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사의 과거와 현재, 동시기의 국내와 국외, 그리고 록/팝의 양식 사이에서 그들에게 가장 알맞은 지점에서 완성된 기억할만한 데뷔 EP.
FRankly (프랭클리)
Frankly I…
2022.03.17
제32회 유재하 음악 경연 대회에서 동상을 타 작년의 컴필레이션 음반에 처음 실렸던 ‘철’은 상의 명성에 걸맞게, 훌륭한 보컬 멜로디 진행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트랙이다. 하지만 [Frankly I…]에 수록된 버전에 (2022)가 덧붙여졌듯, 두 트랙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그 차이에서 프랭클리의 첫 EP에 작동하는 두 힘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철’에서 ‘철 (2022)’로 향하는 과정에서, 전체적인 사운드는 훨씬 더 오밀조밀한 무게감을 띠고 집중된다. 이것이 가장 확연히 드러나는 부분은 리드기타의 톤에 있다. ‘철’에서 상대적으로 높이 찰랑거렸던 톤이 특히나 ‘철 (2022)’의 마지막 후렴구에서 훨씬 더 찌그러져 있으며, 목소리에는 코러스까지 들러붙어 더 두터워진다. 이것을 현대적인 발라드 양식으로 화성·편성의 중요성을 들려줬던 유재하의 가요사적인 맥락에서 생각해보자. 그러한 선율적인 유산을 기릴 음악 경연 대회 컴필에서는 하늘하늘한 톤이 두드러지는 “전기기타 중심의 인디 팝”이라 해도 무방했을 ‘철’이, [Frankly I…]에서는 더 지글거리는 기타 사운드가 강조된 후렴구 멜로디까지 도입부에 추가되며, 완연한 “인디 록”의 모양새에 더 가까워지는 셈이다.
이러한 전기기타 사운드로의 접근법에서 [Frankly I…]에 작용하는 두 힘을 뽑아낼 수 있다: 주로 멜로디를 타고 “라이트-멜로우”하게 부유하려는 동시기 인디 팝의 힘과, 같은 선상에서 왜곡되고 증폭된 전기기타 음색에 집중하는 인디 록의 힘. ‘철’의 이동방향은 유재하 음악 경연 대회가 근 30년 내내 꾸준히 공급하고 있는 멜로디 중심의 팝/가요에서부터, 각 부분들이 두꺼운 사운드로 짜 맞춰지는 록 밴드의 그것으로 옮겨진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변환은 [Frankly I…]의 프로듀싱을 맡은 조 레인(Joe Layne)이 유재하보다 강하게 영향력을 발휘한 덕일지도 모른다. 가요의 부품 사용법을 개선해 양식 전체를 정립했던 과거의 혁신가인 유재하와 비교하자면, 조 레인은 현대적인 인물상으로서 각 부품을 공유하는 양식들이 융화되는 양상을 들려주니까. (“언더그라운드 락스타”를 표방했던 창모의 음반에 유사한 종합성을 선보이는 안다영과 함께 그의 이름이 있었단 걸 떠올려보면 더욱 그러하고 말이다.)
이때 [Frankly I…]의 첫 트랙 ‘TR’이 로우파이하게 녹음된 전기기타 리프로 시작하거나, 노랫말에서 “(당신의) 록 스타”를 강조하는 트랙이라는 것을 함께 떠올려보면 좋을 것이다. 리드 기타와 리듬 기타 양쪽 모두가 각자의 개러지함을 내뿜고 제법 시끌벅적하게 조절된 드럼 구간과 기타 솔로가 존재감을 뽐내듯, 프랭클리의 사운드는 부단히 록적인 음색을 지니고자 한다. 멤버들이 복고적 팝 멜로디의 “록 스타” 이미지로 국내에 옮겨와진 이른바 “브릿팝” 스타일을 애호한다는 것과 조 레인의 영국 유학 경력이, 어쩌면 ‘TR’을 비롯해 [Frankly I…]가 지향하는 이 록적인 무드와도 연결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트랙 후반부의 결정적인 순간을 만드는 것은 전기기타 사운드를 강조한 짜릿한 연주 구간이 된다. 꽉 찬 무게감으로 질주하며 매듭짓는 ‘TR’의 마무리 기술은 다른 트랙들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된다. 보컬에 있어 발라드적인 탑 라인을 가장 강조하는 편일 ‘Back to Love’의 앞뒤로 지글거리는 기타 소리가 배경에서 은근한 공간감을 형성하며 삽입된다거나, 느린 정박의 리듬으로 찰랑거리는 리프를 차근차근 이어가는 ‘버거’가 짙게 일그러진 소음으로 대단원을 장식하는 구성이, 프랭클리가 EP에서 잡아둔 인디 팝의 록적 균형감각을 효과적이게 들려준다.
그러므로 [Frankly I…]의 안팎으로 작용하는 두 이름과 힘, 유재하(고전적인 가요)와 조 레인(동시기의 인디 록/팝 결합체) 중에서는 후자가 아무래도 강하다 단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EP는 국내의 가요나 영국적인 팝 록 이외에도 의외의 방식으로 동시기 아시아권의 인디 팝/록과 직접 연결되기도 한다: ‘飛車 (Roller Coaster)’는 대만의 밴드 선셋 롤러코스터(낙일비차, 落日飛車)에게서 “선셋/落日”을 떼어둔 것 같은 곡명이다. 개인적으로는, 대만이나 태국의 인디 팝/록이 앞서 언급한 “라이트-멜로우”함, 특히 나른하거나 청량하게 떠다니는 기타 톤으로 승부하는 쪽을 국내의 밴드들보다 능력껏 발휘한다고 느껴진다. 흥미롭게도, 프랭클리가 그러한 밴드들로 대표되는 양식을 참조할 때에는, 흐느적거리는 음색 대신 쫀쫀한 그루브만을 가져와 록적인 트랙 편성에 이식한다. 이번에는 적재적소에서 리듬을 밀고 당기는 베이스를 중심으로, 쫄깃하게 삽입되는 전기기타와 기본기를 다잡은 드럼이 밀도 높은 합을 맞춘다. 그 덕에 트랙은 미세하게 분화되는 양식들이 점차 융합되어가는 동시기 인디 팝/록의 특성을 유감없이 들려준다. 조금만 비약하자면, 그러한 ‘飛車 (Roller Coaster)’에서는 인디 팝/록 간의 명민한 조합을 특유의 그루브로 선보였던 과거의 또 다른 “롤러코스터”, [Absolute]로 하우스적인 완벽함을 추구하기 전까지의 그들이 연상될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적법하게 유재하와 조 레인을, 비약을 살짝 담아 낙일비차와 롤러코스터를 끌어들이긴 했지만, [Frankly I…]는 단순히 그러한 이름과 힘들의 교차점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가요사의 과거와 현재, 동시기의 국내와 국외, 그리고 록/팝의 양식 사이에서 그들에게 가장 알맞은 지점을 찾아 나서면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회로 간에 겹쳐진 구간들이 기억할만한 데뷔 EP로 구성된다. 더 넓게 보자면, 이는 2010년대 중후반 이래로 포크라노스라는 플랫폼에서 발매하는 일정 비율의 “동시기 국내 인디”의 특색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교차지대에서 취해온 다양한 요소들을 각각 살리면서도 하나로 합쳐내는 방식은 햄버거라는 음식이 맛을 내는 것과도 비슷할지 모르며, 솔직히 나는 마지막 트랙이 햄버거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아님에도 어쨌든 제목이 ‘버거’라는 이유만으로 EP를 좋아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육즙 가득한 패티부터 신선한 야채들과 풍미를 더하는 소스까지의 재료들이 두 장의 빵 사이에 알맞게 담긴 버거를 크게 한 입 베어 먹는 느낌은, [Frankly I…]를 비롯한 요 몇 년 동안의 팝적인 인디 록 또 록적인 인디 팝과 꽤나 닮아있으니까.
Editor / 나원영 (대중음악비평가)