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닙(honnip), 곽 [Dogs]

 

개들이 서로를 물어대는 모습을 어쩔 도리 없다는 듯 지켜보는 이야기를 광폭하거나 혼란스럽게 담기보다 “차분하게 내려보 (‘이유’)”는 시선으로 담담하게 다룰 때, 이 기이한 경관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걸지도 모른다.

 


 

혼닙(honnip), 곽
Dogs
2021.12.29

 

‘Dogs’의 첫머리에서 소리의 조각과 불순물은 장식품이 된다. 우울 한날(Oowl Hannal)에서의 작업까지를 포함하더라도 길지 않은 시간동안 적은 수의 트랙을 발매했지만, 혼닙의 음풍경이 유사한 음색과 양식의 포크 음악들보다 두드러졌던 건 그 때문이다. 곽이 말문을 열기 전까지 50초, 아니면 트랙 전체의 골격이 되어줄 베이스가 들어오기 전까지 30초 동안, 코와 입에서 나오는 미약한 숨소리와 기타 현이 만들어내는 경미한 잡음이 소리의 둘레에 자그마하게 뿌려진다. 중앙에는 나중에 목소리가 들어올 자리가 빈 채, 전자음 박동과 다르지 않는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서서히 채워진다. 미묘하게 컨트리풍인 기타 피킹을 짧고 차분하게 반복해 속도감을 형성하는 이러한 방식은 [이유]에 수록됐던 ‘PAPEPATI’나 ‘조’, 아니면 ‘취’와 같은 트랙에서도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이는 혼닙의 트랙에서 기타 소리가 리듬과 선율에서 등장하는 두 개의 주된 방식이기도 하다. 다만 ‘Dogs’에서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감초처럼 등장할 뿐이고, 베이스음이 대신 주요 자리를 차지한다.

 

 

‘Dogs’는 음량 간의 큰 차이를 두지 않고 뒤섞여있던 소리들의 위계가 서서히 분류되면서 시작된다. 그나마 중심축에 위치하는 것은 다만 반복에 따라 심어지는 베이스음과 어쿠스틱 기타, 그리고 곽의 보컬이다. 베이스만큼의 저음부를 차지하지 못하여 퍼커션처럼 툭툭 들어오는 드럼과 가물거리는 전기 기타음이 새 장식음이 된다. 재미있게도, ‘Dogs’에서는 이렇게 하나의 길고 연속적인 호흡을 가진 구간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주요 뼈대는 반복으로 이뤄졌고, 스쳐지나가는 작은 소리들이 빈 공간들을 드문드문 채운다. 이에 따라 곽의 보컬이 담아내는 멜로디 또한 어떠한 ‘라인’을 타고 오르내리기보다는, 큰 음고 변화 없이 짧게 흥얼거리는 구절들에 가까워진다. 그렇지만 그 덕에 각 절 맨 뒤에 위치한 “lose it”이 한 호흡에 길게 늘여지는 것에 따라, 상대적으로 힘을 세게 주었던 목소리가 끝까지 견디려 애를 쓰다 결국 흩어져버린다. 그 형상은 개들이 서로 싸워대고 신발을 물어뜯고 땅을 파고 파고 또 파는 광경에 손쓸 수 없이 기술만 하는 노랫말과 함께, 화자가 정신머리를 느리고 무력하게 “잃어가는” 것에 동원된다.

 

트랙의 전개에서 분명한 시작과 중간과 끝이 없이 언제나 진행 중인 느낌이 드는 것은 위에서 이야기했듯 대부분의 부분들이 각자의 규모에서 짧게 반복되거나 문득 나타났다 사라지며 전체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유’와 같은 트랙에서도 그랬듯, 혼닙은 반복을 새로 시작하는 구간을 서서히 삽입해오거나, 조그마한 소리들을 곳곳에 흩뿌리는 것으로 이러한 정경에 자세함을 더한다. 개들이 서로를 물어대는 모습을 어쩔 도리 없다는 듯 지켜보는 이야기를 광폭하거나 혼란스럽게 담기보다 “차분하게 내려보 (‘이유’)”는 시선으로 담담하게 다룰 때, 이 기이한 경관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걸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굳이 드러내지 않더라도, 트랙은 짧은 단위의 장면들이 계속 반복되는 줄 모르게 이들을 진행시키면서 청자를 서서히 옭아매온다. 나뒹굴고 있는 개들을 허탈하게 내려다보고만 있는 사람을 먼발치에서 가만히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

 

 

어느새 곽의 목소리는 훨씬 더 옅은 코러스와 미세한 중얼거림의 조각들이 되어 연주음들의 희미한 장식이 되어버리고, 약하게 둘러싸인 어쿠스틱 기타만이 남아 그 연주를 몇 십 초간 반복한다. 맨 앞에 나타났던 것보다 울림이 덜해진 사운드가 슬쩍 분명해지며, 다시금 무슨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는, 또 다른 브릿지가 찾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예감을 준다. 하지만 “Dogs”는 거기에서 곧장 끝난다. 그것은 이를테면 이동 중에 잠시 멈춰선 차창 바깥으로 기이한 풍경을 쳐다보다가, 멈춰선 것만 같던 시간이 다시 원래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눈앞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질 때의 짧은 여운만을 남긴다. 귀 안쪽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겠지만, 개들은 여전히 트랙 속에서 언제나 그랬듯 다른 개들이나 자기 자신이나 누군가의 신발을 물어뜯고 있을 것이다. 그 여운의 뒤꽁무니에서 채 사라지지 않고 10초가량 남아있는 조용한 여음은 이렇게 말하는 것도 같다: “난 낭만적인 개들과 여기에 있어. 그리고 계속 여기에 머물 거야. (로베르토 볼라뇨, 「낭만적인 개들」, 김현균 옮김, 열린책들, 2018.)”

 


Editor / 나원영 (대중음악비평가)

FFRD [폭력의 역사]

또한 무조건적으로 듣는 이를 압살시키거나 때려 눕히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나름의 이야기와 이유가 있다. 물론 이유가 있는 폭력이라고 하여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들의 음악은 가끔은 과하고 가끔은 깜짝 놀랄 만한 전개를 펼쳐도 그것이 결국 듣는 사람에게 설득이 된다.

 


 

FFRD
폭력의 역사
2022.01.05

 

동찬과 덥인베인으로 구성된 ‘FFRD’의 이름에는 Four Five Records라는 뜻이 있다. 작업실 4번 방을 썼던 덥인베인과 5번 방을 썼던 동찬이 모여 결성했고, 두 사람 모두 클래식 작곡에서 전자음악으로 전향했다. 이들은 2019년 [현대음악]으로 다소 간결한 형태를 지닌 작품을 발표했고, 2020년에 발표한 [WHAT YOU NEED]는 좀 더 예측 불가능한 전개와 구성으로 듣는 이를 첫 트랙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마지막 트랙이 끝나는 시점까지 집중시켰다.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의 음악을 해온 FFRD가 이번에는 [폭력의 역사]라는, 앨범명에서부터 확실한 콘셉트가 느껴지는 작품을 공개했다. 이 앨범은 사실 앨범을 접하기 전 소개글을 먼저 읽었고, 자연스럽게 그것이 감상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글에 담긴 내용을 차치하더라도 두 사람이 앨범에 담은 내용은 생각보다는 무식하다고 할 만큼 무조건적으로 소리를 휘두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 설명 못할 광기는 분명히 있다. 특히 한 곡 안에서도 특유의 예측 불가능한 전개와 여러 소리를 쌓고 덜어내는 방식이 흥미 그 이상으로 자극을 주지만, 한 곡에서 다음 곡으로 넘어갈 때에도 그러한 자극이 유효하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또한 무조건적으로 듣는 이를 압살시키거나 때려 눕히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나름의 이야기와 이유가 있다. 물론 이유가 있는 폭력이라고 하여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들의 음악은 가끔은 과하고 가끔은 깜짝 놀랄 만한 전개를 펼쳐도 그것이 결국 듣는 사람에게 설득이 된다.

 

 

첫 곡 ‘call of void’가 연설의 목소리로, 내용이 아닌 분위기를 통해 서사로 해석할 가능성을 열어뒀다면 이어지는 ‘killer d&d’는 ‘fuck you that’이라는 단 세 단어로 의도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이어 ‘덫’ 전까지 앨범을 착실하게, 알차게 자극적인 소리를 끊임없이 올리며 앨범의 방향을 분명하게 만든다. 아마 과거 클럽에서 폭력적이고 어두운 전자음악을 들으며 희열을 느꼈던 분들이라면 이번 앨범이 제법 마음에 들 것이다. 이들의 거침 없는, 광폭에 가까운 모습 안에는 과거의 댄스 음악이 있고 격렬하게 춤 추기 좋은 요소가 있다. 소리뿐만 아니라 구조 자체도 강렬하고, 마지막 두 곡이 오히려 앨범이 지닌 여운과 서사를 강하게 뒷받침하며 이 앨범이 지닌 에너지를 잘 설명한다. 이것을 한의 정서라 해야 할지, 아니면 코로나-19 사태에 일렉트로 모쉬 핏을 못해서 안달이 난 극히 일부의 한국인의 마음을 대변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앨범을 듣는 사람은 새해를 시작할 에너지가 좀 더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음악을 듣는 행위에 불과하지만 속에 쌓여 있는 것을 그 행위만으로도 어느 정도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부정과 긍정의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순환시킬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점에서 앨범은 충분히 나에게 매력적이었다. 영기획 10주년 기념 공연에서 이들은 어떤 라이브를 선보일지도 예측이 어려운데, 궁금한 분들은 예매를 권한다.

 


Editor / 블럭

권월 [삼동면]

하지만 그러면서도 결코 극적인 연출은 없었고, 오히려 그것이 더욱 남해를 떠올리게 해줬다. 마지막 곡인 ‘꽃내마을 이장님’은 남해의 소리를 그대로 담으며 아마 많은 이에게 남해라는 곳을 궁금하게 만들 것 같다.

 


 

권월, 아트리
삼동면
2021.12.23

 

권월은 전자음악 듀오 F.W.D로도 알려졌지만, 동시에 제31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장려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전자음악을 하는 권월도 훌륭하지만,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동시에 서정적인 면모를 홀로 풀어내는 역량은 더욱 뛰어나다. 그는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깊이 있는 음색으로 꾸밈없이, 그러나 아름다운 가사와 가창을 세상에 전달해왔다.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눠서 그를 소개했지만, 권월은 그 갈래 안에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작법에 있어서나 편성을 활용하는 방식에서도 그렇지만, 나는 그보다는 권월이라는 음악가만이 선보이는 특유의 사려 깊은 전개와 감성에 더욱 초점을 두고 싶다. 아름답다는 표현이 상투적인 것도 있지만 권월의 음악은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소재와 감정에게도, 그리고 표현에 있어서도 사려 깊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남해군 삼동면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느낀 감정을 담은 이번 앨범 [삼동면]에서도 드러난다.

 

 

삼동면과는 반대쪽이지만, 나는 남면에서 자주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정적이지만 그 안에 편안하면서도 동적인 자연의 모습을 보며, 그 안에서 마치 자연의 일부인 모습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남해의 소중함과 남해만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딴소리처럼 느껴지겠지만 잠시 남해 이야기를 하자면, 남해는 여전히 자연의 정취가 강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단순히 정취라고 축약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데, 그것은 화려하거나 거창하지 않고 너무 소박하지도 않으며 한겨울에도 정감 가고 따뜻한 곳이었다. 물론 내가 느낀 남해와 권월이라는 음악가가 느낀 남해는 다를 수도 있다. 음악을 들으며 그 당시 내가 보고 들었던 남해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르며 삼동면의 모습이 남면의 모습과 얼마나 비슷한지, 또 얼마나 다른지 궁금해졌다. 여기에 융합 예술 공연 팀 아트리의 연주가 더해지며 그의 표현은 더욱 풍성해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결코 극적인 연출은 없었고, 오히려 그것이 더욱 남해를 떠올리게 해줬다. 마지막 곡인 “꽃내마을 이장님”은 남해의 소리를 그대로 담으며 아마 많은 이에게 남해라는 곳을 궁금하게 만들 것 같다.

 

앨범 제작기는 그의 블로그에서 읽을 수 있으며, 뮤직비디오 역시 함께 감상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올해 조용한 남해에 혼자 잠시 가보는 것도 함께 권해본다. 아마 그러면 이 앨범에 담긴 사려 깊은 표현을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ditor / 블럭

Wendy Wander [Lily]

물론 세상에 완벽한 사랑은 없지만, 연말을 외롭게 보내야 한다면 웬디완더로부터 위로를 받아보자. 천천히, 그러면서도 가슴 깊숙이까지 음악이 다가올 것이다.

 


 

Wendy Wander
Lily
2021.12.08

 

Wendy Wander, 한문으로는 온대만보(溫蒂漫步)라고 읽으며 윈디만보라고 부른다고 한다. 여기서는 영어식 표기에 따라 웬디완더라고 하겠다. 웬디완더는 한국에서도 적지만 팬들을 보유하고 있고, 특히나 아시아 팝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아시아 팝 음악, 그 가운데서도 대만의 밴드 음악은 대만 밖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중이다. 선셋 롤러코스터, 엘리펀트 짐, 데카 조인스 등 대만 밴드의 음악을 좋게 들어왔다면 웬디완더 역시 (비록 발매 작은 이번 앨범을 포함해 두 장에 불과하지만) 꼭 들어봐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겨울에 차분한 분위기의 밴드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분에게는 좀 더 자신 있게 추천한다.

 

 

웬디완더는 첫 정규 앨범을 내기 전까지만 해도 (당연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밴드였다. 하지만 2020년에 1집 [Spring Spring]을 발표했고, 지금은 자국인 대만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중이다. 투어를 성공하게 한 것은 물론 인터뷰를 보면 덕분에 모두 전업 음악인으로 사는 삶을 살게 된 듯하다. 전작인 [Spring Spring]이 조금 더 가볍고 편안하고 따뜻하게 들을 수 있는 팝-록 음악으로 채워져 있다면, 이번 EP인 [Lily]는 상대적으로 어둡고 차분하고 무겁지만 그러면서도 따뜻함 만큼은 잃지 않는다. 이번 앨범은 짝사랑이나 외로움과 같은 키워드를 담고 있다고 하며, 추운 연말의 쓸쓸함과 동시에 그것을 위로해주는 마음을 담아냈다. 밴드의 장점이자 특징인, 두 사람의 음색이 교차하는 지점도 감상 포인트이지만 어느 정도 공간을 비우면서도 절묘하게 균형을 맞추는 구성원들의 연주, 그리고 분위기를 끌고 가는 톤도 그에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특히 ‘For Lily’와 ‘Lullaby’는 정규 앨범과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어 앞으로 들려줄 음악의 스펙트럼까지 기대하게 한다.

 

백합의 꽃말은 순수한 사랑, 깨끗한 사랑이라고 한다. 순수하고 깨끗한, 완벽에 가까운 사랑을 바라는 동시에 하얀 겨울의 이미지와도 맞아떨어진다. 물론 세상에 완벽한 사랑은 없지만, 연말을 외롭게 보내야 한다면 웬디완더로부터 위로를 받아보자. 천천히, 그러면서도 가슴 깊숙이까지 음악이 다가올 것이다.

 


Editor / 블럭

이태훈 [조그만 너를 위한 한 문장]

사랑하는 한 사람을 위해 음악을 만든다는 건 어떤 걸까? 음악을 만들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지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온 마음을 다해 작업을 하고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같은 창작가에게도 경외로운 작업이 아닐까 감히 추측해본다.

 


 

이태훈
조그만 너를 위한 한 문장
2021.11.08

 

이태훈이라는 음악가가 자신의 음악을 담아낸 지 어느덧 긴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까데호부터 세컨세션, 헬리비전, 화분, 테호, 마찰, 비헤디드, 오복성, 음악그룹 시로는 물론 최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의 협연까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가 쌓아온 수많은 음악 여정만 복습해도 꽤 많은 음악적 영감과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그는 오랜 시간 솔로로서 활동해왔다. 다른 이들과 함께 만드는 음악도 멋지지만, 오롯이 그의 연주와 목소리만으로 만든 솔로 앨범은 수많은 활동들 사이에서도 독창적인 가치가 있다. 폭발하는 에너지, 넘치는 그루브 사이에 슬쩍 보이는 독주집은 상대적으로 정적이면서도 그 안에 조용히 꿈틀대는 것이 있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밴드 안에 있는 이태훈과 전혀 다른 독립적인 음악가가 아니라, ‘이런 세계도 있구나’ 하면서도 이태훈의 음악을 줄기차게 따라온 팬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음악이다. 이번에 선보인 세 번째 앨범은 그러한 음악 여정의 중간에 있으면서도 어딘가 은은한 빛이 난다.

 

 

사랑하는 한 사람을 위해 음악을 만든다는 건 어떤 걸까? 음악을 만들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지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온 마음을 다해 작업을 하고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같은 창작가에게도 경외로운 작업이 아닐까 감히 추측해본다. 이태훈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은 그런 과정과 마음이 담겨 있다. 조용한 공간에서 나지막이 틀어 놓고 듣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거창한 편성이나 화려한 전개가 없어도 아름다움은 이렇게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앞선 두 장의 앨범과 결이 다르거나 솔로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이 바뀐 것은 아니다. 그는 첫 번째 앨범에서도, 두 번째 앨범에서도 자신의 진심을 전했고 과하거나 부담스럽지 않게, 잔잔한 가운데 그 안에서 작은 변화로 울림을 바꾸는 방식을 통해 곡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쇼루의 성격이기도 한데, 이태훈은 지난 두 번째 앨범에서 쇼루를 기반으로 자신의 앨범을 꾸렸다. 이번 앨범도 그러한 성격이 어느 정도 들리는 듯한데, 그보다는 앨범 전체에 담긴 진심이 먼저 다가오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크게 생각하게 되지는 않는다. 기타 한 대로 연주하는 곡도, 여기에 이태훈의 보컬과 노랫말을 얹은 곡도 듣고 있으면 행복해지지만 여기에 동료들이 함께 전하는 마음도 그야말로 이심전심이다. 특히 마치 모두가 한 아이를 조심스레 바라보고 달래주듯 천천히, 섬세하게 얹는 연주는 그 세밀함을 듣는 재미도 있다.

 

언제나 나는 이태훈이라는 음악가가 만드는 거대한 유니버스를 다른 이들도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번 앨범은 아마 그가 만든 작품 중 가장 접근성이 높으면서도 그 진심을 좀 더 크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음악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 어떤 음악을 만들 것인가를 상상해보고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ditor / 블럭

Darley [A-Men]

굉장히 폭넓은 음역대를 활용하는 보컬이자 뛰어난 프로듀서이기도 한, 랩도 하고 곡도 쓰고 엔지니어링에도 능한 달리는 이번 앨범을 통해 자신의 장점을 어김없이 발휘한다.

 


 

Darley
A-Men
2021.10.12

 

힙합, 알앤비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마스터클래스(Master Class)와 달리(Darley)의 [Show Returns]라는 앨범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프로듀서 마스터클래스와 보컬 달리가 함께 한 앨범이었고, 소울풀한 보컬이 인상적인 동시에 힙합과 알앤비, 재즈, 하우스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이 작품은 아는 사람은 아는 숨은 명반으로 통한다.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다면 이번 기회에 한 번 찾아서 들어보자. 어쨌든 그 앨범에 참여한 보컬 달리가 7년 만에 솔로 EP를 발표했다. 그 사이에 싱글 단위로는 계속 발표를 했지만, EP는 오랜만이다. 굉장히 폭넓은 음역대를 활용하는 보컬이자 뛰어난 프로듀서이기도 한, 랩도 하고 곡도 쓰고 엔지니어링에도 능한 달리는 이번 앨범을 통해 자신의 장점을 어김없이 발휘한다.

 

 

앨범은 올드스쿨 힙합과 훵크를 적극적으로 담아내면서도 그 위로 힙합, 하우스의 여러 요소를 섞는다. 여기에 보컬로서는 재즈와 소울을 가져와 멋진 역량을 들려준다. 특히 폭넓은 음역을 활용하는 보컬은 화려하면서도 안정적이다. 첫 곡 ‘Get Up, Brothers!’는 스크래치 사운드와 함께 브레이크비트와 흡사한 모습을 가져오는데, 마치 과거 힙합 음악이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부분을 떠올리게 만든다. 여기에 보컬로서의 진가가 드러나는 ‘A-Men’부터 ‘Easy’까지 곡은 비슷한 결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서 다채로운 표현을 구현한다. 여기에는 일렉트로스윙의 요소까지 담겨 있는데, ‘Seoul Train (Interlude)’가 상대적으로 올드 스쿨 하우스를 연상케 하면서 그 앞뒤로 배치된 곡이 비슷한 영향을 받은 것이 느껴진다. ‘We Will Rock You’는 그래서 앨범을 대표하는 곡 중 하나로도 손색이 없다. 앞서 다섯 곡에서 선보였던 요소들이 고루 담겨 있으면서도 달리의 장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달리는 지금까지 부지런히 싱글을 발표했다. 특히 2020년부터 지금까지 10개의 싱글을 발표했고, 뮤직비디오도 두 편을 공개했다. 달리는 이미 2000년대 밀림이 있던 시절부터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긴 시간 음악을 해왔다. 그 시간 동안 달리는 이제 완성도 높은 음악을 향해 가고 있고, 멋진 작품을 내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해온 만큼 그는 앞으로 오랜 시간 좋은 작품을 내지 않을까 싶다. 그런 행보의 기반이 되는 내공은 이번 작품이 증명한다.

 


Editor / 블럭

이주영 [발라드]

앨범의 라이너에는 ‘새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오래된 노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그렇게 이 앨범을 만들었다고 쓰여있다. 레코딩의 형태로 발표되지 않았을 뿐 사실 긴 시간 동안 라이브에서 계속 불려왔을 노래들. 라이브클럽 ‘빵’의 이주영을 기억하고 사랑하던 이들에게 이 발라드 소품집은 그래서 무척이나 근사한 선물이 될 거 같다.

 


 

이주영
발라드
2021.11.20

 

‘이주영’이란 이름이 인디 음악 리스너들에게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는 아마도 2019년에 발표한 첫 정규앨범 [이주영]을 통해서일 거 같다. 매년 적어도 한두 장씩은 씬을 들썩이게 만드는, 대중과 평단이 모두 뜨겁게 반응하여 한동안 온통 그 음악가, 작품 이야기로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앨범들이 있는데 솔직히 내 기억에 [이주영]이 그런 거창한 반향을 이끌어낸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 – 씬의 음악가들, 그리고 업계 종사자들 – 사이에서 이 앨범을 주목하고 호평하는 분위기가, 그것이 ‘시끌시끌’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웅성웅성’이라곤 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스물스물 피어나 부풀어 오르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그리고 이듬해 초 한국 대중음악상에서 이주영은 ‘최우수 포크 – 음반’, ‘최우수 포크 – 노래’, 그리고 ‘올해의 신인’까지 총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Official Audio] 이주영 – 조금 늦은 이야기

 

반쯤은 농담으로 딴죽을 걸어보자면 사실 [이주영]은 포크 앨범이 아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발라드’ 앨범이라 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사실 이 해에 최우수 포크 앨범, 노래 부문을 모두 수상한 ‘천용성’의 앨범 또한 굳이 따지면 포크 앨범은 아니다) 아무튼 한대음에는 ‘발라드’라는 부문이 따로 없기 때문에 편의상 이렇게 분류되었으리라- 대충 이렇게 여기기로 한다.

 

딴죽 하나 더. 이 앨범을 발표한 2019년 시점에서 ‘이주영’은 신인이 아니다. 2016년부터 2019년 사이 산발적으로 몇 개의 싱글을 발표한 적이 있고, 사실 실제로 음악을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이다. 1994년에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수상한 것이 공식적인 첫 등장이고, 이후 2005년부터는 라이브클럽 ‘빵’에서 계속 라이브 활동을 해왔다. ‘1집’의 발매 시기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레코딩 아티스트’로서의 이주영을 신인으로 볼 수는 있겠지만 ‘뮤지션’ 이주영은 이때도 이미 자신만의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한 베테랑이었다.

 

여기서 잠시 화제를 전환하여 ‘발라드’에 대해 잠시 얘기해보기로 한다. 바야흐로 케이팝이 전세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사실 발라드야말로 그 이전 한국 가요의 가장 특징적인 장르가 아니었을까? 시대의 변천을 거치며 팝, 포크, 록, 재즈, 알앤비, 클래식 등 여러 해외 음악의 형식들을 받아들이며 형성되고 발전했지만 결국 그 어느 것에도 온전히 종속되지 않는, 그 결과로 오직 한국에만 존재하는 전혀 다른 무언가로 탄생한 장르, 스타일이 발라드다. ‘한국적 발라드’, ‘한국식 발라드’라 흔히 표현하지만 사실 애초에 태생적으로 한국에만 있는 장르라 봐도 무방한 이 스타일은 그 특유의 – 종종 신파적인 – 서정성으로 예나 지금이나 다양한 세대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주영 정규 2집의 제목은 [발라드]다. 제목 그대로의 작품으로 상기한 ‘한국식 발라드’의 클리셰라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을, 어떤 의미에선 그야말로 통속적인 감성으로 가득한 아홉 개의 악곡을 담았다. 1집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썼던 노래들로 구성했지만 되려 1집 수록곡들보다 더 오래 전, 그러니까 클럽 ‘빵’에서의 커리어가 시작된 2005년이라는 시점을 전후하여 쓴 곡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먼 과거에 만든 음악들을 지금으로 불러와 지금의 리스너들에게 납득시키는 작업, 게다가 다양한 시기에 만들어진 곡들인 만큼 다 같은 ‘발라드’들인데도 저마다 미묘하게 결이 달라 이들 각각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새롭게 입혀줘야 하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이를 돕기 위해 프로듀서, 베이시스트 ‘정현서’가 가세해 앨범 전체를 함께 프로듀싱하고 전곡의 편곡에 참여했다. 1집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했던 기타 장인 ‘함춘호’는 이번에도 대부분의 곡에서 예의 근사한 기타 연주를 제공했고 앨범의 마지막 곡이자 리드 싱글로 선공개되기도 했던 ‘눈이 내린다’에선 ‘이아립’의 반가운 목소리도 만날 수 있다.

 

아마도 라이브에서는 최소한의 편성으로 연주되었을 이 모든 오래된 노래들은 이처럼 여러 음악가들의 조력 아래 새로운 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났다. 피아노 선율을 중심으로 유려한 현악이 가미되어 그야말로 ‘한국식 발라드’ 그 자체인 곡(편지, 사월에 피는 꽃, 눈이 내린다)이 있는가 하면 클래시컬한 나일론 기타의 선율만으로 풀어가는 어쿠스틱한 곡(5월 23일, 공책과 연필과 그리운 이의 사진)이나 그에 준하는 미니멀한 악기 구성으로 보컬을 최대한 전면으로 끌어내는 곡(바람이 없는 밤, 우산), 한편으로 90년대에 많이 등장했던 알앤비 풍 가요와 닮은 곡(짜증이 나)까지, 2021년에 다시 태어난 이주영의 발라드들은 그 면면이 참으로 다채롭다. 내용적으론 한국 발라드의 대표 소재인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주로 화자의 입장에서 이별을 겪은 이의 내밀한 심정을 때론 절절하게, 때론 덤덤하게 노래하고 있다.

 

앨범의 라이너에는 ‘새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오래된 노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그렇게 이 앨범을 만들었다고 쓰여있다. 레코딩의 형태로 발표되지 않았을 뿐 사실 긴 시간 동안 라이브에서 계속 불려왔을 노래들. 라이브클럽 ‘빵’의 이주영을 기억하고 사랑하던 이들에게 이 발라드 소품집은 그래서 무척이나 근사한 선물이 될 거 같다.

 

[MV] 이주영 – 사월에 피는 꽃

 


Editor / 김설탕

지재일 트리오 [Eternity]

세 사람 간의 밸런스는 애써 완벽한 정삼각형을 그리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삼각형 변의 길이와 모습이 바뀌는 것처럼 오히려 그것이 더욱 유연하면서 적어도 삼각형이라는 도형의 성격은 계속 가져간다.

 


 

지재일 트리오
Eternity
2021.10.19

베이스 연주자 지재일은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 연주자로 활동 중인 음악가다. 앨범 소개글에도 쓰여 있지만 그는 상대적으로 늦게 유학을 택했고, 힘겨운 적응 기간을 거쳤지만 결국 미국에서도 자리를 잡는 데 성공한다. 이후 그곳의 생활이 익숙해졌을 때 즈음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다시 한번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스토리를 어느 정도 알고 듣는 것과 그냥 듣는 것에는 어느 정도 감상에 있어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그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싶다면 그의 유튜브 채널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재일 유튜브 바로가기’

 

 

앨범에는 그가 겪어온 10년이라는 스토리도 있지만, 스토리 안에 담긴 감정을 좀 더 만날 수 있다. 그 안에는 차분함과 내면의 갈등부터 의지와 에너지까지 고루 담겨 있다. 베이스가 리더라고 하여 베이스가 종일 전면에 나서는 것도 아니며, 베이스는 곡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다 적재적소에 직접 소리를 통해 곡의 감정이나 표현을 완성한다. 자연스럽게 앨범에서 드러나는 건 밴드리더로서, 그리고 작곡가로서의 지재일이다. 물론 연주자로서의 역량은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다. 특히 지재일 외에도 트리오를 구성하는 박예닮과 박힘찬의 연주도 놀랍다. 세 사람 간의 밸런스는 애써 완벽한 정삼각형을 그리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삼각형 변의 길이와 모습이 바뀌는 것처럼 오히려 그것이 더욱 유연하면서 적어도 삼각형이라는 도형의 성격은 계속 가져간다. 특히 그레이 바이 실버 활동으로 더욱 이름을 알린 박예닮은 연출적인 측면에서도, 기술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데, 여기에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사이드맨을 맡아오고 있으며 애즈무드부터 자신의 이름을 건 쿼텟까지 분주하게 활동 중인 박힘찬은 앨범에서 멜로디를 얹지만 때로는 중심을 잡아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 트리오를 삼각형이라는 도형에 비유한 것이다.

 

“이제 그만 놓을까”의 후반부 무너지는 듯 균형을 잃지 않는 연출부터 “백색소음”의 리드미컬함까지, 여덟 곡 안에는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알 수 없지만 쉽지 않았던 여정과 토로가 담겨 있다. 그것은 구구절절 직접적인 언어로 풀어내지 않더라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게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앨범의 제목은 영원함을 의미한다. 그 영원함이라는 것이 가리키는 방향이 어디인지는 모두 직접 들으면서 생각해보자.

 

 


Editor / 블럭

배현이 [위위]

형식과 내용이 하나가 될 때 탄생하는 진정성 있는 시너지야말로 그의 음악이 “틀을 무시하고도 마음에 꽂혀”버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세상 모든 완벽하지 못한 것들을 향한 굳세고 다정한 시선, 그 시선으로 찬찬히 덧칠해갈 그의 오묘한 음악 세계는 이제 막 도입부를 지나는 중이다.

 


 

배현이
위위
2021.11.15

 

메시지를 설파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 논리 정연한 언어를 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겠지만 그것이 이성과 감성을 모두 엮을 수밖에 없는 예능의 영역에 속한다면 직설적인 화법은 되려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배현이의 화법은 남다르다. 2017년 즈음부터 ‘알음다름’, ‘골드피쉬(Goldfish)’ 등의 그룹을 거쳐 이제는 솔로 아티스트로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때로는 너무나도 명료하고 직접적으로 꼬집다가도 때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능청스러운 태도로 관망하며 청자와의 밀당을 반복한다. 거기에 배현이 특유의 음악성이 더해져 탄생하는 절묘한 설득력은 작년 말, 힙합엘이(HIPHOPLE)와 오픈창동(OPCD)이 주최한 오디션 ‘WMM 2020’에서 선우정아의 극찬과 함께 최종팀에 선정되는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선우정아의 심사평이 인상적이다. 당시 선정작이었던 배현이의 ‘알바비’를 두고 “틀을 무시하고도 마음에 꽂혀버리는” 음악이라 이야기한 선우정아의 감상은 결국 배현이라는 아티스트가 어떻게 자신의 메시지를 청자에게 전달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11월, ‘알바비’를 포함하여 총 12트랙으로 발매된 그의 첫 번째 정규앨범 [위위]는 이러한 면이 십분 강조된 작품이다. 틀을 무시하는, 그러니까 자유분방한 그의 작법은 가사와 사운드 전반에 걸쳐 이어지고 있는데, 앨범 제목에서부터 은연중에 드러나는 사회비판적인  – 사회에 만연한 수직관계를 꼬집는 – 무거운 주제 의식은 이렇게 유들유들한 중화제 덕분에 받아들이기에 부담 없는 수준으로 청자를 맞이한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재치 있고 익살스러운 가사의 표면적인 특징을 넘어 작품 속 독특한 화자 설정의 덕이기도 하다. 부당하다 느끼는 일련의 현상 속에서 입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곡의 화자는 앞 단에서 언급했듯, 때로는 직설적이고 적극적으로 반기를 들기도, 자조와 체념 섞인 태도로 현실을 비꼬기도 한다. 그리하여 ‘사회비판’이라는 사뭇 진지한 배현이의 메시지는 시시각각 그 표정을 달리하는 화자로 인해 능구렁이처럼 청자의 마음에 안착하게 된다.

 

사운드적인 측면 또한 배현이의 음악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다. 곡을 이끌어가는 드럼과 신디사이저 등의 기본적인 악기뿐만 아니라 수시로 등장했다 사라지며 겹겹의 레이어를 만들어내는 수많은 사운드 소스들은 부수적인 장치라고 하기엔 그 비중이 너무도 커 사실상 앨범 전체 사운드의 5할 이상을 이러한 ‘소리들’이 차지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더불어 본인의 목소리를 이리저리 왜곡하여 마치 악기의 하나처럼 활용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이러한 총천연의 소스들이 만들어내는 구성은 그의 자유분방함이 청각적으로도 발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사운드적인 특징이 앨범의 주제의식과 그 맥락을 함께하며 결과적으로 배현이라는 아티스트의 메시지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 인터뷰에서 깨끗하고 명료한 사운드보단 지저분하고 왜곡된 사운드를 선호한다고 밝힌 바 있기도 한 배현이의 음악적 취향은 결국 12곡에 걸쳐 그의 시선이 머무는 대상들과 유사한 속성을 공유한다. 타인에 의해 부정당하고 또 소외당하기도 하는 수많은 삶의 모습이 누군가의 눈엔 완벽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지닌 ‘완전한’ 인생이라 외치는 배현이의 다정한 시선은 지저분하게 왜곡된 소스들로도 사운드적인 절묘한 균형을 이뤄내는 그의 작업관과 일맥상통한다. 그렇게 그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반영된 소리의 집합은 가사로서 언어화된 메시지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동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리하여 비로소 모든 요소가 음악으로 귀결되어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형식과 내용이 하나가 될 때 탄생하는 진정성 있는 시너지야말로 그의 음악이 “틀을 무시하고도 마음에 꽂혀”버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세상 모든 완벽하지 못한 것들을 향한 굳세고 다정한 시선, 그 시선으로 찬찬히 덧칠해갈 그의 오묘한 음악 세계는 이제 막 도입부를 지나는 중이다. 

 


Editor / 월로비

카코포니 (cacophony) [Reborn]

생의 의지와 에너지가 느껴지는 작품을 통해 다시 태어난 카코포니를 응원하게 되는 것은 물론, 지금도 매일 삶이 꺾여가고 있으며 위태로운 이들에게 이 앨범과 영화를 권해본다.

 


 

카코포니 (cacophony)
Reborn
2021.11.13

 

앨범 소개글과 작업기를 통해 앨범이 지니는 의미와 의도를 어느 정도 뚜렷하게 보여준 카코포니는 이 앨범에 많은 것을 부여한다. 의미에 있어서도, 서사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물리적으로도 그렇다. 앨범과 함께 영화도 공개했고, 영화 제작을 위해 많은 인력이 함께 했다. 이미지, 사진이 함께 공개되었고 그 안에는 안무도, 프로그램 북도 있다. 이번 작품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카코포니가 직접 쓴 글, 그리고 영화까지 모두 감상해보자. 그래야 앨범을, 앨범에 담긴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앨범만 들어도 작품이 극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드라마틱한 전개와 발화자의 표현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연출을 완성시키는 것은 전자음악적 요소, 소리가 쌓이는 방식과 코러스, 공간감부터 곡 하나에서도 목소리를 바꿔가며 연출자로서, 그리고 퍼포머로서 자신이 구현하고자 하는 바를 훌륭하게 채워나가는 카코포니다. 앨범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상대적으로 적은 폭의 완급 조절로 밀도 높게 작품을 끌어나가는데, 역설적으로 그러한 부분이 한 편의 극을 더욱 자연스럽게 만든다. 또한 카코포니가 담고자 했던 메시지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카코포니라는 음악가가 처음 음악을 하게 된 계기부터 문소문 프로젝트까지를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그러한 부분을 알지 못해도 충분히 좋은 감상을 할 수 있을 만큼 작품 자체만으로도 서사에 있어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참 오묘한 두 가지 포인트인데, 우선 한 가지 포인트는 앨범만 들어도 전자음악적 구성과 카코포니의 보컬, 가사는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하나의 포인트는 영화와 프로그램북, 그리고 카코포니의 과거 작품과 작업기까지 모두 접하면 그 감상의 층위나 느낄 수 있는 정도가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영화는 비메오에서 유료로 감상할 수 있으며, 한 편의 연극 같으면서도 그 안에 담긴 연출은 가상의 공간과 무대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며 카코포니의 생애부터 감정까지 많은 부분을 느낄 수 있다. 연여인이 만든 무대부터 주인공 카코포니의 표정까지, 영화는 자연스럽고 좀 더 서사적인 호흡을 지니고 있어 앨범만 들었을 때보다 그 감정의 진폭이 덜 크게 느껴졌고 대신 그만큼의 설득력을 더욱 지니고 있다. 생의 의지와 에너지가 느껴지는 작품을 통해 다시 태어난 카코포니를 응원하게 되는 것은 물론, 지금도 매일 삶이 꺾여가고 있으며 위태로운 이들에게 이 앨범과 영화를 권해본다. 특히 나처럼, 카코포니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라면 아마 더 크게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ditor / 블럭

방민혁 [Tech:No.1]

내적 댄스를 필요로 하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음악을 듣고 싶은 이들에게, 그리고 조금은 정적인 구석이 있으면서도 아기자기한 요소를 지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미니멀한 테크노, 하우스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방민혁
Tech:No.1
2021.11.05

 

일전에도 이 공간에 글을 쓴 적 있지만, 방민혁은 일찌감치 전자음악과 힙합, 알앤비, 재즈를 관통하는 음악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뛰어난 보컬리스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멋진 프로듀서,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 구현의 폭이 넓은 음악가인 그는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을 선보여 왔다. 때로는 디자이너로서 앨범 커버를 드러냈고, 비트가 강하게 느껴지는 댄서블한 음악부터 감성적인 발라드 넘버, 매력적인 사운드 디자인으로 소리에 집중하게 되는 곡까지 다양한 곡을 선보여 왔다. 그래서 늘 호기심이 가는 음악가 중 한 명이다. 더불어 코로나-19가 끝나면 꼭 라이브로(혹은 그의 라이브 셋으로) 만나고 싶은 음악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렇게 흥미로운 음악가인 그가 이번에는 테크노로 가득 채운 앨범을 발매했다.

 

 

방민혁은 테크노 비트를 만드는 것이 2017년부터 자신의 취미생활이자 스트레스 해소의 일환이었다고 하며,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이 쌓여 앨범으로 나오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믹스테입과 같은, 그러니까 편하게 자신의 작업을 드러내는 방식의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앨범에 결이 없거나 작품에 있어 아쉬움이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방민혁만의 테크노 음악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뚜렷하게 짐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고, 방민혁이라는 사람의 음악에서 온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Alcoholic’에서 드러나는 세련된 전개의 폭이나 ‘Busan’에서 드러나는 재즈의 영향은 물론, 초반부 ‘0709’와 ‘1220’에서 드러나는 미니멀 테크노의 성향까지 음악가 특유의 섬세함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대목에서는 방민혁이라는 음악가가 지금까지 선보여 온 작품들이 구성하는 세계와 이 작품이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전반적으로 방민혁의 테크노는 하드코어 테크노나 인더스트리얼 테크노처럼 선이 굵고 공격적이며 거친 느낌의 테크노가 아니라, 앞서 말한 것처럼 미니멀 테크노, 딥 테크노 계열에 가깝다. 깔끔하고 선명하면서도 적은 가지의 소리로 폭을 흔드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여기에 ‘Lucid Dream’이나 ‘Summit’은 좀 더 테크노 팬들이 좋아할 것 같은 그러한 사운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게 각각의 곡뿐만이 아니라 앨범이 첫 곡부터 후반부로 이어지면서도 천천히, 켜켜이 소리가 쌓이는 것을 듣는 재미가 있다.

 

앨범은 방민혁이라는 음악가에게 관심이 있다면 당연히 들어보겠지만 내적 댄스를 필요로 하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음악을 듣고 싶은 이들에게, 그리고 조금은 정적인 구석이 있으면서도 아기자기한 요소를 지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미니멀한 테크노, 하우스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테크노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ditor / 블럭

evenif [It’s always in my mind and we’ll be all right]

서로의 자리를 내어주는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각자가 더욱 빛날 수 있는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이븐이프의 음악이 뿜어내는 기분 좋은 바이브의 이유이지 않을까. 마지막 트랙의 제목이 ‘Outro (Intro)’이라는 점에서 이븐이프라는 이름으로 선보일 또 다른 시작을 자연스레 기대하게 되는 것은 역시나 질리지 않는 이들의 맛깔스런 담백함 때문일 것이다.

 


 

evenif
It’s always in my mind and we’ll be all right
2021.10.26

 

그 맛이 담백해서 몇 번이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 향이 강한 조미료 대신 재료 본연의 맛을 억지스럽지 않게 버무린 이러한 음식들은 부담 없이 깔끔한 뒷맛으로 계속해서 손이 가게 만든다. ‘담백하다’라는 표현은 이렇듯 음식을 묘사할 때 주로 쓰이곤 하지만 그 모양이나 성격이 ‘담백한 음식’처럼 과하지 않고 산뜻한 경우, 우리는 다양한 대상을 향해 ‘담백하다’라는 표현 사용하곤 한다.

 

이번에 소개할 3인조 밴드 evenif (이하 ‘이븐이프’)의 음악 또한 마찬가지다. “여백과 절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본인들을 소개할 만큼 담백하고 균형 있는 사운드를 자랑하는 이들은 지난달 26일, 데뷔 앨범이자 첫 정규 앨범인 [It’s always in my mind and we’ll be all right]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물론 데뷔 이전부터 이어진 다수의 공연 경험과 그 흐름의 대미를 장식한 제3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수상 경력은 이븐이프가 선보이는 음악의 완성도가 결코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러한 완성도 있는 ‘담백함’은 이들이 음악을 이끌어가는 방식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최소한의 악기 조합을 통해 주조되고 있는 이븐이프의 소리는 많은 밴드가 취하고 있는 전형적인 구성(기타, 키보드, 베이스, 드럼) 속에서도 악기 하나하나가 빛날 수 있는 발판이 되는데, 2번 트랙 ‘The Night (Album V)’를 예로 들자면 리드미컬한 키보드 리프의 유무로 인해 되려 벌스 파트의 베이스가 확연히 강조되는 효과를 낳는 식이다. 바통 터치하듯 한순간을 빛내고 다음 악기에게로 조명을 넘기는 진행 방식은 2번 트랙뿐만 아니라 앨범 전반에 걸쳐 이어지고 있으며 그 각각의 소리가 과하지 않되 흥겨움을 유발하는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어 말 그대로 ‘담백한’ 소리를 시종일관 유지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븐이프의 음악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로 완성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7번 트랙 ‘Circle Around You’의 도입부를 담당하는 기타 리프 사운드가 사그라들며 시작되는 베이스와 드럼, 보컬의 미니멀한 조합은 마치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한순간 정적에 휩싸인 거리에 나설 때의 고요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이러한 감상은 단순히 미니멀한 조합이 가진 전형적인 효과 이전에, 상대적으로 큰 존재감을 차지하는 기타나 키보드의 ‘완벽한 퇴장’이 선행됐기에 가능한 대비 효과이자 어떠한 요소를 ‘있어야 할 곳에 있게’ 만드는, 아니 ‘있어야만 할 곳에 있게’ 만드는 이븐이프의 “여백과 절제”의 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여백은 그 자체로 이븐이프의 음악을 단단하게 완성한다.

 

 

많은 소리를 중첩하지 않되 악기 하나하나를 돋보이게 하는 힘은 비단 곡 구성뿐만 아니라 전곡을 믹싱, 마스터링한 이븐이프의 보컬이자 키보드, 기타를 담당하고 있는 박준영의 역량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각각의 소리가 개별적인 완성도를 갖출 수 있도록 하는 멤버들의 노련미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박준영, 그리고 베이스의 민지선, 드럼의 박성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온 나름의 경력자이기도 한데, 적지 않은 수록곡에 포함된 긴 연주 파트에서는 이들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오랜 기간 맞춰온 합에는 더 이상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서로의 자리를 내어주는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각자가 더욱 빛날 수 있는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이븐이프의 음악이 뿜어내는 기분 좋은 바이브의 이유이지 않을까. 마지막 트랙의 제목이 ‘Outro (Intro)’라는 점에서 이븐이프라는 이름으로 선보일 또 다른 시작을 자연스레 기대하게 되는 것은 역시나 질리지 않는 이들의 맛깔스런 담백함 때문일 것이다.

 


Editor / 월로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