정도 괜찮은 작업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다만 그 부분에 있어서 제가 힘을 더 쏟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놓고 있지도 않은 이유는 여태껏 커리어를 쌓아오면서 래퍼로서의 모습을 기대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제가 잘할 수 있는 무기 중에 하나라고도 생각해서예요. 물론 서리가 거의 유일하긴 하지만,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듯이 어떤 기술의 영역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커리어에 있어서 눈에 띄는 발전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너무 무의미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게, 우선은 꽤 즐거워요. 서리 크루 활동이. 물론 대외적으로 어떻게 비칠지는 모르겠지만 힙합의 최전선에 있는 그런 느낌도 있고 냉정히 말해서 거기에 제가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힙합 파이 안에서 리스너분들께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언젠가는 제가 힙합의 멋에 조금 더 매력을 느끼고 그런 라이프 스타일에 녹아들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늘어나는 거라고도 생각해서 놓지 않고 있어요.

 

 

Q. 혹시 작년 쇼미더머니도 있으니까 한다라는 느낌으로 참가하신 걸까요?

 

우선은 제작진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나갔던 것도 있는데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도전의 의미가 훨씬 컸어요. 그리고 쇼미더머니를 나가기 전에 제 개인적인 상황이 너무 힘들어져서 무언가 시선을 돌릴 곳이 많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Q. 자기 자신의 시선을 돌릴 곳이 필요하셨다는 말씀인가요?

 

네,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언가에 열중할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했어요. 방송 자체에는 거의 안 나왔지만 돌이켜보면 굉장히 빡센 랩들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도전이 잘 되지 않았던 이유는 제가 쌓아왔던 것들에 의한 개연성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방송에서 예쁘게 포장될 수 있는 스타성을 갖고 가기에는 저에게 준비된 것들이 많이 없었고, 물론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제가 힙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억지로 랩을 하면서 무대를 준비했었기 때문에 오히려 떨어졌을 때 납득이 많이 됐어요. 자이언티, 슬롬 팀의 무대를 보고 너무 감명받아서 팀 선택을 부탁드리러 갔는데 그때 좀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제 모습이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어떻게 보면 제가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말도 안 되는 어떤 것을 설득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찌 보면 잘 되지 않은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Q. 결과만 놓고 보았을 아쉬움이나 후회 같은 감정은 없으셨을까요?

 

많이 아쉬웠죠. 그래서 한동안은 쇼미더머니에 관련된 것들을 잘 찾아보지 않고 길거리에 관련된 노래가 나와도 이 악물고 모른 척했어요. 그 당시 조금 불편했던 일도 있었는데, 서리 친구들이 소코도모 씨의 ‘BE !’라는 노래를 리믹스했었어요. 그때 저한테도 참여 제안이 들어왔었는데 저는 그 팀에 지원했다 떨어졌거든요. 그래서 그 당시 저는 ‘내가 왜 해’라는 태도였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내가 이걸 왜 직면하지 않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기도 했고 별로 제 마음가짐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해서 노래를 막 들어봤는데, ‘회전목마’가 너무 좋더라구요. (웃음) ‘아 이거 좋네’ 하면서 많이 들었습니다. (웃음)

 

Q. 떨어진 것을 기회로 해서 깨닫게 지점들도 많았던 셈이네요.

 

네, 오히려 그런 경험에 의해서 확신이 생겼던 것 같아요.

 

 

Q. 말씀하신 것처럼 트랙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계시잖아요. 가지 방향성을 마치 부캐처럼 서로 다른 정체성으로 임하고 계신 거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우선은 굳이 나눠보자면, 다른 정체성이 맞아요. 지금까지 오하이오래빗이라는 이름으로 낸 앨범이나 작품들이 조금 더 저에 가깝다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구요. 서리 크루라던가 빡센 랩을 뱉을 때처럼 저의 유약함을 강하게 어필해야 할 때, 그러니까 센 척 해야 할 때는 굉장히 날카로워져요. 평소에 누가 저를 칭찬할 때도 못 견뎌 하는 성격인 만큼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표현할 방도가 없기도 하고 용납이 안 되기도 해서 그 시도의 일환으로 자연스럽게 좀 저 자신을 향해서 날카로워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두 방향성은 다른 캐릭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Q. 말씀하신 것처럼 소위 말하는빡센 좋아해 주시는 팬분들도 계시고, 반대로 개인 작업의 결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팬덤 사이의 괴리감에 대해서 고민은 없으실까요?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죠. (웃음) 사실 이번 앨범을 내면서 ‘이름을 바꿔서 내도 모르겠는데?’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실제로 이름을 바꿀까 하는 생각도 몇 번 했었고. 저도 인지하고 있었던 거죠. 그동안 제 노래를 즐겨들어 주셨던 분이라면 꽤나 예상치 못한 음악들일 테니까요. 투 트랙 활동 중 하나를 다른 자아로 만들어서 가져갈까 하는 고민도 했었는데 주변에서 많이 말리더라구요. 사실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 느끼고 있는 것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제가 이기적인 태도를 취해왔던 것 같아요. ‘내가 만드는 노래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내가 지는 건데 그냥 나 좋은 거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물론 앞으로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힙합적인 모습을 좋아해 주시던 분들과 이번에 나온 음악의 괴리가 점점 줄어들수록, 둘 다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가져온다면 저도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것 같고 음악적으로도 많은 성취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Q. 괴리감이 좁혀진다는 측면에서 봤을 , 앞으로 오하이오래빗이 추구하게 음악적 방향성은 어떻게 이어지게 될까요?

 

사실 이 질문을 받고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다른 내용은 쉽게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음악적인 방향성이나 목표 같은 것은 제가 이걸 하고 있는 이유와도 굉장히 밀접한 내용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음악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음악이라는 것이 조금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타인의 인생에 영향을 주기가 쉬운 것 같더라구요. 어떠한 영향력이 힘이 될 수 있는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람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어떤 감흥을 주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막연할 수도 있지만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치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그리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자신감의 결여로 인해서 표현하지 못하는 이야기들도 할 수 있게 되고 두 가지 방향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듣는 분들께 앞서 말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게 음악적으로도 스스로가 만족스러울 것 같고 제 삶에 있어서도 굉장한 축복일 거라고 생각해요.

 

Q. 그 모든 것들이 융합됐을 때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가 많이 됩니다. 혹시 EP 발매 이후의 구체적인 계획도 있으실까요?

 

사실 인터뷰 전에는 힙합이나 랩에 대해서 조금 더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것과 더불어서 또 들었던 생각은, 이번에 제가 들려드린 음악들이 너무 가공된 맛이었는데 개인적으로 감흥이 오래 갔던 감동은 가공되지 않은 노래들에서 얻었던 경우가 많았더라구요. 그런데 그걸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건 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사운드적으로도 그렇지만 이야기하는 내용도 조금 더 거침없을 필요가 있지 않겠냐는 생각도 들어서 우선은 힙합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사실 잘 모르겠네요. (웃음)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요, 말씀드렸던 ACACY라는 친구가 없었으면 이번 앨범이 못 나왔을 거예요. 사실 앨범을 같이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사운드적으로 신경을 많이 써줘서 마지막으로 감사 인사 한마디를 남기고 싶네요.

 


Interview | 월로비

소음발광

 

“힘있게 외치며 나아가다, 소음발광”

 

최근 몇 년 사이 영국이나 아일랜드에서는 신인 밴드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포스트 펑크가 음악씬을 다시 뜨겁게 달구고 있다. 소음발광의 새 앨범 [기쁨, 꽃]을 들었을 때 처음 느낀 것은 바로 지금 뜨거운 포스트 펑크의 피가 멀리 바다를 건너 한국의 인디씬에서도 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조선 펑크는 물론 옆 나라 일본의 펑크사까지 흡수한 소음발광은 이번 앨범을 통해 그들만의 독자적인 색깔을 보여준다. 또한 진지하게 음악사를 바라보고 성찰해야 좋은 음악이 탄생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앨범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음악의 체계적인 역사, 동시대성을 빼도 이 앨범은 생생한 에너지와 솔직한 노랫말로 매력이 넘친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듯한 노이즈 기타,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치닫는 드럼 비트, 차가운 톤으로 노랫말을 내뱉고 때로는 힘차게 샤우트하는 보컬… 낯선 밴드명인데도 재생하자마자 들리는 그 심상치 않은 에너지는 청자에게 마지막까지 달려가 보라고 하는 듯하다.

 

우울감이나 절망감이 드러나는 가사에서도 이번 인터뷰에서 보컬 강동수가 말하는 바와 같이 다같이 외쳐보면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것이야말로 펑크라는 음악이 갖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펑크를 사랑하고 진지하게 대하며 배워온 그들이라 완성시킬 수 있었던 앨범 [기쁨, 꽃].  그 앨범의 작업 과정이나 음악성, 그리고 이번 앨범을 완성시키는 데에 빼놓을 수 없는 친구들이자 서로 의지하는 부산 밴드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Q. 새 앨범 [기쁨, ]  들었습니다. 가사도 음악성도 이제 자기들만의 스타일이나 세계관을 확립한 같다고 느꼈어요. 앨범을 달이 됐는데 지금의 소감을 듣고 싶어요. 만족감이나 자신감 같은 감정도 있나요?

 

강동수 / ‘이 음반이 우리의 명반이다’ 이렇게까지는 말을 못하겠지만 저희 멤버들도 전부 자신감이 붙어 있는 앨범인 것 같아요. 전작까지는 거의 제가 독자적으로 드럼킥 하나 리프 하나 요구하는 식으로 했었는데 모든 멤버들이 다 같이 참여해서 만든 음반이 이번에 처음이거든요. 다 같이 만들어서 너무 기분이 좋고 그렇게 하면서 재밌는 작업물이 나온 거 같아요.

 

Q. 데뷔 EP []부터 디스코그래피를 들어보면 변화의 과정이 굉장히 재미있더라고요. EP [] 때는 산뜻한 기타록을 하셨는데 이제는 보컬은 샤우트도 많이 하고 기타는 노이즈가 강하고 전체적으로 보다 공격적인 음악을 하고 있죠. 이런 변화의 계기가 있었나요?

 

강동수 / 처음에 소음발광을 했을 때는 쟁글 팝을 하고 싶었는데 펑크 음악을 어렸을 때부터 듣다 보니까 계기라기보다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펑크 음악이 된 것 같아요. 밴드를 하면서 음악을 듣는 폭도 넓어지고 제가 영향을 쉽게 받는 스타일이라서 음악 스타일도 살짝살짝 변했던 것 같아요.

 

 

Q. 최근에 생긴 변화 하나로 1집을 새로운 기타리스트로 김기태 씨가 합류했네요. 기태 씨의 합류는 밴드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강동수 / 음악을 조금 젊게 만들게 된 것 같아요. 평균 연령대도 낮춰줬어요. 음악적으로는 좀 더 충격적이고 파괴적인 뉘앙스가 소음발광에서 생긴 것 같아요. 이 친구도 팝을 굉장히 좋아하고 추구하는 친구지만 그런 (충격적이고 파괴적인)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친구라고 생각하거든요. 소음발광에 기태가 합류하면서 그런 것들이 투영된 것 같아요.

 

Q. [기쁨, ] 로파이하게 만들어진 전작 [도화선]과는 달리 보다 팝하고 세련된 같아요. 이번 앨범은 어떤 테마나 비전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강동수 / 1집 [도화선]까지는 하고 싶은 대로 해왔어요. EP [풋]은 코-프로듀서 (co producer) 느낌으로 머쉬룸 레코딩스튜디오의 천학주 씨가 함께 해줬는데 저희가 만들었다기 보다는 그분이 만들어 주신 느낌에 영향을 받았고요. 그래서 1집은 ‘우리가 만들고 싶은 대로 해보자, 그래야 원 없이 해보는 느낌이 들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 당시 제가 Pavement에 꽂혀 있어서 로파이한 걸 해보고 싶어서 그냥 합주실에서 녹음했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저희가 성장하려면 조금 더 나은 퀄리티로 해보는 기회도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로파이가 안 좋다는 게 아니라 좀 더 다른 다양한 방식으로 레코딩을 해보고 많은 걸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더 세련되게 표현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이번 앨범 같은 경우는 펑크라고 해도 초기 펑크보다 포스트 펑크 사운드의 영향이 크게 느껴져요. 저도 듣자마자 70년대 후반부터 활동한 밴드 ‘The Fall’이나 동시대 밴드 중에는 아일랜드의 ‘Fontaines D.C.’ 같은 밴드가 떠올랐거든요. 블로그에 있는 앨범 작업기에도 이런 밴드를 언급하셨는데 포스트 펑크 사운드는 어떤 매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강동수 / 포스트 펑크라고 하는 밴드의 음악을 들어보면 하나의 장르로 보기가 어려울 정도 다양한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많잖아요. 저희는 각자가 전부 하고 싶어 하는 음악이나 좋아하는 성향이 달라요. 우리가 펑크를 표방하지만 포스트 펑크라고 하면 우리의 그런 성향을 자유롭고 아름답게 표출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기영 / 저는 포스트 펑크에 대해서 동수가 추천해줘서 듣게 되었는데 펑크와 포스트 펑크의 차이에 관한 역사적인 부분을 자세히는 몰라요. 근데 초기의 펑크는 노동자들이 쉬운 코드로 자신들의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런 것들을 차용해서 좀 더 예술적이고 다양한 사운드를 낼 수 있는 게 포스트 펑크라고 했을 때 되게 흥미로웠어요. 펑크의 시류 자체도 흥미로웠어요. 노동자들의 솔직함과 그것을 이어받아서 예술인들이 표현했다는 것도.

 

 

Q. 최근에는 ‘Fontaines D.C.’, ‘Shame’, ‘IDLES’, ‘Dry Cleaning’ 같은 밴드들을 비롯해 영국, 아일랜드를 중심으로 포스트 펑크가 다시 유행되고 있네요. 이런 동시대 밴드들에게는 자극을 받나요?

 

강동수 / 느끼셨던 것처럼 사운드도 ‘Fontaines D.C’.나 ‘Shame’을 레퍼런스로 했었어요. 사실 저는 언젠가 펑크 붐이 다시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저는 (포스트 펑크가 다시 유행하고 있는 상황에) 가슴이 뜨거워지더라고요. 저희가 작업하는 데에 있어서 그런 동시대 밴드들이 많은 자극을 줬어요. 그래서 저희가 작업기에 쓴 것처럼 동시대의 가장 멋있는 밴드들을 우리가 따라 하지는 않지만 ‘펑크를 한다고 한다면 같이 어깨를 견줄 수 있는 밴드가 되어야 되지 않겠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Q. 지금 코로나 때문에 영국이나 아일랜드에 가는 자체가 어렵지만아까 언급한 밴드들과 같이 공연하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같은 생각도 하시죠?

 

김기영 / 네. 원래 스타밴드가 되려면 처음에는 대단한 밴드의 오프닝 밴드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관객들이 ‘이 밴드를 보러 왔는데 이 밴드도 좋네’ 라고 느껴주면 좋잖아요. 그런 꿈을 저희도 꾸죠.

 

 

Q. 이번 앨범에 영향을 앨범을 알려주신 인스타그램 글을 흥미롭게 읽었어요. 중에 ‘The Beach Boys’ [Pet Sounds] 대해가장 훌륭한 음반’, 얼터너티브 밴드인 ‘Sonic Youth’ [Sister]어딘가 팝적인 요소가 있다라고 하신 읽고 좋아하는 음악의 기준 같은 생각할 것을 아주 중요시하시는 같다고 느꼈어요. 소음발광이 생각하는 팝의 정의는 무엇이고 팝의 어떤 부분에 끌리나요?

 

강동수 / 대중적이든 비대중적이든 들었을 때 뭔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을 팝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Sonic Youth의 변칙적인 요소나 노이즈 사이에서도 아름다운 요소들이 있는 것 같고 저는 특히 [Sister]라는 앨범을 듣고 아름다운 음악이 팝이 아닌가라는 정의를 개인적으로 내리게 된 것 같아요. 근데 아티스트들은 그걸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대중적인 음악을 써야겠어’ 해서 팝을 만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Q. 그런팝의 아름다움 추구하는 성향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걸까요?

 

강동수 / 사실 록 음악을 처음 접했던 중고등학교 때는 거칠고 시끄러운 게 최고고 뭔가 조금이라도 ‘팝적이다, 말랑하다, 아름답다’ 하면 그건 음악이 아니라고 했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근데 이거는 부산에서 함께 활동하는 ‘검은잎들’의 형, 누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이 사람들이 말하고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멋있는 거예요. 그분들과 친해지기 전에도 팝에 대해 눈이 트이기 시작했지만 그분들이 그걸 열어주는 물꼬가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아름다운 것에 대해서 사실 광적으로 집착하게 된 것이 있어요.

 

 

Q. 이번 앨범은세이수미 기타리스트 김병규 씨에게 전곡 프로듀싱을 맡겼네요. 어떤 경위로 같이 작업하게 되었는지, 협업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김기태 / 애초에 너무 좋아하는 밴드였는데 ‘세이수미’의 수미님이 소음발광의 1집을 좋게 들었다는 말씀을 하셔서 접점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런 말들이 너무 기뻤고 작업하면서도 부산에서 먼저 음악을 했던 선배, 형들로서 저희 방향성을 많이 잡아주셨던 것 같고 작업 이외에 인간적으로도 위로나 응원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워낙 펑크나 팝 같은 것에서 지금 한국에서 되게 높은 지위에 있는 밴드이다 보니까 음악적으로도 많은 코멘트를 해주셨고 저희 곡들이 좋게 만들어질 수 있게 도움을 주신 것 같아요.

 

김기영 / 저희가 말을 안 들을 수도 있잖아요. 좀 트러블 생길 경우도 있고. 근데 ‘세이수미’라는, 저희가 믿고 있는 분들의 기타리스트이기도 하고 리스펙트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도 말이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것 같아요. 저희가 무작위하게 꽉 채웠던 것들을 덜어내주시고 우리가 원했던 세련되면서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여러 요소들에 대해 ‘이렇게 해보면 좋겠다, 생각해 봐라’ 같은 식으로 조언을 해주신 것 같아요.

 

 

김보경 / 기타 같은 경우는 이펙팅도 많이 하고 이것저것 전자 장비를 사용해서 할 수 있는 게 많잖아요. 그런데 드럼은 거의 아날로그 방식에 집중하다 보니 톤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신경을 써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냥 ‘내가 좋아하는 톤은 무거운 톤, 어떤 스네어에서 나오는 어떤 톤이 마음에 든다’ 이 정도였는데 병규 씨랑 같이 작업을 하면서 세팅이나 뮤트나 톤이나 엄청 세밀하게 신경을 쓰고 잡아주셔서 그런 것이 많이 좋았어요.

 

강동수 / 밴드를 처음에 시작했을 때 느낌 같았었어요. 저희가 1집을 내고 이제 2집을 준비함에도 불구하고 학생인 것 같았었어요. 팝적인 걸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을지 지시를 하거나 가르쳐준다기 보다는 함께 고민을 해주는 어떤 좋은 선배, 선생님, 이런 느낌이었어요. 저희도 ‘무조건 시끄럽고, 멜로디만 이렇게 하면 팝인 거지’ 이런 느낌을 사실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걸 깨게 해준 게 이번 작업에서 가장 큰 성과이자 배움이었던 것 같아요.

 

Q. 가사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는 조금 추상적인 느낌이 들었어요. 주제를 잡고 가사를 쓰려고 하셨는지, 가사 쓰는 법에 바뀐 부분이 있는지 궁금해요.

 

강동수 / 1집 같은 경우는 일기를 기반으로 가사를 썼어요. 근데 2집은 그냥 코드 진행이나 편곡이 어느 정도 되었을 때 길면 30분, 짧으면 5분 안에 가사들이 다 쓰여졌어요. 1집은 내면에 있는 것보다 머리에서 내가 알고 있는 나의 감정을 적었다면 2집은 그냥 지금 당장의 상황 같은 거나 눈에 보이는 어떤 키워드들을 나열해서 적었어요. 그래서 그게 조금 다르게 느껴지고 스토리도 조금 모호하게 들릴 수 있는 것 같아요. 주제는 딱히 정한 건 아니었는데 제 이야기를 가사에 쓰다 보니까 제가 기본적으로 조금 우울한 사람이라 2집은 그런 것들이 폭력적으로 표출이 되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누군가에게 트리거(trigger)가 될 수 있는 정도의 우울이고 그게 그 당시 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주제가 된 것 같아요.

 

 

Q. ‘기쁨 같은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보수동쿨러’, ‘해서웨이멤버들과 같이 부르는 부분 때문인지그래도 내일도 살아가자같은 힘이나 희망이 느껴져요

 

강동수 / 그 노래는 처음에 가이드 상태였을 때는 제목이 ‘자살’이었어요. 근데 보경이가 ‘노래는 너무 좋은데 가사나 제목이 나에게 너무나 트리거(trigger)다. 이 노래를 쓰고 싶지 않아’라고 해서 안 쓰려고 했었는데, 기태는 작업하면서 ‘행님, 이 노래 너무 좋은데 왜 안 써요?’라고 한 거예요. 그래서 가사를 바꾸기로 했고 보경이의 트리거가 되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가장 솔직한 걸 적자고 해서 써봤어요. 이 가사는 유일하게 일기를 기반으로 쓴 가사예요. 사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닌데 우리는 충분히 우울할 수도 있고 기쁠 수도 있고 좌절할 수도 있고 우리의 감정에 충실해서 살 수 있을 텐데 모든 매체에서는 기쁨만 강요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다 같이 외치는 “이렇다 뭘 해본 적도 없구요  / 살아보려 애쓴 적도 없어”라는 부분은 ‘내일을 살아가자’라는 느낌을 주려고 쓴 건 아니지만 다 같이 체념하고 내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고 그렇게 하다 보면 해방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지금 제 감정은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서 같이 불렀고 이렇게 노래로 만들게 되었어요.

 

김기영 / 전 드러머도 저의 와이프도 같이 불렀어요.

 

Q. 굉장히 넓은 가족 같은 존재들이랑 작업한 거네요. ‘기쁨이라는 말이 앨범 제목에도 들어가 있는 만큼 역시 앨범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노래가 되었죠?

 

강동수 / 가장 중요한 노래입니다.

 

Q. 이번 앨범은 프로덕션도 김병규 씨랑 하셨고 부산 밴드들과의 연대감 같은 것도 개인적으로 느꼈는데 평소에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주변 밴드들은 어떤 존재일까요?

 

강동수 / 예를 들어 ‘세이수미’, ‘검은잎들’, ‘해서웨이’, ‘보수동쿨러’, ‘더 바스타즈’ 그렇게 다섯 밴드들하고 저희가 교류를 하고 있고  ‘검은잎들’과 ‘더 바스타즈’랑은 ‘도적단’이라는 크루도 만들었거든요. 어떤 존재라기보다는, 저희한테는 부산에서 음악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존재들이고, 언급한 밴드들이 중심이 되면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우리가 또 다른 문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

 

 

Q.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서울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부산에서 활동하는 것은 밴드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김기영 / ‘세이수미’ 같은 경우에는 바다가 좋아서 부산에 남는다는 이야기도 하거든요. 근데 저희는 지역에 애정이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니에요. 서울에 가서 라이브를 볼 수도 있지만 충분히 여기서도 라이브를 가깝게 볼 수 있다는 것도 있었어요. 자랑은 아니지만 특히 2016, 17년 부산에 한창 아티스트가 많았을 때는 어떻게 보면 서울보다 큰 씬이 있었고 부산이 가장 선두에서 음악을 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 시기에 제가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물론 지금은 많이 죽었지만 ‘우리도 부산에서 충분히 할 수 있겠다, 전혀 못할 구석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근데 지금 제일 큰 부분은 살고 있던 데에 대한 안정감인 것 같아요. 사실 음악을 한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나 생각할 요소들이 너무 많은데 서울에 가서 더 많은 스트레스를 확장시킬 이유는 없는 것 같고. 부산에서도 활동을 할 수 있고 서울의 팀들을 부를 수도 있는 충분한 관계가 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계속 부산에서 할 수 있다,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요.

 

Q. 2016, 17 부산의 음악씬이 뜨거웠을 때는 지금이랑 어떻게 달랐나요?

 

김기영 / 그때는 밴드도 많았고 기반도 많았어요. 펍이 아니라 라이브 클럽이 많이 있었고.

 

강동수 / 지금은 라이브클럽은 두 군데 밖에 없을 정도로 많이 사라졌는데 두 군데라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2016,17년에는 라이브 클럽 기반도 잘 돼 있었지만 새로 나오는 밴드도 선배 밴드들도 많아서 그런 것들이 저희한테 많은 영향을 줬었죠. 아쉬운 것은 (그때 나온 밴드 중) 남은 팀이 ‘보수동쿨러’랑 저희 밖에 없다는 것이에요.

 

 

Q. 마지막으로 소음발광의 음악적인 정체성을 상징하는 펑크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한국에서 펑크라고 하면 90년대 후반 한국 인디 1세대의 ‘Crying Nut’, ‘No Brain’ 같은 밴드가 역시 너무나 존재인 같아요

 

강동수 / 크라잉넛이 나오는 [Our Nation]라는 음반을 들으면서 밴드를 하겠다고 생각했고, 펑크의 멋짐을 알게 된 것은 노브레인의 [대조선펑크 노브레인: 청년폭도맹진가]라는 앨범이었어서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는 사람들이에요. 크라잉넛, 노브레인은 20년 넘게 활동하는 펑크 밴드이고 존경할 수 있는 대상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거라 저희에게 좀 의지가 되죠.

 

김기영 / 스쿨 밴드들 모두 커버했죠. 델리스파이스, 노브레인, 크라잉넛, 그리고 자우림…

 

Q. 밴드의 블로그를 읽어보면 ‘Blue Hearts’, ‘Number Girl’ 같은 일본 펑크, 포스트 펑크 밴드의 언급도 있네요. 이런 밴드들은 어떻게 찾으셨나요?

 

강동수 / ‘Number Girl’ 같은 경우는 한국에서는 “일본의 Pixies, Sonic Youth”란 그런 수식어으로 불리더라고요. 저도 ‘Pixies’랑 ‘Sonic Youth’를 좋아하니까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죠.  ‘Blue Hearts’ 같은 경우는 ‘검은잎들’ 영향이에요. ‘검은잎들’이 완전 ‘Blue Hearts’ 매니아이거든요. 오타쿠… ‘긴난보이즈 (Ging Nang Boyz)’는 어느 날 유튜브 통해서 듣게 되었는데 눈물 흘리면서 소리치는 그 라이브가 팝 자체였어요. 너무 아름다웠어요. ‘카케누케데 세이슌 (駆け抜けて性春)’은  항상 들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게 있어요.

 

Q. 활동 관련해서 목표가 있으면 듣고 싶어요.

 

강동수  / 현시대에 가장 멋있는 밴드, 가장 아름다운 밴드가 되고 싶어요. 예전에는 부산이라고 하면 소음발광을 떠올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왕에 음악을 한다면 큰 꿈을 가지고 있는 게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절반은 도달하겠지’라고 생각해서요.

 

 


 

Interview | 야마모토 다이치

 

구원찬

 

켜켜이 쌓일 구원찬의 발자국

 

구원찬이 돌아왔다. 몇 차례의 피쳐링을 거쳐 약 2년 만에 선보이는 솔로곡 ‘표현’으로 성공적인 컴백을 알린 그는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새로운 모습이다.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는 따뜻한 감성과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섬세한 표현이 선사하는 기분 좋은 낯섦은, 그렇게 구원찬이라는 아티스트의 새로운 막을 향한 중요한 이정표인 셈이다. 지나온 모든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하나의 과정으로 설명되고 싶다는 그의 바람처럼, 하나하나 모이고 모여 분명 빛나는 여정으로 이어질 구원찬의 뚝뚝한 발자국을 따라가 보았다.

 


 

Q. 정말 오랜만에 솔로곡으로 돌아오셨어요. 물론 전역 차례의 피쳐링에 참여하시기도 했지만 2 만에 솔로곡으로 컴백하신 소감은 남다를 같아요.

 

아무래도 많이 떨렸고요. 사실 6개월 전에 이미 완성한 노래라서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앨범을 만들었는데 개인적으로 워낙 해보고 싶었던 장르이기도 해서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Q. 신곡과 더불어서 지난 11월에 공연으로 팬분들께 인사드리기도 했어요. 2 만에 무대에 오르신 소감도 부탁드립니다.

 

제 노래 중에 ‘Long Time No’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 가사(“변한 건 아닌데 뭔가 낯설기는 해 / 여전하네 네 느낌 더 뚜렷해졌네”)처럼 원래 제가 가지고 있던 모습들에서 조금 더 진해진 색깔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물론 가사를 떠나서 그냥 공연을 2년 만에 하니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멘트를 잘 못 하거든요. 뭔가 우물쭈물하고 어리숙하고. 그런 부분들은  ‘Long Time No’ 가사처럼 여전히 그대로인데 노래적인 부분에서는 사람들이 더 좋아졌다거나 탄탄해졌다는 피드백들 많이 해주셔서 마치 ‘가수가 노래 가사 따라간다’라는 말처럼 가사 내용대로 공연이 전개된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어요. 아쉬움이나 이런 것 없이 그 자체가 좋았습니다.

 

 

Q. 본격적으로 이번 싱글 [표현]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해요. 곡에 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표현’이라는 노래 자체는 사랑 노래에요. 그런데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그 감정이 너무 벅차서 ‘사랑한다’라는 말 안에 다 안 담기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미를 담은 곡이에요. 뭔가 벅찬 감정을 최대한 음악적으로 담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고요. 가사가 너무 짧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게 사실 단어로 표현이 안 돼서 음악으로 표현을 한 거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상황이었어요

 

Q. 이야기를 들어보니 뮤직비디오에서 그런 감정이 많이 묻어나는 같아요. 이번 영상도 같은 맥락에서 작업하셨던 건가요?

 

뮤직비디오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영상 감독님과도 얘기를 많이 했는데 최대한 음악적인 무드와 영상적인 무드가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고 일차적으로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여러 가지 멋이 있는데 어떤 음악에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뮤비가 나와서 그게 하나의 멋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조금 더 1차원적으로 바라봤던 것 같아요. 정말 이 영상이 음악이랑 잘 어울리는 무드였으면 좋겠다는 게 1차 목표였어요.

 

 

Q. 전방위적으로 많은 고민이 들어간 곡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군복무 중에도 틈틈이 작업을 이어오셨다고 들었는데 혹시표현 경우도 미리 구상하신 곡이었나요?

 

‘표현’ 같은 경우는, 노래 자체는 2018년도에 만들었고 이후에 프로듀서 ‘haventseenyou’와 디벨롭하는 과정을 전역하자마자 진행했어요. 물론 복무 중에도 작업을 계속했어요. 이제는 군대 안에서도 휴대폰 반입이 돼서 그 안에 ‘개러지 밴드’ 같은 음악 프로그램들을 깔아서 녹음도 많이 했죠. 전역하자마자 음원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protonebula’나 ‘PJNOTREBLE’ 피쳐링 같은 경우는 다 군대 안에서 진행했던 작업이고요, 복무 중에 나온 ‘Fisherman’ 피쳐링 같은 경우는 입대 전이 이미 만들었던 곡이에요. 그리고 전역하자마자 ‘Hoody (후디)’님께 연락이 와서 바로 앨범 피쳐링 작업을 하기도 했어요.

 

Q. 복무 중에도 꾸준히 작업을 멈추지 않으셨던 만큼 창작에 대한 갈증이 심하셨던 같네요.

 

갈증보다는 불안함이 컸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시기적인 문제로 군악대가 아닌 일반병으로 입대했다 보니 음악과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일이 휴대폰으로 할 수 있는 것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일반병으로서 작업을 이어가고 싶었고 여러 루트를 찾다 보니 휴대폰으로 녹음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Q. 전역하시고 나서도 밀도 있게 작업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혹시 민간인으로서의 자유를 즐기셨다거나 하는 여유는 없었나요?

 

사실 그게 지금도 제가 아쉬워하는 부분 중에 하나에요. 제 일상이 작업 따로, 일상이나 쉼 따로가 아니라 생활 자체가 작업이거든요. 예를 들어 작곡을 할 때도 “어 이거 좋은데” 하면서 떠오른 것들을 바로바로 옮기고 녹음을 하는 행위들이 일상 곳곳에 녹아 있어서 굳이 구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근데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들의 구분이 조금 필요하다는 생각을 최근에서야 하게 되었어요.

 

Q. 최근에 작업을 이어오시면서요?

 

네, 이번 앨범 만들기까지. 물론 일상과 작업이 분리되면 정말 베스트겠지만 그게 안 된다는 가정하에 한 달 정도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쉬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전역하고 나서 바로 작업에 들어간 이유는 그게 일상이기도 했거니와 괜히 빨리 돌아가고 싶은, 빨리 일을 하고 싶은 욕구도 있었던 것 같고 되게 복합적인 마음들이 작용한 것 아닌가 싶네요.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번아웃 상태가 왔었는데도 인지하지 못 하고 그 상태에서도 작업을 진행하려고 했어요. 근데 결국에 힘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 힘이 없으면 일상생활도 안되고. 그러한 지경까지 갔었던 것 같아요. 그런 상황들을 ‘@konartg’ 라고 팬들이랑 소통하는 제 또 다른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는데 거기에 솔직한 상황들을 적기도 하고 그랬어요.

 

 

Q. 일과 삶의 경계에 대해서 고민이 많으셨던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군대를 다녀왔으니까, 군대는 확실히 일과하고 쉬는 시간이 구분이 돼 있잖아요. 그래서 전역을 하고 나서의 생활도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고 삽시간에 원래대로 돌아오더라고요. 아무래도 군대에서는 계속 그 경계를 구분하면서 살아왔는데 그런 것들이 잘 안 되다 보니 번아웃이 왔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음악이 잘 나왔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조금씩 넘어가 볼게요. 최근지큐 코리아 기고하신 글에서 입대 전에 내셨던 작업들에 대한 아쉬움을 언급하시기도 했어요. 여기서의 아쉬움은 어떤 종류의 것이었나요?

 

예전에 ‘Tyler The Creator’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거기서 타일러가 예전에 ‘내가 왜 이런 음악을 했었는지 모르겠다, 만약에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물론 그 정도까지 제 지난 음악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마음이 들었던 같아요. 그냥 다시 들어봤을 때 ‘아 지금 들으니까 좋네’ 하는 것도 있었고, ‘편곡을 왜 이렇게 했지?’ ‘가사를 왜 이렇게 썼지?’ 하는 부분의 아쉬움들이 상대적으로 눈에 많이 띄었어요.

 

Q. 디테일적인 부분들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네. 과거의 음악 전체를 다 부정했다기보다는, ‘이때 이랬다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후회스럽다’라고 표현된 것 같아요. 사실은 후회까지는 아니지만 괜한 아쉬움들이 좀 내포되어 있는 거죠.

 

Q. 그 아쉬움들이 이번 작품에 반영되었다고 생각해도 괜찮을까요?

 

네, 그래서 이번 노래에서는 최대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중에 포인트가, 생동감을 많이 넣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전에는 조금 딱딱한 느낌이 있었다면 이번 음악에는 최대한 생기를 불어넣고 싶은, 라이브감을 불어넣고 싶은 생각이 강했어요. 이번 곡은 기존 작업 방식과 다르게 전부 리얼 세션으로 녹음을 받아서 작업했는데요, 전부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죠.

 

 

 

Q. 사실 복무라는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삶에서 통째로 들어내어 지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 이런 음악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작업관이라던가 하는 전반적인 부분에서도 혹시 달라지신 부분이 있을까요?

 

사실 어떻게 보면 크게 변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음악을 만드는 방식에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제가 곡을 다 만들어 놓고 편곡이 되는 작업의 방향이 하나 있고요. 아니면 비트를 받아서 그 위에 제가 멜로디를 써서 만드는 방향의 두 가지가 있는데 그 두 가지도 계속 유효해요. 물론 그 방식 안에서 좀 더 유연하려고 하는 편이죠. 근데 어떠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면, 예전에는 군대라는 조금 확실한 챕터 이전의 음악 생활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아 내가 하고 싶은 거 하자, 어차피 갈 건데’ 이런 생각이었던 것과 다르게 이제는 아무래도 더 이상 갈 데가 없으니까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하는 편이에요.

 

Q. 입대 전까지 꾸준히 밀어오신행성 대한 스토리텔링도 이제는 조금 내려놓고 개인의 이야기를 많이 해보겠다고 언급하신 내용도 인상적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그 행성 이야기도 제 삶, 제 인생을 행성과 우주선, 그리고 그곳을 유영하는 여행자로 비유한 거거든요. 어떻게 보면 제 삶이라는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데 행성 이야기는 어쨌든 그것을 은유적인 이야기로 만드는 거죠. 그래서 뭔가 첫 번째 행성, 심지어는 375번째, 1200 몇 번째 같은 디테일까지 표현하려고 했었는데 그렇게 은유적으로 돌려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이제 조금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것을 선호하게 된 것 같아요. 그게 제 성격의 변화일 수도 있는데요, 물론 그런 디테일에서 오는 느낌들도 너무 좋다고도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것보다도 내 인생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가감 없이 얘기하는 게 요즘의 저의 성격과 더 맞닿아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어쨌든 같은 이야기이지만 직설적으로 풀어내는 거죠.

 

Q. 그러한 성격의 변화에 혹시 군대 영향도 있을까요?

 

네, 그 영향도 있는 거 같아요. 제가 간부한테 들었던 되게 좋은 말 중의 하나가 ‘그런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누가 “뭐뭐 했어?”라고 물어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라고 했을 때 그분이 “‘그런 것 같습니다’라는 건 없다. 그냥 그렇다고 말을 해라”라고 하셨거든요. 어떻게 보면 제가 제 의견에 조금 자신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이후로는 ‘그렇다’, ‘아니다’로 얘기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그 행성 이야기가 그렇게 와닿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실 전역 후에 생활 패턴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처럼 요즘 성격도 조금씩 부딪히는 것 같긴 해요. 그래서 또 어떠한 계기가 있다면 다시 행성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죠. 지금은 그러진 않아요.

 

 

Q. ‘변화 대해서 굉장히 유동적인 생각을 갖고 계신 같아요.

 

뭐랄까 어쨌든 세상은 계속 변하는데 나는 그대로라면 저는 퇴보한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물론 좋은 쪽으로의 ‘그대로’일 수도 있지만요. 그리고 아무래도 제가 프로듀서가 아닌 송라이터고 작사를 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변화에 좀 더 유연한 포지션인 것 같아요. 그래서 예를 들어, 한 시대에 어떤 사운드가 대세라고 한다면 그 사운드를 제 노래에 적용을 시킬 수 있다는 점이 다른 셀프 프로듀싱 아티스트들에 비해 훨씬 유연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래서 그 변화적인 부분에 대해서 크게 거부감은 없어요. 그렇다고 제 뿌리가 변하는 건 아니니까. 그것에 대해서 제가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이유가 오히려 음악의 중심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Q. 음악의 중심이라고 표현하신 부분이 마치무슨 옷을 입든 이건 구원찬 음악이야라고 외치시는 것처럼 느껴져요.

 

저는 작곡을 한다는 게 고유한 인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트렌드나 변화 같은 것들은 ‘옷’이라고 생각을 해요. 어떤 옷이 그 시대에 조금 안 어울리면 다른 옷을 입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그 사람 자체는 변하지 않으니까. 그런 맥락으로 변화를 바라보는 것 같아요.

 

 

Q. 레이블에 들어오면서 음악이 달라졌다는 피드백을 언급하신 적도 있어요. 실제로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들어오기 , 후로 음악이 달라졌다고 생각을 하시나요?

 

레이블에 들어오고 나서 나온 앨범들은 되게 많은 의도가 들어간 앨범들이었어요. 그 전의 앨범들은 진짜 원초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여기서 원초적이라는 건, ‘누가 들어줬으면 좋겠다’ 혹은 ‘나 이걸로 성공했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그냥 그때 당시에 너무 좋다고 생각했던 음악들을 담았다는 뜻이고요. 아무래도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가 전부터 되게 들어가고 싶어 했던 레이블이었고, 더불어서 개인 아티스트가 어떤 회사 소속의 아티스트가 됐다는 건 되게 많은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변화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스스로의 기대에 일조할 수 있는 음악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뭔가 멋있는 음악이 아니더라도 조금 더 대중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어필이 되면서 나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그런 노래가 나와야 된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슬퍼하지 마’ 같은 노래가 나온 건데 그 곡들도 어떻게 보면 그 ‘기대’라는 의도에 의한 노래이기 때문에 스스로 110% 만족하는 노래는 아니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거는 사실 아직도 딜레마에요. 정말 웃긴 게, 그 의도한 노래들이 제 음악 커리어에서 제일 잘됐어요. 생각해보면, ‘아 나는 어떤 음악을 해야 될까’에 대한 고민도 군대 갔다 오면 끝일 줄 알았는데 그냥 계속되더라고요. 레이블에 들어오고 나서 나온 노래들이 굉장히 많이 밝아졌다는 피드백도 있었고 단순해졌다거나 조금 더 이지리스닝에 가까워졌다는 피드백도 받았어요. 이전의 음악들은 좀 차분하지만 나름의 멋이 있었고요. 그래서 이번 신곡 ‘표현’에서 그 두 부류를 모두 만족시키고 싶었어요. 물론 문제는 또 문제를 낳고 고민은 또 고민을 낳기 때문에 이 부분은 제가 아직도 풀어나가야 할 숙제인 것 같아요.

 

Q. 그기대라는 부분이 단순히 단순히 듣기 편한 음악인 것만은 아니겠죠?

 

그렇죠.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말 그대로 사람들의 귀에 걸리는걸 캐치하다고 표현을 한다면 캐치하고 조금 더 단순하면서도 그냥 사람들이 계속해서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노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노래를 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아까 말했듯이 고민은 고민을 낳기 때문에 또 다른 고민과 이유로 장석훈 형이랑 냈던 ‘너에게’가 나왔었는데요. 그런데 이전에 확 왔던 많은 반응들이 ‘너에게’에서는 없으니까 또 거기에서 고민이 생겼어요. 지금 정리해보면 엄청나게 방황을 많이 했던 그런 시기였던 것 같네요. 그래서 군대에 있을 때 한 가지 기로를 정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어요. 어떨 때는 빨간색, 어떨 때는 파란색이라면 ‘이 사람은 어떤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냐’ 라는 질문을 받아도 저조차 제대로 설명을 못 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건 좀 아닌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죠.

 

 

Q. 이기로라는 , 원찬님 음악의 향후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이신가요?

 

그렇죠. 그러니까 제가 만든 음악은 그대로인 거예요. 예를 들어 그런 거죠. 만약에 제가 한복만 입는다고 했을 때 그 한복이 디벨롭된 옷을 쭉 입고 나온다면 ‘얘는 한국과 관련이 된 사람이야’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한복 입었다가 기모노 입었다가 치파오 입었다가 한다면 ‘이 사람은 뭐다’라고 한 마디로는 정의할 수 없잖아요. 근데 또 팝 시장을 보면 다른 얘기이긴 해요. 어떤 옷을 입든 어울리는 사람들도 있는 거죠.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스트릿 패션만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정장만 어울리는 사람이 있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제 음악은 어떠냐에 대한 대답은 아직 고민해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Q. 그런 고민들이 계속되신다는 것은 아직도 레이블에 들어오기 전의 음악을 좋아해 주시는 팬분들도 많기 때문이겠죠?

 

네, 특히 피셔맨이랑 같이 만든 앨범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진짜 많아요. 어떻게 보면 그게 정답이라고도 할 수도 있겠어요. 근데 어쨌든 저도 한 명의 창작자로서 그냥 개인으로서의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 작품들은 어떻게 보면 하프 앤 하프로 만든 창작물이잖아요. 근데 그것들 말고 그냥 ‘구원찬’ 하나로 고유한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하고 있어요.

 

 

Q. 위에서 시장을 예로 들어주셨는데, 그럼 원찬님은 원찬님 스스로 종류의 옷이 어울리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하시는 편이신가요?

 

저도 그런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아무래도 피아노로 작곡을 하다 보니까 이게 어울리는 옷들이 또 노래마다 각각 다른 거예요. 제 개인적으로는 한 옷이 어울리는 아티스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Q. 그렇게 문장으로 설명될 있는 아티스트가 있길 바라시는 거군요?

 

네. 한 장르로 묶이는 아티스트였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힙합이면 힙합, 알앤비면 알앤비, 발라드면 발라드처럼 하나의 장르로 묶이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기도 하고 웰메이드 앨범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이 ‘Bruno Major(브루노 메이저)’의 To Let A Good Thing Die 앨범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한 앨범을 냈을 때 장르가 바뀌어도 한 마디로 설명될 수 있는 그런 앨범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이런 욕구가 앞으로 음악 방향성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 좌지우지하지 않을까 싶네요. 따지고 보면 피셔맨이랑 만든 앨범도 그랬었고요. 그래서 그 앨범 같은 경우는 특정 트랙을 좋아하는 것보다는 앨범 전체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죠.

 

Q. 앞에서변화 대해 유동적으로 생각하신다는 내용도 그렇고 이야기를 들어보니변화라는 키워드 앞에서 단순히 어떤 결과에 집중하기보다도 과거의 것까지 전부 끌어와서 하나로 아우르려는 모습으로 보여요.

 

네, 그것들이 전부 다 과정처럼 보였으면 좋겠어요. 이런 것도 했었고 저런 것도 했었지만 결국에 가장 최신의 것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전부 담겨 있는 거죠. 어떻게 보면 완성형 아티스트가 아니라 계속 진행이 되고 발전하면서 모든 걸 융합하고 결국 고유한 것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로 비쳤으면 좋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지난 것들을 더더욱 부정하지 않는 것 같아요.

 

Q. 결국 말씀하신 것처럼 과정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거군요. 대중성과 작품성이라는 가지 방향에서 고려하셔야 것들이 굉장히 많을 같아요.

 

아무래도 그 고민은 예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한테는 필수적인 지점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것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에 아예 그냥 돈이 되는 것만 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제 환경에는 그 두 가지 경우들의 사람들이 전부 주변에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사실 각자의 삶 자체가 다르고 추구하는 게 다른 거죠. 그리고 저는 그 두 가지를 전부 가지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그것을 어떻게 하면 영리하게 캐치 할 수 있을까 하는 게 요즘 고민하는 것 중에 하나에요.

그리고 저는 제가 가진 무기가 어떻게 보면 이쪽이랑도 어울리고 저쪽이랑도 어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비트씬의 음악이라고 한다면 그런 음악에 속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김동률, 이소라 음악처럼 발라드 음악을 하고 있다고 해도 속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이게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죠. 사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그 중간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확실한 건 지금보다 더 큰 사람이 되려면 어쨌든 그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아요.

 

 

Q. 그게 아까 말씀하신기로 관련된 내용이겠네요.

 

어떻게 보면 ‘표현’이라는 노래도 저는 굉장히 만족하지만 ‘아 이거 상업적인 노래야’ 라던지 ‘이 곡 진짜 멋있는 노래야’라는 감상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노래인 것 같거든요. 물론 말씀드렸다시피 너무 마음에 드는 트랙이긴 하죠. 사실 지금까지 낸 노래 중에서 제일 좋아해요. 그렇지만 만족감과는 별개로 더 큰 사람이 되려면 아예 한 가지 기로를 정해야 할 것 같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는 거죠. 진짜 상업예술의 끝을 보고 대중들이 좋아하는 쪽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독고다이로 갈 것인가. 근데 그렇다고 대중적인 것만 한다고 예술가가 아니라고 하는 것도 모순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저는 현재 딱 중간에 서 있는 상황인 것 같아요. 결국에는 음악도 업이기 때문에 흥행에 대한 것도 생각을 안 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Q. 일종의 장인정신 같다고도 느껴져요.

 

네, 저는 둘 다 멋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한 길로 가야 뭔가 납득이 되고 그런 게 좀 있는 것 같아요.

 

Q. 결국 과정 전체를 납득시키는 것이 목표이신 거군요.

 

그래서 이제 제가 해야 할 숙제가 그것들을 모두 아우르는 저만의 앨범을 내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지금 저의 디스코그라피에 있어서는 특정 앨범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많아도 제가 걸어온 모든 디스코그라피를 두고 ‘와 진짜 미쳤다’라고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거든요.

 

Q.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이전에 내셨던 모든 작품이 마치 발자국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그렇죠. 나중에 그것들을 전부 아우르는 작품이 하나 나온다면 지금까지의 과정이 전부 설명이 되는 거죠.

 

 

Q. 준비한 질문도 어느덧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앞서 언급하시기도 했던 원찬님의 개인 계정을 많이 참고했는데 솔직한 이야기를 많이 적어 놓으셨더라고요. 평소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비밀이 없는 성격이신가요?

 

저는 혼자 가지고 있는 비밀은 많이 없어요. 최대한 공유를 하려고 하고 그게 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인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어쨌든 그 계정은 팬들을 위한 계정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제 성격상 공식 계정에 그런 생각을 적는 게 개인적으로 좀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계정을 파고 그 안에서 저의 진짜 솔직한 생각을 남기게 됐어요. 그리고 진짜로 저를 응원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 계정을 팔로우한다고 생각을 해서 더 솔직한 마음들이 담겼던 것 같네요.

 

Q. 이전 원찬님 음악을 들었을 때도 그렇고, 예를 들어서 사랑 노래를 한다고 해도 진짜 사랑을 하는 사람이 썼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그런 솔직한 성격이 음악에도 반영된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엄청 돼요. 그게 어떤 포인트냐면, 제가 예전에 음악을 만들고 작사를 할 때 픽션을 되게 많이 썼단 말이에요. 물론 그 과정에서 실제로 발매까지 이어진 곡은 거의 없지만 작사를 하면서 이상한 허무함이나 후회 같은 것들을 느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힙합이라고 가정했을 때, 금목걸이 있고 비싼 차 끌고 다닌다는 가사들이 사실은 다 픽션인데 그런 것에 대해 덧없는 감정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최대한 내 솔직한 감정을 적는 게 훨씬 설득력 있고 와닿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솔직한 내용을 많이 담으려고 일기장처럼 노력을 많이 하기도 했어요. 음악에 자전적인 얘기를 많이 담았던 이유도 다 그런 것들 때문이고요.

 

근데 이게 또 너무 개인적인 내용이다 보니까 표현적인 부분들에서 최대한 중의적으로 적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상황에 그 노래가 적용될 수 있도록.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게 아니라, 이 노래를 들으면서 각자의 상황에도 적용되게끔 가사를 쓰려고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직설적으로 쓰는 거죠. 특히 저는 사랑 노래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게 오히려 더 안되더라고요. 사랑하고 좋아하는데 그 감정 자체를 그대로 담는 걸 선호해서 제 사랑 노래는 좀 많이 직설적인 것 같아요.

 

Q. 그래서 이번 곡을 듣고 가사 이렇게 짧냐는 피드백이 나온 수도 있겠어요.

 

그렇죠. 그런데 이번 노래는 사실 개인적으로 가사가 짧다고는 생각 안 하긴 했어요. (웃음)

 

 

Q. 모두가 공감할 있는 지점을 마련하는 정말 중요하면서도 신경 부분이 많아 보이네요.

 

그렇죠. 제 음악을 들으시는 분들 중에 가사 때문에 제 음악을 듣는 분들도 꽤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가사를 쓸 때도, 예를 들어서 ‘그는’, ‘그가’, 그를’ 같이 글자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최대한 중의적으로 쓰려고 하다 보니까 많은 부분에서 신경을 쓰게 되는 거죠.

 

Q. 마지막 질문을 드리면서 인사드릴게요. 앞선 내용에서 번에 설명될 있는 아티스트, 그리고 문장으로 설명될 있는 앨범 관해 이야기해주셨어요. 그것들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그려보고 계신 모습이 있을까요?

 

일단은 장르가 그 설명에 대한 키라고 생각해요. 조만간 앨범을 하나 작업할 텐데 그 앨범을 한 프로듀서랑만 작업할 계획이에요. 그게 한 마디로 설명을 할 수 있는 키를 위한 한 가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제가 조금 더 자유롭게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도 생각해요. 현재는 여러 사람 중에서 제안할 프로듀서를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Interview | 월로비

I Mean Us (w/ ENG)

 

그러니까, I Mean Us는 우리들입니다.
I mean, I Mean Us is us.

 


 

안타깝게도, ‘나’가 정말로 ‘우리’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I Mean Us”, ‘나’가 ‘우리’를 의미한다고, 혹은 “I’M U”, ‘나’는 ‘너’라고 발화하면, 분명하게 나뉜 줄 알았던 의미 값들이 서로에게 충돌하고 각자와 겹쳐지며 인상적인 장면들이 나타날 수 있다. 대만의 인디 팝 밴드 I Mean Us의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의 현장이 만들어진다. 록 밴드로서 주로 사용하는 악기들부터 온갖 전자음을 만들어내는 신스와 가상악기들, 오랜 역사의 관현악기와 전통 악기 등에 얽힌 장르적 특징을 결합하며, I Mean Us는 웅장하고 극적이게 펼쳐지는 사운드스케이프로 꿈과 상상, 혹은 기억과 같은 신비한 세계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두 번째 정규 음반인 [Into Innerverse]에서 밴드는 감정이 흔치 않아진 미래를 배경으로, 폭넓고 다채로운 내면세계로 들어가는 탐험자가 되었다. 멤버들부터 악기 소리와 구간들의 전개, 장르 문법까지 제각기 다른 요소들이 한데 모여 ‘우리’이면서도 ‘너와 나’로 풍부히 나타날 때, 몽환적인 동시에 직설적이고자 하는 사운드 속에서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뜻은 정말로 가까워질지 모른다. 한국의 청자들에게는 아직은 낯설 I Mean Us의 세계에 대해 메일과 번역을 거쳐 질문을 보내, ‘이너버스’의 여행자들을 위한 안내서를 그 답변으로 받아보았다.

 


 

Q.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미 [OST]가 Beeline Records를 통해 한국에서도 정식 발매되기도 했지만, 이번에 [Into Innerverse]로 처음 만나는 청자들을 위해 I Mean Us를 간략하게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우리는 대만의 인디팝 밴드 I Mean Us입니다. Sigur Rós, M83 그리고 Agnes Obel에게 큰 영향을 받았고, 드림팝을 기반으로 포스트록, 사이키델릭, 슈게이징과 클래식 음악의 요소들을 결합한 음악을 만들고 있습니다.

 

I Mean Us의 음악에서는 현대의 악기들과 관현악기와 전자음, 신비로운 사운드들이 조화를 이룹니다. 이러한 풍부한 요소들로, 우리의 음악은 사람들의 사고를 제한하지 않고, 청자들을 가능성으로 가득 찬 차원으로 인도합니다. Into Innerverse는 모든 종류의 상상, 감정, 기억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프리즘이 될 것입니다.

 

Q. I Mean Us, 가끔씩 줄여서 ‘I’m U’이나 IMU로도 표현되는 팀명이 참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이름 속에 ‘나’와 ‘우리’와 ‘너’가 다 함께 있다는 게 마음에 들더라고요. 혹시 팀명에 의미가 있다면 무엇인지, 어떻게 아이디어를 떠올렸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밴드의 이름은 우리가 밴드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일상의 대화 속에서 나왔던 말이에요. 누군가가 “I mean us”라고 말했고 그 이름이 우리를 바로 뭉치게 했습니다. 음악도 우리에게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아요. 공연이나 파티 장면들을 보면, 사람들은 음악 속에서 하나가 되어 기쁨과 슬픔을 나누잖아요.

 

 

Q. 이러한 팀명에서는 바이오그래피에서 “각기 다른 모든 악기, 아이디어와 생각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uniting every single piece of different instruments, ideas and thoughts as one)”이라고 하신 것도 생각났는데, 이 문장이 마치 밴드의 형태로 음악을 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지더라고요. 하나의 ‘밴드’로서 I Mean Us가 지향하는 음악이나 그 이미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리가 특별히 집중하고 있는 장르는 없어요. 모든 멤버들은 각각 다른 음악적인 배경과 취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클래식부터 포스트록, 전자음악, 한국 힙합까지 모든 장르를 포함해요.

 

우리는 모든 악기, 아이디어 그리고 생각들이 각 멤버들의 강점과 취향이 드러나는 응축된 문장으로 결합되는 걸 목표로 합니다. 밴드로서 우리가 함께일 때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Q. I Mean Us의 음악에서 또한 ‘각기 다른 부분이 통합된 전체’와 비슷한 인상이 들었어요. 신시사이저와 전기기타 모두가 다른 소리를 내지만 균형을 잡으면서, 선잠을 잘 때 꾸는 꿈같은 분위기의 사운드를 만드는 인상이 느껴졌습니다. 작업을 하실 때에 이렇게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 있어 가장 집중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 처음에는 보컬라인에 집중해요. 그리고 나서 다른 악기들이나 이펙트를 매치해요. 각 악기가 가지고 있는 음색 외에도, 소리의 잔향이나 울림에 집중해서 더 몽환적인 사운드를 만들고자 합니다.

 

Q. [Into Innerverse]에서는 그러한 ‘균형’이 느슨하게 머물고 있던 드림 팝의 기반을 아예 떠나서, 악기들을 더 폭넓게 사용하며 가볼 수 있는 많은 영역들을 탐색하는 느낌입니다. 이번 음반을 “전적으로 새로운 여정(whole new journey)”이라 부르셨던 것이 함께 생각났는데요, 특히나 이번 음반에서는 어떤 측면이 ‘전적으로 새롭게’ 될 수 있도록 하셨나요?

 

“여정”이라는 단어는 앨범의 제목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청자들이 앨범을 듣는 동안 각자의 내면의 세계를 탐험하는 마음의 여정을 떠나길 바라요. 물론 더 로맨틱하고 젊음을 담고 있는 첫 번째 앨범 OST와 비교했을 때 Into Innerverse는 더 성숙하고, 어둡고, 공격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음악적인 스타일과 주제적인 측면 모두에 있어서요. 지난 3년 동안 너무나 많은 쓰라리고 달콤한 변화들이 있었어요.

 

 

Q. 이 ‘전적으로 새롭다’는 느낌은 이번에 새로 찍으신 프로필 사진에서도 좀 느껴졌습니다. 저마다의 색깔이 담긴 흰옷을 입고 눈가에 페이스 페인팅을 한 것이 묘하게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Aladdin Sane] 속 글램한 이미지들이 떠올랐거든요. 어쩌다가 이런 프로필 사진을 찍게 되셨는지, 그것이 [Into Innerverse]와 관련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앨범의 비주얼 아트의 배경과 주제는 감정들이 드물고 귀중해진 초현실적인 미래를 배경으로 합니다. 수정 구슬은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고 각각의 목적지가 다른 정서적인 감각을 나타내죠.

 

콘셉트 회의를 기반으로, 우리의 스타일리스트 Dorene은 각 멤버들의 착장에서 먼 곳으로부터 방랑하고 있는 “수정 구슬 요정”의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했습니다. 흰색이 다른 색들을 중화시켜주고, 무(無)의 개념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녀는 흰색을 착장의 시각적 포인트로 사용했어요. 또 보존 처리된 꽃잎으로 만든 얼굴 장식은 사랑과 애정의 지속을 나타내고, 소중한 감정들을 지난한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지키고 영원한 기억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기억으로 간직합니다.

 

Q. 음반 제목에 ‘Innerverse’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이 ‘이너버스(Innerverse)’가 정확히 어떤 “세계”인지가 궁금해지더라고요. 밴드 자체가 탐험해 보고 싶은 어떠한 공간인지, 정말 단어 뜻 그대로 누군가의 “내적 우주” 같은 곳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지 알려주세요.

 

우연히 앨범의 메인 아이디어를 지난 질문에서 이야기했네요.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소중한 감정들을 살펴보고 지켜내길 바랍니다. 각 노래들에 특정 감정을 부과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며 느꼈던 감정들을 간직하길 바라요.

 

 

Q. 이제 본격적으로 [Into Innerverse] 속 음악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우선 트랙들에 새로 들어온 소리가 두드러지는 편이었어요. 대표적으로는 “E.D.E.N”에서의 색소폰과 함께 몽골 지역의 전통 창법인 흐미(khoomei)의 소리가 있을 거 같네요. 어쩌다가 대중음악 트랙에서 흔히 사용하지 않는 이런 창법의 목소리를 넣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E.D.E.N’의 작곡가 Chun은 트라이벌한 사운드에 주목하고 있어요. 그는 전세계 곳곳에 있는 오래된 노래들이 어머니 지구에 대한 사랑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E.D.E.N’의 데모를 만들고 있는 중에 마침 그의 친구가 내몽골에서 흐미와 마두금을 배우고 귀국했고 친구를 초대해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습니다. Chun이 전통음악에 대해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 트랙의 작곡가로서 곡의 사이키델릭한 분위기와 흐미가 완벽하게 호응할 것이라는 걸 알았죠. 흐미 파트의 가사는 “욕정을 삼가라”라는 의미로, 문수보살(Manjushri)의 진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Q. “E.D.E.N” 얘기를 좀 더 하자면 ‘네오 사이키델리아’나 ‘드림 팝’의 분위기를 강조하던 전작과는 거리가 꽤 먼 것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댄서블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신스음을 중심으로 반복적인 그루브를 강조한 건 “E.D.E.N”의 앞뒤에 놓인 “普通人類”이나 “I Dot Car”에서도 그랬고요. 어떻게 해서 이런 트랙들에서 그루브나 리듬감을 특히 강조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조금 더해서, 춤추게 하는 음악들을 꿈꾸게 하는 음악들보다 좋아하시는지요?

 

둘 다 좋습니다! 공중에서 부유하는 것과 땅 위에서 춤추는 것 둘 다요.

 

‘I Dot Car’는 우리가 함부로 보냈던 어느 멋진 밤을 위한 노래에요. 이 곡의 믹싱 엔지니어인 Caesar Edmunds는 이 노래가 고등학교 무도회를 떠올리게 한다고 했어요, 하하.

 

‘普通人類 Humans’를 만들 때 우리가 집중했던 단 한 가지는 “더 스타일리시하면서도 거침없는 사운드를 만들자”였습니다. 절대 “댄서블”하게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Q. 한편, 한 트랙 안에서도 분위기나 박자, 장르적인 특징이 지속적으로 뒤바뀔 때가 많다고 느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E.D.E.N” 얘기를 하자면 곡 내의 강약의 조절이 굉장히 극적인 것도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 무언가 지난 음반의 제목이 ‘OST’였던 것도 떠올랐습니다. 이를테면 “Run Ran Run”의 도입부나 브릿지 구간들이 트랙에 ‘삽입’된 듯 들어간 것이 은근히 블록버스터 영화의 시퀀스처럼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이외에도 “普通人類”의 도입부나 장엄한 “Muséum”의 시계 소리 효과음이 비슷한 감상을 줬는데, 곡 작업을 할 때 어떤 극적인 이미지나 진행을 염두에 두셨는지 궁금합니다.

 

‘Muséum’은 평화와 슬픔으로 가득 찬 혼란 속의 꿈과 같습니다. 도입부의 퍼커션은 시간에 대한 감각을 의미하고 반복되고 패닝하는 리버스 기타 사운드와 함께 우리 머릿속의 작은 카오스를 포착합니다.

 

‘普通人類 Humans’에서는 무감각의 차원에서 비생물적인 존재가 된 당신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 곡에는 이교도적이고 종교적인 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사운드를 넣었어요.

 

‘Run Ran Run’의 이미지는 바쁜 날을 보내고 한 후 침대에 누워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당신과 닮아 있습니다.

 

 

Q. [Into Innerverse]에는 현악기를 사용하는 트랙들도 있었습니다. “Run Ran Run”에서는 컨트리나 웨스턴 음악과 같은 스트링 솔로가 들어오고, “9”에서는 왈츠가 울려 퍼지는 무도회장처럼 나타난 현악 연주가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전환시키네요. 이런 식의 사운드가 록에 현악기를 접목시키는 일반적인 방법들과 조금 다르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스트링 세션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려 하셨나요?

 

두 노래에서는 실제 브라스, 스트링 세션과 녹음했어요. ‘9’는 감정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곡이고, 첫 번째 파트와 두 번째 파트의 갭이 상당히 큰 곡이에요. 프로듀서는 브라스의 톤과 텐션이 곡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연결 고리의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또한 두 번째 파트의 (왈츠풍의) 우아한 분위기는 오케스트라로 인해 두드러지죠.

 

‘Run Ran Run’의 작곡가의 의도대로 원 데모에서 스트링과 바이올린을 추가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넓고 광대한 느낌을 좋아하는데, 도입부가 마치 옛 중국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기도 해요. 프로듀서는 이 노래에서 블루그래스의 정신이 느껴진다고 했는데, 와이드한 코러스와 스트링을 사용해서 클라이맥스 부분을 만들고자 했어요. 아웃트로를 들을 때 모두가 “와우!”라고 느낄만한 요소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Q. 굉장히 인상적인 톤의 건반과 함께 현악기를 탄탄히 적용한 “24 Years Old of You”는 음반에서 특히나 돋보이는 곡입니다. 싱글로서는 이번 음반과 지난 음반 사이에 놓인 연결점 같은 위치에 있기도 하고,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가사(“Something begin to change and embrace / But you might not know that my feelings will never change”)도 있어서, [Into Innerverse]의 정수가 담겨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곡에서 가장 중점으로 두었던 요소가 있다면, 어떤 걸 담아보려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24 Years Old of You’는 I Mean Us에게 굉장히 중요한 곡이에요. 대만의 멋진 시상식에서 상을 받게 해주었고, 밴드로서 우리의 발전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작곡가인 Mandark는 이곡의 특별한 요소로, 오보에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녀는 보통 머릿속에 있는 멜로디와 노래의 이상적인 사운드로부터 작업을 시작해요. 그래서 오보에와 스트링 사운드가 그 노래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 거죠. 프로듀서인 LUB의 제안으로 오보에와 스트링 사운드를 실제 악기의 질감과 가장 비슷하게 구현했지만 더 독특한 느낌을 주는 신스와 가상악기를 사용했습니다. 우리 모두 그게 마음에 들었어요.

 

 

Q. 이번엔 노랫말에 대해서 조금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음반 내내 ‘너’와 ‘나’가 함께 혼란스러운 감정들의 공간 속에서 헤맨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첫 곡인 “Muséum”에서 제시되는 ‘Suddenly awake from the end of the dreams’이나 ‘What if we turned around / There’s nothing there?‘에서 불안하게 요동치는 심정이 음반이 진행될수록 격해진다고 느껴졌는데요, [Into Innerverse]를 관통하는 감정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각각의 노래를 독립적인 개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사와 감정의 측면에서, 듣는 사람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들을 남겨두고 싶었어요.

 

굳이 이야기하자면, 어떤 감정이든 좋고 나쁜 건 없어요. 그저 지켜보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거죠. 어느 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그게 완전히 나쁜 것만은 아닐 거예요.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동반하니까요. 모든 감정을 평가하거나 정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흘러가게 놔두는 거죠.

 

 

Q. 조금 뜬금없게 느껴질 수도 있긴 한데, 음반의 8번째 곡이자 마지막 곡의 제목이 하필 “9”더라고요. 이런 불일치가 일종의 농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한편, ‘Fear landing / Inside your heart and you break’ 같은 가사를 보면 “Muséum”에서 시작된 혼란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채 끝난다는 인상도 있습니다. “9”의 진행 또한 에너지가 가장 높이 오른 부분이 갑작스레 뚝 끊기면서 음반을 끝내는 게 겹쳐지기도 했고요.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음반을 마무리하거나 “9”를 끝내보려 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트랙의 순서에 대해서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 모두 이 앨범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지막 트랙을 끝내고 ‘Muséum’으로 돌아와 반복해서 듣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몰입하고, 반복하는 거죠.

 

 

Q. 2018년에는 <Focus Asia 3>으로, 2019년에는 <잔다리 페스타>로 내한을 하셨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올여름에는 <On-Tact ‘ALIVE’ 축제>로 ‘온라인 내한’을 하시기도 했고요. 그중에서도 18/19년도의 내한 공연 때에 이러저러한 에피소드들이 있었다는데, 그게 어떤 것이었는지, 아니면 내한 공연 당시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한국에 머무르며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요. 그 친구들과 우리의 음악을 사랑해 주는 팬들은 우리가 가장 아끼는 아름다운 것들이에요. 솔직히 한국의 음악 시장은 외국의 인디밴드가 진입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한국의 팬들이 나날이 늘어간다는 사실에 굉장히 감사하고 있어요. 매번 한국에 갈 때마다 긍정적인 피드백도 많이 받았고요. 게다가 우리는 삼겹살의 노예에요. 사랑하는 친구들과 삼겹살/오겹살을 먹었던 순간들이 그리워요.

 

 

Q. 반대로 대만에서 열렸던 공연에 보수동쿨러(Bosudong Cooler)를 초청하기도 하셨죠. 종종 한국과 대만 밴드들 사이에서 이렇게 공연을 통해 오고 가며 만나는 일들이 많은데, 한국 공연에 함께 가고 싶은 다른 대만 밴드나, 아니면 대만 공연을 함께 하고 싶은 다른 한국 밴드가 있을까요?

 

우리의 친구인 淺堤 Shallow Levée와 함께 하고 싶네요. 예전에 한국에서 공연을 한 적도 있죠. 두 팀이 함께 한국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면 엄청 재미있을 것 같네요. 倒車入庫 Reversing into Garage, 甜約翰 Sweet John, Deca Joins와 함께 하는 것도 좋겠네요. 대만에는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리고 싶은 좋은 음악가들이 굉장히 많아요.

 

한국에도 저희가 좋아하는 음악가들이 많아요. 잔나비, 카더가든, 우효, 장기하, 라드 뮤지엄, Mokyo, 나이트오프 등 셀 수 없이 많아요. 물론 우리 친구들인 보수동쿨러, 랜드 오브 피스, 플랫폼 스테레오, 사뮈도 사랑합니다. 지금, 드러머 PP L의 최애는 원슈타인이에요.

 

 

Q.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다시 한번 [Into Innerverse]를 되짚어보는 의미에서, 멤버분들 별로 이번 음반에서 애정이나 개인적인 의미가 많이 담겼다거나, 이것만큼은 한국의 청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곡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드려요!

 

Vitz: ‘Muséum’과 ‘I Dot Car’ 중에 고르기가 아주 어렵네요. 둘 다 제가 처음 썼던 데모로부터 많은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좋아해요. 두 곡 모두 소중한 밴드 멤버들과 프로듀서가 없었다면 아름답게 변하지 못했을 거예요. 우리가 함께일 때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곡들입니다.

 

PP L: 사람들은 변하고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이번 앨범은 저에게는 발전이자 성장의 증거에요. 지난 앨범인 [OST]에서 [Into Innerverse]로 오기까지 저의 연주와 편곡 실력이 더 깊이 있어졌고 풍성해졌습니다. 제 자신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 밴드 멤버들에게 감사해요. 또 저의 개성을 지켜주면서 드럼 사운드를 더 멋지게 만들어준 프로듀서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Chun: ‘Run Ran Run’을 가장 추천하고 싶어요. 당신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가만히 멈춰서 생각하게 만드는 곡입니다. 저녁노을과 잘 어울릴 거예요.

 

Mandark: ‘Unicode’에요. 저에게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Hank: 우리가 만든 사운드와 음악들 이외에 앨범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은 앨범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요. 더 이상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나 로맨틱한 감정에만 집중하지 않고 죽음이나 증오, 후회와 같은 감정들도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우리의 음악을 들으며 더 많이 느끼고 상상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앨범의 모든 곡을 추천하고 싶지만 한 곡을 꼭 골라야 한다면 ‘I Dot Car’를 추천합니다. 젊고, 무모하고 멋진 느낌을 주는 곡입니다. 저는 그러한 정신을 소중하게 여기는데, 우리가 너무 커버린 다면 사라질 감정들이기 때문이죠.

 

 

Interview | 나원영 (대중음악비평가, 웹진 weiv 필진)
번역 및 협조 | Beeline Records

 


 

 

I mean, I Mean Us is us.

 

 

Hello, nice to meet you! [OST] has already been officially released in Korea through Beeline Records, but can you briefly introduce I Mean Us to the listeners who are discovering the band for the first time through “Into Innerverse”?

 

Hi everyone. We are I Mean Us, an indie pop band from Taiwan. Having been greatly influenced by Sigur Rós, M83 and Agnes Obel, our music is based in Dream pop, but also combines styles from genres such as Post Rock, Psychedelic Rock, Shoegaze and Classical music as well.

 

Modern instruments are combined delicately with orchestral and electrical/ethereal sounds in our songs. With those plentiful elements, our music won’t limit one’s thoughts. On the contrary, it can lead the audiences to a dimension full of possibilities. Into Innerverse can be that prism which reflects any kind of imaginations, emotions or memories.

 

I Mean Us, sometimes abbreviated as “I’m U” or IMU, thought the team name was very interesting. I liked the fact that “me,” “we” and “you” are all represented in the one name. Can you tell me what exactly the name means and how you came up with it?

 

Before we started the band, this name had already come up just through general conversation. Someone had said “i mean us”, and we instantly bonded over that name. We thought music meant the same thing to us. In a scene like a gig or party, it’s because of the music that people gather together to share their joy and sorrow.

 

In the album biography you say you are “uniting every single piece of different instruments, ideas and thoughts as one,” and this sentence felt like the story of music being told by a band. What kind of music and image is IMU aiming for as a band?

 

So there’s no specific genre that we try to focus on. All the members of the band have really different music backgrounds and tastes. Everything from classic music, post-rock, electronic music to Korean hip hop.

 

We aim to unite all the different instruments, ideas and thoughts into one cohesive sentence that shows each member’s strengths and tastes. As a band we want to make music that only we can do when we get together.

 

I also had a similar impression that I Mean Us’s music unites instruments, ideas and thoughts as one. Both the synthesizer and the electric guitar make different sounds, but it is balanced well and I felt the impression of a dream-like sound like I was sleeping. What do you focus on the most when making music to create this special atmosphere?

 

Basically we focus on the vocal lines first and then try to match them with other instruments and effects. Besides the timbre of each instrument, we focus on the reverberation and echo effects to make it sound more dreamy.

 

[Into Innerverse] although loosely still tied to Dream Pop feels like you’re exploring instruments more widely and searching out new musical territories to explore. I remembered that you called this album “a whole new journey,”what aspect of it did you make completely new?

 

The word “journey” kind of relates to the album title. We hope that the listeners can go on a journey of the mind to explore their innerverse with us while they listen to the album. Of course, compared to our first album OST which delivers a more romantic and young spirit, Into Innerverse is more mature, dark, and aggressive……? Both in terms of the music style and the topic of the songs. There have been so many bitter and sweet changes during the past three years.

 

This “completely new” feeling was also felt with the new profile picture you took this time. The white clothes with splashes of colour around the eyes reminded me of glam images such as David Bowie’s [Aladdin Sane]. How did this idea come about and how does it relate to the album [Into Innerverse].

 

The time frame/theme for the visual arts of the album is set in a surrealist future where emotions are rare and treasured. The crystal balls act as vehicles for emotional transmission, with each destination representing a different emotional sensation.

 

Based on the concept discussed with us, our stylist, Dorene, attempted to construct an impression of “crystal ball fairies” for the band members’ attire —vagabond fairies who have drifted from afar to many places. She has chosen the color white as the main visual cue for the outfits, because white neutralizes other colors and embodies the concept of nothingness. Also, the ornamental petals on the faces made from preserved fresh flowers attributes to the longevity of love & affection; safeguarding precious emotions from the unforgiving passage of time and forever preserving them in our minds as ever-lasting memories.

 

You used the word “Innerverse” in the title of the album, and I was curious about exactly what an “Innerverse” is. Please let me know what kind of space the band itself wants to explore, is it really someone’s “internal universe” or something else.

 

Coincidentally we mentioned the main idea of the album in the last question. We want to explore and preserve the precious emotions in peoples’ minds. We didn’t assign specific emotion or image to each song, we just hope the listeners could feel something while the music plays, and preserve it.

 

Now, let’s talk about the music on [Into Innerverse]. The first thing that stood out to me is the new sound of the tracks. ‘E.D.E.N’ with the saxophone and the sound of khoomei (a traditional Mongolian throat singing technique) is a good example of this. How did you work this rarely used vocal technique into a pop song?

 

The composer of “E.D.E.N.”, Chun, is really into tribal sounds in music. He thinks ancient chants from all over the world have a deep connection to our love for mother earth. At the time he was making the demo of “E.D.E.N.”, a friend of his has recently returned from Inner Mongolia where he has been learning khoomei and morin khuur, so Chun invited him to collaborate on this song. Even though Chun does not specialize in ethnic music, as the composer of this song, he knew immediately that the sounds of khoomei would fit perfectly with the psychedelic atmosphere of the song. Notably, the lyrics of the khoomei part of the track are from the Manjushri buddha mantra, which means “refrain from the lust”.

 

To talk a little more about “E.D.E.N,” despite it being quite far removed from your previous work that emphasized “neo psychedelia” and “dream pop,” it is very danceable and a lot of fun. The emphasis on repetitive grooves centered on synths was also apparent in “普通人類” and “I Dot Car,” which come lie before and after “E.D.E.N.” on the album. I wonder how you came to emphasize grooves and rhythms in these tracks. Do you like music that makes you dance more than music that makes you dream?

 

We like both! Floating above and dancing on the ground.

 

“I Dot Car” is a song for those wonderful nights that we spent recklessly. Our mixing engineer of this song, Caesar Edmunds, said the song reminded him of high school prom haha.

 

When we were producing “普通人類”, the only thing we thought was to “make it sounds more stylish and ruthless”. We never tried to make it “danceable” at all.

 

On the other hand, even within one individual track, I feel that the atmosphere, beat, and genre characteristics often change continuously. Last mention of “E.D.E.N,” the control of the strong and quiet parts within the song make it very dramatic, and that reminded me that the title of the last album was “OST.” Also, the introduction part of “Run Ran Run” and the bridge section seems to have been “inserted” into the track, and that feels like a sequence in a blockbuster movie. In addition, the introduction of “普通人類” and the sound effects of the majestic “Muséum” gave similar impressions. I wonder what dramatic image or process you had in mind when working on these songs.

 

“Muséum” is like a dream in chaos, filled with peace and sadness. In the beginning, the percussion instruments imply a sense of time, and with those repeating, panning reverse guitar sounds, it captured that tiny chaos inside our brain.

 

In our song “普通人類”, you can imagine yourself as a non-biological being living in a senseless dimension. We also added some heretic and ritual flavors in it.

 

The image from “Run Ran Run” is quite like after you’ve been through a busy day, lying on your bed and starting to get along with yourself.

 

[Into Innerverse] also has tracks that use string instruments. The song “Run Ran Run” contains string solos that are almost like ‘country and western’ music. The song “9” has a string performance that has a waltz-like feel that completely changes the mood of the song. I felt that this kind of sound was a little different from the general methods of incorporating string instruments into rock music, but how did you intend to use the string session in your songs?

 

We recorded real brass and string sessions for both of these two songs. “9” is a song that builds up the emotions little by little, and has a huge gap between the first part and the second part. Our producer thought that the tone and the tension of real brass would work as a link, helping the whole song be more united. Also, the elegant feeling of the second part (waltz-like feel) was accentuate against the orchestra.

 

“Run Ran Run” has arranged strings and violin in the original demo as the composer wanted. We all like the wide and vast feeling, and make fun of it sometimes during rehearsal – in the beginning it feels like riding horses in ancient China. The producer feels the Bluegrass spirit on this song, and tries to make the climax of the song by adding a wide chorus and real strings. We hope everyone can feel the “WOW!” factor while they’re listening to the outro.

 

“24 Years Old of You,” with its very impressive tone keyboard and a solid string instrument part is a stand out track on the album. As a single, I felt like this song links your previous work on the last album with this new album. It also contains the lyrics “Something begin to change and embrace / But you might not know that my feelings will never change” . I think this might be the essence of [Into Innerverse] and thus is a vital part of the album. Was there a particular element you focused on the most in this song, if so, what was it?

 

“24 Years Old of You” is really an important song for I Mean Us! It not only brought us a cool award in Taiwan, but also represents a great improvement for us as a band.

 

As for a particular element of this song, the composer of this song, Mandark insisted on using an “Oboe”. She usually starts her works by having a melody in her brain, and imagining the ideal sounds of the song. So she really insisted on having oboe and the strings in this song. With the suggestions of our producer, LUB, we chose to combine some synth and VST which made the “oboe” and “strings” sounds really close to the texture of real instruments, but also have a more distinctive flavour. All of us really love it.

 

This time, I’ll ask you a question about your lyrics. Personally, throughout the album, I felt that the words “you” and “me” were wandering together in a space of confused emotions. The first song “Muséum” features the lyrics ‘Suddenly awake from the end of the dreams’ and ‘What if we turned around / There’s nothing there?’. The song sets ther scene with an anxious feeling that grows as the listener progresses through the album. What is the emotion that penetrates throughout [Into Innerverse]?

 

We regard each song as an independent individual. As for the lyrics and emotions of songs, we like to leave some space for the listener to interpret it in their own way.

 

If it has to be said, no matter what kind of emotion, there is no good or bad. Just look at it, feel it, then accept it. For instance, if one day we must leave this world, it is not an entirely bad thing. An end must be accompanied by a new beginning. We don’t need to rate or define every feeling, just go with the flow.

 

It may feel a little out of the blue, but the title of the eighth and last song on the album happens to be “9.” While this inconsistency feels like a kind of joke, there is also an impression that the confusion that started with Muséum ends without being properly resolved when looking at lyrics like ‘Fear landing / Inside your heart and you break’. On top of that, the song seems to suddenly end, right at its most intense moment. Why did you decide to end the song and the album in this way?

 

We didn’t think too much about the meaning when we were discussing the track order. But we all agree that the perfect way to listen to this album is on a loop and to go back and restart from Muséum once you have finished. Immerse in it, and repeat.

 

You visited Korea as part of Highjink’s Focus Asia project in 2018 and Zandari Festa in 2019. After the COVID-19 pandemic, you also took part in an online festival called <On-Tact ‘ALIVE’ festival> this summer. Can you tell us about anything you remember from your trips to Korea in 2018/2019. Also, what was the atmosphere like at those concerts?

 

We made many good friends during our stay in Korea. These friends and the people who love our music are the most beautiful things that we want to cherish. To be honest, the Korean music scene seems like it is very hard for a foreign indie band to break into. However, we really appreciate the fact that there are more and more Koreans listening to our music. We received positive feedback every time we were there. Besides, we are slaves of 삼겹살. We miss every moment we had 삼겹살 or 오겹살 with our lovely friends.

 

You also invited Bosudong Cooler to play at one of your shows in Taiwan. There are often times when Korean and Taiwanese bands have performed together. Are there any other Taiwanese bands you would want to bring with you to Korea next time? Or are there any other Korean bands you would like to play with?

 

One of our good friends, 淺堤 Shallow Levée, used to play gigs in Korea too. If we could play shows in Korea with them it would be a lot of fun.  Besides them playing in Korea alongside 倒車入庫 Reversing into Garage, 甜約翰 Sweet John, Deca Joins would be great. There are so many good Taiwanese bands we love and want to introduce to you guys.

 

There are many Korean artists we like. Such as JANNABI, Car the Garden, OOHYO, Kiha Chang, Rad Museum, Mokyo, Night Off… Countless. We also love our friends 보수동쿨러, Land of Peace, Platform Stereo, and Samui (3amui). For now, the top of PP L’s dream list is Wonstein. (Haha)

 

This is the last question. To reflect on [Into Innerverse], could each member of the band tell us what they love most about the album or what it means to them personally. Or, if there is a song you want to recommend to Korean listeners, please let us know which one and why. Thank you so much!

 

Vitz: It’s hard for me to pick my favorite between “Muséum” and “I Dot Car”. I love them both so much because they changed so much from the demos I wrote at first. Neither song would have turned out as beautiful as they did without my dear band members and our producer. It symbolizes how much we can do when we stay together.

 

PP L: People change and improve, so does music. For me, it’s progress and proof of my growth. My playing and arrangement become deeper and richer from [OST] to [Into Innerverse]. I’m grateful that my band members give me space to be myself. I also appreciate our producer kept my personality in the recording and made my drums sound better.

 

Chun: I sincerely recommend “ Run Ran Run”. It’s a song that makes you stop and think about what you lost and got in your life. It also fits with the sunset!

 

Mandark: “Unicode”. It meant a lot to me.

 

Hank: Beside all the sounds and music we made, I think the most precious part in this new album is its core idea. We no longer only focus on “love” or “romantic” emotions between people, but also talking about “death”, “hatred” and even “regrets”. We’d like the audiences to be able to feel and picture more while listening to our music.

 

Actually I recommend all the songs in our new album. However if I really have to pick one, I’d recommend “I Dot Car”. I love the young ,reckless and groovy feeling it represents. I cherish that kind of spirit because it may disappear after you grow up.

 

 

Interview | 羅元煐, Na Won Young
Support | Beeline Records

알레프 (ALEPH)

 

알레프라는 이름의 단편선

 


 

우연히 ‘알레프’라는 이름을 알게된 건 꽤나 인기 있는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채널에서였다. 음악 한 곡을 귀로 다 소화하기도 전에 먼저 호기심이 갔던 건 흡사 단편소설의 제목 같은 제목들이었다. ‘홰홰’, ‘궁전’, ‘맞불’ 같은 단어들이 담긴 [홰홰] 앨범이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홰홰], [파수꾼] EP 2개를 내고도 3월부터 매달 싱글을 하나씩 내고 있는 알레프의 이야기와 그 저변의 기록들이 궁금했다. 누군가는 스쳐지나갈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시절을 대변하는 단편선이 될지도 모르는 알레프라는 사람의 음률은 어떻게 탄생한 걸까.

 


 

시작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궁금한 게 많아요. 어린 시절 이야기가 별로 없어서 궁금했어요.

 

인터뷰 자체를 많이 하지 않아서 드러난 게 많이 없죠. 초등학교 때 중국으로 가족이 다 함께 가서 살게 됐어요. 그러다가 대학을 미국으로 가서 생활을 했고, 군대 때문에 한국에 왔어요. 전역할 때쯤 마음 맞는 친구들이랑 한국에서 밴드를 하다가 학교 때문에 미국으로 돌아가려던 찰나에 소속사랑 계약을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2016년부터 쭉 지금까지 음악을 하면서 한국에 남아있게 됐죠.

 

중국에서 미국으로, 다양한 나라에서 살았던 게 영향을 미쳤겠네요. 어떤 아이였나요?

 

중2병이 오기 전까지는 좀 발랄하고 나서는 스타일이었는데요. 대부분이 그렇듯 중2 때부터인가, 중3 때부터 자아성찰을 하기 시작하잖아요. 그때부터 집에 오면 방 안에 틀어박혀있고, 자연스럽게 내향적인 성격에 가까워지지 않았나 싶어요.

 

그럼 중국에 있었던 시절부터 음악을 시작하게 된 거네요.

 

네,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한 게 고2였는데 그땐 음악을 업으로 할 생각은 전혀 없었죠. 제가 살던 중국 동네가 런던처럼 1존, 2존으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제가 학교 다니며 살던 곳이 제일 끝인 3존이었어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근데 친구들은 1존에 거의 사니까 친구들이랑 어울리려면 버스 타고 1-2시간은 이동해야 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뭐라도 해보자’ 해서 기타를 치기 시작했어요. 글 쓰는 걸 좋아하니까 가사도 같이 쓰게 된 거고요.

 

그러다가 고3이 됐는데, 딱히 특출난 분야가 없는 거예요. 당시 국제 학교 음악선생님이 “내가 다니던 학교를 한번 가볼래?” 권유해 주셨던 게 계기가 됐고, 또 장학금도 준다고 해서 미국에 있는 대학교로 진로를 정하게 된 거였어요. 미국에서 가서 2년 정도 학교를 다니다가 군대 때문에 한국에 돌아왔죠.

 

글 쓰는 걸 좋아했나 보네요.

 

기록하는 걸 좋아했던 거 같아요. 일기는 쓰면서도 누가 볼 것 같다는 불안감이 항상 있잖아요. 중학교 2,3학년 때는 그래서 일부러 영어 필기체로 못 알아보게 쓰려고 하고. 국제 학교를 다녀서 중국어보다는 영어가 편했거든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읽고 쓰는 행위에 대해서 파고 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시집도 읽고, 문학도 읽고요.

 

 

궁금했어요. [홰홰]는 전 트랙이 다 한글로 구성되어 있는데, 8월에 발매했던 ‘Like No Other’ 같은 경우는 한글이 한 글자도 나오지 않죠. 왜 둘로 나뉠까 궁금했어요. 곡마다 들려주고 싶은 청취자가 다른 건가요?

 

데뷔 앨범을 다 영어로 썼었어요. 그런데 한국 음원 시장에서는 영어 가사만 있으면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주변의 권유를 받아서, 개사를 하게 됐었죠. 이전에는 언어를 섞는 걸 싫어했어요. 왜냐하면 한 언어로 들었을 때 통일감이 있는데 섞이게 되면 청취자가 한번 더 번역해서 들어야하니까요. 청취자를 통일해서 영어는 영어대로, 한국어는 한국어대로, 이렇게 하자라고 해서 썼는데 개사를 하라고 하니까 처음엔 좀 거부감이 있었죠.

 

그런데 해보니 어떤 부분은 영어로 불러야 뉘앙스가 살고 어떤 건 한국어로 개사해도 괜찮은 거예요. 그래서 낸 게 2017년에 냈던 EP [1] 앨범이었고요. 그런데 작년에 몸 담았던 회사를 나오고 관념에 빠졌었어요. 한국어가 더 아름답다고요. 소위 국뽕에 찼다고 하는… (웃음). 그렇게 [홰홰] 앨범을 만들었어요. 앨범 전체에 쓰인 영어 문장이 몇 개 안돼죠.

 

 

[홰홰] 이후에 발매했던 ‘Morning Sun’이라는 곡이 담긴 노래는 해외 여행 하며 써뒀던 노래라 가사가 전부 다 영어였거든요. 미리 써놓은 곡들이기도 하고, 영어로 표현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영어로 앨범을 내봤는데요. 여러 시도 이후로는 영어과 한글에 대한 고정관념이 많이 풀린 것 같아요.

 

[도시 단편]도 국뽕에 취해있을 때 만드신 거예요? (웃음)

 

살짝… 있었어요. 그때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던 거죠. 맞아요.

 

앨범에 대한 변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꽤 오랫동안 활동을 이어왔어요.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받았을까요.

 

중간에 음악을 그만두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서 학위를 따야 하나, 마음먹은 적도 당연히 있었지만 제 안의 열망 덕에 그만 두지 않고 온 것 같아요. 제가 작업 속도가 되게 빠른 편인데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컨펌을 받아야 하고, 제작비를 지원 받아야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제가 내고 싶을 때 바로 내기가 어려운 환경이었어요.

그래서 내지 못한 곡이 몇 년간 쌓였는데, 그걸 다 못 내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든 이걸 내야겠다는 생각에 제가 저의 ‘셀프 제작자’가 되어서 음원을 내기 시작한 거죠.

 

 

그렇게 나온 게 [홰홰] 앨범이군요.

 

네, 그렇게 [홰홰]를 낸 건데 앨범을 내고도 여전히 내고 싶은 곡이 많은 거예요. “지금까지 있는 쓴 곡들을 다 소진을 해보자!” 그래서 또다시 내게 된 게 [파수꾼]이었죠. 회사에 있었을 때나, 미니 앨범에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썼던 곡도 몇 가지 섞여있지만 대부분 예전에 쓴 노래들이에요.

 

쌓아뒀던 곡들을 보여주고 싶은 열망이 계속 음악을 이어오게 한 모티베이션이 됐네요.

 

네, 지금 돌아보면 회사의 입장도 이해가 가요. 하지만 회사에서 나오고 순수히 제가 혼자가 됐을 때, 회사에 소속되지 않았을 때 ‘하고 싶은 걸 얼른 확 하자’는 마음이 연료가 되어서 지금까지 혼자서도 음악을 이어온 것 같아요. 일 년 정도 이렇게 셀프 제작자로 활동을 하니까 조금씩 길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이 기간을 더 유지해 볼 수 있겠다 싶어서 다달이 싱글을 내고 있죠.

 

어떤 길이 보이나요.

 

우선 스스로의 작업 스타일을 더 잘 알게 됐어요. 외국에서 왔다 보니까 같이 음악에 대해서 피드백을 주고받거나, 함께 작업할 수 있는 풀(Pool)이 없었는데요. 이제 같이 작업할 수 있는 작업자들도 생겨서 좋아요. 제 주변 사람들이랑 합을 맞춰가면서 2-3년은 더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혼자 음악을 하는 뮤지션에게 그런 ‘풀’, 네트워크 형성은 어려운 일이죠. 알레프는 자연스럽게 형성이 됐나요?

 

몇몇 친구들 덕분인 거 같아요. 알레프 밴드 세션을 도와주던 친구들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다 음대를 나왔으니까 그 친구들 주변에 알음알음 괜찮은 친구들을 소개받았어요. 그러다가 ‘전현명’이라는 친구를 만났는데요. 작업을 하면서 합이 되게 잘 맞아서 쭉 함께 해오고 있죠.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더라고요.

 

[도시 단편](2019), [홰홰](2020), [파수꾼](2021), 20대 후반에 짧지 않은 기간 동안 3부작을 냈어요. 지금 29살이시죠? 어떻게 보면 알레프의 20대 후반의 기록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각각의 앨범에 대해서 그리고 의미에 대해서 말해준다면?

 

재작년에 [도시 단편]을 만들 때만 해도 지쳐있었던 것 같아요. 보컬 아티스트로서의 스트레스도 있었고, 앨범 작업 자체도 좀 힘들었고요. 스스로가 지치니까, 주변에 저희를 도와주는 분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으로 만들었던 거죠. 앨범이 잘 돼야한다는 압박을 받으면서도 ‘잘 안된다면?’ 같은 앞서가는 생각들 때문에 더 힘들었던 거 같아요.

 

당시 일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업을 했는데, 컴퓨터 한 대랑 마이크 하나 있는 작은 작업실에서 어렵사리 앨범을 만들었죠. [홰홰]부터는 그런 마음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저에게 집중했던 앨범이에요. 소설 쓰는 걸 좋아해서 요즘도 글을 쓰거든요. 단편, 장편 소설들이요. 장편 소설은 공모전에도 출품할 만큼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물론 공모전은 떨어졌지만요. (웃음)

 

[홰홰] 앨범을 봤을 때 단편소설집 같다는 인상을 받은 게 그런 의도였군요.

 

네. ‘이야기’로 만들어진 무언가를 좋아하다 보니까. 앨범도 그렇게 구색을 맞춰서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제목도 다 두 글자로 일부러 통일했었고. 곡이 각각 한 편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되, 앨범 소개를 읽으면 “이게 이런 걸로 이어지는구나”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게 그 앨범의 목표였는데 잘 됐다고 생각해요.

 

[파수꾼]은 제가 제일 아끼는 앨범이에요. 그 앨범 내기까지가 제일 오래 걸렸어요. 2014년에 만든 곡도 있고. ‘바람들’이나 ‘조금 일찍 알았더라도’는 2015년 쯤에 만들어졌고 나머지는 대부분 군대에 있을 때 쓰거나, 2016~17년도에 작업했던 곡들이에요. 좋아하지만 차마 다 못 냈던 노래들을 모아서 낸 앨범이죠.

 

 

[파수꾼] 앨범 중에 그래도 제일 애정이 가는 곡을 고른다면요?

 

‘파수꾼’을 제일 좋아해요. ‘파수꾼’ 가사에는 [도시 단편]을 작업하며 느꼈던 저의 아쉬움이 담겨 있어요. 주변인들을 챙기고 싶지만 챙기지 못했던, 나의 능력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서 오는 무력함. 자기 자신이 남들에게 미운 사람이 되는 거 같은 초라함들이 담긴 곡인데요. 스스로의 감정에 가장 진실 되게 쓴 곡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 개의 EP가 어쩌면 알레프의 성장의 기록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올해는 매달 한 곡씩 노래를 내고 있어요.

 

제일 큰 이유는 일단 다작을 하고, 그 곡들을 빨리 소진하고 싶고 세상 밖으로 보여주고 싶은 욕구예요. 왜냐면 겪어보니까 EP 앨범 하나를 만드는데도 큰 에너지가 필요한 거예요. 앨범이라는 구색을 맞춰야 하고, 제작비도 많이 들어가죠. 그런데 한편으로 곡의 반응을 미리 가늠할 수 없으니까 리스크가 있는 것에 비해 싱글은 좀 더 가볍게 낼 수 있어서 좋아요. 시장의 흐름이라는 게 있고 그 물살을 같이 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음원을 자주 내서 ‘노출’이 일단 많이 되야겠다는 게 두 번째 생각이었고요.

 

세 번째로는, 그냥 마음이 편해요. 제가 작업을 다 하고도 마음에 안들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일단 내고 보겠다는 마음이요. 저는 어차피 세상 밖으로 곡을 내보내면 그 이후로는 상관 안 해요. 평가는 어차피 청취자들이 하는 거기 때문에. 물론 각 곡에 대한 의미는 있지만, 발매하고 나서는 “알아서 너네가 자생해서 살아라 곡들아~내가 너희를 곳간에 꿍쳐 두지 않겠다.”라는 마음인 거죠. 오히려 그 편이 곡들한테도 좋은 것 같고요.

 

 

매달 내는 것에 대한 압박은 없나요? 영감이나 체력이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거나요.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힘이 나요. 많이 작업을 하고 이걸 바로바로 내니까. 스스로 나름 부지런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한 번 늘어지면 정말 한없이 늘어지는 편이어서요. 작업을 하는 게 스스로 채찍질하는 느낌도 있어서 오히려 괜찮아요. 근데 최근에 1년 반 정도하다 보면 지치는 타이밍이 있겠다고 요즘 느끼고 있어서, 계획은 내년 상반기까지 지금처럼 하다가 EP 준비하면서 쉼도 좀 가지려고요. 페이스를 맞추고 있죠.

 

매달 낸 음원을 묶어서 낼 계획도 있나요?

 

내년 1월쯤 아카이브 개념으로 앨범을 묶어서 하나 내려고요. [2021 아카이브]로 해서 3월부터 12월까지 낸 노래, 그 외에 2-3곡 추가해서요. 곡이 1년만 지나도 낡은 곡이라는 평가를 받는 시대인데, 그런 걸 좀 무마하면서 재조명 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할까요. (웃음)

 

 

그럼 매달 지금까지 낸 싱글 중에 특별히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요?

 

‘Instant Lover’요. 일단 작업이 엄청 간단했어요. 마이크도 원래 콘덴서 마이크를 쓰는데 유독 다이내믹 마이크를 쓰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4만 원짜리 SM58 마이크를 썼는데 오히려 다이내믹 마이크가 주는 느낌이 곡이랑 잘 맞아서 놀랐어요. 실험적인 부분이 잘 살았고, 부르기도 쉽고. 모든 게 편했던 것 같아요. 반면에 제일 힘들었던 곡이 ‘순애보’라는 5월에 낸 곡인데. 그 곡은 과정에서 레트로함을 살리려고 테크닉이랄까, 가성이나 이런 걸 사용하는 데 있어서 힘들었어요.

 

알레프 노래를 이야기할 때 가사에 대한 이야기를 안할 수 없어요. [파수꾼]까지는 굉장히 시적이고 무거운 가사들이 많았어요.  

 

이성에 대한 사랑 노래를 쓰는 걸 시도를 많이 했었는데요. 그럴 때마다 가사를 다 뒤집어엎게 되는 거예요. 결국 맘에 드는 가사를 보면 스스로에 대한 고찰과 관련된 가사가 많았어요. 마음에 어떤 빈 감정들을 담아내야 직성이 풀리더라고요. 마음의 그런 빈 공허함들을 가사로 풀어내면서 스스로 치유하는 편인데 너무 적나라하게 담아내면 듣는 사람들이 불편해 할 것 같아서 은유적으로 많이 담아내는 편이었죠.

 

근데 주변 친구들이 어렵고, 못 알아듣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피드백을 들은 이후로 ‘내가 굳이 가사를 어렵게 쓸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좀 덜해진 것 같아요. [파수꾼] 다음 앨범부터는 좀 더 의미를 줄이고 직설적으로 쓰고 있어요. 좀 더 표면적으로 드러내려고 하고요. 가사에 대한 그런 사소한 변환점이랄까, 그런 게 스스로 보이니까 스스로에 대한 에너지가 되기도 하는 거 같아요.

 

가사를 쓸 때나, 노래를 만들 때 가장 동기 부여가 되는 감정이 어떤 것들이예요?

 

[파수꾼] 때까지는 우울감, 공허함이었다면 그 이후에는 평정심인 거 같네요. 요즘 뭐가 없어요. 걸리는 게 없으니, 막 쓰면 나오더라고요. [파수꾼] 이전에는 어떤 감정에 심취해서 썼다면 지금은 편안한 상태예요. 이것저것 끄적이다가 ‘이거 마음에 드네’하면 그 소절이 출발점이 되기도 하고요. 요새는 물 흐르듯 가사도 편안한 상태에서 잘 쓰는 것 같아요.

 

 

지금은 직업으로서 뮤지션 같네요. (웃음) 때 되면 책상에 앉아서 차분히 노래 쓰고, 매달 노래 내고.

 

맞아요. 아, 근데 어떤 소절이 출발점이 돼서 노래를 만들더라도 평정심의 상태와 어떤 감정에 취해 있는 상태와는 또 다른 게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완전히 평정심이라고만 이야기할 순 없겠네요. 가사는 짜깁기를 할 때도 있고, 직업인처럼 이것저것 탐구하는 느낌이라면 곡을 쓸 때는 확실히 어떤 무드가 필요한 거 같긴 해요. 기쁜 무드의 멜로디를 슬픈 상태에서 쓸 순 없으니까요.

 

그럼 요즘 제일 영향을 받는 존재는 뭔가요?

 

전 자연? 아티스트를 이야기하면 끝도 없죠. 20대 초반에 좋아했던 제이슨 므라즈, 제이미 칼럼… 포크, 재즈, 락에 돌아가면서 빠지고 음악을 듣고 하면서 아티스트한테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20대 중반이 되니까. 어르신들 왜 나무 사진 찍고, 꽃 사진 찍으시는지 너무 알 거 같아요.

 

(카페 창문 밖으로 보이는 맞은편 건물 벽을 가리키며) 문득 저런 돌로 된 벽을 보면서도, 지하철 창문으로 잠깐 보이는 한강을 보고도. 바쁜 도시에서도 저한테 평정심을 주는 존재들이 그런 자연이라, 자연에서 가장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알레프에게서 묻고 싶던 질문이 있어요. 만약 알레프가 스스로, 알레프를 하나의 단어로 설명한다고 하면 어떤 단어로 표현하고 싶은지요.

 

음, 요새는 ‘유유자적’(悠悠自適)이요. 걱정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 편히 지낸다는 뜻이잖아요. 있는 듯 없는 듯한데, 보면 그대로 있는? 그런 느낌이에요. 지금 제가 그런 느낌의 생활을 주로 하기도 하고요. 일상도 주로 집-작업실 반복이고, 코로나19 때문에 돌아다니는 데도 제약이 있으니까요. 근데 제 곡도 그런 것 같아요. 아는 사람들은 알고,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고. 아는 사람들은 편하게 부담 없이 듣기 좋다고 하셔서, 제 음악은 ‘유유자적’ 하면서 틀어도 좋지 않은 음악일까 싶고요.

 

 

내년엔 어떨까요?

 

내년엔 좀 바뀌지 않을까요. 제가 다음, 다다음으로 낼 곡들이 색깔이 조금씩 다른데요. 기존 알레프와 조금 다르지만 팬분들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실험을 하고 있거든요. 만약 R&B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싶으면 R&B 부담 없게 조금씩만 섞어서 만들고 있거든요. 하지만 내년에는 알레프가 한 색채를 뚜렷하게 낼 생각이어서 그때는 다른 단어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지금은 내년을 위한 선택적 ‘유유자적’의 기간이라고 봐야겠네요

 

그렇죠. 지금은 궁금했던 것들을 시도해 보고 데이터를 모으는 시기인 것 같아요. 기존 알레프가 기존에 포크와 락과 팝의 색을 가져갔다면, 타 장르들을 섞는 시도를 하고. ‘아 내가 이 음악에 묻었을 때 이런 식으로 표현이 되는구나’라는 걸 직접 경험해가면서 알아가고 있으니까요. 조금씩 어떤 장르는 좀 더 깊게 표현해 봐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기고 있죠. 그래서 내년에는 올해 냈던 곡 중에서 ‘이 색깔이 맘에 들었었지?’ 하는 색들을 뚜렷하게 하는 과정일 것 같아요. 올해 친 곁가지들을 더 깊게 파는, 마인드맵을 확장시키는 해가 되겠네요.

 

‘월간’이 그럼 실험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네, 맞아요. 다분히 저의 만족을 위해서 내는 앨범이죠. 스스로의 진로 상담 같은? (웃음)

 

 

미끼를 던지면서 대중들의 반응을 보고요.

아티스트들은 어느 한 색깔로 국한되고 싶지 않아 하잖아요. 물론 30대든, 40대든 언제 해도 이 실험들이 늦은 건 아니겠지만 지금의 제 에너지와 그때의 에너지가 너무 다를 것 같은 거예요. 29살인 제가 낼 수 있을 때 많이 많이 내보려고요. ‘이 장르 좋아했었지.’, ‘이 느낌으로 내보자.’라며 스스로 생각하면서요.

 

앞서 알레프를 단어로 표현하면 ‘유유자적’이라고 했어요. 그럼 한 권의 책으로 비유를 해서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라는 책을 꼽고 싶어요. 파블로 네루다가 칠레의 공산당 출신의 시인인데요. 그런 작가의 배경을 제외하고 읽더라도, 자연을 굉장히 잘 풀어냈어요. 자연이 요즘 제일 좋다 보니 그런 거 같아요. 파블로 네루다 책을 다시 읽고 있는데 진짜로 충만한 힘은 자연에 대한 느낌에서 오는 거 같아요.

 

 

최근에 발매한 ‘Night and Night’은 어떤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건가요?

 

사실 ‘Night and Night’은 만든지 오래 안된 노래예요. 저번 달에 만들었거든요. 요즘 한밤중에 밖이 너무 소란스러운 거예요. 주택가에 살고 있는데 저녁만 되면 취객들이 넘쳐나고, 이른 새벽에는 어르신들 소리에 잠이 깨기도 하고요. 외부인들의 소리 때문에 조금 괴로워서… (웃음). 그래서 쓰게 된 노래예요. 방해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요.

 

앨범 소개를 보면 ’고요함 속 스스로가 내는 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이라고 적혀 있어서 굉장히 상상하게 됐는데 그런 생활적인 비하인드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재밌네요. 앞으로는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데이터를 구축하는 게 현재, 29살의 알레프라고 하면, 30대에는 파악하고 수집한 것으로 “와 정말 잘 만들었다”라는 생각이 드는 앨범을 내고 싶어요. 지금은 저라는 아티스트의 색채가 굳어지기 전에, 확고해지기 전에 이것 저것 덧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요. 저만의 색깔을 만들어내서 한 앨범을 장편소설처럼 풀어낼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그게 바로 알레프의 정규 1집이 될 거라고 기대해봐도 될까요?

 

네. 앞서 말씀드린 내년 1월쯤 낼 아카이브 앨범을 제외하고요. 아마 내년 하반기나 내후년 상반기를 목표로 준비 하게 되겠죠. “알레프가 이제 뭘 하는지 알겠다”라는 느낌이 들었으면 하는 거죠. 쓰고 싶었던 악기부터 곡의 퀄리티까지. 쓰고 싶은 재료들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아티스트요. 지금의 알레프는 가성비 기준으로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만 하자는 생각인데, 점점 더 상황이 나아지면 음악 색깔뿐만 아니라 곡에 대한 퀄리티도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다양한 협업들도 많이 하면서 더 재밌게 하는 게 목표인 거 같아요.

 

지금은 새롭고 재밌는 걸 시도해 보는 시기인 거네요?

 

네. 근데 그 새롭고 재밌는 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기엔 아직 무리인 거 같아요. 아직까진 혼자 작업하는 게 좋고 편해서요. 몇 사람이 합쳐졌을 때 산으로 가는 게 싫고요. 지금은 혼자 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올해는 오로지 혼자서 실험하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내년, 내후년쯤은 다른 분들과의 작업도 고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읽고, 이 인터뷰를 듣고 알레프님의 노래가 궁금해서 들어보려고 하는 사람에게 추천 하는 가장 ‘알레프’스러운 노래? 제일 먼저 들어봤으면 좋겠다는 곡, 추천해 줄 수 있을까요?

 

‘파수꾼’이요. 저를 제일 잘 표현한 노래여서요. [파수꾼] 앨범에서는 ‘파수꾼’이랑 ‘호랑이의 숲’을 추천해드리고 싶고 그 이외에는 ‘홰홰’라는 곡을 추천하고 싶어요. 그 곡에 담은 메세지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라는 건데요. 저 역시 아티스트로서 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고. 그 생각으로 열심히 고민하며 곡을 만들고 있거든요. 알레프를 경험하고 싶다면 [파수꾼]부터 앨범을 시간 역순으로 들어보시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Photographer | Park Young Jun @khuss_goods
Stylist | Jo Hye Su @sooksmell
Hair & Make up | Kim Jung Hyun @_beenb


Interview | 이진수 (GQ KOREA 에디터) @offblue

김예림 (Lim Kim)

 

세이렌이 건져 올린 김예림의 목소리

 


 

Lim Kim이 [MAGO] 이후 4개월 만에 새 싱글 [FALLING]으로 돌아왔다. 신화 속 존재인 세이렌에서 모티브를 얻어 주조한 [FALLING]에서 Lim Kim은 회상을 통해 기억의 시간축을 움직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끊임없이 횡단한다.

발매로부터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일찌감치 뮤직비디오가 100만 뷰를 돌파하는 등 자신의 파급력을 실시간으로 몸소 증명 중인 Lim Kim. 그를 만나 신곡 ‘FALLING’을 비롯하여 그간 Lim Kim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어 보았다.

 


 

4개월 만에 신곡 ‘FALLING’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보내셨나요?


일단 최근에는 싱글 발매 후 여러 가지 활동들을 계속 하고 있고요. 인디펜던트로 활동하고 있다 보니, 대부분의 활동에 집중하는 시간들로 많이 보내는 것 같아요.


직접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니 정신없겠어요.


사실 스케줄 자체가 너무 빡빡해서 힘든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웃음). 단지, 제가 직접 출연하는 방송이나 프로그램에서 최대한의 모습을 잘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그런 측면에서 에너지들을 많이 쓰게 되네요. 제 스스로의 욕심일 수도 있고요.

 

최근엔 <비긴 어게인>을 통해 오랜만에 TV 출연을 하기도 했죠. 실없는 질문이지만, 가족들이 좋아하셨겠어요. (웃음)

 

네네. 아무래도 엄마 아빠는 다른 활동보다 TV에 나오는 걸 훨씬 좋아하시니까요. (웃음)

 

 

본격적으로 새 싱글에 관한 얘기를 해볼까 해요. [FALLING]에 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세이렌에서 모티브를 얻은 노래로, 과거에 대한 회상에서 출발해 미래로 자유롭게 나아가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았어요. 그런 측면에서, 과거의 저를 회상하게 하는 목소리가 보컬적인 요소로 들어가게 되었고요.

 

흥미롭게도 최근작인 [MAGO] 역시 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마고할미를 주제로 하고 있어요.

 

[MAGO]는 브랜드 미스치프(MISCHIEF)와 함께 발매했던 노래였는데, 당시 미스치프의 컬렉션이 <MAGO> 였어요. (웃음) 그래서 MAGO라는 주제가 처음부터 정해진 상태에서 저의 생각을 담았던 케이스였고, [FALLING]은 ‘회상을 일으키는 노래’를 이미지로 옮겼을 때 세이렌에 다다랐던 경우라 약간 접근이 달랐어요.

 

바다의 여신 세이렌은 신화 속 인물이잖아요. 평소 판타지나 신화에 관심을 많이 두는 편인지, 아니면 어떠한 계기에 의해서 불현듯 세이렌 모티브를 얻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세이렌은 노래로 사람들을 유혹하는데, 사람들의 익숙한 무언가를 불러내어서 유혹하게 될 테잖아요. 그 과정에서 ‘회상하는 노래’를 부른다는 아이디어가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신화 속 세이렌을 그저 신비로운 이미지로만 생각했는데, 그런 비화들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니 작업하면서도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예전에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듣고 ‘인어 목소리 같다’던 평도 떠올랐고요. (웃음)

 

세이렌의 단편적인 요소에서 한층 더 생각한 고민의 결과물이네요.

 

그렇죠.

 

 

목소리 얘기가 나왔으니, 질문을 또 이어가 볼게요. 전작과 달리 이번 싱글에서는 보컬적인 측면이 더욱 부각되었어요.

 

맞아요, 이 노래엔 회상을 갖게끔 하는 보컬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음악적 측면에서의 회상도 충족하지만, 또 사람들이 기억하는 김예림의 목소리에 대한 회상이기도 해요.

 

목소리가 음악을 완성하는 일종의 도구처럼 사용되었네요.

 

예전 인터뷰에서 얘기한 적 있는데, 제가 지금 말하는 목소리와 노래할 때 목소리가 다르잖아요. 그때그때 작품에 따라 ‘제가 되어야 할 무언가’가 정해지면 거기에 맞게 가사부터 목소리까지 모든 적합한 메이킹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의도한 부분이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유독 이번 앨범 댓글에서 예전 김예림의 목소리를 좋아하던 팬들의 반색이 자주 보여요.

 

맞아요. 그런 반응을 보니 기분이 좋더라고요. (웃음)

 

 

앨범과 함께 공개한 뮤직비디오는 현재 100만 뷰를 돌파했네요. 형식적인 질문이지만 소감이 궁금합니다.

 

어떤 뮤지션이라도 당연히 그렇겠지만, 열심히 작업한 결과물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닿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질 거예요. 감사한 일이죠.

 

트랙 프로듀서로 DPR CREAM이 참여했어요. 림킴님과의 첫 협업인데,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2~3년 정도 전에 DPR 크루 멤버 중 한 분께 연락이 와 같이 만난 적이 있어요. 그 자리에 DPR CREAM씨도 계셨고, 나중에 한 번 기회가 되면 작업하자고 얘기를 나눴어요. 그렇게 인연이 닿았다가 한동안 서로 연락이 없었는데, 갑자기 DPR CREAM과 같이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DM을 보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작업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FALLING]의 스케치나 데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DPR CREAM이 적임자로 떠올랐을까요, 아니면 어떠한 작업물을 그와 함께 본격적으로 같이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이었을까요.

 

후자인 것 같아요. DPR CREAM과 같이 작업하기로 한 이후로 만날 때마다 계속 작업을 이어갔어요. 어느 날엔 EP (Electric Piano) 만들고, 또 만나서는 보컬 라인 조금 만들어보고. 그렇게 처음부터 같이 두 달 만에 작업한 노래라 할 수 있어요.

 

이전 작품들보다 확실히 인터뷰나 라디오/방송 출연의 빈도가 높아졌어요. [FALLING]을 통해 이전에 많이 만들지 못했던 대중과의 소통을 갖고 싶다는 의중이 있었을까요.

 

그런 측면이 아예 없지 않고, 확실히 출연 횟수가 많아진 것도 맞지만요. 어떻게 보면, 많은 사람에게 제 모습을 보이고 제 음악을 들려주는 게 저의 직업이기도 하잖아요. 물론 이전에도 일부러 출연을 안 한 것은 전혀 아니지만요. (웃음)

 

 

누군가는 분명 오해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Lim Kim으로 다시금 등장했을 때 모든 것이 달라졌잖아요. 이름부터 시작해 장르적 색채, 음악적 태도까지 전부요.

 

사실 Lim Kim은 저의 영어 이름이기도 해서, 활동명을 영어로만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당시 있었는데 ‘이름을 완전히 바꿨다’고 많이들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마침 음악 스타일도 많이 바뀌다 보니 더욱이 그런 크고 작은 오해들이 생겼던 것 같고요. 저는 시리어스한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되게 열려있는 사람이거든요 (웃음). 이런 오해들을 앞으로 더 쌓지 않으려면 저의 오픈된 모습을 더욱 보여드려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최근에 하기도 했어요.

 

어떻게 보면, [SAL-KI]가 워낙 임팩트가 컸기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아무래도 이렇게 소통할 기회도 많이 없었고, 오래 쉬다가 갑자기 이런 음악을 시도하다 보니 (웃음) 그런 오해가 들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이번 싱글을 발표하면서, 음원 플랫폼 내 아티스트명을 “Lim Kim”에서 “김예림 (Lim Kim)”으로 병기 표기했어요. 지금까지 얘기 나눴던 내용들과 맞닿아있는 지점이라 생각해도 좋겠네요.

 

네. 사실 저는 그냥 Lim Kim이면서 김예림이기도 하잖아요. 이름도 김예림이고 (웃음). 오늘 한 TV 프로그램 사전 인터뷰를 하고 왔는데요. 작가님께서 “Lim Kim을 부캐라고 소개해도 되지 않을까요?”라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인간 김예림의 다양한 음악적 색깔을 나타내는 방법이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구분하진 않았으면 해요.

 

[SAL-KI]와 [GENERASIAN]을 발표하던 2019년 당시에도 그 생각은 같았을까요.

 

항상 제 마음에 충실했던 거 같아요. 제가 가장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음악으로 발표하고 싶었고, [SAL-KI]와 [GENERASIAN]때도 마찬가지였죠. 그때 당시에 제가 너무나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다 토해냈어요. 원래 사람이 화를 내고 나면 힘을 소진하고 고요해진다 하잖아요. (웃음) 저에게 지금 그런 시기가 찾아온 것 같아요. 인간 김예림으로서 생각했을 때, 어떻게 보면 사실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고요. 사람은 계속 변화하고, 그러한 흐름에 저는 계속 충실해지는 것 같아요.

 

(WONDER! by Lim Kim 바로가기)

 

이제는 조금 가벼운 질문을 드리려 해요. 포크라노스의 플레이리스트 컨텐츠인 <WONDER!>를 통해 여러 음악들을 선곡해 주셨지요. 빛과 소금이나 유재하의 음악들이 빌리 아일리시나 브록햄튼과 같은, 소위 트렌드한 넘버들 사이에 섞여 있어 흥미로웠어요.

 

음악은 예전부터 장르 상관없이 다양하게 들어왔어요. 주제가 ‘저녁에 혼자 방 안에서 있을 때 시간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음악’이다 보니, 그에 걸맞은 음악들을 선곡하게 됐던 것 같아요. 요즘 활동기에 노래를 부를 일이 많았다 보니 보컬 중심의 팝을 많이 듣기도 했네요.

 

여가는 주로 어떻게 보내시나요.

 

제가 별거 안 하긴 하는데요. (웃음) 혼자 시간을 보낼 땐 산책하거나 커피 마시러 카페에 주로 가요.

 

평이하네요. (웃음)

 

혼자 처리해야 할 것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요.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로서 여러 행정적인 업무까지 아우르고 있는데, 힘에 부치진 않아요?

 

인디펜던트의 단점이라 말하는 그런 일련의 업무들이 물론 혼자 다 해내기엔 어려운 일들이긴 하지만 ‘못할 일은 아니다’. 딱 이 정도인 것 같아요. (웃음)

 

인터뷰도 어느덧 막바지입니다. 차기작을 비롯해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활동과 조금씩 병행하면서 꾸준히 신곡을 작업하고 있고요. 정규 앨범 단위의 규모 있는 앨범에 관해서도 항상 고민 중이에요. 코로나로 해외 활동에 여러모로 제약이 있지만, 내년에는 해외 페스티벌을 비롯해서 더 넓은 음악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Interview | 키치킴

전진희 (Jeon Jin Hee)

 

전진희의 새로운 도전

 


2집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라는 앨범 제목부터 새 EP의 제목, 타이틀곡 ‘여름밤에 우리’까지 전진희의 최근 음악에는 유독 ‘여름’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전진희의 새 앨범 [summer,night]의 댓글에 “짙은 여름색 전진희”, “여름엔 전진희, 겨울엔 강아솔”과 같은 내용이 달리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심지어 어떤 이는 “싫어하던 여름도 좋아졌어요”라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전진희는 여름에 관하여 “정말 싫은 계절이었다”라고 언급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이 사랑을 이야기하는 타이틀곡 ‘여름밤에 우리’에 대해서는 “울컥하게 만드는 곡”이라고 설명한다.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답이지만, 아래의 인터뷰를 끝까지 읽고 나면 그의 말이 어떤 의도였는지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연주 앨범 [Breathing]과 음악 동아리 ‘작은평화’의 추후 계획 그리고 전진희가 준비하고 있는 ‘비밀 프로젝트’까지 그의 팬이라면 놓치면 안 될 내용이 가득하다.

 


 

 

지난 7월 1일에 EP [summer,night]이 발매됐죠. 그때와 지금은 날씨도, 상황도 많은 게 바뀌었는데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지금까지 앨범을 많이 냈는데 그중에서도 반응이 뜨거웠어요. 섭외부터 동료, 팬분들의 피드백까지 연락을 많이 받았거든요. 발매 당시의 날씨가 ‘rain, summer, night’이나 ‘night’를 듣기 좀 그랬다면, 지금은 딱 좋아진 것 같아요.

 

EP [summer,night]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여름밤에서 느껴지는 여러 가지 정취와 기분을 담고 싶었어요. 어느 날 돌아보니 제가 여름에 관해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름에 관한 곡이 쌓였어요. 그것들을 나중에 정규 앨범에 잘 섞어서 풀 것인지 아니면 한 번에 모을 것인지 고민하다가 모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완성된 앨범을 듣다 보면 여름밤의 심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기분이 들어서 재밌네요.

 

 

이번 EP도 그렇고 전진희 님의 음악에서는 ‘여름’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이더라고요. 여름을 좋아하시나요?

 

사실 여름은 정말 싫은 계절이었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을 ‘비수기’라고 표현하곤 했을 정도예요. 여름에는 발라드 듣기 싫어지잖아요. 저 같아도 무더운 날씨에 지치고 진이 빠지면 흥을 돋워주거나 살랑살랑 흔들 수 있는 음악을 들을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여름이 비수기가 아닐 수 없을까’라는 생각에 꽂혔어요. 나도 여름을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동시에 싫은 것 투성이였던 여름이 끝나는 게 서운하다는 생각이 몇 해에 걸쳐서 들었어요. 잠도 안 오고, 에어컨 바람은 너무 싫고, 버틴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 여름이 9월 1주 차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확 끝나버리잖아요. 이런 점이 어쩌면 사랑이나 감정, 세월같이 지나가 버린 것들과 되게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당시에는 견디느라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까 아름다운 거예요. 쨍한 햇빛과 살아있는 것 같은 나뭇잎의 색, 비 내린 후의 하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하늘의 색은 여름에만 볼 수 있던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더 여름에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타이틀곡 ‘여름밤에 우리’는 그런 내용이 담겨 있겠네요.

 

‘여름밤에 우리’를 만들면서 느리고 슬픈 음악을 만들 때보다 더 울컥한 감정을 느꼈어요. 제가 솔로로 낸 곡 중에서 BPM도 가장 빠르고, 신나고 밝은 느낌인데도 곡이 완성될수록 이상하게 울컥하더라고요. 듣다가 차 안에서 눈물이 흐르기도 했고요.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이 곡은 결국 여름밤이 그리워서 만든 곡인 것 같아요. 제가 젊었던 때에는 젊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그러다 서른이 훌쩍 넘은 시점부터 ‘끝나버린 건가? 생이라는 게 사실 이때 끝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벽을 마주친 것 같았어요. 인생이라는 게 고독한 게 아닌가 싶었고요. 그런 감정에 휩싸였을 때가 이 곡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젊은 날의 젊음에 대해 곱씹고, 생각하고, 지금은 어떤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이 곡의 가사가 나오고, 멜로디가 나오고 또 사운드가 나오게 된 거죠.

 

 

곡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앨범 아트워크도 비슷한 맥락일까요?

 

사람들이 ‘여름밤에 우리’를 듣고 나서 밝고 반짝이는 여름밤의 이미지가 어울릴 것 같다고 말했거든요. 근데 제게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지금 앨범 아트워크 사진을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어요. 고독하고 차가운 여름밤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리운 ‘여름밤’이 가사와 멜로디에서 드러났다면 ‘우리’라는 부분은 wave to earth의 피처링으로 구현된 것 같아요. 전진희 님의 목소리 위로 피처링 게스트의 목소리가 쌓이는 방식으로요.

 

편곡자인 김다니엘 씨의 의도였어요. 제가 노래를 다 부른 뒤에 김다니엘 씨가 어느 부분을 맡을지 고민을 많이 했죠. 아무리 생각해도 제 목소리가 빠지면 좀 이상하더라고요. 그래서 제 목소리는 중심으로 가고, wave to earth의 목소리가 작게 등장해서 뒤로 갈수록 존재감이 점점 커지는 식으로 완성이 됐어요. 저는 그게 정말로 너무 좋았어요. 그 다이내믹 때문에 울컥했던 것 같아요. 제가 혼자였던 날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때는 더 많은 사람이 함께였으니까요. 다 같이 있는 그림이 그려지면서 어디론가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사운드에서는 넓게 퍼져있는 소리에서 여름밤의 정취가 표현된 것 같아요.

 

믹스할 때도 와이드한 사운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죠. 저도 소리 톤에서 장면이 그려지는 걸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역시 저보다는 편곡을 해준 김다니엘이 더 많이 고민했겠죠. (웃음)

 

전진희 님의 지난 음악들을 좋아하시던 분들은 ‘여름밤에 우리’를 듣고 당황하셨을 것 같아요.

 

제 목소리는 전혀 록이 아니지만, 어쨌든 피아노라는 주체를 조금 벗어났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피아노가 저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면, 제가 자주 듣는 음악은 원래 이런 음악이거든요. 피아노 위주나 슬픈 곡을 찾아 듣는다기보다는 얼터너티브한 음악을 항상 곁에 두고 있어요. 사운드를 유심히 연구해보기도 하고요. 실제로 wave to earth가 하는 음악의 사운드를 정말 사랑해요. 음악을 듣자마자 이 친구들한테 연락해야겠다 싶었어요.

 

 

어떻게 본다면 사랑하는 그 소리를 표현할 기회가 적었던 거네요.

 

1집 [피아노와 목소리]는 제목 그대로 피아노와 목소리로만 만들겠다고 스스로 약속을 했었어요. 2집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에서부터 제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던 것 같아요. ‘낮달’에는 그런 시도가 담겨 있고요. 들어보시면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레이어가 되어 있어요. 제가 좋아하고, 추구하고 싶은 사운드를 조금씩 건드려본 거예요.

 

말씀해주신 ‘본질’이란 무엇인가요?

 

제 본질은 피아노에 있다고 생각해요. 피아노 연주로만 구성된 ‘rain, summer, night’를 1번에, 피아노와 목소리로 구성된 ‘night’를 마지막에 넣은 이유도 비슷해요. 저에게도 모험이었어요. ‘여름밤에 우리’는 여름과 당연히 어울릴 거로 생각했는데, 나머지 두 곡은 자투리 곡이 될 것 같아서 속상했거든요. 근데 생각보다 비 오는 날이나 여름밤의 감정이 잘 표현된 것 같아요. 생각보다 여름을 고독하게 보내시는 분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night’가 끝난 뒤 앨범을 연이어 들으면 세 곡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저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묻어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rain, summer, night’는 저의 본질이고 ‘여름밤에 우리’는 제가 조금 더 시도해보고 싶은 거예요. ‘night’는 1집 [피아노와 목소리]와 2집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를 만들 때의 제 기분과 관련이 있고요. 그래서 세 곡을 하나의 앨범으로 만들었어요. 세 곡이면 싱글 사이즈인데 EP라고 이야기한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인트로, 아웃트로의 개념이 아니라 저라는 사람이 확실하게 담겨있는 것 같았거든요.

 

한편으로 ‘rain, summer, night’는 지난 연주 앨범 [Breathing]과 연결되는 듯한 기분도 들었고요.

 

의도했어요. 친구들은 제게 ‘rain, summer, night’가 아깝다고, 앨범에 안 넣었으면 좋겠다고 말했거든요. 다른 연주곡을 모아서 두 번째 연주 앨범에 수록하는 게 어떻겠냐고요. 저도 ‘여름밤에 우리’ 앞뒤로 이 곡들을 섞으면 이도 저도 아닌 앨범이 될 것인지, 아니면 정말 저다운 앨범이 될지에 관한 고민이 있었죠. 발매 3주 전까지도 고민하다가 수록하기로 마음을 굳혔어요. 결과적으로 잘했다 싶어요.

 

 

[Breathing]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당시 앨범을 ‘살려고 만든 앨범’이라고 언급하셨었는데요. 앨범을 만드는 과정이 회복에 도움이 되었을까요?

 

현재진행형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앨범을 냈던 당시에는 인터뷰나 기사에서 마치 회복이 다 된 것처럼 나왔었는데요. 거기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내가 이 정도까지 이야기하고 다녔으면 당연히 회복해야지” 같은 식으로요. 저 자신에게도 ‘회복이 됐다’라고 되뇌었고요. 근데 사람이 쉽지 않더라고요. 다시 돌아간 때도 있었고요. 그래서 현재진행형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어쨌든 회복하려고 앨범을 만든 것은 맞아요.

 

[Breathing]은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공개하시던 연주곡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죠. 회복을 위해 연주를 하셨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따지자면 제게는 [Breathing]에 들어가 있는 곡들을 만들고, 연주하는 게 가장 자연스러워요. 그 앨범은 애를 써서 만든 게 아니라 뱉듯이 나온 앨범이거든요. 늘 가사가 있는 음악을 발표해왔지만, 사실은 그게 저인 거예요. 지금까지 연주 앨범을 내지 않았던 이유는 일단 제게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재즈 연주에 가까운 방향으로 앨범을 만들까 싶다가도, 제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들은 [Breathing]에 수록된 곡들이니까요. 그러다 제 안에서 확신이 생겼을 때쯤 [Breathing]이 나왔죠. 가사와 노래가 있는 곡들이 먼저 나오면서 순서가 뒤바뀌었지만, 제 시초는 [Breathing]처럼 피아노로 표현된 곡들이에요. 지금도 쌓여있는 연주곡들이 많아요. 언젠가 자연스럽게 또 다른 연주 앨범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뱉듯이 나온 앨범’이라는 점에서 [Breathing]도 일종의 재즈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정말 존경하는, 재즈를 하시는 교수님이 제게 “[Breathing]도 재즈 아냐? 다 즉흥으로 한 거라면서”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재즈라는 장르에 대해 더 많은 연구와 자기 단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재즈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지난 6월에도 사운드클라우드에 ‘Breathing in June’을 업로드하셨어요. 처음 업로드할 때와 지금은 심정이나 상태가 많이 다르실 것 같아요.

 

상황은 확실히 다르긴 하죠. 그런데 저라는 사람은 변함이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여전히 요동치는 감정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하지만 저를 덮치고 먹어 삼킬 것 같은, 좋지 않은 감정들을 이겨내려고 어떻게든 노력하고 있어요. 올해 6월의 호흡에는 아마도 그런 마음이 담겨 있었겠죠.

 

[Breathing]에는 어떤 음악이 담겨있나요?

 

당시 저는 음악적으로 저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지쳐있었어요. 평생 열심히 연습하고, 음악을 만들고, 일하며 살았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증명해야 하나 싶었어요. 제가 왜 증명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었고요. [Breathing]은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음악이에요.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것들이거든요.

 

전진희라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담겨있는 게 가장 중요했던 것이네요.

 

자연스러움이라는 의도와는 달라서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렸다가 지운 음악들도 있어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다 보니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생기고, 저도 곡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이 느껴지더라고요. 매달 호흡하겠다고 했는데 어쩌지 싶어서 30일, 31일 밤에 뭐라도 해보겠다고 피아노 앞에 앉은 적도 있어요. (웃음) 그렇게 억지스럽게 나온 곡들은 올렸다가 지우고, 지우지 않더라도 앨범에는 넣지 않았어요.

 

 

[Breathing]은 ‘Breathing in January’부터 ‘Breathing in December’까지 내림차순으로 구성되어 있죠.

 

아무래도 12개월을 넣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았어요. 제가 이걸 4월에 시작했으니 4월부터 시작하는 게 맞지 않나 싶었는데 그래도 1월부터 12월까지 순서대로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수록곡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조회수였어요. 7월, 10월이 가장 높았고요. 10월은 ‘Breathing in October’입니다. ‘Breathing in October Ⅱ’는 그냥 제가 좋아해서 넣었어요. 하나만 넣어도 되는데, 그렇다고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첫 번째 10월을 뺄 수는 없잖아요.

 

타이틀곡이 ‘Breathing in September’인 것도 조회수의 영향인가요?

 

아니요. 그냥 제가 제일 좋아해서 골랐어요. 생각해보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타이틀곡을 잘 안 들었거든요. 같은 가수를 이야기해도 저는 9번, 10번 같은 자투리 곡 좋아하고, 정작 타이틀곡은 못 외웠어요. [Breathing]도 ‘Breathing in October’가 청취수가 가장 많으니 타이틀곡으로 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는데 제가 밀어붙였죠. 후회하고 있어요. (웃음)

 

본인을 기록하는 식으로 만든 곡이라면, 당시의 감정이나 상황이 담겨있을 것 같기도 해요.

 

‘Breathing in October’는 불안장애가 생긴 첫해에 쓴 곡이고 ‘Breathing in October Ⅱ’는 두 번째 해에 쓴 곡이거든요. 1년의 세월이 흘러서인지 곡의 분위기가 다르더라고요. 첫 번째는 10월의 덥기도, 춥기도 한 쓸쓸한 날씨 있잖아요. 병원에서 나와서 그 날씨 속을 천천히, 무겁게 걷는 느낌이라면 두 번째의 10월은 조금 가볍고 산뜻해진 느낌이 들더라고요.

 

지금도 계속 기록하고 계시죠.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이걸 3년이나 할 필요는 없잖아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요. 근데 댓글이 꽤 달려요. 제가 정식으로 발매한 앨범들보다 더 날 것의 댓글이요. 다이렉트 메시지도 많이 오고요. 이 음악들이 사람들의 날 것 같은 마음을 꺼낼 수 있나보다 싶어요. 동시에 2018년과 2021년의 7월은 완전히 다르잖아요. 어쨌든 자연스럽게 나오는 소리라면 아무 욕심 없이 기록하자는 생각으로 한 것 같기도 해요. 앨범도 아무 욕심 없이 만들었으니까요.

 

아티스트로서 꾸준함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게 있으신 걸까 싶었어요.

 

책임감으로 하면 못할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다른 얘기지만, 앨범도 즉흥적으로 내요. 언제부터 앨범을 만들고 이때쯤 내야겠다는 계획을 짜고 움직이지 않아요. [summer,night]도 발매 한 달 반 전에 계획을 세우고 무작정 날짜를 여쭤봤어요. 진상 고객 같은 거죠. (웃음) ‘낮달’도 그랬고요. 하고 싶어서, 내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에요.

 

 

전진희 님의 앨범을 즐기는 또 다른 방식이 앨범에 수록된 에세이인 것 같아요. [낮달]과 [summer,night]에 수록된 글을 모두 즐겁게 읽었어요. 이렇게 매번 에세이를 요청하는 이유가 있나요?

 

저도 에세이를 좋아해요. 제 음악을 듣고 무언가 떠오른다고 말씀하시는 피드백을 되게 감사히 여기고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박선아 작가님과 좋아하는 뮤지션인 이아립에게 부탁했어요. 둘의 글 쓰는 스타일을 알고 있으니까 믿고 맡겼죠. 저는 자기검열을 많이 하는 편인데, 저를 알고, 제게 애정을 주는 사람들이 보는 ‘제가 모르는 저’를 보는 일이 너무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하지 않을까 싶어요.

 

미디어에 비춰진 전진희 님과 실제 전진희 님의 성격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글을 써주신 두 분은 그런 전진희 님의 모습을 알고 계셔서 그런 글을 쓸 수 있던 게 아닐까 싶어지네요.

 

대부분 저를 참하고, 조용하고 우아한 사람일 거로 생각하시는 그렇지 않거든요. 제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 속 저는 철이 없고 웃음이 많은, 애 같은 유형에 가까워요. 그런데 워낙 고요하고 슬픈 노래들을 쓰다 보니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강아솔, 박현서, 신온유 님과 작은평화라는 음악 동아리를 하고 계시죠. 우선, 왜 동아리인가요?

 

상업적인 느낌이 들지 않기를 바랐어요. 작은평화로 큰 업적을 만들고 돈을 벌기보다는 우리를 위해 모였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고요. 모였을 때 부담스럽지 않고 기분이 좋았으면 했기도 하고요.

 

작은평화라는 이름은 하비누아주의 곡에서 따온 거겠죠?

 

강아솔이 작은평화라는 단어가 너무 좋았대요. 동아리의 취지에도 딱 맞는 것 같다며 이름으로 써도 되겠냐고 묻더라고요.

 

작은평화의 첫 번째 싱글은 ‘메리 크리스마스’였죠.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요?

 

[여름의 마음]이라는 제목의 싱글을 8월 중에 내려고 해요. 수록곡은 두 곡이고요. 제가 아닌 나머지 두 명이 곡을 쓰고 있어요. 공연도 준비하고 있어요.

 

 

 

2018년에 이설아 님과 함께 만든 곡 제목은 ‘크리스마스의 추억이’였어요. 언젠가 전진희 님이 홀로 이야기하는 크리스마스 노래를 들을 수 있을까요?

 

비밀인데… 사실 크리스마스 캐럴을 편곡한 앨범을 준비 중이에요.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싶어서 계획적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 때 꺼내 듣고 싶게 만들고 싶어요.

 

[summer,night]의 발매 공연도 준비되어 있죠.

 

예매가 끝났고 8월 중에 열려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격상 이후에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큰 이변이 생기지 않는 이상 공연을 할 것 같아요.

 

그 외의 여름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기타리스트 임헌일 오빠와 함께 만든 싱글 “울어도 돼요”가 7월 19일에 나와요. 8월에는 제 공연이 있고, <제2회 자라섬 온라인 올라잇 재즈 페스티벌>에 출연하고요. 작은평화 앨범이 나오고 나면 여름이 끝나있겠네요.

 

꽉 찬 여름이네요. 전혀 비수기가 아닌걸요.

 

학기 중에는 출강을 하다 보니 음악에 목말라 있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음악을 계속해야 하는 사람인데 학기 중에는 해야 하는 일들이 있으니까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여름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도 있어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하고 있죠. 너무 신나요.

 

마지막으로, 전진희 님의 음악 중 더운 여름을 이겨내기 위해 추천하고 싶은 곡들이 있나요?

 

아무래도 “여름밤에 우리”인 것 같아요. 힘든 것들을 잠깐이라도 잊었으면 좋겠다  싶어 만든 곡이기 때문에 들으시며 환기를 하면 어떨까요. 한편으로 제가 요즘 요가를 다니는데, 선생님이 항상 [Breathing] 앨범을 틀어두셔요. 사실 저는 되게 민망했거든요. 처음에는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상황에 되게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걸 보고 ‘숨쉬기 좋은 음악이긴 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힘들고, 화가 많이 나고, 지치고, 갈 데까지 간 것 같은데 더 심한 것들이 남아있는 요즘이잖아요. 그럴 때 차분하게 숨 쉴 수 있는 [Breathing]을 들어보시는 것도 추천드려요.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누워서 쉰다고 생각하시면 좋겠네요.

 


 

Interview | 심은보 (VISLA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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