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희 (Jeon Jin Hee)

 

전진희의 새로운 도전

 


2집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라는 앨범 제목부터 새 EP의 제목, 타이틀곡 ‘여름밤에 우리’까지 전진희의 최근 음악에는 유독 ‘여름’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전진희의 새 앨범 [summer,night]의 댓글에 “짙은 여름색 전진희”, “여름엔 전진희, 겨울엔 강아솔”과 같은 내용이 달리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심지어 어떤 이는 “싫어하던 여름도 좋아졌어요”라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전진희는 여름에 관하여 “정말 싫은 계절이었다”라고 언급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이 사랑을 이야기하는 타이틀곡 ‘여름밤에 우리’에 대해서는 “울컥하게 만드는 곡”이라고 설명한다.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답이지만, 아래의 인터뷰를 끝까지 읽고 나면 그의 말이 어떤 의도였는지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연주 앨범 [Breathing]과 음악 동아리 ‘작은평화’의 추후 계획 그리고 전진희가 준비하고 있는 ‘비밀 프로젝트’까지 그의 팬이라면 놓치면 안 될 내용이 가득하다.

 


 

 

지난 7월 1일에 EP [summer,night]이 발매됐죠. 그때와 지금은 날씨도, 상황도 많은 게 바뀌었는데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지금까지 앨범을 많이 냈는데 그중에서도 반응이 뜨거웠어요. 섭외부터 동료, 팬분들의 피드백까지 연락을 많이 받았거든요. 발매 당시의 날씨가 ‘rain, summer, night’이나 ‘night’를 듣기 좀 그랬다면, 지금은 딱 좋아진 것 같아요.

 

EP [summer,night]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여름밤에서 느껴지는 여러 가지 정취와 기분을 담고 싶었어요. 어느 날 돌아보니 제가 여름에 관해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름에 관한 곡이 쌓였어요. 그것들을 나중에 정규 앨범에 잘 섞어서 풀 것인지 아니면 한 번에 모을 것인지 고민하다가 모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완성된 앨범을 듣다 보면 여름밤의 심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기분이 들어서 재밌네요.

 

 

이번 EP도 그렇고 전진희 님의 음악에서는 ‘여름’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이더라고요. 여름을 좋아하시나요?

 

사실 여름은 정말 싫은 계절이었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을 ‘비수기’라고 표현하곤 했을 정도예요. 여름에는 발라드 듣기 싫어지잖아요. 저 같아도 무더운 날씨에 지치고 진이 빠지면 흥을 돋워주거나 살랑살랑 흔들 수 있는 음악을 들을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여름이 비수기가 아닐 수 없을까’라는 생각에 꽂혔어요. 나도 여름을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동시에 싫은 것 투성이였던 여름이 끝나는 게 서운하다는 생각이 몇 해에 걸쳐서 들었어요. 잠도 안 오고, 에어컨 바람은 너무 싫고, 버틴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 여름이 9월 1주 차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확 끝나버리잖아요. 이런 점이 어쩌면 사랑이나 감정, 세월같이 지나가 버린 것들과 되게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당시에는 견디느라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까 아름다운 거예요. 쨍한 햇빛과 살아있는 것 같은 나뭇잎의 색, 비 내린 후의 하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하늘의 색은 여름에만 볼 수 있던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더 여름에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타이틀곡 ‘여름밤에 우리’는 그런 내용이 담겨 있겠네요.

 

‘여름밤에 우리’를 만들면서 느리고 슬픈 음악을 만들 때보다 더 울컥한 감정을 느꼈어요. 제가 솔로로 낸 곡 중에서 BPM도 가장 빠르고, 신나고 밝은 느낌인데도 곡이 완성될수록 이상하게 울컥하더라고요. 듣다가 차 안에서 눈물이 흐르기도 했고요.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이 곡은 결국 여름밤이 그리워서 만든 곡인 것 같아요. 제가 젊었던 때에는 젊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그러다 서른이 훌쩍 넘은 시점부터 ‘끝나버린 건가? 생이라는 게 사실 이때 끝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벽을 마주친 것 같았어요. 인생이라는 게 고독한 게 아닌가 싶었고요. 그런 감정에 휩싸였을 때가 이 곡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젊은 날의 젊음에 대해 곱씹고, 생각하고, 지금은 어떤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이 곡의 가사가 나오고, 멜로디가 나오고 또 사운드가 나오게 된 거죠.

 

 

곡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앨범 아트워크도 비슷한 맥락일까요?

 

사람들이 ‘여름밤에 우리’를 듣고 나서 밝고 반짝이는 여름밤의 이미지가 어울릴 것 같다고 말했거든요. 근데 제게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지금 앨범 아트워크 사진을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어요. 고독하고 차가운 여름밤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리운 ‘여름밤’이 가사와 멜로디에서 드러났다면 ‘우리’라는 부분은 wave to earth의 피처링으로 구현된 것 같아요. 전진희 님의 목소리 위로 피처링 게스트의 목소리가 쌓이는 방식으로요.

 

편곡자인 김다니엘 씨의 의도였어요. 제가 노래를 다 부른 뒤에 김다니엘 씨가 어느 부분을 맡을지 고민을 많이 했죠. 아무리 생각해도 제 목소리가 빠지면 좀 이상하더라고요. 그래서 제 목소리는 중심으로 가고, wave to earth의 목소리가 작게 등장해서 뒤로 갈수록 존재감이 점점 커지는 식으로 완성이 됐어요. 저는 그게 정말로 너무 좋았어요. 그 다이내믹 때문에 울컥했던 것 같아요. 제가 혼자였던 날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때는 더 많은 사람이 함께였으니까요. 다 같이 있는 그림이 그려지면서 어디론가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사운드에서는 넓게 퍼져있는 소리에서 여름밤의 정취가 표현된 것 같아요.

 

믹스할 때도 와이드한 사운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죠. 저도 소리 톤에서 장면이 그려지는 걸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역시 저보다는 편곡을 해준 김다니엘이 더 많이 고민했겠죠. (웃음)

 

전진희 님의 지난 음악들을 좋아하시던 분들은 ‘여름밤에 우리’를 듣고 당황하셨을 것 같아요.

 

제 목소리는 전혀 록이 아니지만, 어쨌든 피아노라는 주체를 조금 벗어났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피아노가 저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면, 제가 자주 듣는 음악은 원래 이런 음악이거든요. 피아노 위주나 슬픈 곡을 찾아 듣는다기보다는 얼터너티브한 음악을 항상 곁에 두고 있어요. 사운드를 유심히 연구해보기도 하고요. 실제로 wave to earth가 하는 음악의 사운드를 정말 사랑해요. 음악을 듣자마자 이 친구들한테 연락해야겠다 싶었어요.

 

 

어떻게 본다면 사랑하는 그 소리를 표현할 기회가 적었던 거네요.

 

1집 [피아노와 목소리]는 제목 그대로 피아노와 목소리로만 만들겠다고 스스로 약속을 했었어요. 2집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에서부터 제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던 것 같아요. ‘낮달’에는 그런 시도가 담겨 있고요. 들어보시면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레이어가 되어 있어요. 제가 좋아하고, 추구하고 싶은 사운드를 조금씩 건드려본 거예요.

 

말씀해주신 ‘본질’이란 무엇인가요?

 

제 본질은 피아노에 있다고 생각해요. 피아노 연주로만 구성된 ‘rain, summer, night’를 1번에, 피아노와 목소리로 구성된 ‘night’를 마지막에 넣은 이유도 비슷해요. 저에게도 모험이었어요. ‘여름밤에 우리’는 여름과 당연히 어울릴 거로 생각했는데, 나머지 두 곡은 자투리 곡이 될 것 같아서 속상했거든요. 근데 생각보다 비 오는 날이나 여름밤의 감정이 잘 표현된 것 같아요. 생각보다 여름을 고독하게 보내시는 분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night’가 끝난 뒤 앨범을 연이어 들으면 세 곡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저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묻어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rain, summer, night’는 저의 본질이고 ‘여름밤에 우리’는 제가 조금 더 시도해보고 싶은 거예요. ‘night’는 1집 [피아노와 목소리]와 2집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를 만들 때의 제 기분과 관련이 있고요. 그래서 세 곡을 하나의 앨범으로 만들었어요. 세 곡이면 싱글 사이즈인데 EP라고 이야기한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인트로, 아웃트로의 개념이 아니라 저라는 사람이 확실하게 담겨있는 것 같았거든요.

 

한편으로 ‘rain, summer, night’는 지난 연주 앨범 [Breathing]과 연결되는 듯한 기분도 들었고요.

 

의도했어요. 친구들은 제게 ‘rain, summer, night’가 아깝다고, 앨범에 안 넣었으면 좋겠다고 말했거든요. 다른 연주곡을 모아서 두 번째 연주 앨범에 수록하는 게 어떻겠냐고요. 저도 ‘여름밤에 우리’ 앞뒤로 이 곡들을 섞으면 이도 저도 아닌 앨범이 될 것인지, 아니면 정말 저다운 앨범이 될지에 관한 고민이 있었죠. 발매 3주 전까지도 고민하다가 수록하기로 마음을 굳혔어요. 결과적으로 잘했다 싶어요.

 

 

[Breathing]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당시 앨범을 ‘살려고 만든 앨범’이라고 언급하셨었는데요. 앨범을 만드는 과정이 회복에 도움이 되었을까요?

 

현재진행형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앨범을 냈던 당시에는 인터뷰나 기사에서 마치 회복이 다 된 것처럼 나왔었는데요. 거기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내가 이 정도까지 이야기하고 다녔으면 당연히 회복해야지” 같은 식으로요. 저 자신에게도 ‘회복이 됐다’라고 되뇌었고요. 근데 사람이 쉽지 않더라고요. 다시 돌아간 때도 있었고요. 그래서 현재진행형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어쨌든 회복하려고 앨범을 만든 것은 맞아요.

 

[Breathing]은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공개하시던 연주곡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죠. 회복을 위해 연주를 하셨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따지자면 제게는 [Breathing]에 들어가 있는 곡들을 만들고, 연주하는 게 가장 자연스러워요. 그 앨범은 애를 써서 만든 게 아니라 뱉듯이 나온 앨범이거든요. 늘 가사가 있는 음악을 발표해왔지만, 사실은 그게 저인 거예요. 지금까지 연주 앨범을 내지 않았던 이유는 일단 제게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재즈 연주에 가까운 방향으로 앨범을 만들까 싶다가도, 제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들은 [Breathing]에 수록된 곡들이니까요. 그러다 제 안에서 확신이 생겼을 때쯤 [Breathing]이 나왔죠. 가사와 노래가 있는 곡들이 먼저 나오면서 순서가 뒤바뀌었지만, 제 시초는 [Breathing]처럼 피아노로 표현된 곡들이에요. 지금도 쌓여있는 연주곡들이 많아요. 언젠가 자연스럽게 또 다른 연주 앨범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뱉듯이 나온 앨범’이라는 점에서 [Breathing]도 일종의 재즈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정말 존경하는, 재즈를 하시는 교수님이 제게 “[Breathing]도 재즈 아냐? 다 즉흥으로 한 거라면서”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재즈라는 장르에 대해 더 많은 연구와 자기 단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재즈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지난 6월에도 사운드클라우드에 ‘Breathing in June’을 업로드하셨어요. 처음 업로드할 때와 지금은 심정이나 상태가 많이 다르실 것 같아요.

 

상황은 확실히 다르긴 하죠. 그런데 저라는 사람은 변함이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여전히 요동치는 감정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하지만 저를 덮치고 먹어 삼킬 것 같은, 좋지 않은 감정들을 이겨내려고 어떻게든 노력하고 있어요. 올해 6월의 호흡에는 아마도 그런 마음이 담겨 있었겠죠.

 

[Breathing]에는 어떤 음악이 담겨있나요?

 

당시 저는 음악적으로 저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지쳐있었어요. 평생 열심히 연습하고, 음악을 만들고, 일하며 살았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증명해야 하나 싶었어요. 제가 왜 증명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었고요. [Breathing]은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음악이에요.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것들이거든요.

 

전진희라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담겨있는 게 가장 중요했던 것이네요.

 

자연스러움이라는 의도와는 달라서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렸다가 지운 음악들도 있어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다 보니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생기고, 저도 곡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이 느껴지더라고요. 매달 호흡하겠다고 했는데 어쩌지 싶어서 30일, 31일 밤에 뭐라도 해보겠다고 피아노 앞에 앉은 적도 있어요. (웃음) 그렇게 억지스럽게 나온 곡들은 올렸다가 지우고, 지우지 않더라도 앨범에는 넣지 않았어요.

 

 

[Breathing]은 ‘Breathing in January’부터 ‘Breathing in December’까지 내림차순으로 구성되어 있죠.

 

아무래도 12개월을 넣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았어요. 제가 이걸 4월에 시작했으니 4월부터 시작하는 게 맞지 않나 싶었는데 그래도 1월부터 12월까지 순서대로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수록곡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조회수였어요. 7월, 10월이 가장 높았고요. 10월은 ‘Breathing in October’입니다. ‘Breathing in October Ⅱ’는 그냥 제가 좋아해서 넣었어요. 하나만 넣어도 되는데, 그렇다고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첫 번째 10월을 뺄 수는 없잖아요.

 

타이틀곡이 ‘Breathing in September’인 것도 조회수의 영향인가요?

 

아니요. 그냥 제가 제일 좋아해서 골랐어요. 생각해보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타이틀곡을 잘 안 들었거든요. 같은 가수를 이야기해도 저는 9번, 10번 같은 자투리 곡 좋아하고, 정작 타이틀곡은 못 외웠어요. [Breathing]도 ‘Breathing in October’가 청취수가 가장 많으니 타이틀곡으로 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는데 제가 밀어붙였죠. 후회하고 있어요. (웃음)

 

본인을 기록하는 식으로 만든 곡이라면, 당시의 감정이나 상황이 담겨있을 것 같기도 해요.

 

‘Breathing in October’는 불안장애가 생긴 첫해에 쓴 곡이고 ‘Breathing in October Ⅱ’는 두 번째 해에 쓴 곡이거든요. 1년의 세월이 흘러서인지 곡의 분위기가 다르더라고요. 첫 번째는 10월의 덥기도, 춥기도 한 쓸쓸한 날씨 있잖아요. 병원에서 나와서 그 날씨 속을 천천히, 무겁게 걷는 느낌이라면 두 번째의 10월은 조금 가볍고 산뜻해진 느낌이 들더라고요.

 

지금도 계속 기록하고 계시죠.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이걸 3년이나 할 필요는 없잖아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요. 근데 댓글이 꽤 달려요. 제가 정식으로 발매한 앨범들보다 더 날 것의 댓글이요. 다이렉트 메시지도 많이 오고요. 이 음악들이 사람들의 날 것 같은 마음을 꺼낼 수 있나보다 싶어요. 동시에 2018년과 2021년의 7월은 완전히 다르잖아요. 어쨌든 자연스럽게 나오는 소리라면 아무 욕심 없이 기록하자는 생각으로 한 것 같기도 해요. 앨범도 아무 욕심 없이 만들었으니까요.

 

아티스트로서 꾸준함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게 있으신 걸까 싶었어요.

 

책임감으로 하면 못할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다른 얘기지만, 앨범도 즉흥적으로 내요. 언제부터 앨범을 만들고 이때쯤 내야겠다는 계획을 짜고 움직이지 않아요. [summer,night]도 발매 한 달 반 전에 계획을 세우고 무작정 날짜를 여쭤봤어요. 진상 고객 같은 거죠. (웃음) ‘낮달’도 그랬고요. 하고 싶어서, 내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에요.

 

 

전진희 님의 앨범을 즐기는 또 다른 방식이 앨범에 수록된 에세이인 것 같아요. [낮달]과 [summer,night]에 수록된 글을 모두 즐겁게 읽었어요. 이렇게 매번 에세이를 요청하는 이유가 있나요?

 

저도 에세이를 좋아해요. 제 음악을 듣고 무언가 떠오른다고 말씀하시는 피드백을 되게 감사히 여기고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박선아 작가님과 좋아하는 뮤지션인 이아립에게 부탁했어요. 둘의 글 쓰는 스타일을 알고 있으니까 믿고 맡겼죠. 저는 자기검열을 많이 하는 편인데, 저를 알고, 제게 애정을 주는 사람들이 보는 ‘제가 모르는 저’를 보는 일이 너무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하지 않을까 싶어요.

 

미디어에 비춰진 전진희 님과 실제 전진희 님의 성격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글을 써주신 두 분은 그런 전진희 님의 모습을 알고 계셔서 그런 글을 쓸 수 있던 게 아닐까 싶어지네요.

 

대부분 저를 참하고, 조용하고 우아한 사람일 거로 생각하시는 그렇지 않거든요. 제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 속 저는 철이 없고 웃음이 많은, 애 같은 유형에 가까워요. 그런데 워낙 고요하고 슬픈 노래들을 쓰다 보니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강아솔, 박현서, 신온유 님과 작은평화라는 음악 동아리를 하고 계시죠. 우선, 왜 동아리인가요?

 

상업적인 느낌이 들지 않기를 바랐어요. 작은평화로 큰 업적을 만들고 돈을 벌기보다는 우리를 위해 모였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고요. 모였을 때 부담스럽지 않고 기분이 좋았으면 했기도 하고요.

 

작은평화라는 이름은 하비누아주의 곡에서 따온 거겠죠?

 

강아솔이 작은평화라는 단어가 너무 좋았대요. 동아리의 취지에도 딱 맞는 것 같다며 이름으로 써도 되겠냐고 묻더라고요.

 

작은평화의 첫 번째 싱글은 ‘메리 크리스마스’였죠.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요?

 

[여름의 마음]이라는 제목의 싱글을 8월 중에 내려고 해요. 수록곡은 두 곡이고요. 제가 아닌 나머지 두 명이 곡을 쓰고 있어요. 공연도 준비하고 있어요.

 

 

 

2018년에 이설아 님과 함께 만든 곡 제목은 ‘크리스마스의 추억이’였어요. 언젠가 전진희 님이 홀로 이야기하는 크리스마스 노래를 들을 수 있을까요?

 

비밀인데… 사실 크리스마스 캐럴을 편곡한 앨범을 준비 중이에요.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싶어서 계획적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 때 꺼내 듣고 싶게 만들고 싶어요.

 

[summer,night]의 발매 공연도 준비되어 있죠.

 

예매가 끝났고 8월 중에 열려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격상 이후에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큰 이변이 생기지 않는 이상 공연을 할 것 같아요.

 

그 외의 여름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기타리스트 임헌일 오빠와 함께 만든 싱글 “울어도 돼요”가 7월 19일에 나와요. 8월에는 제 공연이 있고, <제2회 자라섬 온라인 올라잇 재즈 페스티벌>에 출연하고요. 작은평화 앨범이 나오고 나면 여름이 끝나있겠네요.

 

꽉 찬 여름이네요. 전혀 비수기가 아닌걸요.

 

학기 중에는 출강을 하다 보니 음악에 목말라 있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음악을 계속해야 하는 사람인데 학기 중에는 해야 하는 일들이 있으니까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여름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도 있어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하고 있죠. 너무 신나요.

 

마지막으로, 전진희 님의 음악 중 더운 여름을 이겨내기 위해 추천하고 싶은 곡들이 있나요?

 

아무래도 “여름밤에 우리”인 것 같아요. 힘든 것들을 잠깐이라도 잊었으면 좋겠다  싶어 만든 곡이기 때문에 들으시며 환기를 하면 어떨까요. 한편으로 제가 요즘 요가를 다니는데, 선생님이 항상 [Breathing] 앨범을 틀어두셔요. 사실 저는 되게 민망했거든요. 처음에는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상황에 되게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걸 보고 ‘숨쉬기 좋은 음악이긴 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힘들고, 화가 많이 나고, 지치고, 갈 데까지 간 것 같은데 더 심한 것들이 남아있는 요즘이잖아요. 그럴 때 차분하게 숨 쉴 수 있는 [Breathing]을 들어보시는 것도 추천드려요.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누워서 쉰다고 생각하시면 좋겠네요.

 


 

Interview | 심은보 (VISLA 에디터)

실리카겔 (Silica Gel)

 

팝과 언더그라운드, 경계선을 허물다

 


실리카겔은 한국 인디 음악 신에서 독특한 포지션을 맡고 있다. 필자는 실리카겔 만큼 ‘얼터너티브’나 ‘인디펜던트’ 같은 표현이 어울리는 밴드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이키델릭 록이나 드림 팝의 화려한 음색, 웅장한 곡 전개와 변칙적인 리듬을 도입한 실험성, 박력 있는 밴드 연주까지. 실리카겔은 멤버 모두의 참여로 만들어진 완성도 높은 곡들로 한국대중음악상 신인상을 받는 등 데뷔 때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멤버들의 군 복무로 인해 공백기를 가진 그들은 작년 8월, 약 1년 반 만에 싱글 ‘Kyo 181’, 올해 2월에는 싱글 ‘Hibernation’을 발표하며 보다 세련된 연주와 강력한 일렉트릭 사운드로 밴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한편 지난 5월에는 23분에 달하는 연주곡 ‘S G T A P E – 01’으로 실리카겔만의 실험적인 시도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들이 제시하는 고유의 음악적 태도나 표현 방식은 다양한 대상에 대한 ‘얼터너티브’라고 할 수 있다. 그 대상은 여러 팀의 분업으로 완성되는 메인 스트림 음악일 수도, 지금 한국 인디신의 모습일 수도, 혹은 ‘장르’라는 견고한 기준일 수도 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실리카겔의 음악은 그 무수한 ‘틀’에 대한 단어 그대로의 ‘대안’이라는 사실이다.

 

복귀 후에 발표한 싱글 ‘Kyo 181’와 ‘Hibernation’의 음악성, 멤버들의 취향, 더 나아가 지금의 한국 인디신에 대한 그들의 생각까지 다양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실리카겔의 새로운 출발과 함께 나온 신곡,  ‘Kyo 181’, ‘Hibernation’에서는 기존의 사이키델릭한 음악성에 전자음악이 더해진 사운드 덕분인지 공통적으로 밴드 음악과 전자 음악의 경계선을 허물고자 하는 의도가 느껴졌어요.

 

한주/ ‘Kyo 181’이랑 ‘Hibernation’에 공통점이 있다면 반복성이 심하다는 것이에요. 이전에 비해서 기존 팝 음악의 포맷을 빌려온 것도 있고 예전에는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전개가 많았는데 그런 걸 덜어내고 심플하지만 강하게 가고 싶었죠.

 

 

팝 음악의 포맷을 빌려왔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한주/ 팝 음악이라기보다는 기존의 대중음악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은데 저희는 사실 악기 연주를 통해 사운드로 어필하는 밴드였어요. ‘두 개의 달’이라는 트랙도 있었고요. 예전의 저희를 비유하자면 연주곡, 클래식 오케스트레이션 같은 걸 하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기타나 보컬 중심의 곡을 쓰게 됐고 그런 의미에서 이제 팝 음악적인 접근을 했다, 기존 대중음악의 어떤 기본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연주곡 같은 것은 요즘도 써요. 이제는 라인을 두 개로 가져가는 느낌이죠. 한쪽 라인에서는 ‘Kyo 181’, ‘Hibernation’ 같은 메인 느낌의 트랙, 다른 한쪽에서는 최근에 24분 짜리 트랙(‘S G T A P E – 01’)도 만들었어요.

 

 

‘Kyo 181’보다 하드한 사운드의 ‘Hibernation’을 ‘실리카겔 스타일의 메탈’이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어요.

 

춘추/ ‘Kyo 181’을 시작으로 해서 이제 실리카겔의 시즌2 같은 느낌이 시작되는데 이전 곡들에 사이키델릭 성향이 있었다면  ‘Kyo 181’부터는 이전 스타일보다 조금 더 묵직하고 하드한 록의 느낌이 가미됐어요. 거기다가 ‘Hibernation’이라는 곡은 우리가 지금까지 접근해보지 않았던 스타일이 뭐가 있을까 했을 때 이전까지 잘 없었던 메탈이나 더 무겁고 붉은 에너지를 담고 싶다는 생각으로 써봤어요. 메탈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묵직한 리프가 계속 반복되는 곡을 써보고 싶었죠.

 

춘추/ 저는 원래 기타리스트이다 보니까 기타록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딥한 분야를 생각했을 때 예쁘고 멋진 느낌보다는 좀 더 무섭고 화나 있고 공격적인 느낌의 곡을 써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실리카겔의 메탈’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전자음악적, 사이키델릭한 느낌들이 자연스럽게 섞이다 보니까 완전히 메탈 장르의 느낌보다는 실리카겔이 재해석한 느낌의 메탈 스타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Kyo 181’도 ‘Hibernation’도 계속해서 같은 멜로디가 반복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는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단조롭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혹시 그런 반복적인 구성을 의도적으로 고집하고 계신 것인지, 혹은 그걸 활용하고 싶은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춘추/ 생각보다 집요하게 반복되는 곡들이 실리카겔에 있었어요. ‘hrm’이나 ‘오렌지’도 있었고 그런 것들에서 주고 싶었던 느낌은 약간 댄스음악의 비트 자체를 계속 즐기는 거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Hibernation’도 그런 느낌이고 ‘Kyo 181’은… (Kyo 181를 작곡한 한주를 바라보며)

 

건재/ 우리들이 집요한 인간들이라… (모두 웃음)

 

한주/ 우리가 별로 집요한 인간은 아닌데 (웃음) 사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어’에 가까워서 음악을 만들 때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추측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제가 그 곡을 만들던 시기에 Philip Glass의 음악을 많이 들었고 자서전도 읽었으니까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게 관련이 있을 수 있어요. 그리고 힙합도 기본적으로는 루프로 만들어진 음악이다 보니까 그런 음악들이 주는 매력이 있고 어떻게 보면 고도의 음악이 루프 음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예전부터 해왔어요.

 

그렇다면 공백기 전과 비교했을 때 일관된 부분은 어떤 부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춘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실리카겔이 만들어보고 싶었던 음악을 계속 도전해보았다는 점이에요. 근데 그게 그때그때 다른 것 같아서 실리카겔이 어떤 사이키델릭 록 밴드인지 같은 장르적인 구분이 힘들어요.

 

사이키델릭 음악은 늘 실리카겔 음악의 핵심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건재/ 시끄러운 걸 좋아하니까 (웃음). 기본적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사람이랑 달리 자기들의 방식으로 어떤 매체 안에서 뭔가를 느끼려고 해요. 가사 같은 것보다는 형질이 있는 소리라든지 그런 것들에서도 감정이나 어떤 의미를 읽으려고 한다는 말이죠. 소리에 집중하는 걸 좋아한다고 얘기할 수도 있는 거고. 사이키델릭 음악은 (다양한 이펙트 등으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에 여지가 많아서 그런 소리를 좋아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싱글 ‘Kyo 181’에서는 리믹스가 세 곡이나 수록되어 있고 이전에도 두 곡의 리믹스가 있었네요. 다른 DJ, 프로듀서에게 리믹스를 받는 것에 남다른 의미가 있나요?

 

웅희/ 의미를 갖고 리믹스를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때그때 앨범에 이 사람이 참여하면 확 살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부탁했던 것 같아요.

 

춘추/ 싱글 앨범이나 EP의 경우 규모를 더 풍부하게 만들고자 할 때의 접근 방식이 리믹스였던 것 같아요. 또 우리가 평소에 관심 있었던 사람들 혹은 우리 곡을 멋있게 편곡해줄 것 같은 사람들에게 부탁하면서 나오는 결과물이 우리가 생각했던 방향과 다르게 나올 때도 있고 그런 것들이 재미있기도 해요. 다른 아티스트들과 같이 작업하는 게 고마운 일이기도 해서 리믹스 트랙을 싣는 것에 어떤 의미가 된 것 같아요.

이번에 한주 씨는 반대로 백예린의 ‘Lovegame’의 리믹스를 담당하셨네요.

 

한주/ 리믹스를 하려면 그 아티스트의 세부적인 데이터를 받게 되거든요. 거기서부터 재미있더라고요. 언제 백예린이라는 뮤지션이 나오고 어떻게 편곡했는지 같은 정보를 자세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돼서 그걸 보는 것만 해도 공부가 돼요.

 

한주 씨랑 춘추 씨는 다른 아티스트의 편곡 작업도 자주 하시잖아요. 편곡 작업의 경험에서 실리카겔 음악으로 환원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부분인가요?

 

춘추/ 쉽게 말하면 일이고 실리카겔 외의 다른 개인적인 업무라고 생각할 때도 있는데 완전히 다른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것도 음악을 만드는 일이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과 작업을 하면서 편곡을 하든 믹스를 하든 실험이나 아이디어들을 시도할 수 있는 게 재미있고 어떻게 보면 공부를 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해보다가 굉장히 결과가 괜찮으면 실리카겔 작업에도 직접적으로 활용을 해보고 그런 식으로 서로 다른 작업에 적용되거나 순환되는 것 같아요.

 

한주/ 저도 비슷해요. 사실 예린 씨 같은 경우는 이례적인 예였고 저는 거의 새소년만 해왔기 때문에 새소년도 제 작업처럼 해요. 동시에 그것도 실리카겔에 어떻게 활용될지 기대되기도 하고.

 

 

가사는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한주 씨는 스스로 “제가 만드는 모든 노래의 상징은 큰 의미가 없어서”라고 하셨네요.

 

한주/ 쓰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그냥 즉흥적으로 적어내는 편이라 그냥 그중에서 좋은 걸 추려요. 가사는 별생각이 없어요. 어떻게 써도 안 들린다고 하니까 (웃음).

 

(가사가) 안 들린다는 게 한주 씨에게는 괜찮은 거예요?

 

한주/ 사실 가사가 잘 들려야 한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없었어요. Cocteau Twins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Cocteau Twins의 음악을 들어보면 가사가 잘 안 들리고 심지어 가사지도 안 넣었다고 해요. 가사가 주는 느낌도 있는 것 같아서 사실 앞으로 나올 실리카겔 곡들은 잘 들리게 작업을 해볼까 싶긴 한데 여태까지는 그런 것에 신경을 안 써서.

 

춘추/ 가사로 어떤 스토리텔링을 한다던가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이라든가 그런 것보다는 오히려 그 발음에서 느껴지는 음악적인 부분에 더 집중해서 적어내는 게 있지 않나 싶어요. 저는 보컬도 악기 중 하나라고 생각을 해서 어떤 단어에서 느껴지는 톤이나 인상 같은 것들을 전달하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요.

 

 

멤버 각자가 본인의 작곡, 연주 스타일 등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는 아티스트나 장르 등을 세 개 골라주세요.

 

춘추/ 너무 많은데… 최근에 크게 영향받았다고 생각하는 분은 바흐, 바로크 쪽의 선생님들이에요. 바흐 곡을 많이 들었고 그 외에도 바로크 스타일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바로크 자체가 선율 중심인 음악이다 보니 그런 멜로디를 이용해서 어떤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영향을 크게 받았어요. 그리고 최근에 많이 듣는 아티스트는 Ariel Pink예요. 촌스러우면서도 귀엽기도 하고 약간 무섭기도 하고 묘하고 재미있는 느낌이 들어서 깊게 듣고 있어요.

한주/ 바흐도 그렇고 저도 고전음악에서 영향을 크게 받았어요. 원래 클래식 음악으로 음악을 시작했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뭔가가 있더라고요. 완전히 약간 피 안에 있는 혈액형이 돼버린 느낌이 있어서 첫 번째는 고전음악인 것 같아요. 두 번째는 Thom Yorke예요. 그분이 약간 인생을 바꾼 사람이어서. 클래식하다가 대중음악으로 전환한 계기가 사실 Radiohead랑 Thom Yorke예요. 최근에도 ‘Anima’를 들었는데 엄청난 음악이더라고요. 그 사람의 삶의 취향도 귀감이 되는 부분이 있고요.

 

웅희/ 저는 Beatles 뽑겠습니다. 최근에도 John Lennon랑 Paul McCartney를 듣고 있는데 뭐라고 해야 하지? 내가 좋아하는 Beatles 특유의 뻔한 것들에서 클래식함이 생각나서 그래요.

 

한주/ 건재형이 진짜 “노잼”이라는 표정으로 보고 있어요. (웃음)

 

건재/ 나는 되게 전통적이거나 토속적인 그런 컬러의 것들을 좋아해요. 곡 제목도 없는 이상한 것이나 진짜 민족적인 거… 한참 일본 쪽으로 빠졌을 때도 각 시리즈 (가가쿠, 노가쿠 등), 샤미센 그쪽으로도 엄청 많이 들었어요.  약간 중국 쪽으로 빠졌을 때도 있었고 의식에 쓰이거나 뭔가를 바라거나 염원하면서, 그 당시에 인간의 기술력으로 할 수 없었던 것들을 빌기 위한 걸로 시작된 것 같은데 공통적으로 각 국가의 장송곡도 좋아해요. 사실 드럼 연주 쪽으로도 쿠바, 라틴같이 원래는 생활적인 리듬이었던 것들에 빠지기도 했고요. 근데 우리나라 것은 자료를 구하기 어려워서 찾기 어려운 것 같아요.

 

춘추 씨는 고전음악에서 선율적인 부분을 언급하셨는데 한주 씨는 구체적으로 고전음악의 어떤 부분에서 영향을 받으셨나요?

 

한주/ 8살~17살 때까지 거의 10년 정도 고전음악 공부를 했고 음악을 하는 방식 자체를 배웠기 때문에 어떤 부분이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지만 대중음악으로 전환하고 나서 전자음악이나 신디사이저를 다루게 된 후 알게 된 결정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고전음악을 공부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음표로 적히는 음, 그러니까 악보 중심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전자음악으로 넘어오기 시작하면서 악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모호한 음들이 많아졌어요. 사실 고전음악도 John Cage나 지금의 현대음악 같은 경우는 방금 얘기했던 모호한 음들이 많이 생겼지만 어쨌든 저는 대중음악으로 넘어오고 나서 악보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되게 어려웠어요. 다행히 실리카겔 하면서도 노력을 많이 해서 지금은 많이 벗어나 있는 상태에요.

 

한주 씨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 팀은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대의를 향해가는 팀워크가 아니라 각자의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재능을 발휘했을 때 나오는 결과물! 팀워크가 아니라 팀플레이”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각자의 취향이나 스타일을 존중하는 신뢰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주/ 제가 말을 이렇게 했는데 진짜 이렇게 흘러가고 있진 않아요. 공백기 동안 각자 강해지는 시기가 있었던 걸 아니까 이제 이 사람한테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리고 아까 얘기했던 24분 자리 연주곡도 사흘 동안 저희끼리 스튜디오에 모여서 같이 자고 그러면서 만들었는데 그때 극단적으로 저런 말이 나온 것 같아요. 그때도 보니까 건재 형이 만든 어떤 테마가 갑자기 예상치 못한 기능을 해줄 때가 있었고 김춘추가 만든 어떤 테마가 중간에 난입할 때도 있었고 그러다가 웅희가 에디트해주고 그런 식으로 뭔가 유기적으로 각자 능력을 발휘하면서 돌아가는 그림이 되게 보기 좋더라고요. 아무리 자유로운 팀플레이라고 해도 통제는 필요해요. 팀인 이상. 그런 각자의 역할을 기반으로 팀 활동을 확장할까 생각해요. 어쨌든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멤버들이 신뢰할 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죠.

 

공백기도 포함하면 결성한 지 한 7년 정도 되었네요. 특히 어떤 부분에서 성장했다고 생각하시나요?

 

한주/ 실리카겔 차원에서 따지자면 서로 못 본 만큼 멤버들 간의 신뢰가 커져서 서로의 소중함을 알게 되기도 했어요. 그리고 그 외에는 각자 음악 외에 사회생활을 경험해왔기 때문에 거기서 생긴 성취감도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음악적인 발전보다는 인간적인 발전, 사회적인 발전 그런 것들이 크게 있는 것 같아요.

 

 

당시랑 지금을 비교하면 한국 인디 음악 신도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춘추/ 저는 점점 메인스트림과 융합되고 있다는 점에서 좋아진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렇다 보니까 메인스트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콘으로서의 이미지 같은 것들이 이제 인디신에서도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지금의 인디 신 또한 여러 사람한테 어필하기 위해서 더 멋진 이미지와 비주얼적인 부분들도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노력하게 되는 상황인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어떨 때는 아쉽다는 생각도 들고 오히려 이런 시기야말로 음악에 계속해서 집중해야 할 것 같아요.

 

건재/ 공연장이 많이 사라졌죠. 근데 신이라는 게 계속 바뀌니까 인디라는 단어가 가지는 뜻이 유동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시대 때 인디랑 지금의 인디를 하나로 규정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뭐가 달라졌고 안 좋아졌다고 하는 게.

 

한주/ 생각나는 게 각자 많이 차이가 날 수 있는 질문인 것 같아요. 저도 인디신이라는 표현 대신 ‘언더그라운드 음악’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하려고 하는 편인데 사실 저희는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영향 밖에서 활동하고 있는 상태 같거든요. 왜냐하면 언더그라운드 사람들 사이에서 안 좋은 것들도 느껴와서 그런 것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나 보고자 했어요. 그러면서 한 발 떨어져서 그 자리를 다시 보니까 지금은 사실 많이 해체되기도 했고 활동 방식도 다양해져서 신이라고 묶어서 얘기하기가 어려워진 것 같아요. 지금은 변화의 시기인 것 같고 사실 변화는 코로나 때문만이 아니라 이전부터 있었잖아요. 앞으로 뭐가 더 생길 건지는 지켜봐야 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특히 코로나가 끝나면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까도 신 밖에서 활동하는 것을 선택했다고 하셨는데 음악적으로도 하나의 장르 안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하고 새로운 걸 시도하는 모습이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한주/ 요즘에는 그런 생각을 특별하게 갖고 있지 않은 것 같긴 해요. 물론 뭔가 좋은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면 충분히 구축할 수 있죠. 요즘에는 사실 신보다 작은 크루 형태로 그룹을 만드는 경우도 많이 보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그런 방향에 가능성이 있어 보이긴 해요. 근데 저는 여러 뮤지션과 작업을 하고 싶지만 그것을 통해서 신이나 크루를 만들거나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끼리만 있는 것도 힘드니까 (웃음). 지금은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더 중요해서 각자 (신이나 크루 같은) 세상에 크게 의지하지 않으려고요. 우리가 중간에 어디에도 걸치기 애매한 캐릭터가 되어버려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의 상황은 저희가 자처한 거예요. 계속 이상한 애들이 되고 싶고 얼터너티브 한 방향으로 가고 싶어서요.

 

건재/ 주변인 같은 포지션 너무 좋아.

 

춘추/ 우리는 독립적인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때그때 우리가 좋아하는 걸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하고 싶고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생각하면서 작업하는 거고요. 근데 동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입장이 비슷한 뮤지션들이 많으면 재미있을 것 같긴 해요. 아무튼 (우리 같이) 뭔가 어떤 신이라고 하기에 애매한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하는 거 하지 뭐…. 라고 하는 팀들이 장르적으로 따지면 더 있을 수 있지만 비슷한 폼에서 동료들이 있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리카겔이라는 밴드의 변화를 생각할 때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요?

 

웅희/ 만화 BECK에 나오는 Mongolian Chop Squad가 아닐까 생각해요. 처음에 밴드를 시작할 때 생각했던 그림이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몰입하기도 했고. 최근에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BECK처럼 하면 행복하겠다는.

 

한주/ 가상의 밴드로 대답하는 게 괜찮은 건지…(웃음)

 

* 본 인터뷰는 일본 음악 매거진 TURN(@turntokyo)에서 릴리즈된 컨텐츠를 한국어로 가공/편집한 건입니다.
* http://turntokyo.com/features/silicagel-interview/

 

Interview | 야마모토 다이치
Edit | 키치킴, 월로비

구름 (Cloud)

적당히 우울하고, 적당히 행복하게

 


 

Bye Bye Badman의 키보드 주자, CHEEZE의 멤버 및 작, 편곡자로 커리어를 쌓으며 백예린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장르의 프로듀서로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구름이 무려 4년 만에 솔로 아티스트로 컴백했다.

 

백예린이 2019년 창립한 레이블 ‘블루바이닐’의 두 번째 아티스트가 되면서 발표한 정규 앨범 [많이 과장해서 하는 말]은 이전에 발표했던 싱글뿐만 아니라 그동안 구름이 보여준 다양한 활동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Nujabes 같은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의도를 보여주듯 로파이한 비트와 건반 연주만으로 구성된 이번 앨범의 심플한 사운드는 섬세한 보컬 톤과 구체적이고 솔직한 가사와 함께 어우러져 구름만의 ‘우울’과 ‘행복’을 담아내고 있다.

 

프로듀서 활동과 솔로 프로젝트 모두 충실하게 이어가고 있는 구름과 이번 앨범의 음악성과 가사, 그리고 프로듀서 활동과의 관계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솔로 작품을 발표하셨네요. 정규 앨범을 만들자는 생각과 본격적인 곡 작업은 언제부터 시작하신 건가요?

 

구름: 원래 4년 전에 싱글을 냈을 때 이미 정규 앨범을 내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엔 솔로 활동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고 스스로도 그런 포지션(솔로 뮤지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거든요. 공부도 필요하고 예린이의 앨범에 집중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서 ‘언젠가는 하겠지’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올해가 되면서 예린이의 작업 패턴이 안정기에 접어든 덕분에 전에 있던 곡들과 함께 새로 만든 것들을 더해서 정규가 나오게 되었어요.

 

EP도 아닌 정규 앨범을 내기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구름: 이미 곡이 많이 있었던 것도 있고 수록곡끼리 잘 어울려서 묶일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곡을 쓸 때의 감정적인 상태 같은 것들이 비슷해서 하나의 정규로 내려고 했어요. 그리고 저는 공연을 많이 하거나 라이브 클립 같은 활동을 하는 타입의 아티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노래를 많이 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방금 언급한 것들을 대체할 활동이 정규라고 생각한 거죠.

 

첫 정규앨범인데 작업은 원활하게 진행되셨나요?

 

구름: 그런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랑 일하게 되면 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제 앨범은 스스로가 허락하면 되는 거라서 꽤 순탄하게 잘 된 것 같아요.

 

작곡, 편곡 뿐만 아니라, 연주나 믹스까지 전부 혼자 하신 것 같은데 원래부터 그럴 계획이었나요?

 

구름: 원래 마스터 정도는 맡기려고 했는데 일단 저는 혼자 다 하는 걸 선호하거든요. 다른 외부 작업을 할 때도 그렇고. 그리고 특히 이게 되게 개인적인 부분이 많은 앨범이라 그걸 누가 연주해주거나 멋있게 다듬거나 하는 게 스스로가 보기에 가식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냥 직접 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앨범 곡 작업을 하실 때 무엇을 중요시하셨는지 궁금해요.

 

구름: 사실 저는 다른 사람의 음악을 작업하는 일이 더 많은데 이럴 때는 음악적인 컨셉이나 퀄리티가 당연히 좋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제 앨범 같은 경우는 뭔가 그러려고 만들지는 않았거든요. 무언가를 특별하게 의도해서 담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옛날 힙합 같은 걸 들어보면 샘플링 비트 같은 걸 많이 쓰잖아요.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편하게 뱉어서 얹어놓는 식으로 작업했어요.

 

 

사운드에 주목해보면 기타나 베이스도 없이 전체적으로 건반과 비트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전 작품들보다 미니멀한 느낌이 들었어요. 솔로 작품은 이와 같이 미니멀하게 만들자는 의도가 있었나요?

 

구름: 피아노 비중이 많은 게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만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다른 사람과 일할 때는 사운드를 모두 만들어 놓고 그 위에다 노래를 만들면서 정리하게 되니까 다양한 악기를 써보게 되는데, 이번 앨범은 노래를 만든 다음에 그대로 플레이트에다 옮기는 식으로 작업을 하느라 피아노를 치면서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걸 굳이 기타로 편곡하고 싶지 않아서 피아노곡들이 많은 것 같아요.

 

피아노로 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 음악이라는 이미지도 들었어요.

구름: 사실 저는 자신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생각하지는 않고요. 저는 제 앨범을 Nujabes 앨범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Nujabes를 많이 좋아하기도 하고 이번 앨범에 Nujabes 처럼 만든 사운드도 있어요.

 

Nujabes 같은 음악을 하고 싶었다고 하셨는데 어떤 부분에서 그런 음악의 매력을 느끼셨는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볼 수 있을까요?

구름: 일단 이런 사운드 자체를 좋아하기도 해요. 그리고 저는 전체적으로 Nujabes 노래는 슬픈 노래라고 생각하거든요. 편하게 들을 수 있으면서도 마냥 신나지는 않는, 슬픈 상황을 굳이 설정하지 않아도 그냥 그 사람의 슬픈 마음이나 우울한 감정 같은 걸 차분하게 플레이해주는 느낌이 좋았어요. 그리고 저도 그런 부분을 제 작업에 담고 싶었던 것 같아요.

 

평소에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도 음악을 통하면 표현하기 편하다고 느끼시나요? 이런 감정을 부르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구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대신에 노래를 만들다 보면 “내가 평소에 이런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구나”라고 알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노래를 만들 때 글을 적잖아요. 적다 보면 “이런 생각도 머릿속에 있었네” 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어서 제 감정을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가사는 어떻게 쓰시나요?

 

구름: 메모를 하는 편이긴 해요. 그런데 대부분 메모가 ‘어떤 방식으로 써야지’ 정도에서 끝나요.

 

그렇다면 가사는 생각보다 편하게 쓰신 건가요? 참고한 가사 스타일은 없는지도 궁금합니다.

 

구름: 네, 편하게 썼어요. 이소라 씨 음악 중 어떤 곡은 특정 사람의 이름 같은, 엄청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가끔 등장하거든요. 그리고 그런 걸 들으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도 대충 상상하면서 듣게 되잖아요. 마치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지만 남의 대화를 훔쳐 들어도 뭔가 소화가 되는 것처럼요.

제 가사도 엄청 개인적인 것들이에요. 예린이 노래 같은 경우에도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사실 모두가 다 비슷비슷하게 사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모두가 똑같지 않을 수 있어도, 상황이나 나이, 장소가 조금씩 다를 뿐이지 누구에게나 어떤 특정한 슬픔이 있는 거죠. 개인적인 걸 사소한 것까지 막 적어도 그걸 다른 사람이 들었을 때 저랑 비슷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제 가사도 쉽게 쓰는 것 같아요. 일기 쓰고 편지 쓰고 하듯이.

 

저도 가사를 읽으면서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인데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인 것 같다고 느꼈어요. 수록곡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해볼게요. ‘많이 과장해서 하는 말’은 중간중간 템포가 바뀌는 혼란스러운 간주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혹시 이 부분이 특정한 감정을 상징하 는 건가요?

 

구름: 사실 저는 이 노래가 가사 내용이나 분위기, 구조적인 것들을 모두 포함해서 이번 앨범을 관통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것도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집에 들어와서 혼자 있을 때 밀려오는 감정이나 후회 같은 것들이 뒤엉킨, 그런 여러 가지 형태의 마음을 만들고 싶어서 아무거나 구겨 넣다 보니 그런 게 나왔어요.

 

자기 전’은 유일한 댄스 비트의 곡이네요. 어떻게 아이디어가 나왔는지 궁금해요.

 

구름: 그것도 1번 트랙이랑 감정선은 비슷해요.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많은 연인 사이의 대화처럼 삶 속에서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잖아요. 내가 한 이야기에 대해 전혀 상상하지 못한 피드백이 올 수도 있고요. 그런 걸 표현하려고 비트에 뭔가 막 이렇게 와장창하는 느낌이 있어요. 뭔가 해소되는 느낌이랄까? 곡을 썼을 때 그런 시기였던 것 같아요.

 

다른 곡에도 이렇게 잔잔한 부분과 시끄러운 부분을 하나의 노래 안에 넣고 감정 기복을 표현한 경우가 많으신가요?

 

구름: 제가 그런 방식이나 형태의 음악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팡 터뜨려주는 포인트가 있는. 제 성격도 그렇고 직설적으로 뭔가를 하는 성격이 아니라 그런 파트가 들어간 음악을 만드는 일로 푸는 것 같아요. 그런 기분이 더 많이 드는 내용일수록.

 

다섯 번째 곡 ‘귓속말’은 앨범 구조상 가운데에 있는 인터루드(간주) 같은 곡인데 청자에게 휴식을 주는 느낌이네요. 어떤 의도로 만든 곡인지 궁금합니다.

 

구름: 원래 이 노래에 가사가 있었어요. 근데 제가 이걸 부르려면 키를 엄청 높이거나 낮춰야 되더라고요. 저는 딱 지금 이 키가 좋은데 그렇게 하면 피아노 소리가 안 예쁜 거예요. 그래서 가사 내용은 혼자만 알고 있고 수록만 하려는 생각으로 뒀거든요. 그리고 제가 중간에 인스트루멘탈 트랙이 있는 앨범을 되게 좋아해요. 앨범을 들을 때 그 부분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해서 쭉 들어봤는데 원하는 흐름이 생긴 것 같아서 넣었어요.

 

혹시 중간에 인스트루멘탈 트랙이 담긴 앨범 중에 특히 좋아하는 작품이 있으세요?

 

구름: Jamiroquai의 3집 [Travelling Without Moving]이에요. 그 앨범에는 엄청 긴 인스트루멘탈 두 곡이 (‘Didjerama’, ‘Didjital Vibratoins’) 들어있거든요. 이 두 곡이 음악보다 소리에 가까운데 앨범이 흘러가는 과정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엄청 잘해주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많이 들었어요. 최고예요.

 

 

4년 전 솔로 프로젝트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어떤 차이점을 느끼시나요?

 

구름: 일단 그때는 제가 음악 자체를 다루는 것에 있어서 지금처럼 능숙하지 않았어요. 지금이랑 똑같은 일을 해도 방법을 정확하게 모르니까 조금 시간이 걸렸거든요. 제 작업이기 때문에 부담이 적었다고 해도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그리고 믹스 마스터 같은 후반 작업도 아직 능숙했던 시기가 아니어서 지금의 제가 들으면 그 당시 음악은 되게 아마추어 같이 들려요. 실제로 후반 엔지니어링 과정에서 꼭 해야 하는 작업을 모르고 안 하고 발매해버렸던 부분도 많았고, 그런 차이점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이제 능숙해져서 어떻게 하면 어떻게 된다는 걸 머릿속으로 생각해서 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노래를 부르거나 글 쓰거나 할 때 되게 편하게 집중할 수가 있어요. 예전엔 이것저것 어설퍼서 아마추어 같이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프로듀서 활동은 이번 앨범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나요?

 

구름: 프로듀싱을 하게 되면 저도 최선을 다해야 하잖아요. 그것에 맞는 테크닉과 지식, 체력도 필요하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삶도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런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제 앨범에만 매달렸다면 해야 하는 일도 한정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덕분에 개인 앨범을 작업할 때는 상대적으로 좀 수월했던 것 같아요. 내가 다른 데서 공부했던 걸 베이스로 작업하게 되니까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고. 테크닉적인 부분에서 남에게 맡기지 않아도 돼서 좋은 것 같아요.

 

프로듀서 활동을 할 때는 솔로 작품보다 해야 하는 일, 배워야 하는 일들이 많은 것 같네요. 솔로 작업을 하실 때는 어떠신지 궁금해요.

 

구름: 제가 제 앨범을 위해서 따로 노력하고 싶진 않아요. 슬픔, 기쁨, 우울함 같은 감정들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하면 멋있게 만들지? 같은 걸 고민하는 게 아직 부끄럽거든요. 저는 스스로가 제 앨범에 대해서 노력을 많이 하지 않은 이 상태가 완벽하다고 생각해요. 테크닉적인 고민과 다르게 노래의 감정을 어떻게 담느냐는 고민을 하고 노력을 하는 과정은 뭔가 조금 부끄러워요. 가사의 내용이 픽션이나 머릿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 어쨌든 되게 개인적인 부분을 쓰는 것이다 보니까.

 

 

반대로 솔로 활동은 앞으로의 프로듀서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시나요?

 

구름: 저는 사람들이 저를 특징짓는 느낌이 들거든요. 제가 프로듀싱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사실 대부분은 예린이의 히트곡을 갖고 와서 “이런 걸 한 번 같이 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해요. 그런데 저는 사실 스스로가 이런 걸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단지 그게 잘되는 거지. 저는 그런 걸 계속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서요.

저는 제 개인 앨범이 프로듀서 활동보다도 차라리 글을 쓰는 데에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스스로가 테크니컬한 프로듀서가 아니고 되게 코드를 멋있게 쓰는 화려한 프로듀서도 아니고 어디에 치우치지 않는 하이브리드형 프로듀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 앨범을 듣고 ‘이 사람은 이런 것도 할 수 있네’ 라던지 ‘이 사람이 쓰는 글은 이런 톤이구나’ 같은 반응이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프로듀서로서의 정체성 같은 걸 그렇게 구체적으로 한정하고 싶지 않으신 거군요?

 

구름: 그렇죠.

 

그런 점에서는 밴드 음악, 록 음악부터 힙합이나 R&B, 그리고 솔로 활동까지 매우 다양한 활동을 해온 커리어는 자신의 평소 성격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구름: 그런 게 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16년도에 싱글을 냈을 때 약간은 일 중독이나 강박증 같은 게 있었거든요. 그 당시에는 아직 제 캐릭터가 정해지지 않아서 히트곡도 없었고 제가 뭘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것도 해야 해’, 이런 것도 잘해야 돼’라면서 다 해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힙합 하는 사람한테 비트도 보내보고 가요도 하려고 해보고 그냥 R&B 작업도 해보려고 했고요. 물론 록밴드는 재미있어서 하는 거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당시에 만들었던 데모들을 보면 아이돌 댄스음악도 해봤던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그런 게 조금 없거든요. 다 잘하지 않아도, 굳이 일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라서 지금은 되게 한정적인 일만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차이인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힙합 하는 친구랑 작업하는 게 있긴 한데 접근하는 방식이 예전이랑 조금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그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지금은 변한 것 같아요.

 

앞으로 솔로 아티스트로서 어떤 커리어를 쌓고 싶은가요?

 

구름: 구체적인 목표가 있진 않아요. 저는 공연을 많이 하는 포지션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바이럴을 해서 뭔가를 만들고 소화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음원을 많이 내고 싶어요. 그때그때 내가 어떤 생태였는지 알 수 있는 것들을 계속 내고 많이 작업하는 사람으로 활동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오래 발표하지 않기도 했고요.

 


Interview | 야마모토 다이치
Edit | 월로비

새소년 (SE SO NEON)

 

자유를 찾아서

 


새소년이 2021년을 여는 새 싱글 [자유]를 발표했다.

지난 [비적응] EP에서 두려움과 불안에 관해 이야기하던 이들이 약 1년 만에 자유라는 대명제와 함께 돌아온 것.

음악, 비디오, 프로필 이미지를 비롯하여 머천다이즈, 슬로건 플레이까지. 새소년이 설파한 자유는 그렇게 온/오프라인 곳곳으로 스며들어갔다.

그들의 노래가사처럼 어느 자유로운 날, 새소년을 만나 ‘자유’에 관한 깊고 넓은 이야기를 나눴다.

 


 

 

싱글 발매 후 약 한 달 정도가 지났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소윤 / 정신없이 보냈어요. 훌륭하게 소화해야 할 스케줄이 이어지다 보니 아직 쉰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지만, 이제 좀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신곡 ‘자유’에 관한 얘기를 해볼까 해요. 간단한 곡 소개 부탁드립니다.

 

소윤 / [비적응]에서 사회에서 느끼는 혼란이나 두려움, 불안을 노래하고 나서 시간을 보내며 느낀 생각은 각자가 가진 두려움을 마주하는 게 중요한 맥락이라는 것이었어요. ‘자유’라는 노래에는 자유를 찾았다는 완결된 의미보다는 자유를 찾아야 하고, 그것이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자유’를 착수하게 만든 결정적인 트리거는 무엇이었을까요?

 

소윤 /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작년 이유도 모른 채로 한동안 침잠하며 보냈던 시기가 있었어요. 단순히 저의 기분이 아니라, 해소되지 않는 어떤 무언가 때문이었죠. 결국에는 제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새끼 고라니처럼 (웃음) 몸을 가누지 못하고 털썩 쓰러진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바닥을 치고 올라와 스스로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자기비판적 태도를 거두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인정할 건 인정하면서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자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었어요.

음악적인 부분 역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어요. 음악 전반에서 데이비드 보위를 위시한 70년대 클래식 팝/락의 정취를 많이 느낄 수 있는데, 단순히 이것이 재해석이나 오마주라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소윤 /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핀포인트를 잡고 작업하진 않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만들어낸 트랙에 가까워요. 물론 데모 트랙에서부터 클래식한 느낌이 있긴 했어요. 클래식은 새소년이 한 번도 다뤄보지 않았던 영역이기 때문에 꽤 조심스러웠죠. ‘너무 올드하게 느껴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클래식과 올드함은 한 끗 차이니까요. (웃음)

 

소윤 / 네. 심지어 제가 클래식 락에 관해서 깊게 연구를 했던 사람도 아니기에 어쭙잖게 (클래식을) 재해석한 느낌이 나올까 봐 걱정했는데요. 결과적으로는 새소년이 기존에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보여드릴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트랙의 아이디어는 소윤 씨에게서 출발했지만, 노래를 완성하는 데 두 분이 중요하게 생각한 포인트는 무엇이었을까요.

 

유수 / 데모엔 드럼이 없었는데 편곡을 거치면서 드럼을 넣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어요. 처음 데모를 들었을 때, 어떤 방향으로 드럼이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상상한 지점을 음악에 그대로 구현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습니다. 6~70년대에 제작된 스네어나 베이스 드럼 등 말 그대로 클래식한 악기를 좋은 상태로 보존하고 있거든요. 그것들을 일일이 스튜디오에 가져가서 녹음에 들어갔는데, 멤버 모두 선뜻 좋아해 주었어요.

현진 / 저는 유수 님보다 더 나아가서 5~60년대로 갔습니다. (모두 웃음) 딱 10년만큼만 더 갔어요. 이번 앨범을 준비하려고 앰프를 새로 샀거든요. 제가 생각했던 소리를 잘 내준 것 같아요.

 

트랙명에 관한 얘기도 간단히 나누고 싶어요. 데모에서부터 작품명은 ‘자유’였지만, 최종 제목으로 결정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고 밝힌 바 있어요. 아무래도 ‘자유’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단어의 무게 때문이었을까요?

 

소윤 / ‘긴 꿈’, ‘심야행’ 다음에 ‘자유’라니. 마치 ‘사랑’이라는 제목을 짓는 것과 비슷한 느낌의 부담이었어요. (웃음) 그런데 이번 노래에서 느껴지는 함축적인 심상을 떠올려봐도 뭐가 없는 거예요. ‘자유는 자유지, 뭘 빗대’. 약간 이런 느낌이랄까요. ‘자유’가 아닌 다른 후보들도 많았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결국 ‘자유’로 결정하자고 다짐했어요.

멤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야, 자유가 좋아, 다른 제목은 좀 아니었어’라는 얘길 하더라고요. 그때 쾌감 쩔었어요. “그래, 아니야. 자유야!”

 

현진 / 소윤이는 늘 답을 찾아오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중간에 저희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었고 답을 찾아왔을 때 그랬죠. “그래, 그건 아니었어.” (모두 웃음)

 

소윤 / 알고 보니까 저 빼고 모든 스탭들은 ‘자유’를 좋다고 생각하고 있던 거에요. (웃음) 자유라는 단어를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일상에서 자주 쓰지는 않잖아요? 그렇다 보니 ‘자유’라는 글자를 세상에 내보였을 때 느껴지는 쾌감이 있었어요.

 

배우 유아인이 출연한 뮤직비디오 역시 큰 화제가 되었어요. 어떤 계기로 함께하게 되었나요?

 

소윤 / 모임 별 활동을 통해 친분을 쌓게 됐어요. 아인 씨가 모임 별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어느 날 아인 씨가 재밌는 거 있으면 같이 하자고 먼저 얘기를 해줬고, 그때가 마침 ‘자유’를 발표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시기여서 그렇게 같이 작업하게 됐죠. 일련의 작업 과정을 무척 즐겨주어서 정말 고마웠어요. 이번 앨범을 행복한 기억으로 남길 수 있게 해준 인물 중 한 명이에요.

 

 

<놀면 뭐하니?>를 기점으로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게 되었지만, 음악은 보다 모험심이 강해지고 있어요. 이 또한 자유의 일환이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소윤 / 저희 셋 모두 ‘인기를 굳히려면 더 쉽고 재밌는 음악을 만들어야 해!’와 같은 작업자들이 아닌 거 같아요. 기본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사실 대중적이라는 기준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이 쉬운 말이지만, 굉장히 어렵고 또 중요한 태도이기도 하잖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대중성이란 개념이 상대적이지만 흔히 ‘대중가요’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스테레오타입들이 있잖아요. 누군가는 타협을 고민하기도 하고요.



소윤 / 갑자기 새소년이 다음 앨범으로 일렉트로닉 드럼을 도입해서 디스코를 해도 저는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해요. 대중성의 유무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했는지가 더욱 중요한 측면이라 생각해요. 물론 아예 타협하지 않을 수는 없겠죠. 모순된 말이라 생각해요. 다만, 최소한의 타협으로 새소년의 것을 해내면서 외부를 맞이하는 것이 저희가 지킬 수 있는 태도라 생각해요.

예를 들어 새소년이 방송에서 춤을 췄는데 누군가는 ‘대중들에게 어필하려고 작정했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예전 같으면 그런 피드백을 신경 썼을 텐데, 오히려 이젠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모험심이 커지고 있어요.

 

2021년을 살아가는 지금, 새소년이 하고 싶은 것을 해내는 게 가장 중요하고 그것이 어쩔 땐 댄스 커버일 수도 있는 셈이니까요.

 

소윤 / 그렇죠.

 

이어서 질문할게요. <새참>이나 인스타그램 릴스 컨텐츠도 그렇고, I’m Not Cool 댄스 커버까지 끊임없이 새소년만의 반전 매력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러한 소위 ‘느슨한’ 모습을 선보이는 것을 대중들이 가진 새소년에 관한 오해를 깨기 위한 일환이라 생각해도 괜찮을까요.

 

소윤 / 질문해주신 컨텐츠의 시작도 ‘자유’가 기점인지 모르겠는데, 일단은 재밌어서 시작했어요. 반면 걱정도 조금 있었어요. ‘아, 내 이미지!’ 같은 생각들. (모두 웃음)

 

현진 / 소윤이는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있지만, 저희 둘 같은 경우는 아니거든요. (웃음)

 

 

소윤 / 이 오빠들에게는 플러스에요, 완전. 아무튼 저도 사실 입체적인 사람이거든요. 사람의 한 가지 면모만 보여주는 것은 재미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놀 땐 놀고, 작업할 땐 하고 그러는 거죠.

 

팬들의 반응을 포함해 돌이켜보자면, 소윤 씨에게도 플러스가 되지 않았을까요.

 

소윤 / 득과 실을 따져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찍고 있으면 그냥 너무 웃겨요.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랄까요. 저는 이런 컨텐츠가 일종의 광기 같거든요. 무대도 그렇고, 카메라 앞에서 노는 것도 모두 광기라 생각하는데 이게 결국엔 공연을 못해서 이러는 게 아닌가… (모두 웃음)

 

웃고 떠들기도 했지만, 조금은 무거운 질문을 드리려 해요. 한 인터뷰를 통해 셋 모두 새소년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공평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밝힌 바 있어요.

 

소윤 / 지금도 계속 새소년의 테크라이더를 함께 수정해나가고 있어요. 카메라도, 조명도, 악기도 멤버 모두의 이미지가 고루 (대중에게) 전달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새소년이 점점 위로 올라갈수록 가능한 선택지 역시 많아질 테고, 앞서 질문 주신 것들에 대한 세심한 터치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측면에서 유독 이번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이었어요. 세 명의 멤버가 모두 뮤직비디오에 출연해 하모니를 만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거든요. 새소년이 오롯이 컨트롤할 수 있는 운동장에서 즐겁게 합을 맞추는 모습이랄까요. 그러고 보니 <음악중심>에서 엔딩을 각자 나눠 가지기도 했네요. (웃음)

 

소윤 / 재밌는 게, 오히려 음악 방송에서 셋을 골고루 잡아주시더라고요. 편견 없이 대한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어요. 개인 직캠도 따로 있고요.

 

현진 / 본방송에서 저는 1분 30초까지 출연을 안 해요. 그래서 솔직히 (제 모습을) 안 찍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직캠엔 다 담겨 있더라고요. (웃음)

 

 

이번 자리를 빌려, 새소년의 현진과 유수가 아닌 베이시스트 현진과 드러머 유수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네요. 라이브에서 신경 쓰는 지점이나 연주관 등 어떤 얘기라도 좋아요.

 

현진 / 공연 당일 악기의 컨디션이나 공연장의 온도/습도, 스트랩 길이 같은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편입니다. 두 멤버에 비해 아무래도 무대 경험이 적다 보니, 퍼포먼스를 위한 연습도 은근슬쩍 하고요. 예를 들어, ‘파도’에서 박자에 맞춰 발을 움직이면 굉장히 촌스럽거든요. (웃음) 그래서, 박자랑 발을 따로 움직이는 연습을 한다든지 두루두루 신경 쓰는 편이에요. 옆에 서 있는 소윤의 기분도 많이 살펴봅니다. (모두 웃음) 공연 전 분위기가 좋아야 공연도 잘 되니까요.

 

유수 / 드럼을 녹음했을 때, 어느 곳에서 들어도 최대한 비슷한 소리가 날 수 있게끔 신경을 가장 많이 쓰는 거 같아요. 학생 때부터 재즈 씬에서도 계속 연주하고 있는데, 스케줄이 없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참여하고 있어요. 밴드 활동에서 할 수 없는 부분들을 재즈 사이드에서 표현할 수 있어서 해소의 측면도 있죠.

 

소윤 씨는 그 누구보다 냉정한 프론트퍼슨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좋은 측면에서요. 성공에 쉽게 안주하지 않는 듯해요. 소윤 씨가 바라보는 현재 새소년의 위치는 어느 정도일까요.

 

소윤 / 저는 아직도 이제 시작 단계라고 생각해요. 결코 지금 자리에 머물러있고 싶어 하지 않는 습성 때문에 지금도 전진 중인데, 그 끝을 정해두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의’ 음악과 애티튜드를 간직하며 타협하지 않은 채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궁금해요.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해볼게요. 새소년을 바라보고 있으면 차근차근 한 단계씩 도장깨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수천 명을 수용하는 라이브홀에서 단독 공연을 매진시키고, 해외 매체에서 호평을 받고, 이제는 공중파 가요 무대에 올랐어요. 그렇다면 새소년의 가장 가까운 다음 스텝은 무엇일까요?

 

소윤 / 셋 모두 공통된 생각이지 않을까 싶은데, 더 큰 공연장에서 단독 공연을 하고 싶어요.

 

현진 / 저는 빌보드 1위요. (모두 웃음)

 

유수 / 월드 투어?

 

 

사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월드 투어도 마냥 먼 이야기는 아니었겠지요. 어느덧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 누구도 훼방 놓을 수 없는 ‘자유’의 일주일이 온전히 주어진다면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현진 / 건강을 위해서 6시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어요. 가끔은 좀 찡하기도 하거든요. 왜 이걸 참으면서 사나 싶기도 하고. (웃음) 그래서 일주일 동안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는 식도락 여행을 다녀오고 싶네요. 그게 저한텐 자유일 거 같아요.

 

유수 / 입대 전, 한 달 반 정도 전국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때만 해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떠날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근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물론 1주일이라는 시간이 짧기도 하지만, 한 번 더 여행을 떠날 거 같아요.

 

소윤 / 저는 실제로 계획했던 일이기도 한데, 묵언수행과 명상을 겸하는 템플 스테이를 1주일간 다녀오고 싶어요. 내적인 디톡스랄까요. 그런 시간이 있으면 좋겠네요.

 


인터뷰: 키치킴 (kixxikim)

백예린 (Yerin Baek)

 

백예린이 두 번째 정규 앨범 [tellusboutyourself]를 발표했다. 밴드 사운드 위주였던 전작과 달리 수록곡 전반에 미디 프로그래밍을 도입하며 사운드의 변화를 꾀했고 신스팝, 하우스, 개러지 등의 장르적 다양성 또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러한 음악적 성장의 배경에는 프로듀서 구름이 늘 함께했다. 두 사람의 음악을 향한 순수한 고집으로 완성된 본작은 하나의 장르에 치우치지 않는, 그야말로 한국 대중음악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순간을 선사했다.

 

앨범이 발표된 지 약 두 달이 지난 지금. [tellusboutyourself]를 재해석한 리믹스 앨범 또한 발매되었다. 백예린의 음악세계를 같이 구축해왔던 구름, 전위적인 힙합을 추구하는 그룹 XXX의 FRNK를 필두로 sogumm & 오혁의 ‘야유회’ 등 다양한 트랙에 참여하며 주목받고 있는 프로듀서 glowingdog (글로잉독), 한국 일렉트로닉 씬을 대표하는 KIRARA, 사이키델릭 록 밴드 실리카겔의 김한주, ‘The BLANK Shop’ 프로젝트를 통해 이미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윤석철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장르 프로듀서들이 백예린을 위해 한 곳에 모였다.

 

다양한 시도 끝에 또다시 음악적 성장을 이뤄낸 백예린, 그리고 그의 파트너 구름과 함께 이번 정규 앨범과 리믹스 앨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디로 활동을 시작한 지 한 일 년이 되셨네요. 음악이나 아티스트 활동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면 어떤 부분인지 궁금해요.

 

예린 / 큰 소속사에 소속되어 있는 것과 인디로 하는 것 간의 차이를 아직은 느끼지 못했어요. 코로나19가 시작되지 않았더라면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코로나19 때문에 지금 모두가 힘들고 큰 소속사들도 공연이나 쇼케이스를 못하고 있고 그런 부분이 다 어려우니까. 사실 지난 1년간은 크게 느끼진 못했어요.

 

이런 시기라서 특별히 느끼신 것이 있으세요?

 

예린 / 저는 페스티벌이나 공연 같은 대외적인 활동을 못 하니까 다른 아티스트분들은 앨범을 안 낼 줄 알았거든요. 근데 생각보다 많은 아티스트분들이 음원을 더 많이 내고 언택트 공연 같은 것도 더 많이 하려고 노력을 하시더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지금 앨범이 나와서 지금 잘될까?”, “사람들 마음이 힘든데 앨범이 나온다고 해서 잘 들어주실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다들 코로나19 때문에 힘든 것들을 음악으로 더 풀고 위로를 받는다고 하시는 게 있더라고요.

 

구름 / 언젠가는 이 음악 산업의 모습이 어떤 계기를 기점으로 바뀔 거로 생각했거든요. (저도) 클래식한, 옛날 방식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음악산업이 바뀌고 있는 게, 코로나19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기에 그에 맞춰서 바뀌는 거잖아요. 코로나19가 없어진다고 해서 지금 하는 게 다시 없어지고 예전 방식을 다시 취할 거라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이걸 기준으로 많은 패러다임이 바뀌고, 전기자동차 같은 존재처럼 바뀌는 것이 생길 것이고, 저도 이런 상황을 보며 미래 음악 산업에 대한 인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럼 음악 산업의 변화라는 점에서는 요즘의 상황은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구름 / 다 끝나고 보면 긍정적인 것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밴드 연주 위주로 만들어진 저번의 앨범과 비교하면 전곡 MIDI(프로그래밍 비트)로 만들어진 점이 대중에게 큰 변화를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어떤 경위로 이런 음악 스타일을 하게 되셨어요?

 

예린 / 제가 19년도 초반에 오빠한테 MIDI 레슨을 살짝 받았어요. 제가 프로처럼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쨌든 곡의 스케치를 전달하면 편곡하는 입장에서 제가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어떤 스타일을 하고 싶은지 저의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있잖아요. MIDI를 조금 배워서 오빠한테 샘플 쓰는 걸 배우고, 그러면서 제가 스케치를 14곡 중 13곡을 다 해서 오빠한테 먼저 줬어요. 준 것 중에 제 비트를 쓴 곡도 있고, 더한 곡도 있고, 제 건반에 쓴 곡도 있고 그래서 이 음반이 (기존 작품과는) 달라진 것 같아요.

 

대중에게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보여주자는 의도도 있었던 거예요? 작업하셨을 때 특히 조심한 것이나 의식한 것이 있으신가요?

 

예린 / 1집(“Every letter I sent you.”)보다는 변화된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음악에서 조금 벗어나서 예상하지 못하는 것들을 들려주고 싶었고, 사람들이 “예린이가 할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음악들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좀 벗어나서, 너무 많은 것을 욕심부려서 다 담거나 너무 새로운 모습만 보여주는 것보다는 그런 부분은 조심하면서 저번 앨범과 이어지기는 하지만 어쨌든 새로운 매력이 있는, “저는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요”하면서 보여주는 그런 걸 의도한 것 같아요.

 

구름 / 어쨌든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예린의 포지션이 ‘포크 가수’ 같은 지칭처럼 계속 같은 특정 장르에 포함되는 아티스트인 것이 아닐까 생각했고, 어쨌든 아티스트는 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변화해야 하니까 변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제일 컸어요. 누군가가 들었을 때 “다른 걸 하려고 했구나” 하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만 조심하려고 했죠. 왜냐하면 여기서 변화를 해야 했던 이유가 있어야 하니까, 그런 걸 찾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변화하는 것에 이유를 찾으셨어요?

 

구름 / 개인적인 것이긴 했는데, 이전 앨범은 옛날 방식으로 작업을 한 거였어요. 음악이 좋고 거기에 무슨 내용을 담느냐도 있지만, 지금의 가요를 듣는 사람들에게 이런 음악을 대중가수가 만들어서 가져가면 어떻게 이해하고 소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서 시작했거든요. 이번 앨범 같은 경우는 오히려 굉장히 현대적인 작업을 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70, 80년대 처음 전자음악이 생겼을 때의 클래식에 해당하는, 그 당시의 산업이 격변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우울한 사람들이 만든 신나는 음악 같은 걸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어쨌든 지금은 우울한 시기이기도 하고, 디트로이트에서 테크노가 만들어진 시절이라든가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요. 노래가 되게 신나고 파티 뮤직 같은데,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어둡고.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때의 신나고 우울한 디트로이트 테크노, 시카고 하우스 같은 음악에 매력을 느끼셨다고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셨나요?

 

구름 / 사실 지금은 ‘내가 무언가를 배워야지’, ‘찾아야지’ 하면 쉽고 빠르게 찾고 배울 수가 있잖아요. 옛날 시카고 하우스 같은 걸 들으면 잘 만들어진 현대적인 사운드인데, 지금 많이 쓰는 악기도 많이 있지만, 당시 그 사람들은 누구 친구가 쓰는 거, 비행기 타고 와서 구해온 LP 같은 그런 것들로 만든 음악들이니까.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것에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엄청 가난하고 주어진 게 없는 상황인데 거기서 신나게 놀아보겠다고, 음악을 틀어보겠다고, 만들려고 했고. 지금 언택트 공연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든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그런 최선을 다하는 느낌이나 방식 자체가, 그 어떤 분위기나 이런 게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의 음원을 들으면서 80년대, 90년대의 음악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혹시 신디사이저 같은 악기를 고를 때 새로운 것보다는 빈티지한 악기를 써보자” 같은 생각이나 시도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구름 / 그런 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은 해요. 예린이가 노래를 부르는 방식 같은 것이 요즘 가수 같은 느낌보다는 클래식한 느낌이 있다고 생각해서. 가사를 쓰는 방식도 그렇고, 자연스럽게 잘 어울려서 그쪽으로 흘러간 것 같아요.

 

피아노나 기타로 작곡을 할 때가 많았던 저번 앨범까지와 달리 이번 앨범은 전곡을 MIDI로 작곡했기 때문에 비트를 먼저 만들고 거기에다가 노래의 멜로디를 만든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작곡 방식에 변화가 생겨서 힘든 점이 없었나요?

 

예린 / 제가 2019년 3월에 EP([Our love is great])를 냈잖아요. 그때 이미 녹음을 다 해놓고, 오빠가 믹싱을 다 하고 있었어요. 저는 혼자 할 게 없으니까 오빠한테 조금 배운 걸 방에서 계속한 거예요. 1집은 피아노나 기타로 반주를 하면서 동시에 멜로디랑 가사를 쓰면서 작업을 했는데, 이번에는 마음에 드는 비트를 먼저 찾고, bpm을 맞추고, 그러고 나서 건반을 먼저 치고, 거기에 멜로디랑 가사를 붙였거든요. 아예 기존 방식에서 역방향으로 작업을 했는데 사실 엄청 장난치는 것처럼 작업한 거예요. 제가 가이드 같은 걸 만들어서 오빠한테 들려주고, 좋다고 쓰고. 이런 식의 작업이라 생각보다 다들 좋아해줘서 다 쓰인 것 같아요. 힘든 점이라기보다는 너무 편하고 재미있게 작업을 했어요.

 

 

재미있고 새로운 걸 도전하는 즐거움 같은 것도 느꼈던 작업이었네요. MIDI로 만들어진 비트와 신디사이저 사운드가 가져다주는 편안한 분위기나 무드가 앨범 전체적으로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댄스 트랙도 비트가 과하게 화려하거나 강하지도 않아서 앨범의 편안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은 것 같아요. 자신이 평소에 듣는 음악이나 취향 또한 너무 화려한 음악보다 어느 정도 자제한 음악을 선호한다고 생각하세요?

 

예린 / 밸런스가 있는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특정 누구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가사도 그렇고, 저는 요즘 음악보다는 옛날 음악을 더 좋아하고. 유재하도 좋아하고 빛과 소금도 좋아하고… 굳이 뽐내지 않아도 빛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번 앨범에서는 새로운 프로듀서 방민혁 씨와 같이 작업하셨네요. 어떤 계기로 같이 작업하게 되었나요? 재즈로 시작해, 요즘은 잔잔한 일렉트로닉을 솔로 작품으로 선보이는 방민혁 씨를 보며 예린 씨의 음악 스타일과 맞다고 느꼈어요.

 

구름 / 같이 하게 된 건… 늘 예린이가 저랑만 (작업을) 했어요. 이게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저와 작업하는 것 외의 시도를 하지 않은 건 일단 틀린 거로 생각했어요. 그리고 변화하려고 하고 있으니까 내가 잘 다루지 못하는 거,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거, 시장에 이해도가 있는 그런 사람이랑 같이하고 싶었고. 원래 민혁 형은 저랑 되게 오래 알고 지냈거든요. 대학교도 같이 다녔고 잘 아는 분이라 처음에는 그냥 같이해본 거예요. 잘 맞으니까 그냥 다 같이 하자고 한 거죠.

 

예린 / 그리고 저는 방민혁 오빠가 합류해서 너무 좋았던 이유는… 저희는 약간은 내성적이고, 집에만 있거나 작업실에만 오거나 하는, 우리끼리만 노는 사람들이라서요. 작업방식에도 삶의 방식에도 그게 티가 나는 것 같아요. 뭔가 많은 새로운 경험을 하기보다는 둘이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방민혁 오빠 같은 경우는 굉장히 저희랑 대조되게 밖에도 많이 나가고, 경험도 많이 쌓고 테크노 클럽도 가보고 저희랑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제 앨범의 변화는 오빠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왜냐하면 중간에 테크노 브레이크 같은 게 들어가 있는 것도, 그런 부분이 사실 오빠가 좋아하는 걸 적용해봤던 건데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거예요. 그런 부분이 성격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됐고, 저도 이런 많은 경험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럼 이번 앨범에서 특히 방민혁 씨의 영향을 받은 부분은 댄스곡이신가요?

 

구름 / 주로 그런 느낌이죠.

 

댄스곡에 대해서는 두 분이 미리 이번 앨범에서는 이런 걸 해보자같은 생각이 있었다기보다는 방민혁 씨가 그런 아이디어를 낸 거예요?

 

예린 / 그런 게 있지만 저는 제가 원래 하던 음악이 콘서트에서도 그렇고, 부르면서 우울한 노래들이 많고 발라드 노래들도 많아서 ‘내가 좋아하는 게 이게 진짜 맞을까?’, ‘내가 무대에서 지금 하고 싶은 노래가 이런 노래들일까?’ 하는 생각을 했을 때 전혀 아니었거든요. 제가 듣는 음악도 조금 신나고 리드미컬한 음악들이 많고. 그래서 저도 무대에서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그걸 이제야 푼 느낌이 있어요. 제가 처음 비트를 만들었을 때도 어느 정도 신나게 하려고 염두에 두고 방민혁 오빠가 들어오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죠.

 

구름 / 원래 빠른 템포의 곡을 예린이가 갖고 있었고, 그걸 같이 작업을 하는 거잖아요. 민혁 형이 아니라 다른 분이 왔으면 이게 전부, 예를 들어 스웨디시 하우스가 될 수도 있고 덥스텝 음악이 됐을 수도 있었던 건데. 민혁 형이 들어와서 딥하우스나 디트로이트 테크노나 이런 것들이 나오게 된 것 같아요.

 

분이 평소에 즐겨 듣는 댄스음악은 어떤 거예요?

 

예린 / 저는 St. Vincent를 엄청나게 좋아해요. 처음에는 그녀가 되게 모던록 정도까지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Masseduction]을 들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관능적으로, 직관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모습을 보고 이번 앨범에서 저도 솔직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한테는 엄청나게 신나는 음악만이 댄스가 아니라 그런 전자 음악, 조금 BPM이 느리더라도 신나는 요소가 악기로 있으면 그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구름 / 저도 비슷한 거 같아요. 오히려 작업 중간에는 댄스음악보다 밴드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Andy Shauf 같은 음악을 들었던 것 같아요. 그게 엄청 느리고 잔잔한 포크인데, 그것도 신나게 들으려면 들을 수가 있잖아요.

 

꼭 댄스음악 아니어도 두 분 모두 신나는 요소가 있는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같네요. 이번 앨범의 작업을 하면서 보다 다양한 음악을 접하게 된 것 같은데 Apple Music FLO에 공개된 플레이리스트를 봐도 그것을 느껴요. 그중에도 특히 제작 기간에 많이 듣거나 빠진 아티스트를 두 분이 한 팀씩 뽑아주시고, 그 아티스트의 어떤 부분이 이번 앨범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시는지 알려주시겠어요?

 

예린 / 저는 그 시기에 딱 들었던 게, Your Smith라는 아티스트가 있어요. 그 아티스트의 음악을 듣고 ‘아, 나도 이런 거 해보고 싶다.’ 했는데 그게 댄스음악이 아니었어요. 그냥 MIDI로 만든 그런, 간단하지만 대중적이고 되게 좋은 멜로디를 가진 음악이라고 해야 하나. 그걸 듣고 저도 MIDI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구름 / 영향을 많이 받은 부분은 딱히 꼽을 수가 없는데 제가 2019 년에 제일 많이 들었던 앨범이 Kaytranada 의 [BUBBA]인 것 같아요. 그 사람의 작업 방식이 알앤비, 힙합과 댄스음악의 경계선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해요. 파티 음악 같으면서, 힙합 같으면서 밸런스가 되게 좋아서. 음악을 되게 쿨하게 하거든요. 잡히는 걸 막 쓴 거 같은데 되게 섬세하고. 그런 무드를 만드는 데에 되게 집중하는 스타일이라 해야 하나. 킬링 멜로디 같은 것보다는 들었을 때 멋있게 들리는 무드를 잘 만들어서 작업하면서 되게 많이 들었어요.

 

 

이번 앨범과 양쪽에 놓으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다른 아티스트의 앨범을 두 분이 두 장씩 골라주시겠어요?

 

구름 / 제가 이 앨범도 많이 들었거든요. Video Age라는 팀의 [Pop Therapy]라는 앨범인데 되게 행복한 신스팝, 디스코 앨범이에요. 다른 한쪽에는 St. Vincent의 [Masseduction] 이걸 들으면 좋겠네요.

 

[Masseduction]의 경우 어떤 부분이 어울리거나 공통된 점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구름 / 어찌 됐든 예린이의 [tellusboutyourself] 앨범도 록적인 요소가 어느 정도는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St. Vincent [Masseduction] 앨범도 어느 정도 전자음악적인 요소가 많이 있는데요. 작업하는 방식이 되게 다른 전자음악이지만, 그래서 뭔가 이렇게 섞어서 들어도 다 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tellsuboutyourself] 끝나고 [Masseduction] 1번 트랙에 쭉 가면 넘어가는 느낌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은 보컬리스트로서의 예린 씨의 개성이나 매력이 잘 전달되는 앨범인 것 같아요. “I am not your ocean anymore” 같은 노래는 Michael Jackson이나 Whitney Houston 발라드곡을 연상시켰고 “Ms. Delicate”, “Loveless” 등에서는 소울풀하게 노래를 부르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보컬에 대해서는 어떤 것을 의식하고 작업하셨어요?

 

예린 / 녹음을 대충 하는 편이었어요. 정규 1집도 그렇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도 있지만 저는 라이브를 잘하면 된다는 주의였어요. 근데 쉬면서 앨범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분들과도 작업하고, 청하 씨나 다른 분들과 작업을 하면 정말 열심히 (노래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테이크도 많이 받고 컴핑(comping) 할 때 좀 좋은 걸 쓸 수 있게 대비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게 저랑 너무 달라서 처음에는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는데 그 과정을 계속 보다 보니까, 그리고 다른 가수분들의 이야기도 듣다 보니까 저런 부분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번 앨범에서 “Hate you” 같은 경우는 세 번씩 녹음하고, 그리고 엄청 열심히 더 힘을 냈던 것 같아요. 이번 앨범 전까지는 너무 대충해서, 이번엔 좀 확실히 더 다르게 해보자는 생각도 해서 녹음도 많이 받고 노력을 좀 더 많이 한 것 같아요. “Ms. Delicate”에서는 장르가 변화되는 부분에서 목소리가 조금 바뀌는데, 그 부분은 Alina Baraz나 Jhene Aiko처럼 소리를 내보려고 도전했어요. 그리고 “Hall&Oates”는 Hall & Oates처럼 브리지 멜로디를 만들고 싶어서 뒤에 기교나 이런 것들도 보면 그때 당시 Hall & Oates의 느낌이 나게 했어요.

 

가사는 사랑이나 연애를 주제로 한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지만 대중들에게는 공감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기록할 뿐만 아니라 고독감이나 불안감을 느끼며 갈등하면서도, 때로는 “Lovegame”이나 “Hate you” 등 연애나 상대방에 의존하지 말고 더 강하고 독립한 인간으로 성장하려고 하는 모습도 느끼고. 그런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지난 앨범까지도 사랑과 연애를 주제로 하는 노래는 많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연애에 관한 생각이나 가치관이 달라졌다면 어떤 부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예린 / 확실히 회사도 바뀌고 저한테는 2019년이 변화의 시기였던 것 같아요. 곡을 쓸 때 안 좋은 사람들이나 인간관계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인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 썼어요). 원래는 사람 만나고 하는 것들을 너무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너무 좋아했는데 너무 내가 순수했구나, 순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 좋은 사람을 구분할 줄 아는 방법을 조금은 배운 것 같아요. 아직 모자라지만. 그리고 내 사람들을 챙기는 그런 걸 많이 배운 것 같아요. 그래서 저번 앨범 타이틀곡인 “Square (2017)”나 “Popo”가 사랑의, 위로에 관한 노래였는데 이번의 타이틀곡은 우울한 부분이 많은 노래 두 곡이 타이틀이 됐잖아요. 우울함을 통해서 조금 더 강해진 제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요즘 멘탈이 조금 더 세진 것 같아요.

 

특히 “Hate you” 후반 브릿지 가사가 멋있고 인상적이었는데 이 부분은 어떤 것을 생각하면서 쓰셨는지 궁금해요.

 

예린 / 저는 사람을 미워하는 거 자체가 굉장히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배려를 한다거나 지나치게 그 사람을 생각해 준다거나 그런 걸 잘 안 하려고, 그런 일들을 많이 안 만들려고 평소에 노력을 많이 하거든요. 근데 그걸 되게 순진하게 그렇게 모든 사람한테 해줬던 것 같아요. 뭔가를 기대하고, 나한테 똑같이 잘해주는 걸 바라고 잘해주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항상 저만 상처받는 관계로 끝나더라고요. “Hate you”에서 그런 부분들을 “나도 싫어해”라고 말하지만 가사 끝에는 “그래도 너한테 이렇게 진심으로 신경 쓰고 좋아해 주는 사람이 나뿐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가사는 강하지만 어쨌든 그 안에도 그 사람을 케어하고 신경 쓰고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그런 곡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누군가를 증오하는 마음보다는 좋아하고 신경쓰는 사람이 좀 너무 못되게 굴 때나 정신 못 차릴 때, 그럴 때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요.

 

CD 버전에서는 “Hate you” 뒤에 tellhim”이라는 노래가 수록되고 있는데 “Hate you / tellhim”으로 하나의 곡으로 다뤄지고 있네요. “tellhim”은 제삼자에게 전 애인에 대한 소식을 물어보는 가사인 것 같은데 “Hate you”와 하나의 곡으로 되는 이유가 궁금해요.

 

예린 / 에피소드가 있어요. 원래는 King Krule한테 피쳐링을 부탁하려고 연락을 했어요. 서로 시차도 안 맞고 한 부분도 있어서 좀 연락이 계속 늦어지게 된 거예요. 발매를 얼른 해야 하는데. 무산되어서 안 하기로 했는데, 그 부분을 King Krule을 위해서 만들었죠. 그분의 스타일을 저희가 참고로 해서 만든 부분이 있었는데, 그걸 못하게 되었지만 트랙이 너무 좋은 거예요. 너무 아까워서 제가 그냥 멜로디를 붙이고, 어떻게 보면 “Hate you”라는 이야기가 지나간 후에 “그래서 개는 잘 지낸대?”라고 물어보는 곡이거든요.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I’m in love의 가사는 베를린에 체류하셨을 때 쓰셨다고 들었어요. 저번의 앨범에서도 “Berlin” “London”이라는 곡이 있어서 예린 씨에게는 방문해보신 해외의 도시 하나하나가 큰 영향을 가져다주는 것 같아요. 베를린과 런던은 각각 예린 씨에게 어떤 장소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을 떠나고 나서 기분이 달라진 걸 느낄 때도 있나요?

 

예린 / 베를린은 저한테 처음 가본 유럽 도시의 향기가 있어요. “Berlin”이라는 곡을 쓴 것도 어쨌든 제가 거기서 뮤비를 찍었고 사진 촬영을 했기 때문에 거기서 머물면서 몸으로써 느낀 걸 담아서 쓴 거였어요. 사실 런던은 안 가봤어요. 록스타들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저런 느낌인 도시구나’ 정도로만 보고 있었고 저한테는 어떤 클리셰(cliche)인 것 같아요. “London”은 곡이 이미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노래가 그런 느낌이 나서 그렇게 (제목을) 정했고. 저는 한국을 벗어나서 어떤 활동을 했을 때 되게 힘든 것 같아요. 원래도 밖에 안 나가기도 하고, 집에서 너무 멀어진 느낌이 들어서. 사실은 외국에 나가는 게 그렇게 행복하기보다는 좀 외로운 느낌이 많이 들고 우울할 때도 잦은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은 리믹스 앨범도 함께 발표되는데,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예린 / 이번 앨범은 여러모로 다양하고 새로운 장르를 도전했기 때문에 편곡 방향 역시 다양할 수 있는 앨범이라고 느꼈어요. 평소 좋아하던 프로듀서 분들과 새로운 작업도 해보고 싶었던 중에 ‘이들은 제 앨범을 어떻게 해석하실까’하는 궁금증으로 시작해 부탁드리게 되었어요.

 

구름 / 예린이는 앨범 작업을 대부분 저와 함께 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분이 합류하면 어떤 느낌의 결과물이 나올지 늘 궁금했어요. 그래서 리믹스 앨범에 대한 생각은 앨범 작업 과정에서부터 이미 어느 정도 갖고 있었어요.

 

참여 프로듀서의 리스트를 살펴보면 힙합, 일렉트로닉, 장르가 다양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많은 음악적 시도가 있었던 이번 앨범과 어우러지는 그림이었는데요. 콜라보 아티스트는 어떤 방식으로 선정했나요?

 

예린 / 평소 좋아했던 분들께 부탁을 드렸어요. (웃음) 저와 다른 장르와 씬에 계신 분들이 어떤 식으로 작업하시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분들의 앨범을 듣고 감명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제안하게 된 것 같아요.

 

구름 / 평소에도 잘하신다고 생각했던 분, 혹은 작업을 맡겨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분들을 생각해서 예린과 대화를 나누어 결정하게 되었어요.

구름 씨는 편곡 작업도 함께 겸했는데, 이번 리믹스 앨범 작업에서 어떤 점을 가장 신경 썼나요?

 

구름 / 보컬 음악의 경우, 그 음악의 주인은 보컬이기 때문에 (보컬을 위해) 많은 부분을 비워요. 리믹스 작업의 경우 그런 제약으로부터 편하게 접근할 수 있어서 좋았고요. 같은 상황이나 감정도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법이 다 다르기 때문에 예린이의 가사를 보고 느낀 마음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보려 했습니다.

 

예린 씨는 새롭게 해석된 리믹스 음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예린 / 너무너무 재밌는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프로듀서 분들께서 아무 제약 없이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어 더 재밌었다고 얘기해주셔서 기뻤고요. 이렇게 멋진 분들이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제 음악을 편곡해 주셔서 감동이었고, 기회가 있다면 참여해 주신 분들과 함께 더 많은 작업을 함께 하고 싶어요.

 

 

비주얼 면도 아티스트로써의 예린 씨 개성의 하나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도 145office의 홍연수 씨와 자주 같이 작업하신 것 같은데 어떤 점으로 그분한테 신뢰를 갖고 계셔요?

 

예린 / 저랑 언니는 친구로 처음에 만나서 일 자체를 생각했다기보다는 서로 응원하는 입장이었어요. 옆에서 저를 보면서 저번 앨범도 그렇고 제가 맨날 다 혼자 하다 보니까 이렇게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니는 게 안쓰러웠나봐요. 걱정하기도 하고. 그래서 계속 뭔가 필요하면 자기가 해줄 테니까 얘기하라고 먼저 말하더라고요. 이번 뮤비랑 옷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변화가 많았잖아요. 그 변화를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는 게 사진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진에서 제가 비주얼적인 면을 보여줬을 때 사람들도 약간 놀라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언니는 그런 일도 많이 해봤으니까 조금 더 전문적인 분이랑 함께 해나가면 좋을 것 같아서, 그게 참 잘된 것 같아서 서로 잘 지내고 있어요.

 

[tellusboutyourself] 앨범의 비주얼이나 사진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해요.

 

예린 / 보통 저는 앨범을 기획할 때 곡이 다 있는 상황에서 곡 마다 찍고 싶은 사진의 느낌이나 장소 같은 걸 PPT로 만들어서 직원분들께 보여드려요. 그와 맞는 포토그래퍼를 찾고, 장소를 찾고. 포즈 아이디어나 같은 것도 포토그래퍼랑 논의하고 그런 식으로 일을 해왔어요. 사람이 취하고 나서의 감정 같은 것들을 표현하고 싶어서 클럽 화장실 같은 곳을 많이 찾아보았는데, 그런 부분들에 제 의견이 많이 반영되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오래 활동하는 아티스트로서 아티스트 커리어를 쌓아가는 점을 생각하면 특히 존경하시는 아티스트가 있으신가요?

 

예린 / 오빠가 동경사변 노래를 많이 들려주어서 시이나링고 영상을 많이 보게 된 거예요. 그분이 진짜 오래 활동하시고 있기도 하고, 앨범마다 하나씩 컨셉이 있고 어떤 세계관이 있고. 저는 이런 가수가 흔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엄청나게 큰 계획을 짜고 큰 자본을 들여서 해야 하는 작업이니까. 그래서 저는 그분 영상들을 보면서 ‘아, 나도 이렇게 뭔가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 생각하죠. 어쨌든 일본 여성 가수라고 하면 그분이 제일 먼저 떠오르거든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계속 오래 하고 싶어요. 컨셉도 계속 바꿔보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도 해보면서.

 

구름 씨도 예전에 저와 인터뷰를 했을 때도 동경사변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줬는데, 음악이나 커리어의 어떤 부분에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구름 / 프로듀서로써 시이나링고가 많이 귀감이 됐던 것 같아요. 사실 그분이 원래 약간 록스타잖아요. 1집부터 들으면 되게 록 음악을 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이렇게 밴드를 하면서도, 오히려 지금의 앨범을 들어보면 오케스트레이션 성향이 강해진, 빅밴드 형태도 그렇고 어떤 그 사람만의 변화가 있고 그런 계기도 있고, 그렇게 지나가면서 하나하나의 앨범을 냈던 게 저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아티스트는 계속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같은 틀이라고 해도 만들고 또 납득시키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그 사람이 다른 팀이나 외부활동을 하면 스스로 아티스트로써가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으로써 일할 수 있는 모습도 되게 멋있는 것 같고. 자기가 다른 사람이랑 한 곡들을 자기가 불러서 낸 앨범도 있잖아요. ([逆輸入 ~港灣局~]) 그런 것들도 들어보면 밸런스를 맞추는 것 같아요. 이런 작업을 하는 나와, 내 음악을 하는 나와, 내 친구들이랑 있는 나. 이 아티스트의 모든 모습이 되게 멋있고 그것이 되기 어려운 거라는 걸 알아서. 그런 부분을 좀 더 리스펙트합니다.

 

이번 앨범의 작업을 통해서 아티스트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어떤 부분이 성장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예린 / 저는 일단 두 번째 정규 앨범인데, 항상 저는 아티스트들한테 소포모어 징크스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걸 조금 잘 깬 것 같아요. 1집에 담긴 얘기를 솔직한 얘기라고 해주는 분도 많았지만 저는 조금 불투명한 가사를 썼다고 생각해요. 조금 은유적이고. 이번 앨범에서의 가사는 조금 더 저의 최근 생각, 최근 고민, 그리고 저 안에서의 어떤 갈등에 대해서 진짜 솔직하게 썼다고 생각하거든요. 만들어낸 얘기 없이 제가 느꼈던 감정을 메모로 해놓았던 걸 그대로 옮겨서 쓴 거라서, 그래서 사람들한테 제 모습의 일부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조금 사라진 그게 제일 큰 변화인 것 같아요.

 


 

Interview | 야마모토 다이치
Edit | 키치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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